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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원조의 고질적 문제분석 | 책 리뷰 2023-05-3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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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

로버트 칼데리시 저/이현정 역/허성용 해제
초록비책공방 | 202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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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정의적 발전도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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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빈곤과 원조에 대한 내용은 꾸준히 인기 있는 주제였다. 특히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같은 책은 세계화, 신자유주의 비판의 관점에서 아프리카 빈곤을 이야기했고 이는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였다. 최근에는 안젤리나 졸리가 UN을 비판하며 특사에서 물러났고 현재 국제기구 비판론자들과 함께 국제기구와 국제 원조의 실효성에 의문이 늘어나는 현실이다.

 

아프리카는 최근 지정학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중국과 서방의 세력 싸움의 공간이 되었고 자원이나 소비시장과 같은 미래를 위한 투자, 특히 아프리카 인프라 구축을 대가로 중국의 공격적 차관 투입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도 아프리카를 저개발적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팩트풀니스>같은 저서와 아프리카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이제 아프리카가 어느 정도 개선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장밋빛으로 발전하고 있지만은 않다. 최근 수단 내전으로 교민들이 대피한 뉴스가 보도됐고 영화 모가디슈가 인기를 얻으며 소말리아 문제가 조명 받았다. 짐바브웨 같은 국가 문재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대륙이다.

 

아프리카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보통 서구 식민 지배의 도덕적, 역사적, 경제적 책임과 인권보호 따위를 근거로 그들에 대한 원조를 정당화하지만, 계속해서 서구 식민 지배의 유산을 들먹이며 아프리카의 혼란한 상황을 서구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의 저자 로버트 칼데라시는 기존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아프리카 국가들의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는 세계은행의 국제 개발 분야에서 일하며 아프리카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인물인데, 직접 경험하고 분석한 내용으로 아프리카 개발과 원조를 비판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은 2005년에 발간됐지만 고질적 문제의 비판과 시사점은 유효하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참담한 상황을 설명하는데, 식민주의적 역사관으로도 비칠 만큼 비판적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의 주장을 들으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 아프리카 나름의 문제가 존재함 볼 수 있고 저자가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서구 혹은 국제기구는 그동안 수많은 돈을 아프리카 원조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 돈들은 대체로 부패한 정치인들의 손으로 들어가고 시민들은 돈이 어디로 쓰이는지도 모르며 정치적 분쟁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저자는 대체로 정치적 지도자가 문제인 경우가 다수라고 비판하는데, 이는 아프리카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고질적 문제임을 분석한다.

 

아프리카인은 왜 이런 부패한 정치인들을 두고 볼까? 저자는 이 원인을 문화적으로 분석한다. 이는 인종 차별적으로도 비칠 수 있는데, 만약 문제를 설명하거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면 설득력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정치인들의 지속적 부패에 대한 원인으로 아프리카의 문화와 부패, 정치적 정당성을 든다.

 

아프리카인은 주변 세계와 동화되려는 성향이 있고 자신의 삶 개선에 무관심하다. 이는 서구의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아프리카의 집단주의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가족 우선주의와 눈앞의 상황만을 보는 성향과 합쳐져 저축과 미래에 대한 계획 부재와 가까운 사람을 챙기는 부정부패로 이어졌다. 성에 대해 보수적이기에 에이즈가 잡히지 못하고 숙명론적 인식이 강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하다. 또한 부패는 일종의 관행이 되어 정의감 넘친 인물도 금세 동화되고 야당은 부정부패를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그 부패된 권력을 누리고자 기회를 노릴 뿐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아프리카의 역사적 사실을 들며 으프리카의 현실을 설명한다. 서구의 평화유지와 정치적 안정 시도에도 정치적 증오와 인종적 차별로 서로를 말살한 것, 부패한 법과 사법제도, 단순한 구호에 의존하는 경제시스템, 서구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한 백신과 구호물품 거부의 모습이 현실이었다. 넬슨만델라 같은 희망의 경우도 물론 존재했지만 문제는 그것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사회주의적 자립 시도인 탄자니아의 사례와 자본주의적 자립 시도인 코트디부아르의 사례를 비교하며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한 국가가 일어서는 것은 체제도 체제지만 굉장히 고려할 것이 많고 어려운 문제임을 느꼈다. 국제기구의 원조 프로그램 또한 문제가 있었고 지역의 세부사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부패는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문제다.

