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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양심연애쓰기 (3) - 완결 | 장편소설 2021-04-0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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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장아, 양심 있는 거니? (1)

 

그러니까, 우리 사장이 그러더라구!”

뭐라고 했는데?”

나보고 월급이 적은 거냐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아니라구, 월급이 적은 건 아니라구 했지

그랬더니?”

그럼, 다음에도 같이 일하자는데

, 그랬어?”

 

주변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여기서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시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서 또 다른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니까, 그 녀석들이 그랬다구!”

뭐라고 했는데?”

여기는 자기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서, 자기들은 돈이 없다고 했어!”

돈이 왜 없는데?”

커피 사느라 다 썼대

그래서 어떻게 헀어?”

그럼 커피를 산 돈은 다 어떻게 했냐고 물어봤더니

그랬더니 커피를 살 때 돈을 주는 거냐고 물어보더라구

, 진짜 다른 세계에서 왔나 보네

그러게

 

나는 문득 궁금증이 들어서, 그 사람들한테 뭔가를 물어보려고 살짝 다가갔다. 그때 커피숍 주인이 소리쳤다.

 

손님, 여기선 그러시면 안 됩니다!”

?”

여기선 막 다른 손님에게 다가가고 그러시면 안 딥니다

?”

여기선 그렇게 막 다가가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냥 듣기만 하세요!”

,

 

나는 다시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편이 아니구, 사장이 그랬다구!”

어떤 사장?”

너네 사장!”

우리 사장?”

그래, 너네 사장이!”

정말 그랬어?”

그래, 정말 그랬어!”

그래? 그럼, 내가 돈을 너한테 줘야돼?”

돈이 아니라!”

그럼?”

핸드폰을 줘!”

이거 얼마 안 되는데?”

그러니까 달라구!”

알았어, 이거면 돼?”

, 이거면 돼. 이거면 네 남편이 말한 액수야.”

, 그래?”

, 남편이 말한 그대로니까, 그거면 돼!”

알았어. 남편이 이 핸드폰만큼이라고 말했어?”

, 그랬어.”

그럼, 줄게.”

그래, 줘야지. 남편이 말한대로 해야지.”

근데, 정확히 뭐라고 했는데?”

이 핸드폰만큼만

, 그게 다야?”

. 핸드폰만큼만이라고 하고 그리고 가만 있더라구

그럼?”

!”

내 남편이?”

, 맞아!”

남편한테 돈은 지불했고?”

!”

그래, 그럼 줘야겠네!”

!”

그래 여기!”

 

 

 

10. 사장아, 양심 있는 거니? (2)

 

나는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쪽 화장실이 보였다. 그런데, 화장실이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커피숍 주인한테 화장실의 비밀번호를 물어보려고 다가갔다.

 

사장님, 화장실 비밀먼호가 어떻게 돼요?”

사장아, 너 양심 있니?”

?”

그게 비밀번호예요!”

, 그런 비밀먼호도 있어요?”

앞에 가서 그렇게 누르시면 돼요!”

그렇게 누를 수가 있나요?”

가보시면 알아요!”

 

나는 주인의 말대로 화장실에 다가가서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이건 도대체 어떻게 눌러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 카페숍 주인한테 다시 갔다.

 

사장님?”

뭘 도와드릴까요?”

비밀번호 어떻게 눌러요?”

, 여기 처음이시구나?”

, 여기도 처음이구요, 이 세계도 처음 와보는데요?”

,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이었구나!”

, 맞아요! 다른 세계에서 와서, 제가 있던 원래 세게로 가는 방법을 몰라요!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것까진 제가 잘

여긴 어떤 세계인가요?”

아주 좋은 세계입니다. 여기는 아주 좋은 세계입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철이라고 해요!”

, 철이씨구나

, 철이씨에요!”

그럼, 저랑 긴긴 얘기를 나누시겠습니까, 아니면 화장실을 먼저 가시겠습니까?”

둘 중에 선택해야 돼요?”

아니요, 그냥 화장실 갔다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얘기 나누죠!”

그러면요, 화장실 비밀번호는 어떻게?”

제가 열어드리죠!”

 

주인은 나와 같이 화장실 쪽을 같이 걸어갔다. 화장실 앞에서 커피숍 주인이 막 주문을 외는 듯이 보였다.

사장아, 넌 양심 있다! 사장아, 넌 양심 있다! 사장아, 넌 양삼 있다!”

안 열리는데요, 사장님?”

조금 기다려 보세요!”

사장은 그러더니, 비밀번호의 번호를 막 눌렀다.

이거, 번호로 되어 있네요? 비밀번호를 알려주시면 되는데

철이씨, 사장아, 너 양심 있니? 라는 번호를 아세요?”

아니요, 그 번호를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저도 번호를 몰라요!”

아니, 그럼 이건 어떻게?”

그래서, 열려고 얘쓰고 있잖아요!”

, 그러신 거에요?”

, 그런 거에요!”

그러면, 화장실 문은 열리는 건가요?”

사장아, 너 양심 있니?”

?”

라고 불러보세요

네에, 사장아, 너 양심 있니?”

, 양심 있습니다.”

?”

그래서 말인데요!”

?”

화장실 쓰실 때도 티머니를 제출해 주셔야 합니다.”

 

 

11. 실컷 놀자!

 

, 화장실도 유료예요?”

아니요. 티머니를 여기다 대시면 됩니다.”

, 그래요?”

네에. 여기에 이렇게요?”

네에~”

, 열리네요?”

앞으로 화장실 이용하실 때는 사장아, 너 양심 있니?를 외치고 번호를 아무거나 누르고 티머니를 여기다 대시면 됩니다

, 고맙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화장실에서요?”

, 즐거운 시간 되실 겁니다!”

 

나는 무슨 이런 황당한 주인이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튼 화장실이 급했으므로 볼 일을 보러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5분 후에 나왔다. 5분이 너무 길었다. 나는 주인한테 다시 갔다.

 

사장님?”

무슨 불편한 점 있으십니까?”

여기서는!”

?”

화장실에 침대가 있어요?”

, 거기에 있는 침대가 아니라요!”

아니에요?”

, 오늘은 침대가 왔나 보네요

그게 무슨 얘기에요?”

거기 풍경은 날마다 바뀌는데요, 어떤 날은 책상과 의자가 있고 오늘 같은 날은 침대가 있고 그래요 내일은 또 어떤 게 거기 있을지 모르겠네요.”

, 그래요?”

네에!”

그럼, 화장실에서 좀 자다가 가도 돼요?”

주무시려고요?”

네에

안 불편하시겠어요?”

왜요?”

다른 사람들도 이용해야 하는데, 이용할 때마다 다른 세계로 점프했다 와야 되는데?”

?”

다른 세계가 또 있어요?”

, 여기는 수많은 세계가 있습니다.”

, 그래요

그렇습니다! 혹시, 지금 피곤하신가요?”

, 좀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그래요? 그럼 이 근처에 호텔을 알려 드릴까요?”

아니요. 저 돈이 하나도 없어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

“11억 천만원이 이 티머니에 들어 있으니, 이걸로 호텔에 방 잡으시면 됩니다.”

그게 왜 거기 들어 있어요?”

저희 가격 못 보셨어요?”

가격 봤어요. 근데, 나 돈 없는데, 어떻게 그걸 샀지?”

저희의 한잔 가격이 그 정도입니다

그럼, 이 티머니에 그 돈을 채워주시는 거에요?”

, 그렇습니다

왜요?”

, 왜냐구요?”

, 왜요?”

왜냐구 물으시는 이유는

이거 파는 거 아니에요?”

파는 겁니다

근데, 파는 건데, 왜 돈을 채워주시죠?”

철이님?”

?”

그거 실제 돈 아닌데요?”

, ?”

철이님, 여기가 어떤 세계인지 아십니까?”

어떤 세계인데요?”

여기선 티머니도 함부로 흘리시면 안 되는 세계입니다

그래요?”

, 티머니 함부로 흘렸다간 집에 갈 길을 영영 잃게 되실 것입니다

, 그렇다구요?”

, 그렇습니다

어떻게, 저랑 얘기를 더 나누시겠습니까?”

, 그렇게아니지

그럼?”

제가 호텔을 가서 잠을 자야 할까요, 사장님이랑 얘기를 나누어야 할까요?

제가 결정해야 합니까?”

네 사장님이 결정해 주시죠!”

