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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연재 소설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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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서유미 연재 소설 『테이블』. 매주 월/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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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테이블』
테이블 5회 | 연재소설 『테이블』 2016-04-0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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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엄마들은 둘 다 매장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지원은 두 사람이 관심을 가진 옷의 가격표를 가리키며 세일을 이렇게 많이 하는 옷은 무조건 사야한다느니, 이거 사면 돈 벌어가는 거라느니, 하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당장 한 벌의 옷을 팔 때는 그런 말이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천천히 돌아갈 필요가 있다. 


지원은 매장을 시작했을 때부터 매출보다 단골 만들기에 신경 썼다. 한 명의 고객 뒤에는 250명의 잠재 고객이 있다는 조 지라드의 250명 법칙을 모토로 삼았다. 그게 대로변에서 한 블록 벗어난 곳에 위치한 매장이 한 해 두 해 버티는 비결이었다.  


지원은 봄 기획 상품으로 나온 옷들도 꺼내서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매장에 오래 머물며 많은 옷들을 둘러보도록 유도했다. 젊은 엄마들은 좀 주저하다가 행거에 걸린 옷들을 꼼꼼히 넘겨봤다. 근처 어린이집 얘기를 꺼내자 시설과 선생님들에 대해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엄마들은 금방 커서 가늠하기 어려운 사이즈와 요즘 아이들 옷의 유행에 대해 한참 이야기한 뒤 처음에 고른 점퍼와 코트 대신 봄에 입힐 치마와 바지를 한 벌씩 샀다.


손님들이 돌아가자 예령이 박수를 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역시 점장님. 세일 상품 아니면 못 팔 줄 알았는데.


지난 일주일동안 매출은 엉망이었다. 며칠만의 판매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도 별로 없었고 구경하러 온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았다. 툭하면 딴 생각에 빠져서 위기감은커녕 하나도 팔지 못한 채 퇴근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지원은 매장용 노트북으로 지난 주 매출 현황을 클릭했다. 판매한 품목과 요일 모두 생소했다. 매출뿐 아니라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 주말의 경계가 희미하고 이 아침과 그 오후, 어떤 저녁과 새벽이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린 것처럼 뒤섞였다. 


밀크 티를 타서 예령에게 한 잔 건네고 한 모금 마셨다. 빈속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차가 퍼졌다. 


-점장님. 벚꽃 날리는 거 봤어요?

-응?

-폈나 싶었더니 지네. 점점 금방 지는 것 같아요. 내일이면 다 떨어질 거 같죠?


예령이 아쉬운 듯 출입문 밖을 기웃거렸다. 연애를 안 하니 봄 기분도 나지 않고 꽃구경도 시큰둥하다고 했다. 지원은 꽃이 피었나, 꽃 피는 걸 봤나, 생각했다.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몰랐네, 중얼거렸다.


평소에 점심은 서너 개의 식당을 정해두고 돌려가며 주문해서 먹었는데 예령의 꽃 얘기에 도시락을 사러 나왔다. 마음 같아선 어디든 꽃그늘을 찾아 그 아래 앉아 도시락을 먹고 싶었지만 매장을 오래 닫아둘 수 없어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창밖을 기웃거리며 먹었다. 모처럼 밥값을 한 것 같아 지원은 도시락을 깨끗이 비웠다.


믹스 커피를 진하게 타서 마시고 있는데 단톡방에 이나와 승아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지원. 이번 주는 시간 괜찮아? 

-또 미루기 없기.


지원은 스크롤을 위로 올려 이전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난 주 월요일에 주고받은 대화가 보였다. 


-화요일에 어디서 볼까. 

-이번에는 너희 매장으로 갈까? 


그 밑에 지원은 일이 좀 있어서 이번 주는 힘들 것 같아. 둘이 보든가 한 주 미루자고 답을 달았다. 


그때는 영진과 싸운 지 며칠 안 된 상태라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들 기분이 아니었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오기로 한 이나는 실망한 눈치였지만 그럼 한 주 미루자고 바로 글을 올렸다. 다음 주에 둘 다 끝장내버리겠다, 각오해, 하며 웃는 이모티콘을 남겼다. 승아는 이번 주 잘 보내고 다음 주에 보자, 뒤에 느낌표를 찍었다. 


