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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보면서 세계 경제사를 알아가는 즐거움 | 예술 2021-08-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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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화로 배우는 세계 경제사

다나카 야스히로 저/최인영 역
휴머니스트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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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신화, 역사, 문학도 그림을 통해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 나로서는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사회상, 사람들의 사고 방식, 당연히 화가가 세계를 바라보던 방향등 그림 한 점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은 세계 경제사를 명화로 배우자고 이야기했다. 경제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왠지 복잡하게 느껴져 한쪽으로 밀어두었는데 그림으로 이야기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명화를 통해 경제를?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소영 작가의 <그림 속 경제학>이라는 책을 통해 그림과 경제를 이야기하는 책을 만난 적이 있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저자 다나카 야스히로는 공인회계사무소를 운영하는 회계사로 비지니스 스쿨과 기업 등에서 회계, 경영 컨설턴트 전문 강사로 활동하는 한편, 만담가와 함께 하는 이벤트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회계사이기에 명화에서 경제가 보인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높임말로 조근 조근 강연하듯 쓰여진 글은 읽기에 편했고,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나라별로 나눠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구성했다.

 

1. 이탈리아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교역과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면서 교회에 대한 불신도 깊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교회와 손잡고 도시 재건을 꾀하며 젊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건축물을 장식할 작품들을 의뢰했다, 예술가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품을 모방하고 , 독창성도 발휘하며 흑사병의 폐허로부터 재생을 꿈꾸었고 그것은 바로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3차원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는 원근법을 고집했던 이유가 원근법에는 인간중심의 자세가 있기 따문이라고 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를 이야기했다. 단지 종교화로만 보았던 이 그림에서 저자는 인간중심의 르네상스를 말했다.

 


 

2.플랑드르

 

 14세기가 되면서 육로보다는 해로를 통한 교역이 늘어났는데 유통되는 다양한 상품들 중에는 대형 그림들도 있었고, 이렇게 남북 문화교류가 시작되면서 이탈리아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플랑드르에서도 르네상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플랑드르의 얀 반 에이크에 의해 만들어진 유화물감, 조선업이 성행하던 베네치아에서 돛을 만드는 천을 이용해 만들어진 캔버스는 회화계의 혁명을 일으켰다. 피터르 브뤼헐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에는 플랑드르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에서 세금을 걷으러 온 세금 징수원에게 사람들이 인두세를 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빈곤, 기근, 무거운 세금으로 피폐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면죄부 판매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신교도가 탄생하면서 종교 갈등은 커졌고, 플랑드르는 신교 국가 네덜란드와 가톨릭 국가 벨기에로 나뉘었다. 네덜란드는 교회라는 후원자가 사라지면서 부유한 시민들이 화가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종교화가 사라지고 집단 초상화와 집안을 장식할 수 있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로 회화의 변화가 일어났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면서 증권거래소도 생겨났고 다양한 상품거래도 하게되면서 튤립도 들어오게되는데, 튤립은 세계 최초의 거품경제를 일으켰다. 렘브란트의 <플로라의 모습을 한 사스키아>에서 가장 비싼 것은 머리에 장식한 튤립이었다 한다.  


 

3. 프랑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앙리 2세와 결혼한 카테리나에 의해 이탈리아의 예술, 음식이 프랑스로 전해졌다. 이탈리아에 비해 예술적으로 하위에 있던 프랑스는 1648년, 왕립회화 및 조각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이탈리아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아카데미 소속 화가들은 회화 교육을 받고, 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전시회 살롱에 작품을 발표했는데, 살롱에서 입선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프랑수아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처럼 우아하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로코코 회화가 탄생했다. 귀족들은 로코코 그림으로 장식하고, 호화로운 요리를 즐기며 국가재정을 탕진했고,그 부채 해결을 위해 세금을 만들어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로코코 회화는 시들해지고 신고전주의 회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혁명후 혼란을 해결한 나폴레옹은 전쟁중에 많은 예술품들을 약탈했다. 그 미술품들을 루브르 궁전을 미술관으로 개조해 공개했는데, 이때부터 회화는 사적 소유물이 아닌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갖게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농민에게 토지를 불하했는데 그러한 농지를 사서 경작하는 소농이 밀레가 그린 사람들이었다.  


 

 살롱 시스템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인상파가 등장했다.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인 르누아르의 그림 <사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의 초상>이라는 그림을 보고 저자는 부르주아 고객을 위한 마케팅 정신만 있을뿐이라고 해서 낯설었지만 생활인으로서의 르누아르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던 르누아르가 자신의 영혼을 팔지않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하면서 저자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돈때문에 일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위해 일하는가. 어느 시대의 예술가도 이 같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에 대해 고민하지요. 르누아르가 이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준것 같아요.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릴까, 그것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헤. 이렇게 생각하면 돈 버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양립할 수 있지요. 돈과 보람의 양립을 몸소 보여준 르누아르, 역시 위대한 사람은 다르네요. 돈과 보람을 나누어 생각하는 우리는 아직 멀었나봅니다. -p 166

이처럼 저자는 그림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계발서를 읽고 있는듯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잠깐씩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저자의 이력이 책에서도 나타나는 것 아닌가싶었다.

 

 

4. 영국

 

 영국은 산업 혁명을 통해 부자가 되었지만 문화 수준에서는 이탈리아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는 유학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베니치아의 화가 카날레토의 그림을 좋아했던 영국인들은 부지런히 구입해서 영국으로 가져갔다. 이후에도 유럽 대륙의 혁명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많은 미술품들이 유입되었고, 미술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윌리엄 터너는 이탈리아 여행후 빛과 공기를 그리기 시작했고, 추상적으로 되어갔다. 터너는 산업혁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증기 기관차를 그렸는데, <비, 증기, 그리고 속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가 대표적이었다. 이 그림은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자주 만났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증기기관차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산토끼가 있는데,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행복하게 할까? 시간과 효율에 쫓겨 불행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을 담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정확히 터너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대 사람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 않았을까? 100년 정도 앞선 1751년 윌리엄 호가스의 <진 거리>라는 작품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모이는 빈민가를 그렸다. 이들의 그림을 통해 우린 당시의 영국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영국 금융시장이 발전하면서 유럽의 금융맨들이 모여들어 그림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해 고객에게 구입을 권유하거나 자신들이 직접 사들였다. 소유재에서 거래재로서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미술품이 사유재에서 공공재로, 19세기 영국에서는 소유재에서 거래재로. 이렇듯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술품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영국에 살던 터너, 그의 시대에는 여기저기서 신기술, 신제품이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증기기관차, 카메라의 사진, 튜브 물감등. 거기에 더해 미술시장의 변화도 있었죠.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목격한 인간은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내 시대는 끝났다고 단념하는 사람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투지를 불태우는 사람, 터너는 분명히 후자 쪽이었어요.-P 201

이 문장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문장이 아닐까? 현대는 더 심각한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따라가기가 힘이 들지만 그래도 멈춰있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5. 미국

 

 규율 바른 생활과 근면한 태도 덕분에 노동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영국에서 건너온 신교도들이 모여 살던 지역은 보스턴이었다. 보스턴 사람들은 농민화가 밀레의 그림을 좋아했다. 보스턴 정착민들은 밀레의 농민화에서 근면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은 위작이 적다는 이유로 인상파 그림을 매력적으로 생각했는데, 내용면에서도  종교적인 그림보다는 풍경화나 인물화를 선호했기때문이었다.  인상파 회화가 미국에 퍼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은 프랑스의 미술상 뒤랑 뤼엘이었다. 화가가 꿈을 좇는 이라면, 그것을 상업적으로 지탱하는 것이 미술상인데 미술상의 본보기로 뒤랑뤼엘을 꼽았다. 현재도 그렇지만 그림 자체로서의 경제적인 가치에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마네의 그림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은  인상파의 대표적인 그림으로 자주 등장하는 그림인데, 이 책에서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들었다. 카운터에 있는 술병중에는 영국의 유명 브랜드 '바스'맥주병이 있는데, 거기에 붙어있는 라벨은 1876년 1월 1일 영국 최초로 등록된 제1호 상표라고 한다. 그림 속에서 영국의 지적소유권에 대한 법제화를 실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19세기 영국, 미국, 아프리카 사이에 삼각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한다. 영국의 자금과 노하우가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 양국의 거대한 '글로벌 돈벌이 프로젝트'.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와 면화 농장에서 일하게 하고, 그들이 생산한 면화를 가공함으로써 많은 수익을 거뒀다. 이 삼각무역 시대를 볼 수 있는 그림이 있었다. 에드가 드가의 그림 <뉴올리언스 의 면화 거래소>에서 당시 재배한 면화를 거래하는 사무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미술에 대해서 특별하게 느낀 점은  미술관이 시민들의 미술품 기증으로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컬렉션을 '공공재'로서 미술관에 기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단기간에 경제대국을 향해 달려가는 중에 문득 멈추게 된 순간, 죄책감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하는 마음은 높이 사야할것같다.

