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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늘 거기 그렇게 있어 주었다 | 특별 리뷰 2021-03-1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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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산이 좋아졌어

산뉘하이Kit 저/이지희 역
인디고(글담)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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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나를 늘 행복하게 하는 공간이다. 그 곳에 있으면 세상의 일들이 물러간다. 조용해지고 마음이 평안해진다. 깔끔해진다고도 볼 수 있겠다. 세상의 일들이 작아 보이고, 더러는 명예와 권력이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산은 은인자중을 배우게 한다. 산은 깊은 마음이 되게 한다. 산은 스스로 자랑하지 않게 한다. 산은 내 영혼의 반려자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이런 산이 좋다. 나는 이 나무들이 좋다. 심신이 고단해질 때 이곳에 들어서면 모든 잡다한 것들이 다 물러간다. 조화가 되고 중용이 되고 평안이 된다.

 

이 책을 만났을 때 바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산에 대한 나의 생각 때문이다. 산은 나에겐 중화와 평화의 공간이다. 행복의 바로미터다. 이런 공간이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 지 말로는 이루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진해진다.

 


 

이토록 황당하면서도 낭만적인 여정이라니. 처음에는 신탁이나 하늘의 계시인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야 이런 은유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저 나만의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살면서 별이 나의 갈 방향을 가르쳐 준다거나, 압도적인 계기가 답을 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삶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중간과정이 필요하며, 신조차 중계소를 필요로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산으로 걸어 들어가 보라.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만났다. 내가 그랬듯, 당신도 당신과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

 

저자가 산을 만나고 산에 매료가 된 생각을 해보고 있는 내용이다. 아마 이 문장들이 저자가 산을 좋아하고 산을 찾고 산을 오르며 산에서 느낌을 가진 모든 내용들을 포괄해 얘기할 수 있지 않으랴 생각해 본다. 저자는 산을 지속적으로 올랐다. 그리고 그 산에서 만난 단상들과 자연들, 그리고 사람들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산이 주는 지혜를 말하고 있다. 산은 그렇게 스스로를 만나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산에 가면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만날 수 있는 듯하다. 산을 오르면서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한다. 몸이 부실하면 부실한 대로, 마음이 흡족하면 흡족한 대로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는 거의 건설적인 대화가 된다. 순수와 긍정의 대화가 된다. 산에 올라서도 좋지만 오르면서 느끼는 그 힘겨움과 아울러 다가오는 긍정의 아이콘이 좋다. 그것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많은 시간을 살아왔다.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일상으로 즐겨할 따름이다.

 

저자는 산에서 특심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산 아래 세상만큼 힘들진 않으니까? 라고 완곡하게 얘기하는 저자의 산에 대한 느낌의 일단을 본다. 물 한 모금, 사탕 한 개를 가지고 오르는 산길은 힘겹다. 하지만 모든 게 확실하다. 그 명료함이 좋다. 세상에 있으면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데 산에서는 모든 것이 분명하다.

 

산 위에서는 일출을 맞이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생각은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명료하게 해준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오늘 일어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아득하다. 그럴 때는 산이 더욱 떠오른다. 산은 걷고 오르고, 바라보고, 느끼고 그러면 된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악착같이 싸우고 남을 이기려 하고 하는 것들이 없다. 자연이 주는 대로 가지고 느껴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산에 오르는 시간만큼은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인이 된다.

 

난 고산(高山)을 오르는 일에 대해선 잘 모른다. 저자는 배낭을 메고 산을 향해 떠나는 행위를 좋아한다. 책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들만 봐도 높은 산, 깊은 산 등을 두루 섭렵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산을 오르면서 산속에서 만난 모든 것을 언어와 조합시킨다. 그것이 감동으로 연출되기도 하고, 놀라움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산이 아름다운 풍광으로 언어를 채색하게 한다. 산과 저자가 더불어 이익이 되는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산에 가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서,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가지게 되고 산의 효용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참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나눔이 아닐까 여겨진다.

 

설령 지금 당신이 모든 존재의 이유를 상실했다고 해도,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모른다 해도, 지금 이별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이별을 통보받았다고 해도, 나는 그 모든 걸 이해한다고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다. 저자는 산을 통해 만난 지혜를 만나고 있다. 당연히 사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마음에 달려 있는 경우도 있다. 그 마음을 산은 우리들에게 일깨워 준다. 삶의 여정이 우리를 여물게 하는 과정이라고. 삶이란 긴 시간 동안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삶속에서 숱하게 자신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다독여야 한다. 그런 힘과 그런 여유를 산은 가지게 만들어 준다. 산의 지혜에 공감하면서 산을 오르는 자는 복되다.

