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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29회 | 비너스에게 2010-09-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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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를 사고 싶어. 여길 오갈 때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천천히 돈을 모아 혼자 힘으로 살 생각이야.”

 

도라가 다시 굉장한 속도로 흔들의자를 흔들어대고 있었어.

 

“내가 한번 말해볼까?”

 

도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도라! 제발 그 빌어먹을 의자 좀 가만두고 이야기하면 안 되겠니? 어지럽단 말이야!”

 

잡이 잔뜩 짜증을 내자 도라의 의자가 겨우 멈췄어.

아이들은 잔뜩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도라의 말을 기다렸지.

 

“나, 나는…… 있지.”

 

도라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방 쪽을 힐끗거렸어. 양나 씨는 아직도 그 안에서 아이들과 요리를 하고 있었어. 도라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말했어.

 

“나는 대마초를 피우고 싶어. 너무 피우고 싶어 미칠 지경이야.

그것만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그러니 너희들이 나에게 대마초를 좀 얻어다 줘.

나는 감시가 너무 심해서 꼼짝도 할 수 없거든.”

 

하아…… 이게 대체 뭐야. 과연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상담소였고,

얘들은 모두 나처럼 뭔가 문제가 있어 여기 모인 것이었어.

내 문제라.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성욕을 느낀다는 거?

아니면 끔찍한 모욕을 받은 뒤 학교에서도 내쫓기고

엄마에게도 쫓겨나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로 떠나게 될 뻔한 거?

 나는 갑자기 무겁고 비루한 현실이 느껴졌고 내 제안이 유치한 농담처럼 여겨졌어.

 

거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지.

 

“저기 말이야.”

 

누룽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어.

 

“그…… 대마초라는 걸 피우면 어떻게 되는데 행복해진다는 거야?”

 

도라는 한숨을 쉬었어.

 

“대마초는 너희들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니까.

중독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환상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줄 뿐이야.”

 

“환상적인 기분? 대체 어떤 건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봐.”

 

잡이 잔뜩 흥미로운 얼굴로 캐물었어.

 

“잡! 그만둬. 도라는 제정신이 아니야!”

 

필이 날카롭게 외쳤어.

 

“필! 제발 그 목소리 좀 낮춰! 너야말로 정상적인 인간의 음역대가 아니라고!”

 

도라가 귀를 틀어막으며 툴툴거렸어.

 

“그래, 도라. 한번 설명해봐. 나도 궁금한데?”

 

어느새 마가 헤드폰을 벗고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불쑥 끼어들었어.

 

“드디어 마가 끼었군.”

 

잡이 중얼거렸어. 나 역시 도라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지.

담배는 흥미삼아 두어 번 피워본 적 있지만

대마초는 정말 먼 나라 얘기쯤으로 알고 살았는데.

 

“음…… 나 같은 경우는 롤러코스터를 끊임없이 타고 있는 느낌? 그야말로 죽이지.”

 

“에게, 겨우 그거야?”

 

잡이 실망스러운 말투로 말했어.

 

“그러게. 겨우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을 느끼려고 그 위험을 감수한단 거냐?”

 

마도 어이없다는 듯 말했지.

 

“니들은 글쎄 모른다니까. 놀이공원은 뻘쭘해서 혼자 갈 수도 없잖아.

막상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해봐. 한 시간 줄 서서 기다리는 건 기본이라고.

근데 이건 언제 어디서든 나 혼자서도 실컷 즐길 수 있는 거란 말이야.

게다가, 대마초 피우고 먹는 치킨 맛이 얼마나 끝내주는지 니들은 절대 모를걸.

그냥, 하여간에 엄청 즐겁단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도라가 퉁명스럽게 내뱉었어.

 

“그럼 다 같이 놀이공원에 가서 질리도록 롤러코스터를 타면 되겠네.”

 

내 말에 도라는 쳇, 하고 혀를 찼지.

 

“글쎄, 그거랑 이거랑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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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28회 | 비너스에게 2010-09-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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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나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그 때문인지 누룽지는 그야말로 새빨개지고 말았어. 하아…… 이건 정말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비너스.

 

“오늘 오후에는 풀썰매를 타러 나간다고 했어. 그건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어.”

 

잡이 말했어.

 

“그래. 정말 재밌어. 너도 갈 거지?”

