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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일이 있습니다. 자주 기도하겠.. 

장르소설
바림의 옆에 산다 - 판타지 장편소설 (브릿G에서 연재 중입니다) | 장르소설 2021-03-3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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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G 연재 중 - https://britg.kr 

브릿G에서 - 작품 - 등록작가 연재 - 바람의 옆에 산다 제목 찾기 (월~금 06시 업데이트)

[브릿G에서 연재 - 11회분부터 유료입니다 - 1회당 1G(100원)]-10회까지 무료>

 

 

1. 바람이 옆으로 비껴간다

 

“아저씨, 올해 몇 살이에요?”

“내 나이 올해 팔순이다.”

“거짓말 하지 마시고요!”

“진짜다. 내 나이 팔순이고, 나는 바람이 뭔지 모른다.”

그 녀석은 내게 지독하게 따졌다. 그냥 내 말을 믿으면 그만인 것을, 왜 그렇게 따지는 건지. 나참, 이런 녀석은 골치 아프다.

“아저씨,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바람이 뭔지 모르다뇨?”

“나는 바람을 맞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바람이 뭔지 모른다.”

“바람을 맞아 본 적이 없는데, 바람이 뭔지 모르는 걸 어떻게 알아요?”

“보여줄까?”

그 녀석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녀석, 진짜 미치겠군.

“내가 보여주면, 넌 나한테 뭐를 해 줄래?”

“아저씨가 보여주면, 저는 아저씨한테, 500골드를 드리겠습니다.”

“500골드? 그렇게 돈이 많아?”

“제 집이 온통 금덩어리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보여주시려고요?”

“기다려 봐봐.”

나는 기합을 넣었다. 그리고 온몸의 힘을 아랫배에다 넣었다.

“아저씨, 바람을 맞아 본 적이 없다면서 그건 뭐하고 있는 짓인가요?”

나는 그 녀석을 본다. 이 녀석이 진짜!

“이봐, 학생. 지금 나하고 싸우자는 거냐? 보여 달라며?”

“아니, 그게 아니라, 아저씨, 바람 맞아 본 적이 없다는데, 그런 걸 꼭 해야 되는 거예요?”

그 순간 산새들이 지저귀었고, 바람소리가 저 푸르른 풀잎 사이로 들려왔다.

“바람은 나를 막지 못해! 못한다고!”

“아저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내가 팔순이라고 했지! 내가 바람 맞아 본 적이 없다고 했지!”

“아저씨, 그럼 팔순이란 걸 증명하시고요, 그리고 바람을 맞아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증명하시면 되잖아요!”

“지금 하고 있잖아!”

나는 다시 두 손을 모아 아랫배에 힘을 준다. 그리고 그 녀석의 얼굴을 향해 손바닥에 기를 모아, 장풍을 쏜다. 그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다.

“아저씨, 지금 뭐하세요?”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아저씨, 혹시 제게 장풍 쏘셨어요?”

“그래! 맞아, 그거야, 장풍! 안 갔어?”

“아저씨, 장풍은 그렇게 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장풍은 이렇게 쏘는 거에요.”

그 녀석이 오른팔을 뒤로 감더니, 손이 위로 향하도록 하여 팔을 허공으로 내질렀다. 그러자, 바람소리가 윙 하더니 나면서 나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아저씨, 바람 맞은 적 없다면서요! 지금 막 맞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이건 바람이 아니라, 장풍이잖아!”

“장풍은 바람이 아닌가요?”

“장품은 바람이 아니야! 아니라고!”

“아저씨, 왜 자꾸 우기고 그러세요?”

“내가 언제 우겼다 그래?”

“아저씨, 저랑 싸우자는 거예요?”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고! 난, 바람을 맞아 본 적이 없다고. 바람은 나를 비껴간다고. 그게 내가 살아온 유일한 이유라고. 바람이 나를 비껴가야 한다고.”

“아저씨, 그 말이 정말이라면요, 아저씨의 장풍 얘기를 들려주세요.”

“장풍?”

“아저씨, 장풍이 힘이 약하긴 했지만, 아까 느껴졌어요. 그 얘기를 들려주세요.”

“그래, 정말이냐?”

“네, 아저씨는 어느 소림사 출신인가요?”

“그래, 아주 긴긴 얘기를 해야겠군. 난 소림사 출신은 아니야. 마침 잘 됐군. 여기 풀로 만든 담요가 있네. 여기 앉아서 얘기를 하자. 나의 얘기를 들려주지. 내가 말이야. 지금은 비록 팔순이어서, 힘을 거의 못 쓰기는 하지만…”

나는 풀로 엮여 있는 밭에 누웠다. 녀석이 누워버려서 어쩔 수 없었다. 이 녀석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희한한 일이다. 나는 그 녀석에게 나의 긴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장풍으로 세상을 제패한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지만, 나는 그 녀석에게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데 이상한 건, 점점 더 그 녀석이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드니, 내 이야기가 더 길어질 것 같다. 내가 눕자 풀이 누웠고, 다행히도 이제 막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렇지, 녀석. 날이 밝으니까, 내 얘기가 듣고 싶었던 거였군. 드디어, 나는 그 녀석에게 내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긴긴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브릿G 연재 중 - 브릿G - 작품 - 등록작가 연재 카테고리에서 - 각각의 제목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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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G에서 연재 - 11회분부터 유료입니다 - 1회당 1G(100원)]-10회까지 무료>

 

<바람의 옆에 산다> 월~금 06시 업데이트 - 4월 5일 11회차부터 유료

<머니머니> 월~금 16시 업데이트 - 4월 5일 11회차부터 유료

<양심연애쓰기> 토 06시 업데이트 - 4월 3일 11회차부터 유료

<넋두리의 빛깔 바람> 일 06시 업데이트 - 4월 4일 11회차부터 유료

 

바람의 옆에 산다 by 신통한다이어리 

바람의 옆에 살던 사람의 이야기

 

양심연애쓰기 by 신통한다이어리

엉뚱한 사랑을 하는 철이의 판타지 모험

 

머니머니 by 신통한다이어리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그놈이 사는 법은?

 

넋두리의 빛깔 바람 by 신통한다이어리

빛깔 바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다소 뻔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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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탐정, 신통한 만남, 그 졸렬한 서막 | 장르소설 2021-02-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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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탐정, 신통한 만남, 그 졸렬한 서막

 

 

1. 만남

 

나는 영업부장 신통한

소수의 고객만을 책임진다

소수에게만 드리는 기쁨!

 

명함을 받아든 이상한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그도 그럴 것이 이상한이 제일 싫어하는 녀석들이 바로 영업을 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이상한의 눈에 영업을 하는 인간들은 모두 사기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순진한 사람들을 그럴 듯한 말발로 현혹시켜 일단 자신의 고객이 되면 마치 VIP처럼 모실 듯 하지만실제로 그런 대접을 받기는커녕 마치 지나가는 개처럼 대하기도 하는 녀석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도 처음엔 순진하기만 했었다그러나 그가 친절한 영업사원에게 몇 번 사기를 당하면서부터는 그의 생각은 차츰 달라져갔고그는 그 영업사원들 때문에 경찰이란 직업까지 택했고 경찰 역시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체질에 안 맞아서 1년만에 경찰 생활도 접었다그리고 그는 비로소 '이상한 탐정 사무실'이란 허가도 되지 않은 '탐정'이란 이름을 붙여 신장개업을 한 것이다그러나그 탐정 사무실이라는 것이 '사업자 등록'을 한 사무실이 아니라 이상한 스스로가 막노동하고 공장일을 하면서 모든 재산으로 만든 개인사무실이다이름만 '탐정 사무실'이었지 아무도 의뢰를 하지 않는 철저하게 은둔하고 있는 이상한의 거처였던 것이다그런데 그런 사무실에 뜬금없이 신사복 차림의 정장을 한 '신통한'이라는 자가 나타나 그의 맘을 심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보십시오신통한씨차를 파실 생각이라면 다른 곳을 알아보십시오이따위 고급차를 살만큼의 여유가 제게는 없습니다.”

신통한은 움찔했다그는 자신의 명함을 살펴보았다어디를 보아도 차를 판다는 내용은 없었다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신통한은 일부러 단 세 줄의 홍보용 문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이 작자미처말도 하기도 전에 고급차를 파는 영업사원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채 버렸다니또한이따위 고급차라니사무실은 겉보기에 그렇게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그때신통한은 자신이 사무실로 들어올 때의 일을 기억해냈다. '탐정 사무실특이하군한국에서도 사립탐정이 활동하고 있었다니.' 신통한은 이 정도의 탐정 사무실을 차릴 정도라면 적어도 고급차 한대 정도는 구입해야 할 듯 싶었다안전도가 최우선인 고급차 말이다.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그는 고급차를 경멸하며또한 그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그가 그렇게 부유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통한씨이제 그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영업경력 20년의 신통한이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될 문제는 아닐 성 싶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선생님제가 고급차를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군요신통한씨우선 당신의 옷차림을 보십시오당신은 고급 정장을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명함을 보십시오소수에게만 드리는 기쁨이라고 써 있군요과연이 좁은 한국에서 그렇게 고급정장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더구나 영업사원이제가 묻고 싶은 것은 당신이 왜 이런 누추한 곳을 찾았는지가 더 궁금하군요돈 많은 사장님들을 접대하기도 바쁘실 텐데요하지만 당신이 입고 있는 그 정장은 부유한 사장님들이 있는 것보다는 약간 낮은 패션이군요사장님들이 당신보다는 높은 사람인 것을 인식해야 될 테니까요그래서 고급이라는 것은 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확신할 수 있습니다하지만차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요그것은 저만의 노하우입니다함부로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닌 거 같군요그리고 그것은 알고 보면 아주 쉬운 문제입니다스스로 풀어보도록 하십시오.”

신통한은 이상한의 강렬한 눈빛에 빨려들었다그에게는 분명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그런데 그것이 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제 그만 나가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신통한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자신을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기 있었다이상한의 말대로 신통한은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자신은 스스로 높으시다는 양반들만을 상대하는 고급인력이 아닌가그런데이런 이상한 곳까지 끌려 들어오다니.

신통한은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이상한을 바라보았고 이상한도 신통한을 그냥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신통한의 머리에는 온갖 생각들이 춤을 추었다이대로 나갈 건가좀더 있을 건가저 탐정이란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데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그냥 뚫어지게 보고만 있을까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이상한은 신통한의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신통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허리춤을 바라본다아니언제 이렇게그의 허리춤에는 몇 종류의 차키가 매달려 있었고 차량에 대한 설명이 가득한 서류가 그가 들고 온 가방 위로 삐죽이 드러났다.

"영업사원 맞습니까그렇게 서툴러서야 무슨 영업을 한다고

그것은 신통한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었다아니겨우 이런 모습을 보고 나를 서툴게 평가하는 건가아니면나를 시험하는 건가신통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상한을 바라보았다이상한은 그렇게 자신을 쳐다보는 신통한의 얼굴을 보더니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놀란 표정이군요무엇 때문에 그리 놀라십니까나가지도 않고딴 사람처럼 멍하니매력 있네요.”

아니이런남자한테 이런 고백을 듣다니같은 남자면서당황하는 신통한의 표정을 보더니 이상한이 다시 말했다.

"참고로 말하지만전 저의 사랑스런 부인이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뜻이 그 뜻이 아니었구나.

"서툰 게 매력 있다는 뜻입니다그래서 영업사원을 하시는군요잘 하시겠네요

칭찬인지비꼬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제 명함입니다나중에 제가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저는 고급차를 살 여유는 없습니다.”

아까보다 한참 부드러운 말투로명함을 건네는 걸 보면이 사람잘 사귀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차를 살 고객이 아니더라도마음을 나눌 친구로그런 사람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영업사원이 된 뒤신통한에게서 멀어진 친한 친구도 있었다그리고 신통한은 그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친구를 찾지 못했다어쩌면이상한이 그런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그런 친구가 되기 힘들긴 하지만신통한은 그런 고정관념이 깨지길 바랐다.

이상한이 건네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어려움이 없다면이상한 친구.

어려움이 있다면이상한 탐정.

 

신통한은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그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는지이상한도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인다나중에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을 한다이상한도 신통한도 그 무언의 약속이 그들 사이를 그렇게까지 만들지 몰랐다이상한과 신통한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 첫 의뢰

 

이상한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손님 없으면, 내일은 또 공사장에 나가봐야겠군.' …… 한숨을 쉬는 그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법으로는 금지된 탐정사무소이지만, 그의 사무실에 들어와 불법이라며 사무실을 내리라는 경찰도, 그를 기소하는 검찰도 없었다. 이상한에게는 다소 도박일 수도 있는 사무소 개업이었는데, 나름 다행이다 싶긴 했지만, 이상한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무리 열심히 생각을 해봐도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었다. 그가 경찰 출신이기 때문에 눈을 감아줄 가능성도 있고, 앞으로 탐정이란 직업이 허가될 예정이기에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별로 신경 안 써도 될 만큼 이상한의 존재가 작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은데…… 내일도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이상한이 한참 고뇌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 누구지?'

