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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2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2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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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맛전에 숭얼숭얼 맺힌 굵은 땀방울들을 손등으로 썩썩 훔치면서 진용이 사뭇 정색을 했다. 두메산골 산서면에 비하면 대처나 다름없이 번다스러운 읍내를 출입한답시고 자기 깜냥에는 양복 차림으로 제법 태깔을 낸 모양인데, 대물림한 옷처럼 낡고 헙수룩해 보이는 데다 후줄근히 땀국에 절어 있어 그 꼴이 도무지 말이 아니었다. 진용은 엿보는 눈 또는 엿듣는 귀 혹시 어디 없나 몹시 경계하는 눈초리로 우선 주변 상황부터 힐끔힐끔 살피고 나서 문지방에 반쪽 엉덩이만 간신히 걸치고 앉았다.

  시방 큰 탈이 났네! 시방 큰 탈이 나뿌렀어, 동상!”

  부용은 일어앉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운 것도 아닌, 몹시 어정쩡한 자세로 사촌형 얼굴을 멀거니 건너다보았다.

  귀용이가 기연시 붙잽혔다네, 시방!”

  처음에는 날벌레의 날갯짓 푼수로 시원찮게 다가오던 사촌형 말소리가 차츰 쇠갈고랑이 같은 부리에 면도날 같은 발톱 달린 맹금류의 날갯죽지 퍼덕거림 푼수로 변하더니만, 급기야 부용의 귓전을 난타하면서 왱왱 맴돌이를 시작했다. 오포의 장난 때문이었다. 드디어 방공훈련이 다 끝났다고 왜장치는 오포소리가 두 사람 사이로 끼여들어 대화를 가로막았다.

  낙철이란 놈도 시방 귀용이랑 한목에 붙잽혀서 시방 경성으로 압송되야 갔다네, 시방!”

  오포란 놈 주둥이가 닥쳐지기를 기다렸다가 사촌형은 또다시 날벌레의 날갯짓 비슷한 소리를 부용의 귓속으로 소곤소곤 들여앉히기 시작했다. 부용은 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귀용이가 시방 경성으로 붙잽혀갔다는디도 자네는 시방 무신 생각으로 그러콤 놀래는 시늉도 허들 않는가, 시방?”

  상대방 역시 자기랑 얼싸둥둥 합세해서 화드득 놀라 자빠지기를 사촌형은 당초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듯했다. 붙잡힌 사람하고 친동기간이니까 자기보다 한술 더 뜨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사촌지간인 자기만큼은 부용 쪽에서도 놀라움을 드러내기를 당연히 바라고 있었던 듯했다.

 

  언제 어디서 붙잽혔답디까?”

 

  부용은 놀라움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질문으로 사촌형을 한 차례 더 실망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동생의 피체 소식으로 말미암아 부용은 그동안 얼키설키 복잡하게 꼬여 있던 생각의 가닥들이 댓바람에 말끔히 정리되는 한편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엊그저께 귀용이랑 낙철이랑 둘이서 시방 경상도 산청 땅 들머리에서 시방 지리산 입산을 도모허다가 시방 왜경들 포승줄 옴싹 받어뿔고 말었다네.”

 

  겨우 지리산이라고요?”

 

  두 녀석 은신처 후보지로 부용은 그동안 독립운동 또는 망명생활하고 궁합이 제일 잘 맞을 성싶은 몇 군데 다른 곳들을 줄곧 점찍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들의 지리산 입산 시도가 너무 뜬금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못나빠진 놈들 같으니라고! 혁명과업 도모허겄다고 시퍼렇게 장담 늘어놓길래 나는 하마 지금쯤 그 녀석들이 멀리멀리 상해 아니면 간도 땅으로 건너가서 항일 유격활동이라도 신나게 벌리고 있을지 알었드니만, 게우 도주헌다는 풍신이 산서에서 엎으러지면 코방아 찧을 산청 땅이라니, 게우게우 지리산 들머리라니……”

 

  이봐, 부용이 동상!”