 

 
 

산을 오르는 것이 혼자서 되는 일은 아니다. 동반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함께할 때 그 산행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상호보완이 되고 서로 의지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산행을 하면서 많은 동료들을 만난다. 그들과 산을 오르면서 가지게 되는 동질감은 나려놓음이다. 함께 내려놓으면서 만날 때 소중한 기억이 된다. 그 기억은 많은 것들을 해결해 나갈 자산이 된다. 산은 넓은 마음(호연지기)을 기르게도 하지만 섬세하게 타인의 마음을 살피게도 한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다. 그렇기에 서로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은 미래를 예견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산에 오르면 거대한 정기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삶의 힘이다. 그런 힘의 배양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산이 주는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산에 대해 더욱 호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책이 아니라도 산은 우리 인생들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다. 손을 자주 오르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다. 산은 작은 것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찾게 만들고, 자신의 삶의 긍정적인 방향성을 모색해 준다. 산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를 말하는 것은 입만 아프리라. 이 책을 통해서 산의 진면모를 더욱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산은 늘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의 힘겹게 살고 있을 때, 그것을 위로하고 있다. 산을 가까이 하는 삶은 생명의 소리와 함께하는 길이다. 감사하게 책을 읽었다. 산은 우리를 멋지게 살도록 이끌어준다. 저자의 책에서 그런 느낌을 받고 있다. 멋진 인생(人生).

 

(예스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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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치유의 길을 찾다/수오서재 | 특별 리뷰 2021-03-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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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김준기 저
수오서재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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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유년 시절에 학교 가는 길에 조그만 동굴이 하나 있었다. 그 동굴은 어린 나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흉악한 짐승들이 살고 있고, 혼자 가는 사람들에게 달려든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얘기까지 소문으로 듣는다. 어릴 적 학교는 가야하고, 그곳을 지나쳐야 하는 상황에서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가위 눌리는 적도 있다. 친구들과 학교에 다녔는데, 어쩌다 함께 갈 수 없을 때는 정말 그 앞을 지나기가 두려웠다. 그럴 때 그 앞을 지나야 하면 100m 달리기 선수가 되어 뛰었다. 그런 것이 어떤 닫힌 공간에서의 답답함이 되어, 요즘도 동굴 같은 곳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자신을 스스로 밀어내는 자기 방어기제로 작용하는 듯하다.

 

유년 시절을 어떻게 성장했는가가 그 사람의 일생을 많이 좌우한다. 유년 시절에 억압과 공포 가운데 자란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그런 것을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 몸을 사리거나 과격한 반응을 나타낸다. 그것은 결국 그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모두 트라우마가 된다. 트라우마는 자신이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작용하는 일련의 모습들을 통칭해 말한다. 그것은 지극히 자극적이고 과격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영화 이야기

 

이런 트라우마는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도 이런 경우, 많이 일어난다. 트라우마를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감동이 된다. 이야기가, 영화가 이런 것을 놓칠 리가 없다. 이 책은 영화 25편을 통해서 나타나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그 치유의 과정들이 담겨져 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책을 쥐고 있는 내내 트라우마도 트라우마지만 영화와 함께하고 있다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일반 기억과 트라우마 기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처음 지적한 사람은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피에르 자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 이 선지적인 정신과 의사는 환자들을 세심하게 면담하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기억의 이중체계를 발견하고, 두 가지 기억이 명확히 다르다는 것을 지적했다. 24

 

트라우마를 끌어내고 있는 내용이다. 일반 기억과 트라우마를 구분해 보고 있다.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잘 확인할 수 있다. 일반 기억은 인간관계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을 주장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 기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기억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변용된다. 그리고 이야기를 반복할수록 점점 더 정교하고 유연하게 통합되어 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즉 일반 기억은 실제의 사실과 다르게 변형되었을지라도, 시간 개념이 분명하고 앞뒤 맥락이 질서 정연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트라우마 기억은 통합되어 있는 얘기가 아니다. 기억의 파편 조각이라 할 수 있다. 시간 개념이 없고, 앞뒤 맥락도 모호하다. 그것은 감정과 신체 감각 혹은 이미지로 뜬금없이 표출된다. 조리도 없고 설득력도 없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분노가 풀발하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기억이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으라.’는 신호를 내보내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기억인 이 트라우마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충동적이고 감각적인 기억인 이 기억은 그러기에 훨씬 더 사실적이다.

