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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 이우혁 | 한국소설 2023-10-0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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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퇴마록』 연재 30주년 기념 한정판 세트

이우혁 저
엘릭시르 | 202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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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장르 소설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이우혁의 [퇴마록]이다. 2013년 기준으로 누적 판매량이 이미 1,000만 부를 넘어섰으니 가히 그 인기는 대단하였음을 실감할 수 있다. 원래 이 작품은 1993년 하이텔에서 처음 연재를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PC 통신은 현재의 인터넷만큼 널리 보급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퇴마록]의 시작은 매니아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이후 책으로 출간 연재로 바뀌었고 2001년에 완결되었다.(초판은 국내편 3권, 세계편 4권, 혼세편 6권, 말세편 6권, 해설집 1권) 이 작품은 그 태생이 PC 통신에 연재되었다는 점과 저자가 전문적인 작가(당시 이우혁 작가는 직장인이었다)가 아니라는 점에서 대중의 흥미를 이끌어냈지만 무엇보다 당시 한국에서는 거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장르 소설이라는 분야에서 오컬트를 소재로 한 것이기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퇴마록] 연재 30주년 기념 한정판 세트는 이 작품의 여러 판본 중 최신 개정판이다. 초판과는 달리 총 14권(국내편 2권, 세계편 3권, 혼세편 4권, 말세편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판본에 대항 개정판이라 할 수 있다. 내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출간 시점에는 읽어보지 못하다가 첫 연재 이후 30년이 지나서 이 작품을 읽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연재 시점을 감안하면서 읽었기에 여러모로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사실 오컬트라는 소재가 현재의 관점에서는 그리 참신한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오컬트라 하면 영화 [엑소시스트] 이외에는 딱히 떠오릴 만한 것이 없던 그 시절에 퇴마(엑소시즘)를 소재로 방대한 분량으로 다루었으니 그만큼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이 작품은 다양한 요소를 혼합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 혼세, 말세라는 세계관의 확장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작품에서 주요 퇴마사로 등장하는 인물은 현암박신부, 승희, 준후이다. 먼저 현암은 내공과 검술에 능한 인물이고, 박신부는 전직 의사 출신의 성직자이며 승희는 고고학에 능하며 애염명황의 화신이고, 준후는 해동밀교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각종 도법과 주술에 능한 인물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퇴마록]에 등장하는데 이로 인하여 이 작품은 무협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무공과 기독교의 엑소시즘, 동양의 각종 도술은 물론 심지어 힌두교와 성경, 악마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망라한 퇴마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각 소재마다 독자의 흥미를 자아내면서도 처음에는 '해동밀교', 이후에는 '블랙서클'과 '대홍수', '말세'라는 굵직한 주제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하여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나는 이 책을 연재 시기가 아닌 30년이 지난 시점에 읽은 것인데, 초반부의 내용의 전개와 표현이 다소 부실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우혁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당시에는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개정판인 이 작품에 대한 저자의 맺음말에서 개정판을 쓴 이유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드러난다.