 

이런 고질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에 앞으로의 원조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또한 서구가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동정심과 역사적 인종적 죄책감, 아프리카에 대한 낙관,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그는 아프리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조금 더 구체적인 10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자금의 투명성과 정치의 투명성 추구, 원조의 효율성 개선, 민주주의의 발전, 에이즈의 극복, 시민사회 발전, 인프라 및 국가 연결과 국제기구의 통합적 운영과 같은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시장중심주의적이고 대부준의 원인을 아프리카 내부에서 찾기 때문에 비판점이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일종의 관행으로 여겨진 단순한 원조와 서구의 자기만족적 원조 프로그램을 개선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해 의미가 있다. 개선과 개발은 서로 맞물려야 굴러가는 것이다.

 

그는 이미 그가 받은 비판처럼 스스로도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진 못하지만 최선의 방법임을 설명한다. 가장 강조되는 메시지는 원조도 원조지만 아프리카 국가 스스로 뭔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농민들의 튼튼한 성장과 자립, 시장의 정상적 작동, 국민의 민주적 의식 함양 같은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아무리 선의와 상상력을 동원한 프로젝트라 해도 서규 및 아프리카 정부가 동일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면 아프리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 정부들은 서구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개인적이었으며 자신의 이익을 챙겼고, 투명한 자금 흐름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을 단순히 문화나 관점의 차이로 봐야할까. 저자는 그동안에 이루어진 시행착오들을 보여주며 왜 계속해서 원조가 효과가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아프리카의 상황을 보면서 한 국가가 발전하는 데 얼마나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고, 또 경제개발에 있어서 민주의식과 효율적 예산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낀다. 한국과 같은 국가가 만들어지려면 그것도 상당한 운이 따라야 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맞물려 돌아가야 했음도 느낀다. 이 책에는 아프리카의 역사와 정치문제가 실려있기도 하고 세계은행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국제관계나 원조 시스템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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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꼴리 색채 표현가 | 책 리뷰 2023-05-3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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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호퍼 A-Z

얼프 퀴스터 저/박상미 역
한길사 | 202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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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요한 화가를 꼽으면 그중 하나로 항상 등장하는 에드워드 호퍼. 산만한 친목 다짐을 했던 당시 예술계, 특히 유럽계 미술인들과 거리를 두고 매우 미국적인 활동과 작품을 이어나갔다. (호퍼와 피카소는 1살 차이다. 그런데 호퍼는 유럽여행 당시에도 피카소의 존재를 몰랐고 뒤늦게 알게 된다.)

색감 사용에 탁월한 화가가 있다면 인상파를 시작으로 로스코, 호크니 같은 인물을 들 수 있지만 특히 어두운 색감으로 멜랑꼴리함을 전달하는 화가는 단연 에드워드 호퍼를 최고로 뽑을 수 있다. 흔히 그를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를 표현한 화가라고 칭하는데, 그의 작품에서 특히 도시의 어두운 모습에서 색감 대비, 때론 과장을 통해 특정 분위기를 강렬히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 영화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가까운 예시라면 공효진과 공유가 나왔던 SSG(쓱) 광고, 특히 히치콕의 영화와 <더 샤이닝>, <로마의 휴일> 등을 들 수 있다. 영향은 상당해서 따로 검색해서 봐도 될 정도다. 이미 그의 영향은 알게 모르게 미디어에 녹아들어 있다.

