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윤흥길 연재 소설
https://blog.yes24.com/springstar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나의별에도봄이오면
월~금 10시에 업데이트 됩니다 ^^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2월 스타지수 : 별6
작가 블로그
전체보기
알립니다
이벤트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윤흥길 작가 소개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23 / 1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나의 친구
최근 댓글
wkf qhrh rkqlsek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보고갑니다. 
안타깝습니다. 정말 호흡이 좋은 글이.. 
새로운 글
오늘 2 | 전체 49763
2011-09-08 개설

전체보기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62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07 08:36
https://blog.yes24.com/document/638792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간에 쉬 슬고 쓸개에 곰이 피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어쩐지 결핵균 득시글거리는 허파까지 한목에 싸잡아 욕하는 것 같아 기분이 떨떠름했다. 좀 전 누님과의 대화처럼 또다시 사촌형과의 대화 틈새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연방 요란하게 비어지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삐거덕거림이 일상적으로 굳어진, 몹시 사나운 일진인 듯했다. 대화 틈새마다 불거지는 불협화음이 몹시 거슬리는 바람에 부용은 잠시 이야기를 중단했다. 그러나 그 침묵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순식간에 제 몸집을 어처구니의 크기로 한껏 부풀리는 불협화음의 모습에 더욱더 기가 질린 나머지 부용은 부랴부랴 다음 이야기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 그 성격에 시방 무슨 맘인들 못 잡수시고 무슨 말씀인들 못 허시겄습니까. 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당신 생각도 차차 바뀌실 겁니다.”

 

  부용이 동상 생각에는 시방 백비탕맨치로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어르신 노염이 시방 시간이 지난다고 제절로 솥단지 바닥에 바싹 쫄아붙을 성 부른가? 작년 그러께 담궈둔 새비젓 항아리맨치로 시방 어르신 노염이 푹 곰삭어뿔고 나면 시방 어르신께서 그놈들을 너그러이 용서허실 성 부른가, 시방? 어림도 없네, 어림 반 토막도 없어! 상곡 그 어르신 아니라 시방 이 최진용이 좁은 쇠견구녁으로도 시방 소리 안 나는 육혈포 한 자루 있다면 시방 그 사회주의 잡것들을 탕탕 쏴뿔고 잪으다네!”

 

  소리 안 나는 육혈포로 탕탕 소리 나게코롬 쏜다는 건 당최 앞뒤가 안 맞는 말씀 아니겄습니까?”

 

  부용은 씁쓰레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진용이 단박에 한소끔 퍼르르 끓어오르고 말았다.

 

  자네가 시방 나 미쳐 죽는 꼴 보고 잪어서 시방 사람 약을 실실 올리는가? 송곳다발 우에 올라앉은 것맨치로 사세가 위중헌 이 판국에 시방 자네 입에서 똑 그런 따우 농담이 나와야만 쓰겄는가?”

 

  제발 진정 조깨 허십쇼, 형님. 형님마저 흥분허신다면 우리 최씨 집안 일은 훨씬 더 복잡허게 얼크러지고 맙니다.”

 

  나가 시방 흥분 안 허게 생겼는가? 그 사회주의 두 것들이 시방 저지레헌 천하잡놈 행투만 생각헐라치면 나는 시방 치가 덜덜 떨리고 속에서 천불이 펄펄 끓어 넘치는 바람에 시방……”

 

  사회주의자라고 어찌 말짱 다 천하잡놈 일색이겄습니까.”

 

  아니, 그렇다 허이면 시방 부용이 동상 말은 시방 그 옘병헐 사회주의를 두남두고 잪으다, 요 따우 말본샌가?”

 

  위쪽으로 뾰쪽하게 치솟는 진용의 목소리가 천장을 들이받고 타래송곳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보꾹에다 숭숭 구멍을 뚫으려 했다. 방문 여닫히는 소리에 잇대어 다급히 옮기는 발소리가 안방 쪽에서 빠르게 다가왔다.

 

  어머님이 혼절에서 인제 막 깨어나셨어요. 앞으로도 한참 더 안정을 취허셔야 될 정도로 지금 어머님 상태가 안 좋아요. 오라버님, 부용이까장 포함혀서 지금 안채 지붕 밑에 환자가 둘이나 있다는 걸 기억허시고 제발 자중허셨으면 좋겄습니다.”