 

나는 사장님이 오랫동안 고민하는 걸 보았다. 그러더니 사장이 말했다.

 

철이님, 아무리 생각해도

?”

철이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는 게 어떨지?”

, 결국 제가 선택해야 돼요?”

,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생각해 볼게요.”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어야만 했다. 이 세계에선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나는 정말정말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어야 했다.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은!

 

사장님, 11억 천만원이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나갈게요! 나가서 실컷 놀다 갈께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네 말씀하세요!”

놀러 갈 수 있는 곳이 있나요?”

, 놀러 갈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혹시 그럼 놀이공원 같은 곳도 있나요?”

놀이공원 같은 곳은 없습니다

그럼, 사격장이나 오락실 같은 곳은요?”

없습니다

그럼, PC방은요?”

없습니다

혹시, 그럼 골프장이나 당구장 같은 곳은요?”

그런 곳은 없고, 그런 비슷한 곳은 있습니다

어떤 곳인데요?”

그냥 가서 스포츠를 즐길 만한 곳은 있습니다

거기 유료에요?”

, 유료입니다. 거기서도 돈을 드릴 겁니다.”

?”

티머니를 제출하셔야 합니다. 그럼 거기다 돈을 채워드릴 겁니다

아니 저 돈을 써야 한다구요! 왜 자꾸 돈을 주시는 거에요!”

철이님!”

?”

이 세계에서 잃어버린 게 있지 않으십니까?”

잃어버린 거요? 그게 뭐지

이 세계에선 철이님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드립니다

정말로 찾아주시나요?”

, 그렇습니다. 철이님이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만 알게 된다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모르면 못 찾나요?”

, 못 찾습니다

잃어버린 게 뭔지 알아야 돼요?”

, 잃어버린 게 뭔지 알아야만 그것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게 돈은 아닌데, 왜 자꾸 채워주시는지?”

돈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게 돈이 아니라서 자꾸 채워드리는 겁니다.”

그래요?”

, 그렇습니다.”

아저씨!”

, 저요?”

, 아가씬가?”

주인님이라고 부르심이?”

아니, 제 주인님이 아닌데, 제가 왜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돼죠?

 

누군가가 말을 거는 바람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나의 정신이 깨어났다.

 

그냥, 주인님이라고 불러주시면 서비스가 더 많아질 텐데요?”

아니,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왜 이 철이란 사람을 가지고 놀고 있느냐 이거요!”

제가 가지고 놀고 있었다고요?”

이 철이란 사람, 이 세계에서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제대로 알려드려야죠!”

뭘요?”

운동하는 곳에 가면 우리도 같이 간다고요!”

, 그러시게요?”

그래야죠!”

철이님!”

?”

저희랑 같이 운동하러 가시죠!”

저기

, 왜 그러시죠?”

꼭 같이 가야 하나요?”

아 가기 싫으세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꼭 운동하러

운동하러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전 골프나 당구를 치고 싶은 거지, 운동을 하고 싶은 게 아닌데요?”

골프 칠 줄 아나 봐!”

골프 칠 줄 아세요?”

아니요, 돈이 많이 생겼길래, 가보려고 한 건데!”

, 당구도 돈이 많이 드나? 골프는 돈이 많이 든대.”

, 그런 거야?”

그래, 그런 거야!”

당구도 돈이 많이 들어요? 철이님?”

, 당구도 하루 종일 있으려면 돈 많이 들어요!”

그럼, 당구 치러 가면 되겠네.”

당구장이 있어요?”

당구장이 있는 세계로 가면 되지!”

맞아, 이 세계에선 없고 당구장 있는 세계가 어디지?”

돈은 있어?”

이 티머니면 충분해

그래?”

철이님, 당구장에서도 티머니가 되나요?”

제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안 되는데요? 이 세계에선 다 된다고 해서

아 그렇지. 철이님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당구장이 있지. 거기서는 티머니가 안 된대. 당구장에서는

골프장도 안 돼요?”

, 안 돼요. 당구장, 골프장에서 티머니를 쓰는 게 아니라서

, 그래요?”

그럼 어떡하지?”

철이님

?”

저희랑 야외에서 공놀이를 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래요, 저희랑 같이 가요!”

꼭 그래야 돼요?”

꼭 그래야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요, 꼭 그래야 되는 건 아네요. 철이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돼요!”

그래요?”

!”

그럼 저를 제가 왔던 세계로 보내주세요!”

원래 있던 세계 말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럼 어떤 세계를?”

제가 왔던 세계요! 여기서 지내게 해주세요!”

철이님!”

친구들은 안 찾으실 거예요?”

찾아야죠!”

그러려면 돌아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여기서 찾을 거에요. 여기서 찾아서 여기서 지내게 해주세요!”

철이님!”

?”

여기서 지내실 수 있는 조건은 딱 하나입니다

어떤 조건이요?”

잃어버린 걸 찾으시면 됩니다

정말 그러면 되나요?”

,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게 뭔지 먼저 생각하시고 그 다음에 그걸 찾으시면 여기서 지내실 수 있습니다.”

그거면 된다고요? 그거면

,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길고 긴 시간이 가는 듯한 시간 동안 하염없이 멈춰 있었다.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카페주인이 말을 걸았다.

철이님, 운동을 하러 가시겠습니까, 호텔에 가서 방을 잡으시겠습니까, 저와 긴긴 얘기를 나누시겠습니까?”

생각을 좀 더 해봐도 되죠?”

네 그리하세요

생각을 많이 해보셔야 되나 봐요?”

그런가 봐요!”

그럼, 우리 철이씨를 기다려야겠네요!”

그래요, 맞아요, 기다려야겠어요

철이씨!”

?”

잃어버린 걸 찾으실 때까지는 언제까지나 여기 있어도 돼요.”

그래요

저희도 잃어버린 걸 찾는 중이거든요

그래요?”

, 그래요

나는 긴긴 시간 생각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 친구들이 걱정되지 않았다. 안희가 그립지도 않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 걸까. 나는 이 세계의 시간 속으로 점점 깊이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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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심연애쓰기 (2) | 장편소설 2021-04-0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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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저 멀리서 아득하게 (2)

 

욱희까지 왜 이래.”

진심으로 좋아하니까.”

그게 왜 진심이야?”

그럼, 진심 아니고 뭐야?”

이 상황에서 이렇게 고백을 해서 영숙이를 버리라는 게 진심이라고?”

, 너랑 사귀고 싶고, 만나고 싶으니까. 난 진심을 얘기했는데?”

욱희야, 너 또 시작한 거냐?”

? 이번엔 진지해.”

, 대체 왜들 그래!”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성영이도 찾아야 하고 영희도 찾아야 하고 영숙이랑 안희까지. 왜 찾아야 할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나는 거지?”

알뜰이가 나서자, 다들 조용해졌다. 조금은 긴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조금 후에, 고니가 자꾸만 소리를 질러서, 우리는 고니가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살돌이가 고니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아니, 저기서 뭐하는 거지?”

저 돌은 또 어디서 났어?

살돌아, 고니 괴롭히지 마!”

난 오늘 이 고니를 잡고야 만다. 너네들 먼저 가! 나 오늘 이놈을 잡아야겠어!”

살돌아, 그러다, 강물에 휩쓸리겠어!”

나를 삼키고 싶으면 삼키라 그래. 내가 죽어도 이 고니를 잡고 만다.”

살돌아! 대체 왜 그래?”

자꾸 나보고 꽤액 소리를 지르잖아. 이 새 따위가!”

나는 살돌이를 어떻게 하면 말려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그가 하는 걸 바라보았다. 욱희가 살돌이한테 다가갔다.

살돌아, 고니를 괴롭히면, 벌금 물어!”

알아, 벌금 따위, 물고 말지.”

, 미치겠네. 너만 무는 거 아니라고! 우리도 벌금 같이 문다고!”

내가 다 내줄 테니, 걱정 말아! 저놈의 고니랑 내가 결판을 내고 말 테다!”

안 되겠다.”

욱희가 살돌이에게로 뛰어가더니, 고니에게 돌을 던지려던 걸 두 팔로 막았다.

, 왜 이래? 이거 놔!”

못 놓는다. 너 때문에 우리까지 다 피해볼 수는 없어.”

놓으라니까!”

못 놓는다고! 나보다 힘이 세면 어디 해 보시든지.”

진짜!”