그가 매우 미국적인 이유는 그가 대륙 장거리 여행을 즐기며 차에서도 작품을 그리는 등 활동과 영감의 주 무대가 미국이었기도 하지만 작품의 대상이 주유소, 자동차, 식당, 미국식 주택, 어두운 도시 같은, 미국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괴테와 같은 시인을 좋아해 그 흔적이 작품에도 녹아있는데, 작품은 무거운 느낌을 주며 그 느낌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또한 무의식을 드러내면서 색감의 대비 혹은 과장을 통해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작품의 일부 요소는 그의 표현을 위해 비현실적으로 그러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어려운 메시지나 정신 사나운 요소들을 때려 박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분위기와 호퍼의 시선에 집중하게 되며,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야말로 사로잡힌달까. 등장인물들이 생각하거나 바라보고 있는 대상들이 생략되면서 더더욱 깊은 생각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호퍼는 폴 고갱과 같은 화가가 현대적 관점에서 비판받는 것처럼, 가부장적이며 아내 조세핀의 능력을 억압하고 폭력하며 때로 작품으로 그녀를 비하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조세핀은 호퍼에게 영향을 주고 나름대로의 예술가적 능력을 가졌지만 무시당하며 그를 내조하는 역할에 그쳐버린다. 하지만 조세핀은 많은 호퍼 작품의 모델로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이 조의 우울함일지도 모르겠다.

고갱에게 타히티 여성이 있고 호크니에게 물이 있다면 호퍼에게는 숲과 빈 방이 있었다. 특히 빛이 비치는 공간에 집중했는데, 그의 그림을 보면 인상주의의 화풍이 남아있는 동시에 명암의 대비를 통해 특유의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화풍을 개발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상주의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호퍼를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호퍼는 자신의 그림이나 표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모든 예술의 큰 부분을 무의식, 잠재의식의 발현으로 보았기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무의식과 화풍에 영향을 미친 작품의 발전과 성장 과정을 보는 것도 일종의 재미다.

<호퍼 A-Z>는 알파벳순으로 키워드를 정해서 호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호퍼의 주요 작품과 동시에 주요 내용을 전달해 이해를 돕는다. 단어와 작품을 이어주기에 읽는 재미가 있고 쉽게 읽힌다! 현재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호퍼 전시를 가기 전에 보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호퍼 전시회에 대표 작품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는 평이 있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들을 곱씹으면 인물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호퍼 작품을 선호하진 않는데, 그가 비교적 온실 속 화초처럼 살기도 해서 그런지 특유의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고 무엇보다 일종의 우월의식이 비치고 혁신적 시도가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내 취향이 팝아트나 살바도르 달리 같은 화가라서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인기 있는 화가는 이유가 있고, 그 내막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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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라는 퍼즐의 뒤늦은 완성 | 책 리뷰 2023-05-2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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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저
창비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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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건내는 화해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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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죽고 난 뒤에 나타난다고 하지 않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장례식장에 조문 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7p)

 

유물론, 사회주의라는 장엄한 이데올로기를 믿고 살아온 것에 비해 아버지의 죽음의 순간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의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은 모습이었다. 죽음의 순간도 인간답다고나 할까. 책의 내용은 죽음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어떠한 죽음을 맞았는지가 아니라 은 이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저자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다양한 조문객을 만난다. 잘 알고 있는 친척부터 처음 보는 인물들을 맞이하면서 별의별 곳까지 영향을 미친 오지랖 넘치는 노인네였음이 나타난다. 동네 아이부터 그를 증오했던 이들까지. 그의 관계망은 인간의 정이랄까 비슷한 것으로 묶여 있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저자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릴 적 가정의 모습을 돌아본다. 현실주의자인 저자에게 아버지란 고집불통의 이해불가한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여자를 집 갈 때를 놓쳤다고 딱하다며 집에 데려오질 않나 다른 집의 일을 봐줘야 한다며 자신의 시간, 심지어 재산까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질 않나. 타인의 일이 곧 자신의 일이었다. 다문화 가정의 보상금도 제일처럼 받아내줬다. 저자의 말처럼 인내할 줄 아는 자는 혁명가가 되지 않는다. 행동하는 아버지였다.

 

현대사의 흐름에서 빨치산의 가족이라는 것은 분명히 큰 단점이었다. 특히 저자의 작은아버지는 형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신의 순수한 마음이 오히려 가정을 파탄 냄으로써 형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조카는 꿈이었던 육사를 합격하고도 빨치산 친척 때문에 신원 조회에 걸려 입학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감옥에 가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대신했다. 빨치산의 딸인 저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당연히 그녀는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사망선고와도 같았으니 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224p) 굉장히 힘들고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색깔마다 다른 것일까. 아버지는 끔찍하게 딸을 아꼈다. 딸과 이야기하길 즐겼고 딸인 저자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항상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현실은 둘을 갈라놓았다. 감옥에 들어갔던 아버지와 몇 년간 떨어진 딸과의 간극은 그 이후 쉽게 채워지질 못했다. '감옥에 갔다 온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했을까.