  이상한이 문을 열자, 조금은 앳되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탐정 사무실이라고 해서요. , 고민 있어서 왔는데요?”

 "고민?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저 고등학생이요. 여기 가면, 고민 들어줄 거라, 누가 그래서.”

 "누가 그런 말을? 그런데, 무슨 고민입니까?”

 "어떤 검은 정장을 입으신 분이요. 제가 놀이터에서 울고 있으니까, 이리로 한 번 가보라고 했어요.”

 "검은 정장?”

 이상한은 짐작 가는 바가 있으나, 그 학생에게는 그 신사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 고민이 뭡니까?”

 ", 아저씨는 제가 학생이라고 밝혔는데, 반말을 안 하시네요?”

 "어색합니까? 어색하면, 반말로 할까요?”

 "아니요. 저를 무시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다른 애들은 그렇게 깍듯하게 대하면, 왠지 부담스럽다고 하는데, 저는 아니에요. 그렇게 대하실 때 저는 제가 존중받는다고 느껴요. 길에서 만나는 아저씨들도, 아주머니들도, 그리고 선생님도 제게 반말을 하는데, 저는 그게 친근감의 표현으로 안 느껴져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이상한은 한동안 그 학생을 바라본다. 그 학생도 이상한을 말없이 바라본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이상한은 학생에게 물어볼 말을 찾았다.

 "고민이 뭡니까?”

 "방금 말했어요.”

 "그렇습니까?”

 ". 그것 때문에 많이 울어요. 아까도 그래서 울었어요. , 그런데, 아저씨, 상담료는 얼마에요? , 여기 자주 오고 싶은데.”

 "주고 싶은 대로.”

 ", 돈 많이 드려도 돼요?”

 "부자십니까?”

 ". 아버지는 JK 그룹 사장님이시구요. 어머니는 현장특별시 시장님이세요. 한번 올 때마다 50만원씩 드릴께요. 1주일에 한 번씩 올 거에요. 대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랑 같이 있어주세요. 매주 토요일마다 올 거에요. 해 주실 수 있죠?"

 이상한은 한동안 그 학생을 쳐다보았고, 대답하는 대신 질문 하나를 던졌다.

 "학생 이름이 뭡니까?”

 ", 이름 안 말하고 싶어요. 그냥, 샘물이라고 불러주시면 안돼요?”

 "이름은 안 말하고 싶고. 샘물이라고 불리고 싶다. 그럽시다. 현금 결재입니까?”

 지금까지 어둡기만 했던 학생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러더니 지갑에서 즉시 5만원권 10장을 꺼낸다.

 "50만원이요! 아저씨 정말 좋아요. 아무것도 자세하게 묻지 않으시고, 화끈하시고. 그럼, 오늘부터 저 아저씨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죠? 오늘 토요일인데!”

  이상한은 오늘이 토요일이란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내일 공사판에 갔더라면 허탕치고 올 가능성이 많았겠군.' 그러면서, '이 학생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를 생각해 보면서, 아직은 날이 좋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아저씨! 저랑 게임방 가요!”

이상한은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보군, 하면서 샘물이라 불리고 싶어 하는 그 학생의 뒤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3. 미행

 

신통한은 학생이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유 없이 울고 있던 한 학생. 이유 모를 만남. 학생을 이상한에게 안내하는 자신의 마음이 뭔가에 홀렸음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신통한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신통한은 그 학생이 이상한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말로 들어가네?' 어느 낯선 남자의 소개. 그 이상한 소개가 그 학생을 이상한에게로 이끌었다. 그 이상한 힘을 신통한은 알 수 없었다. 신통한은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생, 왜 울고 있어?”

"아니, 아저씨? 아저씨는 울고 있는 학생에게 일일이 신경 써요? 참 특이한 아저씨네?”

"일일이 신경 안 써. 오늘만 신경 쓰는 거야.”

"왜요?”

"이상한 탐정을 만났거든.”

"이상한 탐정?”

"이름이 이상한.”

"……그게 이름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이상한이 이름이라는 거예요?”

"이상한이 이름. 이름처럼 이상해.”

", 왠지 관심 간다. 어딨어요, 그 아저씨?”

울음을 뚝 그친 학생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지, 이 상황은?'

"저기 저 건물 2층에.”

"어떻게 찾아요?”

"앞에 써 있어.”

"고마워요.”

이 대화가 끝이었다. 학생은 더 이상 신통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신통한은 벤치에 앉았다. 오래 전에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다시 피게 되면 두 번 다시 못 끊을 것 같아 피우지 않았다. 끊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은 담배만이 아니었다. 이상한 탐정. 그가 건넨 명함에 새겨진 문구 "어려움이 없다면, 이상한 친구. 어려움이 있다면, 이상한 탐정." 기가 막힌 문구였고, 기가 막힌 친구였다. 그 문구에 의지해서 한 학생을 발견했다. 학생은 울고 있었다. 그것도 소리내어 펑펑. 마치 누군가 자기가 우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듯이.

신통한은 자신이 지금 일하러 나왔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어차피, 먹고 살 만큼 돈은 많이 벌었다. 이제, 외근은 그만해도 될 만한 위치다. 그럼에도 신통한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좋아 외근을 계속해왔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저 멀리 그 학생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것은, 학생의 표정이 너무 밝아졌다는 것이다. 너무 신나게 팔짝팔짝 뛰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 뒤에는 이상한 탑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 심각한 표정이 학생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학생이 이상한에게 빨리빨리 가자고 조르는 듯 했다. 이상한은 가끔 그 학생을 향해 살짝 미소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미소로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은 씁쓸해 보였다. 신통한은 이상한이 그 학생에게서 뭔가를 눈치챘는데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는 무엇을 하는 학생일까. 그러고 보면, 신통한은 그 학생에게 정말로 학생인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냥, 울고 있길래 무작정 이상한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다.

신통한은 결정했다. 그들의 뒤를 따르기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판매보다 더 큰 건이 걸려있을 거란 본능적 느낌이 그를 휘감기 시작했다.

문득, 방문판매가 불법인 법안이 될 거라는 뉴스를 접한 것이 기억났다. 이제 시대는 바뀌고 있다. 더 이상 고객을 불쾌하게 하는 방문판매는 하지 못할 것이며, 이제 본격적인 온라인 네트워크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 시대를 읽어내지 못하면, 신통한의 영업도 끝이 난다. 신통한은 지금 이상한을 따라가지 않으면, 자신이 일구어왔던 지금까지의 경험,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해질 것 같은 절박감이 몰려왔다. 이상한이 신통한을 봤는지 안 봤는지 신통한은 알지 못했다. 다만, 멀찌감치 서서 그들을 지켜보다, 그 학생과 이상한이 4차선 도로가 있는 길가가 있는 곳으로 가자 부리나케 따라잡았다. 거기엔 상점들이 일렬로 나열해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중 하나의 건물로 그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 건물은 5층짜리 건물로, 4, 5층은 대중목욕탕, 찜질방이 있었으면, 3층은 PC, 2층은 당구장, 1층은 식당이 대형 평수로 있는 큼직한 건물이었다. 신통한은 그 중 어느 곳으로 그들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따. 이상한이 무슨 생각에 그 건물로 따라 들어간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 학생과 이상한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지, 더더욱 의문이 남았다. 신통한이 그 건물에 도착했을 때는 그들이 이미 보이지 않았기에, 신통한의 궁금증은 더더욱 커져 갔다. 조금 고민하던 신통한은 이상한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가 돌아오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신통한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이상한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이상한에게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가 지금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부여잡을 수 있는 가치, 그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신통한은 이상한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신통한은 거기에 새로운 안내문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상한 탐정 사무소 - 지금은 아무도 없으나 그대가 원한다면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수는 없으니, 기다리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것이 저의 운명이니까요! 급한 용무가 있으신 분에 한하여 연락 주십시오. 연락처는! 꺼턱* 아이디 : 께림칙해.”

신통한은 그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이상한의 카톡으로 이상한의 아이디를 입력했다. "찾을 수 없습니다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검색을 해 보았다. 역시 되지 않는다. 신통한은 할 수 없이, 그를 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의자가 없을까. 신통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기하다. 마치 그가 다시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한쪽 편으로 조그만 의자가 하나가 놓여 있다낡고 낡아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신통한은 그 의자가 분명 이상한의 사무실에서 보았던 의자였음이 기억났다. 이상한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신통한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록되었던 자신의 영업실적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의자의 삐그덕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으니, 그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도 허름한 사무실이이서, 오직 이상한 탐정 사무소만이 유일하게 간판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무실에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다. 신통한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이상한과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냥 더디지만은 않았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힐지 모르면서도 신통한은 기꺼이 그의 반응을 즐길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오래도록 이상한과 만났던 첫 만남을 다시 되새겨보면서 말이다.

 

*꺼턱 : 카카오톡과 비슷한 어플. (기능은 카카오톡과 같으나 조금 다른 버전으로 실존하지 않습니다)

 

 

 

4. 조용한 만남

 

뻐끔뻐끔 담배를 피는 조용한의 눈에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유심히 누군가를 관찰하는 모습이 마치, 그를 납치라도 하려는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조금 후에 보니, 그는 저 멀리 사라져갔다. 그의 앞에 있던 누군가도 어느 덧 조용한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조용한은 피던 담배를 끄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래도 담배 탓인 듯 했다. 그의 시야를 가린 뿌연 담배연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을 놓친 것 같다. 조용한은 공원을 가로질러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치 뭔가를 쫓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아무래도 뭔가 영 어색했다. 뒷모습에서 그의 불안이 느껴졌다. 조용한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그가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조용한은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벤치에 앉았다. 조용한이 주시하던 그가 조금 허름한 건물로 들어갔다. 조용한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조용한은 그가 들어간 건물로 들어가 1층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1층은 조그마한 헌책방이 있었다. 사람이 없을 거란 예상과 달리, 그 책방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열 댓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사람이 열 명이 넘게 있어, 사람들이 아주 많은 듯한 착각이 든 것이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 조용한이 찾던 그는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은 좁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조용한은 의자에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불안해 보였다. 조용한은 한동안 그를 관찰하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한참,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그가 조용한을 보더니,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용한은 그의 목소리가 꽤나 밝고 중후하다는 데에 놀랐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느낌이 조용한에게 느껴졌다.

"실례지만,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뭐가 문제가 있으십니까?”

"아니요.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조용한이 말을 이어가기 전에 그는 재빨리 말을 끊었다.

"그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와 대화가 가능하신 분입니까?”

조용한은 뭔가에 찔린 듯, 뜨끔했다.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었어.'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이 쫓던 그 사람에 대해서 조사할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쫓던 사람이라뇨? 그런 사람 없습니다.”

조용한은 이상한 탐정 사무소라는 푯말을 뚜렷이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상한 탐정 - 그 사람에 대해서 조사 중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보다 당신 신분증 있습니까? 제가 당신을 어떻게 믿습니까?”

조용한은 조용히 검찰배지를 그에게 내밀고, 그의 신분증마저 내보였다. 그제서야 그는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갔음을 알게 되었고, 뭔가 거대한 파도가 그를 휩싸게 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조용한 검사님. 신통한이라고 합니다. 저는 외판원입니다. 저는 단지, 차를 팔기 위해서 잠깐 들렀을 뿐입니다.”

조용한 검사는 이 뻔한 거짓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을 찾고 그에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신통한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체포하거나, 이상한씨를 체포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과 얘기하셨던 그 학생,  학생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학생, 지금 어디 있습니까?”