 "짧지 않았던 [퇴마록]의 집필 기간에도 초반의 글들은 너무도 미숙했는데, 그런 미숙함이 부끄럽다기보다는 내용의 전달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습니다. 등장인물의 대사도 일부분은 무미건조하여 성격이 특성이 드러나지 않았고, 지나친 만연체 및 서툰 표현들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졌으며, 묘사도 부족한 곳이 많았습니다. 때로 정확히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부분도 [퇴마록]이 애초에 순문학이 아닌 장르 소설이라는 점이기에 아무래도 표현보다는 내용(소재)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으니 마이너한 요소로 볼 여지도 있겠지만, 저자가 스스로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작업을 반영하였으니 이 작품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작품이 1993년에 연재를 시작하여 2001년에 완결되었으니 후기로 진행되는 동안 저자의 쓰기의 변화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퇴마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고대 역사와 관련된 소재들도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초치검'의 비밀은 백제와 일본의 고대사를, '대홍수'는 중국으로 치면 하나라의 우(禹)와 관련된 이야기와 연관되며 '성궤'에 관한 부분은 성경의 역사와 관련된다. 또한 '용봉문화설'과 같이 접하기 어려웠던 부분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으니 확실히 이런 부분들은 명확한 역사로 증명된 것들이 아니기에 이야기의 소재로서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 낸다. 문제는 증명되지 않은 이러한 부분들이 실제 역사처럼 인식되어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여 이우혁 작가는 이런 부분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의 조상이 중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 치수에 대한 기술을 전파하여 고대의 대홍수에서도 살아남았다는 내용이라든지 은나라 멸망 이후에 동이족들이 바다를 건너 남미에 정착하여 남미의 인디언들의 유래가 되었다는 '용봉문화설'은 가설을 넘어서 극단적인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로 충분히 오해받을 수 있는 부분이고 솔직히 나 역시 읽는 입장에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그저 글의 소재로 생각한다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가설에 대한 저자의 상상력과 그 확장으로 보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이 작품이 크게 성공하다보니 그 영향력을 감안하거나 아니면 그의 성공에 대한 질투 때문인지 저자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국수주의자라는 비판이 자주 떠도는 것은 저로서는 참으로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데, 한창 [퇴마록]을 집필하면서 90년대 초중반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그런 식으로 흐지부지하게 쓰다니, 너는 애국심도 없느냐?'라는 비난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맺음말에서 이우혁 작가도 그러한 비판에 대하여 인식하여 위와같이 언급하였는데, 그는 오히려 자신을 국수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물론 거꾸로 극단적인 민족주의 사관으로부터도 비판받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그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을 부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와 관련된 부분들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가설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이야기의 소재로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우혁의 [퇴마록]은 내용적인 측면 이외에도 나에게 의미있는 독서가 되었다. 사실 '퇴마'를 소재로 한 작품을 글로 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판타지 장르를 글로 만난다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로 만나는 것은 좋아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 당시에는 직접 읽어보지 않았지만, 연재와 첫 출간 시점이 나의 학창 시절을 포함한 젊은 시절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내심 그 시기의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을 함께 가져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PC통신은 아니지만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인터넷을 통하여 BBS에 연재되던 글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그 과거의 추억을 오롯이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릴 수 있었고, 책 속의 내용들도 그 시기의 분위기(1990년대 특유의 분위기와 세기말적인 감성)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 14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30년이 지나 [퇴마록]을 완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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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 청불전쟁과 갑신정변 - 굽시니스트 글, 그림 | 본격 한중일 세계사 2023-09-2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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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굽시니스트 저
위즈덤하우스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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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정책은 두 번의 양요를 겪으면서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만약 그 당시에 쇄국이 아닌 문호 개방을 택했더라면 조선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정하곤 한다. 그리고, 개화당에 의한 '갑신정변'이 성공하여 수구세력을 몰아내고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 역시 이 시기의 역사를 접할 때마다 자연스레 등장한다. 과정과 그 속도가 달랐지만 중국과 일본이 각각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문호를 개방하여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시점에서 홀로 변화의 바람을 무시하던 당시 조선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부분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젊은 급진 개화주의자들을 응원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이전에는 그랬다. '갑신정변'에 대하여 상세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혁을 통하여 발전을 꾀하자는 그들의 주장과 행동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게 된다면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 청불전쟁과 갑신정변]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갑신정변'은 물론 그 사건을 주도했던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우선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점은 '갑신정변'의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하여 수많은 자료를 통하여 깊게 파고들 수 있겠지만, 이 책은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잘 알려지지 않은 '갑신정변'의 막전 막후를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1884년의 '갑신정변'을 그 이전의 청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면서 수구 세력 강화의 단초가 된 1882년의 '임오군란'에 대한 반동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그것이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83년 김옥균은 차관을 요청하기 위하여 일본을 방문한다. 이미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류하던 김옥균은 조선 역시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이 근대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1883년의 일본 방문은 실제 그가 '갑신정변'의 결행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는 김옥균의 차관 요청은 물론 정변에 대한 지원을 거부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국내의 근대화를 위한 정책 추진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굳이 조선을 놓고 청과 대립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이러한 소극적인 대외정책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있던 일본의 재야 세력은 김옥균에게 주목하게 된다. 그들은 1882년 조선에서 터진 '임오군란'을 계기 삼아 국외 문제에 대하여 정부에 대하여 질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옥균과 같은 모험주의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국외의 큰 혼란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감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물론 재야 세력의 대표인 일본의 자유당 지도자 고토 쇼지로는 김옥균을 북돋우면서 온갖 지원을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그 지원은 구체적인 것은 없었고 두리뭉실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옥균은 일본의 지원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갖고 거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렇다고 김옥균이 단순히 일본의 지원만을 굳게 믿고 충동적으로 거사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정변이 일어났을 때, 일본 공사관에서 병력을 제공하였지만 그 병력은 대략 150명 정도의 소수였기에 그것만 믿고 정변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개화파의 국내에서 나름의 준비 과정도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집권 세력인 친청 세력, 즉 민씨 일파에 맞서 군사력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다. 사실 군권은 집권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에 개화파가 그에 맞서 군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개화파에 속하던 윤웅렬(개화파 윤치호의 아버지)이 이끌던 함경도의 북청군 470명을 거사 2개월전인 1884년 10월에 입경케 하여 친군 후영에 속하게 됨으로써 얼추 사대당과 개화당의 군권의 상황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아래 표를 보면 사대당의 병력이 약간 많지만, 해방영은 서울 밖의 경기도에 주둔하는 병력이니 거의 균형이 맞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군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과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개화파의 정변에 대한 국내에서의 치밀한 준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대당 병력(수구파) 개화당 병력(개화파)

친군 우영 : 600명

친군 좌영 : 800명

해방영 : 1100명

보부상

친군 전영 : 560명

친군 후영 : 500명

유학파 장교단 : 14명

충의계 : 50명

 

