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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따뜻한 사람들과 순수, 긍정의 느낌을 나누고 싶다. 맑고 고운 삶이 되기를 소망하는 공간이다. 책과 그리움과 자연과 경외를 노래하고 싶다. 감나무, 메밀꽃 등이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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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는 글/소명출판 | 문학 서적 2021-09-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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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풍객잔

김명리 저
소명출판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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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은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나의 보잘 것 없는 글들을 더하여 글의 세상을 어지럽힐 필요가 있을까? 글을 쓰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글을 쓰는 것은 삶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글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고 생각을 정리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타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다가가면 더욱 좋으리라.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글쓰기를 지속해도 괜찮으리라.

 

저자가 이 글을 내어놓으면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신의 글이 세상에 더해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글을 내어놓는데 많이 주저하게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고,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 책으로 엮는다고 한다. 글을 쓰는 것은 그렇지만 모으는데 소질이 없어 많은 양이 소실되기도 하고, 남아 있는 것들은 정리가 되지 않아 책을 엮는데 많이 힘들었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고 자신의 즐거움이었기에 정리하는 시간이 새로운 활력이 되었음도 얘기한다.

 

이 글들이 책이 되어 나온 것은 저자의 히말라야에서의 특별한 경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것에서의 삶이 특별했고, 그것은 타인들이 알아도 가치 있는 것들이었기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권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장에 히말라야에 대한 단상들이 몇 개 제시되어 있다. 그것이 이 책을 엮는데 기폭제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히말라야는 범인이 범접할 수 있는 산이 아니다. 세계의 최고봉이 있는 산, 영기가 서린 귀한 산이다. 이곳을 가까이 둔다는 것만으로도 그 삶이 경이롭게 여겨진다. 그것들의 기록물이다. 얼마나 가치가 있겠는가? 그 귀한 가치가 이런 책이 나오도록 하고 있는 모양이다.

 
 

책은 9부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150여 편의 짧은 글들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무척 감성적인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가 매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유려하다. 긴 호흡으로 얘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고전적이고 부드러운 호흡을 보여주는 문체다. 나이든 사람들이 읽기 좋은 문체라 생각된다.

 

세상을 향해 고개 빳빳이 쳐들었던 호기로움이 있었다면 그것들도 마저 수그러뜨리리라. 곰팡내 물씬하긴 해도 그 방의 세 곱절은 크다 싶게 널찍한 민박집 방바닥에 엎드려 있자니, 생의 호사란 게 제 마음먹기에 따라 순식간에 우주만큼 커졌다 이슬처럼 꺼졌다 한다는 걸 이제 알겠다. p45

 

저자의 사색의 단면과 호흡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단락이라 생각된다. 문장의 호흡이 길다. <-리라> 문체와 <생의 호사>란 말이 가져다주는 묘한 기운이 우리들의 느낌을 감싼다. 무엇을 단정 짓거나 결기를 부리게 하지 않는 문장들이다.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세상을 만나도록 만드는 글의 호흡이다. 이 문제들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글의 호흡이 거칠지가 않다. 아니 부드러우면서도 뼈대는 살아 있는 글들로 인식된다.

 

 

9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달 속 계수나무 꺾으러 가세> <, 임종중입니다> < 쇠망치를 삼켰으니 바늘을 꺼내야 한다> <곧 가을이 오리라> <도스토예프스키의 홍차> <개와 사람, 비의 저 백골들> <책으로 세운 청춘의 기념비> <아름답고 강하고 빛나는 것들> <네팔에 오면 네팔 리가 되어라!> 등을 소제목으로 글을 엮어 나간다. 일상의 모든 것이 소제가 되고 있다. 특별하게 눈에 띄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와 네팔이다. 이들은 아마 저자의 삶 속에 깊이 박힌 사실들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에 곳곳에서 마음의 빛깔이 되어 드러나는 것이리라.

 

여행은 좋은 글감이 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글의 가장 멋있는 내용도 역시 네팔을 여행하고 담은 일상이다. 네팔에서의 대지진 이야기, 카트만두 이야기, 히말라야 이야기, 빈디야바시니 사원의 결혼식 이야기, 보카라 일주, 네팔에서 내리는 비, 죽음과 네팔인들의 생각, 바그롱의 소년 이야기, 바부 스님 이야기, 킹스 로드 등 많은 것들이 소재가 되어 있다. 그들과 만나고 보고 들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것은 소중한 경험이고 세계인들에게는 소중한 가치가 된다. 그 이야기들이 결국 네팔에서는 네팔리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네팔을 가장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주는 것이리라.

 

 

시인은 일생의 매 순간마다 시의 공격을 받는다 했으니, 수없이 찢고 지우고 다시 써내려가는 한 줄의 문장, 잠든 혼을 일깨워 쓰는 한 편의 시가 생의 온갖 부잡함을 씻어내 주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되묻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p109

 

저자는 시인이다. 1983. 4년에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집에 <적멸의 즐거움>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등이 있다. 이들의 제목을 보면 시신의 성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시들도 그런 경향의 시들이 많다. 삶에 대한 깨달음, 자연을 칭송하는 내용, 초연한 자세 등이 많은 글들에 나타나 있다. 시인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이미지와 함께 떠올려본 내용이라 여기면 되겠다.

 

저자의 삶이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마음에 많이 다가든다. 모과꽃, 시무나무, 단풍, 소나무 등 자연물에 대한 글들이 많다. 그만큼 가까이 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런 것들이 계절과 함께 예쁜 사진이 되고, 그 사진은 또 의미를 담은 언어가 된다. 그 언어의 빛깔 뒤에 저자의 삶이 있고 우리들의 기억이 있다. 많은 내용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저자의 지식이나 경험이 그렇게 우리의 인지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가을 수종사, 파위교 등 건물들에 대한 단상도 담겨져 있다. 시인이 만나는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언어를 만나면서 가지는 경험을 보더라도 그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저자가 만난 세계, 기억하는 세계, 읽은 세계 등이 모두 언어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라 여겨도 된다. 그 중에 특히 고양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많은 분량의 내용으로 담겨져 있다. 저자의 이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경험의 세계에 우리를 데려다 놓은 게 즐겁다.