 


 

그런 브라이언에게 어느 날 마치 영화처럼 한 여성의 사랑이 찾아온다. 사랑이 힘으로 브라이언은 주치의의 오랜 속박에서 빠져나와, 지긋지긋한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창작 활동에 매진해 2004년에 드디어 <Smile>이라는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음반은 브라이언이 <Pet Sounds> 앨범을 만들고 난 뒤, 무려 38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앨범으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받은 그는 재기에 성공하여 현재까지도 전 세계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정말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조현병으로 진단받고 20년간 약물 복용을 했던 사람이 약물을 완전히 끊고 다시 자신의 능력을 되찾고 재기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니 놀랍다. 일반인들은 이 이야기를 감동적인 한 이야기로 들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의사들에겐 아무래도 석연치 않게 수용될 수밖에 없다. 물론 특별한 경우가 이겠지만 조현병이란 질병은 약물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대개 재발과 정신적 황폐를 가져오고 전반적인 기능과 능력이 서서히 감퇴를 가져오는 진행 과정을 보인다. 그러면 이 브라이언의 성공은 어떻게 보는 것이 옳을까? 과연 조현병으로 보는 것이 옳을까?

 

영화 <러브 앤 머시>는 미국의 전설적인 팝 그룹인 비치 보이스의 뮤지션 브라이언 윌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는 이 그룹에서 주로 작곡과 작사를 맡았다. 이 그룹은 영국의 비틀즈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의 팝 밴드다. 그는 비틀즈의 노래에 버금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시간을 겪으면서 <Pet Sounds>를 만든다. 이 음악이 당시 그 유명했던 앨범이다. 그런데 이 앨범이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맴버들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음악이라고 비난을 받게 된다. 지나치게 예술성을 추구한 난해한 음악이라는 이유에서다. 정작 경쟁 상대인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는 극찬을 했는데 말이다. 이 영화를 통해 보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창작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고 늘어난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정신적, 신체적으로 피폐해져 결국 음반 작업을 중단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브라이언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난다.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린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의심하지 않고 조현병 초기라 진단한다. 그리고 20년 조현병 약을 복용하게 된 것이다. 이러다 한 여인을 만나고 회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의사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조현병으로 오진해 상황을 여기까지 몰고 온 것이라고 본다. 트라우마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아버지는 과도한 폭력을 사용했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작용한 것이라고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결국은 그 여인의 사랑을 통해 치유된 것이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의 영향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비난과 잔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이들보다 방임을 겪은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로 일어나는 해리장애를 더 많이 겪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엄마가 우울증이나 트라우마로 고통받아 아이들에게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할 경우, 그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보다 6배나 더 많은 정서적 문제를 보이게 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많은 아이들은 차라리 엄마에게 야단맞을 때에는 그래도 엄마가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반면, 엄마가 아무런 반응을 안 보이면 난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여서 엄마에게 애정을 받을 수가 없구나하는 절망감에 빠진다.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 고통을 의식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인격을 분할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해리 현상이라 한다. 해리는 그 자체로 질병이라고 하기보단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재라 할 수 있다. 해리장애는 한 번 일어나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즉 조그만 자극에 의해서도 쉽게 해리가 일어나니, 고통스러운 상황이 된다. 해리는 1, 2, 3차 해리로 온노 판데르 하르트는 나눴다. 1차 해리는 단순 외상 후 스트레스, 2차 해리는 분노폭발과 자해 같은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보이는 복합성 트라우마 장애, 3차 해리는 다중인격에 해당된다. 흔히 3차를 해리로 보지만 1, 2차도 해리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2004년 칸 영화제의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아무도 모른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한 여성이 4명의 아이들을 허름한 아파트에 남기고 수 개월간 집을 떠난다. 이 일이 일본 동경에서 일어난다. 열두 살이 된 장남 아키라는 언젠가 엄마가 돌아오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버틴다. 엄마를 대신해야 하면서 느꼈을 그 고통, 두려움 무엇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희망의 끈이 끊어질 때쯤 엄마가 돌아온다. 하지만 엄마가 또 나가버릴까 봐 그 두려움을 얘기도 못한다. 그런 가운데 엄마는 아이들이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생겼다면서 다시 집을 나간다. 아키라는 돈도 떨어지고 동생들과 도시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간다.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을 먹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공공의 장소에서 몰래 빨래를 한다. 전기, 물이 끊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가운데 막내가 죽고, 시신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동생이 평소 좋아했던 공항 근처 공터에 묻는다. 이처럼 어릴 적 부모의 무관심이 가져다준 트라우마는 치명적이 된다.

 

이 영화의 실제 모티브가 된 내용인 스가모 아동방치사건은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아버지가 다른 5명의 아이들을 낳은 엄마는 아이들의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수년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작은 생활비만 보조했다. 셋째가 죽자 벽장 안에 악취 제거제와 두었고, 막내도 첫째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죽었다. 그러다 이 일이 매스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아이의 엄마는 보호자 책임유기, 상해치사 및 시신유기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그 일로 세간에서는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여론이 일었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의 역할을 되찾는 것이다.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할 때 치유가 가능하다. 관계회복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해리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양익준 감독은 <똥파리>내 분노를 다룬 살풀이 영화이며 일기에 쓸 내용을 영화로 찍었으니 영화가 내 일기와도 같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양익준 감독 본인의 실제 어린 시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진 이야기인 것 같은데.......그렇다면 그에게는 어떤 긍정적인 기억회로가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195