 하지만 서울에 주도하고 있던 원세개의 청군이 문제였다. 김옥균이 믿는 것은 일본 공사관의 지원 병력은 150명 정도였기 때문에 아무리 국내의 병력 숫자를 맞춰도 청군이 개입한다면 거사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왜 이 책이 '갑신정변'을 '청불전쟁'과 제목으로 묶여있는지 보여준다. '청불전쟁'은 베트남의 주도권을 두고 청나라와 프랑스가 벌인 전쟁이다. 이 전쟁의 주요 전장은 청나라와 베트남의 접경 지역과 대만이었으니 조선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이 전쟁이 1884년 8월에 시작되어 1885년 4월에 종료되었기에 '갑신정변'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니 오히려 '갑신정변'의 시작과 끝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청불전쟁'이 발발하자 청나라는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주둔하던 청나라의 병력을 1500명만 남기고 철수시킨다. 김옥균의 입장에서 이는 정변을 일으킬 유리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물론 1500명의 청군도 무시할 수 없지만, 청나라가 프랑스와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조선에서 일본군과의 충돌은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청군의 개입이 어려우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실제 '청불전쟁' 당시 프랑스는 일본에게 물밑으로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었으니 청나라로서는 조선에서 쉽게 병력을 움직일 상황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청불전쟁'의 개전은 김옥균의 개화당 세력에게 정변의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심지어 수구세력은 개화당의 군사력이 커지는 것을 보고 윤웅렬의 북청군을 다시 함경도로 복귀시키는 조치를 취하자 결국 개화당은 1884년 12월에 거사를 감행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거사에 지침하지 말라는 입장이었기에 일본 공사관은 소극적으로 임했지만, 일본 공사는 정부와 일본의 재야 세력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김옥균의 강력한 설득과 고종의 밀지를 명분으로 공사관 병력을 거사에 제공함으로써 우정국 낙성식에 맞춰 진행된 거사는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청불전쟁'의 시작이 김옥균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전쟁의 정황은 결국 김옥균에게 패착이 된다. 프랑스의 우세로 진행되던 전쟁이 점점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원세개는 조선에서 일본군과 충돌하더라도 청과 일본의 대규모 확전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과감히 병력을 동원하여 거사의 진압에 개입함으로써 결국 '갑신정변'은 '3일천하'로 막을 내리면서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당은 순식간에 역적의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하여 '갑신정변'의 막전막후를 알게 되면서 '갑신정변'에 대한 기존의 생각과는 큰 괴리감이 생겨났다. 젊은 엘리트들에 의한 개혁의 상징이라 여겼던 '갑신정변'은 그 과정에서 다수의 문제점을 보여주었기에 그 목적이 정말 구한말의 개혁이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무리하게 일본의 세력을 끌어들인 점과 정변 후 세조가 그랬던 것처럼 수구파의 고위 관료를 살해한 점 등은 그들의 거사를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거사에 성공한 이후 12월 6일 그들이 발표한 [혁신정강]에서 '대원군의 조속 귀환'이라는 내용이 조항에 포함된 부분도 이들의 거사가 마냥 젊은 엘리트들의 구국을 위한 결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권력 장악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그들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무리하게 권력 장악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쉽게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의 거사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현실적인 부분에서 정책 추진을 위한 권력 장악은 필요한 것이고, 비록 실패하여 제대로 그들의 포부가 실현되지 않았지만, [혁신정강]의 내용을 본다면 적어도 당시 조선에서 개혁을 통한 구습의 타파를 실행으로 옮기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당시 조선의 상황을 본다면 그들의 거사가 성공하였더라도 그 혁신이 이루어졌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혁신정강]

- 대원군의 조속 귀환과 조공 폐지                - 탐관오리 징벌

- 만민평등. 양반 문벌 폐지                          - 지조 개혁

- 내시부 폐지                                             - 지방 환곡 모두 폐지

- 규장각 폐지                                             - 경찰 제도 도입

- 해상공국 폐지                                          - 각종 옥사를 재조사하여 억울한 자들 방면

- 친군 전후좌우 4개 영을 1개 영으로 통합   - 국가 예산 관리는 모두 호조로 통합

- 6조의 대신, 참찬들의 국무회의가 내각으로서 국사 총괄

- 6조 외의 번다한 중앙 부처는 모두 폐지


 