 


 

저자의 다양한 삶이 흐름으로 된 글들은 많다. 그런 내용을 담은 책들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이 마음에 감기어오는 이유는 사실적인 그림이다. 그 그림에 담은 언어다. 그 언어의 가멸은 호흡이다. 그 호흡에 담긴 사랑이다. 깨달음과 담담한의 삶을 담은 자세다. 책이 제목처럼 따뜻하게 스며든다. 책 가까이 있다 보면 선한 삶 속에 자신을 몰입할 듯하다. 언어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빛난다. 그것은 삶의 소중한 연륜이 담긴 언어이기 때문이리라. 그 언어를 줍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험과 더불어 기억의 진한 여운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책을 통해 깨끗한 느낌의 언어를 많이 만난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내 삶의 여정을 반추해 볼 수 있다.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 이미지와 단어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다. 잔잔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들 언어가 도움이 될 것이다.

 

 


예스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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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혹성과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각성 | 문학 서적 2021-08-2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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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부전선 이상 없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저/편집부 역
종합출판범우 | 201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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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해서 전쟁의 참혹함을 잘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그 참람함은 인권의 사각지대,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현장의 그림이다. 정말 끔찍함의 연속이다. 그 사실성이 눈에 다가온다.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와 꿈에라도 다시 재현될까 두렵기도 하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영화로도 촬영된 이 글은 독일의 전쟁 패배와 동시에 벌어진 처절했던 그 군사들의 얘기다.

 

저자는 레마르크다. 그는 1929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공포와 불안, 과학전으로 인한 무의미한 죽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을 썼다. 이 작품은 발표된 후 불과 반년 사이에 25개 국어로 번역 간행되어 350만부가 팔린 대단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반향은 대단했다. 전쟁 문학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저자를 세기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리는 역할을 한 작품이다. 우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영화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있을 듯하다.

 

두세 달 전 나는 참호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조금 뒤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엄폐호에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돌아와 보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커다란 것이 명중해 깨끗하게 분쇄되었던 것이다. 나는 종전의 엄폐호로 되돌아갔다. 그래도 늦지 않아 한 사람은 파낼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없는 사이 포탄에 튄 흙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p50

 

전쟁의 위험성과 잔인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전쟁은 운이 많이 작용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살아남게 되는 자신을 그리면서 전쟁이 얼마나 허망한 요소가 깃들여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순간적이요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전쟁임을 보여 준다 . 이런 상황에서 군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아무리 자신은 깨어 경계를 한다고 해도 자신의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에 아니다. 그것이 전쟁의 속성이다. 전쟁은 많은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살포된 갑작스러운 독가스 공격에 대부분의 신병들이 쓰러졌는데 그때도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두뇌를 갖고 있지 않았다. 참호 밑 엄폐 부는 창백해진 얼굴과 검게 탄 입술로 가득 찼다. 어느 구덩이에서는 방독면을 너무 조급하게 벗었다. 독가스가 페인 곳에 가장 오래 머문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에 있는 사람이 방독면 벗는 것을 보고 재빨리 벗어버리는 바람에 가스를 잔뜩 들이마셔 폐가 그만 타버렸다. 그렇게 되면 가망이 없었다. 피를 토하고 숨을 쉬지 못하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p63

 

생화학 무기가 사용된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인간의 뛰어난 지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야 하고,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 시행해야 한다. 그것은 지성에 의한 결정이 아니고 감성에 의한 결정이다. 감성에 의해서 모든 것이 좌우된다는 말이다. 가스가 살포되었을 때 반공호 속에서 방독면을 쓰고 있던 사람이 밖에서 방독면을 벗는 것을 보고 바로 벗다가 죽게 되는 장면은 너무 안타깝다. 무지가 불러온 죽음이다. 이처럼 전쟁은 오로지 감각만을 따르다가 이슬이 되는 경우가 많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캠머리히와 베스트후스는 죽었다. 크라멜은 명중탄을 맞아 그의 몸을 주워 모으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말텐은 두 다리를 잃었다. 마이어도 죽고 바이엘과 헴맬링크도 죽었다. 120 명이 어디선가 총을 맞고 뒹굴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면 두렵지만 그 일은 지금의 우리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다. 만일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사람들이 놀랄 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p69

 

전쟁의 참혹성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죽음과 부상, 인간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 전율로 다가든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무감각해 진다. 이것이 전쟁이 만드는 광기다. 광기에 빠진 젊은이들이 서로의 생명을 노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그것은 고통스러운 결과를 만든다. 살아서도 산 것 같지 않는 생명들이 전장에 흩어져 있다. 150명의 전우들 중 120명이 어느 전장에 누워 있는지 모른다. 정말 참람한 전쟁의 실제상황을 보여준다. 왜 이러 젊은 생명들이 땅에 누워야만 하는가? 누구의 잘못인가? 그들은 그 잘못을 따지기도 전에 그의 생명을 바치고 있다. 전쟁이 만드는 현상이다.

 

이런 장면들이 곳곳에 보여 진다. 물론 휴가도 있다. 하지만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으면 전장에서 쉽게 나오지 못한다. 이 글의 화자인 파울 보이머 군도 191810월의 어느 날 전사한다. 당시 사령부 보고서엔 보이머 군이 머물고 있었던 전장 서부전선 이상 없음이라고 보고되어 있다. 하지만 화자는 그곳에서 전사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전쟁의 처절함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전쟁을 희화화하기까지 한다. 전쟁은 이처럼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며, 인간을 인간답게 여기지 못하게 만다. 인간을 하나의 무생물처럼 취급하는 게 전쟁 상태다.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숱하게 나열되어 있다.