살돌이의 손에서 힘없이 돌이 떨어졌다. 떨어진 돌은 공중곡예를 하더니,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살돌이가 그 돌을 마냥 바라보았다.

이게 말이 돼? 이젠 돌까지 곡예를 하네?”

살돌아, 이젠 우리 차례야!”

그게 무슨 소리야?”

밑에를 봐.”

흙더미가 살돌이와 욱희를 감싸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그들이 사라졌다.

봤어?”

어떻게 된 거야? 살돌이와 욱희까지 사라졌어.”

, 미치겠네. 다들 어디로 가는 거야?”

우리 다 사라지는 거 아니야?”

잠깐, 누구 남은 거야 이제?”

나는 누구누구 남았는지 점검을 해 보았다. 철수, 욱이, 알뜰, 살뜰, 영철만 남았다.

욱아?”

?”

너는 나랑 가자.”

어딜?”

내 이름 뭔지 알지?”

살뜰

그래, 내가 너를 데려갈게.”

어디로?”

몰라.”

몰라?”

.”

근데, 나를 데려간다고? ?”

이게.”

?”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사라지는 거 같아.”

?”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

내가 욱이를 좋아하니까, 내가 너 데려갈게.”

어떻게?”

몰라.”

욱이가 당황하며 영철이랑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욱아, 우린 아무 말 안 했어.”

그래, 우리 아무 말 안 했어.”

살뜰아

?”

사실은

.”

나 있잖아

?”

알뜰이랑

살고 있어

알아

?”

그래서 나랑 가자고

?”

내가 알뜰이한테서 널 뺏을 거니까.”

!!!!”

알뜰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까 소리를 지른 후, 살돌이의 만행을 피한 고니가 알뜰이한테 날아와 알뜰이 앞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알뜰이가 고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살뜰이가 알뜰이의 그런 모습을보면서, 고니에게 다가가려 했다. 철수가 살뜰이를 말리려 하자, 고니가 살뜰이를 쳐다보며, 꽥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제발 이러지들 마.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된 거야?”

그토록 쾌활하던 영철이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을 보니, 너무 안 되어 보였다. 문제는 갑자기 비가 오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해도 구름에 가려져 날씨가 흐렸다.

영철아, 우리 비 피해야 할 거 같아.”

내가 영철이에게 말을 걸자, 영철이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지금 비 피하고 그러는 게 중요하지 않

영철아, 아니야, 중요해

?”

사라졌어!”

?”

넷 다 사라졌어! 우리 비 피해야 돼! 우리만 남았어!”

, 다들 어디갔어?”

영철아, 다리 밑으로 가자!”

그래야겠네.”

어떻게 된 거지?”

다들 어디로 간 거지?”

투명인간 된 거 아니야?”

영숙이를 못 찾으면 나 어떻게 하지?”

영철아, 정말로 영숙이랑 사귀어?”

, 정말로 영숙이랑 사귀어! 너만은 내 말 믿지?”

근데 왜 말 안했어?”

사귄다고 말하기 애매해서. 그전에는 영숙이랑 얘기하고 사귄 게 아니라서.”

, 드디어 진짜 사귄다고 말해도 되는 거야?”

.”

상황 설명을 좀 해봐.”

영숙이가 투명인간이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어. 그래서, 사귀게 되었어.”

그럼, 투명인간이랑 얘기한 거야?”

. 아니아니, 투명인간이었던 거는 아니고, 투명인간이 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영숙이가 그랬어.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투명인간 되면, 아주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했어.”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

.”

영철아, 너 어딨어?”

?”

영철아, , 너 안 보여. 어디서 얘기하는 거야?”

?”

내가 안 보인다고?”

그래.”

내가 안 보인다고?”

, 목소리도 점점 더 작아져. 어떻게 된 거야?”

, 이런 기분 처음이야, 이런 느낌 처음이야, 영숙이를, 드디어 드디어

영철아, 영철아, 영철아

대답이 없었다. 같이 갔던 친구들 아무도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고니를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는 그곳에서 고니는 비를 맞으면서 물고기를 잡아 먹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늘을 봐도 아직은 조금 밝은 듯한 어둠 뿐이었다. 나는 비가 그치면 고니에게 다가가 이 모든 상황들을 물어보리라 다짐했다. 비가 그치길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5. 비는 절대 그치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다짐 (1)

 

친구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안희는 어디로 간 걸까. 영철이랑 영숙이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비는 좀처럼 그치려 하지 않고 있었다. 고니는 비가 오는데도 물고기를 잡아먹느라 아예 내 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냥 비 맞으면서 고니한테 가서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왜인이 이 비를 맞으면 나도 투명인간이 되어서 저 하늘 너머로 날아갈 것 같아 두려웠다. 친구들은 두려워했을까. 아니면, 그들만의 세계로 날아간 것일까.

 

비가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사람이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래도 사람이 있었던 거같은데, 어느 덧 다 집으로 가 버린 걸까. 아니면, 모두 다 투명인간이 되어 다른 세계로 가 버린 것일까. 아니, 어쩌면 다른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른 세계가 아니라, 그들은 모두 투명인간이 되어 내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내가 뭐 하나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안희가 떠올랐다. 안희의 모습. 그렇게 키가 컸었나? 아니면, 이상한 약을 먹어서 커진 걸까? 사람이 그렇게 클 리가 없다. 그렇다면, 여기 어딘가에 분명 해법이 있을 거다. 안희를 찾아야 한다. 영철이도 찾아야 하고, 영숙이랑, 욱이랑 욱희도, 살뜰이랑, 알뜰이도, 영희랑 살돌이, 그리고 철수랑 성영이도.

 

그런데, 방법이 있을까? 그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내가 아는 거라곤 그들이 사라졌다는 것 밖에는 모른다. 그러고 보면, , 나는 알고 있는 게 하나도여기까지 생각하는데, 문득, 내리는 비 사이로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해가 보이는 산 너머로 무지개가 보였는데, 거기엔 빨강 주황 노란색 초록색, 네가지 색깔 뿐이었다. 그 무지개는 잠시만 보이더니, 내가 본 것을 확인이라도 한 건지, 어디론가 슬슬 기어가듯이 옆으로 밀려났다. 그러더니, 슬금슬금 사라졌다.

 

그칠 것 같지 않던 비는 조금씩 조금씩 얇아지고 있었다. 이젠, 맞아도 될까, 하고 잠시 생각해 봤지만, 단 한 방울이라도 맞으면, 이 비에 쓸릴 것 같았다. 해가 완전히 나의 몸에 비추었고, 비가 확실하게 그친 걸 확인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물고기를 잡으면서 놀고 있는 고니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고니는 내가 가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도 고니는 그저 물고기를 잡으려 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아까부터 고니는 물고기를 잡으려만 하고 있었지, 실제로 잡지는 않았다. 고니는 물고기를 괴롭히고 싶은 걸까, 먹고 싶은 걸까? 나는 고니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고니야? 고니야? 내 말 좀 들어보련?”

내가 말을 걸지, 고니가 정말 대가리를 들더니, 내 쪽을 바라보았다.

고니야, 고니야, 내 친구들은 어디 있니?”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는 건 알겠는데, 진짜로 대답이 없을 줄은 몰랐다. 고니가 내 쪽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도 한번 더 물어보았다.

고니야, 고니야, 나를 친구들한테아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나를 친구들한테가 아니라, 친구들을 나한테 데려다 줘.”

고니는 계속 말을 거는 나를 계속 빤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대답은 하지 않았다.

고니야, 내 친구들을 어떻게 했어? 내 친구들을 돌려줘.”

고니는 약하게 꽤액 소리를 질렀다.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을 뿐, 고니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고니야,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혼자 남겨진 나는 고니에게 계속해서 물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분명, 물이 회오리가 치면서 올라갔었는데. 그렇다면, 고니가 한 게 아닌가. 나는 강가를 살폈다. 물고기가 노니는 것이 투명하게 보였다. 너무도 깨끗하게 맑은 강물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강물이 너무 깊었다.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강물이 아니었다.

고니야, 강물을 어떻게 했어? 왜 이렇게 깨끗해?”

나는 고니에게 계속 말을 걸었지만, 고니에게선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점점 더 답답해져서 나는 고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이 고니야! 대답 안 할래!”