 이 책은 '갑신정변'의 과정을 이처럼 상세히 다루면서 흥미로운 가설을 소개하는데, 그것은 바로 거사를 고종이 묵인했다는 내용이다. 이 시기에 조선이 비록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국왕이 존재하는 전제국가였기에 김옥균 세력이 나름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하였다고 하더라도 고종의 허락 내지는 묵인이 없었다면 거사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러한 가설을 언급한다. 즉, 고종은 개화당을 이용하여 청나라를 등에 업은 민씨 세력을 제거하는 이른바 차도살인(借刀殺人)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실제 거사의 과정에서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민씨 일족은 거사 다음날 고종을 만나려다가 개화당에 의하여 살해되거나 정권에서 축출당하였으니 마냥 허무맹랑한 가설은 아니다. 실제 고종은 성인이 되어 친히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을 견제하고 훗날 청나라에 억류되는 것을 방관하였으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 청불전쟁과 갑신정변]은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던 '청불전쟁'이 어떻게 '갑신정변'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이 사건들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더불어 역사가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어떻게 아우르면서 동시에 이루어지는지를 떠올려 볼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간 '3일천하'라는 표현 때문에 '갑신정변'을 상당히 드라마틱한 사건으로만 이해했지만, 그 배경과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치밀한 전개에 의한 역사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수확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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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資治通鑑) 3 - 사마광(저), 신동준(역주) | 철학과 역사 2023-09-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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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치통감 3

사마광 저/신동준 역
인간사랑 |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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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사랑에서 출간한 [자치통감(資治通鑑)] 3권은 한기(漢記) 21에서 한기(漢記) 33의 내용을 싣고 있다. 시기로는 기원전 41년부터 기원후 29년인 이 시기는 한의 11대 황제인 원제부터 16대 광무제(후한(後漢)의 초대황제)의 치세 초반에 해당된다. 크게 보자면 이 책은 원제의 뒤를 이은 성제의 즉위 이후 외척인 왕씨가 정권을 잡고 성제 이후 연달아 즉위한 어린 황제들로 인하여 불안한 정세가 이어지다가 결국 왕망이 선양의 형식으로 신(新)나라를 창건하였다가 광무제 유수를 포함한 반란 세력에 의하여 신(新)의 멸망과 후한(後漢)의 등장까지 다루고 있다.

 

 굵직한 사건들이 많기는 하지만 나는 왕망(王莽)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이 책을 읽었다. 왜냐하면 기존 역사에서 왕망(王莽)은 물론 그가 세운 신(新)은 중국 역사에서 통일 제국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시대로 구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 한(漢)나라가 신(新)을 사이에 두고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으로 나뉜 것은 신(新)을 독자적인 제국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신(新)은 1대 왕망에 의하여 15년 존속한 나라였지만, 건국한 시점이 5호 16국이나 5대 10국과 같이 수많은 나라가 건립한 혼란한 상황이 아니라 한(漢)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뒤를 무력이 아닌 선양(물론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의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하였다는 사실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중국 역사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않아서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심지어 아예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지만, 제국의 신하의 신분에서 그대로 제국을 넘겨받아 새로운 왕조를 세운 점은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생각된다. 훗날 조조와 사마의가 그런 방식으로 왕조를 열어서 그래도 재평가를 통하여 어느 정도 역사에 다뤄지고 있지만 유독 왕망은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그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꼈다.

 

 왕망이 중국 역사에서 부정적인 평을 넘어 거의 무관심한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를 직접적으로 다룬 책을 한국에서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마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편년체 기술 방식으로 주(周)나라 시기부터 후주(後周)(송나라 건국 직전 5대 10국 중 5대의 마지막 왕조로서 조광윤은 후주의 절도사였다가 선양의 형식으로 송나라를 건국하게 된다.)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 이 책을 통하여 왕망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전한(前漢) 후반에 외척으로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훗날 신(新)나라를 건국하고 또 멸망하는 과정이 오롯이 시간적으로 존재했기에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그러한 부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도 신(新)의 정통성은 철저히 부정되어 신(新)에 해당하는 서기 9년부터 23년에 해당하는 기간을 '신기(新記)'가 아닌 '한기(漢記)'로 표기되어 있으며 왕망의 대부분의 행적을 서술하되 부정적인 뉘앙스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왕망(王莽)은 부친 왕만의 요절로 유고한 까닭에 부귀와 같은 또래의 사촌 형제 등의 군형제에 미치지 못했다. (중략) 왕망은 절개를 꺾고 공감한 자세로 옷을 유생처럼 입고 근면히 두루 공부하는 근신박학을 행했다. 모친은 물론 친형인 왕영의 요절로 과부가 된 형수를 섬기면서 부친을 잃은 조카 왕광들을 양육했다. 모두 삼가며 정성을 다하는 칙비의 모습을 보였다. 또 밖으로는 영준과 사귀는 외교를 하고, 안으로는 여러 백숙을 공손히 섬겼다. 몸을 굽혀 섬기는 위곡에 성의를 보이는 예의가 있었다.