 

 '경제가 보이는 미술관 투어에 어서 오세요'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미술을 경제의 흐름으로 보자는 취지의 책이었다. 흑사병이 시작되었던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커다란 흐름을 보여주었는데 그 방대한 양을 담기에는 부족한 느낌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것은 한 점의 작품을 두고 그 그림이 그려졌던 시대의 경제적인 상황을 하나 하나 짚어주는 것이어서 조금 아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각 나라간의 교류, 종교 갈등,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의 변화등 커다란 흐름을 그림과 함께 볼 수 있기때문에  미술에 대해서, 세계 경제사에 대해서 가볍게 접근하기에는 좋을 것같다. 코로나로 인해 행동반경도 줄어든 이 시기에 이런 그림책 한 권 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YES 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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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그때 탄생한 이야기들 | 예술 2021-07-1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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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이진숙 저
돌베개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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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서평단 책으로 올라왔을 때 '우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원래 이진숙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데다 1권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기에 소리 소문도 없이 내 눈앞에 나타나서 정말 반가웠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는데 러시아를 여행하던 중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아 미술의 세계로 들어섰다. 현재 예술의 전당 등에서 활발히 대중강연을 하고 있다. ' 미술관에서 만난 101가지 인간 이야기'라는 주제로 예술가 101명의 미술 작품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목적인 이 시리즈는 3권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 책은 '더 갤러리 101' (The Gallery 101)시리즈 중 두 번째 책이다. 1권(1~33)은 '인간다움의 순간들: 흔들리는 삶이 그림이 될 때' 라는 제목으로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2권(34~67)은 라파엘전파부터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을 다루고 있다. 3권(68~101)은 아직 출간전이지만 다다이즘에서 시작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미술을 다룬다고 한다.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걸까? 사조의 대표작도 있지만 '인간'이라는 주제를 좀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 소중하게 다뤄질거라고 했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고전이라 부르며 귀하게 여기는 것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이 치열한 분투 속에서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할 인간적인 가치를 탐구하고 그 문화적 DNA를 후손에게 전했기 때문이다. 그 작품들은 우리에게 인간답게 살아야하며, 세상에는 사랑, 진실, 공감, 정의, 자유, 평등 같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간적인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 가치는 추상적인 단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 제도 , 관습, 문화 그리고 우리가 매일 서로를 대하는 태도(예의)로 구체화된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예술을 감상하며 이런 인간적인 가치들에 대해 성찰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 p 8

 

 어찌보면 쉬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있고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인간상이 다르기때문에 정말 어려운 주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뛰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읽는내내 너무나 설렜다. 평소 생각지 못했던 사실들을 이야기할 때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줄을 긋고 내 생각을 메모도 했다. 그건 이 책을 오래두록 옆에 두겠다는 표현이었다. 총 3부 34개의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가 없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소개해본다.

 

1부 현대 생활의 영웅 주의 : 라파엘전파, 바르비종파, 리얼리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예술작품에서 개인은 전통적인 공동체에서 벗어난 고독한 원자이자 이성이 통제못하는 감정적인 존재로 묘사된 시기였다. 그림의 주제및 소재를 과거의 케케묵은 신화나 역사가 아닌 동시대의 삶에서 구한다는 '현대 생활의 영웅주의', 도시를 산책하며 관찬하는 만보자', '세속주의'라는 키워드로 이 시기를 표현했다. 저자가 각 부의 시작부분에 제시한 키워드와 연대별 표를 보고 다뤄질 내용에 대해서 짐작해볼 수 있었다.

 


 


 

  모네(1840~1926)의 포플러나무와 수련 연작을 좋아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르키소스의 신화에서 물에 비친 반영상은 일종의 허상인 이미지로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봤다면,그림 속 포플러나무는 본질과 물에 비친 이미지가 차이가 없다고 했다. 수련에서도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어온 이분법이 사라진 것으로 보았다. 더 이상 물과 하늘로, 하늘과 대지로, 색채와 형태로 나누어지지 않은 수련. 그 수련은 오랑주리 전시실에서도 관람객과 그림이 관찰자와 관찰 대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모네의 그림 안에 머물도록 했다는 저자의 설명을 들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위계질서가 분명한 세상이 뭔가 하나로 어우러지려는 시동을 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르느와르(1841~1919)의 <선상 파티의 점심>을 보면 자유롭고 즐거운 점심 한 때를 떠올리게 된다. 저자는 이 그림 속에 있는 인물 하나하나가 누구인지를 열거했다. 재미있기는 했지만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어울리는 것은 이전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는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를 요약하는 말로 '사회적 꽃다발'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저자는 <선상 파티의 점심>이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르느와르가 반드레퓌스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을 보고, 르느와르의 '사회적 꽃다발'은 프랑스 국가주의 중심의 묶음으로 제한되었다고 보았다. 갈 길은 멀어보이지만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싶었다.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을 통해 러시아 인상주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최근에 읽었던 안톤체호프의 소설 <베짱이>의 한 대목을 만나서 반가웠다. 화가 랴보프스키는 볼가강에 그림을 그리러 나가서는 "도대체 해는 언제 나타나지? 해도 없는데 어떻게 맑은 날의 풍경을 계속 그리느냔 말이야!"라고 했다는데 이 인용글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날씨를 러시아에서 인상주의가 발전하기 힘든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시 러시아 국내의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레핀은 인상주의적인 기법으로 톨스토이의 모습을 그렸다. 미래의 예술은 오직 만인을 결합시키는 힘이 있는 보편적인 '사랑'에 관한 것이어야한다는 톨스토이의 예술론에 감동을 받은 레핀은 톨스토이를 자주 방문하고 초상화도 여러 점 그렸다한다. 톨스토이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러시아 인상주의는 한 사람의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 좀 더 살아있는 존재의 생생함을 표현하는데 기여했다. 예술 형식은 그것이 태어나고 적용되는 인간의 바람과 이야기 속에서 굴절되며 다양한 버전을 만들어낸다. (중략) 예술가 모두는 -그리고 우리들 역시- 다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예술을 사는 것이다.- p 170

 

2부 세기말, 아름다움과 고통에 물드는 시간 : 후기인상주의, 아르누보)

 이 시기의 키워드는 벨에포크, 세기말, 팜파탈과 여성 참정권 운동, 제국주의,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의 영향이었다.

 


 

 

 고흐(1853~1890)의 그림을 보면서 '개인화'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적은 없었다. 당시 예술가가 끊임없이 개성을 강조했던 것처럼 세속화는 필연적으로 개개인을 긍정하는 개인화로 이어졌고, 고흐가 그린 조제프 룰랭의 초상화는 개인화 과정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리고 '파랑과 노랑의 심포니'라고 해서 파랑과 노랑의 조화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고흐=노랑' 이라는 시각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흐의 그림을 보는 두 가지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자기 삶을 사는 평범한 한 개인에 대한 예찬이야말로 반 고흐의 진정한 본령이라는 저자의 말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같다. 

 


 

 

 수잔 발라동(1867~1938)의 <아담과 이브>를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담과 이브를 그린 그림을 보면 이브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땄고, 그들은 추방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수잔 발라동의 그림을 보면 아담이 동조하고 있다. 저자는 수잔 발라동 덕분에 미술사 최초로 자신의 타락에 책임지는 아담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브에 대한 평판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아담은 아들보다 어린 남자친구의 얼굴로, 이브는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고 하니 그녀의 당당함을 알 수 있었다. 수잔 발라동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화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수잔 발라동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하다가 스스로 화가가 되었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슈퍼우먼은 환상이다. 수잔 발라동은 마지막 순간에 화가로서 자신을 설명했다. 화가로서라면 괜찮았다. 수잔 발라동이라는 긴 성장소설이 완결되는 순간이었다. -p 240

 

3부 망치를 든 예술가들 : 나이브 아트, 야수주의, 입체주의, 에콜 드 파리, 미래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

키워드는 아방가르드, 선언, 낙관 vs 비관이었다.