 

전쟁 고발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소설이다.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듯한 글이다. 전쟁은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게 한다. 인간을 물화(物化)시키는 상황을 만든다. 그렇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된다. 이 글은 전쟁이 가지는 이런 잔혹성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얘기하고 다시는 그런 일들이 없어야 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소설은 많으나 이렇게 현장감 있게 표현된 글은 이전엔 그리 많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기에 이 글이 전쟁문학으로 높은 위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은 레마르크를 대단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큰 역할을 한 작품이다. 고전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분량으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가치도 가치고 의미가 있을 읽기가 되리라 여겨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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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사회, 진정으로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 문학 서적 2021-08-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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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살고 싶은 나라

샬럿 퍼킨스 길먼 저/임현정 역
궁리출판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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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퍼킨스 길먼의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지적인 세계를 만나게 만들며 여성 문제를 궁구하게 만든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분석하고 육아와 가사노동의 사회화, 여성의 경제적 자립 등을 주장한다. 이 길먼의 생각은 1911년부터 1916년까지 자신이 창간한 잡지에 실린 유토피아 3부작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책들을 읽으면 길먼의 생각과 그의 사회적 태도를 잘 읽을 수 있다.

 

갈먼의 유토피아 3부작은 첫째 권 <내가 깨어났을 때>에서 성장 가능성을 지닌 어린 유토피아를, 둘째 권인 <허랜드>에서 여성들의 힘으로 이룬 궁극의 유토피아를 창조했고, 셋째 글인 이 책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서는 현실 세계로 눈을 돌려 탐욕과 적의로 무장한 사람들과 그 결과 탄생한 제국주의, 계층 갈등, 빈곤 문제, 다양한 차별 등 당시대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그 해결책을 생각해 본다. 이 책은 그 3권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페미니즘과 모권사회를 얘기하면서 역사지지의 마음을 지닐 때 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공감과 문제를 의식하면서 읽어나갈 수가 있다.

 

 

허랜드는 일정의 정원, 그러니까 울창한 숲으로 덮인 경계까지 잘 가꿔진 공원이었으며 도시들 덕분에 이러한 풍경의 아름다움이 배가 되었다. 도시의 풍광은 마치 옅어져가는 섬세한 레이스 장식처럼 점차 듬성듬성한 건물로 이어지더니 곧이어 탁 트인 들판으로 변했다.

 

모권 사회인 허랜드의 유토피아를 잘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다. 이곳에서 엘라도어와 결혼한 나()는 추방당한 테리와 3명이 허랜드를 떠나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 엘라도어는 현실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되고 모든 것이 신기하다. 하지만 모든 내용들이 허랜드를 기준으로 인식되기에 맑고 순수하게 지식을 받아들인다. 먼저 유럽으로 간다. 엘라도어는 이 세상에 대해 진단하고 지식을 얻어가면서 문제점을 인식하다. 엘라도어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이성적으로 가꿔갈 수 있다는 허랜드식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 세계관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세상을 보면서 지식을 수렴해 간다. 그것이 밴은 존경스럽게 느끼기도 하고 안타까워지기도 한다. 현실의 세계가 엘라도어가 원하는 세상이 될 수가 없고 이성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전쟁의 소식과 과정을 듣고 엘라도어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1차 세계 대전이 이루어진 직후이기에 그것이 소재가 된 듯하다. 전쟁은 모든 사람들을 참람하게 만들어 나간다. 학자를 만나고 종교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지식을 수렴하지만 엘라도어는 유럽의 남성들이 만들어 나가는 전쟁과 죽음이라는 참혹한 상황에 대해 좌절한다. 그러면서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역사를 배우고 종교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모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긍정의 신호를 받지는 못한다.

 

엘라도어의 사고는 모든 기준이 이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허랜드다. 허랜드를 기준점으로 본 이 세상은 불합리의 연속이다. 특히 여성들에겐 그것이 더하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하나의 성보다는 두 개의 성이 어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론적인 생각을 한다. 그러기에 양성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 하나의 성만 존재하는 것보다 남녀 두 성이 같이 존재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우리는 여자들끼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요. 정원처럼 작지만 아름답고 안전하며 깨끗한 곳을 건설했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하지만 다른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한 일은 하나도 없어요. 원주민이 그들의 문명이 있는데도 그저 그런대로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변화가 없는 허랜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 있다.

 

정말 부끄러웠다. 앞서 말한 대로 모든 게 완벽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단 사람이 돌연 시끄럽고 혼란스러우며 더럽고 무질서하고 적의가 가득한 세상으로 곤두박질쳤을 때 받는 충격은 애당초 그런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기 힘들 것이다. p30

 

나를 통해서 엘라도어가 처음 가졌을 문화적 충격을 얘기한다. 엘라도어는 섬세한 이해와 품위 있는 정중함, 언어를 예술처럼 아름답게 사용하는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기와 전쟁의 상황 속에서 느끼는 내용이 나는 무척 걱정이 된다. 엘라도어는 유럽으로 가는 길목의 배에서 목사와 독일 장교 등과 대화를 나눈다. 신만 강조하고 합리성을 잃은 목사, 이기적인 독일 장교 등과 대화를 하면서 유럽의 암담함을 더욱 느낀다. 모성으로 다가가는 사회는 어디에고 없다. 힘과 쟁투의 모습만 있을 따름이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사회를 보게 만드는 일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내는 지성적인 인내의 모습으로 그들을 수용한다. 그리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동양을 여행할 때에 엘라도어는 여성들의 사회적 습관을 보면서 심리적 아픔을 강하게 느낀다. 중국의 전족 풍습을 보면서 여성들을 구속하는 그들의 생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성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사회에서 성장한 엘라도어는 중국이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큰 슬픔을 느낀 것이다. 일본을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여권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나는 고향 미국의 아름다움을 애기하면서 동양 여행에서 지친 엘라도어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한다.

