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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54회 | 비너스에게 2010-10-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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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생전 처음 와 본 도시.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기 어린 바람이 느껴지고 오래된 가옥과 건물이 골목골목 늘어서 있는 고도古都.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검은 눈동자에는 항상 곁에 있는 검푸른 바다가 어른거리고, 탯줄로 이어받은 오랜 이야기들이 도시의 낡은 벽돌과 벽, 그리고 자갈들과 감응하는 곳. 낯선 도시에 와 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해방감이 느껴지는 건 왜지? 그때 나는 예언과도 같은 확신을 얻었어. 언젠가의 나는 스쿠터를 타고 이렇게 낯선 도시들을 찾아 새롭고도 익숙한 공기냄새를 맡아볼 것이라고. 뉴욕의 마천루들을 기어오르며 줄자로 길이를 재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멋진 꿈이지 않아?

  나는 갓길에 잠깐 스쿠터를 세운 뒤 잡이 보내준 상세지도를 펼쳐서 누룽지의 집으로 가는 길을 살펴보았어. 그애가 살고 있는 곳은 바다와 가까웠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인천의 밤바다를 볼 수 있을 거야. 나는 누룽지에게 문자를 보냈어.

 

  “너에게 가고 있어. 이십 분 내로 도착할 거야. 달.”

 

  나는 다시 ‘북경’의 시동을 걸었어. 달려라, 달려, 달!

 

  멀리서부터 누룽지의 모습이 보였어. 저녁놀이 지고 있었고, 오후부터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 기온으로 바람이 무척이나 차가웠어. 누룽지는 그토록 싸늘한 저녁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민소매의 탱크 탑을 걸치고 있었어. 누룽지의 통통한 팔다리가 유난히 강조되는 패션이었지만, 적어도 팬티는 보이지 않았는걸.

  비너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정말로 누룽지에게 달려가는 동안 무척 행복했어. 나를 발견한 누룽지가 기쁨에 넘쳐 폴짝폴짝 뛰고(누룽지. 그러다 다쳐. 네 구두 굽을 좀 봐. 넌 사다리에 올라탄 거나 마찬가지야!) 마구 손을 흔들어주었어. 나는 누군가를 위해 달린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

  나는 배낭에서 프리지어 꽃다발을 꺼내 들었어. 누룽지의 두 눈이 놀라움으로 더욱 커지고, 내가 헬멧을 벗고 그애에게 다가가는 동안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떨며 두 손을 모으고 있었어.

 

  “내가 왔어, 공주님.”

 

  프리지어 꽃다발을 내밀며 그렇게 말하자 누룽지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누룽지는 떨리는 손으로 꽃다발을 받아들었어. 우리는 시선이 마주치자 함께 웃음을 터뜨렸어.

 

  “행복해?”

 

  “최고로.”

 

  “안 믿겠지만, 오는 내내 나도 행복했어.”

 

  내 말에 누룽지가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우리는 누룽지네 대문 앞에 있는 계단 위에 나란히 앉았어. 누룽지의 맨살에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닭살이 올라 있어서 나는 가죽재킷을 벗어 그애에게 걸쳐주었어. 누룽지는 다시 고맙다고 인사했어. 우리는 그렇게 앉아 해가 지는 것을 함께 보았어. 누룽지네 마당에서 풍겨오는 이르게 핀 라일락 향기가 저무는 봄빛에 뒤섞인 정말 아름다운 저녁이었어.

 

  “평생 잊지 않을게, 달.”

 

  “엄청 기쁜 일이네, 그거.”

 

  누룽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어. 나는 당황해서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주었어.

 

  “어, 모처럼 공들여 한 화장이 다 번지겠다.”

 

  누룽지가 훌쩍거리면서도 웃음을 터뜨렸어.

 

  “미안해.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니야. 괜찮아. 더 울어도 되기는 하는데, 저기, 화장이 번지니까 아까워서.”

 

  “그동안 나한테는 아무도 없었어. 날 위해 와주는 사람이. 그래서……”

 

  “그래.”

 

  누룽지는 코를 킁, 하고 들이마셨어.

 

  “있지, 달. 나는 착각 같은 거 안 하니까 안심해도 돼.”

 

  “그게 무슨 소리야?”

 

  “너처럼 멋진 애가 나를 좋아해 주리라고는 절대로 생각 안 해. 그러니까 행여나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절대 널 귀찮게 하거나 하지 않아. 약속할게.”

 

  나는 가슴이 아파왔어. 그애의 그런 모습이 내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야.

 

  “내가 널 좋아할 수 없는 건 내가 게이이기 때문이야. 만일 네가 남자애였다면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하게 됐을 거야. 왜냐하면 누룽지. 너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인걸.”

 

  누룽지가 너무 놀라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잊어버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나 역시 자의로 한 첫 번째 커밍아웃에 나름 놀라고 있었어. 엉겁결이긴 했지만, 나는 뭔가 후련한 기분이었어. 누룽지는 정말이냐고 몇 번을 되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정말이라고 대답해주었어. 결국 누룽지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

 

  “저기, 달. 꽃미남은 다들 게이인가봐?”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잘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 나는 누룽지의 어깨에 팔을 둘렀어. 그애는 아까보다는 좀 더 편하게 내 팔을 붙들었고.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누룽지가 작은 목소리로 아쉽다는 듯 말했어.

 

  “그래. 만일 네가 남자였다면 지금 너한테 키스했을 거야.”

 

  누룽지는 미소를 지었고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었어. 비너스. 그건 정말 예쁜 이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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