 

  비난의 기운이 담긴 목소리가 구석방으로 한 걸음 먼저 달려오고, 그 뒤를 바싹 좇아 목소리의 주인은 나중에 나타났다. 진용은 문지방 앞을 그들먹이 가로막고 있던 몸뚱이를 엉거주춤 일으켜 순금이 방안으로 들어설 수 있게끔 길을 터주면서 입속말로 웅얼거렸다.

 

  미안시럽고만, 순금이 동상. 부용이 동상이 시방 그 빌어도 못 처먹을 사회주의를 시방 두남두는 바람에 시방 나가 고만……”

 

  제발 부탁 조깨 드리겄어요, 오라버님.”

 

  순금은 단지 그 말만 남기고 구석방에 들지도 않은 채 곧바로 왔던 길을 되짚어 힁허케 가버렸다. 그 사품에 진용의 성깔이 한결 몬존해졌다. 그러나 부용은 거금 만 원 사건의 후환 때문에 자신에게 유감이 많았던 사촌형의 언중유골에 앙앙불락하고 있었다. 자신은 절대군주 야마니시 아끼라의 식민지가 아니며, 천석꾼 영감과 그 하수인인 최진용하고 한통속으로 놀아났던 적도 없으며, 부자지간에도 얼마든지 달리 품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상이란 사실을 기왕 사회주의 말이 나온 김에 사촌형에게 확실히 밝혀둘 필요성을 느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61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07 08:35
https://blog.yes24.com/document/638792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에잇, 빌어도 못 처먹고는 시방 배창시가 등까죽에 시방 찰싸닥 들어붙어서 뒤어져뿔 사회주의 놈들 같으니라고!”

 

  풀밭에다 부룩송아지 떼 방목하듯 고삐 안 걸린 욕설들을 건공중으로 질펀하게 풀어놓으며 진용이 사랑채 마당을 건너질러 오는 중이었다. 진용의 성난 발걸음은 이미 일차 방문한 바 있는 안채를 재차 들르지 않은 채 곧장 대문간으로 직행할 태세였다. 기회를 놓치기 전에 제때 사촌형 발걸음에 제동을 걸 요량으로 부용은 병구 이끌고 기신기신 방을 나섰다.

 

  형님, 사랑채 일은 어떻게 되얐습니까?”

 

  어느덧 둘 사이에 정해진 법칙인 양 묵계로 형성된 대화 방식이었다. 결핵균들이 환자 입을 떠나 방문객의 건강한 호흡기관 향해 단체로 이동하자면 다소 힘에 부치고 숨이 턱에 닿아 허덕거리지 않을 수 없게끔 상당한 간격을 두고 두 사촌지간은 제각각 구석방 안쪽과 문지방 사이에 따로따로 자리를 잡곤 했다. 부용이 입을 벌려 방안에 결핵균을 산포하면서 선제공격에 나서자 진용은 지체 없이 방어 태세로 돌입했다.

 

  자네가 시방 몰라서 묻는 소린가? 내 입주뎅이로 시방 꼭 재탕을 끓여야만 사랑채 나발소리가 시방 자네 귀에까장 들어가겄는가?”

 

  양쪽 구두끈을 한 줄로 묶어 사촌동생한테 선물 받은 칠피구두 한 켤레를 목수건처럼 목에 두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채 진용이 툽상스럽게 쏘아붙였다. 사촌형 말마따나 반드시 재탕을 맛봐야만 사랑채 쪽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구석방 안에 국으로 가만히 틀어박혀 있더라도 방금 전 사랑채에서 벌어졌던 광경은 부용의 머릿속에서 활동사진으로 재구성하고도 남으리만큼 충분한 것이었다. 다만, 아들과 이질의 피체 소식에 따른 첫 반응 삼아 천석꾼 영감 입에서 튀어나온 개구일성이 무엇인지, 그 점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을 따름이었다.

 

  날더러 시방 산서면민들 가가호호마닥 시방 일일이 발품 팔고 찾어댕김시나 시방 연판장 돌리라고 그러시데. 금수만도 못헌 그 두 화적패 놈들을 시방 당장 총살형에 처혀뿔라는 탄원서 작성혀서 시방 총독 각하 앞으로 올리겄다고 시방 저러콤 생야단이시라네.”

 

  과연 천석꾼 영감다운 말씀이었다. 천생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님 그 지시 받들어서 형님은 시방 면민들 상대로 탄원서 작성허러 나가시려던 참입니까?”

