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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 BARD 질문법]에서 발췌 | 명언명구 2023-07-0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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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자신이 던져야 할 질문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역량을 준비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챗GPTBard의 뛰어남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질문은 우리가 준비 해야 할 더욱 중요한 역량임을 기억하라.

 

질문을 통해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확장되며, 질문의 질을 높이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미래가 디자인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하고 그것을 실행하기를 바란다.

 

질문하고 답변을 찾아가는 사고과정 자체가 공부의 핵심...

 

질문이 요구하는 답을 찾아 생각하며 독서하라. 그 흔적을 기록해가라.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질문하는 자에게 세상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 보여준다.

 

던져야 할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도 제대로 세워질 수 없다.

 

모든 질문의 첫 번째는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이후 질문의 방향을 밖으로 돌려야 한다.

 

할루시네이션 현상을 줄여가는 노력, 정확한 답을 얻어내는 확률을 높이는 기술이 바로 자료기반, 출처기반 질문이다.

 

GPTBard의 특성상 질문 자체에 사실에 기반한 정보가 많이 포함되어 있을수록 답변의 변수가 줄어든다.

 

GPTBard 질문법은...... ‘아는 힘너머 알아내는 능력을 세우기 위한 도구요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트리비움은 고대 그리스부터 1000년간 활용되어온 유럽 교육의 핵심 커리큘럼이다. 인간지능, 인지력을 세우는 단순하면서도 원리에 해당하는 프로세스다. 트리비움은 정보수용력을 키우며, 조직화와 논리력을 강화하고, 창조적인 표현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파인튜닝은 인공지능 모델을 특정 작업이나 주제에 맞게 조정, 업데이트하는 과정이다.

 

인간지능의 학습 과정은 인공지능의 파인튜닝 과정과 많은 면에서 유사하다.

 

모든 분야의 전문성은 트리비움의 역량, 훈련된 인간지능을 전제한다.

 

GPTBard가 우리의 생각을 돕는 도구가 되어야지 생각을 대신해주는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GPTBard의 오류 할루시네이션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 정교화 질문은 필수적이다.

 

생성하다를 의미하는 단어 ‘Generate’는 창조와 창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암묵지는 개인의 경험, 지각을 통해 축적된 지식으로, 말과 글의 형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반면 형식지는 체계화된 지식으로, 말과 글로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다.

 

배움이란 암묵지와 형식지 간의 균형을 유지하며 진행하는 자기계발 과정이다.

 

GPTBard 출현으로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인공지능의 진보로 인해 불안해하기보다 오늘을 초기값으로 해서 새로운 진보를 꿈꾸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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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스토리] 중에서 | 명언명구 2022-06-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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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시티와 노란 벽돌 길, 그러니까 갈망하는 운명으로 향해 나아가는 그 길은 온전히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스토리들'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모든 스토리가 똑같이 좋은 재료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하는 현실을 창조하고 갈망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길을 이으려면 '올바른 스토리'를 재료로 택해야 한다.

 

경이로운 진실, 그것은 바로 '스토리가 실제로 여러분의 인생이 된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의 셀프스토리는 현실이 되며, 셀프스토리는 계속 이어지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스토리는 자신이 무엇이 되어갈지,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려주는 강력한 예측 변수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한 스토리가 있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셀프스토리들이 전부 이롭지는 않다.

 

스스로에게 매번 들려줬던 스토리를 다른 스토리로 바꾸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조금 더 바람직한 스토리를 선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장담컨대 인생을 바꿀 수 있다.

 

... 일단은 우리 눈에 보이는 빙산은 거대한 빙산의 일부이듯이, 우리가 인식하는 스토리 역시 사실은 훨씬 더 큰 스토리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정보를 수집해서 '스토리 형태'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이 선하고 공정한지, 무엇이 책임 있는 행동인지, 무엇이 올바른 삶의 방식인지를 밝히는 단서를 평생수집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단 한 명의 청중과 공유한다.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의 스토리에는 역할이 있다. 이는 진화가 신중히 갈고닦은 역할로, 바로 우리를 '보호'하는 것, 나아가 종족을 보존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우리를 위험에서 보호하려는 스토리들이 우리에게 가능성을 빼앗는 경우가 많다...