그러자, 고니가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들리는 천둥소리에 놀란 나도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가 구름에 가려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얼른 다리 밑으로 비를 피하기로 마음 먹었다. 발을 떼려고 하는데,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 발이 진흙탕에 빠진 줄 알고 발 밑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빨리 비를 피해야 되는데.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고, 해는 구름에 완전히 가려졌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고, 슬슬 비가 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6. 비는 절대 그치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다짐 (2)

 

, 이 고니야! 네가 그랬지? 이거 놔! 놓으라고! 내 발 놓아!”

고니가 꽥 소리를 지르며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줄 알았더니, 다리 밑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고니에게 계속해서 내 발 놓으라고 고함을 질렀다.

고니, 네가 그랬지? 이것만 벗어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고니, 너 두고 보자!”

비가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고, 내 머리가 조금씩 젖기 시작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비를 맞으니, 안희가 더 생각났다. 안희가 비를 맞고 걸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우산을 같이 쓰고 싶어서, 안희를 뒤에서 몰래 따라가고 있었는데, 영숙이가 안희를 보더니, 우산을 하나 건넸고 나는 둘이 나를 볼까봐 얼른 숨어서, 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지금 우산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산 없이는 집을 나서지 않는데, 왜 오늘은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인지! 비가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해서, 나는 발을 움직여 보았으나,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 움직일 수가없지. 하늘을 바라보아도, 고니가 있는 다리 밑을 바라보아도, 별다른 건 없었다. 친구들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도! 이럴 수가!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대체 여기는 어디지? 나는 고니를 바라보았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건 누구냐고 물어보기 위해서다. 고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고니야, 이 비 절대로 그치지 않겠지?”

 

고니가 멀리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지만, 고니는 내 말을 전부 다 알아듣고 있었다. 고니는 분명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고니야, 그럼 있잖아, 내 발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지? 좀 알려주련!”

고니가 고개를 들더니,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니가 바라보는 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너무나 큰 플라타너스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고니는 계속 그쪽을 바라보았다.

고니야, 저건 왜 보라고 한 거야? 나보고 어쩌라고?”

고니가 그 나무를 향해 고개를 연신 저어대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고니가 계속해서 고개를 저어대자, 비로소 나는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알았어, 고니야. 그대로 할게.”

나는 플라타너스에 대고 외쳤다.

플라타너스야, 나 이 발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돼?”

플라타너스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잠시 잠깐 세찬 바람이 불어와서, 플라타너스 잎 중 하나가 내게로 날아오고 있었다.

, 고니야, 저거 왜 저래?”

고니를 쳐다보았더니, 고니는 이제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고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플라타너스 잎은 내 발등에 떨어졌다. 나는 그 잎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그 잎은 바람에 또 한 걸음 날아갔고, 내 걸음도 한 걸음 나아갔다.

, 지금 어디로 가는 거니?”

그 잎은 나를 어딘가로 계속 데려가는 듯 했다. 바람이 잎을 계속해서 날렸고, 나는 그 잎을 따라 계속 한 걸음씩 옮겼다. 천천히 가는 게 성질이 나서, 마구 발걸음을 떼어버리려 할 때마다, 나의 발에 그 잎은 내려앉아 내가 발걸음을 옮길 수 없게 막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가려고 마음먹는 걸 포기해야만 했다.

잎아,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너도 대답 안 할래?”

잎은 바람이 부는 대로 그저 조금씩 움직일 뿐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는데, 그렇게 가다 보니, 어느 덧 나는 다리 밑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도착한 걸 고니가 쓰윽 쳐다보더니, 다시 물고기 잡는 놀이에 열중했다. 잎은 바람에 날려 강가로 떨어져서 내가 더 이상 그 잎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 잎은 내가 더 이상 자신을 따라오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다. 내가 그 강물에 들어가기엔 너무나 깊은 곳이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니야, 근데 너,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 내 친구들이 어딨는지 알고 있지? , 분명 말도 할 줄 알지?”

한참 물고기 잡기놀이에 열중하던 고니가 나를 다시 한번 쓰윽 쳐다보더니, 이번엔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는 그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 고니야! 너 자꾸 나한테 그럴래?”

비가 조금씩 얇아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이 비가 그치지 않을 것만 같단 생각이 들어서 나는 몹시도 힘든 하루를 보낼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하루가 아닐지도 몰랐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내 주위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오로지 고니만 있다는 사실은 나를 두렵게 했다. 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고니에게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했다. 플라타너스 잎이 내게 무엇을 해 준 것일까?

나의 길고 긴 고민은 시작되었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비는 정말로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비를 맞아보기로 결정했고, 비로소 나는 비를 향해 한발을 내딛었다. 그 비에 무언가가, 진짜로 무언가가 있기를 가득가득 바라면서.

 

 

 

 

 

 

 

 

 

 

 

 

 

7. 양심적으로 말해서 나는 연애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1)

 

이봐요, 여기서 뭐하세요?”

방금까지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 , 누구세요?”

지금 여기 출입통제된 거 모르세요? 비가 많이 오잖아요. 얼른 나가세요. 위험해요.”

, 여기 있으면 안 돼요?”

, 여기 있으면 강물에 쓸려 가실 수도 있어요.”

저기 근데요?”

, 무슨 질문이 있으신가요?”

제가 왜 여기 있죠?”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얼른 위로 올라가세요.”

나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방금까지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오랫동안 있었던 거 같은데. 계단 위에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우산이 없네. 비가 점점 더 굵어져서, 나는 편의점을 찾아보았다. 저기에 있네. 계단 위로 다 올라오자마자 거기 편의점이 있었다.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티머니가 있네. 이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되겠구나. 그전에 우산부터 사야 할 것 같은데. 티머니에 얼마나 남아 있는 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 안에는 과자봉지들이 잔뜩 널려 있었고, 우산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왜 편의점 안에 아무도 없지? 나는 어질러진 과자봉지들 사이에서 우산을 집어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편의점에는 과자봉지만 있을 뿐, 사람도 없고, 먹을 만한 것도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과자봉지만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갑자기, 내게서 착한 마음이 생겨났다. 나는 과자봉지들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과자봉지들을 차곡차곡 한쪽에 모아두기 시작했다. 과자봉지가 하나씩 쌓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졌다. 나는 그 과자봉지 옆에 우산을 놓아두었다.

 

밖에서는 비가 점점 더 세지는 게 보였다. 나는 쌓아놓은 과자봉지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얘네들은 여기 왜 있는 걸까. 이 편의점은 대체 왜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또 안희가 생각났다.

 

이거 먹어도 돼?”

안희가 나에게 유일하게 말을 했었던 순간이고, 그 후로 안희와 나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 먹어.”

그러더니, 안희는 내게 있는 과자봉지를 하나 통째로 가져가 버렸다. 나는안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거 먹고 싶다는 말조차 나는 건네지 못했다. 이미, 안희가 가져가 버렸으므로, 나는 그것이 안희의 것이 이미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후로 안희도 나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물론, 그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비가 점점 거세어졌다. 차들의 빵빵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저마다 헤드라이트를 켜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쌓아놓은 과자봉지를 과자봉지 하나에 모두 담고, 그 과자봉지를 들고, 우산을 들고 사람이 거의 없는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갑자기 집에 가는 길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가야 하지? 주머니엔 티머니 하나. 주머니를 더 뒤져보았다. 지갑 같은 건 없었다. 돈도 하나도 없고 티머니만 딸랑 하나 있을 뿐이었다. 가방도 있었던 거 같은데, 왜 가방도 없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아무 버스나 올라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아무 버스나 타려고 했는데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 나는, 거리의 차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회색으로 된 SUV차량이다. 모두 같다. 순간, 나는 두려워졌다. ,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대체, 여기가 어딘 거야? 그러고 보니, 우산을 펴는 걸 잊어버렸다. 나는 우산 속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산을 펴 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리의 SUV 차량들은 모두 제 갈 길로 갔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그 차량들의 방향만은 일치했다. 다만, 그 끝에 갈래길이 있을 뿐이었다. 차량이 오고 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일방통행만 있는 이곳. 이곳은 내가 있는 현실이 아니다. 그제서야, 나는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이 아니라, 낯선 곳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과자봉지를 보았다.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가야겠다 생각하고 다시 나의 몸을 편의점 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거기 있어야 할 편의점이 사라지고, 거기에 커피숍이 들어섰다. 어떻게 된 거지? 이 세계에선 건물도 자유자재로 바뀌나 보다. 나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숍 안에는 어느 덧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왜 이렇게 또 사람이 많아졌지? 나는 커피숍에 있는 메뉴들을 바라보았다.