 

  나가 시방 미쳤는가? 자네가 시방 날 으떻게 보고 허는 소린가? 어르신께서 부앳짐에 시방 되나못되나 마구잽이로 놓으시는 말씸인지 자네가 시방 몰라서 그러는가? 어르신 승질을 누구보담도 잘 아는 자네가 시방 쪼깨 에누리혀서 들을지 알어야지!”

 

  아버님 분부가 추상같은 이 판국에 형님은 인제부텀 탄원서말고 다른 무신 사업을 도모허실 작정입니까?”

 

  나가 도모헐 만헌 사업이 시방 뭣이 있겄는가? 간에 쉬 쓸고 씰개에 곰이 핀 그 사회주의 놈들 시방 원망허고 저주허고, 지발덕분에 그놈들 시방 싸게싸게 잡어가시라고 시왕전에 비손이질허는 그 사업 빼놓고는 시방 달리 헐 짓이 하나도 없는 것 같으네!”

 

  듣고 보니깨, 형님 방금 그 저주는 사회주의 놈들보담은 외려 이 폐병쟁이 산송장 최부용이한티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말씀 같습니다그랴.”

 

  진용의 낯꽃이 갑자기 멀뚱하게 변했다. 그는 방금 제 입으로 문지방에 와르르 쏟뜨린 말들을 허둥지둥 도로 주워 담고자 잠시 설레발을 놓았다.

 

  , 미안허게 되얐네. 그 말이 시방 자네 귀에 그런 뜻으로 들렸다면 나가 시방 자네한티 사화허는 게 옳은 도리겄지. 그렇지만 그 말은 시방 부용이 동상을 염두에 두고 헌 말이 절대 아니네.”

 

  물론 저도 형님 뜻을 잘 알지요. 그냥 웃자고 한번 뱉어본 소립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60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03 08:58
https://blog.yes24.com/document/637501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부용은 아까부터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진퇴를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머리맡 자리를 탐내는 이연실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작 허락이 떨어지고 나니까 여인의 태도가 싹 바뀌었다. 여인은 싸늘한 비웃음과 함께 절레절레 도리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비로소 부용은 걸핏하면 남정 혼자 거처하는 구석방 내부를 기웃거리는 여인의 속셈이 무엇인지 올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정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벌이는 수작질이 분명했다. 오뉴월 하늘에 된서리 내리게 한다는 여인의 지독한 원념이 날카롭게 벼린 한 자루 비수로 변해 그처럼 곡두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를 무시로 넘나들면서, 그처럼 자주 남정의 가슴팍을 유혈이 낭자하도록 찌르고 도려내는 짓거리를 통해 무시무시한 앙갚음을 꾀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아니라고? 싫으면 고만두시든가.”

 

  이불을 도로 뒤집어쓰자 전주부내 길거리 풍경이 시간을 훌쩍 거슬러 몇 년 전의 모습으로 재빨리 뒷걸음질했다. 눈을 감자 전주역 가까운 곳에 자리한 책방 내부가 활동사진처럼 또렷하고 생동감 있게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문학서들이 빽빽이 꽂힌 서가를 차례차례 훑어 나가던 부용의 눈동자 안으로 마침내 노서아문학전집이 퐁당 뛰어들었다. 똘스또이의 『復活』을 겨냥하고 팔을 길게 내뻗는 순간, 거의 동시에 똑같은 목표물을 향해 다른 각도에서 다가드는 누군가의 손이 얼핏 눈에 띄었다. 오밀조밀 작고 새하얀 손이었다. 마땅히 칠세부동석이어야 할 남녀의 손끝과 손끝이 거의 맞닿을 듯 근접하는 순간을 가까스로 피하면서 부용은 자신의 무렴한 손은 황망히 거둬들였다. 명문 여고보의 교복 차림이었다. 여학생은 허둥지둥 남학생 눈길을 피하면서 발그레하게 꽃물이 밴 낯꽃을 외로 꼬고 있었다. 부용은 용력을 발휘해서 얼른 서가에서 문제의 책을 뽑아 들었다.

 

  찾으시는 책이 이겁니까?”

 

  교복짜리 여학생은 고개를 깊이 수그린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똘스또이 선생 복활을 찾고 계셨습니까?”