신통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통한은 조용한에게 얼른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고, 조용한은 그의 뒤를 말없이 따라갔다. 그러면서 조용한은 한편으로 자신이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생에게 접근하기 위해 조용한은 너무 심한 거짓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5. 샘물투어

 

이상한과 학생이 간 곳은 조금 오래된 건물이었다. 샘물이라 불리고 싶어하는 그 학생은 애초에 PC방이던 행선지를 들어서면서부터 바꾸었다.
아저씨, 우리 이 건물 투어해요!”
투어라니요?”
투어 모르세요? 이 건물에 음 보자1층에 식당이 있네우선 밥부터 먹어요!”
그러고 싶으십니까?”
! 오늘 저한테 쓰기로 하셨잖아요!”
, 그렇게 합시다.”
아 좋다! 식당에서 밥 먹고, 당구장에서 한시간 당구치고, pc방에서 2시간 게임하고, 찜질방에서 남은 시간 보내면 되겠어요! 아저씨, 당구 칠 줄 아시죠?”
“30 칩니다
푸하하하하하진짜요?”
딱 한번 쳐봤습니다.”
의외의 반전이라는 듯, 샘물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상한은 살짝 겸연쩍은 미소만 띄운 채 그 학생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저씨, 뭐 먹고 싶으신 것 있으세요?”
제가 골라야 됩니까?”
,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네 맘대로 골라, 내가 사줄께! 이런 거요.”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 식당 한번 둘러보면서 결정하겠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샘물은 1층의 식당을 쭈욱 둘러보았다. 그리고, 별을봐 레스토랑이란 곳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별무늬가 아록다록 새겨진 정장을 입은 희한한 복장의 남자 웨이터가 그들을 맞이했다.
저랑 이상한 아저씨, 두 명이요.”
이상한 분이신가요?”
, ! 이상한 분이에요.”
그러면서 샘물은 또 까르르 웃었다.
, 이리로 오세요!”
이상한과 샘물은 역시 별무늬로 장식되더 있는 벽장식이 있는 곳을 지나, 별모양이 새겨진 나무탁자로 소개되었다.
으와, 별천지다! 정말, 오늘 좋아요. 너무너무 행복해요.”
샘물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이상한은 샘물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말했다.
행복하시다니, 저도 기쁩니다. 샘물님은 마음껏 행복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십니다.”
샘물의 눈에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고, 입가엔 미소 같은 것이 아로새겨졌다. 그 미소는 정말로 행복할 때만 나올 수 있는 미소였다. 그 미소가 얼마나 오래가게 될지, 이상한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 행복을 붙들고 있기를 이상한은 간절히 소망했다. 이 학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오늘만은 이 학생의 소원을 마음껏 풀어주기로 했다. 어떤 사건이 이상한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한의 날카로운 눈은 샘물군의 내면을 향하고 있었다. 이상한이 알 수 있는 건, 샘물군을 좇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거란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이상한은 주위를 경계했다. 그때,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 왔다. 이상한은 메뉴판을 보았다. 별봐 돈가스. 별봐 함박 스테이크. 별봐 무제한. 별봐 무제한엔 5만원이란 표시가 있었다. 돈가스와 스테이크의 무려 다섯 배 차이였다. 그리고 그 밑에 조그만 글씨로 별봐 미니우동이란 글씨가 조그맣게 쓰여있고 3000원이란 표시가 있었다. 이상한은 알 수 없었다. 5만원이나 내고 미니우동을 먹으려면 3000원을 또 내란 말인가? 그때, 샘물이 웨이터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거 다 주세요!”
손님, 무제한 메뉴는 돈가스 스테이크 미니우동까지 포함한 가격입니다. 그걸로 드릴까요? 1인당 5만원입니다.”
아니요, 무제한 메뉴 1인분 주시고, 돈가스 스테이크 미니우동 1인분씩이요. 아저씨, 장사하지 마시고요!”
, 손님 죄송합니다. 혼자 계신 줄 잠깐 착각했습니다. 앞에 있는 분이 잠시 잠깐 제 눈에는 안 보였습니다. 그렇게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샘물은 잠깐 앞의 이상한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외계인이거나 초능력을 가진 인간 같은 거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눈에도 잠깐 안 보였던 것 같은데요?”
착각하신 걸 겁니다.”
그렇겠죠?”
울음을 그친 샘물은 이제 조금 멍한 눈으로 이상한을 쳐다보았다. 별무늬로 새겨진 형형형색의 그림들이 샘물의 눈으로 들어왔고, 이상한은 샘물에게 넌지 말을 건넸다.
이제,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 뭘요?”
여기에 저를 데리고 온 이유 말입니다. 샘물님은 애초부터 이 식당으로 저를 끌고 올 계획이 아니었습니까?”
, 그게
당황하던 샘물의 눈에 놀라워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이상한은 진지한 눈빛으로 샘물을 바라보았다. 샘물과 이상한은 그렇게 오래도록 눈빛을 교환하고, 샘물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한은 샘물의 얘기를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경청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방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상한은 120킬로는 됨직한 거구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샘물은 그 여인을 바라보며 이상한에게 소개시켜 주었다.“아저씨, 저희 이모님이세요. 이 식당의 주인이기도 하구요.”

 

 

 

6.

조용한과 신통한은 이상한과 이상한이 데리고 있는 학생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상한은 셈물이 말한 이모님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이모님. 정말 이모님이신가요?”

글쎄요!”

그렇다면, 여기서 협상을 종료하시겠습니까?”

글쎄요!”

그렇습니까? 샘물님, 그럼 이만

 

이상한은 조용한을 바라보았고, 신통한을 바라보았다, 샘물과 샐물이 말한 그 이모님이란 분은 이상한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조용한은 이상한이 지나가는 것을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고, 신통한은 이상한을 바라보는 조용한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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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사위들 | 장르소설 2021-02-0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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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 새끼만 잘 잡으면 돈 벌이 될 수 있다니까. 잡아다가 그 놈이 어떤 놈인지 잘 활용만 해서,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거야"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냐고? 저 놈이 우리 말을 곧이 들어야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걸 쓰자고."

"주사기"

"이게 바로, 최면 주사기라는 건데, 이거만 엉덩이에 콕 박으면 우리 말을 저절로 듣게 되는 거지."

"꼭 엉덩이에 박아야 돼?"

"다른 곳은 치사 위험이 있어서 안돼. 저놈을 죽여서는 아무런 득이 없잖아"

"그럼 어떻게 저놈의 엉덩이에..?"

"그러니까, 잘 감시해, 기회를 잡아 보자고

   

2.

한참 만에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인가. 내 양손이 허리 뒤로 묶여 있다. 그리고 저벅저벅저벅. 살기가 느껴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그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굵은 음성을 가진 남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저 녀석인가?. , 분명 맞습니다. 저 녀석이 바로, 그 악마의 반지를 낀 녀석입니다. 여기서 탈출할 수는 없겠지. 전설에 나오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절대 탈출이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저기서 탈출한다면, 그건 시간이동이나 공간이동이 가능한 초인이라는 얘기입니다. 저 녀석은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악마의 반지를 끼고 있다고 해서, 그런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마가 저 녀석을 잡아놓기 위해서 끼운 것 같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저 녀석이 우리의 정체는 알고 있나? 아마, 모를 겁니다. 저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악마의 반지는 어떻게 했나?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도무지 빠지지를 않습니다. 대장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 빠진단 말이지? 아직은 좀 기다려. 저 녀석에겐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는 건지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도망을 치지 못한 걸 보면, 우리가 모르는 초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저 녀석이 우리 애들을 죽인 거 확실한가? , 확실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였는지는 모릅니다. 우리 애들이 죽어갈 때, 저한테 확실하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 녀석, 무섭다고요. 저 녀석 때문에 우리 다 죽었다, 라고 말하는 걸 분명히 들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총이나 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한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도 사실은 저 녀석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반지를 빼는 것도 허락을 구한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겠군. “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지? 그때, “의 머릿속에서 어떤 울림이 나에게 속삭였다. 생각하지 마. 그리고 입을 조금만 벌려. 그리고 너의 몸을 흐르는 대로 맡겨. “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치키치키 축축 치치치치 추추추추 축추축. 그리고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면서, 맨 땅을 차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확인해 봐. , 대장님. 발자국 소리가 내게 가까워질수록 나의 발차기는 더욱 빨라졌고, 이상한 신음소리는 더욱 더 속도를 더해졌다. 대장님, 저놈이 뭔가 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쪽으로 와 보십쇼.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빨라졌다. 안돼! 저놈 잡아. 저놈 뭔가 분명 있어. 도망치지 못하게 꽉 잡아. 그게, 칼이었는지 총이었는지 모르겠다. 뭔가가 나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대로 기절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한참 후 나는 잔디가 만발한 어느 공터에 누워 있었고, 묶여 있던 손이 풀려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주변 사람들이 누워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긴 했지만, 별 관심 없다는 듯 이내 제 갈 길을 갔다. 여기는 대체 몇 년도의 어디란 말인가? 나는 또 무슨 주문을 했던 것인가. 나는 언제쯤 나의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죽은 것인가, 죽지 않은 것인가. 나는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나의 궁금증은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나는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살아있기에 또 다시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돈 한 푼 없지만, 길을 계속 걷다보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내 두 손이 멀쩡하고, 아직까지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하자. 나는 일어나서 바지를 털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에게 씌워진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3.

나의 머릿속의 이상한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초록색 잔디가 아름다웠고 공기도 맑았다.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해 보였다. 내가 찾던 세상이 여기인가? 하는 생각이 고개 들 때쯤, 갑자기 어디선가 복면을 낀 사람이 길가를 가고 있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의 핸드백을 날치기 하는 것이 보였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공원을 가득 메웠다. 복면을 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아리송한 사람은 핸드백을 들고 열심히 뛰어가는 중이었다. 혹시 저것을 제지할 능력도 있을까?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길 기대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 남자가 가는 방향을 계속 주시하고 있기만 했다. 사람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는 복면 쓴 사람을 열심히 쫓아갔지만 그 사람의 달리는 모습은 너무나 빨랐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사람의 달리기라고 믿기지 않았다. 순간 퍼뜩 저 녀석이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지옥에서 보낸 악마.

그런데 악마가 고작 하는 짓이 소매치기라? 어울리지 않았다. 악마라면 뭔가 더 큰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악마는 너야, 네가 악마야. 저 사람이 아니라 너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내가 악마라고? 내가 왜 악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반지를 보고 악마의 반지라고 불렀던 생각이 났다. 이 반지가 악마인가? 왜 내 반지를 보고 악마의 반지라고 하는지 그리고 그 반지는 왜 다른 사람이 빼면 빠지지가 않는지 궁금했다. 궁금한 마음에 반지를 잡고 빼 보았다. 잘 빠진다. 다시 반지를 낀다. 잘 끼어진다. 내가 빼고 껴도 반지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그냥 평범한 반지. 길 가다가 우연히 주운 반지가 아니다. 그녀와 약혼을 하던 그날에 그녀와 언약을 하며 끼운 약혼반지다.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결혼을 하루 앞두고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원래 있던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이유를 내가 있는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또 어느 세상에서인가 나를 찾아 길을 헤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복면을 쓰고 소매치기를 한 사람이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다. 그렇게도 빨리 달리더니 앞에서 불쑥 튀어나온 경찰에 의해 잡힌 것이다. 미처 앞에서 경찰이 튀어나오리란 생각은 못한 것 같다. 뒤쫓아왔던 미니스커트의 그녀가 복면을 한 사람에게 발길질을 해댄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두려워서 자기 짐만 챙겨가지고 가는 것이 보통인데 저 여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맞고 있던 복변을 쓴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공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발길질을 하던 미니스커트의 그녀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때서야 비로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한참 때릴 때는 전혀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에게 가까이 가 보았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처음 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또 다시 음성이 들렸다.

사라져서 무서워하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이 또 나타날까봐 두려워하는 거야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공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좀전까지 행복하게만 보이던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워졌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무섭다는 것일까? 사라져서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니?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무섭게 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나를 위아래로 한참 쳐다보더니 두려움에 떠는 표정이 바뀌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의 구세주이시군요.”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더니 모두에게 크게 외쳤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언 속의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살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말에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제가 구세주라니요? 모두들 두려움에 떨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제가 구세주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진짜 구세주 맞습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나의 묻는 말에 대답은 없고 그 사람은 자꾸 내가 구세주라는 말만 반복했다. 궁금증은 더욱 더 증폭되었다.

당신은 누군지 몰라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설명해서도 안 됩니다. 스스로 알아내세요. 우리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를 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 궁금해 하세요. 길은 우리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내 뒤로 그 공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온다.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내 머릿속에서 또다시 속삭임이 들려온다.

따라갈까? 따라가지 말까? 따라가야 하나? 따라가지 말아야 하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머릿속이 갈등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길을 잘 안내해 주더니 이번에는 모호하게 질문만 하고 있었다. 따라갈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조금 망설이고 있자, 핸드백을 도난당했던 그 여인이 다가왔다.

제 핸드백을 구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핸드백을 구했습니다. 아까 사라졌던 그 사람은 이제 다시 여기 나타나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내 도움이 컸다고?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런데 무슨 도움을 주었다는 것일까?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 핸드백, 분명 도난당했을 것이고 우리들은 다시 불행해졌을 것입니다.”

그 핸드백이 대체 무엇입니까?”

이 핸드백은

 

 

4,

 

"드디어, 녀석을 소유했군. 이제 이 주사만 놓으면, 놈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게 돼."

"그런데, 또 사라지면 어떡하지?"

"그놈은 걸어갈 때만 사라져, 투명인간으로 되었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지. 그러니까, 두 손 두 발 다 묶여 있을 때는 사라지지 않아"

"그런데, 그렇게 잘 사라지던 놈이 왜 우리 손에 잡힌 거지? 이해가 안 가. 능력이 사라진 걸까?

"무슨 헛소리야. 능력이 사라지면, 우리한테 아무 쓸모가 없잖아. 그럴리 없을거야"

"그래서..이해가 안 간다는 거야. 그토록 안 잡히던 녀석이 우리 손에 이렇게 쉽게 잡힐 리가 없잖아."

바람과 바다는 순간 뭔가를 놓쳤음을 감지한다.

"아차, 녀석을 혼자 뒀어. 이 주사기에 신경쓰느라. 빨리 가보자.“

 

 

5.

