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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육아를 돌아볼때_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 2023 독서기록 2023-02-0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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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조선미 저
쌤앤파커스 | 2013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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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린시절 나의 독서의 9할은 육아서였다. 지금 되돌려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될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무지 알수 없고 답답할 때마다 육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찾아 인터넷과 육아서를 탐독하며 그렇게 그 시절을 보냈던것 같다.

 

그 시절 내가 애청하던 프로가 있었는데 <부모 60분>이라는 EBS 방송이었다. 자녀교육과 문제행동 치료의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지신 선생님 세분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돌아가면서 프로그램에 나와서 솔루션을 제공하였고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분이 바로 오늘 소개할 책의 저자분인 조선미 교수님이시다.

오은영선생님이나 조선미선생님 그리고 또 한분은 기억이 안나는데. ㅠ 여튼 세분이 마치 트로이카처럼 당대에 유명한 육아 코칭 전문가로 알려져있었고 그분들이 한분씩 교대로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저런 상담의 결과와 솔루션을 제공해주셨다. 각기 자신만의 스타일로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공하고 상담을 해주시는 세분중에 늘 차분하면서도 정확하고도 필요한 솔루션을 주면서 때론 단호하게 이야기해주시는 조선미교수님이 나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은 오은영선생님이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시기 전이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인상적으로 뵈었던 조선미선생님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해놓고 앞부분만 읽다가 놔둔 책을 이제서야 다 읽게 되었다. 무려 2013년에 구입했으니 9년만이다.

이 책을 다시 펼친 이유는 두가지이다. 그동안 사놓고 안읽은 책장의 책들을 올해는 다 읽어보리라는 결심 하나와 아이에 대한 씨름이 깊어지는 시기인 사춘기의 딸아이와 좌충우돌을 겪으면서 이 책의 제목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기 떄문이다.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정말 마음에 와서 콕 박히는 말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가 사춘기를 겪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무엇보다 진심으로 아이의 내면이 단단해지고 회복탄력성을 잘 갖추고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갈수 있는 내면이 강한 아이로 컸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그야말로 영혼이 강한 아이로 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어릴때에는 그저 건강하고 문제없이 잘 자라주기만을 바라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또래 아이들에 뒤쳐지지 않게 학업적으로나 무언가를 배워나가는데 있어서 욕심을 내게 마련이고 이런저런 문제로 휘청거리고 고민이 많아지는 사춘기 이후가 되면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커나가길 바라게 되는 마음을 갖게 되는것 같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특수한 교육적 상황과 경쟁의 사회속에서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성인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간다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젠 대학가서 다 컸다고 한시름 놓을 즈음에 주변에서 취업으로 사회생활의 어려움으로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스트레스로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담을 받고 치료약을 먹는 20대들의 흔한 모습들을 보면서 육아의 끝은 어디일까 아니 자녀에 대한 고민의 끝은 어디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이 어쩌면 육아의 가장 최종목표이자 궁극적인 목적인 건강하게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사회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도 육아서라고 할수 있는 책이고 육아서라면 어느정도 읽을만큼 읽었다는 생각과 이제 나는 10대 중반인 아이를 양육하고 있으니 이 책이 큰 감흥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이 책을 덮을 때 즈음 얼마나 많은 밑줄을 그었으며 포스트 잍을 붙였는지 모른다. 아직도 나에게 유효한 육아서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움 자체였다.

그렇다. 아직도 육아는 진행중인것이다. 내 아이가 아직 완성된 모습이 아니고 성장의 과정의 있기에 지금도 어떤 방식으로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는 지에 따라 아이는 마음이 더 단단해질수 있으며, 살아오면서 내가 했어야 하고 지금도 해줘야 할 일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어떤면에서는 아이가 아직 어린 부모들보다 어느정도 성장하여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는 10대의 자녀들을 둔 부모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주는 책인것 같다.

부모들이 갖는 가장 큰 소망은 자식들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가며 교육을 시키고 아이를 잘 양육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며 때론 자신들의 노후의 안락함까지 포기해가면서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 예전처럼 자녀수가 많은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명이나 두명이 대부분인 자녀들을 위해 예전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렇게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부모들은 애를 쓰지만 연구진이 연구를 통해 이미 오래전 찾아낸 답은 최선을 다해 최고의 교육을 받도록 해도 30퍼센트는 실패할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고의 연구진이 70년 넘는 연구를 통해 찾아낸 결과는 영혼이 강한 아이, 시련에 강한 아이가 양육의 키워드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은 우리의 감정과 생각, 기억, 지식이 깃들어 있는 곳이고, '영혼'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혼은 우리에게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에너지를 부여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좀 더 상위의 개념이다.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부부싸움때문에 얼마나 화가 났는지, 일을 할 때 무엇에 집중할지를

다루고 담아두는 곳이 마음이라면 영혼은 내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야 격한 감정이 가라앉는지,

누구를 먼저 보살피고 배려해야 하는지, 이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우리를 이끌어가는 정신의 중심이다.

p.10 고통에 성숙한 아이로 키워라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가능한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고 고통스런 상황에 처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마음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겪으며 성장할 기회인 시행착오를 미리 막아주기도 하고 아이가 할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부모들도 종종 있다.

부모눈에 뻔히 보이는 실수나 그냥 두면 잘못될 것 같은 일을 앞서서 저지하기도 한다.

 

나 조차도 수많은 책과 격언집에 있는 실패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따라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지식으로는 알고 있어도 내 아이의 인생에서 그걸 적용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가능하면 아이의 인생이 실패보다는 성공과 함께 즐겁고 기쁜일들로 가득하기를 바라고 왠만하면 좌절이나 시련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영혼이 강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실패라는 성장 비타민이 꼭 필요하다는걸 깨닫게 된다.

단순히 실패를 통해 새로운걸 깨치게 되는것 뿐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세상에 대한 적응하는 힘과 유연성을 기를수 있게 되는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얻게되는 심리적 탄력성은 그 후에 겪을 다른 문제에 대해 더 유연한 마음을 갖도록 해준다.