 

  그러자 여학생 입에서 부지중에 가벼운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것이 찾으시는 책입니까?

 

  부용은 이불자락을 얼굴 아래로 약간 끌어내렸다.

 

  찾으시던 책이 똘스또이 선생 복활입니까?

 

  묵은 기억의 통로를 빠져 나오는 동안, 하나의 연극 대사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숙성되고 발효되면서 각각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지닌 여러 형태의 대사로 변조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부용은 눈을 한껏 둥그렇게 칩떠 허공을 또렷또렷 응시한 채 별안간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지난날 기억 더듬기와 기억 어루만지기는 이내 잠깐의 파적거리에 그치고 말았다. 새삼스레 묵은 기억의 치부책 꺼내 그 위에 앉은 먼지 떨고 갈피 열어 잠시 속을 들여다보는 중인데, 바로 그때 또다시 통곡소리가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사랑채를 출발한 통곡이 안채 쪽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관촌댁은 통곡을 멈출 의사가 조금도 없는 눈치였다. 근자 들어 집안에서 어머니 울음소리와 맞닥뜨리는 일은 이미 항다반사처럼 흔해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용은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그다지 슬프거나 원통하게 느껴지지 않으리만큼 어머니 통곡에 이제는 면역이 되어 있었다.

 

  부용은 통곡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 말고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는 듯 다시금 자살과 관련된 생각들로 머릿속을 그득 채우기 시작했다. 골똘히 자살을 꿈꾸는 동안, 오직 그것만이 이생의 질곡에서 헤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임을 재삼 확인했다. 어떤 방식과 수단을 택해 목숨을 끊든지 간에 하여튼 죽음의 고통은 삶의 고통에 비하면 결코 더 악질적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황홀지경에 보다 더 가까운 것이라는 점을 부용은 저 자신에게 무수히 주지시키고 설득하고자 노력했다. 자살을 결행할 경우 반드시 사랑채 대들보를 죽음의 장소로 선택해야 한다고 다시금 저 자신을 상대로 당조짐을 주고받았다. 생애 최후의 순간을 여인의 품안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분수도 모르고 염치도 없는 욕심이란 괴물이 아직도 흉중 어딘가에 똬리 틀고 있을 성만 싶었다. 부용은 세차게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소망은 스스로 사랑채 대들보에 목매다는 행위와 시간상으로나 공간상으로 상충되고 배치되는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그따위 허황한 미련일랑 이제 그만 버리는 게 좋다고 부용은 저 자신을 상대로 간곡히 타일렀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9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02 08:32
https://blog.yes24.com/document/637116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병약한 인간 허깨비 같은 체중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같은 값이면 은가락지 낀 손에 맞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왕지사 매달릴 바에야 애꿎은 나뭇가지나 다른 엉뚱한 들보를 선택하는 경우보다 모양새도 어연번듯하고 또한 의미마저 심장한 사랑채 대들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만판 더 가관일 듯 싶었다. 사랑채 대들보, 바로 그 자리야말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두고두고 사랑채 주인을 괴롭히기에 제격의 장소였다. 야마니시 영감으로 하여금 끼니때마다 밥맛 잡치게 만들고 밤마다 가위 눌리는 악몽에 식은땀 흘리게 만들 수 있는, 아주 안성맞춤의 자리임에 틀림없었다. 출타했다 귀가한 야마니시 영감이 사랑채로 발걸음 들여놓기 무섭게 큰아들 시신과 덜컥 맞닥뜨리는 순간을 부용은 상상으로 지켜보곤 했다. 두 눈 홉뜨고 혓바닥 기다랗게 빼문 채 대들보에 디룽디룽 매달려 있는 시신을 보고 대경실색한 나머지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이 내지를 비명과 최명배 영감이 받게 될 충격, 그리고 최부용의 부친이 맛보게 될 낭패감, 이렇게 세 사람 입장으로 나누어 상상함으로써 기분이 세 곱절이나 좋아지는 바람에 부용은 이불자락 밑에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근자 들어 부용은 자신의 주검을 에워싸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채 안팎에서 벌일 갖가지 북새통과 별의별 작태들을 차례차례 눈앞에 그려보는 그 버릇을 통해 제법 쏠쏠한 위안을 맛보곤 했다. 죽음으로 연결된 공상의 끈을 자꾸만 잡아당기고 있노라면 풍비박산의 지경에 다다른 폭풍전야의 집안 분위기도, 난마처럼 얽히고 설켜 있어 도무지 어떻게 손을 써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가족들 신변 문제도, 고등계 형사들이 가하는 각종 고문으로 말미암아 지금쯤 초주검 거지반 다 되어 있을 귀용과 낙철의 운명도, 그리고 시시각각 자신의 목숨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몹쓸 폐질환에 빌붙어 병균처럼 번식하는 갖가지 신변 문제들도 어느새 뇌리에서 가뭇없이 사라져버리는 듯했다.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눈흘기는 그 모든 버거운 상대들을 일거에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란 다만 한 가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도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용은 재삼사지(再三思之)하고 있었다.