 

나는 녀석들에게 잡혀 왔다. 눈이 가려져 있었고 두 손이 묶여 있고, 두 발도 묶여 있었다. 나는 왜 잡혀온 것일까.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돈도 없고, 이렇다하게 원한 질 일을 할 만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그냥 단순 살인자들일까?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함. 어릴 때 미래가 두려워서, 그래서 시를 썼다. 두려운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그 두려운 미래가 지금 내 앞에 닥쳐왔나 보다. 그 녀석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들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소리를 내어 본다. 아무 반응이 없다. 또 다시 큰 소리를 한번 질러 본다.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나를 구원해줬던 소리들.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를 구원했던 소리들. 그 소리들은 나를 정신병원에 갇히게 했고, 그 정신병원에서 나는 과거와 미래를 드나들곤 했다. 정신병원에선 아무도 그런 나를 신경쓰지 않았다. 현실에선 사라져도 화장실 갔다 온 줄 알고, 미래의 정신병원에 가도 내가 병이 있는 놈이니 그런가보다 한다. 시설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전혀 다르지만, 나는 한 병원에서 시간을 초월하며 살았던 것이다. 내가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나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과거와 미래, 현재를 오가는 나. , 이것을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연습했었다. 미래와 과거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방법을. 그렇다면, 혹시 그 녀석들이 나의 이런 상태를 아는 것일까. 만약 안다면 그 녀석들은 나를 잡으러 보낸 미래의 터미네이터 같은 것일까.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다행이다. 손가락은 묶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대고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을 그리면 미래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원래는 세바퀴 반을 돌리면, 몸이 붕 뜨면서 미래로 가게 되는데, 이번엔 아니다. 다시, 네모를 그려보았다. 네모를 세바퀴 반 돌리면 과거로 가게 되어 있다. 이번에도 되지 않는다. , 사라진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녀석에게 잡힌 채 이대로 지내야 하는 것일까. 그 순간, 내 입에서 저절로 어떤 말이 튀어나온다. "치치치치 차차차차차 쵸쵸쵸쵸춏 츠츷츠츠츷"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멈추려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춰지지가 않았다. 나를 보고 있을 줄 알았던 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린 건, 문이 딸깍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난 뒤였다. 이윽고, 그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녀석 어딨어? 또 사라진거야?" "거봐,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잘 찾아봐. 그 녀석 투명인간이 되어서 이 방 어딘가에 있을거야. 문 못 나가게 막고" 그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또 어딘가로 소환되고 있었다. 묶여 있던 손이 풀리고 발도 풀렸다. 그리고 눈가리개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려 했으나, 따가운 햇살이 나를 막았다. 실눈을 뜨고 천천히 눈을 뜬다. 그 녀석들이 다시 보인다.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뜬다. 그런데 그 녀석들은 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자세히 얼굴을 본다. 분명, 그 녀석들이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그 녀석들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안수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 녀석들의 과거가 보이기 시작한다. , 알 수 없는 일이 내게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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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다 | 장르소설 2021-02-0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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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다

 

 

 

프롤로그

 

총공격!”

내 눈앞에서 광선검들이 움직인다. 가느다란 빛을 내뿜고 있는 그 검들은 점점 더 나를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 그 검 뒤로 검은 물체의 사람들이 스르륵 스르륵 소리를 내고 있다. 저들은 대체 누구인가? 사람인가? 악마인가? 귀신인가? 사람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저들은 악마? 그들의 검들이 내 배와 다리와 팔을 찔러댄다. 온몸이 쑤시다. 그리고 점점 더 정신이 흐리멍텅해진다. 흐리멍텅해지는 머리. 그리고 가느다랗게 들리는 그들의 말소리.

이 녀석 죽이면 안 되잖아? 어떻게 하지?”

나는 왜 죽이면 안 되는 걸까?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머리 잡아 봐. 이 녀석 기억을 아예 없애면 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쳐 보지만 생각 속에서만 움직일 뿐, 꼼짝도 할 수 없다. 그들이 내 머리를 잡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뽑아내는 소리가 들린다. 엄청난 고통이 머리로 전해져 오지만 소리조차 낼 수 없다. 머리카락을 뽑은 그 자리에 뭔가가 찔리는 것이 느껴진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절대 기억하지 못하겠지?”

이 녀석이 신이라면 모를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기억 못 하지.”

진짜 신이면 어쩌지? 그럼 우리 다 죽는데.”

진짜 신이 이렇게 쉽게 잡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리고 신이 인간으로 어떻게 태어나?”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신의 능력을 가졌을지도.”

신의 능력을 가졌을지라도 신이 아니면 이건 못 풀어. 신이 직접 풀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이 녀석 죽어야 돼. 이 녀석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한 절대 안 죽어.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 그럼 안심해도 되겠네.”

서서히 그들의 말소리가 멀어져간다. 그들이 내게서 멀어져가는 건지 내 기억이 지워지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점점점 잠에 든다. 그들이 내 기억을 지우면 지울수록 나는 오히려 편안해져간다. 내 마음이 온통 평온해져 간다. 편안한 잠이 내게 다가온다.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꿈은 온통 행복한 꿈이다. 내 기억이 지워져가는 건지 내가 행복해져 가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생전 보지도 못한 어느 낯선 곳에서 잠을 깬다.

 

 

 

1. 낯선 곳에서 깨어나다

 

아주 오랫동안의 숙면을 취한 듯하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머리가 서서히 맑아지지만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너무 편안한 잠. 몸을 뒤척여 본다. 물컹한 게 손에 잡힌다. 또한 아주 보드라운 느낌이 나를 조금씩 흥분시키기 시작했다. 눈을 뜬다. 검은 머릿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이 나고 있었고 내 손에는 그녀의 우유빛 살결이 그녀의 유두와 함께 겹쳐져 있었다. 이게 뭔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이 여자는 누구인지! 그녀는 깊은 숨을 쉬며, 일정한 간격으로 호흡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하다. 윗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 반대편에 또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여자는 또 누구인가? 갈색머리에 구릿빛 피부가 돋보였고, 그녀 역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이 보였다. 족히 네다섯 명은 누워 있을 만한 크고 푹신한 실크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녀의 가슴을 더듬어 보았다. 숨을 더 크게 쉴 뿐, 이미 그 손길에 익숙한 듯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녀들이 알몸이듯, 나 역시 알몸이었다. 욕망의 크기가 나를 현실에서 도피시키는 듯 하고 그 욕망에 짓눌려 나는 그녀들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그녀들은 게슴츠레한 눈을 살짝 떴다가 다시 감았을 뿐, 나의 몸에 그녀들의 몸을 맡겼다. 한참 동안을 나는 그 욕망에 이끌리다가 퍼뜩 내가 뭐하는 건가 싶어 그녀들을 더듬던 내 손을 거두었다. 자꾸만 커져 가는 내 안의 욕망을 억누르는 대신,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비로소 해소해나가기 시작했다.

깊은 잠을 자려는 그녀들을 흔들어 깨웠다. 그녀들은 그저 귀찮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고 더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들의 잠을 방해하는 걸 포기하고 화려하게 덧칠해져 있는 철제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방문 밖에는 어깨가 벌어진 한 건장한 사내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주인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주인님이라니. 나는 그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인가요?”

“'주인님. 여기는 주인님의 저택입니다. 주인님은 지난 밤에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셨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실 것이니, 지금은 절대 안정을 취하시어야 합니다. 곧 괜찮아지실 것입니다. 우선, 먹을 것을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

그러더니 그 건장한 사내는 손뼉을 쳐서, 누군가를 부른다.

주인님 깨어나셨으니, 요리를 준비하게

.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주인님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인님, 기억이 나는 것을 돕기 위해 집을 한번 둘러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더니 그 사내는 또 손뼉을 두 번 치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이번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주인님께 집안 구경 좀 시켜드리게.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신 거 같으니, 설명을 많이 해드려야 할 걸세

,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주인님, 따라오시지요." 나는 그의 말대로 기억을 찾을 기대감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2. 진수성찬

 

요리가 준비되었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음식들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각종 해산물과 가재 요리, 그리고 육질이 부드러워 입에서 살살 녹는 소고기 요리까지. 이렇게 푸짐한 상을 먹어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 요리들은 모두 처음 먹어 보는 맛 같았다.

요리를 먹는 것과,리를 대접하는 사람들과 나를 시중해 주는 사람들까지 모두 낯설다. 내가 요리를 하나씩 집어먹을 때마다 그들은 요리에 대한 설명까지도 빠짐없이 추가한다. 배부른 아침을 먹고 나니, 커피가 생각났다. 그래, 커피. 왜 커피가 생각이 났을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나는 하나씩 하나씩 음식과 디저트를 기억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왜 커피가 생각났는지는 몰랐다. 그저, 단순한 습관 때문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내가 마시는 커피에도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자, 그들은 내 취향에 맞는 커피를 만들지는 않고 최고급 원두커피를 갖다 주었다. 나는 그냥 단맛 나는 보통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지만, 그들은 건강을 생각하시라면서, 원두커피에 약간의 시럽을 넣어줄 뿐이었다. 왜 먹는 것도 내 맘대로 못하냐고 화를 내었지만, 주인님은 주인님 혼자만 생각하시냐며, 우리도 주인님 없으면 모두 죽은 목숨이니 제발 건강 생각하시고 몸을 좀 돌보시라는 핀잔이 올 뿐이었다. 그들이 눈물로 호소하는 바람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입맛에 맞지 않는 그 커피를 들이켜야만 했다. 나는 또 궁금해졌다. 왜 그들은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를 못 마시게 하는 것인지.

식사를 마치고 정원에 나와 밝게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햇살을 받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정원을 거닐다가, 털이 복스러워 보이는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 개는 이름이 뭔가요?”

떨리우스라고 합니다

떨리우스? 이름 한번 재밌네요

사람을 겁내하는 강아지이지요. 그래서 떨리우스라고 지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정말로 그 개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떨리우스. 왜 떨고 그래? 내가 무섭니?”

내가 그렇게 말을 걸자, 떨리우스는 나의 손등에 자신의 코를 갖다 대고는 냄새를 맡더니, 나의 손등을 이내 핥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을 부비며 나를 반가워했다.

? 이 개 주인이 원래 나였나요?”

주인님, 여기는 주인님 집입니다. 이곳의 모든 것이 원래 주인님 것이었고, 떨리우스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당연히 주인님의 개입니다.”

그렇다. 말이 되는 소리였다. 모든 기억을 잃어 낯설기만 한 이 집이 원래 내 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주인 대접을 받는 것이겠지. 나는 떨리우스를 안았다. 떨리우스는 얌전히 내 품에 안겨 있었고 나는 그를 안은 채로 조금 더 산책을 즐겼다. 조금 더 걸으니,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멀리 해안가가 보였다.

여기는 바닷가인가요?”

, 그렇습니다. 주인님.”

나는 바닷가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몇 시간이 순식간에 갈 줄은 몰랐다. 귀여운 떨리우스와 함께, 바닷가 모래사장을 몇 번이고 돌아다녔다. 나는 지금 내가 무척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 이런 기분도 처음으로 느껴보는 것만 같았다. 이 순간이 좋았지만, 한편에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놓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의 머리 한쪽을 계속 갉아먹고 있었다.

 

 

3. 두려움 속으로

 

철저히 감시해!”

저 쪽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주인님이라 모시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무엇을 감시하라는 말인가? 저 바깥에서 들려오라는 <감시>라는 단어가 과연 나한테 하는 소리인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 안에는 여전히 낮의 그 여자들이 잠에 취해 있었으며 넓디 넓은 정원과 하늘이 보이는 창, 넓고 넓은 해변. 이 곳은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의 장소란 말인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나는 지금 만족스런 쾌락에 빠져 있는 듯 하고, 지금 이 순간이 즐겁긴 하지만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나를 주인님이라고 불리는 저들이 결코 편안하지 않다는 것 뿐. 그들은 나를 통해 무언가 얻으려는 듯한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이용가치가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방 안에 엎드려 있는 저 여자들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들은 약에 취해 있는 것 같았고 모든 것이 귀찮은 듯 했다. 이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어 나는 문 밖으로 다시 나가 보았다. 나가자마자, 또다시 집사인 듯한 사람이 나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주인님, 어디 가시렵니까?”

본능적으로, 그들에게서 위협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바람 좀 쐬고 싶어서요.”

나는 저 넓고 넓은 밤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바깥 세상 구경 좀 하고 싶네요

, 주인님, 지금은 밤이 깊었으니, 오늘은 푹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이 세상을 구경시켜 드리지요. 주인님은 새로 태어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곳을 주인님의 파라다이스라고 부르지요. 아마, 다른 세상을 구경하시면 기분이 더 나아지실 것입니다. 매일매일이 주인님의 행복을 가리키는 시계가 되지요.”

진심으로 말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안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나는 지금 진짜 행복한 것일까? 쾌락의 정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저, 오늘은 생각하지 말자. 내일 아침이면 무언가 하나라도 윤곽이 잡히겠지. 나는 잠을 청했으나, 잠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밤이 아주 깊었다. 바깥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린다. , 무슨 소리인가. 궁금증은 더 커져갔으나, 일부러 나가 보지는 않았다. 내가 잠든 것으로 알 터인데, 그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 철저히 해!”