 


 

 앙리 루소(1844~1910)는 세관원이라는  직업이 있으면서 그림을 그렸기에 '일요화가'로 불려지고 있고, 그래서 더  대단한 화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그림 <꿈>에 대한 저자의 접근이 기존에 만났던 것과는 완전 새로운 관점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타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로 나아갔고 이 자세는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제국주의 시대로 나아가고도 있었다. 저자는 루소가 가본 적이 없는 정글을 그린 이 그림에서 제국주의를 보았던 것이었다.  다른 이의 의견이 나의 생각인듯 착각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저자의 이런 관점도, 기존의 관점을 참고로 해서 내 시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은 시대를 품고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더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같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체념한 채 어깨를 축 널어뜨리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1879~1935)의 <나쁜 예감>이라는 그림이다. 저자의 의견도 나와 다르지 않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었는데, 뒷모습이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앞모습이라고 했다. 그런가? 말레비치는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을 변혁시킴으로써 사회를 변혁시키려고 했고, 대중을 선도하는 아방가르드를 자처했지만 실패했다. 저자는 얼굴이 없기에 그림 속 인물이 느끼는 공허함과 불안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말레비치의 그림처럼 개인의 얼굴이 지워진 익명의 존재로 남아있거나 스스로 얼굴을 지우고 익명의 존재가 되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말레비치의 노란 루바쉬카를 입은 남자는 오랫동안 얼굴(개성)을 잃은 채 그곳에서 고독하게 서 있었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을 간직한 채 눈앞에 닥친 디스토피아를 견디면서.-p 432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사회는 익명의 존재로 남아있기가 더 어려운 세상이 아닐까하고. 말레비치가 현대에 자신의 불안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라파엘전파부터 추상미술까지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의 삶을 돌아보았다. 결국, 미술작품이라는 것은 인간의 창작물이고 인간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기에 우린 미술작품을 통하여 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싶다.  "이제는 모더존도, 파울라 베커도 아닙니다. 나는 나입니다." 라고 외쳤던 파울라 모더존베커의 작품과 삶을 통해 사회적 통념과 관습을 깨고 자신으로 살고 싶어하는 인간을 만났고, " 왜 이것들을 다 두고 가야 하지?" 라는 말로 일이라는 괘락이 끝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는 로댕도 만날 수 있었다. 화가들이 작품에 담고 싶었던 것은 자신,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인간, 과거에 살았던, 아니면 미래에서 살게될 인간들의 이야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예술가의 삶, 시대적 배경등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도 소개하고 있어서 미술관 여행을 하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왜 전시회에 가고, 미술 책을 보면서 예술 작품을 만나려고 하는걸까?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 힐링이 되고, 그림 속 이야기들도 재미있으니까 자주 만나왔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방향을 잡는데 어쩌면 예술 작품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시대에 맞서, 권력에 맞서, 자신과 맞서 앞으로 나아가려했던 많은 예술가, 그림 속 메세지들이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정말 많으니까. 앞으로도 나의 미술 여행은 쭉 계속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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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알지 못했던 르네상스 | 예술 2021-07-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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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르네상스 미술

다카시나 슈지 저/이연식 역
재승출판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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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미술사에서 르네상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중세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인간중심, 화려함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유로운 풍경등 긍정적인 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찬란한 르네상스를 담은 책은 많지만 찬란함과 함께 그 이면을 보여준다는 것이 관심을 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면이라는 말때문에 아주 부정적인 부분들을 만나게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대적 분위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볼 수 있었다.

 

 중세에는 현실 세계의 부정이 신의 나라에 이르는 길이었지만, 르네상스에는 현실 세계에 대한 긍정이 신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었다.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의 기이한 융합, 이교적인 문화와 기독교 신앙의 이런 신비로운 결합이야말로 르네상스 예술의, 나아가 르네상스 문화 전체의 기본적인 골조를 이루었다.(중략)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사고의 유희처럼 보이는 르네상스 특유의 이 사상을 체계화 한 것이 바로 15세기 후반의 신플라톤주의다.-p 7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또는 읽은 후 가장 많이 남아있는 단어가 신플라톤주의였다. 메디치 가문에서 플라톤주의를 중요시 여겼다는 것을 들은적은 있지만 이렇게 깊숙히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사회에 만연해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에 대해서도.

 

 이탈리아에서 특히, 피렌체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 새로운 사상이 작품 제작의 바탕을 이루었음은 당연하다. 이제부터 펼쳐보일 것은 특히 1500년 전후, 이탈리아의 정신적 풍토가 예술과 어떻게 관련되었는 지를 되도록 명료하게 밝히려는 소박한 시론이다. -9

 

소박한 시론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저자의 깊이는 정말 놀라웠다. 휘몰아치듯 쏟아지는 미술적 지식의 강에서 허우적댄 기분이다.

 

1장 사보나롤라


  1490년대 후반 ,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피렌체를 장악했다.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죽음과 샤를 8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쳐들어온 것으로 피렌체에 신의 분노가 떨어질거라고 했던 사보나롤라의 예언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던 피렌체 사람들은 그를 추종하게 되었다.  사보나롤라는 저속하고 추잡한 회화, 음악,연애, 시 등은 영혼을 악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했고, 그것들은 두 차례에 걸쳐 '허영의 소각'이라는 이름으로 불태워졌다. 이런 일이 일어난 배경에는 1500년이라는 확실한 단락을 앞두고  '세계의 종말'이라는 사고가 깊이 침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허영의 소각'이 마치 하늘로 쏘아올린 불꽃이 명멸하는 것처럼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어두운 부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인간성의 발현과 현실세계의 긍정이라는 밝은 국면의 이면에 세계의 종말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강박, 혼란과 파괴를 위한 충동, 파멸을 위한 은밀한 동경, 비합리적인 환시로의 도취와 같은 것들이 있던 것이다.-p 28

 

  1499년 오리베에토 성당에 시뇨렐리가 '세계의 종말'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그 중 <적그리스도>라는  작품에 저자는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이교적인 신전 앞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적그리스도'와 그에 관련된 몇몇 에피소드를 담은 그림이다. '적그리스도'는 사보나롤라를 나타낸 것이지만 그의 등장 이전부터 피렌체에는 종말관이 팽배했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시뇨렐리의 상상력은 세기가 바뀔 무렵 온 유럽을 뒤덮었던 정신적 분위기에 의해 한층 고양되어 르네상스의 예술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후세계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비너스의 탄생>, <봄> 과 같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그림을 그렸던 보티첼리가 <신비로운 탄생>이란 그림에서도 '세계의 종말'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바사리가 썼던 <예술가 열전>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책이라 미술책을 읽다보면 자주 만날 수 있다. (꼭 한번은 정독을 해보고 싶은 책이다.) 바사리에 의하면 보티첼리는 사보나롤라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보티첼리의 작품을 통해 사보나롤라와의 관계의 진위를 살펴나갔다. 르네상스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허영의 소각'을 일으켰던 수도사 사보나롤라를 시작으로 당시 팽배했던 '세계의 종말론'에 대한 이야기는 평소 내가 알고 있던 르네상스의 모습과는 분명 다른 부분이었다. 

 


 


 

제 2부 멜랑콜리아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여명을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 르네상스 전성기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놓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그 이유중 일정 부분을  '예술에 조예가 깊은 통치자',명망높은 '예술의 보호자'였던 로렌초 일 마니피코에게서 찾았다. 피렌체 예술의 높은 명성을 다른 나라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인 수단으로 이용했던 '정치가'였다고. 그러고보니 전성기의 대표적인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는 피렌체를 떠나있었다. 하지만, 서정시를 남긴 시인이었고, 인문주의자의 집단을 만든 것이야말로 르네상스 역사에서 로렌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코시모는 플라톤에 관심을 가졌고, 주치의의 아들 마르실리오 피치노에게 플라톤의 저서를 번역하게 했고  카레지의 별장에 머무르게 했다. 이렇게 플라톤 아카데미는 시작되었고, 로렌초는 이 아카데미를 발전시켜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르네상스에 대해서, 메디치 가문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신플라톤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듣지못했는데, 이 책에서 얻은 큰 성과중에 하나가 아닐까싶다. 피치노는 15세기 당시에 자타가 공인하는 '제 2의 플라톤'이었고, <플라톤 신학>으로 대표되는 피치노의 신플라톤주의는 르네상스 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한다. 책에서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신플라톤주의였다.


