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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연재 소설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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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연재 소설 『테이블』. 매주 월/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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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3회 | 연재소설 『테이블』 2016-03-3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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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은 적당하게 식은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코코아는 뜨거울 때 호호 불어가며 마셔야 제 맛인데 맛있는 온도를 놓쳐버렸다. 영진의 컵에서 흘러내린 코코아가 테이블에 동그란 자국을 남겼다. 지원은 얼른 그걸 문질러 닦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 눌렀다. 그러자 테이블 중앙에 있는 새끼손톱만 한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무슨 일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테이블 중앙에 생긴 갈색의 얼룩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한동안 지원은 그걸 없애려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그때는 각종 약품과 도구를 동원하는데도 얼룩이 지워지기는커녕 점점 번지고 커지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크기, 재질, 색상의 테이블을 찾아 헤매다 산 거라 애정이 남달랐다. 매장에서 이 테이블을 봤을 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마음에 들었고 꽤 비싸다는 걸 알게 된 뒤 며칠을 망설였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더 좋은 테이블을 만날 가능성이 적다는 것과 안 사면 후회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 테이블 고르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영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원은 이 테이블이 거실의 인상을 모던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테이블 한가운데 얼룩이 생기자 신경이 온통 거기 쏠렸다. 어떤 날은 잠에서 깨자마자 거실에 나가 테이블 위를 살펴봤다. 손톱 만하던 얼룩이 손가락 만해지고 손바닥만 한 크기로 커지던 순간 지원은 테이블을 치워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해서 아끼던 것에 생긴 흠집이 더 참기 힘들었다. 


테이블에 생긴 얼룩 때문에 속상해하고 있을 때 언니가 집에 놀러왔다.


-테이블 진짜 잘 샀어. 볼수록 맘에 들어.


언니는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칭찬을 들으니 더 속이 상해서 지원은 얼룩 얘기를 꺼냈다. 지원의 눈에 손바닥 만 하게 보이는 걸 언니는 바로 찾지 못하고 헤맸다. 지원은 노안이 왔느냐며 눈 영양제라도 챙겨 먹으라고 타박했다.  


-여기 있잖아. 여기.


얼룩을 쳐다보던 언니는 기가 차다는 듯 지원과 테이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주 지랄을 한다. 눈에 뵈지도 않는구만. 

언니는 길지도 않은 손톱을 세워 테이블 위를 긁는 시늉을 했다. 


-너는 가끔 이상한 거에 미친년처럼 집착하더라. 

-내가 뭘? 


지원은 언니를 흘겨봤다. 


-이게 장식장에 넣어놓는 거냐? 테이블이 쓰다보면 다 얼룩지고 긁히는 거지. 그렇게 아까우면 머리에 이고 살아. 징징거리지 말고.


언니는 집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동안 카레 묻은 숟가락을 테이블에 그냥 내려놓았다. 커피를 흘린 다음 닦지도 않았다. 아 진짜 지저분하다, 구시렁거리면서 지원은 카레와 커피 자국을 닦았다.


제 지원에게 테이블의 얼룩은 딱 새끼손톱 만하게 보인다. 어쩌면 그 사이 어딘가 한두 군데 얼룩이 더 생겼을지도 모른다.


-싸워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우리가, 우리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지원은 목소리는 조금 갈라졌다.


-그래. 문제 있지. 문제없는 부부가 어디 있냐.

자꾸 페이지를 덮으려는 영진 앞에서 지원은 맥이 빠졌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이었나. 이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대화조차 할 수 없게 된 건가. 


물론 어떤 때는, 어떤 문제는 모른 척하고 피해가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을 엎지르고 쓰레기통이 넘치고 빨래 바구니가 꽉 찬 거라면 먼저 본 사람이 슬그머니 치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집의 벽이 무너지고 유리창이 깨지면, 쥐나 벌레가 들끓고 귀중품이 사라지면 같이 원인을 알아보고 재정비하거나 이사를 가야하는 거 아닐까. 