 

심리적 탄력성은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는 것 뿐 아니라

좌절 자체에 대한 내구력도 증가시킨다고 하였다.

 

따라서 같은 문제를 겪을 때 아이가 느끼는 좌절감과 무기력감 혹은 무능감은

처음에 비해 훨씬 덜해질 수 있을 것이다.

p.150 실패라는 성장 비타민 中

 

우리의 사회는 가정과 달라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느껴지고 부당하다고 느껴질때가 종종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늘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수도 있으며 때론 내가 노력을 했지만 그만한 결과가 주어지지 않을수도 있다. 그런 모든 일들을 부모는 막아줄수 없으며 아이는 스스로 깨치고 터득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가야 한다. 그 과정속에서 주어지는 스트레스와 부정적 감정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아이의 힘든일들을 대신해주거나 최대한 막아주는것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면서 혹은 어른이 되어 그런일들을 겪을때 잘 극복해나가고 자신의 삶을 잘 만들어가는 아이로 돕기 위해 우리 부모들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해줘야할지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실패를 겪었을때 스스로 달래고 다시 알어날 수 있는 아이,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관계를 배워가는 아이, 부모 도움없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이가 결국에는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진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모든 부모들은 내 아이가 커가면서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남을 배려할줄 알며 어떤 조직속에서도 잘 적응해나가길 바라고 궁극적으로는 타인에 의해 혹은 상횡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꾸려가는 삶속에서 행복을 찾고 즐겁게 생활해나가길 바란다.

 

내 아이가 내면이 단단한 아이, 영혼이 강한 아이로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면 우리는 부모로써 '안락함'을 채워주는것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세상의 규칙이 가정과 다름을 알려주고 성장해가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다양한 기회와 실수로 인한 고통을 겪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영혼이 성장할수 있는 기회는 바로 그것에 있다.

 

 

많이 갖고, 많이 배우고, 많이 누리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실패와 좌절에 힘들어도 스스로를 달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

세상에는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있음을 알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

반복적인 훈련과 연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과 좋은 습관을 갖게 된 사람이

결국은 성장하고 행복해진다.

 

상처는 아이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고 그것을 딛고 넘어서게 함으로써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보듬을 수 있으며,

결국은 그것을 통해 영혼이 성장할기회를 주는것,

그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p.279 에필로그_상처,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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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2023 독서기록 2023-01-1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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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저
사계절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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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나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심윤경 작가가 오랜만에 에세이를 냈다. 20년 만의 첫 에세이라고 하니 심윤경 작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일듯 하다. 작년 김영하 북클럽에서도 하반기에 선정되었던 도서라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는데 올해 첫 책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저자의 기억속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책을 읽으며 나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서 감정이 힘들어지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나의 외할머니는 코로나 기간이었던 작년에 요양원에 계시다 한창 코로나가 대유행을 거치던 작년 초반에 코로나로 돌아가셨는데 그 마지막을 제대로 배웅하지 못했다. 어린시절 나를 돌봐주셨기에 특별한 기억들이 나에게는 남아있다. 할머니를 떠올릴때면 막판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는 죄송한 생각들과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겹쳐지면서 책의 초반을 읽어나갈때 몇번이나 책을 덮고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이 책은 요란스런 말과 행동으로 채워지고 있는 요즘의 양육의 방식과는 오히려 거의 반대되는 지점에서 저자에게 한결같은 편안함을 주셨던 저자의 할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극도의 미니멀리스트같은 최소한의 말로만 표현하고 반응하셨던 할머니를 추억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할머니를 떠올릴 때 다섯단어(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쩌)로 표현될 만큼 결코 과하지 않은 언어들을 사용하셨다고 한다.

 

저자의 어린시절을 돌아보았을때 한결같이 그 자리에 항상 계시면서 지지하고 공감해주셨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사랑의 방식이 얼마나 깊고 단단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저자는 깨닫고 그것을 글로 쓸 생각을 하게 된다.

항상 무엇을 물어봐도 "몰러~", 잘한일이 있어도 과한 칭찬대신 "장혀~" 이런 짧은 단어들만 뱉는 할머니를 작가는 어린시절 무시하기도 하고 만만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기쁨과 슬픔에 대한 과한 감정이나 말의 표현이 없이 늘 한결같았던 할머니를 보면서 저자는 요즈음 차고 넘치는 그 어떤 세련된 말보다도 할머니의 소박한 단어들이 더 따뜻하고 근원적인 힘과 안정감을 주는 말들이라는것을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속에서 문득 깨닫게 된다.

할머니의 육아의 방식이 낡고 촌스러운 방식이 아닌 오히려 가장 고차원적인 관용과 베품의 언어이고 행동이었음을 깨닫고 저자는 그것이 자신의 뾰족했고 예민했던 어린시절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오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안전판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자신의 딸아이를 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저자는 끊임없이 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딸아이 꿀짱아를 키우면서 특별히 사춘기의 아이와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더더욱 공감이 되었다. 아이로 인해 지치고 자신의 상황속에서 심리적으로 끝에 다달은 듯한 무력감과 지친 마음속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고 아무 글도 써지지 않는 난독증 같은 증세를 보이며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을 읽으면서 작년 하반기 어떤 책도 제대로 읽히지 않고 어떤것도 써지지 않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과정속에서 저자는 딸아이가 얼마나 학업이 힘들고 살아낸다는것이 고단한지를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할머니의 위로와 공감의 언어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때마다 가슴 한켠에 잔잔하게 퍼지는 따뜻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저자의 할머니를 뵌 적은 없지만 그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나의 어린시절을 함께 했던 나의 할머니의 모습도 떠올라서 가슴 한켠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지금은 할머니의 그 허술한 '장혀'가 바로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뭘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낸 것이 장하다는 소중한 인정이었다.

 

부모님이 보기엔 겨우 빈둥거리고 신경질 부리면서 하루를 보냈을 뿐이지만

할머니가 보기엔 해야 할 많은 일들과 뜻대로 되지 않는 나 자신 사이에서 부대끼며 보낸 힘든 시간이었다.

