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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모호한 상실 | 기본 카테고리 2023-09-0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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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호한 상실

폴린 보스 저/임재희 역
작가정신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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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는 ‘모호한 상실’이론의 제창자이자 가족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폴린 보스 박사의 역작이다. 저자는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하며 4,000명 이상의 가족들을 만나 상담을 진행하면서 ’모호한 상실‘이론을 정립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모호한 상실’에 대해 다양한 가족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세심하게 설명하고, 모호한 상실이 주는 고통을 완화하고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제안한다.

p.24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상실 가운데, 모호한 상실은 정확하게 규정하기 힘들고 불분명한 상태로 남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치명적이다.

모호한 상실은 그 불분명하고 불명확한 특성 때문에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야기한다. 확실하게 애도할 수도, 완전한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도 없는 모호한 상태인 것이다. 모호한 상실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생사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실체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지되는 유형, 두 번째는 실체는 있지만 심리적으로 부재하는 유형이다. 저자는 두 유형을 소개하며 이에 해당하는 가족들의 사례를 제공함으로써 이해를 돕는다.

상실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먼저 미지의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성 정도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함께 있음을 느끼며 마지막날까지 온전히 딸을 지킨 한 가족의 사례를 설명하며, 되돌릴 수 없는 상실과 직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결국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모호한 상실은 분명 사람들에게 지속적이고 강력한 고통을 심어준다. 그러나 마지막 9장에서는 모호한 상실이 고통과 동시에 안겨주는 약간의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모호한 상실 곁에서 살아가며 삶의 교훈을 얻은 다양한 가족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모호한 상실이 주는 ‘혼란과 분명함의 결핍 속에 창의적인 생각의 기회와 해결을 위해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 방식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모호한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명확히 설명되지 못하는 불가능한 것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여전히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균형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결국 모호한 상실이 궁극적으로 해결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불분명하고 불명확한 시간 속에서 명확함만을 찾다가는 대부분 실패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모호한 상실을 감수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관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 책은 그 해답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꼭 해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모호한 상실을 겪은 수많은 가족들의 경험을 함께 나누며 깊은 사유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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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엇이 우리를 성장시키는가 | 기본 카테고리 2023-09-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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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엇이 우리를 성장시키는가

에바 아셀만 저/박성원 역
김영사 | 2023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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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성장시키는가>는 성격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들을 모아 성격심리학 연구 결과에 기반한 이론으로 명쾌하게 답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진정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경험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성격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관해 확실하고도 섬세한 방식으로 가르쳐준다. 이론에 가까운 근본적인 내용에서부터 실제로 활용 가능한 일상적인 내용까지, 폭넓은 성격의 세계로 빠져볼 수 있는 기회다. 끝에는 직접 체크하며 풀어나갈 수 있는 성격 테스트도 수록되어 있어, 스스로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에도 용이하다.

책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1장 무엇이 나를 남과 구별되게 하는가: 성격과 성격심리학
2장 어떤 특성을 고려할 것인가: 다섯 가지 주요 성격
3장 성격은 경험을 창조하는가: 성격이 삶에 미치는 영향
4장 성격은 언제까지 변하는가: 유년기에서 노년기까지 성격의 성장
5장 행복한 직업 생활은 가능한가: 성격과 직업의 관계
6장 사랑은 만병통치약일까: 성격과 사랑의 관계
7장 자녀는 정말 축복일까: 자녀가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
8장 약일까 독일까: 스트레스를 대하는 방식
9장 위기를 겪고 나면 강해지는가: 회복 탄력성 키우는 방법
10장 체념할 것인가 반항할 것인가: 팬데믹을 견디는 성격
11장 내 성격을 튜닝할 수 있을까: 성격 변화의 가능성
12장 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연구실에서 하는 일

인상적인 파트는 9장이었다. 스트레스에 대한 내구상과 저항력을 뜻하는 회복탄력성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부분이었다. 책 내용에 따르면 회복탄력성은 복합적이며, 헤아리기 힘든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저자는 ‘회복 탄력성 계좌 잔고’라는 비유를 들며 사람들이 힘겨운 시기에 힘이 되어주는 다양한 자원이 이곳에 예치되어 있다고 말한다. 경험과 지식, 사회적 관계, 취미와 관심사, 주변 환경, 추구하는 가치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특정한 순간에, 또는 항상 지속적으로 긍정적 힘이 되어주는 수많은 자원들이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이러한 회복탄력성 자산을 다양한 상황에서 의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머릿속에 잘 각인해둘 것을 제안한다.