 

  송곳날 같은 눈초리로 사촌동생 미간을 깊숙이 찌르면서 진용은 혀끝에 담뱃진 한 덩이 올려놓은 사람처럼 쓰디쓴 낯꽃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는 시방 그놈들이 시방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붙잽히들 않고 조선 땅 지리산에서 붙잽힌 것이 시방 그러콤 아숩고 서운타, 그런 말본샌가?”

 

  , 다르고 어, 다른 법이지요. 물론 형님 말마따나 큰 탈이 나뿌린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지요. 허지만 말입니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그 녀석들이 왜경들 손에 붙잽히는 것이사 애시당초 받어놓은 밥상 아니든가요? 다만 한 모숨이라도 고생바가지 덜어내자면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일찍 붙잽힌 것이 그 녀석들한티는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요. 어차어피에 조선 땅 탈출허는 길이 꽉 맥혀 있는 상황이라면 동가식서가숙 도피행각으로 날이날마다 겪을 그 고생살이 하루라도 일찍 끝낼 수 있게코롬 지금 붙잽히는 편이 그놈들 신상에는 차라리 이로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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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1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2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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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만주사변을 일으킴으로써 일찍이 동북아에 본격적인 전단(戰端)을 열었던 일제는 쇼와 12(1937) 이른바 지나사변을 또다시 일으켰다. 장개석군과 모택동군 간의 내전을 기화로 국공(國共) 양편을 일거에 밀어붙여 대륙 전체를 순식간에 석권하다시피 점령함으로써 일제는 중국대륙에서 톡톡히 재미 보고 있는 중이었다. 총독부 지시 따라 조선의 각급 학교들이 학생들 총동원해서 황군의 광동(廣東) 입성을 경축하는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인 것이 벌써 재작년 가을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근자 들어 일제 내각회의는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결의하는가 하면, 일본군 대본영은 무력을 수단으로 한 남진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같은 정책과 전략에 맞추어 일제는 지난 9월 불령 인도지나반도에 대규모 점령군을 진주시킨 데 이어 그 며칠 후에는 독일, 이태리와 함께 추축동맹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요즘에 비해 건강 상태가 훨씬 양호하던 시절, 부용이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마지막으로 접했던 국제정세와 일본군의 전황은 대충 그러했다. 그뒤 와병으로 말미암아 시국에 대한 그의 관심은 결핵균한테 완전히 잡아먹힌 꼴이 되고 말았지만, 노점쟁이 조선 청년 하나가 갑자기 신문과 라디오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해서 일본군이 내닫던 발걸음 멈춘 채 그새 팔짱만 끼고 지냈을 리 만무했다. 일본군이 여전히 파죽지세로 아시아 각국을 거침없이 유린하고 석권하는 모양새일 것은 불문가지였다. 두려워 떨며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자국 영토 지키기에 전전긍긍해야 할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오히려 아시아권의 다른 여러 약소국이었다. 실상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연방 터무니없이 엄살 부리고 궤변 늘어놓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이어 내놓는 각양각색 조처들 앞장 세워 마냥 법석을 떨어대는 것이었다. 적기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방공법이 제정되고, 전국적 규모로 경방단 조직이 결성되었다. 학생과 주민 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해서 반도 땅속에 두더지 굴 파듯 곳곳마다 방공호와 대피소 따위를 수없이 구축해 놓았다. 주기적인 방공훈련에 곁들여 야간등화관제를 시험적으로 실시하기도 했다. ‘전시 국민생활 체제를 새로 시행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학생들 복장마저 군인들과 똑같은 국방색 일색으로 통일시키기도 했다.

 

  황국신민화 명분 아래 일제는 나날이 조선을 가혹한 전시체제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거세게 밀어붙이고 마구 훌닦아대는 그 품새로 미루어 보건대 지금보다도 더 대규모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음을 너끈히 짐작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만주사변이나 지나사변 따위의 유가 아닐 것이었다. 교전 상대국 또한 국공내전의 와중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한 중국이나 여타 동남아 약소국들과는 도무지 비교 대상조차 안 되리만큼 강대국일 것이었다. 그게 대관절 어떤 나라일까. 조선반도 상공까지 장거리 공습마저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공군력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의 맹주를 자처하고 자임하는 대일본제국으로 하여금 미리감치 경계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을 가하는 그 강대국은 지금쯤 어디만큼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부용이 동상, 시방 안에 있는가?”