 

미국으로 오는 길에 하와이에 들른다. 하와이의 활기참과 아름다운 정경은 엘라도어에게 참신함과 기쁨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원주민들을 구속하고 만든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괴리감을 느낀다. 미국인들이 처음에 하와이에 온 것은 종교적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후손이 주인 없는 땅을 점거하기 시작하면서 원주민들은 자연 몰락하게 되고, 미국인들은 죄의식도 가지지 못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원주민들을 착취하는 상황이 된다. 그것이 못내 엘라도어는 못마땅하다.

 

 

나는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 사실을 엘라도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처음에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건 남자들과 대화할 때보다 여자들과 대화할 때 엘라도어의 흥미와 인내심이 더 빨리 시든다는 점이었다. 야자들은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엘라도어의 친절한 얼굴에는 곤혹스러우면서 슬픈 표정이 깃들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를 중단하고는 했다. p84

 

엘라도어가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마음을 다하면서 여성들과 대화를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타성에 젖어 자신들의 삶이 구속과 억압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한다. 그것을 보는 엘라도어는 환멸을 느끼게 되고, 여성들과의 대화를 즐기지 않게 된다.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보상받으려 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인다.

 

엘라도어는 미국 역사가 종교적 저항에 뿌리를 둔 덕에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신을 옭아맨 가장 무거운 족쇄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군주제와 귀족제가 폐지됨으로써 다른 짐도 내려놓을 수 있었으며, 사실상 무한한 영토와 격변하는 사회 상황 덕분에 관습은 그저 이름만 남게 되었고, 다양한 인종이 섞인 덕분에 계층 파괴가 가능했음을 짧게 지적했다. P97

 

엘라도어가 초기 미국을 만났을 때, 미국의 사회를 무척 긍정적으로 본 내용이다. 물론 지식을 기반에 두고 파악하고 판단한 내용이다. 미국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그것은 기존의 무엇을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을 어린아이로 표현을 하고 있다. 그만큼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되는 사회라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도 이미 기존의 질서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미국이 생성된 역사와 그 이면에 작용한 힘의 논리, 남성들의 욕심 등이 사회를 파괴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하와이의 원주민들에 대한 구속, 사람들의 폭음, 매춘, 뇌물 수수, 사형 등 노골적인 병폐가 만연하고 있는 것을 엘라도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해 한다. 고향인 켈리포니아도 다를 바가 없다. 경관은 그렇게 훌륭하지만 그 속에 놓여 있는 사회의 폐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음을 느낀다.

 

나는 엘라도어가 이 세상에 나와서 유럽에서 전쟁 등 공포로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고 아시아에서 전족, 자기 비하 등의 요인으로 혐오감으로 진절머리 치는 것을 보았다. 희망의 신대륙에서도 실재하는 아름다움 이면에 스민 인간들의 치부에 대한 실망감이 슬픔으로 감정으로 변해갔다. 이민족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라가 서로 협력하고 상부상조하는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성의 결여로 인한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아픔을 느낀다.

 

 

허랜드는 모든 곳이 평화롭고 아름다웠지만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친밀한 애정과 위로가 느껴지는 작음 불빛은 어디에고 없었다. 분명히 모든 곳에서 사랑과 위안이 넘쳐흘렀지만 그래도 달랐다. 허랜드에서 느낀 사랑과 안락함은 중앙 탁자에 놓인 따뜻한 불빛보다는 반사광에 가까웠고, 각 방에서 따로따로 불을 지핀 집이 아니라 증기로 모든 공간이 골고루 데워진 집 같았다. 우리는 가까이 앉은 사람들에겐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하지만 불기운이 덜 미치는 뒷사람들에게는 왠지 소외감이 들게 만드는 장작불이 그리웠다.

 

허랜드 가정의 부족함을 주는 요소를 그리고 있다. 따뜻하고 구분되는 가정, 개인적인 정겨움이 더욱 친밀한 요소로 작용하는 그런 가정을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정은 그렇지 못하다. 가난과 갈등 때문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가정이 사회의 바탕이 되듯, 못 사는 사람들의 가정은 처참하다. 이 사회가 가진 빈부의 차이는 심각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허랜드처럼 공통의 경제권을 가지는 일이다. 어느 누구고 빈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저자는 허랜드를 통해 공동소유와 나눔의 이야기(공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사회는 게으런 사람들의 사회가 될 것이라 밴은 생각한다. 공산주의는 게으른 자들의 천국, 약자가 타인에게 업혀가는 사회, 능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똑 같이 보상받는 사회, 더럽고, 힘든 일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사회가 될 것으로 인식한다. 이 얘기는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련을 통해서 확인이 된 바다. 자본주의 국가의 병폐도 지적한다. 사업가가 흡혈귀같이 된다는 말이다. 적절하게 나누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착복하는 경향이 많고 빈부의 차이가 심해지면서 빈민촌도 생겨나고 사회악이 자란다는 말이다.

 

이런 사회에서 엘라도어는 애기를 낳기를 거부한다. 자신이 허랜드의 어머니 교육의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치면 적응하지 못하고 돌리는 아이가 될 것인데, 기르기에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우리 아이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외로운 아이가 될 텐데, 그런 아이를 가르치는 어머니는 대체 어떤 어머니인가요?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하려면 많은 가르침이 필요해요. 또 많은 아이들의 사회 속에서 배워야 해요. 아이들에게는 사회적 환경이 필요해요. 섬이 아니라.

 

이런 문제 많은 미국사회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을 제시해 주고 있다. 민심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모든 성인이 참정권을 갖고, 신뢰할 한 신문을 발행하고, 천연 자원을 제대로 보호하고, 적절히 개발해서 활용하는 것> 등을 기본으로 내세우고 있다. 자신들의 허랜드가 <우리나라는 하나의 견본에 불과해요. 지역사회에서 열린 전시회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해온 일이 옳다면 그걸 모든 세상으로 전파시키는 게 우리의 가장 확실한 사명이 될 거예요.> 하나의 본보기가 될지언정 그것을 공유하기는 힘이 든다는 얘기도 해보고 있다. 자신들의 허랜드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마음을 쓴다.