성격심리학은 성격의 다양성에서 비롯되는 사람들의 ‘다름’을 이해하게 해줌으로써 일상적 상호작용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본인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성격에는 적절한 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11장에서는 ‘성격 변화 연습’을 위한 네 가지 항목을 제시한다. <현재 상황과 목표 파악하기, 강점과 자원 활용하기, 행동과 경험 되돌아보기, 연습을 반복하며 익힌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가 이에 해당한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원하는 성격에 맞춘 과제를 수행하는 등의 연습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에 가까워질 수 있다. 어쩌면 바뀔 수 없을 것처럼 견고해보이는 고유의 성격도 연습을 통해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와 용기로 와닿았다. 스스로의 성격을 자세히 파악하고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한다면, 그 자체로 찬란한 성장이 아닐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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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 기본 카테고리 2023-08-1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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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마르크 레비 저/이원희 역
작가정신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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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두 개의 삶이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삶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

<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은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 마크르 레비가 그려낸 마법 같은 소설이다. 한번 맡은 향은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앨리스와 오직 교차로만을 찾아 그리는 이웃집 화가 달드리의 이상하고 신비로운 여행. 주인공들의 독특한 설정만큼이나 펼쳐지는 이야기 또한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앨리스는 친구들에게 등떠밀려 찾아간 점쟁이 할머니로부터 자신 인생의 가장 중요한 남자가 방금 뒤를 지나갔으며, 그를 찾으려면 여섯 명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예언을 듣는다. 이후 어쩌다가 크리스마스까지 함께 보내게 된 이웃 남자 달드리와 함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앨리스의 기묘한 여행은 자신의 운명 그리고 태생을 찾아내는 과정이 된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1915년 이스탄불에서 일어난 실제 역사적 사건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관한 내용도 다뤄진다. 참혹하고 고통스러웠을 시간들과 사과받지 못한 나날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이 수없이 겪어야 했을 고통의 순간들은 그저 없었던 일로 치부되어야 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말해져야 하는 일들을 어디론가 떠넘기며 회피하는 것은 완전한 묵살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했다고 앨리스의 여정이 마냥 쓸쓸하게 이어진 것은 아니다. 마침내 스스로의 인생을 되찾고 삶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게 된 앨리스의 성장은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앨리스가 달드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진심 어린 순간들은 그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며 의미 있는 기억들로 쌓여간다. 악몽과 고독에 시달리던 앨리스가 마침내 오롯한 미소를 짓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은 온전하고 순수한 기쁨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삶 속에서도 이뤄지는 꿈 같은 기적들이 있고 이러한 순간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소설은 스스로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용기를 북돋아주는 이야기이다. 어떤 형태든지 충분히 눈부신 사랑과 찬란한 삶을 응원해주는 소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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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아, 그런 나는 없다 | 기본 카테고리 2023-08-0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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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아, 그런 나는 없다

홍창성 저
김영사 | 202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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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서양철학자, 미네소타주립대 홍창성 교수가 풀어낸 무아(無我)의 철학적 해석. 철학은 논리적으로 모순을 초래하는 개념에 해당하는 대상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자아(self), 영혼(soul), 참나(眞我)가 모두 논리적인 모순으로 밝혀진다면, 진정한 나는 과연 무엇일까?
-출판사 소개

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오류와 문제점에 대해 논하며 시작한다. 이어서 ‘나의 존재’가 정말로 확고부동한 진리인지에 대해 4가지의 조건을 토대로 자세히 설명한 뒤, 그 결론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불교의 ‘무아’ 개념을 끌어낸다. 책 내용에 따르면 무아란 원래 ‘진정한 자아 또는 참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뜻한다. 저자는 이러한 무아 개념에 대한 현대적 관점에서의 논의를 목표로 책을 저술했다.

우선 좋았던 점은 철학책 치고 두께가 매우 얇다는 점이다. 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두껍고 빽빽한 분량의 철학책은 선뜻 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감상인데, 이 책은 이러한 점을 완벽히 보완했다고 생각된다. 얇고 가벼우며 단단한 양장본에다가 가독성 좋은 내부까지, 독자의 읽기 욕구를 충족할 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또한 책의 차례가 <나는 누구인가 - 자아는 모순이다 - 붓다의 무아 - 철학의 무아 - 반론들 - 다시 나를 찾아서>와 같이 간결하고도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기에도 용이하고 책을 완독한 뒤에 흥미로웠던 내용을 다시 찾아 읽기에도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철학의 무아>였는데, 앞서 자아의 의미와 그 개념적 모순에 대해 밝히고 붓다의 무아 개념에 대해 설명한 뒤, 해당 파트에서는 현대철학의 관점에서 보는 무아 개념을 논한다. ‘나’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존재하는 무엇이라고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한 뒤, 몸과 마음이 실재하는지에 관해 논하는 과정에서 그 경계가 불분명함을 입증하고 따라서 몸도 마음도 실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 논리적 과정이 매우 흥미롭고도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몸도 마음도 결국 실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주장이 다양한 논리적 설명으로 완벽히 뒷받침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불교 철학’이라는, 어쩌면 깊고 심오해 보일 수 있는 내용을 독자들에게 쉽게 가닿는 방식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가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보인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읽기에 불편할 만한 장치는 가급적 피하고 간결한 문장과 적극적인 서술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철학 입문자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잘 이해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논의 내용을 가볍게 처리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임을 고려하면 최선을 다한 설명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P.157
그런데 우리는 이런 속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우리 개개인이 궁극적으로는 아뜨만 혹은 영혼이 없는, 즉 공한 인격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공한 인격체로서 존재한다. 이것이 불교가 가르치는 내 존재의 양상이다.

