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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기고) N잡러의 삶과 행복 | 자유마당 2023-09-0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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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간의 긴 직장생활을 마치고 자유인이 된 지 1년이 지났다. 흔히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기고를 하는 파워블로거 활동은 15년째 이어오고 있다. 주말에는 강화도에서 시작해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서해랑길 1천800km를 꼬닥꼬닥 걷고 있는 도보여행자이다. 비상근으로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과 한국인정지원센터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포트폴리오 관리를 위해 주식시장 공부를 시작한 투자가이기도 하다. 이번 9월부터는 대학에 출근하는 교수가 되었다. 이제 나는 N잡러이다.

 

맡은 일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충분했던 종전 직장인의 삶과는 큰 차이가 난다. 장점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 중심으로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맡은 일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으며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삶의 방식이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인이다.'

 

힘든 점이라면 여러 가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일과 일 사이의 시간 배분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도 경제적 안정, 심리적 만족, 사회적 관계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변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신의 힘만으로 말이다.

 

오랜 직장생활 경험과 자신의 선택을 바탕으로 N잡러가 된 필자는 형편이 좋은 편이다. 평생직장이란 말은 사라지고 단기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일이 많아진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N잡러의 길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험이나 축적된 자산과 같은 비빌 언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막 사회로 나온 젊은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출산율 저하 문제도 이런 현상과 연관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N잡러로 시작해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개인적 측면의 노력과 제도적 측면의 보완이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다. 먼저 개인적 측면에서 행복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는 동해안 해파랑길 800km, 제주 올레길 420km를 걸어 완주하면서 누렸던 물 한 모금, 옥수수 하나, 샤워 한 번이 준 소중함과 감사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가끔씩 주변을 낯설게 하기, 작은 곳에서 행복 찾기, 남에게 친절 베풀기 같은 일은 개인의 행복감과 자존감을 함께 높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논어 이인(里仁)편에 나오는 '불환무위, 환소이립(不患無位, 患所以立)'이란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나에게 좋은 자리를 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그 자리를 맡을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돌아보고 걱정하라는 말이다. N잡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관련 정보와 지식을 쌓아두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N잡러의 길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라토너의 길이다.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소위 "VUCA의 시대'에서는 누구나 새로운 출발선상으로 내몰리기 마련이다. 정부의 역할은 다양한 형태의 비빌 언덕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안전망 확충에서부터 다양한 일자리 제공, 재기를 도와주는 시스템 구축, 컨설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유인으로 살아온 지난 1년은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고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름 사회로부터는 많은 혜택을 받은 삶이었다고 평가해 본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는 나 자신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는 삶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고 싶다.

 


*  23.9.6일자 대구매일신문 <수요일 아침>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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