 

결국 이 책은 2<허랜드>에서 소개한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현실 세상에서 얼마나 통용될 것인가? 를 궁구해 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모성 교육에 바탕을 둔 허랜드, 서로 공유하고 서로 나누는 근본적인 이상의 나라다. 하지만 규모는 그리 크지가 않다. 이것을 세상에 내어 놓을 때 얼마나 순수하게 수용될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그래서 결국 둘은 다시 허랜드에 돌아간다. 꿈의 나라에 대한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이 글은 세상에서 보여주고 있는 문제들을 직시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파괴, 인권 상실의 세상, 남성우월주의 사회, 빈부의 격차가 심한 문제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면서 종교, 사상, 제도 문제를 다각도로 다루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통해 이상향을 그려보고 있는데, 대단한 생각들을 그려내고 있다. 정말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오늘의 사회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모성 사회의 긍정적인 요소는 제처 두고, 일상에서 거의 많은 부분 대등한 권리회복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라든지, 정치 제도에 있어 민심이 중요한 요소가 되어간다든지 하는 내용들이 책에서 보여준 예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 선의’ ‘역지사지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인간사회에서는 요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단한 생각, 대단한 혜안 등을 글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줄거리보다는 내용에 치중하고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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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은행나무 | 문학 서적 2021-08-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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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완전한 행복

정유정 저
은행나무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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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라는 생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정유정을 만나는 이야기에는 깊이가 있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며 그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해석해 나가면서 보여준다. 이 글에서도 그러한 노력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성향의 한 사람을 제시하고 그 사람의 언행을 빌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방식을 보여준다. 그 삶이 그렇게 타당하게 보여 지지는 않지만 그도 스스로에게 열심히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것이 자기도취적인 마음이지만 말이다. 그것을 이 저자는 노력이라는 말도 치환해 표현한다. 자신도 무척이나 노력하는데 왜 타인들이 안 따라오느냐는 게다.

 

한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무척 힘이 든다. 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상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삶이고 그것이 최선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면 더 가관이다. 그 삶은 자기중심적으로 이루어지기에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에게 소유물과 같은 인식을 가지고 그렇게 인식하도록 세뇌를 해나간다. 또한 자기 삶에 들어오는 자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위해 완벽한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야 한다. 행복의 조건은 불행하도록 만드는 요인들을 없애나가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그렇게 만드는 것을 제거해 나간다. 즉 자아도취에 빠져 완전한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은 불행으로 이끄는 요소를 격리나 제거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것이 자기에게는 유익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통이 된다. 이 글을 읽을 때 당하는 자의 심리에 이입이 되면 독자들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신유나는 어릴 적 할머니 집으로 가서 2년이나 살게 된 일에 대한 분노를 가득히 가지게 되면서 성장한다. 그 분노의 저변엔 언니 재인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할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다는 자격지심이 있고, 아버지가 그렇게 결단을 내려 보냈기 때문이라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있다. 할머니 집은 반달 늪이 있는 시골이다. 늪에는 많은 오리들이 산다. 이 글에서는 오리들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되강 오리의 울음은 구속, 죽음, 절망, 구출 요청 등의 의미로 표현된다. 유나의 딸 지유는 그 되강 오리의 소리를 많이 듣는다. 특히 아빠가 그곳에 오고 떠나간 후엔 무섭도록 그 소리가 들려온다. 모종의 비밀이 들어있음을 독자들은 느끼게 된다. 유나는 조류학자인 할아버지와 늪에서 오리들을 보면서 시골생활을 한다. 이런 다양한 기억들이 유나가 자기중심적으로 성장하는데 한 몫을 했다. 그녀가 좋아했던 반달 늪과 오리들이 서로 관련이 되어 고집스러운 자기애로 나타나고 있다고 뵈도 되겠다.자기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행복은 가족의 무결(결점이 없는)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타협이 있을 리 없었다. 아내는 그의 거절을 거절했다. p115

 

그런 유나가 첫 번째 결혼을 실패하고 바이칼호로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길에서 만난 교사인 차은호와 사귀게 된다. 만남의 과정 속에서는 은호와 같은 학교의 교사인 진우가 관련된다. 여행 중 진우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만난 유나를 알아보고 동행이 되면서 차츰 은호와 유나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둘은 아이스크림으로 가까워지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 각자 딸린 자녀들이 한 명씩 있다. 그런데 4식구가 같이 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은호는 아들 노아를 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있다. 유나는 지유를 자신이 데리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지유를 친정 엄마에게 보낸다. 노아의 할머니는 노아를 빨리 데려가라고 독촉하고 유나는 은호에게 지유를 양녀로 법적으로 정리하여 같이 살자고 한다. 유나의 무결한 가족에 노아는 없다. 은호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유나는 자신의 의견이 잘 수렴되지 않으면 실력행사를 한다. 그 실력행사가 집을 나가는 것이다. 보통 집을 나가 은호가 사정사정해야 다시 기회를 주겠다고 집에 들어오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처음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은호가 유나를 데리러 가서 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한 이력이 있다. 그렇게 눌리니 결국 그것이 지속성을 지니게 된다. 유나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또 실력행사를 하게 되고, 은호는 좋은 게 좋다고 유나의 뜻대로 모든 일을 진행하게 된다. 결국 거짓말로 노아 데려가는 것을 늦추고 있는 은호의 모습에 못 견딘 노아의 할머니가 노아를 데리고 가라고 최후 통보를 한다. 그때도 유나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실력행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은호는 난감한 상황이 된다. 아내가 없는 집에 노아를 데리고 올 수도 없고 아내를 찾으러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입장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유나가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의미로 집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오고 은호는 노아를 데리고 집에 들어온다.