 

아메리카노 ? 1000만원

밀크커피 ? 1

복숭아홍차 ? 10

 

당신의 꿈을 이루어주는 만나커피숍입니다.

 

 

 

8. 양심적으로 말해서 나는 연애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2)

 

뭐 이렇게 비싸지? 이걸 어떻게 사 먹지? 하는 생각에 나가려고 하는데, 커피숍 주인이 내게 말을 건다.

손님, 왜 그냥 나가십니까?”

돈이 없어서요.”

티머니만 갖고 계신가요?”

, 티머니만 갖고 있어요.”

아메리카노부터 시키시죠. 티머니로 결재해 드리겠습니다.”

?”

티머니를 저한테 주세요. 제가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아메리카노부터요?”

.”

여기요

얼떨떨한 마음으로 티머니를 주인에게 내밀었다. 주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주인은 내게 뭔가를 해 주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주인한테 물어보았다.

커피숍 주인님이시죠?”

, 그렇습니다만.”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 뭔가요?”

주인님은 남자예요, 여자예요?”

그걸 알고 싶으십니까?”

, 꼭 알고 싶어요.”

저는 경우에 따라서 남자도 되었다가 여자도 됩니다. 제가 남자이길 바라나요, 여자이길 바라나요?”

아니예요, 아메리카는요?”

커피숍 주인이 장난을 치는 거 같아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기로 했다.

여기,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이렇게 많아요?”

, 저희는 1000만원어치를 드리기 때문에, 기본 1.5리터입니다.”

, 그럼, 이거, 가져갈 수 있게 담아주실 수 없나요?”

, 페트병에 옮겨드리죠.”

, 고맙습니다

조금 후에 페트병에 옮겨진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손님

?”

기왕이면.”

?”

밀크커피도 시키시죠?”

? 그래야 되나요?”

, 이 커피숍은 아무 때나 열리는 게 아니라서.”

그럼 밀크커피랑 복숭아홍차까지 시켜야 되나요?”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모두 티머니로 결재해 주시면 됩니다.”

, 네에여기요

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꼭 시키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티머니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시키긴 시켰는데

주인님?”

?”

그럼 혹시, 티머니에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 있는 건가요?”

메뉴판에 있는 가격은 현금가격이고요.”

그래요?”

, 티머니로 받으면 티머니에 남은 돈 싹싹 긁습니다.”

그럼, 저 돈이?”

, 티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싹 다 긁었습니다.”

머리가 멍해왔다. 그럼, 나는 계속 걸어다녀야 하나? 하기야, 어차피 이 세계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데. 내가 진짜 살던 현실로 가게 되면, 분명 티머니가 되겠지.

손님?”

?”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니에요

여기, 밀크커피랑 복숭아홍차 나왔습니다.”

이것도 담아주시면 안 될까요?”

세 개를 담아드려야 하기 때문에

, 안 되나요?”

안 되는 건 아닌데

, 뭐가 또 필요한가요?”

, 이 티머니 카드를 저한테 주셔야 합니다.”

?”

담아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여기서 드시고 가실 건가요?”

나는 여기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만 했다. 티머니 카드가 없으면, 집에 돌아갈 방법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티머니 카드를 주지 않고, 여기서 마시게 되면, 정말 오랫동안 주인이 내게 자꾸 말을 걸 거 같았다. 귀찮은데.

주인님?”

?”

그럼 말이죠.”

, 말씀하세요.”

여기서 만약 마시게 되면요. 제가 오랫동안 여기 있어야 되나요?”

, 손님?”

?”

밀크커피랑 복숭아홍차를 한 번에 다 드시게 되면 금방 나가셔도 되고요

, 그럼?”

금방 드실 수 있나요? 꽤 오랫동안 계시게 될 거 같은데요?”

, 그렇네요. 꽤 오랫동안 있어야 될 거 같네요.”

어떻게, 담아 드려요, 아니면 여기서 드시고 가시겠어요?”

생각 좀 해 보고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 저기 앉아서 차분히 생각해 보세요.”

나는 아까 전에 주인이 건네 준 아메리카노를 들고 테이블에 가서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홀짝 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과연, 밀크커피랑 복숭아홍차를 페트병에 담아서 여기를 나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오랫동안, 그것도 너무도 긴 시간 동안 여기서 있다가 주인의 질문공세에 시달려 가며 ? 왜인지 그럴 것 같았다 ? 이 테이블에 이렇게 앉아 있을 것인가. 나의 생각들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했고, 나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을 고민했다. 여기 있으면, 주인의 질문에 시달리기는 해야겠지만, 이 세계에서 뭔가 탈출할 방법이 생각날 것 같았다. 여기는 또 손님도 많이 있으니, 옆에서 뭔가를 엿듣다 보면 방법이 생각나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티머니를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주인님, 먹고 갈게요!”

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여기 티머니카드 있습니다.”

, 고맙습니다.”

,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혼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테이블에 앉았고 주변사람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탈출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떨어진 이 낯선 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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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심연애쓰기 (1) | 장편소설 2021-04-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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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사랑하는가. (1)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 또 안희를 보았다. 별안희. 안희의 이름이다. 나는 안희를 사랑한다. 나는 안희와 얘기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는 안희를 사랑한다. 안희도 나와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안희를 사랑한다. 그런데 안희는 내 주변에서 항상 얼쩡거린다. 안희는 오늘도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민소매의 검정색 윗옷도 입었다. 나는 안희를 보면 끓어오르는 본능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끓어오르는데 나는 안희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다가갈 수 없다. 안희도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안희를 사랑한다는 사실조차 안희는 모르겠지. 중요한 사실은 오늘도 안희를 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안희를 사랑하지만, 안희를 잊으려 하는데, 안희는 왜 내 주변에서 어슬렁거릴까. 나는 안희를 이해할 수 없다. 안희에게 뭔가를 물어보려 가까이 다가가면 안희는 어느 덧 저만큼 멀리멀리 가 있다. 안희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나는 안희를 사랑하기에, 안희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가 없다. 나는 안희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별안희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데, 나를 한참 쳐다보던 영철이가 답답했는지, 내게 속사포로 말을 건넨다.

어이,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시간 되면, 나랑 저기 저 바다, 아니 강, 아니다 아니다, , 아니지, 아니지산이 좋을까, 바다가 좋을까, 강이 좋을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놀러 가자고.”

싫어.”

! 이렇게 햇살도 밝게 내리쬐이고, 그리고 세상이 온통 푸른빛, 아니, 초록빛이고, 그리고 강가에 강물은 졸졸졸 흐르고, 바다는 푸르디푸르러 보기가 만발하고

영철, 또 시작이다. 이 장황한 말버릇은 언제 끝나나말을 끊을 수도 없고 참

그러니까, 철아, 내가 하고픈 말은, 너는 철이고 나는 영철, 우리 정말 친한 친구인 거 맞지? 이럴 때 놀러 안 가면 언제 놀러 가?”

우리 둘이 가는 거야?”

물론, 아니지!”

?”

안희도 가고, 영숙이도 가고, 성영이도 가고, 살돌이도 가고그리고 또 누구더라, 영희도 가고, 철수도 가고

그만, 그만. 근데 나한테는 왜 가자고 하는 거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너도 같이 가면 내가 너무 좋아할 텐데? 안 갈 거야?”

잠깐, 아까 누구누구 간다 그랬지?”

또 처음부터 말해야 돼? 안희도 가고 영숙이도 가고 성영이도 가고 살돌이도 가고 영희도 가고 철수도 가고 욱희도 가고 욱이도 가고 살뜰이도 가고 알뜰이도 가고

, 그래?”

갈 거지?”

좀 생각해 보면 안 돼?”

안 돼! 그냥 가! 안 간다고 하면, , 삐질지도 몰라!”

아니야, 갈게.”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럼, 가는 거다! 놀러 가는 거다.”

근데, 언제 가?”

지금

? 지금 당장 가자고?”

놀러는 가고 싶다고 할 때 바로 가는 거야!”

근데 안희는 왜 가?”

왜는? 살돌이랑 친하니까.”

친하다고?”

그래! 아주 친하지.”

둘이 사귀어?”

그럴 리가!”

그럼?”

그냥, 친해. 엄청 친해.”

그래?”

그래.”

그럼, 지금 그냥 가면 돼?”