...

할머니의 '장하다'는 어른이 되어가는 사춘기 청소년기의 부대낌이나 입시 같은

특정한 일들을 넘어서 살아간다는 것의 고달픔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나 보다.

 

그저 긴 인생을 먼저 살아가신 현명한 한 어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통째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니

내 눈앞의 너 또한 힘든 순간이 있었을 것을 미루어 아셨을 것이고

각자의 길 앞에 놓인 장애물을 건너뛰기 위해 발버둥친

너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장하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p.164 절반은 할머니 中

 

꿀짱아가 하려는 일에 대해 내가 자세하게 알면 알수록 내 머릿속 개구리들의 목청이 높아졌다.

그래서는 안돼, 말도 안되는 소리야, 순서가 틀렸어,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저 아이는 왜 저런 말도 안되는 일을 하려고 하지? 이대로 내버려두어선 안돼.

그건 부모로서 직무유기야! 아이는 잘못된 생각을 가질거야!

개구리들은 주로 이렇게 고함을 질러댔다.

(p.138 아이는 부모의 빈틈에서 자란다 中)

 

사춘기를 겪고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저자가 충돌하거나 혹은 충돌 직전까지 가게될 때 떠올리는 생각들을 적은 부분에서는 우리집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함에 책을 읽으면서 내내 웃음이 나왔다.

내 머릿속에도 수만마리의 개구리들이 수시로 와글와글 고함을 질러대고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이렇게 저렇게 아이에게 이야기해주어야 한다고. 이게 지금 아이에게 조언을 해야할 때인지 지켜봐줘야 하는 때인지 수시로 헷갈리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때마침 아이와 한바탕 학원문제로 소란을 일으키며 말다툼을 하고 아이는 홧김에 점심도 안먹고 학원으로 향했고 나는 기껏 차린 점심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가는 아이때문에 결국 소리를 지르고 속이 상해서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아이를 보내고 덮어놓았던 책을 읽는데 어느 한 구절이 너무나 내 마음에 콕 와서 박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교육 격언은 '아이는 부모의 빈틈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그것은 정말로 그랬다.

...

나는 꿀짱아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그 아이는 지금의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낯선 터전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젊은이가 낯선 세계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것은 비극이나 위험이 전혀 아니며

이 세상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축복이다.

 

첫째도 허술하고, 둘째도 허술할것.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부모가 되기에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아이는 부모의 빈틈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p.143

 

너무 많은 참견과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될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걸 잘 조절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자꾸만 돌이켜보게 된다. 부모도 아이와 같이 성장해가는것임을 항상 깨닫지만 지금 사춘기의 아이를 보면서 나 역시 그 소용돌이에서 같이 허우적대고 있음을 느낄때가 많다.

성숙한 부모가 저절로 되는것이 아님을,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것을 새삼 깨닫는 요즈음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아름다웠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함께 추억하는 기분이었고 그 추억의 시간속에서 나 역시 힐링이 되고 편안해지며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저자의 할머니처럼 시간이 한참 지나 이 시간들을 떠올렸을때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고 잔잔한 미소가 떠올려지는 부모가, 조부모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보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지와 격려를 자연스럽게 할수 있는 육아의 고수가 되고 싶어진다.

 

좋은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것들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차원 높고 아름다운것이 '편안함'이라고 말한 저자의 말처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여러가지 두려움을 떨치게 해주는것, 부담없는 편안함을 내 아이에게 그리고 훗날 만나게 될 손주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아름다운 할머니로 기억되는 저자의 할머니처럼 과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속에 편안함과 잔잔한 기쁨을 줄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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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 2022 독서기록 2022-12-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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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저/최정수 역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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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에르노의 작품. 그녀의 집착적 사랑을 맑고 단아한 문장들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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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르노가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임을 알고나서야 그녀의 책들에 눈을 돌렸고 가장 마음에 꽂히는 제목을 가진, 그러면서도 책의 두께도 너무나 얇아 노벨상 작가임에도 일단은 부담없이 다가온 '단순한 열정'을 읽게되었다.

프랑스에서도 비평가보다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던 책이었고 한국의 온오프라인 서점들도(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판매에 가장 열의를 보이며 상단에 올려 홍보를 하던 책 '단순한 열정'은 노벨상 수상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아니에르노를 처음으로 접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나와 비슷한 이유로 만나보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 책을 읽고나서 당연하게도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자전적 소설인 '단순한 열정'은 한 남성과의 만남과 기다림의 과정에서의 자신의 감정과 행동들을 담담히 적어내려간 글이다. 자신은 이혼한 상태로 한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을 사랑했고 그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책인 '단순한 열정'은 읽다보면 조금은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읽는 동안 그리고 읽고나서도 이게 프랑스라서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된다.

 

이미 이 책을 집필할때 프랑스내에서도 인지도도 높고 사회적으로도 안정적인 직업과 위치에 있는 저자는 교수에, 작가로서도 성공한 입지를 다지며 글을 써왔는데 갑작스레 자신의 불륜의 사랑을 낱낱이 공개하는 글을 써서 출판한다는게 보통 용기가 필요한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책이 이슈가 된건 단순히 불륜의 사랑과 사랑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때문만이 아니라 그녀의 전작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작품이라는 평가때문이기도 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평론가들은 혹평을 날렸다.

마치 경험하지 않은것들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것처럼 아니에르노는 자신의 모든 책들을 자신이 성장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써내려갔다. 모든 소설이 자전적 소설인 셈이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에서도 주목받는 작가로 자신의 이름이 걸린 상이 있을정도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이다. 한 남자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담담하게 묘사한 단순한 열정은 우리안에 누구나 갖고 있을법한 그러나 오랜시간 묻어두고 잊혀졌던 열정과 집착의 근원적 모습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단순한 열정'과 함께 시리즈로 칭해지는 '탐닉'과 '집착' 세가지 책이 있다. 그리고 또 한권의 책, 그녀와 사귀었던 33살 연하의 필립 빌랭이 그녀의 문체를 그대로 따라 쓰면서 아니에르노와의 사랑에 대해 써서 유명해진 소설 '포옹'이 있다. 같은 사랑을 남성의 시각에서 적은 책이라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단순한 열정'만 읽어보았지만 실제로 '탐닉'과 '집착', '포옹'까지 읽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결론은 '단순한 열정'과 함께 '집착'이 그래도 문장이 가장 아름답고 단순 명료한 책이라 늘어지지 않는다는 평이었다.