 

유나의 실력행사(가출)는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좀 특별하다. 지유를 데리고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간 것이 아니고 사라진 것이다. 은호는 마음에 의심이 일어난다. 자신을 두고 전 남편과 밀회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다. 얘기가 과거, 현재 왔다 갔다 한다. 역순행적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중심인물도 수시로 바뀐다. 유나가 중심이 되었다가 은호가 중심, 지유가 중심이 되기도 한다. 재인(유나의 언니)이 이끌어 가기도 한다.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양파 껍질을 벗기듯 중심인물을 바꾸어 가면서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가령 은호가 유나가 집을 나가 처가에 가 있으리라 여기고 있는 와중에 재인이 찾아오고 재인을 통해 처가에 유나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 전화연락은 되지 않고, 유나가 전남편과 어떤 공간에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나의 전남편 준영은 극작가다. 그는 이혼을 하고 소송을 통해 유나를 압박한다. 지유를 일정하게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다. 유나는 전남편을 자녀에게 성추행을 하는 몰염치한 사람으로 매도해 자신이 지유의 양육권을 가진 상황이다. 법은 유나에게 기일을 정해 준영의 요구에 응할 것을 명한다. 그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유나는 조급증이 난다. 유나가 지유를 미끼로 준영을 유인하고, 시골 할머니 집으로 준영을 유인한다. 그곳에서 준영을 죽이고, 그것을 지유가 보게 된다. 유나는 지유에게 꿈을 꾼 것이라는 암시를 하면서 지유가 아무 말도 못하게 한다. 지유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다. 지유는 엄마가 자신을 버릴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엄마의 생각 속에 잡혀 있는 아이로 그려진다. 결국은 지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이런 일련의 일을 행하기 위한 실력행사였다. 즉 무결한 가족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집에서 은호, 유나는 노아와 지유를 만나게 하고 함께 살 궁리를 한다. 그런데 밤에 일이 일어난다. 유나의 작품이다. 노아를 데리고 온 할머니에게 다른 방을 마련해 주고 노아를 은호와 자게 만든다. 그러면서 은호에게 음료를 권하고, 그것을 마신 은호는 노아를 데리고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아침, 일어난 은호는 너무나 놀란다. 옆에 있는 노아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눌려 죽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러 정황이 유나를 겨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나의 전남편 준영의 실종신고가 경찰에게 들어오고, 준영의 동생 민영이 의구심을 가지고 준영을 찾기 위해 안달을 한다. 재인을 만나고, 심지어 모든 일들에 간접적으로 관계가 되어 있는 은호의 친구 진우도 만난다. 재인은 혼자서 사건의 개요를 찾아가게 되고 결국 옛 할머니 집까지 가게 된다. 그곳에서 유나를 만나게 되고 유나에게 구속을 당하는 상태가 된다.

 

그는 몸을 돌려 반듯하게 누우려다, 멈칫했다. 자신의 갈비뼈 밑에 부드러운 물체가 깔려 있었다. 처음엔 펭수인가 했다. 기억이 즉각 아니라고 답했다. 지난밤 팽수를 노아 옆으로 밀어 두었다. 그의 몸 역시, 기억의 의견에 동의해왔다. 뚱뚱하고 크고 부드러운 팽수와는 감촉이 완전히 달랐다. 어린 나무의 가치처럼 , 작고 가느다란 것이었다. 그가 숨만 크게 쉬어도 갈비뼈에 눌려 톡, 부러질 것처럼 연약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p124

 

노아가 죽은 아침의 상황이다. 은호는 너무나 놀란다. 노아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존재인데 자신에게 깔려 죽었다 생각하니 아득해 진다. 은호는 노아의 죽음에 대해 여러 각도로 조사를 해나간다. 아내의 자신에 대한 혐의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한다. 전 아내와 너무도 다른 자신의 잠버릇을 얘기할 때, 아내에 대한 의심이 강하게 일어난다. 다양한 각도로 자신의 잠버릇으로 노아가 죽을 수 있는가를 궁구한다. 경찰에서는 자신에게 혐의를 두고 조사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유나에 대한 의심이 더욱 짙어진다.

 

그는 다른 고민거리를 끌어왔다. 과연 어떤 아내의 말이 옳은가, 하는 문제. 한 사람의 잠버릇을 두고 옛 아내와 현재 아내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달랐다. 신뢰할 수 있는 제 3자의 의견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어떨까? 진우는? 둘 다 아니었다. 기억에 기초한 의견은 의미가 없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자신이 하는 짓에 대하여 객관적인 기록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야 했다. p257

 

노아의 죽음에 대해 은호의 조사한 내용에 대한 궁구다. 아내의 말이 도저히 믿음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다각도로 알아보고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 그리고 결국 이혼을 통보한다.

 

유나는 삶의 매 순간에 몰입하는 여자였다. 그 바람에 감정적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았다. ‘이리 와저리 가의 사이를 무시로 오갔다. ‘이리 와시간에는 천사였고. ‘저리 가시간에는 미친 여자였다.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처신하면 왜 자신에게 거리를 두느냐고 화를 내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기어코 극단까지 갔다. 자해를 하거나 자해를 가하거나. 헤어질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그때마다 유나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p355

 

유나의 나르시시즘적인 요소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유나의 삶은 모든 것들이 자기중심적이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딸 지유는 자신의 소유다. 자신의 소품이고 자신의 인형이다. 그러기에 그러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벌을 줘서 그렇게 만들어 간다. 지유는 눈치 백단이 되어 있다. 어떻게 해야 엄마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엄마 말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똑똑하다. 결국 아이의 총명함에 의해 글을 내용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다른 사람들도 유나에겐 자신을 위한 소품 정도로 인식된다. 자신의 것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언니 재인은 늘 치워야할 존재다. 그러면서 그 어진 성품을 이용한다. 자신이 일탈과 계획을 꾸밀 때 딸을 맡기기도 하고, 언니의 오랜 연인을 빼앗기도 한다.

 

그녀의 완전한 행복은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치워가는 일이다. 그녀는 말한다. 행복은 뺄셈이라고. 완전할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치워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자신을 떠나고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고 해고한 사람들은 불행을 만드는 존재라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없애간 것이다.