 

옛날에는 셀프스토리를 통해 부족과 더 긴밀하게 연대해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 셀프스토리는 우리가 직면하는 간극을 메우는 작업, 예를 들어 승진을 하거나, 애인을 구하거나, 요금을 지불하는 일을 방해하기도 한다.

 

훌륭한 스토리를 들으면 정신이 납치당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스토리가 신경계를 장악해 우리의 뇌를 인질로 잡는 상태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쉽게 피할 수 없다. 훌륭한 스토리는 우리의 뇌를 낚아채서 놓아주지 않는다.

 

스토리는 뇌를 뒤집어엎고, 뇌에 완전히 스며드는 능력이 있다. 또한 스토리가 뇌를 완전히 포위하면 우리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토리는 생각을 현실로, 허구를 사실로, 미래를 현재로 바꿀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 뇌를 활성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기술을 '머릿속으로 연습'할 때도 실제로 그 기술을 연마할 때 발달하는 뇌 영역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가설이 입증되면서 시각화가 운동선수와 음악가의 뇌를 바꾼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신경학적 수준에서 뇌는 허구와 실화, 상상과 현실,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다른지 사실상 구분할 수 없다. 어떤 경우든 스토리는 '여러분의 뇌와 몸에서 실제 현상이 일어나도록' 만들 수 있다.

 

매혹적인 스토리는 우리 마음을 유혹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까지도 변화시킨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스토리...

 

우리 선조들은 위험과 위험 요소에 주의를 많이 기울일수록 더 오래 살 확률이 높았다.... 그 결과 우리는 과학자들이 '부정 편향'이라고 부르는 성향을 지니게 됐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충격적인 사건을 더 잘 기억하고 부정적인 일들을 더 자주 생각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또한 부정적인 경험에서 더 많이 배우고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더 강하다. 이런 경향성은 우리 스토리에도 영향을 미쳐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만든다.

 

우리 경험에는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다른 측면이 있다. 우리는 그런 측면에 서 있는 내면의 이야기꾼에 생기를 불어넣는 연습을 해야 한다.

 

"스토리는 뇌를 자극하고 우리가 살면서 행동하는 방식마저 바꾼다."

 

강렬한 스토리와 현실이 교차하면 '현실이 변화'한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스토리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든 바꾼다. 뇌에 스토리를 들려주면 뇌는 그 스토리를 실현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찾을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는 스토리가 되고, 우리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도록 이끈다.

 

여태껏 스스로에게 들려줬던 스토리들이 지금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해줬다. 만약, 다른 곳을 꿈꾼다면,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스토리를 바꿔야 한다. 내 안의 다른 스토리를 골라야 한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내면의 '스토리텔링 블랙 박스'를 거친다. 그렇게 블랙박스에서 스토리와 현실이 뒤섞인 후에야 우리는 행동하게 된다.

 

셀프스토리를 통제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셀프스토리가 우리에게 불리하면서도, 통제가 불가능한 특징들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셀프스토리는 태생적으로(진화도 한몫 거들었다) 잠재의식 수준에 존재하고, 쉽게 촉발하며, 자동적으로 작동하고, 또한 습관이다. 

 

셀프스토리를 무모하게 내버려두면 쥐가 차량 전선을 씹어 먹는 것처럼 인생의 도관, 행복과 통제감, 전반적인 인생의 성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만들 때까지 무의식은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할 것이고, 우리는 이를 운명이라 부를 것이다."  - 카를 융

 

스토리텔링은 신경에 내장된 기능이다. 대개 무의식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자기 강화적 과정인 스토리텔링을 우리는 계속 반복한다. 여러분의 뇌는 여러분이 내버려두는 한 스토리를 계속해서 반복 재생할 것이다. 또한 여느 습관과 마찬가지로 어떤 스토리를 많이 하면 할수록 신경에 깊이 새겨지고 더욱 자주 반복하게 된다. 스토리 습관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지금 있는 곳에 계속 붙잡아둘 수도 있다.

 

발목을 잡는 것은 행동이 아니다.

그 행동을 하기 전에 이미 스스로에게 말하는 숨은 스토리다.