 

그녀의 책을 처음 읽어내려가면서 느낀 불편함은 그 집착적인 행동에 대한 동질감이었다. 사람마다 예민함의 정도 또는 집착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사랑에 빠졌을때 자신의 원래의 모습과 다른 집착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만그럴까? 실제로 내가 20대에 연애를 한참 할때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만들었던 그녀의 책은 그래서 그 끝이 보이는 사랑이기에 더욱 불편함과 우울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유부남이고 그 나라를 곧 떠날 외교관 신분이었던 상대 남자와의 사랑의 끝을 분명히 예감하면서도 그 사랑의 과정속에서 한없이 몰두하고 집착하는 아니에르노의 모습은 이해할수 있다 없다를 떠나 내 감정을 매우 불편하게 건드렸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헤어짐을 겪고 다시 혼자로 돌아간 그녀가 일상속에서 그 남자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조금씩 그 집착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나를 조금 안도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마지막까지 다 읽고 책을 덮었을때 나에게 이 책에 대해 말하고자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할수 있겠다. "문장"이라고.

그녀의 맑고 단아한 문장들이 오래 기억될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지만 이토록 담담하게 객관화해서 쓸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문체는 건조함이 느껴졌고 담담히 써내려간 그녀의 문체속에 그녀의 문장들이 살아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갈망했던 지난 해 봄 그 사람을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p.60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p.66

 

어떻게 보면 자신의 열정의 근원을 찾아내어 그것을 글쓰기로 연결한 아니에르노는 불륜의 비극적 사랑의 갇혀있는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연료삼아 글쓰기로 이어간것이 아닐까 싶다. 그 남자를 집착적으로 사랑한 만큼 자신의 그런 모습조차 사랑했던것은 아니었을까.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접해보지 않아서 이 한권의 책만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경험한것들로 글을 쓰는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한 용기를 가진 작가임이 분명하다. 어느작가가 이토록 자신에게 솔직할수 있을까, 그리고 이토록 자신을 객관화해서 이야기로 만들어낼수 있을까. 쉽지 않을것 같다. 자신의 내면일기인 탐닉까지 공개했던 작가는 적어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보이는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작가임이 분명하다.

 

세상에 가면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적어도 글쓰기에서 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지만 그럴수 있는 용기를 갖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솔직한 글쓰기를 이어가는 그녀의 용기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아니에르노#노벨문학상2022#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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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교수의 특강을 듣고(포스트 코로나시대의 교육혁명) | 책과 일상 2022-10-3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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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도서관에서 초청행사로 마련한 김누리교수님의 특강신청을 한달전에 했었는데 어제 바로 그 날이어서 다녀왔다. 너무 오래전에 신청을 해서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도 잠시 까먹었는데 어제 강연을 들으러 올라가면서야 주제를 확인했다.

미래가 행복한 교육이란 타이틀 밑에 부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혁명>이란 주제의 강연이었다.

김누리교수님의 저서인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코로나 시기에 너무나 인상깊게 읽었기에 망설임없이 신청했던것 같다.

늦은시간임에도 집앞 도서관 홀에 가득 찬 인원을 보면서 교수님의 인기와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소탈한 복장으로 앞에 서신 교수님은 시작부터 우리의 교육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며 분노를 표현하셨다. 이 지역이 공부를 엄청 시키는 지역인지라...왠지 나부터도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은 찔림이 왔다.

 

독일의 아이들 유럽의 아이들과 비교했을때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말씀하시면서 책한권을 꺼내셨다. 바로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미국의 현실이 얼마나 우리와 비슷한지 아니 우리가 물론 좀더 심화버젼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많이 공감했었다. 교수님은 이 책을 극찬하시면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이야기하시며 자신이 이야기했던 많은 이론들과 비슷한 제안을 하는 샌델교수의 이론들을 설명해주시면서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하셨다. 그리고 이 책 외에도 다른 몇가지 책들도 함께 읽어보도록 추천해주셨다.

 

능력주의에 대한 허상과 이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샌델교수의 책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깊이 맹신하고 있는 능력주의의 본질에 대해 짚어주셨다. 공정하다는 착각이 사실은 제목을 원제에서 너무 나아가게 붙인거라고 하시면서 원제대로 하면 '능력의 폭정' 즉 능력주의는 폭군이다라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샌델은 왜 능력주의가 폭군이고 능력주의 경쟁교육으로 인해 미국 사회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몰락했는지. 미국의 야만성이 그대로 드러난 코로나 시기의 모습들을 보면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데 능력주의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고 하셨다.

도널드 트럼프와 능력주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대적으로 노동자들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지난 선거에서 70%가까운 노동자의 인구가 도널드 트럼프를 찍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오바마의 역할이 컸다고 지적한다. 오바마는 미국 능력주의의 전도자로 불릴정도로 어느곳에서나 자신과 미셸오바마가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노력으로 그만큼 성공했다는것을 강조하며 다녔다.

오바마의 슬로건은 "You can make it, if you try" 였다. 노력하면 당신의 능력으로 안될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신과 자신보다 더 불우한 환경이었던 그러나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미셸오바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노력하면 다 이룰수 있다는 말을 심지어 러스트벨트 같은 지역에서도 전하고 다녔다.

이 말이 어떤이들에게는 칼이 되는 말이었을것이다. 몰락한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은 이 말을 들으며 희망을 찾는것이 아니라 더 절망했을것이다.