 - p. 156 : 한성제 영시 원년(BC 16) 中에서 -


 자치통감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왕망(王莽)에 대한 기술 부분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중국 역사에서 왕망(王莽)은 상당히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고 한 점을 감안한다면 위 기술 내용은 그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왕망(王莽)의 출생이 기원전 45년이었으니 30세가 되는 시점에 그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그가 외척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어렵게 살아왔음을 우선 확인할 수 있다. 한원제의 황후이자 한성제의 모친인 효원황후 왕씨 덕분에 왕씨 일가는 외척으로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황후의 형제가 8명이었으니 이들이 군권을 비롯하여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위세를 떨치는 상황에서 왕망은 그의 부친이 요절하여 고모인 태후의 배려를 받을 정도로 곤궁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사촌들이 호의호식을 하며 방탕한 삶을 살았음에도 왕망(王莽)은 유생으로서 학문에 정진하고 명망있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있었으니 그의 부정적인 평가를 떠올려 본다면 뜻밖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왕망(王莽)은 그의 백부이자 대장군인 왕봉이 병으로 눕게 되자 조카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성껏 간호하면서 아들보다 낫다라는 평을 받았고, 이에 감명받은 왕봉은 죽으면서 태후와 황제에게 왕망을 부탁하고 이후 왕망(王莽)은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더욱 겸손하며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수레와 말을 빈객에 나눠 주고, 명사들을 지원하며 도와주고, 장상 및 경대부와 교제하며 자주 왕래하였으니 그의 명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래 기록은 그의 검소한 삶을 잘 보여주는 대목인데, 사마광은 말미에 그러한 것들이 왕망이 자신의 명성을 계획적으로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것으로 기술함으로써 왕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황제가 하사한 상사와 봉읍에서 나오는 돈인 읍전을 모두 선비들에게 나눠주어 향유하게 하면서 더욱 검약한 모습을 보인게 그렇다. 모친이 병이 났을 때 공경과 열후가 부인들을 보내 문질하게 했다. 이때 왕망의 부인이 이들 부인들을 맞이했다. 치맛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은 것은 물론 겉옷인 무릎 가리개도 삼베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 이를 본 부인들 모두 비녀인 동사로 여겼다가 물어본 뒤 왕망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경악했다. 그가 자신의 명성을 꾸민 게 모두 이와 같았다.

 - p. 232 : 한성제 수화 원년 (BC8) 中에서 -


 

 하지만 나는 과연 이런 것들이 애초부터 왕망(王莽)이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자치통감에 왕망(王莽)의 기록이 그가 대략 30세가 되던 시기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위의 사례는 그가 대사마로 군권을 장악한 38세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가 제위를 선양받는 것은 17년 뒤의 일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주위를 의식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행적 모두가 향후 제위를 선양받기 위한 쇼맨십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 불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는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하여 부정적인 평을 받는 왕망(王莽)의 제위를 찬탈하기 훨씬 이전의 행적마저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의 둘째 아들인 중자 왕획이 노비를 죽이는 일이 빚어졌다. 왕망이 심하게 질책하며 자진하게 했다. 

 - p. 350 : 한애제 원수 원년(BC2) 中에서 -

 왕망이 잇달아 상서해 100만 전 토지 30경을 바쳐 대사농으로 하여금 빈민을 구제하는 데 사용하게 했다. 공경들 모두 이를 흠모하며 본받았다. 전택을 헌납한 자가 총 230명이었다. 호구의 숫자에 따라 빈민에게 나눠주었다. 

  - p. 391 : 한평제 원시 2년(AD2) 中에서 -


 심지어 왕망(王莽)은 자신의 아들이 노비를 죽이자 아들 스스로 자결케 만든다. 이 시기에 사실 왕망은 잠시 실각한 상태였으니 어떻게 보면 이 역시 부정적으로 본다면 일종의 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법 앞에 모두 평등하다고 말하는 현재 사회에서 음주운전과 막말, 마약 밀수, 부정 입시, 부동산 비리 등을 저지른 고위 정치가의 자녀와 가족들이 의혹 또는 가벼운 처벌로 넘어가는 반면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시민들 대부분에게 잊혀지는 상황인데 수천년전 신분제가 명확한 시대에 최고 권력자가 위법을 저지른 아들을 죽음으로 단죄하는 것은 결코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더불어 그는 여전히 스스로 나서서 빈민 구제에 앞장섰으니 그에 대한 신망은 더욱 커졌고 결국 그가 서기 9년에 제위 선양의 형식으로 신(新)을 건국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만약 이것이 모두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일이라면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아래서 인고의 세월을 거쳐 패권을 차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비견될 만한 인물이 아닐까?(이에야스는 이후 수백년간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유지되었지만 왕망은 자신의 대에서 건국과 멸망이 이루어졌다는 차이는 있겠지만)

 

 하지만 그는 황제에 오르면서 이상주의적인 정치의 추진과 무능으로 인하여 점점 신망을 잃게 된다. 그는 이전의 주(周)나라 시기의 제도를 복원하여 그 시기로 회귀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모든 정책이 점점 이상주의로 변모하고 현실을 외면하였으니 그의 치세 말기에는 적미군과 훗날 광무제 유수가 되는 각종 반란세력으로 인하여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가 건국한 신(新)나라는 1대 15년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의 수많은 실정 중 관심을 끄는 대목은 신(新)의 고구려 공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망(王莽)은 내부의 불만과 그의 이상주의를 위하여 당시 중국의 주변 이민족과 왕국을 하대하는 정책을 취하였는데, 고구려 역시 그에 해당된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 역사에서도 잘 언급되지 않았기에 흥미가 생겼다.