 

  사촌형 최진용이 뜬금없이 구석방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방공훈련 종료를 알리는 오포소리가 아직 울리지 않았는데도 사촌형이 불쑥 집안으로 들이닥친 것은 통행금지 위반으로 경방단원 눈 밖에 나는 한이 있더라도 급히 달려오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긴박한 돌발사태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었다.

 

  적기 공습도 같잖게 보고 함부로 마실 댕기다가 일제 관헌들한티 콱 찍혀서 비국민 딱지라도 척 붙게 되는 날이면 어쩌실라고 형님은 그러콤 방공훈련에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는 겁니까?”

 

  사촌형의 출현 자체는 그다지 이상할 게 없었다. 지난번 불상사, 그러니까 그 거금 만 원 사건 이후 진용은 가을걷이 코앞에 둔 천석꾼 집안의 도마름이라는 자신의 본분마저 접다시피 한 채 마치 풀 방구리 드나드는 쥐 꼬락서니로 뻔질나게 읍내 요소각처 들락거리면서 각종 정보들을 열심히 물어 날랐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들을 상곡 어른에게 상납하기 위해 하루에 한두 차례씩은 으레 감나무골에 들르곤 하던 차였다. 다만, 의당 사랑채부터 먼저 들렀다 나왔어야 할 진용이 안채를 먼저 찾으면서 들입다 사촌동생 거처방으로 직행한 그 점이 여느 날하고 약간 다를 따름이었다.

 

  시방 한유허게 앉어서 실없는 농설이나 시방 까불러대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네, 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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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50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1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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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공산 진배없는 산골마을 특유의 께느른한 분위기를 훌닦으며 호적(號笛)이란 놈이 면소재지 쪽에서 느닷없이 방성대곡을 시작했다. 그날따라 웬일인지 최부용의 귀에는, 시골 사람들 거개가 아직도 왕조시대의 유물인 오포(午砲)라는 구태의연한 이름으로 부르는 그 호적소리가 원한에 사무친 호곡성으로 들렸다. 방공훈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반도 전체에서 일제히 실시되는 훈련이었다. 각 마을 단위 애국반(愛國班)에서 차출된 경방단(警防團) 요원들이 동네 고샅길을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불어대는 호각소리가 사방에서 서슬 퍼렇게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긴급 상황을 연출하는 갖가지 인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감나무골은 여전히 께느른한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면소재지쯤 된다면 혹시 또 모를까, 감나무골에서는 송곳니 같은 경방단원들 호각소리와 호통소리에 궁둥잇살 물어뜯겨가며 황급히 아무 데 의지간이나 찾아 뛰어드는 행인들 기척 따위는 도통 느껴지지 않았다. 최부용은 호가호위하듯 오포의 등에 업힌 채 오히려 그 오포소리보다 한술 더 떠서 떠세하며 날뛰는 호각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제아무리 호각소리가 겁주고 윽박지른들 농부들은 지금쯤 아마 논틀밭틀에서 굽혔던 허리 펴고 하늘 한 번 힐끗 올려다본 다음 잠시 놓았던 일손을 다시 잡고 있으리라. 금시초면에다 생면부지인 그 방공훈련이란 놈이 도대체 우리하고 사돈의 팔촌만한 인연이라도 닿는단 말이냐, 하고 아낙들은 빨래터나 마을 공동우물 둘레에 끼리끼리 모여 지금쯤 아마 어느 마을 누구네 집안 아무개를 흉보는 이른바우물가 공론에 잔뜩 고부라져 있으리라. 동네 조무래기들은 지금쯤 아마 거추없이 신바람이 나서 자치기나 제기차기 따위 놀이판 걷어치운 채 저마다 소리소리 지르며 경방단원 뒤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라다니고 있으리라.