노력하면 다 된다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백인노동자들이 갖는 분노와 굴욕감은 트럼프를 향한 지지와 표로 이어졌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잠시 살펴보면 세계 불평등 연구소로 유명한 토마피케티의 지수를 보면 전세계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한국으로 지목되고 있다. 상위 10%와 하위 50%의 부의 평균값의 차이를 계산해서 불평등한 나라들을 산출하는 피케티의 지수로 보면 우리나는 상위 10%와 하위 50%간 52배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내 옆집이 우리집보다 3배 잘산다고 해도 엄청난 차이일텐데 52배 차이를 한번 상상해보라고 하셨다.

하위 50%가 차지하는 부가 전체의 5%라고 했다. 그말은 상위 10%가 95%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영국 킹스칼리지대학에서 OECD 28개국의 2만 6천명을 대상으로 갈등조사를 했고 그 결과를 자세히 발표했다고 한다. 12개 항목에 대해서 조사했는데 그중 7개 항목에서 한국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바로 빈부갈등, 이념갈등, 정당갈등, 남녀갈등, 세대간갈등, 종교갈등, 학력갈등 이렇게 7개분야에서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불평등하고 갈등이 많고 불행한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라고 하셨다.

 

그런데 한국에서 혁명이 안되는 이유는 바로 능력주의 때문이라고 김누리교수는 지적하셨다. 부자나 빈자나 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우리사회는 노력하고 애쓰면 마땅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고 했다. 이렇게 한 사회를 다 때려부수고 있는 폭군인 능력주의는 또다른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교육과 같은 여러가지 사회의 문제들을 사회 구조에서 찾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있는 한국인들이 바로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거였다. 내가 게으른 탓일거야.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내가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이렇게 사회구조의 근원적 문제를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돌리면서 OECD국가중 18년째 자살율 1위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2018년 딱 한번 2위를 했는데 리투아니아란 국가에게 1위자리를 빼았겼었는데 김누리 교수님은 우리보다 더한 사회가 있나보다고 쓴웃음을 웃으셨다.

그리고 그 다음해 바로 다시 1위자리를 탈환했다고 하셨다. 슬프고도 무서운 현실이다.

 

미국과 달리 유럽은 (영국은 제외하고) 일찍부터 결과의 평등을 꿈꾸었는데 결국 공산주의의 붕괴까지 보면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 아닌 탐욕의 동물이라는것을 역사가 증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회의 평등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정의로운 사회의 최소한의 조건으로 내건 기회의 평등으로 대표적인 교육의 평등을 내세우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교육도 시장으로 보고 내가 내돈내고 구매하는 상품으로 보았다면 유럽은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교육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일찍부터 고민을 했다고 한다.

결국 1949년부터 독일은 모든 학비를 없앴고 1970년에는 공부하는 대학생들중 학비만 무료가 아니라 생활비를 벌어야 공부를 할수 있는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수 있도록 매달 120만원 가량의 돈을 대학의 학생들에게 지원하는 정책을 시작하였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부담없이 모든 학생들이 동등한 조건으로 공부할수 있도록 배려한 독일은 사회정의가 제대로 구현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때 미국이나 우리나라는 제일먼저 얘기하는것이 공평하게 돈을 준다고? 공산주의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심지어 미국에서도 흔히 이야기한다고 한다. 미국식 모델을 거의 따르고 있는 우리도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미국은 흔히 사회가 아닌 시장이라고 이야기 될 정도로 모든것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흔히 유럽인들이 미국을 말할때 "자유의 폭은 넓지만 사회적 약자에게는 지옥이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이런 고민을 하게 된 이면에는 우리처럼 교육이 더이상 부모의 능력과 돈이 있는 집 아이들이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는 모든 공부하고픈 아이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할수 없음을 깨달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이 학비걱정과 생활비 걱정없이 공부에 전념할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끝에 이런 사회적 장치와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면서 분노의 목소리로 우리나라 시험기간 아닐때 도서관에 가면 도서관이 비어있다고 이야기하시면서 다들 학교근처 편의점에 가있고 호프집에 가있다고. 무슨 이야기인가 했더니 학비를 벌려고 알바하려고 공부할 시간을 쪼개 더 많은 시간을 돈을 버는데 쓰고 있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성토를 하셨다. ㅠ

이미 서울대에는 강남 학군의 아이들의 입학률이 월등히 높고 부모의 부를 기반으로 다시 좋은 학업의 성과를 이뤄 그 기반을 공고히 한다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이상 교육은 사람들에게 누구나 노력해서 성공할 기회를 제공하는 장치라는 생각을 접게된지 한참 되었다.

 

중세의 신분제사회에서 지금의 사회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김누리 교수는 대단히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다. 당시의 사상가들과 계몽군주들 그리고 젠트리계층으로 성장한 시민계급이 결국 신분제의 불합리함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듯이 지금의 자본이 지배하고 능력주의를 내면화한 미국과 우리같은 사회에서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개혁을 꿈꾸는 이들이 존재할까.

미국에는 자살로 인한 사망을 넘어서서 절망사라고 불리는 알콜과 마약으로 이어지는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한 책이 있는데 2018년 한해 절망사로 15만8천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절망사가 의미하는것은 무엇일까. 사회 구조속에서 절망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죽이고 결국 궁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절망사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마이클샌델은 능력주의의 본질은 학력주의인데 학력 계급사회가 이루는 현대판 세습귀족정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부모의 재력에서 이어지는 학력계급사회는 우리 나라에서 제대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샌델은 그 특유의 질문을 던진다. 정의란 무엇인가' 처럼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도 능력이 무엇인지? 능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끝까지 세세히 파고 들어가고 있다.

결국 그는 능력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그 끝에서 만나는것은 Luck이라고 했다. 머리가 좋은것, 재력이 있는 부모를 만나는것, 생물학적인 운, 시대적인 운, 사회적인 운 등등 여러 상황들이 운의 요소로 엮여드는 것을 이야기한다. 마치 손흥민이 한세기 전에 태어났다면 지금같은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을거란 예시처럼 말이다.