무슨 준비를 하란 말인가. 그리고 명령조로 말하는 저 사람은 내가 본 적이 없다. 그의 존재를 나에게 드러낸 적이 없다. 나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이 방안에도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나는 지금의 이 쾌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나는 저들이 무섭다. 나의 호기심이, 내가 갖고 있는 이 자그마한 쾌락의 즐거움조차 누비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 밤은 지나갔고 비로소 아침햇살이 밝아왔다. 나는 그들이 차려주는 맛있고 푸짐한 아침식사를 하고 비로소 세상구경을 하러 출발했다.

그리고 거기엔 내가 아직 보지 못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있었고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어디선가 분명 본 듯한, 그러나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나는 그를 대번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로 나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본 것이었다. 아버지는아버지는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나는 그저 사진만으로 그를 보았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 얼굴이 기억 난 것이 나에겐 또 한 번 신기한 일이었고, 그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는 내가 아들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그저, 내게 주인님 하면서 운전을 할 뿐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현상이, 또한 이 세상이 더욱 더 궁금해질 뿐만 아니라, 더욱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의 아버지는 살아계셨던 것이란 말인가? 아니면, 내가 죽은 것인가? 나는 점점 더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고 있었다.

 

 

4.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운전을 하는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이마 사이에는 많이 찡그렸을 듯한 인상의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내 옆에는 나를 주인님으로 모시는 건장한 사내가 그에게 갈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차는 길고 긴 바닷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검회색을 띤 바다. 바다가 원래 검회색이었던가? 나는 건장한 사내에게 물었다.

바다가 원래 이 색깔이었나요?”

바다 말입니까? 주인님? 기억 안 나십니까?”

원래 이 색깔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슨 색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주인님이 기억에 없으셔서 그렇습니다. 이 바다는 색깔이 수시로 바뀌는 바다입니다.어느 날은 파란 색이고 어느 날은 빨간 색을 띄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법의 바다로 불리기도 합니다. 주인님 기억이 돌아오신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이 사람은 나를 감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정말 위해 주는 사람인가? 아직 내가 기억이 돌아와서 지금 나는 정말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음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일까? 내 기억이 돌아온다면 나는 정말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뭐 하나 불편한 것이 없다. 내가 깨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불편한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주인님. 바다를 건너면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을 건너면 마을이 나옵니다. 주인님. 오늘은 거기에서 식사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식사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주인님만이 드실 수 있는 식당입니다. 이 모든 게 주인님의 것입니다.”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큰 부자였단 말인가?

정말 정말 제가 그렇게 큰 부자인가요?”

주인님, 저희도 주인님의 기억이 빨리 돌아와서 주인님이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저희를 대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만, 너무 서두르지는 마십시오. 기억이란 게 그렇게 쉽게 빨리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인님. 바닷가를 지났습니다. 이제, 산을 지나칩니다. 바깥 풍경을 좀 돌아보시죠

저건 무슨 나무인가요?”

소나무입니다. 여기는 모두 소나무만 있습니다.”

소나무요?”

, 그것도 기억이 안 나십니까

, 소나무는 어떤 나무인가요?”

주인님, 소나무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입니다. 보시는 그대로 느끼시면 됩니다. 저 뾰족하게 생긴 것이 소나무의 잎으로 불리는데, 그 소나무 잎이 생명력을 강하게 합니다. 주인님처럼 소나무는 생명력이 강합니다.”

저처럼요?”

, 주인님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력이 강한 분입니다. 소나무처럼 생명력이 강하신 것입니다.”

차가 소나무로 이어진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양 길가에는 모두 소나무로만 이어져 있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 가고 싶은데

주인님, 여기는 어디서나 화장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참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러더니, 그 사내는 차를 세우게 하고는 바로 길가 옆에 텐트 같은 것을 치더니, 나를 불렀다.

이게 뭔가요?”

간이 화장실입니다. 항상 차 트렁크에 휴대하고 다닙니다. 여기서 볼일 보시면 됩니다.”

나는 급해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고 급히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변기가 없이 단순히 칸막이만 막아놓고 일을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기다가 일 처리 하나요?”

일단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나는 일단 급해서 그 사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오줌이 땅바닥에 닿자마자 어딘가로 증발했다. 이게 무엇인가? 여기는 사람 사는 세상인가? 내가 깨어난 저택의 화장실에서는 오줌이 증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길래 오줌이 증발해 버린단 말인가.

볼 일을 보고 다시 차에 탔다.

시원하십니까?”

, 그런데 왜 증발하나요?”

여기는 신선의 산입니다. 마을에 가면 화장실이 따로 구비되어 있지만, 이 산에서는 화장실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지 액체로 된 것은 모두 증발해 버립니다. 그런 곳입니다. 이 산의 신비함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산은 잘 오지 않습니다. 증발해 버리는 것이 무섭다고 합니다. 주인님은 이 산을 무서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여기를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주인님을 모시는 저희들 말고는 지나다니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과 격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5. 마을사람들

 

차는 이제 마을로 들어섰다. 나무와 벽돌로 지어진 주택가가 드문드문 보인다. 길은 마을로 들어서서도 한참 동안을 지나가더니,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한 고층건물에 선다.

주인님, 다 왔습니다.”

이 창문들은 다 뭔가요?”

태양열을 이용한 창문입니다. 태양이 내리쬐면, 그 시간 동안, 이 건물은 태양열을 안으로 저장해 놓습니다. 그 열을 이용하여 난방도 하고 전기도 쓰는 겁니다. 에너지가 전혀 들지 않는 절약형 구조입니다.”

그의 설명은 명확했지만, 나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신선의 산과 태양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곳인데, 도무지 설명을 해주지 않으니 답답해 미치겠어요.”

주인님. 지금은 조금 답답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두르지 마십시오. 천천히 알게 되실 것입니다. 주인님이 누구신지, 주인님이 사는 이곳이 어디인지도 곧 아시게 될 겁니다.”

내가 누구인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 사내의 말은 점점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주인님, 올라가십시오.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여기는 몇 층이나 되죠? 마을에는 이런 곳이 없는데, 유일하게 높은 건물이네요?”

네 맞습니다. 마을에서 유일한 고층건물입니다. 44층입니다. 주인님을 모시게 될 곳도 44층입니다. 이곳에서 보시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보이시니, 만족하실 겁니다.”

“44? 44층까지 걸어서 가야 하나요?”

아닙니다. 주인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실 겁니다.”

, 엘리베이터. 그런 게 있었지. 기억나요.”

나는 그 사내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는데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주인님, 총개라고 부르셨습니다. 전에 총개라고 하면 제가 언제나 주인님 곁에 있었습니다.”

총개요?”

, 주인님.”

총개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주인님, 저는 주인님의 종입니다. 님자는 빼시고 총개라고만 부르시면 됩니다.”

, 알았어요. 총개님. 익숙해지면 총개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44층에 도착했다. 그 넓은 홀에 원탁 테이블이 달랑 하나. 그리고 창가를 보니, 내가 왔던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에는 갈지자로 길이 뻗어 있었고 형형색색의 마을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검회색이었던 바다가 푸른 바다로 변해 있는 것도 보였다.

식사를 대령하게.”

,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종업원인 듯한 사람에게 총개가 명령하고 있었다. 저 얼굴, 역시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총개님. 어찌하여 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나요?”

주인님, 곧 보시게 될 것입니다. 우선, 식사부터 하십시오.”

뭔가를 감추듯, 총개는 얼른 말을 가로채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운전사는 안 오나요?”

운전사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할 것입니다.”

왜 같이 안 오나요?”

주인님, 여기는 주인님 전용 식당입니다. 주인님만 식사하실 수 있습니다.”

총개님은 안 드시나요?”

저는 미리 먹습니다. 주인님의 시중을 들 때는 식사하지 않습니다.”

또 혼자 먹게 되는 밥이다. 점점 밥맛을 잃어가고 있었다.

식사 나왔습니다.”

, 어제랑은 완전히 다르네요?”

주인님, 기억 안 나십니까?”

, 어제 먹었던 것은 뭐였는지 대충 알겠는데 이건 도무지 뭔지?”

이것은 된장찌개이고, 이것은 김치전, 이것은 갈치구이, 이것은 탕수육이란 것입니다

총개는 하나하나 음식을 가리키면서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김치고 이것은 깍두기, 이것은 깻잎이라는 것입니다. 주인님은 한국이란 곳에서 태어나셨으며 한국에서 난 음식을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한국이요? 아 제가 태어난 곳이 한국이군요. 그럼, 여기는 어딘가요? 여기는 한국이 아닌가요?”

주인님, 지금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 스스로 기억해내지 않으면 주인님은 또 기억을 잃게 되실 것입니다. 주인님, 꼭 기억해내실 것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이건 또. 알고 있으면서 말씀드릴 수가 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러나 물어보면 안 될 것만 같은 긴박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저쪽에서 아까의 그 종업원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이 영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주인님, 어서 식사를

그런데, 이건 뭔가요? 색깔이?”

그것은 잡곡밥으로 주인님의 주식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나는 잡곡밥이라 불리는 것을 먹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그가 설명해준 된장찌개와 반찬들을 아주 맛있게 먹어치웠다.

주인님, 어떠십니까? 이 모든 게 주인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은 왜 이리 우울하게만 들리는 것일까.

내것이라구요? 맛있게 먹고 즐겁게 구경하고 하는데 왜 마음 한구석은 허전한 걸까요? 마을 사람들은 언제 보나요?”

총개가 잠시 고개를 숙여 딴 곳을 바라보다가, 몇 초 되지 않아 다시 나를 보며 대답했다. 나는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보았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주인님, 이제 마을 사람들을 만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1층에 모여서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주인님의 기업에서 주인님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셔야만 합니다.”

, 그들도 모두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은 허전한 채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저기 온다

1층으로 내려간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지막하게 수근거렸으나, 그들의 말들이 내 귓가로 들려오고 있었다.

절대 거기에 대해선 얘기하면 안 되네. 그러면 큰일 나니까

알아. 절대. 우리를 위해서 하지 말아야 돼

그저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네, 알았지?’

걱정하지 마.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까.’

총개는 나를 마을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여러분, 우리 주인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비록 기억의 많은 부분을 잃으셔서 여러분을 기억하지는 못하시긴 하지만, 우리 주인님을 위해 박수 부탁드립니다.”

나는 당황해서 총개에게 물었다.

제가 박수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주인님. 지금은 그냥 묻지 말고 즐기세요.즐기다 보면 아시게 될 겁니다.”

더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맞아요. 우리의 주인님이세요.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리는 주인님 덕분에 행복합니다. 그러니, 박수 받을 만 합니다.”

그와 동시에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 터져나왔고, 길게 이어졌다.

, 마을분들이 몇 명이나 되죠?”

여기 오신 분은 각 마을의 대표로 100명입니다. 그리고, 각 마을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죠. 하지만, 주인님은 그 고장으로 가실 수가 없습니다.”

아니, 왜요?”

마을 사람들이 주인님의 수고하여 오시는 걸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이기도 하고, 만약 주인님이 어느 마을은 가고 어느 마을은 가지 않는다면 섭섭해 할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인님은 즐겨야 하실 분이지, 고장을 방문하는 수고를 해야 하시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저는 여기를 벗어나면 안 되나요?”

주인님. 그편이 저희를 위하는 길입니다. 주인님이 편안하셔야 하고 저희로서는 주인님의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마을로 가시다가 사고라도 나신다면 저희가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저희를 위해서라도 마을로 나가시겠다는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대신, 여기에서 필요한 모든 걸 해드리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주인님이 살아있는 걸 확인하셔야겠다고 하셔서 이리로 부른 것입니다. 이분들과 만나는 날도 1년에 한번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 법칙은 누가 정하는 건가요? 주인이 나라면서요? 그런데 왜 주인 맘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겁니까? , 주인 맞아요?”

총개가 멈칫했다. 그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드리워졌다.

주인님. 거기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설명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주인님인 것은 확실합니다. 주인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총개는 그러더니,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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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다의 소설] 로즈마리, 변하다 | 장르소설 2021-01-11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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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해는 집에 들어오는 벌레를 쫓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해 보았다. 약을 뿌리는 건, 일시적인 방편이니, 지속적으로 벌레가 근처에 안 오게 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어느 날, 상구네 집에 갔는데, 식물이 하나 있었다.

이게 뭐야?”

로즈마리.”

, 이걸 왜 키워?”

벌레들이 싫어하거든

그래, 나도 키워야겠다.”

그래, 그럼 하나 골라봐.”

진짜?”

, 난 많거든. 가지치기 하면 여러 개 키울 수 있어.”

그렇구나.”

벌례 때문에 고민이었던 시해는 상구가 고마웠다. 상구의 집에서 로즈마리를 골라 보는데, 희한한 모양의 로즈마리가 하나 있었다. 위와 중간이 넓은데, 위와 중간의 사이는 좁고, 아래 쪽 역시 좁게 풀들이 나 있는 로즈마리였다.

이건 왜 이래? 다른 건 반듯한데?”

나도 모르겠어. 아무리 똑바로 자라게 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늘 저래. 희한한 건, 그래도 죽지는 않는다는 거야. 어때, 맘에 들어?”