 

  반도 공습에 나선 적기 편대를 얼떨결에 품에 안은 채 부르르 부르르 한바탕 진저리 치고 있어 마땅할 하늘마저도 이 무슨 객쩍은 수작질이냐는 듯이 바야흐로 가을빛이 온 누리에 만작(滿酌)했음을 알리는 짙푸른 궁륭 아래로 새하얀 구름장들만 무심히 흘려 보내고 있었다. 일제 관공서와 직접 연관된 극소수 사람들만이 마치 무슨 살판이라도 난 듯이 바삐 나부대며 한창 법석을 떨어쌓는 중이었다. 훈련 상황 아닌 실제 상황과 맞닥뜨렸다 하더라도 결과는 틀림없이 대동소이했을 것이다. 사실 적기들이 건공중에서 빙빙 맴돌이하며 여기저기에다 폭탄 투하하는 광경을 산서분지 안에 옴팍 들어앉은 채 상상하기란 거지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방공훈련 참여를 독려하는 총독부 지시가 제아무리 엄혹하다 할지라도 궁벽한 오지인 산서는 어디까지나 그냥 산서일 따름이었다.

 

  성깔깨나 고약한 오포가 마침내 기나긴 숨결을 멈추자 부용은 입가에 쓴웃음을 잔뜩 머금었다. 천지를 한바탕 들었다 놓는 굉음의 찌꺼기가 귓바퀴에 더께로 내려앉아 계속 왱왱거리며 꽁지 긴 여운을 명주실처럼 가늘게 펼쳐 나가고 있었다. 부용은 제 손바닥으로 제 귀퉁머리 철써덕 후려갈김으로써 쇠파리처럼 자꾸만 성가시게 얼굴에 달라붙는 오포의 여운을 단방에 때려잡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적이란 말인가. 일본의 적은 누구고, 조선의 적은 또 누구인가. 방공훈련을 통해 공습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드는 가상의 적기란 대관절 어느 국적의 군용기를 가리키는 말인가.

 

  그것은 일종의 희극이었다. 일제의 방공훈련 강제는 일종의 눈가림이요 속임수에 불과한 수작질임에 틀림없었다. 이역만리 보잘것없는 반도 상공까지 멀리멀리 폭격기나 전투기 편대를 출격시켜 이름 없는 땅, 기력 쇠잔하고 의욕 상실한 피식민 백성들 머리 위로 폭탄 쏟아 붓고 기총소사 함부로 가할 적국이란 눈알 닦고 사면팔방 둘러봐도 당최 있을 턱이 없었다. 오히려 아시아 전역을 전쟁터 삼아 가상 아닌 구체적 실상으로 무자비한 공습 자행하고 포탄 퍼붓는 나라는 다름 아닌 군국주의 대일본제국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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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49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1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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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매난장을 쳐댈 놈을 봤는가! 참말로 허우대가 아깝다, 그 허우대가 아까워, 이놈아! 멀쩡허니 타고난 그 사대육신허이며 개 핥어먹은 죽사발맨치로 흐여멀끔헌 그 쌍판대기허이며, 니놈 어느 구석이 그러콤 허술허고 어느 대목이 그러콤 못 써먹게 고장이 나 뿌러서 도모허는 사업마다 낱낱이 빙신짓만 골라서 허고 자빠졌냐?”

 

  , …….”

 

  장조카와 대면하자마자 최명배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풀려난 이래 이미 골백번도 더 자주 입길에 올린 바 있는 그 천편일률의 맹비난을 마치 방금 고안해 낸 신종 비난인 것처럼 맨 처음의 기세로 되돌아가 끊임없이 되작였다.

 

  , 찾고 예, 찾음시나 절굿대맨치로 연방 고갯방애만 끄떡끄떡 찧고 자빠졌으면 고만이냐? 날 잡어 잡수, 허고 언지까장 그러콤 버팅개질만 허고 자빠졌으면 장땅이냔 말이여, 이놈아!”

 

  , , 참말로 시방 죄송시럽고만요, 어르신.”

 

  인명 실컨 해치고 난 연후에 죄송시럽다고 말만 허이면 다냐, 이놈아? 나잇살 층하 져도 한참이나 층하 지는 손아랫 사춘이 철없고 분수없는 쇠견구녁으로 저승질 동무허자 옆구리 콕콕 찌른다고 손윗 사춘인 니놈은 무신 영문인지 알어볼 생각도 않고 그냥 덮어 놓고 동무 삼어서 팔한지옥까장 따러가뿔 작정이었냐, 이 급살을 맞어 뒤어질 놈아?”