, 가자고! 출발~~ 고고고고~~”

 

영철이란 녀석, 내가 몹시도 좋아하는 친구다. 이런 친구가 있다는 건 내가 복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안희가 궁금해졌다. 내가 안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안희는 알까. 말도 해 본 적 없지만, 나는 안희를 무척 사랑한다. 몹시도 사랑해서 궁금하다. 나의 절친, 영철이도 모르는 안희에 대한 나의 사랑,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사랑을 키워왔다. 나는 안희를 알고 싶다.

 

우리 회비 좀 걷자

영철이가 영숙이에게 말했다.

회비 따위! 내가 낼게.”

영숙아, 그렇게 돈이 많아?”

그래, 나 돈 많아, 그러니까, 영철아.”

?”

나랑 사귈래?”

! 아니야, 안 물어볼게.”

뭐야, 지금 나 피하는 거야?”

아니야, 그게 아니고!”

, 지금 진지하거덩!”

아니, 그게 지금 이 순간에 할 소리인가, 이 사람아!”

그럼, 나의 프로포즈를 받아준 걸로 알겠다, 이 사람아!”

이 사람이 지금 몹시도 슬퍼요!”

?”

이 사람이 순식간에 조기장가를 가게 생겨서

 

2.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사랑하는가. (2)

 

 

이 사람아, 애들이 계속 깔깔대잖아, 이 사람아!”

이 사람아, 이럼 우리 사귀는 거 들키잖아, 이 사람아!”

뭐야, 둘이 언제부터?”

영숙, 영철! 언제부터야? 똑바로 불어!”

영철이가 영숙이의 귀에 대고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불었어.”

! 뭐하는 짓이야!”

불었으니, 된 거지?”

아이들은 계속해서 깔깔대고 있었다.

영철, 근데 네 친구 왜 저러냐?”

갑자기 화제가 나에게로 집중 되었다.

철아 철아, 너 왜 이렇게 얼굴이 심각해? ,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 아무것도 아냐.”

정말 괜찮은 거지? 혼자 안 웃고 있어서 무슨 일 있는 줄 알았네. 친구, 정말 괜찮은 거지?”

괜찮아, 정말 아무 일 아니야. 딴 생각 하다가.”

, 그런 거지. 알았어, 그렇다면, 안심이고.”

아무리 둘러봐도 안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같이 간다고 했는데, 왜 안 가는 걸까. 그때, 영숙이가 욱희에게 물었다.

욱희야, 안희는 같이 안 왔어?”

아참, 안희,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하면서 가던데.”

갑자기?”

혼자 갔어?”

자기 혼자 가야겠다면서 갔어. 병원에는 혼자 가도 된다고 했어.”

, 그래? 알았어. 안희만 빠진 거네. 그렇지?”

맞아.”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템버린 강에.”

우리나라에 그런 강이 있어.”

그런 강이 있을 리가.”

그럼?”

템버린 강이라고,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있다고?”

, 그런 게 있어.”

어디에 있어?”

가보면 알아. 걸어서 1시간 가야 돼.”

걸어서 1시간?”

.”

지금 30분쯤 지났으니까, 앞으로 30분쯤 더 걸으면 되겠네.”

그래?”

 

욱희랑 영숙이의 대화를 들으면서 안희는 무슨 병이 있는 걸까 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병이 있는데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걸까, 하는 고민. 그 고민이 나를 더욱 더 상념의 세계로 빠뜨렸다. 안희는 지금쯤 병원에 있을까.

 

,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네? 무슨 고민이 있는 거야? 말해 봐, 이 절친이 열심히 들어줄게.”

그때 성영이가 영철이에게 물었다.

어이, 절친. 절친의 뜻이 뭔지 알아?”

정말 친한 친구 아니야?”

, 원시시대에 살았지?”

아니야?”

절친은 절교한 친구를 말하는 거야

아참. 그렇지. ‘끊을 절자구나.”

한자 잘 아네.”

내가 이래뵈도 한자를 고등학교까지는 꽤 열심히 했지!”

그렇게 열심히 했어?”

그래서, 내가 끊을 절자를 몰라요!”

! 또 무슨 소리 할려고!”

영숙이가 영철이에게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 귀가 무척 뜨겁

영숙이의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영숙이를 쳐다보자, 영철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영숙아, 영숙아?”

, 여기 있어.”

어디?”

혹시, 나 안 보여?”

, 너 안 보여

, 큰일 났네.”

템버린 강에 도착했나 봐.”

뭐야, 여기 왜 오자고 했어?”

영철이가 강 좀 보여달라고 해서.”

영숙아, 우리 너가 안 보이니까, 네가 알아서 조심하고 우리 잘 따라와 야 돼. 혹시 무서우면 계속 말하면서 따라와.”

, 알았어.”

 

투명인간으로 변해버린 영숙이는 계속해서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런 희한한 일을 경험하면서, 도대체 이곳은 뭐하는 곳인지, 도대체 나는 뭐하러 이곳까지 따라왔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안희가 없는 이곳은 내게 너무나 슬픈 곳이다. 안희는 지금쯤 어디 있을까. 나는 안희를 사랑하는데. 안희랑 같이 있어야 되는데.

 

, 나 좀 도와줘!”

?”

영숙이가 계속 말을 해야 어딨는지 알지. 영숙이 말소리가 안 들려.”

, 어떡하지?”

영숙아, 영숙아! 철이도 영숙이 좀 불러봐!”

친구들 모두 영숙이를 목청껏 높여 불렀지만, 영숙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영철이는 강가를 바라보면서 영숙이를 계속해서 불러대면서, 드디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영철이의 말소리가 내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영철이의 그런 모습을 본 건 내가 영철이와 절친이 된 이후 처음이었다.

 

영숙아, 미안해. 영숙아, 영숙아

 

친구들 모두 영숙이를 찾으면서 영철이가 우는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투명인간이 된 영숙이를 영영 찾을 수 없는 것일까. 나의 앞으로 강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고, 가끔 고니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했다. 비둘기가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육교 밑에서 떼지어 날아다니기도 했다.

 

저기 봐!”

 

알뜰이가 손가락으로 육교 위의 누군가를 가리켰다.

 

저게 누구야? 왜 이렇게 크지? 키가 5미터는 되는 거 같아.”

저거 안희 아니야?”

나는 안희란 말에 놀라서 그곳을 쳐다보았다. 정말로 키가 5미터는 되어 보이는 안희가 거기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희 앞으로는 차량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안희는 그 차들은 신경도 안 쓰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는 데에 몰두했다. 안희는 도대체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안희의 키는 왜 저렇게 커진 걸까?

 

있잖아!”

?”

안희는 키가 5미터는 되고, 영숙이는 투명인간이 되고우리 지금 꿈꾸는 거야?”

 

하늘은 파랗고 구름도 맑게 흘러가는데, 나는 안희를 알 수 없었다. 이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래도 나는 안희를 사랑해야 하는 걸까.

 

 

 

 

3. 저 멀리서 아득하게 (1)

 

친구들이 안희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 바라보는 눈빛들은 저마다 다른 듯 느껴졌다. 영철이 녀석은 여전히 뭐라뭐라 중얼거리면서 영숙이를 찾고 있었다.

친구들아! 영숙이 못 봤냐고, 왜 자꾸 저기만 쳐다 보냐고?”

영철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래도 그래도 뭐라도 해 봐야 할 거 아냐?”

무슨 방법이 있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왜 저기만 쳐다 보는데?”

영철아, 저거 안 보여?”

?”

저기 봐 안희가 5미터는 되는 거 같잖아?”

? 안희?”

안희의 키가 5미터나 되니까, , 그러니까, 그러네?”

그럼, 저기 있는 게 안희야?”

그래, 안희.”

, 너무 크다.”

너무 커서 안 보인다.”

무슨 얘기야?”

안 보인다고?”

그래, 안 보인다고.”

, 방금까지 보였는데?”

또 어디로 갔지?”

영철아, 안희, 방금 있는 거 봤지?”

, 나도 봤는데, 왜 이렇게 되어가지?”

영철아, 영숙이 찾으려면 뭔가를 풀어야 될 거 같아.”

뭘 풀어?”

글쎄? 너와 영숙이의 관계를 풀어야 되는 거 아닐까?”

나와 영숙이의 관계가 뭐 어때서?”

둘이 사귀는 거 맞아? 아니잖아.”

, 아니긴 아닌데

둘의 관계를 풀어야 할 거 같은데?”