난 오히려 이런 게 좋은 거 같은데?”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그건 내꺼가 아니었다니까.”

?”

왠지 저 로즈마리는 나를 싫어하는 거 같거든.”

그런 느낌도 들어?”

, 그래서 나도 그 녀석을 언젠가 떠나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었지.”

, 그래? 고맙다. 내가 질 키워볼게.”

내가 고맙다. 히히.“

시해는 로즈마리를 가지고 집에 왔다. 그것을 보면, 왠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로즈마리가 벌레를 쫓아준다는 말이 좋았다. 그래, 이젠 벌레에서 해방되는 거야!

 

2.

시해는 로즈마리를 데리고 와서 지극적성으로 돌보았다. 너무 지나치게 물을 많이 줘도 안 된다는 말에, 물을 언제 주는 것이 적당할까를 고민하면서 물을 주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로즈마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덕분인지, 더 이상 시해의 집에 벌레가 접근하지 않았다. 시해는 살 것 같았다. 이 로즈마리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벌레들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는 안도감이 시해의 마음에 자리잡았다. 시해는 더욱 더 로즈마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시해는 꿈을 꾸었다. 로즈마리가 사람으로 변하는 꿈이었다. 그것도 여자다. 사람으로 변한 로즈마리는 시해에게 몹시도 불친절했다.

 

, X!“

사람으로 변한 로즈마리가 욕부터 해댔다.

아니, , 누구세요?“

너 때문에 망쳤다.“

망쳤다니요?“

내가 사람되는 거. 너 나를 왜 이렇게 예뻐해? !“

아름다운 그 여인은 오히려 시해를 나무랐다. 시해는 정신을 못 차렸다.

나를 미워해야 내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왜 나를 이리로 데려와 가지고, 끔찍이 아껴주는 거야?“

그야, 식물이니까요.“

난 식물이 아니라고!“

좀 전까진 식물이었잖아요. 로즈마리.“

그래, 그랬지.“

어떻게 된 거예요?“

마법에 걸렸어. .“

왜요?“

난 다시 식물으로 변한다. 아아 억울해. 아직 할 말도 다 못

시해는 그녀가 식물로 다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꿈에서 깨니, 로즈마리는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저 식물이 정말로 사람으로 변하까? 그럴 리는 없을 거 같은데. 로즈마리를 바라보는 시해의 표정에 두려움이 일었다. 여태껏 자신이 열심히 돌봐왔던 로즈마리에게서 배신감도 느꼈다. 사랑의 대가(代價)가 이런 것인가. 시해는 로즈마리를 정말로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즈마리가 정말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로즈마리가 정말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꿈에서 본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읻. 시해는 이 알 수 없는 양가감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시해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해는 밤새도록 로즈마리를 기다렸다. 로즈마리는 변하지 않았다. 아침이 오고 뜬금없이 상구한테 전화가 왔다. 상구가 시해네 집에 있는 로즈마리를 보고 싶다고 했다. 시해는 상구에게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었다. 상구가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 로즈마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밤에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시해는 상구에게 집으로 오라고 했다. 상구가 집까지 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시해는 상구에게 밤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했다. 상구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지금은 꾸지 않지만, 그 로즈마리를 갖고 있을 때는 자주 그런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로즈마리를 미워했고, 그래서 시해에게 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껄끄러우면, 자기가 다시 가져가겠다고도 했다. 시해는 싫었다. 이 로즈마리를 미워하기가. 시해가 상구에게 말했다.

너는 미워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로즈마리를 미워하지 않을 거야. 그냥 꿈일 뿐이잖아.“

그런데, 이상한 꿈이지.“

너는 이 로즈마리를 버려놓고 다시 보고 싶어 이렇게 온 거잖아.“

상구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이 로즈마리는 내가 잘 키워볼게. 보고 싶으면 언제든 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상구의 마음이 틀어진 것은. 상구는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더니, 잘 있어, 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휭하니 가버렸다. 시해는 상구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해는 상구를 보내고 로즈마리를 쳐다보았다.

로즈마리, 오늘부터 너에게 너의 이름을 지어줄게. 영순이. 어때? 마음에 들어? 넌 오늘부터 나의 여자친구다.“

시해는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로즈마리에게 왜 여자친구라고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상구가 자주 꿨다는 그 꿈을, 시해도 자주 꾸었다. 꿈 속에서 그녀는 자주 나타나 시해에게 투덜댔다.

이러면, 내가 사람이 못 되잖아! 제발 날 사랑하지 말라구.“

, 왜 사람이 못 되는데요?“

그걸 말로 설명할 수가 없, X. 또 변하네

듣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늘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꿈 속의 영순이는 언제나 투덜대기만 하다가 로즈마리로 돌아갔다. 꿈속의 영순은 늘 알몸이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옷을 왜 안 입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저 식물로 살아가느라 옷이 없겠더니 짐작만 할 뿐이었다. 더더군다나, 그건 꿈일 뿐이잖아, 라며 시해는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어떤 성적인 욕망도 허용되지 않는 꿈일 뿐이었다.

 

가끔, 꿈에서 깨고 나면 몽정을 할 때도 있었다. 알몸의 영순이가 너무나도 탐이 나서 그녀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고자 시도하려고 하면 꿈에서 깨었다. 시해는 로즈마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꾸 그의 꿈 속에 나타나서 이렇게 성적 욕망을 부추기는지. 시해는 로즈마리를 계속 돌봐주는 게 맞는지, 계속 사랑해야 하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시해는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가지치기를 해보기로. 만약, 이 로즈마리가 진짜 사람이라면 잎을 자를 때 조금은 아플 거다. 그래서 다시는 내 꿈에 나타나지 않을 거다. 라는 위험한 생각도 함께 했다.

 

 

3.

꿈은 이어졌다. 아주 조금 잎의 귀퉁이를 살짝 잘라 내었을 뿐이라서 그런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해는 로즈마리 잎의 반을 잘라내기로 했다. 가위를 들고 그 앞에 섰다.

네가 사람으로 변하면 안 자른다!“

시해는 잎을 잘라내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꿈일 뿐인 건가. 시해는 문득, 자신이 이 로즈마리를 미워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시해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해는 이 로즈마리 영순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기로 마음먹었고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지금의 그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시해는 다시 로즈마리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기로 마음먹었다.

미안하다. 앞으로는 너를 더욱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줄게

꿈은 점점 더 심해졌다. 어느 날은 사람으로 변한 영순이가 시해를 죽이려고 칼을 든 것을 보기도 했다. 로즈마리 영순을 사랑하면 할수록, 꿈은 점점 더 악몽으로 변해갔다. 시해는 자꾸 왜 그런 꿈을 꾸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너를 돌봐주는데, 그 대가가 겨우 이거냐, 며 푸념을 하는 순간이 늘어만 갔다. 한편으로는 꿈일 뿐이잖아, 라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렇지만, 꿈이 자꾸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해는 상구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꾸고 있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상구가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도 그런 꿈을 자꾸 꾸었다고 했다. 이 식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시해가 가져가겠다고 해서 반가웠다고 했다. 아무래도 버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상구가 말했다. 아직도 그 식물이 보고 싶냐고 상구에게 물었다. 지금은 벗어났다고 했다. 어떻게 벗어났냐고 물었더니, 시해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더 이상 그리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상구가 물었다.

아직도 그 마음 변함 없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어느 날은 미운데, 그러다가도 이럼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그냥, 식물일 뿐이잖아. 그리고 꿈은 꿈일 뿐이고. 왜 분리가 안 되는 거지?”

버리고 싶지 않으면, 다른 사람한테 줘봐. 대신, 그 상황을 솔직히 얘기하고.”

상구는 다른 누군가가 또 같은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면서, 시해에게 솔직히 얘기하라고 했다. 시해는 그 식물을 받아 줄 사람이 있을까, 하고 상구에게 물었다.

그거야, 잘 모르지. 동기들 집에 초대해서 파티 한번 벌이는 건 어때? 네 생일이 언제지?”

아직 멀었지.”

뭔가 축하할 만한 일 없어?”

이번에 면허 땄어.”

, 그걸 이제야 얘기하냐. 축하파티 연다고 해. 내가 도와줄게.”

상구는 시해와 파티의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 얘기하고, 이 식물이 누구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건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파티에서 시해가 겪은 이야기를 모두 이야기할 거라고 하면서.

 

4.

시해와 상구의 친구들이 면허를 땄기 때문에 축하파티를 연다는 말에 다소 의아해했지만, 파티에 오면 깐풍기를 시켜주겠다고 하니, 흔쾌히 오겠다고 했다. 다른 것보다 깐풍기는 무척 먹고 싶었나 보다. 여섯명이 오기로 했다. 상구와 시해는 로즈마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작전을 짰다. 시해가 꾸는 지나친 악몽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악몽을 꿀 수도 있다는 정도만 얘기하기로 했다. 시해는 그래도 되냐고, 상구에게 물었더니, 만약 불편을 느낀다면, 버려도 된다고 얘기해주면 된다고 했다. 시해는 맞는 말인 거 같다며 동의했다.

파티날이 되었다. 토요일이었다. 시해는 친구들에게 12시쯤 오라고 했다. 10시쯤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친구들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해는 문자를 보냈다. 몇 시쯤 와? 여섯 명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고, 10분 후 답문이 오기 시작했다.

미안. 급한 일이 생겼네. 갑자기 부모님이 오신대

미안, 오늘 여자친구가 만나자고 떼를 써서. 거기 간다고 했더니, 오늘 자기 안 만나면 헤어지는 걸로 알래.”

미안. 동생이 갑자기 아파서.”

미안. 갑자기 해외출장이 잡혔네. 오늘 아침에 연락왔어.”

미안. 나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와 있어. 링거 맞고 있어.”

미안. 오늘 집이 이사하는 걸 깜빡했네. 와이프가 그걸 잊어버리면 어떡하냐고 벼르고 있어서.”

여섯 명 모두 오지 않았다. 시해는 상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상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냈다.

모두 못 온다는데 어떡하지?“

10분 후 상구한테 전화가 왔다.

시해야. 미안하다. 이제 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 네가 알아서 해야겠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버리던가 해야 할 거 같아.”

시해는 로즈마리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다가 또 잠이 들었다.

넌 내가 사랑의 대상이 아니고, 성욕의 대상이지? 네 알량한 성욕을 채우려는 욕심으로 나를 택한 거야. 가증스런 자식!”

시해는 꿈에서 깨었다. 로즈마리는 여전히 로즈마리였다.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건, 허무맹랑한 생각인 걸 시해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5.

아침부터 시해는 분주했다. 신제품 볼펜광고의 프리젠테이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광고를 못 따내면, 시해는 팀장 싸움에서 밀릴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카피라이터 인생을 마감해야 할 지도 몰랐다. 사활을 걸어야만 했다. 볼펜에서 영순의 얼굴이 겹쳤다. 볼펜광고에 영순의 알몸이미지를 덧입히고 싶었다. 성인광고의 이미지를 이용하면서도, 성인광고 같지 않게 덧입히는 방법을 시해는 고민했다. 로즈마리를 처음 봤을 떄가 떠올랐다. 로즈마리의 이미지와 볼펜의 내구성을 잘 결합하면? 뭔가 나올 것 같았다.

 

대박을 쳤다. 광고주가 시해가 만든 광고에 흡족해했고, 볼펜은 대히트를 쳤다. 시해는 광고의 성공 덕분에, 3팀의 팀장을 맡게 되었다. 팀장 자리는 프리젠티이션 능력도 좋아야 하지만, 팀원들이 좋은 카피를 쓸 수 있도록 지원도 해 주어야 한다. 지원이야 팀장의 몫은 아닐 수도 있지만, 시해는 그것이 팀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팀원의 사기가 높아지고, 훌륭한 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악몽은 계속되었다. 로즈마리 덕분에 시해는 점점 더 성공의 길을 달리고 있었지만, 꿈 속의 영순은 시해를 점점 더 괴롭혔다.

나를 여자로만 보는 개자식!”

, 나 강간이라도 하지 그러니?”

내가 아직도 여자로 보이니?”

영순는 비아냥거렸고, 시해는 너무 두려웠다. 언제든 저 로즈마리가 사람으로 변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이젠 정말 로즈마리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로즈마리를 버리려고 결심하면, 이번엔 영순이 꿈에 나타나 시해에게 명령했다.

나 버리지 말아!”

나 버리면 죽을 줄 알아!”

나 때문에 잘된 거잖아. 은혜도 모르고!”

시해는 영순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해는 악몽과 함께 몇 년을 보냈다.

 

시해는 영순이 실존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시해가 로즈마리 영순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본 건, 신입사원 면접 자리에서였다. 신입사원 영순은 꿈에서의 영순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시해는 면접관이었다. 눈앞이 아득했다. 저 사람을 뽑지 않으면 시해는 뭔가 큰일날 것만 같았다. 시해는 다른 면접관에게 우리 팀으로 넣을 테니, 신입사원 영순을 뽑자고 했다. 영순의 이름은 영아였다. 시해는 영아를 뽑았다. 신입 카피라이터. 시해는 영아가 좋으면서도 미웠다. 한편으로는 잘 해 줬지만, 실수할 때는 따끔하게 혼을 냈다. 영아는 그런 시해를 잘도 버텨냈다.