 

  , , 참말이지 시방 어르신 뵐 면목이 당최 없고만요, 시방.”

 

  니놈이 말끝마다 안 빼먹고 꼬박꼬박 들멕여대는 그 어르신 턱 빠져 달어나겄다, 이놈아! 대관절 니놈은 언지까장 그 자리 지킴시나 우두머니 촛대만 잡고 있을 작정이냐, 이놈아!”

 

  고개 바싹 치켜들고 잔뜩 부릅뜬 눈으로 훤칠하게 키가 큰 장조카 얼굴 오랫동안 짯짯이 올려다보는 일도 힘에 겨워 최명배는 결국 고개를 외로 꼴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진용이 여느 때보다 한결 더 뒤퉁스러운 제 키를 대폭 낮추면서 제법 조신한 앉음새로 윗목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진용이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듯 잠시 숨결 고르고 있던 동통이란 놈이 갑자기 활동을 재개하면서 온몸 구석구석을 맹렬히 휘젓고 싸질러 다니기 시작했다. 천석꾼 어르신 부재중임을 틈타 엄청난 죄를 지어 버린 장조카가 두 눈구멍으로 똑똑히 보고 두 귓구멍으로 확실히 들으면서 실컷 한번 죄책감에 시달려보라는 뜻으로 최명배는 평상시보다 몇 배나 더 처절을 극한 핏빛 신음을 방바닥에 낭자하게 깔아 놓았다.

 

  나가 니놈한티 심바람 조깨 시킬 일이 있어서 급허게 불렀니라. 애고, 나 죽겄네!”

 

  , 어르신…….”

 

  애고애고, 나 팔다리, 등허리, 머리, 어깨, 물팍이야! 요것들이 시방 서로서로 저 먼첨 뽀사져 달어날라고 사방 간디서 요동을 치고 야단법석을 떨고 자빠졌네!”

 

  , , 어르신…….”

 

  애고고, 진용이 너, 어디 가서 똥국 한 사발만 사리살짝 챙겨 오니라.”

 

  너무도 예상 밖의 분부였던지 진용은 한동안 어르신 말씀에 아무런 반응도 드러내지 않았다. 최명배는 애써 장조카 쪽을 외면하면서 한바탕 또 자지러지게 신음소리를 토했다.

 

  애고대고, 갑째기 긴헌 용처가 생기는 바람에 시방 당장 그 물건이 화급허니 필요허니라. 애고, 애고고…….”

 

  , 알겄습니다요, 어르신!”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진용은 그제야 대답을 서둘렀다.

 

  너 대신 따른 놈한티 시키들 말고 진용이 니가 즉접 나서서 기중 깨깟헌 자리를 신중허니 물색허거라. 누구한티 얼핏 들으니깨 거번에 춘풍이란 놈 장독 다스릴 때는 백상암 경내 유서 있는 칙간에서 농주맨치로 농창 잘 익은 놈으로 골라서 한 됫박 챙겨 왔다드라. 손님상에 올리는 접대 음식 장만허딧기 진용이 니 손으로 즉접 정갈허니 자알 다뤄야 되느니라. 그러고 또 뭣이냐, 요번 심바람은 진용이 너허고 나허고 요로콤 우리 둘찌리만 아는 비밀이니깨 절대 배깥으로 말이 새나가들 않게코롬 입단속 철저허니 자알 혀야만 되느니라. 내 말 짚이 명심허고 실수 없이 잘 거행헐 수 있겄냐?”

 

  , , 시방 여부가 있겄습니까요. 감히 시방 어느 어르신 분부시라고 지가 시방…….”

 

  잃어버렸던 신뢰 되찾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던지 진용이 자못 비장한 어조로 자신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과시했다. 최명배는 장조카를 등진 자세로 빙그르르 돌아누우면서 심드렁한 가락으로 덧붙여 말했다.

