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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공화국 / 안드레스 바르바, 완독서평 /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 기본 카테고리 2022-02-2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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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빛의 공화국

안드레스 바르바 저/엄지영 역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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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always springs from ignorance.

Ralph Waldo Emerson

1993년 4월 13일, 화자인 나와 마이아는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그곳은 푹푹찌는 더위와 짙은 녹음, 검고 깊은 에레강이 흐르는 곳이다. 이 곳에는 언젠가부터 어디서 나타났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주민들은 들개처럼 무리지어 다니는 아이들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주민들의 호의와 배려를 야만적인 행실로 답한다. 준비한 음식들을 모조리 망가뜨려놓거나, 관심을 보이는 주민의 물건을 낚아채는 등 사회화된 인간의 시선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인다. 그리고 다코타 마켓 습격사건을 기점으로 아이들과 본격적인 대립의 각을 곤두세운다.

아이들 중에서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일사불란하게 조직하는 아이도 없는 듯 보였다. 아이들 무리는 어떤 꼐략이나 음모에 따라 정해진 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그와는 정반대로,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 듯했다.

90쪽

1995년 1월 7일, 경비원은 물건을 훔치러 온 아이들을 진압한다. 아이들의 뺨을 때리지만 그 것을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이 후에 아이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살육의 현장에서도 그들은 일사불란하지 않았다. 칼을 휘둘고 있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울고 있는 아이, 물건을 훔치는 아이 등 그들의 양상은 다양했다. 그들을 추적하기 위해 에레강 동쪽으로 수색을 시작하였지만 결과물은 뚜렷하지않았다. 산크리스토발 어른들에게는 아이라는 미명 아래 살인을 저지른 무리로써, 사건 이 후 수사의 방향성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주민들의 아이들에게는 뭔가 다른 점이 포착되고 있었다. 그들은 32명의 소리를 듣기 위해 땅에 귀를 대며, 실제로 그들과 무언의 접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32명의 아이들은 그들을 포섭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일 네가 생각하는 바를 그들의 방식대로 말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들은 보다 쉽게 너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아이들도 너와 똑같은 것을―다만 다른 곳에서―하고 있을 테니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열심히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런 다음, 혼자 있으라. 그 아이들은 혼자 있으면서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116쪽, 오타뇨의 「32명의 아이들에게 바치는 기도」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적 인간의 모습으로 접근했던 것 부터가 잘못되었을까? 혹은 아이들이 시사하는 바를 알면서도 그것을 외면하면서 터득해야했던 어른 세계의 법칙이 있었던 것일까? 어른들은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야한다는 모습이 강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도시를 위협하는 무리를 정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을 것이다. 반면 아이들은 어떤 신화적인 존재로써 그들을 받아들였다. 요정과 괴물을 믿으며 동화를 읽으면 인물과 화자를 동일시하기도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그들은 살아있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접근 방식에 있어서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사소하지만 유의미한 이 변화를 어른들은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여전히 정치와 언론의 도구로써 사건을 통제하려는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의 정치적인 도구를 배제한, 32명의 아이들의 본질을 바라보는 계기가 발생한다.

그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게 바로 그 무렵이었다.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밀림의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아이들이 말이다.

154쪽

길거리의 아이들이 아니라, 가정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실종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게끔 유도한다. 자녀를 잃어버린 자들은 시에 강경한 대책을 요구하며 울부짖는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에레강으로 향한 그들은 경이롭고 무시무시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예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한 실험이 문득 떠올랐다. 곤경에 처했을 때 성장기 쥐와 완전히 성숙한 쥐의 행동양상과 뇌파를 분석하는 실험이었다. 성장기 쥐는 곤경을 발견한 즉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배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성숙한 쥐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는 산크리스토발에 등장한 곤경이라는 이름의 32명의 아이들을 대하는 주민들의 모습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느껴졌다.

산크리스토발 주민들은 무지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인다. 어른들은 개체에 대한 무지를 방어적으로 대하는 반면, 아이들은 무지를 신비와 호기심의 대상으로써 받아들인다. 무지의 언어를 습득하고 그들과 동화된 아이들은 완벽히 다른 삶을 맞이했다. 그들은 다시는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사건을 겪은 이들의 기억 속 산크리토발은 언제까지나 신비를 간직한 곳으로 남아있다.

이 책의 제목은 [빛의 공화국]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그 제목의 유래를 유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정에 다다랐을 때 서늘한 충격과 경이로움은 여전히 내 맘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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