 

그러고 나면 능력이라는것이 그것도 내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고 착각일수 있다고 신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교수님은 한권의 책을 더 소개해주셨는데 예일대 법학과 교수인 대니얼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이라고 번역된 책을 한권 소개해주셨다. 엘리트 세습에 대해 훨씬더 적나라하고 신랄한 비판이 담긴 책이라고 추천해주셨다. 능력주의는 조작이고 기득권의 조작메커니즘에 불과하며 무조건 그들이 이기도록 그들에게 유리한 구조가 되도록 조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담긴 좀더 쎈 버젼이라고 하셨다.

 

기회의 평등으로 제공되었던 교육이 우리나라에서도 더이상 그 가치를 잃은 모습을 보면서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는 내내 씁쓸함을 지울수 없었다. 아마도 '엘리트 세습'을 읽고 나면 더한 느낌이 들것 같다.

 

이야기를 정리하며 독일의 데모하는 초등생들과 청소년들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셨다. 이 아이들은 난민정책에 대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모를 하고 있는중이었다. 놀라운것은 정부에서 2017년 난민촌의 화재로 갈곳을 잃은 난민들을 117만명 수용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고 난 직후였다.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로 나온 청소년 아이들은 갈곳 없는 난민들을 전체 다 수용하지 않고 왜 일부만 수용하냐는 데모를 곳곳에 모여서 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아이들의 데모대가 종종 데모하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것들을 보시다가 독일에 머물던 어느날 버스에서 초등생 시위대가 시위행진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버스에서 내려서 쫒아가서 그 시위대의 사진을 찍고 슬라이드에 담으셨다. 데모의 내용인즉 독일 정부가 북아프리카 난민들의 심사를 해서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불법이민자들을 강제 송환하겠다는 발표를 한 후였다. 초등생들의 대모 피켓에는 누구도 불법적인 인간은 없다라는 구호가 써있었다. 강제송환반대 같은 글이 담긴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거나 모여있는 모습이었다.

 

이 데모가 있고 다음날 교사연합회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아이들의 시위를 지지한다는 성명이었다. 그리고 며칠후 교육부에서 다시 성명을 발표했다. 아이들과 교사들의 의견을 지지한다는 성명이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정부는 정책을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1년간 강제송환에 대해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아이들은 환호를 했고 자신들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김누리교수는 이 아이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무슨짓을 저질렀는지를 생각해보면 너무 놀랍다고 했다. 몇백년전도 아니고 불과 한두 세대 전 있었던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떠올리고 아우슈비츠를 떠올리고 보면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수 없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독일교육의 핵심은 무한경쟁과 약육강식과 같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주장했던 히틀러식 경쟁과 우열과 지배를 그들의 다음세대 아이들에게서 뿌리뽑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다.

정신적 잔재들을 뿌리뽑고 히틀러파시즘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그렇게 노력한 것이다.

독일의 어린이들이 전세계의 억압과 고통에 연대해야 한다고 배우면서 크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크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나면 갑자기 가슴이 저릿해지면서 눈물이 날것 같았다. 세계 인권과 관련되어 활동하는 세계 엠네스티에 가장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는 아이들이 독일의 청소년들이라고 했다. 때때로 세계의 인권 탄압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시위도 하는 독일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제주도에 들어왔던 예민난민 수용에 대해 대다수의 어른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었는지도 떠올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중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수용하겠다고 열차역까지 나온 독일의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떠올려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학교와 학원만 왔다갔다하고, 여전히 군대같은 분위기의 교실에 앉아서 경쟁속에서 비틀리고 시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직시하게 된다. 지금의 어른 세대들도 그런 트라우마를 가지고 컸고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경쟁과 주입식 교육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12년동안 배우면 배울수록 개성이 죽고 질문이 사라지고 입을 닫게 되는 교육. 진심으로 내 아이를 키우면서 그것을 너무나 공감하게 된다.

 

초등때까지 나름 자유롭게 외국의 아이들 못지 않게 다양한것들을 경험하고 접하게 해주기 위해 예체능을 열심히 가르치며 책도 열심히 읽으며 초등시절을 보낸 아이는 중등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외국으로 이민갈수도 없는 이런 상황속에서 한국의 입시에 적응하고 순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낙오되는 느낌의 이 상황속에서 나도 아이도 길을 잃고 만 느낌이다. 어쩔수 없이 입시지옥의 열차에 올라타 학원과 학교생활을 괴로워하며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심하다는 한국 중국 미국 일본의 고등생에게 질문하고 답을 얻은 표를 보여주셨다. 학교 생활을 사활을 건 전장으로 느낀다는 우리 아이들의 압도적인 비율을 보면서 눈물이 나왔다. 반면 일본도 이젠 경쟁이 많이 줄어들어서인지 우리랑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고 오히려 학교 생활이 함께하는 광장이라고 느끼는 비중이 훨씬 더 컸다. 이미 일본도 경쟁교육에서 많이 변화되었다고 한다. 우리 현실이 더 안타까워진다.

 

 

TV에서 얼굴을 자주보이는 비정상회담에 나왔던 다니엘에게 교수님이 물었다고 한다. 다니엘에게 고등생활은 이중 무엇이었는지? (함께하는 광장, 거래하는 시장, 사활을 건 전장 중) 그랬더니 다니엘이 대답하더란다. 이중 자기 답은 없다고. 자긴 고등생활이 매일매일 축제였다고. 연극하고 친구들과 많이 놀러다니고 책읽고 체험하고 파티하고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다는 그 대답에 교수님이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청소년때 아이들과 어울리고 운동하고 책읽고 연애하고 이런거 우린 다 못하게 하지 않냐고 소리를 지르셨다. 성적떨어진다고. 그러면서 가장 필요한 경험들이고 연애도 그렇다고 하시면서 누군가를 깊게 사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이해할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는거고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도 연대할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거라고 하셨다. 진심으로 공감한다. ㅠㅠ

나부터도 너무나 반성이 되었다. 연애하면 성적떨어진다고 전전긍긍하는 주변의 엄마들 이야기들이 귓가에 들리는듯 했다.