 

영화 속의 주인공 상훈은 지극히 폭력적인 인물이다. 그의 폭력 상향은 거의 통제 불능이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주저하지 않고 폭력이 먼저 행해진다. 그 특성을 살려 사체 이자를 받아내는 용역업체 직원으로 일하면서 무자비하게 일을 행한다. 이 사람 저 사람 때리고 또 때린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횡포 때문에 겁에 질려 성장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말리던 여동생이 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찔리게 되고, 병원으로 옮기는 중 숨을 거둔다. 엄마도 정신없이 따라오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한꺼번에 가까이 살던 식구들을 모두 잃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폭력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책망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힘을 기른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서 난폭하게 분노하는 자아로 성장하게 되었다. 힘도 싸움도 어느 정도 되어서는 뇌의 분노조절정치가 고장 난 상태에서 폭력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성장에는 긍정기억이 있었다. 배다른 누이의 아들 형인에게 향하는 삼촌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은 다른 구석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 오랜 친구 만석과의 관계에 투박한 언어를 사용할 지라도 사이에 흐르는 온기가 있다. 이것은 분명히 초록색 신호라 할 수 있다. 그런 상훈의 삶에 어느 날 여고생 연희가 나타난다. 연희도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다. 하지만 연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애를 쓴다. 그런 연희에게 상훈은 묘한 동질감과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온 과도한 분노에 대해 의구심과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고 폭력 없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한다. 즉 긍정의 불빛이 들어온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긍정의 기억 회로가 만들어낸 치유의 모습이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삶을 살아갈 지라도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지닐 때가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소중한 이야기다. 그것이 바탕이 될 때 회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트라우마 회복의 신호는 보편적으로 서서히 나타난다. 트라우마 사건과 관련된 강렬한 감정을 견딜 수 있다. 증상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며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과 공간 등이 조금씩 늘어난다.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관계는 정리해 나간다. 손상되었던 자존감이 회복된다. 부정적인 믿음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유연하게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세상이 생각보다 우호적이고 선량한 곳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248

 

회복은 서서히 일어난다. 그래서 막상 회복이 일어날 때는 변화를 감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시릴이 사만다와 함께 행복하게 웃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회복의 신호들이 하나씩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어느 햇빛 좋은 날,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시릴이 사만다와 자전거를 타고 있지나 않을까? 마음에 온다.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 속의 시릴의 얘기다.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의 주인공 시릴은 보육원에서 자란다. 시릴은 아버지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엄마는 영화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보육원을 탈출하는 위험도 겪는다. 시릴이 어렵게 아버지를 만나지만 아버지가 벌써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불쌍한 시릴에게 새로운 인연이 나타난다. <애착관계는 혈연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보육원 교사들을 피해 병원 대기실에 있던 시릴은 그곳에 왔던 사만다와 부딪히게 된다. 사만다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 난생 처음 보는 아이가 귀찮게 하는데도 오히려 따뜻하게 다가와 준다.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 보육원으로 가져다주고, 시릴이 주말마다 보육원을 나가고 싶다고 하니 위탁모가 되어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생면부지의 시릴의 삶에 뜬금없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 편이 되어 주고, 친아버지를 찾으러 갈 때도 동행해 준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고통스러워 할 때 슬퍼하지 마. 이제부터 내가 네 곁에 있어줄게.’ 한다. 시릴은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렇게 트라우마에서 긍정적인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회복의 길을 찾게 된다.

 

나가기

 

영화 속에 나타난 트라우마의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이다. 세상에서 크든 작든 트라우마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 담고 힘들어 하고 아파는 사람들에게 이런 영화는 묘약이 된다.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동일시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영화가 주는 재미와 즐거움도 중요하겠지만, 이처럼 삶을 풍요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대입할 수 있는 내용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통해 자신를 보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영화와 나의 소극적인 삶의 태도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듯하다. 책이 마음에 절실한 이야기로 다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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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정치 방향은 바람직했다/이광재 | 특별 리뷰 2021-01-1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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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무현이 옳았다

이광재 저
포르체 | 202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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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의 생각을 하고, 그만큼의 뜻을 펼쳐내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간접경험이든 직접경험이든 경험한 세계가 생각과 뜻의 근간을 이룬다는 말이다. 노 대통령은 성장과정의 삶이 기득권자들의 선택받은 삶이 아니고 모든 국민들이 겪는 민중의 삶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삶의 행로에서 소중한 바탕이 되었다. 자신의 생각, 그 중심을 잡아주는 지주가 되었다는 말이다. 민중들이 잘 사는 삶, 국민이 행복하게 머물면서 살아갈 수 있는 나라, 사람들이 안전을 느끼면서 발붙이고 서는 땅 등이 그의 통치 목표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고 싶었던 것 역시 진짜민주주의다. 그가 권위주의를 청산한 것도, 수평적 사고를 펼쳐 보인 것도, 중도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연정을 주장한 것도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여 가장 나은 미래를 그려보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민이 주인인, 진정한 민주주의다.

