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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과 책임 사이 | 한 번쯤 봐야할 2023-04-0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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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저/이유정 역
문학과지성사 | 201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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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은 사전에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에 대해 동정하는 것은 공동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감정이다. 하지만 연민에는 단순히 누군가를 가련하게 여기는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그 바탕에는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이 깔려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 입장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런 타인에게 따뜻이 대해주는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 공존하고 있기 마련이다. 이런 정서는 애초에 가진 연민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너무 이질적이어서 스스로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특정한 상황이 되면 연민에 대해 스스로 개입하거나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때는 이면에 숨겨진 이기적인 감정들을 숨길 수 없게 되는데, 소설 초조한 마음은 그 미묘한 감정을 표현한 소설이다. ‘연민희생의 접점에서 생겨난 이유를 알 수 없는 심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작가다. 그의 이력 중 특이한 점은 그가 심리학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깊은 우정을 나눴다는 사실인데, 나이 차이는 꽤 있었지만 둘의 우정은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츠바이크의 소설의 백미는 무엇보다 세밀한 심리묘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헝가리 국경 지대 주둔지에 근무하던 호프밀러라는 소위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케케스팔바라는 유명한 귀족의 성에 초대를 받아 파티를 즐기다 그의 딸인 에디트에게 춤을 권하게 된다. 하지만 에디트는 다리를 다쳐서 춤을 출 수 없는 사람이었고,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호프 밀러는 스스로 크게 자책하며 후회한다. 그는 미안한 마음을 보상하고자 꽃을 보내고 그 뒤로는 그녀의 집에 매일 방문한다. 소위가 오면서 에디트는 활력을 찾았고 그녀의 아버지 케케스팔바도 너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라는 존재가 이렇듯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한다. 어느 날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가벼운 키스를 이마에 하던 중 에디트는 그의 머리를 잡고 격렬하게 키스를 한다. 그 순간 그는 이 모든 환상에서 깨어나며 방에서 나와 이런 생각을 한다. 

 

‘에디트가 나를 때렸거나 욕했거나 내게 침을 뱉었더라면 차라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중략)... 그러나 이것만은, 몸이 아픈 그녀가, 만신창이인 그녀가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 이것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p.272)

 

그저 자신이 베푸는 감정의 호의에만 도취 된 호프 밀러는 그로 인해 당연히 따라오는 상대의 감정은 간과했다. 작가는 장면 장면마다 등장인물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일상에서는 쉽게 근접하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를 읽어낸다. 차근차근 스토리를 따라가면 등장인물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다. 독자는 그 어떤 등장인물에게 대해서도 쉽게 비난하지 못하고 슬며시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호프밀러가 선의를 가지고 행한 행동에 대해서 무조건 비판해야 할 지, 신중하지 못한 무책임한 행위였는 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츠바이크 소설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가 극대화된 소설로 에디트의 급변하는 심적 혼란과, 호프 밀러의 초조한 마음에 집중하다 보면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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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것 같지만 기억이 나는 | 좋지 아니한가 2023-04-0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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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유난히 오래 기억되는 표현이 있다. 특별히 뛰어난 것도 특별한 사건의 암시도 아니기 때문에 그 이유를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이유를 알 수 없으면 그대로 잊혀지는 것도 이치에 맞으련만 여전히 그 문장들은 머릿속에 맴돈다. 그 중에서 나는 하루키 작품의 한 표현을 여러번 생각한 적이 있다. '상실의 시대'의 모태가 된 '반딧불이'라는 작품에서 그의 친구(후의 작품에서 키즈키로 나오는)가 갑작스레 자살을 한다. 그것은 '나'와 당구를 치고 내가 한 게임을 이기고 그가 내리 세게임을 이겨 내가 게임값을 내고 온 후의 일이었다. 그는 N360에서 배기가스관을 연결 시켜 놓고 죽었다. 그리고 경찰조사를 마치고 오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 

 