 

필의 물음에 내가 그러겠다고 하자 여자애들은 모두 신나하는 표정을 지었어. 나는 가방에서 준비해간 노트와 펜을 꺼냈어.

 

“그럼, 필부터 먼저 할까? 괜찮겠지?”

 

필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선, 이라고 말을 꺼냈어. 필은 처음 이십 분 동안은 지난 토요일부터 바로 어제까지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사소한 다툼, 짜증나는 주변인들에 대한 험담, 그로 인한 불만들을 말했어. 또한 나머지 이십 분 동안은 자신이 앞으로 뭐가 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 그리고 뭔가는(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간에 될 것이라는 희망이 차지했어.

 

미래에는 지금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일상, 전혀 다른 인간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나는 진짜 날 알아주는 사람들 틈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살게 될 거야. 난 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될 거야. 난 짜증나는 인간들과 더 이상 엮이는 일도 없게 될 거야.”

 

이상한 건 그애가 하는 이야기들이나(필의 이야기로 미루어 그애는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어), 학교의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들이나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는 점. 나중에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흘러나오는 말들을 기계적으로 받아적으며 내가 무언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어.

 

뭐든 처음 하는 일은 비록 그 일이 힘들고 어렵다 해도 끈기를 가지고 견디게 돼. 대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 일을 똑같이 한 번 더 반복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야.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알게 되거든.

 

나는 다른 사람의 불평이나 불만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쓸모없는지 잘 알고 있어. 그런 건 기록할 만한 가치도 없으며, 귀 기울일 만한 가치는 더더욱 없지. 한때 그 안에서 작으나마 보람을 찾은 적이 있었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정도로 확실히 깨닫지 않았어?

 

나는 공책을 탁 소리 나게 덮었고 아직 이야기를 끝내지 않은 필은 깜짝 놀라 말을 멈추었어. 각자 딴 짓을 하고 있던 아이들도 하던 일을 멈춘 채 나를 보았지.

 

“여기에서 뭔가 행복한 이야기를 해줄 사람은 없는 거니?”

 

아이들은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았고 나는 노트와 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어.

 

“양나 씨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야. 그리고 이 일의 가장 딱한 점은 아무것도 달라지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고. 어쩌면 우리는 10년 뒤에도 여전히 같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을지도 몰라. 이제 이런 건 지긋지긋해.”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니?”

 

필이 더욱 높아진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어. 글쎄. 학교에 있을 때, 나도 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 미래는 바뀔 수 있지만 현재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그래서 선배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내 현재가, 사소한 실수와 어이없는 오해로 얼마나 완벽히 무너져버리게 됐지? 삶은 그냥 그럴 수 있는 건데도 나는 여전히 여기에서 또 다른 애들과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 있었어.

 

“이제부턴 각자 하고 싶은 것만 말하자. 막연한 거 말고, 정말 실현가능한 일들, 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안 돼 포기하고 있던 일이 있다면 그것을 말한 다음 서로가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거야.”

 

마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 모두가 입을 다문 채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어. 도라의 흔들의자도 딱 멈춰 있었지.

 

“나는 그런 게 없는데.”

 

필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지.

 

“그럼 한번 생각해봐. 널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너부터 말해보지 그래?”

 

“필. 누군가 그런 걸 말해준다면 기꺼이 도와주는 게 아마 현재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일 거야. 그다음으로 하고 싶은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게 뭔데?”

 

누룽지가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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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27회 | 비너스에게 2010-09-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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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 왜 존댓말이 튀어나오는 거냐!

 

헤드폰을 끼고 있는 녀석만 빼고는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어. 완전히 체면을 구긴 나는 얼굴만 시뻘게졌고.

 

“양나 씨에게 들었어. 네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을 하게 될 거라고.”

 

아무리 봐도 여중생으로밖에 안 보이는 그애는 작고 마른 몸집에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여기에선 본명을 쓰지 않아. 서로 나이도 몰라. 양나 씨는 몇 년 상관이 무슨 대단한 것인 양 허풍떨 필요 없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는 그냥 서로 편하게 지내.”

 

“그럼 널 뭐라고 부르면 되는 거야?”

 

“나는 필. 연필처럼 말랐다고 애들이 그렇게 불러. 얘는 잡설.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거든. 그냥 잡이라고도 해. 그 옆에 앉아 있는 애는 누룽지. 한번 눌어붙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아. 끈질기거든.”