 

공부를 하고 싶으면 졸업시험만 보면 대학 어느곳이든 이미 평준화 되어 있어서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서 공부할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곳이라면 (독일은 90%아이들이 졸업시험을 통과하고 프랑스는 80%정도의 아이들이 통과한다고 한다) 이런 입시지옥으로 고통없이 행복하게 청소년시절을 보내겠지 싶었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불행한지, 미래를 위한 행복을 담보삼아 대학가고 취직하고 그 후엔 행복한가요? 묻는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지 않다는걸. 대학이후의 주변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직장다니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우울감을 느끼고 힘들어하는지를 알기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실 대학가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우울증 약을 먹는 대학생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면서 사실 요 몇년간 큰 충격을 받았었다. 너무나 멀쩡히 이동네에서 공부잘하고 모범생이고 좋은 대학갔는데 취업을 앞두고나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에 대한 고민으로 스트레스 받으며 우울증약을 먹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ㅠ)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요? 과연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할까요? 질문들이 나왔다. 교수님은 공중파방송에서도 쎈 이야기를 거르지 않고 했다고 하시면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정말 촛불로 바뀔수 있을까.

나는 샌델교수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게 본인도 하버드의 교수이고 안정적인 재력과 지식을 갖춘 사람인데 이런 지적을 과감하게 하는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잘 받고 그 지위를 만들고 다져온 우리나라의 지식인과 권력층은 이런 이야기를 소리내어 할수 있을까. 아니 이런 것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고 있긴 할까. 의문이 든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서서 나오는 나의 발걸음과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학원을 데리러 아이를 마중가면서도 내 마음은 그 무게를 더했다. 자신이 낙오자라는 패배감을 가지고 살아가길 원치 않는데. 이 경쟁에서 그렇다고 승자가 되기위해 자신을 죽이면서 말도안되는 스케줄들을 소화하며 너무나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라고 하고 싶지도 않은데. ㅠ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학원에서 스터디카페에서 자신을 죽이며 한문제라도 더 맞히고 내신등급이 조여오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들을 달리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가슴에 답답함과 함께 눈물이 차오른다.

 

#공정하다는착각#엘리트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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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 | 2022 독서기록 2022-10-1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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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저
김영사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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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라는 직업이 갖는 이미지는 언론이나 뉴스에서 접하는 사건의 판결과 관련하여 언급되는 판사들의 이미지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것 같다.

 

정치적인 이유나 사법권과 관련하여 다뤄지는 많은 이슈들, 그리고 언론애서 다뤄지는 판사들의 이야기들이 평범한 직업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다소 정치색이 짙게 묻어나거나 권력이라는 단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던것 같다. 나에게는 적어도 그 이미지가 대체로 무겁고 권위적으로 느껴졌다.

근래 몇년간 판사가 칼럼을 쓰거나 책을 내는 경우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고 우연한 기회로 나는 세분의 현직 혹은 전직 판사의 책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이제는 전직판사이지만 전문 작가만큼이나 맛깔나게 글을 쓰시는 그래서 찐 팬들도 많은 문유석 판사의 책들과 소년재판으로 책보다 언론에서 더 잘 알려져있는 천종호 판사의 책, 그리고 가장 근래에 읽어보게 된 박주영판사의 책이다.

 

몇년전 문유석판사의 글을 읽으면서 판사가 이런 글도 쓸수 있구나, 권위의 상징인 존재만은 아닐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고 그동안 내안에 자리잡은 편협한 생각을 약간은 떨쳐낼 수 있었다. 소년재판으로 잘 알려진 천종호판사의 글을 읽으면서는 판사라는 직업도 하나의 직업으로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다른 직업들처럼 성실히 수행해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을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진심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판사 박주영판사의 글을 읽게 되었다. 한 치료감호소 정신과 의사가 쓴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을 읽으면서 이 책의 서문에 박주영판사가 쓴 추천서를 읽었는데 그때 그분의 글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짧은 추천서임에도 너무나 마음을 움직이는 구절들을 보면서 이분의 글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변호사생활 10년을 넘게 하다 뒤늦게 판사의 길을 걷게된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갖고 계신 박주영판사는 이 책을 통해 재판에서 다 하지 못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토해내고 있다.

막연히 권력의 중심부같은 직업, 명예와 권위가 있는 문과 최고의 직업으로 생각되어지는 판사라는 직업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떤 직업이든 그 내부로 들어가보면 힘들지 않은 직업이 없고 고독하지 않은 직업이 없다고 하지만 판사라는 직업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방향으로 얼마나 극한 직업인지를 알게되었다.

 

판사는 오직 법으로만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치우침도 없이, 감정의 동요로 좌우되는일 없이. 그러다보니 세상의 온갖 상상하기 힘든 사건 사고들 앞에서 한 인간으로서 마음 깊은 곳에 이야기는 쌓여 갈수밖에 없을것 같다.

그들이 판결과 관련하여 판결문 외에 유일하게 쓸수 있는 글은 양형이유이다. 그러다보니 저자는 양형이유에 많은 생각과 감정을 담고자 애를 썼고 그가 쓴 양형이유들을 읽다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그렇지만 절대선은 없는 법이다. 선한 제도 뒤에 숨은 악인을 바라보는 피해자에게 형사재판 절차는 그저 악인을 보호하는 악법일 뿐이다.

피고인의 권리 보호와 실체적 진실과 응보라는 정의가 충돌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법정은 실로 입자가속기 같은 곳이다. 상반되는 가치와 권리가 빅뱅한다. 판사는 대폭발의 혼돈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번뇌한다.

..

 

특히 법감정으로 일컬어지는 시대정신과 법규정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을 때 그 접점을 모색하는 작업은 판사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준다.

시대적 요구가 법의 테두리 안으로 포섭될 수 없을 때, 즉 그 요구는 입법의 영역이라고 선언해야 하는 상황은 판사에게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다시 머리를 싸맨다. 과연 해석으로 포섭이 불가능한 영역인가? 최선을 다해 경계를 밀고 나아가 보았는가?