영철이는 곤란하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영철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냥 멍하니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영철아, 나도 뾰족한 방법은 생각 안 나는데?”

철아, 영철이, 영숙이랑 진짜 사귀어?”

솔직히, 나도 잘 몰라.”

영철아, 솔직히 말해. 진짜 사귀는 거 아니지?”

진짜 사귀는 건 아닌데, 사귀는 거는 맞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영숙이 찾아야 된다고!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우선, 너네들의 비밀부터 말해!”

비밀 같은 거 없어.”

그럼, 사귀는 건 아닌데, 사귀는 거 맞다는 게 무슨 소리야?”

썸 타는 거잖아. 둘이.”

아니야, 그런 뜻 같지 않아.”

그럼, 무슨 뜻인 건데?”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

영철, 말하라니까!”

솔직히 말해 봐, 그게 무슨 뜻이야?”

영철아!”

말하기 곤란해?”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까 봐.”

그게 무슨 소리야?”

한번 말해봐. 미쳤다고 안할게.”

영숙이가 투명인간이 되면, 나 어디서든 영숙이랑 대화가 가능해.”

.”

근데, 지금 대화가 안돼.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 그런 이유였군.”

철아, 너는 왜 그렇게 심각해?”

안희는 어떻게 된 거지?”

아참, 맞아. 안희. 안희도 사라졌지.”

도대체, 여기 뭐하는 데야?”

템버린 강인데, 진짜 지명은 템버린이 아니야.”

그럼 뭔데?”

불출강

이름이 왜 이래?”

두문불출 이런 건가?”

! 이런! 그 생각을 못했네.”

두분불출 그런 거네.”

우리 잘못 왔다. 여기 위험한 강이다.”

영숙이도 찾아야 하고 안희도 찾아야겠네.”

맞아, 어디 가서 찾아?”

잠깐만, 이리들 와 봐!”

욱아, ?”

여기 물고기들이 사라지고 있어.”

?”

어디로?”

강의 중앙으로 들어가면, 물고기들이 어딘가로 사라져.”

아니, 무슨 얘기야?”

저쪽에서는 물고기들이 막 생기고

그렇다면?”

여기는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인가?”

함부로 가면 안돼.”

맞아.”

영화 속에서처럼 그렇게 무서운 데이거나, 아니면 이상한 곳일 거야.”

가고 싶은 사람?”

!”

성영이가 손을 들었다.

그럼 성영아, 나랑 저기 한번 가볼까?”

그래, 영희야, 같이 가보자

너네들 안 무서워?”

안 무서워. 영숙이랑 안희 찾아올게. 가서.”

그래?”

성영아, 가자.”

.”

성영이와 영희가 물고기가 사라지는 강의 중앙 쪽으로 바지를 종아리까지 걷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강물이 회오리를 치더니, 물고기를 싸악 삼키고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 회오리는 길게 이어지더니, 하늘의 구름에 닿았다. 물고기들이 그 하늘로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성영이와 영희가 놀라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러게.”

영숙이랑, 안희는 어디로 간 거지?”

잠깐만! 성영아, 영희야?”

?”

안 보여.”

둘이도 사라졌어?”

대체 다들 어디로 사라지는 거지?”

투명인간 되는 거 아니야?”

아까 성영이랑 영희랑 사라지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

없어?”

아무도 못 봤네?”

왜 다들 사라지지?”

진짜 투명인간 되는 거 아니야?”

영철이 뭐 아는 거 있어?”

투명인간만 되는 거면 어디서든 대화가 가능한데어떡하지?”

영철아!”

?”

, 충격이 컸구나?”

무슨 소리야?”

평소의 발랄하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갔어?”

, 원래 진지한 사람이야.”

, 그래?”

그럼, 영숙이 버리고 나랑 사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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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머니 - 3호 (완결) | 장편소설 2021-04-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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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 버는 법 (15) - , 드디어 벌었다!

 

 

아니, 출근 시간이라고?”

이름아저씨, 날이 어두워졌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날이 어두운데 왜 출근을 해?”

이름아저씨, 우리 어두워지면 출근해요!”

사장아, 그럼 나도 밤 근무야?”

이름아저씨는 새벽에 나오시잖아요!”

그럼, 나 아직 출근시간 안 된 거지?”

지금 새벽이에요!”

아니, 새벽인데 왜 이렇게 어두워?”

이름아저씨 왜 그러세요? 계속 어두울 때 출근하셔 놓고!”

그럼, 나 퇴근 못해?”

아니에요, 이름아저씨, 연장근무 하셨으니까, 퇴근하시고 내일 나오시면 돼요!”

, 그럼, , 가도 돼?”

! 쉬셔야 내일 또 구름 두 개를 청소하죠!”

, . 두 개, 그렇지!”

근데 말이야!”

, 말씀하세요!”

만약, 내가 퇴근을 안 하고 일하게 되면

그러시면 안돼요!”

왜 안 돼?”

저희의 규칙에 어긋나요!”

어떤 규칙?”

연장근무한 사람은 하루 푹 쉬게 한다, 라는 저희만의 규칙이 있어요

그런 규칙도 있어? 근데

네에?”

하루만 쉬어야 되는 거야? 24시간 근무했는데, 이틀 쉬면 안 돼?”

“24시간이 뭐예요, 사장님?”

날이 밝고 그 다음날 날이 밝을 때까지야.”

, 그게 24시간이에요? 그럼, 이름아저씨는 24시간 연장근무하고 연장근무를 더하기 하겠다는 거네요?”

그런 거지!”

이름아저씨, 그럼 저랑

?”

저희 집에 가요!”

? 경량씨 집에?”

, 퇴근해야 되거든요!”

근데? 경량씨 집에 가서 뭐하자고?”

양말 안 돌려받으실 거에요?”

양말?”

, , 양말에 나물 다 쌌는데!”

잠깐!”

왜요, 이름아저씨?”

우리 집에 먼저 가면 안 돼?”

안 돼요!”

아니, 왜 안 돼?”

짐이 너무 많아요!”

아니, 경량씨, 힘 쎄잖아!”

힘쎈 거랑, 짐이 귀찮은 거랑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거예요?”

아니, 힘이 쎄면, 무거운 짐도 쉽게 들지 않나?”

그럴 리가요!”

아니, 그럴 리가라니?”

힘이 쎄도, 힘들기는 힘들어요! 무거운 짐을 너무 오래 들고 있으면요!”

, 맞아. 이름아저씨, 자꾸 왜 그래요? , 경량씨 힘들게 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름아저씨!”

, 경량씨?”

이름아저씨는 좋은 분이예요!”

,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저희 집에 같이 가 주실 거죠!”

양말 안 받으면 안 돼?”

저희 규칙이에요!”

그래, 사장, 무슨 규칙?”

빌린 물건은 반드시 그날 다시 돌려줘야 한다, 라는 규칙이 있어요!”

그런 규칙이 있다고?”

, 그런 규칙이 있어요!”

그거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규칙이야?”

안 그럼!”

안 그럼?”

경량씨의 반찬이 반으로 줄어요!”

, 그건 안 돼지!”

맞아, 그건 안 돼!”

이름아저씨 웬일이세요?”

뭐가?”

경량씨를 다 생각해주고?”

아니, 이것 봐!”

, 이름아저씨?”

나도 좋은 사람이라고!”

, 드디어 좋은 사람 되신 거예요?”

그래, 그렇다고!”

그럼, 좋은 일 하셔야겠네요?”

좋은 일?”

그래요, 이름아저씨, 저랑 같이 우리 집으로 가요!”

사장은 안 가?”

저도 가야죠!”

그럼, 우리도 가는 거야?”

그러시죠!”

아니, 왜 갑자기 우르르 몰려간다고 그래?”

이름아저씨, 이름아저씨가 궁금해서요!”

뭐가 궁금한데?”

이름아저씨가 경량씨 집에 가면!”

가면?”

뭘 먹고 뭘 싸고 그러는지!”

!”

, 이름아저씨,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지?”

이름아저씨, 화나셨어요?”

아니야, 아니라구! 화난 거 아니라구!”

그럼요?”

그럼, 오늘은 근무 없는 거야?”

오늘 우리 다 월차 내자!”

그래, 사장님!”

모두 월차 내려고?”

!”

경량씨 집에 가려고?”

!”

그래, 그러자!”

사장님은요?”

나도 월차 내야지!”