 

필, 잡, 누룽지. 나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입 속으로 재빨리 되뇌어보았어.

 

“넌?”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녀석에게 물어보았어.

 

“나는 이사도라. 애들은 도라라고 불러.”

 

“그건 무슨 뜻인데?”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24시간 내내 돌아다닌다는 뜻.”

 

도라는 정말 쉴 새 없이 의자를 흔들어대고 있었어.

 

“저건 도라의 지정석이야. 쟨 도무지 가만있지를 못하거든.”

 

잡이 끼어들었어. 나는 음악을 듣고 있는 녀석에게로 시선을 옮겼어. 그애는 이쪽은 아무 관심도 없는 듯 등을 돌린 채 음악에만 열중하고 있었지.

 

“쟤는 경주마. 한 가지에 빠지면 눈에 꼭 옆가리개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만 보거든.

그냥 마라고 불러. 마는 오늘 음악에 빠져 있으니 자기가 내키기 전까지는 절대 헤드폰을 벗지 않을 거야.”

 

도라, 마. 여자애들이야 어떻든 별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두 녀석의 외모를 품평하듯 뜯어보았어. 도라는 본디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혈색이 좋지 않았고, 건강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어. 무엇보다 눈빛이 흐려서 인상 전체가 어두웠지. 마는 머리를 텁수룩하게 기른 데다 헤드폰까지 끼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전체적인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어. 내가 좋아하는, 약간 마른 듯하면서 탄탄해 보이는 몸을 가지고 있었거든.

하아…… 대체 저 녀석들의 외모를 품평해서 뭘 어쩌자는 거냐, 고 한탄해보았지만, 그냥 본능인 걸 뭘 어쩌겠어.

 

“이리 와서 앉아.”

 

누룽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 그애는 양볼까지 붉히고 있었지. 이런…… 예감이 좋질 않았어.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저 표정은 “나랑 사귀어줄래?”의 전주곡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습관대로 싹싹하게 웃으며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지.

 

“그런데 나를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넌 그냥 수요일의 아이. 처음엔 누구나 수요일의 아이야.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 한때 수요일의 아이였어. 닉네임은 나중에 갖게 돼. 우리가 너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면.”

 

필이 대답했어. 그애는 목소리조차 작고 가늘었지.

 

“아, 그렇구나. 알았어.”

 

“넌 근데, 정말 멀쩡해 보인다. 성격도 되게 좋은 것 같고. 왜 수요일의 아이가 된 거니?”

 

잡의 질문에 필이 인상을 찌푸렸어.

 

“얘 말은 그냥 무시해. 잡! 왜 그런 쓸데없는 걸 묻고 난리야!”

 

“그래. 무시해도 괜찮아. 우리 모두 여기에 왜 온 건지는 서로 말하지 않아.”

 

누룽지가 여전히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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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발표 (9월 8일자 ~ 10일자) | 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2010-09-1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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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A 에이

하성란 저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07월

구매하기

 

댓글달기 이벤트 당첨자 발표 (9월 8일자 ~ 10일자)

이벤트 기간 : 2010년 8월 23일 ~ 9월 10일

 

안녕하세요. 자음과모음입니다.

이벤트 발표가 늦어져서 많이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그동안 권하은 작가님의 『비너스에게』에 보여주신 성원 감사드립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비너스에게』에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분들 중 선착순으로 화제작 하성란 장편소설『A』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당첨되신 분들께는 YES24에 등록하신 메일로 안내드립니다.

앞으로도 『비너스에게』많은 관심과 성원, 폭풍덧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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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26회 | 비너스에게 2010-09-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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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혀가 마비될 것 같은 케이크를 먹으며 그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어. 이곳에서의 생활은 마음에 드는지,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들. 그는 이곳에서 몸은 바쁘지만 마음만은 편히 쉬고 있다고 했어. 무척 만족스럽지만 그런 것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 무언가가 영원하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삶 전부를 그것만으로 채울 수도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거든. 내 말에 현신과 양나 씨는 서로 마주 보았어. 그들은 내게,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그런 건 불가능해, 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어.

 

그저 씁쓸하게 웃었을 뿐이야.