주류에 속해 있으면서 폭주하는 사건을 핑계 삼아 안이하고 협량한 해석으로 경계를 긋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무리한 해석으로 적법이라는 미명 아래 불법의 영토를 확장한 것은 아닌가?

경계 너머 낭떠러지에 매달린 수많은 사람의 절규를 외면하진 않았는가?

(P.41)

 

판결이 갖는 무게를 항상 짊어지고 피해자와 피의자 양쪽의 모든 입장을 반영한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판사는 고군분투한다. 억울함이 최소화되도록 애를 쓰는 과정에서 시대정신이나 사회분위기를 감안하기도 하지만 판결을 내리는것은 오롯이 법의 정신에 입각한 판사의 몫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판결을 내린 자체로 모든것이 끝나는것이 아니라 때론 오랜시간 판사는 고통받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자신이 내린 판결이 미치는 영향과 그 판결로 고통받는 당사자나 그 가족들의 고통도 때때로 그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새벽까지 판결문을 쓰고 한건한건의 사건에 대한 문서를 수천장씩 반복해 읽는 그들의 직업병은 의외로 눈과 관련된 병이 많다고 할 정도다.

 

정의에 대해 명쾌하게 누구나 답을 하기 힘든것처럼 저자역시 자신도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민하는 정의에 대해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그가 많은 장을 할애하며 자신의 생각을 언급한 것은 그의 평소 신념과 생각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었고 그래서 그가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갖고 있는 판사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이들이 법적으로 특별히 보호돼야 할까? 누구에게나 천부의 인권이 있으며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고귀하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기계적인 모범 답안이다. 이들을 내치지 않는 것이 정의니까?

공리적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불행을 사회적 불행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낭비다.

정의란 생각하기 나름이다. 불쌍해서? 노골적이지만 좀 낫다.

그러나 이것도 내가 생각하는 답은 아니다. 인류애나 연민 같은 감정은 즉흥적이고 가변적이라 믿을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보다 이런 감정의 고양을 바라지만 소수자 보호라는 목적에서는 이것들의 효용을 믿지 않는다.

..

연민으로 내민 손은 이처럼 작은 계기만 있어도 즉시 회수된다.

수전 손택의 말처럼,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까지 증명해주는 윤리적 알리바이에 불과하다(타인의 고통중)

밥차나 노숙인 쉼터나 매달 내는 후원금은 동정이든 연민이든 어떤 이름으로도 시작할 수 있고, 즉흥적인 시도여도 소중하다.

그러나 법의 영역에서 동정이나 연민은 위험하다. 인권은 시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시혜라고 보면, 그 시선은 언제 철회해도 무방한 것이 된다.

소수자라고 특별히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법이 보호하기 때문에 보호받는 것이다.

다수가 합의하에 만든 법이 그들도 보호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보호받는 것이다.

( P.107)

 

저자가 판사로 일하는 동안 만난 수많은 사건 사고들 중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될, 도저히 있을수 없을것 같은 끔찍한 일들을 형사 사건으로 접하고 판결을 내리면서 가슴속에 쌓아놓은 이야기들은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가 인용한 책들과 문장들을 보다 보면 내가 감동하며 읽었던 올리버색스의 책들이나 권석천 전직 기자의 책들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의 글은 참 따뜻하다. 마음이 따뜻했던 신경정신과 의사 올리버색스나 정의에 대해 고군분투하며 날카로운 칼럼을 써서 너무나 좋아했던 권석천의 글들을 인용하는 저자를 보면서 그 두 저자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했던 나는 어떤 연대감과 유대감을 느낄수 있는 순간이었다.

 

소년재판을 주로 다루는 가정법원에 발령받아 근무하면서 저자는 소년법에 따라 처분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재범을 막고 불우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쉽게 달라지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초반에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한동안 그 아이들을 외면하고 포기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저자는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이들의 고통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봤다. 그 참담한 처지에 압도되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세월이었다. 고통의 강도와 슬픔의 크기에만 시선을 뺏겨 켜켜이 쌓인 시간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모든 사람의 불행이라 여기는 아이들을 무슨 재주로 고작 10분 재판을 통해,

두어 달에 한번 만남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순진하거나 무지하거나,

무책임하거나 교만했다는 생각이 부끄러움과 함께 밀려들었다.

 

어쩌면 내 보잘것없는 성의를 빨리 보상받고 싶은 조급함 때문에 판단이 흐려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충분한 사랑이 차지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존재고, 보호자와 세상의 사랑이 차기를 기다리며

세월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완전하게 출생시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고,

이 아이들을 완전히 태어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꾸준한 관심과 지지였다.

p.133

 

문제를 일으키고 소년재판을 받는 아이들을 많은 사람들이 비난한다. 점점 더 잔인해지고 악랄한 범죄도 서슴치 않고 저지르는 청소년들에게 촉법소년은 가당치 않다고 형을 올려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비난을 한다.

그런데 그 비난을 하면서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들의 성장과정이나 소년원 아이들에 대해 진심어린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었던것 같다.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책을 읽으면서도 이 부분이 너무나 마음을 아팠는데 이 책에서도 소년재판에 대한 이야기가 한 챕터를 차지하며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저자는 직업이 판사라고 하기엔 글을 너무나 잘써서 책을 읽는동안 내내 감탄을 했는데 어쩌면 그의 그런 글 솜씨는 책을 많이 읽는것뿐 아니라 양형이유를 쓰고 또 쓰면서 가슴에 맺힌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그의 수십년간의 판사생활이 만들어낸 과정과 결과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우리가 갖고 있는 판사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조금은 돌이켜보게 해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정의를 법의 방식으로 실현하기 위해 그러면서도 그 안의 중심이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직업인의 이야기가 절절히 담겨 있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폄하하고 쉽게 비난하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재판과 그 재판의 결과들이 그리 쉽게 내려진 결론만은 아닐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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