 

노 대통령이 통치철학이 잘 드러나고 있는 문장들이다. 그가 원한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기득권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누리면서 다스려 나가는 것 아니다. 함께 의논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생각하는 수평적 사고가 바탕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이 권력자가 될 때 가능하다. 앞에 서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국민들의 할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에서 많이 행해졌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 연정이라는 것이다. 연정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독점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그것은 권력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사고의 바탕 위에 섰을 때 가능하다. 노 대통령은 그렇게 했던 사람이다. 우리가 그의 생각을 바르게 바라보는 것도 이런 건강한 생각의 바탕 위에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무능력한 사람을 솎아내지만 민주주의는 무능력한 사람도 함께 살아야 할 우리라고 간주한다. 이 원리가 작동되지 않으면 경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몰락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딛고 일어서 부자가 되었지만 절망과 분노만 가득한 불안한 세상에서 더는 이윤이 날 리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다. 정치를 맡은 자들의 근본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고, 그 가치는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나라라는 말이다. 오늘날 코로나로 무척이나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상인들에게 기초적인 삶이 보장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그런 취지가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통치철학에서 이 두 가지는 가장 기본이 될 듯하다. <국민이 힘 있는 나라> <구성원이 모두 먹고살 만한 나라> 이 두 가지가 핵심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글은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만으로도 글의 방향을 알 수 있겠다. <1장 세대, 너와 나의 에너지가 시너지로> <2장 정치, 균형으로 모두의 나라를 열다> <3장 기술, 혁신의 중심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4장 교육, 질문하는 교육으로 전환하라> <5장 부, 누구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6장 글로벌, 세계의 중심에 대한민국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이 지향하는 바를 뚜렷이 밝혀 놓고 있다. 정치, 경제, 교육, 동력, 비전 등 국가 경영의 다양한 내용들을 분명하게 제시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애매모호한 문장보다 이렇게 분명한 글이 좋다. 무릇 지도자들의 언행은 일관성과 명확성이 주된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노 대통령과 함께 정치활동을 하면서 보고 들은 내용들에 자신의 생각을 가미해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저자의 생각인데,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담겨 있는 문장들과 행했던 말들이 섞여 있다. 그들의 정치적인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이 글의 키워드는 세대, 청년, 기술, 교육, 경제, 글로벌 등이다. 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 어휘들이다. 이들이 살아 있을 때 그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될 것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가가게 될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조각되어야 하는가는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담겨 있는 부분이다. 늘 궁구하면서 대화하면서 노 대통령은 이들을 가까이 두려고 했다. 이들을 가장 합당하게 만들어 가고자 했다. 그 생각의 언저리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대통령의 옆에서 오랜 시간 보좌한 저자 이광재가 정리하고 쓴 이 책이다.

 

저자는 청년들이 살아야 함을 얘기한다. 청년들이 마음껏 원대한 꿈을 펼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함을 말한다. 최선을 다해 도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실패한다면 그것은 다음번 도전을 위한 경험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실패했을 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 도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시스템적인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준비와 계획을 나라와 사회가 마련해야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이 마음껏 뜻을 펼칠 무대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첨단의 일들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라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초석이 된다. 청년을 향한 기대와 사랑이 절절한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정치적 신념을 읽을 수 있다.

 

정치에 대해 비판하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을 볼 때 노 대통령은 말한다. 출마하시죠. 출마해야 세상이 바뀝니다. 우리가 정치인을 비난하고 외면하면 다 나쁜 정치가 우리 운명을 지배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운명을 바꾸려 하지 않고 힐난하고 안주 삼기만 한다면 그들은 권력의 자리로 가서 우리 인생을 안주 삼을 거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가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했다.

 

마음에 확 다가드는 말이다. 정치가 정치인들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민중들의 것이어야 한다. 정치인은 민중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힘을 빌려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기에 정치는 근본이 튼튼해야 한다. 근본은 물론 민중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말고, 뜻이 있거든 나서는 게 옳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선거권도 있고 피선거권도 있겠지만 말이다. 정치인들이 권력의 자리로 가서 민중들의 인생을 안주 삼아 얘기를 할 것이라는 말은 뼈아프게 들리는 말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저자의 정치 철학은 분명하다. 정치는 국민들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영을 떠나 생존의 문제다. 정치가 잘못되면 국민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국민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은 바르지 않다. 그러기에 정치는 기득권자들의 풍요한 삶이 아니라 국민들 개개인의 궁핍하지 않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나눔을 생각하게 된다. 모두에게 이로운 정치, 모두가 손해 보지 않는 정치를 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진정한 소임이다.