 

  공상놀이가 거지반 다 끝나가는 그 어름에서 부용은 낯익은 얼굴과 그예 또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말았다. 다름 아닌 기억 속의 여인이었다. 문제의 여인은 사시장철 여학교 교복 차림의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초청한 적 전혀 없는데도 어느새 교복짜리 여학생 하나가 방안으로 틈입해서 머리맡에 다소곳한 앉음새로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번쩍 뜸과 동시에 양손을 휘휘 내저어 쫓으면 그 여학생은 머쓱한 낯꽃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하는 척하다 어느 겨를에 또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와 다소곳한 앉음새를 취하곤 하는 것이었다.

 

  애당초 이 세상에 존재한 적조차 없었던, 순전한 가공인물이었던 양 부용은 오랫동안 그 여인을 망각 속에 묻은 채로 지내왔다. 지난날 둘이서 함께 보냈던 어느 시간, 어떤 장소에 얽힌 추억의 파편 한 낱조차 수중에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부용은 그동안 여인과 철두철미하게 절연된 상태에서 과거지사와 동떨어진 생활만을 고집해 왔다.

 

  부용이 기억의 밑바닥에 깊이 잠겨 있던 여인을 다시 현실 속으로 길어 올린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야소병원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고 전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언제나 버거운 상대인 낙철과 덜컥 마주쳐 예정에도 없던 승강이질 한바탕 힘겹게 벌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가혹한 상황 속에서 부활이란 단어를 퍼뜩 떠올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품에 노서아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던 텁석부리 영감 똘스또이와 함께 여고보생 이연실하고 천만뜻밖의 재회를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 재회가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깃들여 있던 몹쓸 본성의 장난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용은 밝히 깨닫게 되었다. 이미 한 번 비열했던 것만으로는 모자라 이제 두 번째로 비열해지고자 하는 수작임이 분명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는 목숨인 줄 알라고 끊임없이 호들갑 떨고 겁을 먹여대는 위기감의 사주에 따라 지난날 가해자가 오늘날 되레 피해자를 향해 조난신호를 보내는 격이었다. 책 주인 찾아 『부활』을 돌려주라고 누님에게 뜬금없이 당부한 것도 따지고 보면 비열한 이기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부용이 저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지중에 이연실을 방안으로 불러들인 다음 곧바로 야멸치게 내쫓아버림으로써 저 자신을 다시금 지난번 수준보다 한층 더 가혹한 형벌에 처하곤 하는 것이었다.

 

  좋아. 연실 군 소원이 정 그렇다면, 어디 방에 들어와 앉어보시지.”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8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5-01 08:26
https://blog.yes24.com/document/636804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계속 톱니가 어긋물려 연방 삐거덕거리기만 하던 남매간의 대화는 뜬금없는 훼방꾼으로 말미암아 그만 허둥지둥 막설되고 말았다. 울부짖음과 호통소리가 한목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명부전 같은 사랑채 안에서 염라대왕 노릇 담당하는 상곡 어르신 상대로 무척이나 많이 망설거리며 오랫동안 뜸을 들이던 끝에 최진용은 마침내 흉보 배달이라는 막중한 임무 수행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사랑채에서 천석꾼 영감 노호와 관촌댁 호곡성이 번차례로 한바탕씩 자지러지는 중이었다.

 

  나 조깨 건너가봐야 쓰겄다. 너는 그냥 누워 있거라.”