지원은 이나의 글을 한 번 더 읽었다. 결의에 차 있지만 이나가 자정이 되기도 전에 해롱대며 택시를 타고 아이와 남편이 잠든 집으로 가리라는 걸 알았다. 엄마가 된 뒤 만나면 이나는 언제나 신데렐라처럼 헐레벌떡, 자신만의 유리 구두를 남겨둔 채 돌아갔다. 지갑이나 휴대폰일 때도 있고 머리띠나 끈, 벗어둔 양말을 놓고 간 적도 있었다. 애 낳고 바보 됐다고 건망증을 탓하며 다음 날 직접 찾으러오기도 하고 남편이 퇴근길에 가지러 오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 모임이 다가오면 또 너네 다 끝장내버릴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지원과 승아는 밤을 쪼개자는 이나의 거짓 협박에 매번 오늘 한 번 죽어보자고 맞장구쳤다. 한 번도 진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오래된 친구란 뻔히 알면서도 장난치고 속아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주에 그런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모임을 미뤘다는 것도, 그 사이 한 주가 지나 내일이 화요일이 된다는 것도 깜박했다. 커다란 지우개가 일주일의 시간을 듬성듬성 지운 것 같았다.

지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남겼다.


-내일은 봐야지. 우리 집으로 와. 둘 다 집에 못 갈 줄 아시라. 


우리 집이라고 입력하는 동안 집 안을 돌아다니던 먼지와 어수선한 거실과 텅 빈 냉장고가 떠올랐다. 오늘 저녁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앗싸. 냉장고 캔 맥주로 꽉 채워놔.

-반 건조 오징어 가져가겠음. 촉촉하게 구워라. 무수리야. 


지원은 크크 웃는 표시를 남겼다.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에 만나서 회포를 푼 지 7년 정도 되었다. 그 전에는 날을 따로 정해두지 않고 내키는 대로 자주 봤지만 승아가 결혼하면서 ‘화요일의 여자들’ 모임이 결성되었다. 한참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져있던 승아는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을 읽고 난 뒤 우리도 화요일 저녁에 모여야한다고 주장했다. 금요일이 아니고 화요일? 이나의 질문에 승아는 그 소설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렇게 섹스 앤 더 시티를 보고 감명 받아 토요일 오전에 만나 브런치를 먹던 모임은 유부녀 친구의 탄생과 함께 화요일 저녁의 모임으로 바뀌었다. 


오후에는 오전에 왔던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어린이집에서 오는 길인 듯했다. 오전에 보고 갔던 점퍼와 코트를 입혀 보려하자 아이들이 덥다며 몸을 뒤챘다. 지원이 장식용으로 놓아둔 인형을 가져와서 주의를 끌었다. 소매를 어느 정도 접을 수 있는지 지금 길이가 어디까지 내려오는지 보여주자, 이 정도면 겨울에 입을 수 있겠네, 지금 사서 내년 겨울까지 입히면 되겠어, 하며 마음에 들어 했다. 지원은 쇼핑백에 양말을 한 켤레씩 담았다.



하루 종일 영진과 지원은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이후 지원의 휴대폰은 내내 잠잠했다. 예전에는 싸우고 나면 왜 먼저 연락하지 않느냐며 그 문제로 또 싸우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화해하기 전에는 서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하지 않았다. 너와 내가 멀리 떨어져있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있다는 느낌 없이 각자 일하고 밥 먹고 걷는 게 사무치게 외롭고 서럽던 때도 있었는데, 혼자 있으니까 편하고 좋기만 하네, 속으로 오기를 부리던 때도 있었는데, 그 날들은 꽃잎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무감해지는 순간이 왔다. 아프지도 밉지도 않다. 


하루 종일 지원은 영진의 생각을 딱 한 번했다. 친구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해야 하는데, 굳게 닫힌 크림색의 방은 어떻게 할까. 그때 영진이 지금 어떤 상태일까,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잠깐 헤아려봤다. 청소를 위해 그 문을 열어도 좋을까. 친구들이 와서 열어볼까봐 걱정돼서가 아니라 나중에 청소해야할 거라면 한 번에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방에 대해 생각하며 영진을 떠올렸다.


예전이라면 거리에 핀 봄꽃을 봤을 때 생각했을 것이다. 사이가 좋았다면 전화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서 보냈을 테고 냉전 중이어도 이렇게 좋은 날 싸우다니 처량하네, 하며 마음이 조금 녹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에 여러모로 달랐다. 


지원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이혼을 생각할 만큼 심각하다고 했던 게 빈 말은 아니지만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각자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얘기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영진이 얘기하자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할 것이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지원의 맞은편에 앉아 입을 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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