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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이라는 파국의 목전에서, 플로리안 일리스 『1913년 세기의 여름』 | 문학 칼럼 2023-03-2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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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세기의 여름』 표지. 필자제공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은 20세기의 시작을 ‘1914년’으로 명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부터 소비에트가 몰락한 1991년을 ‘20세기’로 규정한 것이다.

독일 본 대학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미술사와 근대사를 공부한 독일 저널리스트 플로리안 일리스(1971~ )의 『1913년 세기의 여름』(문학동네·2013)은 홉스봄의 개념으로 보면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913년에 서유럽에서 진행된 문화·정치적인 변화를 재구성한 저서다.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이 끝난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1914년 사이 서유럽은 안정 속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플로리안 일리스는 일기, 편지, 회고록, 신문 기사 등을 참고해 1913년 한 해 동안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소설가, 시인, 화가, 정치가, 의사 등 300명이 넘는 인물의 행적을 기록했다. 그의 스케치 안에서 다양한 인물들은 다가오는 파국(제1차 세계대전)을 모른 채 최선의 다해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1913년, 민감한 신경과 지병 탓에 오랜 은둔을 이어온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가 세계 문학사에 남을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1권을 출간했다.

 

프란츠 카프카. 필자제공.

   프란츠 카프카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가 실종됐다. 같은 시기 체코의 프라하에서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20세기의 서두를 상징하는 소설 『변신』을 집필하며 고뇌에 빠져 있었다. 카프카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여인 펠리체 바우어에게 하루 수십 장의 편지를 보내면서 광적인 집착에 빠져 있었다. 프라하에 거주하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5~1955)은 사촌 누이와 사랑에 빠졌다. 아인슈타인은 사촌 누이에게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 고통스럽다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한편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훨씬 소란스러웠다. 정신과 의사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연일 격한 분노에 시달렸다. 자신이 아끼던 제자이자 동료인 구스타프 칼 융(1875~1961)이 자신의 유아성욕 이론과 성 충동 이론을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목사의 아들이었던 칼 융은 성의 문제에 집착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았다. 프로이트와 융, 두 천재는 학회에서 마주할 날을 기다리면서 서로를 향해 이를 갈고 있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왼쪽)와 제자 칼 융. 필자제공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구스타프 칼 융

같은 시기 빈의 한적한 공원에는 향후 세계사를 좌우할 두 사람이 서로를 모른 채 스쳐 지나갔다. 공산주의 잡지 ‘프라우다’ 창간에 앞장섰다가 러시아 제국의 체포령을 피해 빈으로 도주했던 이오시프 스탈린(1878~1953)은 하숙집 인근의 공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같은 시기 빈의 미술 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한 청년이 실의에 빠져 공원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 청년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1889~1945)였다. 히틀러는 관광객에게 판매할 그림을 그리고 카페에서 체스를 두면서 시간을 보냈다. 1913년 여름, 스탈린과 히틀러는 같은 공간에 있었다. 이 시기에 스탈린은 하숙집의 보모를 연모했으나 실패했다. 그녀는 스탈린의 동료 니콜라이 부하린(1888~1938)과 눈이 맞았다. 훗날 소비에트의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숙청 과정에서 절친했던 부하린을 처형했다. 표면적으로는 국가 전복 혐의를 씌웠지만, 처형의 이면에 실연에 얽힌 원한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1913년, 빈 미술학교에서 한 학생이 미성년자 누드를 그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그가 그린 누드화는 에로틱하지 않았다. 거칠고 앙상한 선으로 그린 누드화는 아름답다기보다는 기괴했다. 그 누드화를 그린 사람은 에곤 실레(1890~1918)였다. 인간의 불안과 혼란을 앙상한 선으로 표현한 실레의 크로키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바꿨다. 그러나 실레는 반항적인 성격과 기행으로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1차 대전 중 요절했다. 부질없는 의문이지만, 실레 대신 히틀러가 미술학교에 입학했다면 세계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젊은 시절 히틀러. 필자제공     젊은 시절 스탈린. 필자제공

젊은 시절의 히틀러와 스탈린
 

 오늘날 ‘현대음악의 창시자’로 칭송받는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생전에 프로이트에게 고통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말러의 딸은 5세에 사망했고, 아내 알마 말러(1879~1964)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말러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말러와 상담하면서 산책한 시간을 산정해 말러의 유산을 요구했다. 더 지독한 것은 말러의 아내 알마 말러였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알마에게 빠졌던 대표적인 사람은 화가 오스카어 코코슈카(1886~1980)였다. 말러가 사망한 1911년부터 1913년까지 2년 동안 알마의 연인이었던 코코슈카는 4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내면서 집착했다. 그러나 알마는 코코슈카가 아니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와 결혼했다. 코코슈카의 열정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재능을 아낀 알마는 코코슈카에게 ‘일생일대의 명작’을 남겨야 결혼하겠다는 말을 건넸고, 코코슈카는 평생 그 말의 포로가 됐다.

코코슈카의 그림 ‘바람의 신부’(1914). 필자제공

코코슈카의 그림 ‘바람의 신부’(1914).

 

플로리안 일리스는 욕망에 빠진 자들만을 기록하지 않았다. 1913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는 성공이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로 떠났다. 재산을 모두 털어 아프리카에 ‘랑바레네’ 병원을 세운 슈바이처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봉사했다. 슈바이처가 세운 병원은 현재까지 전 세계 의사들의 성지로 남았다.

1910년, 영국 경제학자이자 언론인 노먼 에인절(1872~1967)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저서 『거대한 환상』에서 “이제 세계에서 전쟁 같은 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1913년, 그는 ‘독일 총학생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써서 다시 주목받았다. 이 글에서 에인절은 모든 나라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화 시대’에 전쟁은 무의미하다고 다시 강조했다. 독일 금융권이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전쟁이라는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에인절의 논리에 전 세계 지식인들이 설득당했다. 에인절의 논리는 ‘벨라 에포크’(아름다운 시절·1871~1913)의 마지막 해인 1913년에 유럽을 지배한 낙관주의의 상징이었다.

물론 우리는 다음 해(1914)에 벌어진 비극을 알고 있다. 1차 대전은 인류의 낙관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가를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이 책에 묘사된 1913년의 세계는 전혀 낯설지 않다. 지금 세계의 상황은 110년 전인 1913년과 그리 다르지 않다. 에곤 실레가 그린 자화상의 불안한 눈동자를 다시 본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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