 

사람 사는 세상은 이데올로기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아버지는 물론 빨치산이었지만, 그의 사상을 누구에게나 강요하거나 강하게 드러내고 다니진 않았다. 물론 아버지에겐 이론이 중요했다. 농사 자체도 책자만을 따르길 고집하다 망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때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론은 놓을 수 없는 희망의 표현이라고. 실제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 대부분은 빨치산 고상욱이 아니라 친절한 동네 아저씨, 과거에 잘 어울리던 친구, 위기를 극복하게 도와준 사람 따위로 그를 기억했다. 그는 타인과 같이 살길 원했고, 타인의 일이 자신의 일이 될 정도로 나와 당신의 구분이 없었다. 그 천성이 그를 산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존재의 부재 상황에서 그 존재를 떠올리며 우린 무슨 생각을 하며 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가 남긴 이야기를 보면 삶이라는 것은 그리 단순하게 말할 수 없고 녹록지 않은 것임을 느낀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관계의 그물망은 다채롭고 탄탄했다. 사람 사는 꼬순내가 풍긴다. 인생의 일부를 공유했던 존재의 죽음 앞에서 우린 어떤 것을 가장 먼저 기억하고 느낄까. 거 참 복잡 미묘함이랄까. 인간의 정이라고나 할까나. 무엇인가 마음을 움직인다.

 

추억이란 떠오르면 저절로 향하는, 마음으로 가고 싶은 공간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장례식장을 찾아온 이들이 그런 마음의 발현으로 “또 온다”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존재가 부재한 곳에는 추억만이 남으니까. 저자는 추억을 곱씹으며 아버지를 이해해 본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날, 혹은 이해하려 노력할 때 무지했던 과거의 순간들에 사과를 건네고 세상과 화해를 시도한다. 세상은 입체적이다. 빨치산의 구호를 외치는 아버지도 인간이었고,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물리칠 수 없었고 이상으로 살 수만은 없었으며 예상치 못한 삶의 연속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품고 있었던 그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부대끼고 같이 살며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버지의 삶이었다. 이데올로기는 지향점의 표현일 뿐 인간 삶의 영역에서는 그런 구분이 무용하다. 또 인생의 특징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하며 관계 맺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저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살고자 하며 '인간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마음이 그를 움직였을 것이다. 이념의 갈등 앞에서 동료들이 잔인하게 죽고 가정이 분해되고 인생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는 정치적 성향을 떠나 누구와도 함께 지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우린 '나'라는 관점에서 사람을 해석한다. 그리고 '나'라는 입장에서 상대와 관계 맺는다. 그렇다면 우린 한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살면서 자신만의 그물망을 만들고, 사람은 죽어 이야기를 남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딸의 원망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혹은 그를 거쳐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해방되었달까. 한 인생은 저마다 다르게 기억된다.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268p)

 

사실 아버지 고상욱 본인은 죽음과 슬픔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이고 뭐고 신경도 안쓸 것 같다. 사람은 죽어 썩고, 사람 사는 세상이 뭐 다 그렇지 하고 있을 듯 싶다. 이렇게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 그를 보는 것이기도 하고. 종종 느끼는데, 한 인생은 꿈처럼 남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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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보수화에 대한 문화 정치적 분석 | 책 리뷰 2023-05-2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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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메이지의 그늘

이찬수 저
모시는사람들 |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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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있는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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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관한 뉴스를 봤었다. 거기서 일본인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는데, 인터뷰이는 일본정부의 발표에 대해 “정부의 발표니까 믿어야겠죠” 라고 답했다.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국가의 발표에 그저 저렇게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왜 이들은 정부 발표를 비판적이지 않게 수용할까.