 

6.

어느 날 영아가 시해에게 말했다.

팀장님, 저한테 왜 이렇게 잘 해주세요?”

뜨끔했다. 시해는 자기가 뭘 잘해 줬는지 생각해 봤지만, 딱히 잘해 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너한테 잘해 줬다고?”

. 왜 이렇게 잘 해주세요?”

글쎼.”

영아는 한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시해를 보더니 말했다.

저희 집에 가요

?”

집에 가요.”

시해는 잠깐 놀랐으나, 오래 망설이지는 않았다.

자꾸만 로즈마리 영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로즈마리 영순이 있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래도 될까?”

그래요, 가요. 까짓 거.”

시해는 영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으니, 영아의 집에 같이 가기로 했다.

시해의 다소 들뜬 마음이 하늘에 부딪혔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과 드디어, 나도, 라는 생각이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과 맞부딪혔다.

영아는 전혀 긴장된 표정이 아니었다. 가는 도중 영아가 물었다.

팀장님, 저 그럼 내일부터는 팀장님께서 밥을 사 주시는 거죠?”

, 그러지, 그렇게 하자.”

시해는 영아의 거침없는 대쉬에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영아의 집은 조금 멀었지만, 깔끔한 동네였다. 시해는 드디어 영아의 집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영아에게 물었다.

, 정말 영아 집에 가도 돼?”

 

7.

영아는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영아네 현관문을 열었다. 시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영아의 집이 꽤 넓다는 건 알겠는데, 왜 가구가 하나도 없는 걸까. 침대도, 책상도, 의자도, 심지어 이불도 보이지 않았다.

영아씨, 왜 가구가 하나도 없어?”

영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해를 집안으로 끌어당겼다. 영아의 웃음소리가 저 멀리 울려퍼졌다. 시해의 눈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영아의 벗은 몸조차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니, 시해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찬란한 햇빛, 그리고 여기저기서 흘려들어오는 물소리만이 시해의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시해는 그 자리에 서서 얼어붙었다.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모습, 시해의 눈에는 이제 사람이 된 영아가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고, 시해는 따라갈 수 없었다. 시해에게 들리는 물소리는 점점 더 거칠고 세졌다. 햇빛도 점점 따가워졌다. 시해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그리고 시해는 점점 더 시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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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 | 장르소설 2020-12-0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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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인 ( 外 人 )

 

 

 

 

 

프 롤 로 그

 

 

"접근 암호 x208. 살인 목표물 여우팔찌. 수신 여우 꼬리. 발신 여우 목걸

. "

통화는 조용하고 간단했다.

'찰칵'

'찰칵'

 

 

1

 

"날씨가 많이 추워졌군."

외투깃을 여미며 들어오는 서장의 굵은 목소리가 비좁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서장님. 오늘은 유난히도 춥죠?"

형식적인 대화가 몇 차례, 오고 갔을 뿐 이내, 오후의 침묵은 싸늘한 날씨만큼이나 그들을 에워쌌다. 한참 후 서장은, 서랍에서 몇 장의 사진을 꺼내들고 그 중 한 장을 골라 이 형사에게 내밀었다.

"자네, 이 여자 아나?"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몽타쥬. 그래, 그것은 사진이라기보다는 몽타쥬에 가까웠다. 사진을 보는 이형사의 눈빛이 희미하게 찌푸려졌다. 서장은 그런 그의 눈빛을 지우기라도 하듯, 사진을 낚아 채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거물급 사기꾼인데, 아주 특이하고 영리해서 좀처럼 덜미를 잡기가 힘들다네. 그녀의 주요 목표물은 다른 사기꾼인데, 바로 그여자의 그런 사기행각이 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든다네. 그녀가 사기를 치는 사기꾼을 우리가 찾아내야만, 그녀의 덜미를 잡을 수 있는데 말이야."

전화벨이 울렸다. 서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그래? 곧 보내겠네."

통화는 간단했고, 서장은 곧 이형사를 향해 말을 퍼부었다.

 

"드디어, 그여자도 걸려들 모양이군. 지금 곧 출동하게. 총력전이네."

"여자 한 명에 총력전을 펼칩니까?"

"여자라고 우습게 보지 말게. 마약 밀매에 손을 댄 모양이야.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준비해!"

 

이형사는 지우려 지우려 아무리 애써도 자꾸만 떠오르는 여인의 모습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사진 속의 그 여인. 지금은 이미 몽타지라는 희미한 기억 속에 묻혀버린, 그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 한 구석 깊은 곳에 자리잡고, 마치 그의 수호천사라도 되는 듯 떡 버티고 서서 좀처럼 나가려 하지 않는 한 여인의 기억.

"서장님, 한 가지 물어 봐도 됩니까?"

"뭔데 그러나?"

"그 여자에 대한 정보는 누가 입수합니까?"

"김형사에게 물어보게나."

 

 

2

 

여인의 모습이, 주택가 귀퉁이 골목길에서 줄지어노는 아이들의 눈에 비쳤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허공을 휘저었고, 홱홱 젖혀대는 길다란 팔 안으로 엉덩이가 씰룩거렸다. 아이들은 그녀가 나타나자,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를 놀려댔다.

"오리 궁둥이. 헤헤."

"아니야. 저건 분명 여우 꼬리야."

"웃기지 말라구. 저 누나는 분명 오리야."

"여우꼬리! 오리 궁둥이!"

끝없이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놀림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여인은 몸에 꽉 끼는 옷차림으로 거리를 가로질렀다.

그녀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쩍쩍 다시며, 하나 둘 저마다의 집으로 제각기 흩어졌다. 지평선 사이로 물드는 붉은 하늘만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출렁이고 있었다.

여인이 이 동네에서 살게 된 건, 어느 추운 겨울날부터다. 그녀는 쬐그만 용달차에다 책상과 화장대, 그리고 보따리만 몇 개 실고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는 그 후 한번도 얼굴을 내민 적이 없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무얼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그녀가 언제 이사 왔는지조차 몰랐다. 심지어, 그녀를 이웃동네에 사는 아가씨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봄기운이 그녀를 거리로 내몰았을 때, 그녀는 아이들의 환영을 받으며 화려한 등장을 했지만, 그녀는 동네의 어떤 사람에게도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누가 말을 건넬라 치면, 그녀는 그 사람을 무시해버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한 그녀의 행동은 동네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고, 곧 그녀가 버릇없다느니, 무례하다느니 하는 말만이 떠돌았다. 그 후,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무시해 버리거나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밤낮 여인을 배웅하는 재미에 골목길을 드나들었다. 여인은 그들의 배웅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끔 귀찮다는 듯이 그들에게 돈을 몇 푼 쥐어주면서, 멀리 구멍가게로 쫓아내곤 했다. 그럴 때, 여인은 웃음을 짓곤 했는데, 아이들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신기하게 쳐다보면서도 막상, 공돈이 생겼다는 게 기쁜지, 아무말없이 그녀에게서 사라져버리곤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더 솟구치는 아이들의 호기심은 억제할 수가 없었다.

봄기운이 채 가시기 전, 아이들은 몇 명의 남자를 거느리고 다니는 그녀를 보았다. 그들은 어쩔 때는 한 명, 다른 때는 두 명, 가끔은 여러 명씩 거느리고 올 때도 있었는데, 얼굴은 거의 매번 바뀌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무서워서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한번은 여인과 남자가 아이들이 노는 골목을 지나다가 정면으로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남자는 아이들에게 동전 몇 개를 쥐어주면서 말했다.

"얘들아, 까까 사 먹고 가서 놀아라. 그리고, 여기로 오지는 마. 안 그럼, 다음부턴 까까 안 사준다."

그 후로 아이들은 여인이 남자를 데리고 오는 날을 기다렸고, 그런 날은 어김없이 구멍가게로 가서는 맛있게 놀 수가 있었다. 아이들은 여인이 데리고 오는 남자를 모두 '보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들이 돈을 받으면, 그들은 어김없이,

"보스, 고맙습니다. 이번 일은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반드시 처치하고 오겠습니다."

하며,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는 쏜살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한결같이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그들이 영화 흉내를 내는 것임을 깨닫고, 요즘 아이들의 머리는 참 일찍 돌아간다며 혀를 내두르면서 씨익 웃고 마는 것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아이들의 머릿 속에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혀엉, 그런데 그 사람들하고 그 누나랑 뭐야?"

"무슨 말 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 아찌들하고 그 누나 뭐 그런거...있잖아?"

"난 또. 그걸 '관계'라고 하는 거야."

"맞아. 간개가 뭐야?"

"'간개'가 아니구, 관계!"

"어렵단 말야."

"좋아, 대충하자. 저기 대답해줄 만한 사람이 오는데......"

", 미선이 누나다!"

"무슨 얘기를 하는데 나를 그렇게 빤히 쳐다만 보고 있는 거야?"

"누나, 아찌들하고 그 오리누나랑 무슨 간개야?"

"간개?"

"얘는 '관계'란 발음을 못 하잖아."

", 관계가 뭐냐고?"

"너라면 알 것 같은데."

"아마, 남편일 것 같애."

"남편? 무슨 남편이 그렇게 많아?"

"혀엉. 남변이 뭐야?"

"네 엄마의 아빠가 남편이지 뭐야?"

"? 그러믄, 우리 외할아버지가 남변이야?"

"아휴, 이 바보."

"그게 아니라, 네 엄마한테는 네 아빠가 남편이라는 거야. 알았지?"

", 그러니까 아빠가 엄마한테 남변이라는 소리구나. 근데, 저 누나는 남변이 저렇게 많아? 그러믄, 우리같은 애들이 몇 명이나 되는 거야?"

", 너하고는 말이 안 통한다."

 

아이들의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닭이 알을 까듯이 하나씩 더해졌다. 그들은 5월의 어느 날, 여인에게서 어린이날이라며 억지로 뜯어낸 돈으로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서 먹으면서 놀다가, 문득 새 화제거리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 여자 돈이 어디서 나지?"

"누구 말이야, 혀엉? 그 누나?"

"그래, 임마. 미선이, 너는 알 것 같은데. 너는 그쪽에선 끝내주잖아?"

"글쎄. 내 생각으로는 그 뭐라더라? 매춘부라 그러나? 그런 거 같애."

"혀엉, 매춘부가 뭐야?"

"임마, 넌 아직 몰라도 돼."

"피이-. 형도 모르니까 갠히 ......"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남자한테 돈 받는 여자래."

"? 그냥 돈 주는 남자도 있나? 하기야, 저 여자도 그냥 우리한테 돈 주니까. 그럴 만도 하네."

"글쎄, 그런가 봐. 매춘부하면 그렇대. 그런데, 우리 엄마는 절대로 나는 그런 거 하면 안 된대. 정말 어른들은 알 수가 없다니까."

"그러믄 난, 매춘부해야지."

", 남자는 안 돼."

"그래, 남자는 매춘부하면 돈 주는 거래."

"에이......"

 

아이들은 여자를 매춘부로 놀려댔고, 그 놀림은 소문으로, 그 소문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동네 사람들은 이제 그녀를 보면, 슬금슬금 피해 다녔고, 아이들에게도 그녀는 나쁜 사람이라고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의 눈을 피해 여전히 여인을 쫓아다녔다. 마치, 개가 닭을 쫓는 모양으로.

마지막. 아이들이 그토록 잘 따르던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한여름의 가장 더운 어느 날이었다.

 

 

3

 

"그래, 잘 됐나?"

"마약밀매업자들은 소탕했지만, 그 여자만은 사로잡지 못 했습니다."

"그럼, 죽였단 말인가?"

"아닙니다. 마찬가지겠지만, 여자는 동맥을 끊고 자살해 버렸습니다."

이형사의 목소리에 약간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그런가? 어쨌든 수고했네."

 

 

이형사는 조각난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그에게 이 목걸이를 붙잡고 놓아 주려 하지 않는 이 알 수 없는 힘은. 그 신비한 힘은 그가 처음 이 목걸이를 보았을 때 그를 강력하게 사로잡았다. 그는 그의 모든 것을 바치고서라도 그것을 가져야 한다는 강한 욕망을 가졌었다. 도대체 왜일까.

 

 

4

 

"그래, 왠 일이야? 나한테 데이트 신청을 다하고?"

",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뭘로 드시겠어요?"

여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 속을 후볐다.

"뭐 마실래?"

이형사가 물었다.

, 커피 마실거지?”

"아니야, 난 레몬차."

"그래? 웬일이야, 커피를 다 마다하고? “

그냥, 나에게도 뭔가 변화가 필요한 거 같아서.

그래? 그럼, 레몬차 두 잔 주세요."

", 감사합니다."

여자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갔다.

"뭘 물어 보시려고? 여자 때문에 고민하시나?"

"여자? 난 널 보면서 여자는 역시 사귈 만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 너 재미 없을 줄 알어."