 

이런 정치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정책적으로 키워야 한다. 정치는 리더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정책과 인재도 중요하다. 리더 혼자의 의지나 열정으로 이루기가 쉽지 않다. 훌륭한 정책을 세우고 그것을 이뤄낼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나라가 이런 인재가 드러날 수 있도록 환경과 제도를 구비해 나가야 한다. 리더들이 할 일이다.

 

저자는 기술을 통한 진보와 발전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상상과 열정, 그리고 기술이다.”란 말을 한다. 저자의 이 말에 기술에 대한 생각의 근원이 있다. 오늘날 기술은 디지털이다.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혁신, 그것이 시대를 이끌어나갈 요소가 될 것이다. 이 기술은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디지털 기술로 스마트한 정책을 펴고 만들어나가는 것이 늘 생각했던 내용이다. 감각에 의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해나가야 실패나 실수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정책 추진이 이루어질 때 의견 충돌을 줄일 수 있고 실질적으로 정책이 실효성을 거들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 모든 데이터가 움직이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이 국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교육은 인재와 관련된다. 인재가 많은 국가, 강력한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인재들이 국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도 있다. 이런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교육이 기회의 균등을 박탈하는 쪽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무상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되는 공교육의 질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디지털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인터넷과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런 교육이 가능하게 한다. 공교육만 행하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는 지식을 구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제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교육의 근본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교육개혁이란 이름으로 이들이 행해지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창의력과 사고력이 중요한 오늘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입각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창의적인 질문과 궁구하는 학습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혁신적, 창의적인 사고의 주춧돌이 된다. 교육은 그 나라의 미래다. 고인 물은 썩어 생명체를 죽게 하지만 흐르는 물은 더욱 깨끗해지고 귀한 에너지가 되어 생명체에 활력을 불어 놓는다. 고인 지식은 발전과 전진이 없다. 그래서 지식은 권력을 가진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르게 돌아간다. 국민은 모두 저렴한 돈으로 어느 곳에서든 언제든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경제는 늘 가진 자의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늘 약자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노 대통령은 이것을 나누길 원했다. 나누어서 같이 살기를 추구했다. 그랬기에 가진 자들에게 일하는 자들을 위해 필요한 만큼 내어 놓기를 요구했다. 이론적으로 너무나 좋은 내용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발목이 잡힌 이야기다. 노 대통령은 깨끗한 가난(淸貧)보다 청부(淸富)를 원했다. 모두 잘 사는 삶을 바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가진 자들이 그런 생각과 나누고자 하는 정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는 조화의 큰 걸림돌이었다. 가진 자들의 횡포를 막을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제의 속성 때문에 최소한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삶이 충족되는 나라, 같이 잘 사는 나라를 꿈꾸고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씨앗은 뿌려졌고 지속적으로 자라고 있다고 본다. 혁신도시, 건강한 복지정책은 이 정책의 연장선이다.

 

저자는 글로벌한 국가를 추구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변방의 역사를 세계 역사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동북아 협력,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의타적인 국가가 아니라 세계에 다가가는 주도적은 국가로 위상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들에서 한국산(K-)가 세계에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우리의 것이 최고가 되고, 최고의 것이 우리 것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를 구했다. 저자가 가고자 하는 글로벌한 세상은 분명했다. 지금 그것은 우리들에게 확신으로 다가온다. K-POP K- 푸드 K-방역 K-뷰티 등 지금은 증거로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뿌린 씨앗이 자란 것이다. 노무현이 옳았던 것이다.

 

저자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생각, 계획, 전망, 실천 내용 등을 몇 가지로 제시해 얘기해 보고 있다. 그리고 정책의 구체적인 모습까지 발전적으로 얘기해 준다. 하지만 나라의 일은 생물과 같아서 진행되어 나가는 과정에 따라 잡음도 있고, 손실도 있다. 노 대통령의 정책이 모두 성공적으로 끝이 난 것은 아니다. 경제 문제도 그렇고, 교육 문제도 그렇게 호평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통치의 근본이 되는 방향은 옳았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국민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것, 글로벌한 국가를 만드는 것, 청년들이 탄력을 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 첨단 기술을 강화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 등 추구한 방향이 옳았고, 그의 진심 어린 국민을 위한 노력이 앞으로 우리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임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지할 수 있다. 오늘의 정치 현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도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된다. 저자는 노 대통령을 통해 이렇게 자신의 정치 철학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준다. 명쾌하고 날카로운 저자의 시선을 우리는 눈여겨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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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정원은 불가분의 관계다 특히 화가는! | 특별 리뷰 2020-12-1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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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화가들의 정원