  시뇨렐리의 <판의 향연>이란 작품에 지배적인 엄격함과 동시에 우수에 가득 찬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감각이 빠지지 않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 세계관이 신플라톤주의 인문주의자들의 것이라 했다.  인간의 몸에 흐르는 네 가지 종류의 액체가 이루는 비중과 균형에 따라 인간의 기질이 결정된다는 사고 방식을  사성론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우울질을 형성하는 '흑담즙'은 차갑고 건조하며 북쪽 가을,저녁, 대지, 중년에 대응하는데 이 우울질을 '멜랑콜리아'라고 한다. 사성론의 삽화에서 우울질의 인간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근심에 잠긴 모습으로 그려진다. 멜랑콜리아로 <판의 향연>을 보고, 뒤러의 <멜랑콜리아1>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중세에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었던 우울질을 창조적 인간의 특질로서 높이 평가받도록 가치 기준을 뒤집었던 것이 아카데미아의 찰학자들, 마르실리오 피치오라고 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메디치가 예배당의 작품,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등 다양한 작품들에서 우울질이 예술적 창조와 결부된다는 피렌체식 사고방식이 드러나있음을 알 수 있다.

 


 

제 3부 사랑과 아름다움

 

  이 장에서는 삼미신을 다루고 있었다. 로마의 스토아 학파 세네카는 삼미신이 각각 '베풀기', '받기'. '보답하기'를 나타내며 서로 손을 잡고 있다고 한 반면, 4세기 로마의 문필가 세르비우스는 알몸이어야하고, 한명은 뒷모습이고 두 명이 앞쪽을 향해야한다고 했다. 하나의 은혜에 대해 배로 갚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보니 두가지 삼미신의 모습으로 확연하게 구분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세명이 있으면 그냥 삼미신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총 10개의 삼미신 그림을 만날 수 있었는데,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는지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플라토닉 러브'의 의미까지 삼미신의 의미로 풀어볼 수도 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삼미신의 이야기는 신플라톤주의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략) 신플라톤주의가 세계를 파악하는 근본적인 원리는 이처럼 '유출'.'발현', '회귀',혹은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유출', '회전', '귀환'이라는 세개의 국면이다.-p 171

 

삼미신이 등장하는 그림 보티첼리의 <봄>이 이 장의 중심에 있었다. 큐피드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의 의미, 비너스 배후로만 반원형으로 뚫려 있는 것의 의미,서풍 제피로스의 등장 등으로 이 작품을 분석해나가면서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었는데, 저자는 말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죽음의 사자 머큐리가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죽음'의 의미도 생각해봐야한다고.

 

 어느 쪽이든 부활의 축제는 봄의 축제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그것들은 우선 '죽음'이 있고 뒤이어 소생이 있다는 점에서 같다. 그렇다면 보티첼리의 <봄>에서 중앙의 비너스를 중심으로 하는 화려한 그룹을 왼편 머큐리가 이끄는 것, 그리고 머큐리가 '죽음의 사자'로서 등장한다는 점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여기서 '봄'은 죽음에 뒤이은 소생의 '봄'인 것이다.-p 233

 

보티렐리 <봄> 피렌체,우피치 미술관


 

제 4부 두명의 비너스

 

 비너스의 탄생에는 엄마없이 바다에서 태어난 우라노스의 딸,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르네상스 예술에서는 ' 두 명의 비너스'를 즐겨 다루었는데,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통해 두 명의 비너스가 가지는 의미를 알아볼 수 있다. 이 그림들에서 피치노는 신플라톤주의적인 미의 원리의 현현을 찾아내었다고 한다. <비너스의 탄생>은 우라노스의 고환이 바다에 떨어져 태어날 수 있었기에 '죽음 후의 부활'을 의미한다고도 보았다. 두 작품 모두 구도가 반원형의 아치 밑에 주요인물을 배치하는 중세 이래의 정통적 수법을 계승했다고 보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세례'의 구성이라는 것을 만났다. 그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비너스가 지상에서 활동을 개시하는 장면이고, 그 활동이란 미와 사랑과 자비를 세상에 가져온 것으로 <봄> 이 담고있는 이미지와도 연결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티치아노의 <성애와 속애>, <신중함의 알레고리>등과 같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통해 신플라톤주의를 말하는데, 고대의 사상, 기독교의 교리를 융합하는 것이야말로 신플라톤주의의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제5부 신들의 축제

 

 벨리니의 <신들의 축제>라는 작품에서는 신들을 숭배 찬양하기보다는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 상황들을 저자의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르네상스 문학과 미술에서는 종종 신들을 이런 식으로 다루었다고 한다. 장중한 문체로 신과 영웅을 희롱하는 희문 스타일에 빗대어 의사 영웅시 양식이라고 하는데,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복잡한 의미를 담은 만테냐의 <파르나소스>를 통해 서로 모순된 것을 연관시킴으로써 새로운 조화가 탄생한다는 플라톤적 사고방식이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게도 미쳤음을 알려주었다.

 


 


 

  정말 많은 작품을 만났다.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깊이 있게 작품을 분석해 들어가는 열정을 만난 적은 없었던 것같다. 그런 열정으로 저자가 처음에 밝혔던 '1500년 전후, 이탈리아의 정신적 풍토가 예술과 어떻게 관련되었는 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완벽하게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평소 르네상스에 접근하던 방식과는 확실히 차별화 되어 있었다. 소개하는 작품에서도 차별화되어 있었다. 보티첼리의 <봄>,<비너스의 탄생>과 같이 익숙한 그림도 물론 있었지만 르네상스의 단골손님격인 화가들의 작품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은 조연이었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를 이끌었던 인문학자들,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세상을 바라보았던 방식,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의 또 다른 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정말 의미깊은 시간이었다.

  놀랍게도 이 책은 1971년에 세상에 나온 책이었다. 2018년도에 개정판이 나왔다. 1966년 1월 부터 1969년 7월까지 3년 반에 걸쳐 <산사이> 에 게재한 글을 보충하여 엮었다. 도쿄대학교와 파리 제 1대학에서 공부하고 도쿄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를 지낸 일본 미술사학계의 수장으로 100여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책을 읽기 전 너무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고개를 갸웃했는데,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감탄사를 내뱉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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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바로크미술까지 흐름을 한 눈에 | 예술 2021-06-1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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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대한 서양미술사

권이선 저
생각뿔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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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역사도 미술도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역사와 미술을 좋아하게 된 것은 미술책덕분이었다. 미술 작품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역사가 따라왔고, 신화, 문학, 음악과도 친해졌다. 단편적으로 알던 것을 정리해보고싶은 욕심에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호기롭게 구입하기는 했는데, 아직도 완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꼭 그 책이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도 되지 않을까? 서양 미술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비지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 미술사>를 통해서도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 역사를 담는 경우가 많으니 서양 미술사는 서양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인류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를 통해 우리는 과거 인류가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고 우주와 세계를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연역하고 추정한다. 더 적극적으로는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를 이해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시대를 관통한 통찰을 적용하고자 한다.-p11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바로크 미술까지를 다루고, 2권에서는 근대 예술을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수천 년 예술의 주요 흐름을 미술사 큐레이션으로 단박에 꿰뚫다!> 라는 표지의 추천사가 절대로 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요 예술가와 작품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미술사를 설명하고 있어 길고 긴 흐름이 쉽게 이해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는 작품들 감상을 하면서,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면서, 굳이 암기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양미술사의 큰 물결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싶다.

 

1. 선사시대 (기원전 4만년~기원전 5000년) : 보통 미술사 책을 읽다보면 선사시대가 재미가 없어 건너뛰었는데, 첫 문장부터 흥미를 끌었고 세부적인 설명도 지루하지 않았다.