 

  사랑채로 달려가기 위해 순금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집안 식구 전체를 통틀어 관촌댁이야말로 한바탕 슬프디 슬프게 목을 놓으며 몸부림칠 자격을 가장 훌륭히 갖춘 인물이었다. 일부러 멍석 널찍하게 깔아주면서 실컷 한번 통곡하게끔 곁에서 부추길 필요마저 있는 아낙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용은 어머니 입 틀어막으러 달려가는 누님을 굳이 말리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 울음통을 단속하든지 더욱더 충동질하든지 간에 하여튼 그런 일은 이제 최씨 집안의 새로운 실력자 자리에 올라선 누님 스스로 어련히 잘 알아서 결정할 문제 아니던가.

 

  아참, 내 정신 조깨 봐. 깜빡 잊어먹을 뻔혔고나.”

 

  구석방을 나서기 전에 순금이 슬그머니 요령부득의 말을 끄집어냈다.

 

  접때 니가 부탁헌 그 일, 며칠 전에 내가 내 자량대로 처리를 혔다.”

 

  부탁이라니, 무신……”

 

  부용은 뜨악한 낯꽃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똘스또이말이다.”

 

  순금이 운을 떼자마자 부용의 낯꽃은 홧홧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단박에 부아가 머리꼭지까지 차올랐다.

 

  최부용이를 벌써부텀 송장 취급허는 겁니까? 나 죽은 연후에 주인 찾어서 돌려주라고 분명허니 말허지 않습디까!”

 

  그 점은 쪼깨 미안허게 되얐다. 그런디, 알고 보니깨 니 기억이 쪼깨 잘못 되야 있더라. 똘스또이 책 뒤표지 안쪽에는 니가 말헌 주소지가 없고, 그 대신 교명이랑 인명 두 가지만 딸랑 적혀 있더라. 책 주인 모교에다 졸업생 주소지 조회허니라고 애깨나 먹었고, 그 바람에 시일도 다소 걸렸다.”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낼 경우, 동생이 내보일 격한 반응을 이미 충분히 예견했다는 듯 순금은 짐짓 무심한 어조로 뒷갈망을 마치고 나서 슬며시 물러가버렸다. 누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부용은 또다시 솜이불을 머리 위까지 푹 뒤집어쓰고 말았다.

 

  지난날 그 유언 아닌 유언은 이를테면 신열에 들뜬 나머지 정신이 매우 혼미한 상황에서 도나캐나 마구 지껄여댄 헛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나중에 웬만큼 기력을 회복하고 맑은 정신을 되찾은 다음 부용은 가당찮은 그 유언을 너무 일찍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던 그때의 어리석음과 경솔함을 곧바로 후회하는 한편 자발없는 주둥이 함부로 놀린 자신을 호되게 질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제발 누님이 그따위 허무맹랑한 소리를 당최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제의 책이 서가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사실을 어느 날 우연히 알아차렸을 때, 부용은 가슴 복판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누님은 그런 일이 있은 뒤로도 부탁 건의 하회에 관해 일절 아무런 내색도 비치지 않았다.

 

  푹 뒤집어쓴 이불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부용은 또다시 자살이란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삼시 세 끼 외에 새참까지 착실히 챙기듯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자살을 생각하고 자살을 꿈꾸면서 느리광이 걸음으로 한없이 더디 지나가는 시간을 잡도리하는 것이 요즘 부용의 낙이라면 유일한 낙이었다. 왠지 모르게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이 두렵거나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언제나 죽음은 낯설고 험상궂은 얼굴이 아니라 오래 헤어졌다 우연히 해후한 죽마고우인 양 친숙하고도 정겨운 모습으로 부용에게 사붓사붓 다가오곤 했다. 마지막 순간에 찾아오는 일시적 고통만 그럭저럭 참아 넘길 수 있다면 자살은 거개의 경우 황홀감의 극치 속에서 매우 기분 좋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과거에 어떤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있었다. 손목의 동맥을 면돗날로 절단하는 경우에도, 독사로 하여금 몸속에 독액을 주입하도록 시키는 경우에도, 강물 속으로 투신하거나 나뭇가지에 목을 매다는 경우에도 결과는 모두 마찬가지라는 내용이었다. 살아 있는 자들 눈에 비치는 주검의 겉모습은 매우 참혹해 보일지 모르지만, 겉보기와는 딴판으로 자살자의 속내평은 아주 평온하고도 안락하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저자 자신이 갖가지 방식으로 여러 번에 걸쳐 직접 죽었다 살아난 경험이라도 지닌 것처럼 그 책 속에는 당최 진위를 확인할 길 없는 별의별 주장들이 잔뜩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3)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3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