 

“언젠가 아프리카에 가 보고 싶어. 나는 수의사니까, 거기에서 도움 될 일이 많을 거야. 그래서 한 번쯤은 커다란 바오밥나무 밑에 누워 아프리카의 새파란 하늘도 올려다보고. 무척 덥고 나른하고 행복한 기분일 것 같아.”

 

나는 그때 그의 옆에 같이 누워 있는 내 모습을 잠깐 동안 상상해보았지만, 우선 나는 고기가 너무 좋고, 더위는 끔찍하게 싫으며, 결정적으로 아프리카에 가서 할 일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그 상상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어.

 

“기쁜 소식이 있어, 소년. 하나가 앨리스의 아기를 가졌단다.”

 

“어, 네, 축하해요.”

 

“아기가 태어나면 축하파티를 하자. 사랑의 밤, 뭐 이런 타이틀이면 멋지지 않겠니?”

 

“언제 태어나나요?”

 

내 질문에 양나 씨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현신을 보았어.

 

“그러게, 현신. 언제 태어나?”

 

“흠, 지금 두 달째니까, 내년 8월쯤.”

 

“에에? 암소의 임신기간이 그렇게나 긴 거야? 나는 한두 달 있으면 태어나는 줄 알았다고.”

 

양나 씨가 완전 실망하며 말했어. 아무리 봐도 양나 씨는 ‘사랑의 밤’이라는 파티 계획을 이미 다 세워놓은 게 틀림없었어.

 

“양나 씨. 일전에 말한 아르바이트 말인데요.”

 

“오, 그래. 생각해봤니?”

 

“네. 열심히 해볼게요.”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지?”

 

“돈이 필요해서요.”

 

“그래?”

 

양나 씨는 싱긋 웃었어.

 

“잘 부탁해, 소년.”

 

오후에는 현신과 양나 씨의 일을 도왔어. 현신은 하나와 앨리스, 그리고 씨아를 검진했고 지붕을 수리하거나 전기배선 같은 것들도 모두 손봐주었어. 그는 부지런한 데다 손재주가 좋고 아는 것도 많아서 정말 아프리카에 가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람 같았어.

양나 씨는 붕붕거리며 청소기를 돌렸고 셋이서 같이 하나와 앨리스의 똥도 치웠어. 현신은 그 똥이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비료가 된다고 했어. 도시에서 그런 일들을 했다면 무척 지저분하고 힘들게만 느껴졌을 거야. 하지만 일이 다 끝나고 양나 씨가 직접 만든 차가운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있자니 무척 만족스러운 기분이었어.

나는 그날도 저녁노을이 질 무렵 버스를 탔고, 씨아는 몸단장을 마친 후 밤마실을 나갔지. 현신은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날 배웅해주었어. 나는 나란히 걷는 동안 그의 몸에 내 몸이 닿을까봐 무척 조심해야 했어.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었기 때문이야.

 

 

 

“음, 거기는…… 괜찮은 거지?”

 

엄마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어.

 

“네.”

 

엄마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어. 내가 제대로 된 말대답을 한 건 아주 오랜만의 일.

 

“금요일에도 가는 거니?”

 

“네.”

 

“괜찮겠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 그래. 정말…… 정말 다행이네.”

 

엄마는 시리얼 그릇을 보며 중얼거렸어. 그녀가 그렇게 안심을 하는 것도 아주 오랜만의 일.

 

 

 

내가 들어서자 거실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서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수요일의 아이, 그렇게 중얼거렸어. 주방 쪽에서는 양나 씨의 높다란 웃음소리와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드는 소리, 달그락거리며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

 

“양나 씨! 수요일의 아이가 왔어요!”

 

흔들의자에 앉아 흔들흔들하며 무언가를 읽고 있던 남자녀석이 소리를 질렀어.

 

“소년! 알아서 시작해! 난 조금 있다 나가볼 테니까!”

 

양나 씨도 안쪽에서 소리쳤지.

거실에 모여 있는 아이는 모두 다섯 명. 소파에 앉아 탐색하는 눈초리로 날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 있는 여자아이들 셋,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아이 하나, 오디오 앞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는 남자아이 하나. 모두 내 또래이거나 한두 살 어린 아이들. 아이들의 법칙 제1장. 너 몇 살이냐?

 

“너는 몇 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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