‘우리는 공한 인격체로서 존재한다’는 마지막 구절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는다. 자아는 실재하지 않을지언정 우리는 공한 인격체로서 지금,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것. 무아의 개념을 따라가면서 조금씩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불교가 가르치는 내 존재의 양상이 이러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전부 이해가 됐다. ‘공한 인격체‘라는 말이 허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결국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겁고 숭고한 일인지. 우린 계속해서 존재에 대해 고민하겠지만 공한 인격체로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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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환승 인간 | 기본 카테고리 2023-08-0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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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환승 인간

한정현 저
작가정신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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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도쿄>가 한해의 시작과 소복한 겨울나기를 책임져 주었다면, <환승 인간>은 반짝이는 여름의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몸이 더워서인지 마음이 자꾸만 멀리로 향하는 요즘, 다른 세계를 내다보는 것과 현실을 목도하는 것 사이의 감각에 집중하며 생각을 다잡기에 좋은 책이다. 작가의 마음 속에 자리하는 방은 여러 개인데, 자세히 보면 모두 한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경험에서 경험으로, 사유에서 사유로 뛰어다니는 작가의 세계는 다채롭고 독특하지만 또 사려 깊고 다정하다.

작가는 보다 안전하고 편안해지기 위해 여러 개의 이름을 만들어 그 이름들 사이를 환승하며 살아간다. ‘한정현이 좀 제대로 못해도 이보나가 나머지를 해내면 되는’ 식이다. 그가 탄생시킨 무수한 이름들 속에서 환승을 거듭하며 그는 비로소 자유로운 숨을 쉬게 된다. 작가가 환승하는 것은 이름뿐만이 아니다. 그는 좋아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환승하고 작가만의 고유한 세계 사이를 마음껏 환승해 다닌다. ‘프롤로그 더하기’ 부분에 나와 있듯,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만들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작가는 이처럼 삶을 놓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보다 간절한 형태의 환승 또한 긍정하고 지지한다.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인데, 대개 그 속에 자신이 써온 소중한 이야기들과 ‘씀’에 관한 일화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에 대해 듣는 걸 좋아한다. 그것은 어쩌면 평범하고 어쩌면 별난 이야기인데,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을 쓰면서 했던 사유에 대해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참 행운이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쿠키영상이 한 시간 내내 상영되는 기분이다. 그 달콤씁쓸한 쿠키들을 소화하면서 독자는 작가의 세계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이는 이후 출간될 작가의 차기작을 읽을 때에도 커다란 참고자료로 작용한다. 누군가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여행하고 그가 만들어낸 세계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분명히 벅찬 경험이다.

가령 한정현 작가가 <줄리아나 도쿄> 수정을 마치고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려 영자원에 갔지만 지하철 출구를 헷갈리는 바람에 보려던 영화 <아사코>를 보지 못하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같은 이야기는 작가가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알 방법이 전혀 없다. 또 작가에게 영자원이 어떤 공간이고 <아사코>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 뒤에 읽으면 더 몰입되는 것이다. 작가의 경험을 듣고 사유를 이해하고 이에 담긴 마음을 헤아리는 일들이 여전히 즐겁고, 그럴수록 작가가 쓴 텍스트를 모조리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지금도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먼저 읽었더라면 이 책이 좀 더 다른 느낌으로 이해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가가 한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쓰려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채로 책을 붙잡고 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그러한 작가의 작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이야기에는 그 배경이 되는 수많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고 이를 모두 배제하고서는 절대로 쓸 수 없는 텍스트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 무수한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정성껏 써내려간 작가는 마침내 원하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추측에 가까운 주관적 생각일 뿐이지만 이런 방식으로나마 작가를 이해할 수 있어 기뻤다. 맥락이 너무 많아 조금 버거웠던 이야기들도 이제 그 맥락에 담긴 목소리를 헤아리면서 차근차근 읽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비가시적 존재들을 포착하는 작가의 시선도 좋았다. 비인간과 한없이 가까워진 경험을 공유하고 이 시대에서 무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습도. 작가가 환승하는 수많는 세계들 속에 이들이 커다랗게 존재한다는 점에 큰 위안을 느낀다. 한정현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마음이 피어올랐다가 지는 곳, 걸음이 시작되었다가 멎는 곳. 그곳에 서서 바라본 세계는 각자의 내면에 수많은 매듭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훗날 좋아하는 것을 새로 찾기 어려울 때면, 다시 한정현의 세계로 환승해야겠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법을 기억하기 위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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