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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재리뷰(문예이론/사회학/경제학)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를 통해 자존감의 의미를 숙고하다! | 여중재리뷰(문예이론/사회학/경제학) 2023-09-14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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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스스로 자존감을 결정한다

최용천 저
꿈공장플러스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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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인간관계 속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조언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심리학 서적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를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관점에서 그 원인을 진단하고 있지만, 저자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음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관계 문제는 결국 개인의 문제에 국한한다기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한 문제를 다룸으로써 우리 삶의 가치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내고 보호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가  장교로 군 생활을 했으며 일반사회 교사를 역임했다는 소개 내용을 보아, 현상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매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스스로 경험부자를 자처하면서 공동체 인간관계론을 삶에 적용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저자와 지인들의 경험이 다양한 사례로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먼저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인간관계,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진단하면서, ‘나를 둘러싼 가족과 지인, 내가 속한 공동체,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저자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은 지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사례를 떠올리며, 그 원인을 나름대로 진단하면서 우리는 왜 극단적 선택을 하는가라는 제목의 1장으로부터 내용을 이끌고 있다. 그러한 선택을 했던 개인의 성격이나 심리적인 측면에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자살, 이제는 좀 더 근본적 원인을 찾아야 할 때라고 진단하면서 공동체 생활에서의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분명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 성향이 존재하겠지만,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뜨린 공동체에서의 인간관계를 깊이 고찰하여 그 원인의 일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그 원인으로 저자는 공동체에서의 인간관계만을 강조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원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측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이러한 전제를 토대로 2장에서 공동체 인간관계론이란무엇인가를 설명하고, 가족과 학교 또는 다양한 집단에 속하여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의 위상을 점검하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가 상담하면서 들었거나 지인들이 겪었던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일반적으로 공동체가 규율에 의해 사람들을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준거집단으로서 행복감을 주는 만큼 위험이 도사리는 곳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렇기에 좋은 공동체를 선택하라는 제목의 3장에서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공동체에는 좋은 규율과 좋은 리더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공동체에 속해 활동을 하다보면, 결국 자존감의 회복’(4)에 이를 수 있으며, ‘경쟁과 책임만을 말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낙오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는 다양한 관점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진다. 아울러 심리학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인간관계의 면모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이해된다. 결국 사회학의 관점에서 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인하고, 자신이 속한 준거집단의 성격과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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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본질을 묘파하면서 그 대안을 모색하다! | 여중재리뷰(문예이론/사회학/경제학) 2023-07-15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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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좌파의 길

낸시 프레이저 저/장석준 역
서해문집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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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라는 부제를 내걸고 있는 이 책은 모든 것을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진지한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사용하는 식인이란 흔히 종족의 고기를 먹는 카니벌리즘(Carnivalism)’의 번역어이다. 그렇다면 부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제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체제 내의 존재들을 수탈하고 착취하면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흘러온 역사를 탐색하면서, ‘자본주의 경제가 제 배를 채우기 위해 가족과 공동체, 생활 터전, 생태계의 피와 살을 다 빨아먹어 버리는 현실을 진단하고 그러한 사회 시스템을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마침내 신회에서 제 꼬리를 먹으며 자멸하는 뱀으로 여겨지는 우로보로스(Ouroboros)’에 비유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실상 이 표현은 이 책의 원래 제목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문제를 진단하고, 저자 나름의 해답을 새로운 사회주의에서 찾고 있어 번역자가 <좌파의 길>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번역서에서 내세우고 있는 좌파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 단어와 함께 대조적으로 사용되는 우파란 용어까지 등장하게 된다. 그 기원은 프랑스혁명에서 급진적인 세력이 의장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던 것에서 유래했다. 왕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급진적인 변화와 개혁을 추진했던 세력을 일컬어 좌파(左派)’라 하였고, 저자가 내세우고 있는 대안인 사회주의가 바로 좌파의 이념을 대변한 것이라 이해하고 제목을 붙인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파는 자기가 지닌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그 이념으로 뭉친 이들을 지칭한다고 이해된다.

 

기존에는 자본부의를 경제의 유형으로만 인식했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회의 한 유형으로 전제해야함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이미 경제 영역에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화되지 않은 모든 부를 먹어 치우는 사회로 변신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일상적으로 우리 삶의 기반을 먹어 치우고, 주기적으로 위기를 불러들인다고 강조한다. 또한 자본주의는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대상으로부터 착취와 수탈을 자행하는 걸신들린 짐승으로 표현되고 있다. 결국 저자의 제안은 제 살 깎아먹기의 위기에 처함 자본주의의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종식하고 대안으로 내세울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물론 그 대안은 번역자가 내세운 <좌파의 길>이면서, 구체적으로는 추상적 이념이 아닌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사회주의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임을 강조하면서, 착취와 수탈이 결합된 수탈 탐식가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역설한다. 아울러 주로 여성들을 비노동 분야인 돌봄 노동에 치우치게 함으로써 돌봄 폭식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지구의 환경 위기 역시 자본주의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으며, 사회의 각 분야에 얽혀있는 생태 위기를 자초하며 꿀꺽 삼켜진 자연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미 세계 각국의 상황 역시 경제적 이익에만 매달리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정치 역시 경제에 예속되어 도살당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조의의 폐해는 더 이상 용납되어사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사회주의에 저자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 독자들이 자본주의가 지닌 실상을 제데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이 책을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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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 주요 저작들을 소개하다! | 여중재리뷰(문예이론/사회학/경제학) 2023-06-0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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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