 

  무신 말인지 다 알어들었거들랑 사추리에서 딸랑딸랑 쇠방울소리 울리게코롬 어서 득달같이 백상암으로 뛰어가서 니놈 볼일이나 싸게 보거라. 애고, 나 죽겄네! 애고, 애고고, 참말로 나 죽네, 나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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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148회 |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2012-04-1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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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온갖 정성 다 바쳐가며 원도 한도 없이 애정 몽땅 쏟뜨린 둘째아들이었다. 그런데 다름 아닌 귀용이, 둘째아들 바로 그놈이 치명적인 배신 행위를 통해 제 아비 가슴에 평생 뽑지 못할 대못을 쾅쾅 질러 놓은 다음 화적패 수괴이자 이종형인 배낙철과 작반해서 어디론지 가뭇없이 줄행랑을 침으로써 끝내 부지거처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나저나 참말로 꺼억정이고만! 땅바닥에다 탁 내려놓기도 참 거시기허고, 그렇다고 또 손에 들고 있자니 이놈에 짐짝 무게 감당허기도 참 거시기허고! 대처나 이 폭폭헌 노릇을 어찌 혀야 좋단 말인고!”

 

  다디단 곤뻬이당이 이미 다 녹아 없어진 입 안에서는 쓰디쓴 한숨 줄기만 연거푸 뻗어 나왔다. 설령 그놈들이 도피행에 성공한다 해도 걱정이고, 만약 경찰에 검거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더더욱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날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걱정, 바위 밑에 그 계란이 납작 깔려도 걱정이었다. 이래저래 걱정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사방에서 걱정거리들로 욱여쌈을 당한 듯 궁색한 형세였다. 군국일제 식민 치하에서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힌다는 건 이미 사망 진단 받은 거나 진배없는 치명상이 분명했다. 둘째아들 최귀용의 인생은 이미 일찌감치 해 떨어지고 날 저문 꼴이었다.

 

  이놈에 시국이란 것이 장차 얼매나 더 미치고 설쳐서 돌아갈라고 요 모냥 요 지경으로 무고헌 양민을 무단시 매암 돌리고 어지럼 태우는지! 그나저나 참말로 꺼억정이고만!” 

 

  몸뚱어리가 형편없이 부수뜨려져 이제는 원상태로 되돌리기 쉽지 않으리만큼 우심하게 망가지긴 했지만,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독립 자금 찬조자 혐의를 벗은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용케도 안 죽고 그럭저럭 살아 방면된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다. 지금보다 장래가 훨씬 더 중요했다. 어쩌면 이번에 고등계 취조실에서 치렀던 곤욕은 앞으로 또다시 만나게 될 관재수에 비하면 약과일지도 모른다는, 참으로 자발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연락부절로 출입하고 있었다. 대일본제국이 비상과도 같이 끔찍하게 꺼려하는 국사범 자식을 슬하에 둔 아비의 여생이 결코 편안하고 평탄할 리 만무한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참말로…….”

 

  오랜 세월 입버릇으로 굳어 버린 푸념을 한 차례 더 되작이려는 참인데, 마당 쪽에서 흠흠 하는 헛기침 소리가 두어 방 울렸다.

 

  부르셨습니까요, 어르신?”

 

  춘풍이한테 전갈 받기 무섭게 숨이 턱에 닿도록 허위단심 달려온 장조카였다. 이번 거금 만 원 사건을 계기로 해서 최명배와 최진용 두 사람 관계는 어느덧 숙질간보다 주종 간 쪽으로 완연히 기울어지리만큼 그 어조나 행동거지 등 모든 면에서 몹시 불편한 처지로 변질되어 있었다.

 

  나가 부르지도 않었는디 니놈이 맥없이 달려올 텍이 없잖냐, 이놈아!”

 

  최명배는 곤뻬이당 봉지가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로 그때까지 방만하게 열려 있던 문갑 서랍을 허겁지겁 단속하기 무섭게 버럭 역정을 부렸다.

 

  부름 받고 왔으면은 이놈아, 젊은 니놈이 욜로 후딱 올라설 일이지, 서낭고개 벅수맨치로 그 자리 언지까장 우두머니 버티고 서서 늙은 나가 시방 버선발로 마중 나오기 지달리고 자빠졌냐?”

 

  , …….”

 

 연방 쩔쩔매는 시늉으로 진용이 주춤주춤 방 안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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