 왕망은 또 고구려 병사를 발동해 흉노를 치고자 했다. 고구려가 행군하려고 하지 않자 요서군이 출병을 강박했다. 고구려 병사가 출새한 뒤 범법하여 침구했다. 요서 대윤 전담이 이를 추격하다가 살해됐다. 주군의 관부가 그 허물을 고구려 부족의 우두머리인 고구려후(高句麗侯) 추(騶)에게 돌렸다. (중략) 왕망이 엄우에게 조서를 내려 반격하게 했다. 엄우가 고구려후(高句麗侯) 추(騶)를 유인해 목을 벤 뒤 수급을 장안으로 보냈다. 왕망이 대열하며 하서하여, 고구려의 명칭을 '하구려(下句麗)'로 바꾸게 했다. 이로 인해 고구려 즉 맥인의 변새 침공이 더욱 심해졌다.

 - P. 503 : 왕망 시건국 4년(AD 12년) 中에서 -


 

 위 내용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언급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내용은 일치하지만 엄우라는 장수가 죽였다는 '고구려후(高句麗侯) 추(騶)'에 대한 부분은 엇갈린다. 자치통감의 기록대로라면 '고구려후(高句麗侯) 추(騶)'는 고구려 왕을 뜻하는 것인데 당시 시기에 해당하는 고구려 왕은 바로 유리왕(琉璃王)이었다. 그가 기원전 19에서 서기 18년까지 고구려를 다스렸으니 '고구려후(高句麗侯) 추(騶)'가 고구려 왕이라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우리 장수 연비(延丕)를 유인해 목을 베고 수급을 수도로 보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죽은 인물이 고구려의 왕이 아니라 '연비(延丕)'라는 장수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맞다고 할 수 있지만 '연비(延丕)'라는 이름이 삼국사기 이외의 사서에서는 등장하지 않기에 쉽게 정의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전사한 인물이 고구려 유리왕이라는 설과 장수 '연비(延丕)'라는 설, 그리고 '추(騶)'라는 표현으로 인하여 동명성왕(고주몽)이라는 설이 있지만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어서 앞으로도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이후 2년 뒤 서기 14년에는 고구려가 다시 신(新)나라를 공격하여 고구려현을 빼앗았다는 내용이 있지만 자치통감에는 그런 기록이 없으니 중국과 고구려에 대한 고대사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은 편년체의 역사서로서 그 방대한 역사 기록으로 인하여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중국의 역사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들이 우리 입장에서는 낯선 인물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 역사의 흐름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전공자 또는 역사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렇게 읽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리뷰처럼 그 시기에 주목할만한 사건이나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보는 것도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좀 더 상세히 찾아가면서 읽다보면 그 내용은 물론이고 점점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익숙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하여 왕망이라는 중국 역사상 부정적인 평가를 받던 인물에 대한 나름의 재평가라든지 그동안 아예 접한 적이 없었던 신(新)나라와 고구려와 연관된 내용을 확장하여 찾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의미있는 독서였던 것 같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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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2 - 김재훈 | 교양 2023-09-1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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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2

김재훈 글그림
한빛비즈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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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그리스 로마 신화를 즐겨 읽곤 하였다. 헤라클레스라는 영웅의 이야기라든지 테세우스의 모험담, 그리고 제우스와 아테네, 아폴론과 같은 올림포스의 신들과 관련된 내용들은 지금과 비교한다면 놀거리가 거의 없던 그 시절에 재미는 물론 어린 나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끔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책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트로이](2004년 개봉)와 같은 영화를 관람하면서 신화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다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2]의 출간과 함께 오랜만에 책으로 다시 신화를 읽게 되었다. 그동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책들은 꾸준히 출간되어 왔음에도 이 책이 유독 눈에 들어온 이유는 각 권의 제목들과 부제를 접하는 순간 과거 내가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체계적인 읽기보다는 에피소드에 따른 흥미로운 이야기 읽기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권 : 올림포스 연대기 - 올림포스 12신 체제의 완성을 다룬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서막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2권 : 위기의 신들 - 인간을 둘러싼 신들의 욕망을 다룬 인류 탄생의 뒷이야기!


 

 얼마전 읽었던 북유럽 신화는 [신들의 탄생 -> 신들의 부흥 -> 신들의 몰락(화혼)]와 같은 서사의 시간적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와는 그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전에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과 인간 영웅의 이야기 또는 사랑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의 모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1권인 "올림포스 연대기"를 읽는 순간 내가 알고 있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원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북유럽 신화와 마찬가지로 신들의 탄생을 기점으로 시간적인 서사의 흐름으로 진행됨을 알게 되었다.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와 같은 비장함과 황량함이 묻어나는 신들의 공멸(共滅)로 치닫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 신화 역시 신들의 탄생은 물론 신들의 전쟁이라 할 수 있는 '티타노마키아(티탄족과의 전쟁)', '기간토마키아(기간테스와의 전쟁)'와 같은 전쟁, 심지어 올림푸스 제일의 신인 제우스가 '튀폰(가이아와 타르타로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힘줄이 뽑힌 채로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하는 극적인 사건들이 시간적인 순서로 전개된다. 