임수현 저
인간사랑 | 202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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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20권 쉽게 읽기라는 부제의 이 책은 저자가 선정한 저작들을 읽고, 그에 관한 내용 요약은 물론 사회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는 그것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유사한 또는 정반대의 해석이 내려질 수 있다. 이러한 상반된 해석은 세계를 파악하는 방법이나 시각에 따라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수용하는 대중들 역시 어떠한 관점에서 사고하는가에 따라 그러한 해석에 동의하기도 혹은 비판적인 견해를 표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오늘날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라고 할 것인데, 동일한 사안에 대한 상반된 반응과 이해가 그 결과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과학의 방법론 역시 연구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전제해야만 한다. 이 말은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관점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던져줄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격렬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른바 고전(古典)’이라 칭하는 것들도 그 저술 배경에는 저자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으며, 그들의 주장과 결론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반드시 들어맞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사건 혹은 현상을 바라보는 과점이 다르면 그에 대한 이해나 해석 또한 달라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유명한 저작이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읽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선정한 20권의 사회과학 고전을 읽으면서, 저자는 다음의 세 가지 포인트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하나는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과 법칙을 정립하라는 점이다. 여기에 이론을 뒷받침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실제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며 읽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융합적 견지에서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과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사고하라는 조언이 그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 역시 누군가의 이론에 압도되기보다는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독자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음을 전제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과학적으로 사고하고, 비판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체화시켜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상이 된 저작들은 대체로 시대순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이 유일하게 18세가에 출간된 저작이라고 하겠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귀스타부 르 봉의 <군중심리>, 그리고 뒤르켐의 <자살론>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세가에 출간된 것으로서 여전히 고전으로서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저작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회과학 서적이 그러하듯이, 각각의 저작들이 토대로 삼고 있는 사회현상은 저자가 살고 있던 당대의 현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발딛고 있는 사회의 토대가 달라지면서 당연히 그에 대한 반론이나 비판적 평가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즉 이들은 고전으로서 평가되고 있지만, 그들이 제시한 이론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춰 수정되고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저작들은 20세기에 출간된 책들이 대부분인데, 마지막에 소개되는 토플러의 <부의 미래>(2006)를 제외하면 나머지 14권이 여기에 해당된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그리고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회폐의 일반이론> 등은 이미 자본주의로 접어든 20세기의 사회와 경제를 바탕으로 저작된 것들이라고 하겠다. <역사란 우엇인가>로 잘 알려진 카의 <20년의 위기>와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2차 세계대전의 혼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은 전통시대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지구에 존재하는 사회를 문명과 미개로 단순하게 구별하던 기존의 인식에 일침을 가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산업화 사회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던 맥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는 여전히 시대를 바라보는 적절한 안목을 제공해주는 서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도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와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와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 , >와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등은 21세기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도 사회를 바라보는 유용한 인식을 제공해주는 유용한 저작들이라고 하겠다. 전쟁과 혼란 그리고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20세기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 책에서 다룬 저작들을 통해서 저자는 그러한 현상이 지닌 의미를 적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저작이 중점을 두고 있는 사회현상과 서술 방향은 모든 분야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해지는 21세기의 현실에서는 어느 순간 그것마저 현실에 대한 해석의 적절성이 문제되고, 단지 각각의 저작들이 지닌 내용이 아니라 그 문제의식만이 독자들에게 수용되는 시점이 오리라고 예견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전을 읽는 것은 각자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유용한 인식을 제공해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차니)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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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임을 포기할 때 자유로부터 도피하게 된다! | 여중재리뷰(문예이론/사회학/경제학) 2023-05-02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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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저/김석희 역
휴머니스트 | 201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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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에 출간된 책이 여전히 대중들에게 읽히며,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상이 흥미롭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하는데, 이 책에서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다. 자유로운 삶이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삶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이러한 자유를 만끽하기보다 그것에서 벗어나 무엇인가에 자신을 얽매이려고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물론 이 책을 집필할 당시 독일에서는 나치즘이 발호하고 있었고, 대중들은 오히려 그러한 전체주의적인 성향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상황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심리를 의식과 무의식의 길항관계를 통해서 설명하려고 했다면, 에리히 프롬은 여기에 사회적 요인이 덧붙여져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역사가 정치적 경제적 정신적 족쇄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을 전제하면서, 그렇게 획득한 자유에 새로운 특권이 더해지면 어떤 단계에서는 억압에 맞서 싸우던 계급들이 이번에는 자유의 적을 편들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그 본질은 한 줌밖에 안 되는 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신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권위곧 전체주의라는 시스템에 복종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나치즘의 몰락과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 대가가 엄청난 살육의 결과를 빚어냈다는 것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먼저 자유의 본질에 대해서 탐구하고 그 의미를 규정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는 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가에 대해서 사회심리학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거쳤던 인류가 그로 인한 고독감과 무력함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오히려 개인적 자유를 대신할 헌신의 대상을 구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대상이 한편으로는 종교적인 대상으로 나타나고, 20세기에 들어서 파시즘과 나치즘을 추종하는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21세기에는 '자본'에 모든 것을 맡기며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하는 인간 군상들을 목도하고 있다. 서양의 종교개혁이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저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절대군주나 예정론에 기대어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도록 하는 면모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히틀러로 상징되는 나치즘에 열광하였던 독일 국민들의 행태가 설명될 수 잇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다름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자유의 본질과 특성을 상세하게 규정하면서, 근대사회에서 어떻게 나치즘과 같은 권위주의가 등장하고 대중들이 그에 열광했던가를 적절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80여 년이 흘렀지만, 이제 대중들은 파시즘의 자리에 자본을 대치시키면서 그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본의 이익 혹은 욕망의 극대화를 위해 분투하는 군상들의 모습은 나치즘 하에서 절대자에게 열광했던 대중들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를 냉철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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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투기의 사이에서! | 여중재리뷰(문예이론/사회학/경제학) 2023-04-16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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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투자 권하는사회