 

우리는 일본 정치가 극우화로 달려가고 있음을 안다. 세계대전의 주범으로서 그의 대가로 전쟁을 불가하게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하고, 반한 감정이 들끓으며, 옛 일본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시도하고 있음을 적어도 뉴스로라도 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이렇게 되었을까. 일본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저자 이찬수는 그 원인을 문화적 측면에서, 그것도 메이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찾는다. 부제 “영혼의 정치와 일본의 보수주의”에서 나타나듯, 일본에선 영혼의 정치가 계속해서 이어져왔고, 자연스럽게 일본인의 사고, 일본인의 사상으로 자리잡았다. 

 

저자는 일본은 ‘영혼이 정치하는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은 흔히 잡신이 많은 나라라고도 알려져있는데, 그것은 귀신, 유령, 영혼과 같은 존재를 역사, 정치, 문화적으로 인정해왔고 때로는 강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메이지 시대부터 이어져온 호국영령에 대한 제사와 야스쿠니 신사와 같은 신사와 국가신도는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하나로 묶어, 천황 중심 국가체제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목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정치적 해석에서 살아남았을 때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냥 죽으면 안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추모할만한 가치가 있어야된다. 

 

물론 마을에도 일반적인 신사가 존재한다.  가정과 마을단위로도 전사자 묘역이 존재하고,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한 도구(가미다나)들이 존재한다.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혼령에 대한 제사문화가 일반적이다. 

 

이런 호국영령에 대한 위로와 영혼의 정치가 매우 강하게 발휘되기 때문에 오히려 종교의 갈등이 없다. 영혼과 관련된 사상에서는 절대신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들도 여러 신 가운데 하나의 신인 것이다. 오히려 절대적인, 정교일치된 천황에 대한 숭배가 지배적이었다. 물론 천황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되고나서야 천황숭배의식은 줄어들었으나, 아직도 영혼의 관점은 일본인들의 의식 사이에 남아있다.

 

이런 일본인들의 사상을 다양한 학자들이 분석했는데, 책에서 대표적인 연구들을 소개한다. 그 중 하나는 일본인이 ‘공기’, 일종의 분위기에 의존했다는 것인데, 이는 2차대전 때에 불리해도 계속해서 미국과 전투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참패하고 그 책임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자신 스스로 책임지려는 의식의 부재로 나타났다.

 

국민보다 국가가 먼저였던 인식에서는 개인적인 반성이 일어나기 힘들다. 전쟁은 그냥 끝난 것이다.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떤짓을 했기 때문에 어떤 학살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관심사가 적은 이유다. 그리고 그것은 ‘공기’의 탓으로 어쩔 수 가 없었던 것이고, 빨리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계속해서 딴지를 거는 한국이 곱게 보일까. 그들에겐 꼼꼼한 역사 교육조차 부재하다.

 

신사참배를 하며, 천황숭배 문화를 일궈온 메이지 시대의 유산은 아직도 남아있다. 일본 정치인들은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신사참배를 한다. 저자는 일본의 보수주의는 필연적인 것이라 말하고 있다.

 

굉장히 역사적이고 통찰력있는 분석이다. 논문들의 내용을 모으기도 했기에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일본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무엇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인지 하나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서술해놨다.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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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정의란 무엇인가 | 책 리뷰 2023-05-1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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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플라톤 국가

플라톤 저/박문재 역
현대지성 | 202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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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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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름은 '국가'보다는 '정의'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정의는 무엇인지 묻고 끝에서는 왜 우리가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가로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통치체제를 비교하는 것도 결국 어떤 체제가 더 정의로우냐의 문제이기도 하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페이라이에우스에서 열린 축제에 갔다가 폴레마르코스의 집에 들리게 되는데, 그곳에서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묻다가 누군가 정의로운 삶을 이야기해버린다. 맙소사.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곳에 몰려온 사람들과 문답해나가는데, 지루하지는 않다. 당시 사람들도 같은 인간이기에 '현실을 보면, 통치자(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결국 정의 아니냐' 같은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계속해서 질문하고 반박한다. 질문자는 지친다. 그래서 결국 처형당한 걸까(?)

 

우리가 이런 토론에서 다양한 논박을 기대하긴 어렵고 플라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재미다. 반박하고 싶은 것이 한 두 개 가 아니지만 소크라테스는 말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고 인간은 언젠가 죽고 소크라테스는 결국 죽기 때문이다... (?)