재키 베넷 저/김다은 역
샘터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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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문화적 생활과 정원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인간들이 조금 더 볼거리를 찾고 더 정신적으로 자유롭고자 치장하는 게 정원이다. 정원은 보통 집의 한 공간에 있다. 집에서 가장 아름답게 꾸미고, 꽃과 건물을 적절하게 배치하며, 연못 같은 것을 만들어 풍취를 느낄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여유와 능력과 자유가 머무는 공간, 그 머물고 있는 사람의 품위와 재력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이곳을 보면 주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순천 국가정원을 다녀온 적이 있다. 곳곳에 다양한 나라의 정원들을 꾸며 놓았었다. 그 정원을 보면서 그곳 사람들의 정신, 삶을 느껴볼 수 있었다. 각국의 선호하는 삶의 모형도 볼 수 있었다. 윤선도가 낙향해서 머물렀던 보길도라는 섬에 들린 적이 있다. 섬 자체가 윤선도의 집처럼 느껴졌다. 특히 바닷가에 있는 세연정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외의 다른 공간들은 거의 훼손되었지만 말이다. 세연정은 윤선도가 유흥을 즐기고, 자연을 완상하면서 시문을 짓고 했던 공간이라 여겨진다. 정자가 있고 연못이 있으며 기화요초가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흔적이 남아 있다. 윤선도의 호방한 성품, 풍류를 즐기는 마음까지 읽을 수가 있었다.

 

 

보길도 세연정(가져 옴)

 

정원은 이처럼 그 공간이 주인들의 취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예술의 무대가 된다. 국가정원에서 보았던 그 많은 정원들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흔적, 그것이 미술이 되고, 음악이 되며, 문학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세연정의 계절 따라 펼쳐지는 다양한 모습들이 <오우가>가 되고 <어부사시사>가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정원은 그 주인의 마음이 곳곳에 스며 마음이 되고, 품격이 되며, 그림으로 언어로 채색되어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온다. 그 정원과 주인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글의 중심 내용및 이미지 

명화를 탄생시킨 비밀의 공간이라고 이름 붙였다. 많은 그림들이 나온다. 물론 정원들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이다. 정원이 얼마나 화가들에게 인기 있는 공간이었는가를 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저명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이 정원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네가 있고 르누아르, 프리다칼로, 세잔, 살바드로, 레오나르도, 루벤스 등도 있다. 이들이 만난 정원이 있고, 그것들이 화필에 담겨져 있다. 정원은 바로 이 화가들의 영혼의 안식처였던 것이다. 그림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생명의 핏줄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삶의 곡진한 시간을 보내며 영혼을 갈무리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들에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책은 크게 둘로 나누어 전개해 나간다. <화가들의 집과 작업실 그리고 정원>으로 소규모의 개인적인 정원이 자료가 된 경우와 <화가들의 마을과 정원>으로 규모가 큰 공동의 정원이 바탕이 된 경우다. 이 두 개로 나누어 화가들과 정원들 그리고 작품들의 상관관계를 드러내면서 서술해 나간다. 멋진 작품을 보고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하는 이중의 복을 누리면서 책을 만날 수 있어 독자는 행복하다. 독자는 자신의 방에 많은 예술가들의 정원을 들여 놓을 수 있고, 많은 작품들을 걸어놓을 수 있다. 하여 방을 정원이 있는 미술관으로 만들 수 있다. 얼마나 기꺼운 일이 되랴.

 

화가와 정원의 관계는 단순하지만은 않다. 19세기 후반 센강 인근에 머물며 작업했던 프랑스 인상파 화가 피에로 보나르와 귀스타브 카유보트, 클로드 모네는 예술만큼이나 식물을 사랑했던 노련한 정원사들이었다. 파사로와 마네, 루누아르, 고갱, 모네 등 파리의 화가들은 열성적으로 정원을 화폭에 담아냈다. 필요에 따라 정원을 빌려쓰는 화가도 있었다. 미국의 인상파 화가 프레데릭 차일드 하삼은 코네티컷 올드 라임의 화가 마을과 메인 숄스 제도에 있는 실리아 덱스터의 정원에서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얼마나 정원이 화가들의 좋은 영양제였나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다.