  예술은 곧 그 사회가 믿는 것을 나타낸다. 선사시대 미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하는 욕구에 의해서라기보다 생존에 관계된 것이었다. 사냥에 의존하여 살았던 선사시대 인류는 그림을 통해 실물 자체를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려진 동물을 죽이면 실제에서도 성공적인 수렵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p 16

  당시 벽화에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가장 오래된 그림은 기원전 3만 2000년 경에 그려진 남부 프랑스 지역의 쇼베 동굴벽화로 선사시대 인류의 표현력을 가늠해주는 증거물이 되고 있다한다. 그외 대표적인 동굴벽화로 북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 프랑스 도르도뉴 지역의 라스코 동굴벽화가 있었다. 이외에도 유럽 지역의 삼백여 개가 넘는 동굴에서 사람이나 동물을 그린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사냥과 종교의식, 당시 일상생활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여러 대륙에 걸쳐 나체의 여성 조각상이 발견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나온 11센티미터 크기의 조각상으로 빌렌도르프 비너스로 불리며, 풍요와 다산을 중요시했던 구석기시대를 반영하고 있었다.

 

 

2. 메소포타미아(기원전 3000년 ~ 기원전 330년), 이집트 미술(기원전 3200년~기원전 332년) :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비옥한 평지를 토대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 기원전 3000년경 쐐기문자가 발전되기 시작했고, 최초의 영웅담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 <함무라비 법전>이 쐐기문자로 기록되었다. 외부 침략이 잦아서 신에 의존했고, 그러다보니 <지구라트>라는 신전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발달했다.  왕권이 강하게 존중되는 시대 문화를 잘 나타내는 왕을 수호하는 반인반수 라마수라는 조각물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로서 사자를 죽이는 왕의 모습이 있는데,<아슈르바니팔의 사자 사냥>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의 삶이 있다고 생각했고, 예술에도 영원성을 담았다. 이집트 양식으로서의 미술은 신체를 아름답게 표현하기보다는 사후 세계와 연결되고자하는 마음이 반영되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안내이자 장례 문헌인 <사자의 서>,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 중왕조 시대 이후부터 만들어졌던 암벽을 파서 시체를 보존하는 신전등은 이와 같은 이집트 문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있을 것이다.  선대왕들의 치세로부터 분리하고 이집트 종교를 유일신으로 바꾸었던 아케나텐은 영원성과 불멸보다는 일반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자하는 시도를 했지만, 투탕카멘에 의해 이집트 말기의 미술은 초기 파라오가 구축한 양식으로 돌아갔다. 다음은 이집트 미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삼천 년 동안 그들만의 양식을 이어왔다는 것은 엄청난 지속성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일관성은 예술 형식 자체를 넘어서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상이 따랐던 의식이나 절차에서 조금이라도 멋어날 경우 사후 세계에서의 참사를 낳는다는 두려움, 그것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전통을 유지시킨 것이다. -p 51

 

 

3. 그리스 미술의 모체 : 미노아 문명-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에 걸쳐 에게해의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발전한 청동기 문명을 크레타 문명 또는 미노아 문명이라고 한다. 바다를 통한 거래에 집중해서 상업 활동에 쓰이는 도자기류가 발달했다. 크노소스 궁전이 발달한 미노아 문명을 상징하고, 크노소스 궁전에 그려졌던 <황소 위로 뛰어넘기>라는 프레스코 벽화를 통해 소를 대상으로 하는 초기 스포츠가 있었다는 것과 이집트 미술에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약 1600년에서 1100년 경,  펠로폰네소스반도에 위치한 미케네 지역을 중심으로 요새를 지으며 시작되었는데, 그 때문에 성채를 중심으로 한 건축 문화가 발달했다. 마스크와 장신구에서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었다.  아가멤논의 장례 마스크가 대표적이다.

 

 

 

미케네 사람들은 크레타섬을 정복한 이후 곧 이집트, 히타이트 제국도 공략하게 된다. 크레타 미술은 정복당한 미케네에게 전파되어 계승, 발전되었으며 이후 미케네 미술은 그리스 미술에 영향을 주게 되므로 넓게 보면 크레타 미술은 그리스 미술의 모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p 62

 

4. 그리스 미술 (기원전 900년~기원전 100년) : 서양 미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 문화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고 이는 미술에 반영되었으며 그리스 미술의 주요대상은 사람의 몸이었다. 아르카익 시대, 고전주의 시대, 헬레니즘 시대로 나뉜다. 아르카익 시대는 그림이 그려진 항아리가 발전하면서 도자기류가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당시 사회, 종교, 생활방식을 파악하는데 유용하다. 제작방식이나 양식, 기능적인 쓰임, 사용된 표현에 따라 다양한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커다란 나체 남성 조각상인 쿠로스와 여성 조각상인 코레, <크리티오스>라는 조각을 통해 아르카익시대에서 고전주의로의 조각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 왕자 알렉산드로스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그리스 문화와 동방문화가 융합한 헬레니즘 시대가 열리는데, 거칠면서 극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들이 많았다. 대리석으로 된 작품도 많지만 청동제작이 선호되었다. 그리스 건축은 비율과 조화가 중시되었는데, 그 정점은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을 점령한 그리스의 자랑스러움이 드러나있는 파르테논 신전에 쏟은 건축방식들을 보면 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1호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5. 로마 미술 : 공화정이 생긴 기원전 509년 부터 서기 330년까지의 로마 미술은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건축이나 부조작품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초상 조각이 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되었다면 로마의 초상 조각은 사실적이면서 인물의 개성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로마 회화는 건축물의 인테리어로 많이 쓰였고, 재료가 다양했지만 프레스코가 많았다. 로마시대 프레스코화는 폼페이 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부유한 로마의 삶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고 있다. 당시의 재난이 후세에는 과거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건축과 토목 분야에서 혁신적 발전을 이루었는데 수로인 <가르교>,<원형극장>,<콜로세움><트라야누스 포럼 >등이 있다. 원형극장이 로마 고유의 것이었다면 콜로세움은 그리스식 기둥과 로마식 구조를 대표하는 아치가 결합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도 하고, 좋은 것은 받아들여 융합하면서 새로운 역사는 쓰여나가고 있는 것같다. 그리스의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면서 기독교를 정식 종교로 공인했고, 테오도시우스 1세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했다. 그리스 신화 중심이었던 세계관에서 기독교 시대로 옮겨가게 되면서 미술에도 간소하면서도 상징적인 작품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6. 초기 기독교 미술 (200년~1100년)  : 중세는 기독교 시대로 진입한 시기부터로 보는데, 저자는 초기 기독교 미술과 중세 미술을 구분했다. 초기 기독교 미술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지하 묘지였던 <카타콤>과 <석관>이 있었다. 모자이크도 중요한 소재였다. 이 시기의 건축 양식은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 게르만적 요소도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다. 십자가 모양의 건물로 창문이 적고 두꺼운 벽이 특징이고, 내부는 화려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이탈리아 피사 성당등이 있었다.

 

 

7. 중세미술 (5세기 ~ 14세기) : 기독교가 지배적인 사회였던 중세 시대의 건축은 고딕 양식이었다.  성당은 기독교인들이 모여 신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장소로서 높이 뻗은 형태는 하늘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담았고, 창에 드리우는 빛은 신을 상징했기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창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피렌체와 시에나를 중심으로 중세 회화가 발전했는데, 필사본 삽화가 생겨난 것이 특징적인 예술 형태였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지오토 디 본도네, 두치오, 시모네 마르티니가 있다.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상징적 종교표현이 중시되었고, 그리스도의 생애, 성모 마리아의 삶, 성경의 내용들이 주가 되었다.

 

 

8. 르네상스 미술 (14세기 ~15세기) : 중세 시대가 쇠퇴하고 고전시대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고전에 대한 문화적 친밀감이 크고 고대 로마 유적도 많았던 이탈리아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는데, 특히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이 모이면서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피렌체 화가들은 르네상스의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후원가였던 메디치 가문의 영향이 컸다.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천국의 문>을 제작한기베르티, 피렌체 성당의 돔을 완성한 브루넬레스키, <성 삼위일체>로 원근법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회화를 선보였던 마사치오, <비너스의 탄생>의 산드로 보티첼리가 있었다. 베네치아 또한 피렌체와 차별화된 방식으로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와 빛을 중시했다. 조반니 벨리니,  조르지오네, 티치아노가 있었다. 전성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예술가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들 수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르네상스를 북유럽 르네상스라고 하는데, 후베르트 반 에이크와 얀 반 에이크 형제,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 알브레히트 뒤러, 히에로니무스 보쉬, 피터르 브뤼헐이 대표적인 화가였다. 이 시기에는 회화의 기술적인 혁신에 주목해볼만한데, 기존에 템페라, 프레스코를 사용했다면, 오일 페인팅이 점차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1450년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 발명되었고, 미술에 있어서 삽화작품이 널리 퍼지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복제 기술로 인해 예술가들의 판화 작업이 유럽 전역에 빠르게 유통될 수 있었는데 대표적인 화가가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였다. 화가로서의 강한 자의식을 보여주는 자화상도 많이 그렸고, 판화의 복제의 가능성도 우려해 저작권을 보호하려고도 했다. 화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서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각각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 화가가 담고싶었던 것을 알아가는 재미 물론 좋았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기술에 시선이 갔다. 