 

처음부터 그와 아내가 그리는 가족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아내의 가족에 노아는 없었다. 아내와 자신, 자신의 친 양자인 지유, 자신과 아내 사이에 태어날 아기가 무결한 가족이었다. 아내가 꿈꾸는 완전한 행복의 기본요건이었을 것이다.p391

 

민영과 진우, 그리고 재인에 의해 유나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진다. 유나가 러시아에 유학을 가기 전에 함께 살던 남자가 이별을 통보하면서 유나가 건넨 음료를 마시고 졸음운전을 해 사망했다는 사실, 아버지가 유나가 건넨 커피를 마시고 졸음운전 끝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려진다. 차츰 전남편 준영의 실종이 유나에게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압축된다. 그런 상황에서 은호가 더는 유나의 말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이혼을 통보한다. 유나는 그런 은호에게 말한다. 자신은 완전한 행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상황인데, 당신과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 자신이 가진 공장까지 처분하고 러시아에서 가족끼리 완전한 행복을 꿈꾸고 있는데, 이혼을 통보한다고 난리를 피운다. 그러면서 하루만 같이 있으면 이혼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은호를 시골집으로 유인한다. 딸 지유와 함께 가족이 나들이를 한다는 명목이다.

 

유나는 시골집에 언니 재인을 감금한다. 재인은 유나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가? 확인하기 위해 왔다가 오히려 감금되는 것이다. 재인이 유나의 전남편과 사이의 로맨스를 언급하면서 유나의 화를 돋운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유나는 사악한 계획을 세운다. 이혼을 선언한 은호를 유인해 반달 늪에 언니와 같이 죽게 함으로 세인들에게 희한한 치정으로 만들 계획이다. 계획대로 모든 여건이 갖춰진다. 은호를 시골집으로 유인했고, 재인은 시골집에 감금해 놓았다. 3명이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2층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지유는 되강오리가 운다고 한다. 그것은 아픈 기억을 재생하는 요소가 된다. 재인은 그 사연을 알기에 되강오리 흉내를 내 지유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그 소리에 유나는 지유에게 새 아빠 은호와 반달 늪에 갔다 오라고 강제로 시킨다. 그리고 위에 올라와 재인을 괴롭힌다.

 

한편 반달 늪에 갔던 이들이 돌아오고 그들은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 후 유나는 지유에게 방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암시를 주면서 의심을 하고 음료를 마시지 않는 은호에게 땅콩버터에 수면제를 발라 먹게 한다. 은호는 정신을 잃게 되고, 유나는 은호를 손수레에 실고 반달 늪으로 간다. 그것을 위 자신의 방에서 내려다보던 지유는 꿈속의 내용이 떠오르고, 자신의 친 아빠인 준영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상황을 떠올린다. 그리고 옆방에서 되강오리 소리가 들려오고, 벽을 통해 이모와 소통을 한다. 지유는 이모의 사슬을 풀어주고, 이모는 차를 몰고 유나를 따라 반달 늪으로 간다. 반달 늪에서 격투가 일어나고 결국 민영과 진우에 의해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 사건이 해결된다. 유나는 죽음으로, 재인은 조카 지유를 데리고 러시아로, 겨우 생명을 구한 은호는 시골로 내려간다.

 

글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타인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자신에게 최선의 일이 타인들에게 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행위를 보여준다. 자기애의 극단적인 경우라 볼 수 있겠다. 그런 삶은 경계를 받아야 마땅하다. 세상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주변 인물들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삼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인물이다. 자신은 그런 마음이 없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살펴봐야겠다. 물론 삶에서 자신이 위주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삶에는 조건이 있다. 타인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우선적이 되어야 한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살아있다면 이런 인간형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유정의 작품에는 사람들의 죽음이 많다. 죽음이 가져오는 극적인 면과 얘기를 깊이 있게 만들어나가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명에 대해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죽음보다는 다른 심리적 긴장관계를 놓치지 않게 하는 구조로 얘기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도 해본다. 사람들의 생명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인간의 끔찍한 삶의 방식을 대하면서 주변에 이런 유형의 사람이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 성향이 약하겠지만 모두에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프게 읽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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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새대의 책방에서 일어난 일들/책고래출판사 | 문학 서적 2021-08-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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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표교 세책점

구본석 글/반성희 그림
책고래출판사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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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들의 책을 가끔 읽는다. 아이들과 소통을 하기 위한 나름의 생각 때문이다. 아이들과 소통을 하면서 평생을 지내온 나로선 동화나 동시 등이 많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런 이야기책도 그런 각도에서 봐도 좋을 듯하다. <책비>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책을 통해 소통하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글이다.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들고, 아이들의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책의 배경은 조선후기다. 연암이 살았던 시기라고 보면 되겠다. 어린아이가 어렵게 성장하면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아마 독자인 아이들에게 많은 격려와 힘이 될 듯하다. 지극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세워나가는 겸이의 삶은 독자에게 많은 귀감이 되게 한다. 책이 책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어느 시대든지 귀한 존재로 통용되는 것이기에 이야기가 귀하게 다가온다.

 

천안 하릿벌에 사는 겸이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시장에 가기를 좋아했다. 시장에 가면 이야기꾼이 있어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와 누나들을 모아 놓고 재현을 했다. 모두 재미있게 들어주며 이야기를 잘 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겸이는 그것이 좋아 아버지에게 매 장날이 되면 장에 가자고 조르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러자고 했지만 일이 바쁘고, 또 일이 생기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아버지가 마름으로 있는 집의 주인이 죽었다. 그 뒤처리를 아버지가 다 감당했다. 어머니와 누나들도 일을 거들었다. 그 일이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쓰러졌다. 전염병에 걸린 것이다. 다른 식구들도 그랬다. 겸이만 그렇지 않았다. 그때 안성에 사는 외삼촌이 그곳에 들리러 왔다. 어머니는 외삼촌에게 겸이를 안성에 좀 데리고 가라고 했다. 전염병이 도는 그곳에 둘 수 없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외갓집에서 있는 잔치 때 겸이를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시간이 흐르고 잔치가 행해져도 가족들은 겸이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겸이는 고향 천안에 있는 식구들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외삼촌을 졸라 천안에 가보자고 한다. 마지못해 천안으로 간 외삼촌과 겸이는 못 볼 것을 본다. 집이 있는 곳은 모두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가족들은 모두 죽었다고 한다. 겸이의 집은 감염병 환자들이 있는 집이라서 관청에서 태웠다고 한다. 겸이는 넋을 놓아 버린다. 외삼촌은 그런 겸이를 안성에 다시 데리고 간다.