  

 공기가 강처럼 흐르며 구름을 품고 움직이네.”-네오나르도 다 빈치

 

래오나르도가 구상했던 정원이 후세에 만들어졌다. 당시 레오나르도의 건축과 공학 설계도 120여 개 중 일부에서 착안해 정원을 설계했다. 그 중에서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 유럽을 휩쓸었던 전염병에 대한 대응책을 고민하여 떠올린 2층 구조의 다리가 있다. 동물과 수레는 아래층, 사람은 위층 다리 아래로는 하수관이 지나도록 하는 구조다. 이 목재다리는 다빈치의 설계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것이다. 그의 철학은 인위적으로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태도가 반영되었다. 화학물질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레 로브 정원의 테라스(세잔)

 

엑상프로방스의 지역 유지였던 세잔의 아버지는 저택을 둘러싼 거대한 땅을 매입했다. 개인 목초지, 경작지, 일꾼들의 농가까지 넣었다. 세잔은 이곳에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세잔이 그린 <자 드 부팡>의 그림들을 보면 아버지의 정원을 상상해볼 수 있다. 세잔은 이곳이 파리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세잔은 아버지의 정원과 가까운 곳인 레 로브로 옮겨가 그곳에서 살면서 작업을 했다. 이곳에서 상당수의 걸작을 완성했다. 빅투아르 산을 그린 그림들, 정원과 테라스를 그린 수채화 몇 점, 마지막 정물화들, 그리고 <목욕하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작업했다. 세잔은 쇠약해져 정원에서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정원의 풍경과 조용한 생활을 하는 여생을 보냈다.

 

에수아의 집과 정원이 담겨 있는 에수아의 집<르누아르>

  

정원은 기하학적 구조에 맞춰 만들어 져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리베르만의 정원(리베르만)

 

르누아르는 사람들이 대개 사람, 특히 여성들을 많이 그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원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도 그렸다. <정원에 파라솔을 든 여인> <코르토 거리의 정원> <풀잎이 가득한 언적으로 올라가는 길> 등 정원과 관련되는 그림이 많다. 1906년에 그린 ,에수아의 집>은 그가 꾸민 정원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정형화된 정원을 싫어했다. 자연스러운 소박하고 단순한 정원을 선호했다. 그리고 그것을 화폭에 담았다. 리베르만은 정원 전체를 채소와 꽃으로 채웠다. 그의 정원은 잘 다듬어진 한 폭의 그림이다. 그는 이곳에서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면서 작품 생활을 했다.

 

르 시다네르는 프랑스 화가다.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뷔야르와 동시대의 예술가로 화가로서 큰 성공을 누렸다. 하지만 사후에 명성이 잦아들어 알려진 작품은 많지 않다. 그는 정원을 그린 정원의 화가. 그는 프랑스 북부에 있는 제르베루아의 집과 정원에서 주로 작업을 했다. 그는 평범함을 거부하는 성향이 있었다. 도시 생활에 답답함을 느낀 그는 화가 마을에 합류해 친구들과 잡힐 듯 짭히지 않는 빛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 그러다 정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친구들의 권유로 제르베루아에 거처를 마련하고 정원 가꾸기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정원을 소재로 200여 편의 작품을 그렸다.

 

지베르니의 정원(클로드 모네)

 

화가들의 마을에도 정원들은 유명했다. 그리고 화가들은 정원을 소재로 활용했다. 모네와 그의 친구들인 베르트 모리조, 귀스타브 카유보트, 피에르 보나르와 센강의 친구들이 함께 어울린 아르장 퇴유와 베퇴유 정원은 그들의 좋은 작업터였다. 이곳에서 모네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정신적인 안식처로 삼아 마음과 정원을 그렸고, 그것은 시대를 풍미하는 작가들을 만들었다. 정원이 예술가들의 사교 장소가 되고, 예술적 모태가 되면서 그들의 영혼에 안착한 것이다. 예술가들의 삶이 정원을 통해 공유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런 것이 한두 곳이 아니다.

 

호넬의 커쿠브리 정원

 

거쿠브리의 예술가들은 호넬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호넬은 글래스고 화파의 화가다. 그는 고향 스코틀랜드의 고향 거쿠브리에 집을 매입하고 결혼하지 않고 누나와 살았다. 동양을 여행하고 받은 영감을 정원을 표현하고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한 무리의 예술가들이 머무는 마을을 만들었다. 제임스 거스리, 제시 킹과 글래스고 화파의 많은 화가들이 그와 교류하면서 그의 정원에서 머물고, 작품 활동을 했다.

 

    나가기

정원은 자고로 예술가들의 영혼의 반려자로 존재해 왔다. 정원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휴식과 영감, 그리고 자유이기 때문이다. 많은 예술인들이 이런 정원과 함께했고, 아름다움을 나누었으며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이 책은 그런 꿈이 현실화되어 나타난 현장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머물고 싶은 영적인 공간, 함께하고 싶은 정신적 영역이다. 나는 그들이 머물고 지혜를 가꾸었던 정원을 무수히 만나면서 그 속에 빨려드는 시간을 가졌다. 왜 그런 그림들이 나왔는가가 이해가 되고, 왜 그렇게 살았는가가 마음에 담겨온다. 정원은 화가에게 있어서는 정신의 보고가 되는 모양이다. 그림과 정원, 그들의 행복한 만남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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