 

 

9. 바로크 미술 (16세기 ~17세기) : 바로크 미술은 종교개혁과 관련이 있는 미술사조라고 할 수 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트는 로마 교회의 권위를 위협하며 종교화를 거부했고 성상을 파괴하기도 했다. 가톨릭 교회는 이 시기에 사람들의 신앙을 고조하기 위해 미술을 활용했는데, 이 시기의 미술을 바로크 미술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바로크 미술은 철저히 가톨릭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선교사들의 고통등을 주제로 했고, 드라마틱한 화면으로 감동을 주려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이탈리아의 카라바조, 조각 작품에서는 베르니니, 스페인에서는 엘 그레코, 플랑드르에서는 루벤스, 안토니 반 다이크가 있었다. 그 중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면, 테네브리즘이라 하여 명암대비가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아주 강력했다. 가톨릭 세력이 주도한 예술 형태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화가라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바로크 미술이 주도했던 시기였다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서 차이가 났다. 프로테스탄트 중심지였던 네덜란드에서는 소규모의 초상화, 정물화, 장르화가 선호되었다. 그룹 초상화와 자화상에 능했던 렘브란트, 대상의 어떠한 순간을 격식 없이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프란스 할스, 정물화로 잘 알려진 윌렘 칼프, 실내공간을 고요하게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시적으로 그렸던 페르메이르가 있었다. 같은 시대를 지나가고 있었지만 종교, 지역에 따라 이렇게도 미술의 형태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고정된 시각으로 미술 작품을 대하고, 하나의 잣대로 시대를 정의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에 집중하다보면 양식과 내용은 알게 되어도 역사적 맥락을 놓칠 수 있고, 시대적 상황에 치우쳐 살피다 보면 작품이 주는 감흥을 얻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 책 <위대한 서양 미술사>에서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기술되는 작품이 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했다. -p9

 

  가장 앞에 있는 저자의 말을 본문을 읽기 전에 한 번, 본문을 읽고 난 후에 한 번, 기본적으로 두 번은 읽어본다.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독서를 마치게 되면 아주 만족한 독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이 그러했다. 장황하지 않고 엑기스를 쏙쏙 뽑아내 잘 정리된 미술사였다. 작품에 다한 감흥도 충분했고, 역사적 의미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꼭 필요한 도판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사실, 두 번째 읽으면서 왜 바로크 미술에서 끝이 났는지도 알게 되었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는데 2권으로 만날 수 있다니 다행이다. 2권 출간 소식이 빨리 들려왔으면 좋겠다. 2권까지 읽고나면 제목에서 말했듯 서양 예술을 단숨에 독파하고 더 이상 서양 미술사를 어려워하지 않게 될듯하다.

 

ps 핫셉수트 장제전, 트라야누스 칼럼을 알게 된 것은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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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던 화가들 | 예술 2021-05-0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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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사랑한 화가들

정우철 저
나무의철학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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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미술 수업이 든 날은 배가 아플정도로 미술을 싫어했던 내가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우연히 읽게 된 <미술과의 첫만남>이란 책이었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로부터 시작해서 고대미술, 중세미술, 르네상스룰 거쳐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그 다음으로 만난 책이 이주헌의 <화가와 모델>이었는데, 그 책을 통해 화가의 삶에 대해, 미술에 대한 관심은 확장되었고, 전시회까지 찾아가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역사나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역사, 신화에 대해서도 다양한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있었다. 물론 그러한 것들도 좋지만, 그림이 가지는 의미는 그런 지적인 부분보다는 정서적인 부분이 중요한 것 아닐까? 바라만보고 있어도 즐겁고,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그림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림과 가까워지는 것이 필요할텐데 어떻게하면 좀 더 친숙하게 느끼게 될까?  화가들의 삶을 아는 것, 그것이 좋은 방법중의 하나가 아닐까싶다. 그림은 화가들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으니까. 저자는 독자들이 그림과 친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 11명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처음 봤을때 너무 괴기스럽다고 생각했다. 몸에 철심을 박은 그림이라든지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그림등은 고개를 돌리게 했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삶을 알고 나면 그 그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게된다. 심각한 교통사고의 휴유증은 그녀를 평생 고통 속에 살게했고, 스물한 살 연상인 남편 디에고와의 결혼 생활도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화가로서의 삶을 살아나가며 당당했다. 그림에는 프리다 칼로의 고통, 희망, 강력한 삶의 의지등이 담겨있어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그림이 품고 있는 의미에 공감하게 된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는 그녀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고통스러운 일을 만났을때 커다란 힘이 될듯하다.

 

 

 알폰스 무하를 좋아한다. 가장 큰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도 그림이 아름다워서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많은 매력이 숨어있다. 체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성가대로 활동하다가 변성기로 인해 그만두고 미술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빈, 뮌헨을 거쳐 파리에서 장식미술가로 성공하기까지 그의 일생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후원자를 만났던 것, 사라 베르나르를 만났던 것등 많은 운도 따랐다고 할 수 있지만, 멈춰있었다면 절대로 얻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광고 포스터등 상업미술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슬라브 서사시> 라는 20년에 걸쳐서 민족의 역사를 그린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다. 최근에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만났던 무하의 이야기와 겹쳐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2016년에 샤갈,달리 뷔페전에서 처음으로 만난 뷔페의 작품은 직선으로 쭉쭉 뻗어 날카로워보이는 선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참 특이한 그림이다 생각했다. 전시회를 다녀온 후 그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지만 사강의 <독약>이란 책에 삽화가로 들어가 있는 것이 전부였다. <독약>에 들어있는 삽화로 뷔페를 만나고는 아쉬움이 컸었는데 이 책에서 뷔페를 만났을때 많이 반가웠다. 왜 직선으로 뻗은 그림들을 그렸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다.  1950년대 뷔페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뷔페의 재능을 발견하고 지원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제2차 세계 대전중에 폭격으로 인해 많은 죽음을 목격했고, 어머니도 병으로 잃은 후, 뷔페는 살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세상을 직선으로 표현했던 것은 뷔페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고, 구상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너무 인기가 많아서 따돌림을 당하고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맞서지 않았던 뷔페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어. 나를 향한 비난이 나를 더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시켜줬으니까." 이렇게 말하기가 쉬웠을까?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그림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던 뷔페는 6개월만에 스물 네점의 그림을 완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뷔페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기때문에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뷔페의 이야기를 들려준 저자에게 고맙단 인사를 전하고싶다.