 

 이 책은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라는 원전을 바탕으로 태초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이야기와 제우스가 신들의 왕이 되는 과정, 그리고 다양한 신들의 탄생을 서술하고 있다. 카오스(혼돈)로부터 시작하여 카오스 스스로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하여 어둠과 낮, 그리고 대지가 생겨나고 이후 본격적인 세계가 생성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이 창세기의 과정은 신들의 탄생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가이아는 자신이 만들어 낸 아들인 우라노스와 결혼하여 수많은 신들을 만들어 냈고, 이후 자식들 중 헤카톤케이레스들과 키클롭스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가이아의 자궁 속에 가둬버린 우라노스를 몰아내기 위하여 아들인 크로노스와 결탁하여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이후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행보를 그대로 답습하여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잡아먹는 크로노스를 제우스와 결탁하여 몰아내어 결국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제일의 신으로 등극하게끔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신들의 전쟁인 '티타노마키아(티탄족과의 전쟁)', '기간토마키아(기간테스와의 전쟁)' 역시 가이아가 제우스와의 주도권 다툼을 위하여 벌인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창세기와 신들의 탄생의 과정을 이 책에서는 깊게 다룬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저 흥미로운 신화의 초반부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우라노스 - 크노소스 - 제우스'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신들의 계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지속되는 제우스와의 갈등은 신화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인간의 모계 중심 사회에서 부계 중심 사회로의 이동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또한 제우스로 이어지는 3대 모두 자식이 자신을 죽이고 자리를 빼앗는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끔찍한 행동을 한 것 역시 이후 인간의 역사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부자간의 갈등이 태초부터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이후 제우스 역시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뛰어난 자녀가 자신의 자리를 넘본다는 신탁을 듣고 평생 그 부분에 대해서 걱정을 하였고, 그 걱정은 이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이 책의 1, 2권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만약 아킬레우스의 아버지가 인간이 아닌 제우스였다면 아킬레우스가 아버지인 제우스의 자리를 넘볼 수 있기에 제우스는 여신 테티스와 관계하지 않고 그녀가 인간과 결혼하여 아킬레우스가 태어나는 이야기 역시 제우스의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권 "위기의 신들"에서 등장하는 인간의 등장(창조) 역시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의 소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었고, 그 인간에게 몰래 불을 전수해줬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평생 묶인 채로 독수리에게 끔찍한 고통을 받는 형벌을 받게 되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거기에 더하여 여자인 판도라의 창조(여자인 판도라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와 그 유명한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부분이라든지 노아의 방주와 같은 제우스에 의한 대홍수에 대한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도 우리 인간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상당히 흥미롭다 할 수 있다. 일례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순간 인간 세상에 온갖 나쁜 것들이 퍼져 나가고 상자를 닫았을 때, 유일하게 남은 '희망'에 대하여 고찰하는 부분은 관점에 따라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판도라의 상자는 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신들의 복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상자에는 온갖 나쁜 것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상자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희망'을 긍정의 것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 또 그것에 따라서 오히려 상자에 남아있게 된 것이 다행이냐 불행이냐에 대한 논쟁은 쉽게 답을 낼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논쟁은 거슬러 올라가서 과연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달한 것과 애초에 인간을 생성한 것이 정말 선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신의 체계에 혼란 내지는 변수를 주기 위한 계략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논란으로도 확장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다루고 있다. 이러한 논쟁과 생각거리는 신화를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시는 창조주의 이상과 지엄한 명령을 담은 메시지이지만, 신화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이 어울려 춤추는 서사의 향연이야. 게시를 믿고 메시지가 이루어지는 것이 신앙이라면 신화에 끌리는 건 유희이자 인간들의 자기연민인 것이지. 

 신화(myth)의 어원인 '미토스'가 뜻하는 건 말들, 즉 이야기야. 그중에서도 신비롭고 음흉한...한마디로 돼먹지 못한 말들이지.