평소 때와 똑같았습니다. 나는 말했다. 도대체 이제 곧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인간이 당구에서 세 게임 연속으로 이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경찰은 나에 대해서도 그에 대해서도 별로 좋은 인상은 못 가진 듯했다. (p29, 반딧불이, 문학동네)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저/권남희 역
문학동네 | 2014년 08월

 

 

나는 이 표현이 특히 맘에 걸렸었다. 진짜 죽으려는 인간이 당구에 대한 집착, 어쩌면 그의 마지막 지상에서의 승부를 이기고 끝내고 싶은 맘이 들것인가, 아니면 실제의 나라면 그런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며 지는 게 맞았을까를 여러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이 두고 두고 생각이 났었다. 

 

그런데 희한한 점은 이 표현이 이후 '상실의 시대'에는 사라졌다는 점이다. 대신 위의 문장 전후 문장이 붙어버려서 이렇게 쓰여 있다. 

 

여느때나 똑같았습니다, 하고 나는 조사하는 경찰관에게 말했다. 경찰관은 나에 대해서나 기즈키에 대해서나 그다지 좋은 인상은 갖지 못했던 것 같다. (p.69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저/유유정 역
문학사상 | 2000년 10월

 

 

평소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경찰관에게 말했다. 경찰관은 나에 대해서나 기즈키에 대해서나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p.47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
민음사 | 2017년 08월

 

 

이게 우리 출판사에 빼먹은 건 아니라는 게 거의 확실해 보여서 마지막으로 영문판을 뒤져 봤다. 

 

He had been exactly the same as always. The policeman had obviously formed a poor impression of both Kizuki and of me... (p.32)

 

Norwegian Wood

Haruki Murakami
Vintage Books USA | 2011년 01월

 

 

'반딧불이' 에서 '상실의 시대'로 넘어 오면서 그 표현은 사라졌다. 유추해 보기로는 왠지 친구에 대한 감정이 일관되지 못하거나, 키즈키에 대해 조금 냉소하는 느낌이 있어서 뺀 것은 아닐까 싶긴 하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저 의미 없는 표현 같아서일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나는 그 문장이 뭔가 독자에게 죽은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게 하는 데 효과적인 문장은 아니었을까 하고 종종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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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신사고 우공비 초등 국어 6-1 (2023년) | 기본 카테고리 2023-04-0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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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집 도착하는 날 나라 잃은 표정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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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쇼펜하우어 철학적 인생론 | 기본 카테고리 2023-04-0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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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사고 싶다면 무조건 이 번역본을 보시길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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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방정식 | 새로 읽은 책들 2023-03-22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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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저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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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방정식]

 

이야기에 앞서 소설에서 나오는 '암흑물질'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이렇다. 

모든 회전하는 물체에는 밖으로 뻗어 나가려하는 원심력이 발생한다. 만약, 어떤 물질이 회전 궤도에 있으면서도 빠져 나가지 않는다면 원심력을 상쇄시키는 다른 힘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우주를 연구하던 천문학자들은 기이한 현상을 발견한다. 모든 질량이 있는 물질은 중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별들이 서로 당겨 원심력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제 조사해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의 질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우주는 계산된 별의 질량에 비하면 너무 빨리 회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별들은 하나 둘 태양에서 멀어져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별개의 힘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웠고 그게 암흑물질이다. 현재 추정하기로 우리가 보는 물질은 고작 5%이고 나머지는 암흑물질이 27%, 암흑에너지가 68%라고 추정하고 있다. 

 

우리의 감각이나 인류가 발명한 모든 값비싼 기술로도 발견할 수 없는 세계가 95%라는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미미한 존재가 되는가. 과거부터 인류는 잘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경험이나 과학으로 밝혀낼 수 없는 부분을 그저 미지의 어떤 것으로 남겼을 때의 두려움을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미지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무속이나 설화 등이었다. 설사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하더도, 무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는 공포가 덜 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과학이 발달해 미지의 공간은 줄어들고, 알 수 없는 것들을 실험을 통해 확인하면서 결국 미신이나 괴담이 설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 소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여백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과 미신적인 접근의 거품 같은 소설이다.