 

먼저 국가관에 대한 인식이 도드라진다. 우리가 알고 있듯 플라톤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인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말한다.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논리 구조를 쌓아나간다. 국가에 이로운 것은 온 힘을 다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전혀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통치자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통치자의 견제하는 국가의 체제를 만들기보다는 각종 시험을 통해서 살아남은 철인의 통치를 추구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나온다. 철학자는 이데아를 아는 자다. 국가 통치 또한 그래야 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역사 발전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정치체제의 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왕도정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완벽한 자식을 낳지 못하고, 내분을 통해 명예정으로 이어진 통치자는 명예욕과 승부욕이 강해져 자산평가를 기준으로 통치자를 세우는 과두정으로 넘어가고 사회는 두 층으로 양분되어 분열된다. 지배층은 무절제하게 되고 반란을 일으켜 피지배층이 같은 위치에 서게 되면 부자들의 쓸모를 의심하고 쫓아내고 시민들에게 부를 나눠줘 국가 관직을 제비뽑기로 배정하는 민주정이 탄생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민주정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정치체제"라고 말한다. 왜냐, 자유롭게 무엇이든 선택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유분방함을 싫어한다. "반박시 네 말도 다 옳음"소피스트들을 반박했던 것처럼. 그는 무엇인가의 쓰임이 어느정도 정해져있고 규칙 있는 것으로 세상을 여겼기 때문이다.

 

민주정에서는 능력이 있어도 반드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평판만 좋으면 사람을 높이 평가해 적합하지 않은 사람도 고위직에 올려준다. 자유는 무정부 상태를 낳고 질서를 흩트린다. 결국 과두정이 지나쳐 민주정이 됐지만, 민주정이 지나쳐 참주정이 된다. 극단적인 자유에서 거대하고 야만적인 예속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부자와 같은 자들을 억제하자는 일종의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민중의 지도자가 등장하고 그렇게 정상에 오른 민중의 지도자는 자기는 참주가 아니라며 많은 포퓰리즘적 약속을 행하며 전쟁을 벌이고 일부 반대 세력은 억압한다. 그렇게 주변을 하나하나 없애고 다 숙청한다. 이런 결말을 낳기에 소크라테스는 왕도정을 추구해야 한다 말한다.

 

마지막은 에르라는 남자의 이야기, 전투에서 죽었지만 살아나 저승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전해주는데, 여기서 굉장한 윤회사상을 엿볼 수 있다. 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혼에 대한 이야기는 파이돈에 더 잘 나와있다) 사람이 죽어 혼이 되어 자신의 다음 삶을 선택하는데, 아무리 질 나쁜 삶을 골랐다 하더라도 지혜를 추구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승에서의 삶에 따라 선택권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모든 건 자신의 선택이며 중용의 삶을 선택해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사고란 참 비슷하지 않은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이런 윤회사상도 결국 인간의 정의추구와 맞닿아있다고 본다.

 

'불의한 자는 더욱 불의해진다' 의로운 자는 자기 혼을 훌륭한 본성의 지배를 받게 할 것이고 그렇게 만드는 학문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데아에선 불의한 자는 통치할 수 없다. 그는 화합을 이뤄 이성 격정 욕구가 자기들의 최적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추구했다. 플라톤은 모든 것은 고유의 역할이 있고 이것을 잘 해내는 것을 조화로서 강조하지만 플라톤도 이것이 힘들 것임을 안다. 마지막에 신의 축복이 없는 한 이런 철인이 통치하는 일은 드물 것이라 말한다.

 

물론 오래된 논의다. 그리고 현재의 민주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입장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의 논의는 의외로 구시대적이고 다양한 논의를 이끌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중요성은, 통치체제들을 비교하고, 정의에 따라 어떤 체제가 옳은 가 하는 논의를 구체적으로 다뤘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의 논의들은 이데아론으로 향하기에 적어도 통일성이 있다고 여길 수 있으려나. '니코마코스 윤리학'보다는 쉽게 읽히며 각주 또한 친절하게 돼있다. 이제 현대지성 클래식은 믿고 읽는다. 교양서적으로 더욱 쉽게 읽게 하는 것에 초점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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