 - "1권 : 올림표스 연대기" 中에서 -


 책의 초반부에 등장한 위 내용으로 인하여 신화의 의미와 신화를 읽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과 함께 이 책을 읽으니 확실히 이전에 읽었던 신화와는 그 결이 달라졌다. 재미와 흥미, 특이한 소재 이외에도 신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내면을 넘어 심연에 가둬놓은 인간이 드러내기를 꺼려했던 인간의 욕망과 본능, 더불어 당시 인간 사회의 또 다른 표현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오랜 기간 고전으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기존의 신화에 대한 내용의 이면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신화 속의 상징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내지는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만화'로 되어 있기에 작가의 개성있는 표현은 이야기는 물론 그 안에 담긴 의미까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만화로 표현한 책들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 책을 출간과 더불어 바로 읽어볼 수 있어서 더욱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마도 이야기 흐름상 2권 이후에도 이 책의 시리즈가 출간되리라 예상되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좀 더 가까이 그리고 깊게 다가가보고자 한다면 관심을 갖고 지켜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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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내가 죽인 소녀 - 장은영 | 미스터리 및 추리 2022-05-2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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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날 밤 내가 죽인 소녀

장은영 저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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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어 본 한국의 미스터리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앨러리 퀸으로 대변되는 영미의 전통적인 추리물과 최근 쏟아져 나오는 일본 추리물은 꽤 많이 읽어봤지만, 한국의 추리물은 거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밤 내가 죽인 소녀]를 꼭 읽어보고 싶었다. 더구나 이 작품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향수를 맛보고 싶은 이에게 권하는 추리소설"임을 표방하고 있으니 자칭 애거서 크리스티의 팬으로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이중인격 살인마가 폐쇄된 건물에 사람들을 납치해놓고 한 명씩 죽인다는 설정은 좋아. 그런데 시점이 너무 자주 바뀌고 이야기가 지나치게 얽혀 있어. 줄거리를 좀 더 간소화해봐."

 - p. 11 中에서 -


 작가 지망생인 O가 쓰고 있다는 소설에 대하여 이미 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던 AB의 평가는 추리물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러한 평가는 앞으로 이들에게 다가올 복선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고등학생 시절 같은 독서 동아리를 함께한 이들은 술자리에서 하나둘씩 만취 상태로 잠이 들게 되고, O의 소설의 설정이 이들 앞에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은 인적이 드문 건물에 모두 납치되어 줄에 묶여 있었으며 그들 앞에는 복면을 쓴 총을 든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괴한은 자신이 납치한 7명에게 4년 전에 있었던 또 다른 독서 동아리 회원이었던 사과의 죽음을 언급한다. 자살로 알려져 있었지만, 괴한은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고, 그 범인이 바로 그가 납치한 사람들 중에 있다고 말하면서 살인범을 찾으라고 협박한다. 지금까지 모두 같은 동아리 회원이었던 사과의 죽음을 자살로 알고 있던 이들은 충격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그들 중 사과를 살해한 사람이 있으며, 그를 찾지 못하면 복면을 쓴 괴한에게 모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니 확실히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점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자살이 살인 사건이었다는 점과 더불어 그 사건과 무관한 것처럼 보인 이들이 서서히 사과에 대하여 나름의 살해 동기를 갖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난항을 겪게 된다. 그 와중에 하나씩 동아리 회원이 기괴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되기 시작한다. 

 

 고립된 공간에서 등장 인물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은 확실히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올릴 수 있다. 그 작품에서도 고립된 사람들이 겉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나름의 이유로 하루에 한명씩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한명씩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알고 있는 두 명의 독백은 '마피아 게임'을 연상케 한다. 마피아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정체를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시민들을 마피아로 몰아가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도 초반부에 사과를 죽인 진범으로 의심되는 두 인물의 관점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독자 입장에서는 명백히 범인으로 보이는 인물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정말 이들이 범인일까? 범인이라면 과연 이들의 정체는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밝혀질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두 가지 질문 속에서 쉽사리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어려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명을 제외하고 사과의 죽음과는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다른 회원들의 속사정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오히려 용의자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들을 가둬놓고 4년 전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판을 마련했던 괴한에게도 일이 생기면서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지게 된다. 한명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남은 인원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도 쉽게 누가 진범인지 또 4년이 지난 이 시점에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며, 하필 O의 작품과 비슷한 상황이 그들에게 벌어지게 된 것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고, 이야기의 마지막에 도달하더라도 작가가 설계한 반전의 장치들로 인하여 정확히 이 모든 것의 실체를 파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그날 밤 내가 죽인 소녀]는 추리물로서 괜찮은 시도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몇몇 작품을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은 오마주이자 그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추리 장치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라든지 실제 이름이 아닌 A, B, O, AB, 만년필, 햄버거, 회장과 같이 이름이 아닌 별명 또는 혈액형으로 등장 인물을 설정하여(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설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별명의 특징, 이를테면 혈액형의 경우 흔히 알고 있는 혈액형의 특징을 캐릭터로 활용한 점도 괜찮았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추리소설들이 나름의 차별화를 위하여 무척 고심하고 있다는 점을 떠오려 본다면 이 작품도 그것을 위하여 꽤 노력하였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더구나 나는 이 작품의 작가가 대학생이라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한국의 추리소설이라는 불모지에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추리소설의 영향을 받아서 자신만의 추리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의 탄생은 한국의 추리소설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나름 흥미롭게 읽은 나의 입장에서 앞으로도 '장은영'이라는 작가의 이름으로 쓰여진 추리소설을 자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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