매번 비슷한 이유로 다투고 싸움의 패턴과 결말이 같다보니 영진은 상황의 심각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데 지원은 이제 만신창이가 된 집의 내부가 보였다. 벽지로 덮어두고 커튼으로 가리고 약을 뿌려가며 내쫓아도 그 너머의 붕괴, 균열, 들끓음이 사라지지 않고 이 집 어딘가, 두 사람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원은 한 번쯤은 커튼을 들추고 벽지를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싸움도 원인은 사소하지만 그 사소한 원인이라는 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주 심각하고 고질적인 문제였다. 싸움의 팔 할 정도는 이 문제에서 시작해서 서로에 대한 비방과 원망, 분노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는 거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지원과 영진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만약에 이 장면에 나름의 해피엔딩이 존재한다면 그건 늘 비슷한 방식으로 화해했으니 이번에도 영진이 먼저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진이 밥을 먹자고 하면 저녁을 편하게 먹기 위해 지원이 사과를 하고 이것으로 싸움에 대한 얘기는 그만하자고 영진이 페이지를 닫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두 사람은 표면상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서로를 곁눈질하던 시선을 바로 잡고 인상을 풀고 테이블에 앉아 늦은 저녁을 배달시켜 먹거나 모처럼 팔짱을 낀 채 저녁을 먹으러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든 휴일의 조각처럼 남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최근 개봉작을 골라서 결제하거나 굉장히 서로를 원했던 것처럼 섹스에 돌입할 수도 있다.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화해의 법칙에 따라 관성대로 했다면 그런 밤 시간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원래 부부들이란 싸울 때는 상대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하며 상처 내다가 어떻게든 무릎 꿇리고 항복을 받아내고 싶은 마음에만 집중하다가 화해하고 나면 그 상처에 엉겨 붙은 핏자국, 절룩거리는 다리, 부르튼 입술이 속상하고 마음 아파서 약을 바르고 챙겨 먹이는 존재들이니까. 그들 부부만의 방식으로 싸울 때는 치열하게, 화해할 때는 뜨겁게, 다들 그렇게 사니까.


지원은 이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는 영진이 먼저 말을 걸면 못 이기는 척 받아주고 의례적으로 사과했다. 그게 이기는 것 같고 자존심을 지키는 일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화해하고 난 뒤에도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은 퇴적물 같은 게 내부에 남아있었다. 세면대나 배수구 위에 드러나는 건 청소하는 솔로 대충 걷어내지만 수채 구멍 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점점 통로가 막혀가는 기분이었다. 이건 아닌데,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얘기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다시 다툼이 될까봐 두려워서 입을 다물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 언제까지나 못 본 척 모른 척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앞으로 영원히 안 볼 게 아니라면, 이 결혼을 끝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화해를 하는 편이 나으니까. 화해를 위한 화해를 해오면서 생긴 감정의 찌꺼기 같은 것 때문에 속이 점점 답답해졌다. 이걸 시원하게 뚫으려면 독하고 강력한 약을 붓고 얼마동안은 세면대나 배수구를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야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조치가 필요한데, 그런 약이나 해결 방법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영진의 시선은 지원이 아니라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그의 마음도 이곳이 아니라 딴 데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얘기하기 싫어?

-다음에 얘기하자. 지금 이런 얘기해서 뭐 할 거야.


-그럼 이것만 얘기할게. 나는 지금 심각해. ……이혼을 생각할 만큼.

지원이 이혼이라고 말하자 영진이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둘 사이에 이혼 얘기가 나온 게 처음은 아니었다. 신혼 초에 격렬하게 말다툼할 때는 한 사람이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면 둘 다 그 말을 무기처럼 휘둘렀다. 이혼은 최고의 무기이자 방어수단이었다. 


찌르고 베고 상황에 취해서 칼을 주고받느라 무감각해졌다고 생각했지만, 화해한 뒤에도 상대가 했던 말은 흘러가지 않고 여기저기에 가시처럼 박혀있었다. 그가 그 말과 함께 이혼 얘기를 한 건 어떤 의미일까. 지원과 영진 모두 자신의 말끝에 묻은 독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 상태가 뱉은 말에서 나온 독이 번지는 것만 바라보며 아파했다. 화해했는데, 화해해서 마주 앉아 밥을 먹고 한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다가 한 침대에서 잠이 드는데 다정한 얼굴 뒤에 숨은 목소리가 문득 소리쳤다.


-그러면 나랑 왜 같이 사냐? 이혼해. 내 앞에서 꺼지라고.


억양과 표정까지 떠오르면서 마음이 식고 의기소침해졌다. 싸울 때 했던 말 때문에 다시 싸우는 일도 잦아졌다.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두 사람은 와인을 마시며 싸움의 규칙을 정했다. 일 년 동안 잘 살았다는 자축도 의미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계획도 필요했다. 이제부터는 싸울 때 말조심하자. 이혼 얘기는 함부로 꺼내지 말자.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자. 몇 개의 룰을 정하고 난 뒤 확실히 싸울 때 볼륨이 낮아지고 얌전해졌다. 부부싸움이 줄어든 건 아니지만 단어가 순해지고 이혼 얘기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로 줄었다. 그만큼 이혼이라는 말에 무게가 생겼다. 


-깊이 생각해보고 얘기하는 거야?  

-어. 오빠는 계속 대화를 거부하지만…….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얘기하자는 거잖아.

-나중에 언제하자는 건데?

대화는 앞으로 나가지 않고 꼬리를 잡는 식으로 맴돌았다. 


-……이혼 얘기 후회하지 않을 거지?

지원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영진이 겉옷을 손에 들었다. 


-나도 생각해볼 테니까 너도 한 번 더 생각해봐. 

의자에서 일어난 영진이 현관에서 신발을 찾아 신었다. 센서 등이 다시 반짝 불을 밝혔다. 띠리릭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가 난 뒤 불은 꺼졌다. 지원 혼자 테이블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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