김승우,이정은 등저
역사비평사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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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관점이 우선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적 수단으로 인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자신의 재산 일부를 기꺼이 투자하기도 한다. 투자를 통해 얻는 수익이 더 커지면, 어느 사이 자신의 본업에 소홀해지거나 심지어는 직정을 그만두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투자의 액수가 늘어나고 단기간의 수익을 추구하다 보면, 그것은 단순 투자를 넘어 투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대체로 사람의 마음이란 일시적으로 만족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목표가 채워지면 더 큰 목표를 설정하여 그 욕망의 크기를 키워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투기에 집착하는 이들은 한번쯤 투자로 인한 재미를 보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그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언제부턴가 여유 자본을 그냥 가지고 있기보다 투자하여 이익을 창출해야만 한다는 분위기가 언론을 중심으로 요란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영혼까지 끌여들인다는 이른바 영끌이라는 단어까지 회자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이해된다. 언론에서 유도하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금방이라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의 사례가 마구 쏟아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여 기사거리를 만드는 언론의 폐혜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진다.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세상에서는 누군가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면에 그만큼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진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의 사례보다 성공한 이들의 경험에 공감하기 마련이다.

 

투자에서 투기까지, 대중투자사회의 역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역사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투자와 투기 행태의 다양한 면모를 탐구하는 내용이다. ‘투자와 투기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자본의 역할이 강화되던 20세기 주식시장의 흐름과 다양한 투자 기법들에 대한 흐름을 개관하면서, 투자에 대한 어떤 이론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을 제출하고 있다. 여기에 황무지나 다름없던 1920년대 이국의 플로리다에서 시작된 부동산 개발 붐과 과열 투기의 문제를 짚어보고, 일제 강점기 하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약탈적으로 진행되었던 토지 소유의 확대 과정을 진단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소수의 자본가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 주식시장의 기원을 살피는 연구도 수록되어 있다.

 

한 논문의 주석에서 투자투기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투자는 단순히 이익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는 일이며, ‘투기는 기회를 틈타 (투자보다 크게) 큰 이익을 보려고 하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실상 투자투기는 모두 자본에 대한 욕망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경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기회만 제공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른바 영끌을 해서라도,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는 일 곧 투기에 기꺼이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기부터 시작된 한국에서의 부동산 투기와 이른바 개미군단으로 표현되는 증시에 대한 관심을 다룬 글들이, 2부의 투자의 대중화와 저변화라는 항목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의 활황과 몰락을 보여주는 버블기 일본에서 나타난 투기와 투자의 특징과 그 의미를 짚어보는 글이 첨부되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는 자본을 투자해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움직임에 대해서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확장하는, 투자 권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3부를 통해서,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국가의 욕망과 이에 편승한 자본 권력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홍콩 문제라 칭해지는 홍콩의 부동산 재벌들의 이익에 맞춰 정책이 이뤄지는 현상, 사람들의 자가 소유의 욕망에 기대어 경제적 기득권자 위주로 주택 정택을 펼치는 영국의 사례, 그리고 알리바바로 상징되는 중국의 핀테크 기업과 국가의 관계가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흔히 수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일컬어 파이를 키운다는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그 이익의 대부분은 경제적 권력을 지닌 자본가에게 돌아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경제의 규모는 커졌겠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일반인들은 투자투기사이에서 방황하면서 때로는 작은 이익에 열광하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는 일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들의 욕망에 편승하여 적당히 자극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도 사회의 양극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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