 

 

 이 외에도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구스타프 클림트, 툴루즈 로트레크, 케테 콜비츠, 폴 고갱, 에곤 실레를 만날 수 있었다. 저자가 말했듯 이 화가들 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화가가 있다면 그의 그림들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보면 좋을듯했다. 유명한 화가들인만큼 알려진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화가를 보는 시선은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에, 저자의 시각에 따라 그들의 삶을 만나고 그림을 보면서 나도 또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이런 책의 또 다른 묘미다. 그런데, 또 다시 느낀거지만 난 폴 고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알폰스 무하가 그를 도와주었다는데 왜? 라는 생각이 들고, 고흐가 고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생각도 들고......왜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몇 가지가 있는데, 그런 이유들에 앞서 고갱의 그림이 내 취향이 아니어서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싶다. 하지만, 취향이란 바뀔 수도 있는 것인지라 언젠가 그에 대한 인식이 바뀔 계기가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잘 정리가 된다는 것일테다. 그래서인지 도슨트로서 설명하듯이 쓰여진 글은 편안하게 잘 읽혔다. '작품 분석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미술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입문 5년만에 스타 도슨트로 자리매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시 해설가.특히, EBS 클래스 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미알못'들에게 그림 감상하는 재미를 선사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라는 책날개의 설명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현장에서 그림을 보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도슨트로서, 이 책을 통해서도 미술이란 나랑은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술이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하고,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끌렸기 때문이었는데, 그 끌림은 틀리지 않았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당당하게 예술가의 길을, 그리고 삶을 걸어갔던 그들에게서 나는 위로와 함께 새로운 에너지를 받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림이 어려운가요? 도저히 친해지지 않는다구요? 그럼 화가들의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여보세요. 화가들의 삶을 알면 그들이 그린 그림들이 궁금해질거에요. 그리고, 아무런 느낌이 없던 그림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하시게 될거에요. 제가 프리다칼로의 그림을 보고 느꼈던것처럼요. 화가에 대한 관심이 그림으로 이어지고 ,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 순간 나에게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굳이 커다란 변화가 아니더라도 그 순간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을 만날 의미는 충분한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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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내가 사랑한 화가들 | 예술 2021-05-0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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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삶을 안다는 것은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기에 좋은 방법, 그 길을 조용히 안내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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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 예술 2021-04-1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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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고, 역사와 예술을 만나는 여행. 깊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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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혼자 있기 좋은 방 | 예술 2021-03-3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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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하기 위해서 다시 구입했다. 가지고 있던 책 다시 펼쳤는데 그림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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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좋지,좋고말고, 아직은 어색하지만 친해지는 그 날을 위하여 | 예술 2021-03-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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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클래식이 좋다

조희창 저
미디어샘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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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듣고 곡의 제목을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난 비슷하게 들리는데, 어떻게 저 곡들이 구분이 되지?  은근히 부럽기도 했고, 왠지 멋있어 보였고, 나도 그렇게 되고싶었다.  평소 클래식은 지루하다는 느낌이 강해서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었는데 그런 불순한(?) 의도로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니 자연스럽게 듣게 되고, 작곡가들이 궁금해져서 관련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작곡가들의 삶이나 그 곡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고 들었을 때, 더 와닿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그냥 즐겨도 상관없지만, 작품에는 예술가의 삶과 추구하는 바가 담겨있기 마련인지라 예술가의 삶은 작품에 대한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저자는 음악평론가로서 여러 기관에서 음악 강의와 공연 해설을 하고 있고,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전설속의 거장> <클래식 내비게이터> <베토벤의 커피>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이 있다. 클래식 마니아를 위한 책이라기보다 입문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썼으며 연대기적인 설명보다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단락을 나누었다고 했다. 그러한 의도에 맞게 전문적인 내용은 거의 없고 작곡가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쓰여있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QR코드를 이용해 저자가 엄선한 여섯 곡들을 바로 들을 수 있도록 되어있었기에 음악 감상도 하면서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작품이 삽입되었던 영화를 소개해주고 있다는 거였는데, 그것을 참고로 해서 영화를 찾아본다면 그 곡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되지않을까싶었다.

 

 <사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로부터, <리베르 탱고>를 작곡한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까지 연대순으로 29명을 다루고 있었다. 이름은 익숙한 작곡가들이었지만 그들에 대해서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으니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지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클래식 입문자용으로 생각한다면 음악사조나 지역별로 나눈 것보다 흐름이 더 잘 잡혀서 좋았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예술이 '빼기'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끊임없이 더하라고 부추기는 세상에 거리를 두는 것, 일정 부분을 포기하는 것, 물리치고 덜어내고 시선을 돌려서 아름다움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그 말이 한참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삶 자체에 있어서도 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하는 작곡가가 있었다. 그는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1865~1957) 였다. 시벨리우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마이너스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학생 시절에 바이올린을 더 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연주를 포기하고 작곡으로 길을 바꿨다. 유학 시절에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본 후 자신에겐 오페라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몇 개의 습작 오페라를 쓰고는 더 이상 오페라는 만들지 않았다. 그대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과 잘해야 하는 것에 힘을 집중했다. 핀란드의 민속적 요소는 그가 잘할 수 있고 잘해야 하는 분야였다. 그는 이 음악 재료를 가지고 노래와 교향시, 교향곡에 집중했다. -P 290

 

 그렇게 탄생한 곡이 <핀란디아>였다. 한국의 <아리랑>처럼 핀란드 국민의 가슴을 울리는 대표곡이 되었으며 핀란드의 정치적 사정을 세계에 알리는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잘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마이너스 작업'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듯하다.

 

 하이든은 100개가 넘는 교향곡을 작곡해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자신의 곡에 가장 많은 별명을 붙여놓은 작곡가라고 한다. '놀람'교향곡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다른 별명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역시 저자가 '별명 붙이기의 대마왕'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놓은 이유를 알 것같았다. '놀람' 2악장을 들으면서 쓰고 있는데 신나는 곡이다. 귀족들을 놀려주려는 하이든의 마음이 느껴져서 절로 웃음이 났다.

 

 재미있는 별명은 45번 '고별'같은 경우다. 1772년 여름,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니콜라우스 공에게 연주자들이 여름휴가를 받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있다. 4악장에서 각 악기가 차례로 등불을 끄며 퇴장하는 아주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곡이다.96번 '기적'은 초연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연주회장의 샹들리에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기적처럼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데서 붙여졌다. 94번 '놀람'은 연주장에 와서 졸기나 하는 귀족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 2악장 열여섯 번째 소절에 급작스러운 포르티시모를 삽입해서 만들어진 별명이다.-p 54~ p55

 

 푸치니는 대대로 내려오는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기에 일찍 음악학교에 들어갔고, 교회에서 보조 오르간 반주자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교회 오르간의 파이프를 떼다 팔아서 담배를 사서 피우는등 말썽꾸러기였는데 열 여덟살에 베르디의<아이다>를 본 후에 음악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내게 음악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한다. 리스트도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듣고 인생에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으며, 파가니니의 연주회를 보고 "미쳐 죽든가,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든가 하겠다" 라며 미친듯이 피아노 연습에 매달렸다. 이처럼 긍정적인 자극을 받아서 자신의 능력치를 끌어올린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때론 경쟁하고, 때론 서로를 챙겨주며 발전해나가는 작곡가들을 만나면서 세상은 독야청청 혼자서 살아가는 곳이 아님을 느꼈다면 너무 비약한걸까?

 

 클라라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슈만의 삶은 항상 안타깝게 느껴졌다. 피아노를 가르쳐준  비크 선생의 딸 클라라와의 결혼 과정은 쉽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게 되자 슈만은 기쁜 마음을 모두 노래에 담아 클라라에게 바쳤다. 그해에 작곡한 노래만 130곡 이상으로 1840년이 슈만 '가곡의 해'로 불려지는 이유였다. 이런 배경을 알고 <시인의 사랑>을 듣는다면 곡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옥의 티: 곡이 재생이 되지 않아서, 유튜브에서 다시 검색해서 들었다)

 


 


  29명의 작곡가를 만나는 여행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 중에서도 베르디의 삶이 묘하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유명한 오페라단의 공연은 아니었지만 ,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리골레토>를 본 적이 있다. 실제 공연으로 만나서인지 그 작품의 곡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베르디는 안토니오 바레치의 후원으로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다. 딸, 아들, 아내가 차례로 죽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다른 사람이 퇴짜놓은 <나부코>의 대본 중에 "가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서."라는 대목을 보고 홀린듯 악보를 완성했고, <나부코>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일명 '노예들의 합창'은 이탈리아 제2의 국가로 불리며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고 한다. 베르디의 영구차가 출발하자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스칼라극장 오케스트라와 800명이 넘는 합창단이 <나부코>의 "가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를 노래했다는데, 베르디의 음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 곡을 듣는데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음악이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없어도 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은 하지 않을까? 책 한 권을 읽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마음을 건드리는 음악 하나로 삶의 의지를 불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작가 조승연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한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음으로써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부분들을 만나게 되고 기억에 남는다는 얘기를 했었다. 나도 그 의견에 공감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 다른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부분들이 있어 다지고, 또 새로운 사실들로 빈 틈을 메우며 음악가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럽게 읽었다. 한 인물에 대해 깊이있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어떤 작품 세계를 추구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덤으로, 대표적인 작품들까지 바로 바로 들어볼 수 있으니 그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클래식에 대해서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가볍게 작곡가들에게 다가가고, 아름다운 곡을 들어볼 수 있는 이 책을 만나보면 어떨까?