그럼, 가죠!”

그래요, 가요!”

이름아저씨, 가요!”

꼭 가야 돼?”

우리 이름아저씨 때문에 월차 냈는데, 안 가시려고요?”

그래요!”

알았다고, 가면 되잖아, 가면 되지

이름아저씨, 우리 정말 신나요!”

왜 이 상황에서 신이 나고 그래?”

아저씨가 같이 간다니까 정말 신나요!”

제발!”

왜 그러세요?”

신나고 그러지 마!”

아니에요, 저희 정말 신나요!”

아니야, 그러지 마, 그러지 마!”

아니에요, 저희 정말 신나요!”

그래요, 아저씨 덕분에 정말 신나요!”

그래요, 맞아요, 덕분에 월차도 냈고요!”

오늘 일 안 해도 되고요!”

, 자야 된다고!”

이름아저씨!”

?”

잠은요!”

?”

휴가 내서 주무세요!”

휴가도 있어?”

, 있어요!”

그럼, 휴가 내면 돼?”

!”

휴가는 며칠이나 있어?”

하루 있어요!”

뭐야, 1년에 하루?”

월차가 달마다 있고요.”

“1년에 하루 있다고?”

저희는 1년이란 거 모르고요!”

그래서?”

휴가는 평생에 한번 내는 거에요!”

, 그런 경우가 다 있어!”

저희는 그래요!”

그럼?”

, 말씀하세요!”

, 이번에 휴가 내면?”

?”

다시는 휴가 못 내는 거야?”

! 그러니, 평생에 한번이니까, 이번이 이름아저씨가 내는 휴가는 이름아저씨한테 가장 중요한 날인 거죠!”

, 그렇게 되나?”

그렇게 돼요!”

그럼, 아저씨, 경량씨 집으로 가실 거죠?”

그래야겠는데!”

드디어, 결심하신 거에요?”

그래, 결심했어!”

그럼, 경량씨 집으로 가시는 거죠?”

가긴 가는데!”

! 말씀하세요!”

내 양말에 꼭 싸 가야 돼?”

그럼 어떻게 해요?”

, 그럼 양말 없이 가야 돼?”

이름아저씨!”

?”

이름아저씨는 좋은 분이에요!”

알았어, 알았다구, 가자구!”

드디어 출발이야?”

그래, 가자

사장님, 가요!”

그럽시다, 여러분 출발합시다!”

 

하늘의 구름이 둥둥둥 맑게 떠다녔다. 그나저나 내 양말. 이놈의 양말. 나 어쩌지? 경량씨 집에 빨리 가서 양말부터 달라고 해야지, 내 인생 참, 왜 이러는 거야!

2. 나 쓰는 법 (1) - 경량씨 집에는 없는 게 없다

 

나는 좋은 남자다.

나에게서 나는 냄새가 너무 좋지만, 나는 돈을 적당히 번다.

이 세계에서는 독하게 돈을 벌 필요가 없다.

내가 이 세계에 언제 왔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이 세계에서는 나를 쓰는 법을 알려준다.

나를 쓰는 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나는 가끔 노동을 한다.

하늘의 구름을 닦기고 하고,

거리의 청소차들이 지나가면 가서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 세계에서 이렇게 나를 쓰면 나는 살맛이 난다.

나를 쓴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때로 나는 동료들의 집에서 머물기도 하며,

사장의 웃음소리에 진절머리를 내기도 한다.

너무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사실

 

너무도 지겨운 일이다.

그렇지만, 좋은 일이기도 하다.

내가 지겨워한다는 사실이 사장 귀에 들어가고 반장 귀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사실은 나를 안심시킨다.

나를 쓸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사장이 주는 반찬을 보고, 먹으라고 권하는일이다.

나를 쓰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하루를 살아가는데, 나는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할까. 내가 울상을 짓는 걸 보고 경량이가 말했다.

 

이름아저씨,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 아니야!”

근데, 왜 눈물을?”

경량씨 집에는 왜 없는 게 없어?”

?”

, 화장실 좀 갔다 올게!”

, 알았어요

드디어 간다!”

그러게, 드디어 간다!”

봐도 되나?”

아니야, 보면 안 될 거야!”

 

이 지독한 세계에서 나는 나를 참 잘도 버티어 낸다.

나는 이 지독한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다.

탈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탈출하지 않으면?

이 지독한 세계에서의 삶이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지독한 삶을 끝낼 수 없을지 모른다.

 

나는 이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2. 나 쓰는 법 (2) - 라디오도 잠을 자고 있지

 

경량씨, 이거 뭐야?”

라디오라는 건데요?”

라디오가 뭐야?”

지구에 갔을 때 가져온 거에요

지구 가본 적 없다며?”

그게요

가본 적 있는 거야?”

이름아저씨랑 얘기하다 보니까, 제가 갔던 곳이 지구란 걸 알게 되었어요

나랑?”

!”

예를 들어, 어떤?”

그게

, 알았다!”

뭔데?”

이름아저씨, 신발이

, 맞다!”

신발이 특이하지!”

맞아요, 신발 때문이에요!”

, 내 신발이 어때서?”

뭔가 이상해!”

어디가?”

신발에 끈이 달렸어!”

그러게 이 끈은 왜 있는 거야?”

끈이 왜 있다니?”

이름아저씨, 끈은 왜 있어요?”

신발에 끈이 있으면 안 되는 건가?”

안 되죠! 신발이 숨을 못 쉬잖아요!”

신발이 왜 숨을 쉬어야 되는데?”

신발은 말이죠!”

신발은 뭔데?”

신발은 저희에게 아주아주 중요한 거라서요!”

그래서?”

신발을 아껴야 돼요!”

그게 신발하고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데?”

이름아저씨!”

끈이 있는 신을 가지고 다니면요!”

그래, 말해 봐!”

자꾸자꾸 묶게 되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그래서?”

그래서 일하는 데 방해되잖아요!”

그래서야?”

그래요! 일하는데 방해돼요!”

그럼, 신발에 끈을 풀러야 하나?”

그래요, 맞아요!”

신발에 끈을 푸르세요!”

그래요! 신발에 끈을 풀러요!”

그럼 사는 게 좀 나아지나?”

많이 나아질 거에요!”

왜 그러지?”

그렇게 하면은요!”

그래! 말해봐!”

일하기 편해져요!”

그래?”

그래요!”

사장도 그래?”

전 그렇지 않아요!”

그럼, 경량씨는?”

, 신발에 끈이 없는 게 편해요!”

사장은 왜 달라?”

저를 단단하게 묶을 수가 있어서 좋아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단단히 묶기 싫어요!”

그래, 단단히 묶기 싫어!”

묶이기 싫어!”

맞아, 묶이기 싫어!”

이름아저씨는 계속 묶을 거에요?”

그건 나도 몰라!”

정말요?”

나는 말이지!”

, 이름아저씨는요?”

묶을 때도 있고, 안 묶을 때도 있으니까!”

근데, 이 라디오!”

아니, 왜 또?”

잠을 자는 거야? 왜 아무 소리도 안 나?”

그거 지구에서만 되는 거야!”

여기선 안 돼?”

안 돼!”

그럼, 이거 소용없는 거네?”

그러게!”

아니야, 소용 있어!”

경량씨는 이거 어디에 써?”

그냥 놓아 둬요. 가끔 보기만 하고요!”

우리 반장 집에는 없는 게 없네!”

그러게!”

이것 봐!”

왜요, 이름아저씨?”

나한테는 관심 없어?”

아참!”

아저씨는 왜 묶을 때도 있고, 안 묶을 때도 있어요?”

그야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럼 우리는 안 좋은 사람이에요?”

아니, 그 뜻이 아니고

그럼, 우리도 좋은 사람 맞아요?”

그래, 맞아!”

좋은 사람 맞으니까!”

맞아, 좋은 사람 맞으니까, 좋은 사람 해야지!”

이름아저씨도 좋은 사람이에요!”

맞아요, 좋은 사람이에요!”

이름아저씨?”

?”

여기 양말이요!”

짐 다 풀었어?”

나물 나둬드릴까요?”

아 좋지! 하나씩 주는 거야, 우리도?”

가져가세요, 하나씩!”

횡재했네!”

그러게!”

아니, 이것들 봐봐.”

이름아저씨, 왜요?”

나물이 그렇게 좋아?”

이거 있잖아요!”

?”

이거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에요!”

, 먹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