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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 55회 | 비너스에게 2010-10-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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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밤

 

 

  비너스에게.

  양나 씨에게서 문자가 도착한 것은 7월 말의 어느 저녁.

 

  “하나 출산 임박! 달려와, 달!”

 

  그때 나는 수학문제집을 붙든 채 끙끙대고 있었어. 양나 씨에게 하나의 출산을 돕겠다고 약속을 해온 터라 나는 번개처럼 일어나 뛰쳐나갔어.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북경’에 올라타면서 엄마의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양나 씨에게 간다고 보고를 했어.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전속력(이라고 해야 시속 65킬로미터)으로 당겼어. 긴 여름 해가 저무는 동안 나는 ‘애미’를 향해 열심히 달렸지만 그곳의 친숙한 포플러나무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 하늘에는 벌써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어. 마당에 나와 있던 양나 씨는 내가 ‘북경’을 몰고 들어서자 달려왔고, 나를 따듯하게 안아주었어.

 

  “달, 늦었어. 하나는 벌써 새끼를 낳았다고.”

 

  “벌써요? 전속력으로 달려온 건데!”

 

  “그래. 현신이 지금 막 송아지를 받아냈어. 아주 건강한 암놈이야. 가서 보렴.”

 

  이곳에 오면 현신을 보게 될 줄 알고 있었으므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막상 그의 이름을 듣자 날카로운 바늘로 가슴을 찔리는 것 같았어. 양나 씨의 손에 이끌려 우리 곁으로 다가가자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 그는 피와 양수로 더러워진 장갑을 벗고 있었어.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분명하게 깨달았어. 그를 전혀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비너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어. 그에게 매정하게 차인 뒤, 나는 조금 울고 많이 아프긴 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멀쩡하게 일상을 매끼니 식사처럼 해치우며 배부르게 살아왔거든. 나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영무와도 잘 지냈으며 엄마하고도 전혀 문제가 없었어. 웃긴 걸 보면 크게 웃고, 슬픈 걸 보면 훌쩍이기도 하고, 화가 나면 화도 내면서 그렇게 살아왔단 말이야. 하지만 7개월 만에 현신을 다시 보는 순간, 그간의 내 일상이 얼마나 공허하게 느껴지던지. 어째서 그는 존재만으로 그런 충족감을 안겨줄 수 있는 걸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현신의 표정 역시 나만큼이나 복잡해 보였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인사는 무척 어색할 수밖에 없었어.

 

  “잘 지냈니?”

 

  “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양수로 젖어 있는 송아지를 열심히 핥아주고 있는 하나를 멍하니 바라보았어. 우리 바닥에는 하나와 송아지를 위한 푹신한 건초가 깔려 있었어.

 

  “조금 있으면 일어설 수 있을 거야. 하나가 생각보다 어미노릇을 아주 잘하고 있어. 간혹 새끼를 돌보지 않는 암소들도 있거든.”

 

  “그런가요.”

 

  나도 알아. 내가 어린애처럼 굴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에게 무언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마다 목구멍에서 딱딱한 덩어리 같은 것이 치밀어올라 제대로 입을 여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조산이라 걱정했는데, 하나의 유선이 덜 발달되었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다른 소의 초유와 영양제를 가져왔으니 우선 송아지에게 먹이고, 하나에게는 비타민 제제와 에스론, 옥시토신을 처방할게요. 이걸로 유량이 증가하면 다행한 일이에요.”

 

  “고마워, 현신.”

 

  “천만에요. 송아지가 영양이 부족하지 않도록 당분간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알았어. 걱정 마. 어머나!”

 

  하나가 지극정성으로 핥아준 덕인지 송아지의 몸은 그새 보송보송해졌고, 네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도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 우리는 놀라운 자연의 신비를 감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어. 몇 번이나 쓰러지던 송아지가 마침내 균형을 잡으며 네 다리로 우뚝 서자 하나는 더욱 더 열심히 송아지를 핥아댔으며 우리 셋은 조용히 감탄사를 내뱉었어. 태어난 뒤 삼십 분 안에 먹이를 먹어야 했으므로 현신은 서둘러서 송아지에게 줄 젖을 준비했어. 그는 직접 송아지에게 우유를 먹이면서 양나 씨에게 요령을 설명해주었어. 다행히 송아지는 젖병을 열심히 빨아대면서 생애 첫 식사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지. 나는 그동안 하나의 분비물로 더러워진 건초를 걷어내고 우리 한구석에 쌓여 있는 깨끗한 건초를 다시 깔아주었어. 마당에서는 앨리스가 두 눈을 끔뻑이면서 이쪽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어. 앨리스도 자신의 새끼가 태어난 걸 아는 것 같았어.

  현신이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양나 씨가 나를 불렀어.

 

  “현신과 나는 하나의 출산 때문에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어. 냉장고를 적당히 뒤져서 우리를 위해 무언가 만들어줄 수 있겠니?”

 

  “오믈렛 정도라면 만들 수 있어요.”

 

  “고마워.”

 

  양나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어.

 

  “그와 오랜만에 보지?”

 

  “네.”

 

  “기분은?”

 

  “……아프네요.”

 

  “저런.”

 

  양나 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이윽고 말을 꺼냈어.

 

  “현신은 이곳을 곧 떠날 모양이야. 그와 한번 이야기를 해보렴.”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쿵, 하고 내려앉았어. 그래. 결국.

 

  “어, 어디로……”

 

  “그에게 직접 듣는 게 좋겠구나.”

 

  양나 씨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보며 그렇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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