 

* 연도 표기가 많다보니 오타가 보였는데, 혹시라도 참고가 될까하여 적어봅니다.

p50 1868~ 1768  ,p80  1975~1864,  p152 1932 →1832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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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만나러 떠난 여행 | 예술 2021-02-2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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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가 사랑한 고흐

최상운 저
샘터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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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책을 펼치면 고흐를 만나지 않을 수 없고, 자꾸 만나다보니 궁금해지고,궁금해지니 또 찾아 읽게되고 그렇게 고흐와 친해졌다. 하지만, 왜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내가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예술성을 논할 수는 없고, 그가 가진 엄청난 열정에 비해 살아있는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고통받았던 것에 대한 애잔함이 크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같다. 테오의 형에 대한 사랑도 큰 몫을 하고 있고,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소중히 간직했고, 그의 작품들을 소중히 여겼던 테오의 아내와 조카 빈센트로 인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기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드문 드문 고흐의 삶에 대한 글을 만났기에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고흐의 발자취를 찾아떠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제대로 정리를 해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읽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여행을 시작한 저자는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고흐가 살았던 도시들을 찾았다.  이 책은 2012년에 <고흐 그림여행>으로 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으로 프랑스와 네덜란드 외에도 초판에서 다루지 않았던 영국과 벨기에를 추가했다고 한다. 고흐의 삶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여정이라 독자의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몇 개의 키워드로 나눠보았다.

 

1. 여행 

  <고흐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 떠나는 그림 여행>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헤이그, 드렌터, 뉘넨, 에텐, 스헤베닝언), 프랑스 (파리, 아를, 생 레미, 오베르 쉬르 우아즈), 영국 (런던), 벨기에 ( 브뤼셀, 보리나주) 를 넘나들었다. 37년이라는 생을 살면서 대략 28곳에서 머물렀다한다. 왜 그렇게 많은 도시들로 옮겨다닐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도시에서 발견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열 여섯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시작한 일은 헤이그 구필 화랑에서 그림 매매를 중개하는 일이었다. 런던 지점, 파리 지점을 거치면서 일이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려했지만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겨우 전도사가 되는 자격을 얻어 보리나주 탄광촌에 전도사로 갔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충격을 받고 그들을 도우려했는데, 신도들은 그를 조롱했고, 기독교 위원회에서도 그를 종교에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결국 전도사일도 할 수 없게 된 그는 종교에 대한 관심을 끊고 브뤼셀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로의 한 걸음을 내딛은 고흐의 여정은 파리, 아를, 생 레미,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했다.

 

 현재의 자유분방한 암스테르담의 모습을 보고, 브뤼셀의 가장 유명한 광장인 그랑 플라스 이야기도 듣고, 아를의 국제 사진 페스티벌, 소를 잡는 행사등 흥미진진한 부활절 축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생 레미 요양원 시절, 마지막을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갔을 때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고흐의 흔적을 지금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도시들을 실제로 여행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2. 미술관 

  고흐를 찾아가는데 미술관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들른 [반 고흐 미술관]에는 고흐의 작품들이 주제와 시기별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1883년부터 고흐의 행적에 따라 작품을 소개해주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완전 몰입해서 숨도 쉬지 않고 읽었다. [레이크스 미술관]은 고흐가 많은 영향을 받았던 렘브란트,페르메이르등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이 모여있다.  반고흐 미술관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은 고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는 또 다시 고흐의 작품의 향연에 빠질 수 있었고, 다양한 조각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었다. 런던에 있는 동안 자주 들렀던 [런던 내셔널 갤러리], [월리스 컬렉션]에서 고흐가 좋아했던 작품들을 만났다. 그 외에 벨기에의 [ 브뤼셀 왕립 미술관] 과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나는 그림들로 정말 멋진 그림여행을 할 수 있었다.

 

3. 영향을 받은 화가들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는 고흐가 가장 사랑했던 그림으로 유명한데, 저자는 그 그림에서 찬란한 황금색을 보고 매혹을 느꼈던 고흐와 그의  노란색에 대한 집착을 떠올렸고, 고흐는 한 가지 주제로 여려 장의 그림을 그렸는데 모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고흐가 특히 좋아했던 프란스 할스의 작품은 <웃는 아이>로 서민적인 화풍과 빠른 붓터치로 그려졌는데 빠른 속도로 그린 고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고도 했다. 고흐는 페르메이르의 <델프트 풍경>의 빛과 색채에 반했고, 가까이 가서 보았을 때와 떨어져서 보았을때 색이 다르게 나타나는 데 감탄을  금치못했고, 이런 수준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한다. 고흐는 쇠라와 폴 시냐크등 점묘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고흐의 주관적인 색채의 사용은 야수파와 독일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예술 세계는 분명 독자적인 부분이 크겠지만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저자는 고흐의 작품 외에도 고흐가 사랑하고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많은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고흐를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4. 고흐가 만났던 사람들

  고흐는 여러 번의 사랑을 했지만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변의 반대에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면, 무모해 보이는 사랑일지라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평범한 가장으로서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매춘부였던 시엔은 <슬픔>이라는 그림으로도 남아있다. 시엔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스헤베닝언에서의 그림은 그들의 사연때문인지 왠지 황량하게만 보였다. 병원에서 그를 돌보아 주었던 지누부인, 어머니를 생각하게 했던 룰랭부인과 남편 우체부 룰랭, 탕기 영감, 고갱. 그리고 테오. 테오라는 동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고흐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같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중요한 인물을 만났다. 최근에 읽었던 [빈센트가 사랑한 책]에서 자주 등장하던 친구 라파르트였다. 귀족 출신으로 다른 환경에 놓여있었다고는 할 수 있지만 5년정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본 라파르트는 혹평을 했고,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버렸다고 한다. 그와 주고받은 편지를 담은 책 [반고흐 영혼의 편지2]가 출간되어 있는 것을 보면 라파르트와의 우정이 고흐에게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같다. 라파르트가 궁금해졌다.

 

5. 작품 세계

 <해바라기><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강렬한 노란색과 소용돌이 치는 그림들을 보노라면 고흐의 생각들이 단순하지 않고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신 착란으로 귀를 자르고, 발작이 일어나 요양원에서 보내야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것을 생각하면 (자살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고흐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게 되는 부분도 있다.  최근에 [빈센트가 사랑한 책]을 읽으면서 그는 독서를 많이 했고, 지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저자도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흐는 대단히 지적인 인물이었다. 우선 어학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등에 능통했다. 셰익스피어, 쥘 미슐레 같은 이들의 책을 원서로 읽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많은 번역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의 편지에서 나타나는 깊은 사색의 흔적들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이처럼 수많은 책을 통한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다.-p 23

 

  <유모 룰랭 부인의 초상화>는 쥘 미슐레의 [여성]이라는 책의 영향을 받아서 그려졌다고 한다. 이렇듯 고흐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알고 있는 고흐의 그림은 빙산의 일각이었고, 고흐의 아주 일부분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흐를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것을 모르고 봤다면 그의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는데, 그에 더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변해가고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의 그림에 영향을 받았던 부분을 생각해보면 고흐는 색채에 집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저자도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충실하게 모사하는 대신에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고, 그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은 주로 늙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생 레미의 요양원에 있을 때 고흐는 농부가 밀을 수확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농부와 해가 있는 밀밭>을 그렸다. 여동생 윌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밀이 아닌가.....우리가 밀같이 죽어 수확이 될...."이라고 썼다 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본다면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떠올리는 그림일텐데, 고흐의 마음을 알고나니 편하게 보아지지는 않았다. 고흐의 마음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여행을 끝내고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고흐와 테오의 무덤을 보는데 코끝이 찡했다.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찼던 한 사람, 이상은 높았지만 이룰 수 없어 좌절했던 사람, 그런 형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했던 동생 테오. 그들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저자도 말했듯 고흐에 대한 책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바라보는 시각은 동일한 것도 있을테지만, 분명 다른 지점들이 있다. 저자를 따라 '고흐를 찾아서 떠난 여행'을 하는동안 너무너무 즐거웠다. 가장 좋았던 점은 그의 삶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흐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지만 고흐를 찾아서 떠나는 나의 여행은 이 책으로 인해 이제서야 시작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것같다.

 

 * 고흐하면 강렬한 노란색의 색조를 떠올리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가 그린 녹색,파랑에 많이 끌렸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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