 

안성에서 살게 된 겸이는 외가에서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보부상인 외삼촌이 한양으로 갈 때 자신도 데리고 가달라고 한다. 삼촌은 어쩔 수 없이 겸이와 동행해 한양으로 간다. 그런데 한양 성문 앞에서 겸이는 초라한 외양 때문에 제지당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외삼촌만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외삼촌은 성문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볼일을 보러 성안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기다리던 외삼촌과 헤어지게 된다. 겸이가 외삼촌을 찾는 과정 속에서 도둑으로 돌리게 되고, 쫓기면서 못 만나게 되는 것이다. 겸이는 혼자 살고 있는 봉수를 만난다. 봉수는 겸이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아이다. 봉수는 딱한 겸이를 자신의 거처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같이 생활하면서 외삼촌을 찾는 것을 도와준다. 하지만 외삼촌은 만날 수 없게 되고, 겸이는 혼란스러운 생활을 한다.

 

염병으로 부모님과 누나들을 잃고 외삼촌마저 숭례문 앞에서 헤어져 도성 안에 흘러 들어온 자신이 서글퍼졌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p98

도성에서 처음 생활할 때의 겸이의 마음 상태를 잘 드러내고 있는 구절이다. 겸이가 어떻게 해서 한양에 살게 되었는가도 드러난다. 당시에는 염병이 돌면 고아가 되는 아이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같이 살게 된 봉수도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껴 겸이를 옆에 두게 되는 것이다. 둘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봉수가 똑똑해 성안에 있는 도기 상점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봉수는 겸이를 혼자 둘 수 없어, 또 겸이가 원하기도 해서 같이 도기 상점에서 일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 그래서 겸이는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글을 알아야 셈을 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봉수는 겸이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간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남산골 샌님 박 선비가 운종가에 책방을 열고 일을 할 수 있는 아이 한 명을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봉수는 겸이에세 딱 맞은 일이라 생각해 알린다. 겸이는 그곳에 지원을 하게 되고 결국 수포교 세책점에서 일을 하게 된다.

 

세책점은 요즘 말로 하면 서점이다. 책을 빌릴 수 있고 책을 구입할 수도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겸이는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책을 빌려주면서 책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책이 손상되기도 하면서 주인에게 꾸중을 듣기도 하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지혜를 짜기도 한다. 또한 서점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다시 용서를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연을 맺어 나간다. 겸이가 맺은 연 중에 여러 마님들에게 불려 다니면서 책을 읽어주는 책비 옥정은 마음의 의지가 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옥정은 겸이 보다 2살이 많다. 그리고 겸이의 책과 관련된 일을 크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겸이가 고친 금방울전을 부인들에게 읽어주면서 좋은 평을 듣게 되고, 그것을 겸이에게 전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탄력이 붙게 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인물로는 연암이 등장한다. 연암이 직접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연암이 쓴 열하일기가 시중에 유명 서적이 된다. 요즘으로 하면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겸이도 연암을 본 것으로 표현해 준다. 동시대라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조정에서 이야기책이나 개인의 기록물 등을 읽는 것은 선비들의 문장을 가볍게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서점이 잘 운용이 안 되기도 한다. 서점이 어려운데 책에 낙서하는 경우도 생기고 불에 타는 경우도 생긴다. 그것이 겸이가 아는 인물을 중심으로 일이 일어나니까 질책을 받기도 한다. 그 일들이 기회가 되어 책에 대해 보완하는데 마음을 쓰게 된다.

 

겸이는 손상된 책의 마지막 부분을 자신이 보완해 기록해 완성시켜 보기도 한다. 또한 기존의 이야기책을 자신의 색깔로 고쳐서 재창작을 해보기도 한다. 그것이 주인에게 인정을 받고 주인이 필사를 해서 서점에 전시하는 상황을 만들기고 한다. 그 책을 가져간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고 겸이의 이야기책에 대한 각색은 속도가 붙는다. 이야기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이다. 토끼전, 춘향전 등을 약간씩 고쳐져 내놓기도 하고 금방울전은 마지막 떨어져 나간 부분을 재구성해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것이 이 책의 줄거리가 된다. 책을 보는 사람들이 큰 호응을 하게 되고 일약 어린 작가가 되어 자신의 책을 가지기도 하게 된다. 나름의 일가를 이루는, 주인이 책방을 맡길 정도가 되는 인물이 되어간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어떤 사람이 겸이를 찾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사람은 보부상이라고 한다. 겸이는 보부상인 외삼촌을 만나러 간다. 그 만남이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에 대한 귀함을 마음에 담게 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가 책이라는 것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그려나가고 있는 글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을 만날 수 있음을 얘기한다. 고진감래라고, 이 글에서 겸이는 외삼촌도 만나고 책점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스스로도 이야기책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뜻이 되리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못 된 길을 가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겸이를 보면서 삶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 그것은 이렇게 곳곳에서 선의의 사람들에게 귀한 친구가 되고 있음을 우 리는 본다.

 

아이들을 위한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역사를 배경으로 해서 이 시대에 그려낼 수 없는 문제가 되는 이야기들을 그려보고 있다는 것 의미가 크다. 시대와 본질적인 사람들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재미나는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시대의 안타까움은 좀 느낀 바가 있다. 모두가 잘 살아가는 즐거운 삶이 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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