차가 나올 때까지 그들은 이런 저런 농담을 주고 받았다.

"이제, 본론을 얘기하시지."

그들은 서로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으로 불을 나누어 붙였다. 담배연기가 그들이 앉아 있는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여자에 대한 정보 말인데... 그 정보 어떻게 입수했지?"

김형사는 잠시 주저했다. 이형사는 그녀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었다.

"사실, 정보 입수하기는 어렵지 않았어. 그 여자가 우리 집에다가 전화를 해서 알려주었거든."

"직접 너네 집에? 그 여자가?"

". 아마 그 여자였을 거야. 그게 전부야. 여자에 대한 정보는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었거든. 그 여자는 거래 장소를 알려 주었을 뿐이야. 물론 암호같은 말로 했는데, 암호는 바로 접촉 직전에 해석을 할 수 있었어."

 

더 들을 건 없었다. 그녀에게선. 그들은 헤어졌다. 아무 말없이. 차값은 각자 부담.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인사였다. 전류의 짜릿함이, 그들을 감전시킬까 봐 그들은 서로를 두려워 했던 것이다.

 

5

 

잡으려 잡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잡히질 않던 여인의 얼굴. 그녀의 얼굴이 차디찬 시체로 그의 앞에 나타났을 때, 여인의 온몸에서 풍겨 나오던 온화함.

여인, 새삼스레 여인이라는 낱말이 그녀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이형사는 검퓨터의 스위치를 올리고, 정보부를 연결했다.

"암호는?"

암호? PASSWORD? 그는 아득한 먼 추억을 회상하듯, 기억을 더듬었다.

"2049. 710708"

아무런 뜻도 없는 암호. 그는 간신히 기억해낸 그 번호의 자판을 눌러댔다.

"O.K. PASS"

그는 여인의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불여우? 그런 사람은 등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컴퓨터의 음성 신호가 '-' 소리를 냈다. 지문 검색. 그는 손바닥을 컴퓨터의 모니터에 갖다 대었다.

"YES. RIGHT. PASS."

이형사는 다시 여인의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 여우 목걸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자료를 찾아 보겠습니다. , 화면에는 그녀에 관한 정보가 나열되었다. 프린터를 하시겠습니까?(Y/N)

그는 Y자의 자판을 눌렀다. 프린터기에서 자료가 복사되었다.

 

여우 목걸이에 관한 정보 자료. 죄수번호 1111. 2025,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음.

5년 후, 탈옥. 또 다시 살인을 했으나, 잡지 못함. 살인동기는 두번 모두 강간범에 대한

증오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명됨.

지금은 거대한 X 조직의 일원으로 마약과 사기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짐.

여우 목걸이에 대한 사적인 정보를 원하면, P를 누르시오.

 

그는 P자를 쳤다. 곧이어 또 다른 정보가 프린트 되었다.

 

여우 목걸이의 사생활. 2015년 낙태 수술을 해 벌금을 문 적이 있음.

2019년 딸을 출산. 두번 모두 사생아였음. 2023년 딸을 고아원에 버림.

그 이듬해 아이는 입양된 것으로 알려짐.

혈액형 인자는 BB. 최신정보를 원하십니까? (Y/N)

 

그는 N을 치고, 전원을 내렸다. 그리고 마냥 전해져 오는 아득한 기억 속에 그의 몸을 내맡겼다.

 

 

 

 

 

6

 

아이는 조용히 서 있었다. 여인은 멀뚱히 아이를 쳐다보다가 금빛의 목걸이를 아이의 목에 걸어주고 말없이 멀어져 갔다. 하늘은 맑았다. 아이는 여인이 멀어지는 거리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는 목에 걸려진 목걸이가 걸리적거리는지 그것을 빼내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더니 하수구 구멍으로 그것을 집어던졌다. '퐁당'하는 탁한 소리가 아이의 귀를 때렸다.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아이에게 물었다.

"집이 어디니?"

아이는 말이 없었다.

"엄마가 누구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마치 자기를 버린 엄마를 원망하듯 마음씨 좋게 생긴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없나 보구나? 아유, 불쌍해라."

아이가 간 곳은 고아원이었고, 그 다음해 아이는 바로 입양되었다.

 

여인은 비틀거렸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져 가고, 사람들은 퇴근길을 서둘렀다. 여인이 골목길을 들어섰을 때, 비로소 그녀는 헛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어디 두고 보자."

", 저 여자 왜 저러냐?"

아이들의 소곤거림. 이어 동네 관리인의 등장.

", 고자질쟁이다. 어서 도망가자."

그들은 잽싸게 달렸다. 남자의 얼굴이 지는 햇살 속으로 가려져 갔다.

 

아이는 밤길 나다니길 좋아했다. 그날 밤, 아이는 골목길 어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보, 오랜만이야."

"왜 왔죠?"

불분명한 여인의 말소리.

"여기가 어디죠? 나를 집에 데려다 줘요."

"취했군. 너무 취했어. "

"그래요, 취했어요. 당신은 누구죠? 관리인? "

"여보, 나야. 정신 차려."

"저는 그년을 죽일 거예요."

여인의 욕지거리가 아이의 귓가를 타고 흘렀다. 곧이어 알 수 없는 신음소리. 여인은 행복해 보였다. 아이는 말없이 사라졌다.

 

 

 

다음 날, 아이들이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잠들어 있는 여인의 모습을 발견 했다. 여인의 치마 자락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누나! 누나! 정신 차려요!"

아이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여자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아이들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응, 내가 왜 여기 있지?"

"어제부터 있었어요."

", 어제부터?"

그녀는 일어났다.

"! 내 옷이 어떻게 된 거야? 어제, 나 말고 또 누구 본 사람 있니?"

", 관리인 아저씨요."

그녀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그녀는 사라져갔다. 그 후, 그녀를 더 이상 그 동네에선 볼 수 없다.

 

동네는 술렁거렸다. 아이들은 여인의 집에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들이 닥친 것에 흥미를 느꼈다.

"저 아찌들, 저기는 왜 저렇게 지키고 서 있는 거야?"

죽음. 관리인은 여인의 집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여인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다만, 그들은 여인을 배웅하던 골목길에서 그녀의 향수를 아쉬워하며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혀엉, 이게 뭐야?"

"목걸이 같은데."

조각난 금빛깔의 물체가 아침 햇살에 반짝거렸다.

"그 여자 건가보다. , 내가 가져갈 테니까."

"싫어, 내가 줏었으니까, 내꺼야."

"내가 까까 사줄께."

"정말?"

"그래, 임마."

"그럼, 먼저 사 줘. 까까랑 바꾸게."

"알았어, 임마."

하늘의 구름이 뽀얗게 흐려지고 있었다.

 

 

7

 

이형사는 담배를 꺼냈다. 그는 빈 속에 담배를 피는 때가 별로 없었지만,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담배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대개는, 사건을 처리하고 난 뒤에 그러는 버릇이 잦았고, 그러고 나면 아침을 거르기 일쑤였다. 그는 신문을 펴들었다. 사회면을 읽으면서 그의 얼굴이 흥분되기 시작했다.

"2049xx. 사기로 악명높은 사기꾼인 '여우 목걸이'는 대규모 마약 밀매에 성공했다. 이날 그녀는 경찰에 헛정보를 흘림으로서, 그의 명성답게 여러 곳에서 거래를 성공시킨 것으로 알려졌는데, 경찰의 총력전이 펼친 가고파빌딩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여자는 그녀의 동생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살을 위장한 타살인 것으로 검사의는 진단을 내렸다. 경찰은……"

그는 컴퓨터의 전원을 올리고, 정보부를 연결했다. 여우목걸이에 대한 최신 정보. 잠시 후, 화면이 모니터에 인쇄되었다.

 

여우목걸이에 관한 최신 정보. 최근 그녀에게 동생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녀의 정보를 원하십니까?(Y/N)

 

그는 Y를 쳤다. 다시 화면이 모니터에 인쇄되었다.

 

여우 목걸이 동생에 관한 정보. 성별은 여. 2019년 아들 출산.

여우 목걸이 밑에서 일하는 마약 밀매 전문업자.

2023년 아들 행방불명.

전해지는 말로는 그녀가 직접 거리에 내버린 것으로 알려짐.

혈액형 인자는 AA.

특기 사항.

두 자매 모두 같은 해 같은 날에 아이를 버린 것으로 추정됨.

복역 사항 없음. 그외 다른 사항의 질문이 있으십니까?

 

그는 HUSBAND라는 자판을 눌러댔다.

 

이것은 극비 사항입니다. 지문 검색. 혈액형 검사. 신분 확인.

 

그는 양쪽 손바닥을 모두 모니터에 갖다 대었다.

 

지문 통과. 혈액형 인자는 AO. 신분 확실함.

 

곧 기밀 정보가 흘러나왔다.

 

극비 사항에 관한 자료. 이것은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이 자료를 발설시는 처벌.

극비 사항.

여우 목걸이의 동생은 여우 팔찌라 불림.

남편은 두 자매가 같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함.

, 그들 자매 아이들의 아버지는 한 명이라는 의미.

2030년 여우 팔찌가 살던 집에서 관리인이 시체로 발견됨.

관리인의 혈액형 인자가 OO형인 것으로 보아 두 아이의 아버지인 것으로 추정됨.

더 이상의 자료는 없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조각난 목걸이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자세히. 거기엔, 희미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여우 목걸이. 2030.'

 

 

8

 

"뭔가?"

서장은 귀찮다는 듯 무뚝뚝한 얼굴로 이형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김형사의 혈액형을 알 수 있습니까?"

"그건 왜?"

"아무래도 미심쩍어서요."

"김형사가 여우 목걸이라도 된다는 건가? 꿈꾸지 말게. 그녀는 너무 어려."

"혹시나하고요."

"잠시 기다려보게."

서장은 별 큰 뜻 없이 혈액형에 관계된 서류를 뒤져보았다.

"으흠. 형액형은 B, 인자는 BO구만. 짚이는 게 있나?"

"아닙니다. 별로."

 

 

9

 

"솔직히 말해! 그 정보 어떻게 입수헀지?"

방안. 이형사의 집은 침묵에 휩싸였고, 벌거벗은 그들의 몸이 한밤중의 싸늘한 기온을 느끼게 했다. 느닷없이 총구를 들이민 이형사의 손짓에 놀란 김형사의 얼굴에선 땀이 베어나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야?"

"네 엉덩이에 새겨진 여우꼬리는 무엇을 의미하지? 네 어머니는 여우목걸이야, 맞지? 어서 대답해!"

이형사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아니라고 말을 해줘, 제발! 아니라고. 너는 내 오랜 친구였잖아. 그리고, 나는 너를 사랑한단 말이야. 제발, 아니라고! 그러나, 그는 그녀와 그렇게 오랜 세월 함께 했으면서도, 그녀가 궂이 그녀의 어머니를 숨기려 했음에 막막한 허탈감을 느꼈다. 너는 뭐가 될 거야? ? 나는 엄마를 돕기 위해 경찰 정보국에서 일할 거야. 엄마가 뭐 하시는데? 우리 엄마? 글쎄, 하여간 그래. 그녀의 어물거림이 이형사의 눈앞에 머무르는 듯 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정작 다른 말이 흘러 나왔다.

"바른 대로 말해! 입 잘못 놀렸다간 … … !"

그녀의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착하려 애쓰며, 흘려 내리는 땀을 솜으로 부풀어져 있는 이불의 안쪽면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난 너를 사랑해.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러면, 차라리 나를 죽여. 그것이 너나 나를 위해서 차라리 낫겠어."

"이 바보야! 넌 내 어머니를 죽였어, 그렇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기나 해? "

충격이 김형사의 얼굴에 번졌다. 이형사는 총구를 그녀의 가슴에 겨누었다.

"이러지 마!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도 없단 말이야"

"그래, 그건 법일 뿐이지. 하지만, 밉든 곱든 너는 내 어머니를 죽였어"

"네가 말한 대로야."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녀의 비명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웠다. 그는 옷을 입고, 뛰었다.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더 이상의 비극이 그를 묶어둘 순 없었다. 아주 어렸을 적 그의 어머니가 항상 타이르던 말이 그의 귓가에 들려 오는 듯 했다.

'절대로 사람을 믿지 마라. 이 팔찌 외에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조그만 팔찌가 손에 짚혔다. 어릴 때부터 차고 다니다, 손에 맞지가 않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닌 이후로 그것은 계속 그의 주머니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서서히 새벽의 햇살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어디로 뛰는지도 모른 채, 마냥 그 빛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 빛이 마치, 자신의 구원자라도 되는 듯이.

 

 

10

 

서장은 신문을 펼쳐들었다.

"김미선 형사를 살해한 혐의로 수배중인 이형사의 행방은 서산 기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의 옆에는 여우 목걸이라 새겨진 금빛의 목걸이가 선명하게 반짝거리며 놓여 있었다. 이것은 여우 목걸이가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되며……"

서장은 아무 표정없이 담배에다 불을 붙였다. 그리고, 어느 여형사에게 명령을 했다.

"고형사, COFFEE, PLEASE."

서 안은 평온했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