 

울산에 살고  있는 '나'는 언니의 부탁으로 백화점 옥상에 있는 관람차를 타러 간다. 시간이 늦어서 타지도 못하고 돌아오던 중에 학생들끼리 관람차와 연관된 괴담을 주고 받는 것을 듣는다. 핏자국이니, 창문에 귀신의 손자국이나 토끼 인형을 든 소년 이야기 등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거기에 갈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언니의 부탁 때문이었다. 

 

아 참, 백화점 옥상 관람차 있잖아.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조사해보고 싶거든. 거기 진짜로 뭐가 있을 거야. 혹시 시간 되면 한번 가볼래? 내 계산은 확실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그냥 웃고 넘겼을테지만 언니 이야기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언니는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미신이라고는 들어갈 손톱만큼의 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의 언니는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로 '고정된 국지적 시간 거품의 발생 조건과 존재 증명' 같은 논문까지 발표한 사람이었다. 그녀에 따르면 우주에 분포한 고밀도 암흑물질들은 국지적인 시공간 왜곡 현상을 유도'한다고 했다. 그러면 시간 거품에서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도 있냐는 동생의 물음에 아주 국지적으로 미시세계에 한정된 규모로 발생한다고 말한다. 

 

국지적으로 미시적인 세계라...

외국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언니는 불의의 사고로 '시간 지각 지연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얻는다. 그녀는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고, 각각의 감각들을 통합하지 못해 작은 시간은 끝없이 분절되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1분이 그녀에게는 1시간 또는 10시간이 되었다. 그냥 사라지는 생각들에 집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라지는 시간들을 쪼개고 쪼개 슬로 모션으로 세밀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상인의 생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느리고 느린 감각들. 그런 그녀가 오직 눈동자로만 쓴 편지. 백화점 옥상의 관람차에 가보라는 편지를 동생이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캐빈은 관람차의 한 칸, 한 칸 방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다는 정상에 갔을 때, 과연 그 순간은 언니가 말하던 시간 거품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어서 그저 괴랄스런 말로 표현하는 것 밖에 없었던 순간이, 언니의 '정확한 계산'의 틀에서 그리고 그토록 느린 시간의 감각에서는 어떻게 느껴질까. 결국 나와 언니는 우여곡절 끝에 캐빈에 타고 그 디테일한 감각에 의존한 채 숨을 죽인다. 언니의 논문처럼 그곳에서 벌어지는 아주 작은 떨림들은, 암흑물질의 밀도차로 생겨난 국지적 시간의 거품들이었을까. 그리고 '적합한 조건과 상황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던 언니 말처럼, 스스로가 적합한 조건이 되어버렸던 것일까. 동생은 생각한다.

 

'이제 언니는 시간 거품을 온전히 감각하는 세상의 유일한 사람이 된 것이다.'

 

김초엽의 소설이 지향하는 방향은 아마도 테드 창처럼 과학적 지식이 바탕이 된 SF의 세계일 것이다. 김초엽의 소설은 테드 창에 미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SF가 상상력만 있으면 된다고 쉽게 쓰인 글들과 비교할 때 그녀의 소설들은 매번 기대 이상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테드 창이 '페르마의 원리'를 이야기 하듯, 김초엽도 이 소설에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은 암흑 물질과 시간 거품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글의 중간 정도에서는 어디까지 실제 과학이고 어디는 상상인지 모호해지지만 어느편으로 생각하더라도 용납할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 전개이다. 다만 과학적 사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한 점과, 스토리 전개에서도 조금 더 발전되지 못한 부분은 살짝 아쉽다. 지금까지 본 김초엽의 소설들은 만족스러워서 나머지 글들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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