우리는 같은 스토리를 반복하면서 같은 일을 하고 언제나처럼 같은 결과를 얻는다.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셀프스토리를 통제하는 것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다.

 

나쁜 셀프스토리 습관을 고치려면 '가로막을' 기회가 필요하다. 부정적인 셀프스토리를 발견했다면 멈춰 세워서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에메랄드 시티로 가는 길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어떤 스토리를 들려줄지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반응을 바꿀 수 있고, 그 반응이 결과를 바꾼다. 이를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인생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스토리를 바꾸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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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소년] 중 [소나기]에서 | 명언명구 2021-07-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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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가 가장 괴상하면서도 음침한 모양이 될 때는 비오는 날이었다. 다른 나무들이 즐겁게 숨 쉬고 몸을 펴며 푸르러진 녹색 잎을 자랑할 때 그 나무는 죽은 듯이 고독 속에 새까맣게 서 있었다.

/ 헤르만 헤세의 [소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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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부르는 지구 언어 / 매건 헤이즈 | 명언명구 2021-04-21 23:34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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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코타 (명사 스웨덴어) 1. 새벽에 자연으로 나가 첫 새소리를 듣는 것

일찍 일어난 새의 노랫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즐기는 '새벽 소풍"을 뜻하지만, 자연을 즐기는 마음을 포괄적으로 나타낸다.

 

스웬덴 사람들이 아침을 예코타로 시작한다면 황혼은 몽가타로 보낸다. 물 위에 길처럼 펼쳐지는 달그림자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몽가타는 왔다가 사라지는 자연의 신비가 자아내는 명상적 분위기와 동시에 스웨덴 사람들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에서 즐거움을 끌어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영어에는 애정을 담아 자연을 묘사하는 특이한 단어가 몇 가지 있다. 사이서리즘psithurism은 나무 사이로 속삭이는 바람 소리, 페트리커petrichor는 오랫동안 덥고 메마른 날씨가 계속되던 끝에 비가 내릴 때의 향긋한 흙냄새를 가리키는 명사이다. 네덜란드에는 바람 속을 상쾌하게 산책한다는 뜻의 동사 아위트바인이 있다. 캐나다에서는 이른 봄의 따스한 낮과 신선한 밤, 즉 단풍나무가 달콤한 수액을 만들어내기 딱 좋은 날씨를 가리킬 때 슈가웨더sugar-weather라는 매력적인 표현을 쓴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는 나뭇잎 사이로 아롱지는 햇빛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코모레비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막힌 경치와 청명한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는 황홀한 기분을 담은 아일랜드어 이브네스를 보면 우리 인간에게 최고의 연인은 바로 대자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휘게 (명사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1. 정서적 행복감을 불러일으키는 아늑하고 포근한 환경을 만들어내는 생활방식

 

단순히 '더 행복한 삶'뿐만이 아니라 그런 삶을 추구하는 방식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휘게이다.

 

프라스토르 (명사 러시아어) 1. 탁 트인 곳, 드넓은 공간, 광활함 2. 자유

드넓은 평야를 향한 갈망을 담은 프라스토르는 인간이 외적 풍경을 내적 풍경과 연결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프라스토르와 밀접하게 관련된 단어로 영혼 또는 기백을 가리키는 러시아어 두샤가 있다. 끝이 없는 인간의 영혼, 즉 두샤는 프라스토르에서 자신의 외적 반영을 발견하며 내부와 외부가 조화를 이루는 순간 깊은 감동이 찾아온다. 

신기하게도 두샤의 내적 광활함 덕분에 인간은 작은 공간에서도, 이를테면 훌륭한 책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프라스토르를 맛볼 수 있다. 좁다랗고 사방이 막힌 방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는 내면의 지평선을 넓히고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준다.

 

쿠치 (명사 웨일스어) 1. 벽장 또는 아늑한 공간 2. 껴안기 또는 포옹

쿠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연인, 친구, 가족 간의 낭만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에 두루 적용되는 단어이다.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와 깊이 관련되어 있기에 행복이나 안녕의 의미가 강하기도 하다.

 

투랑아와이와이 (명사 마오리어)

1. 발 디딜 권리가 있는 장소

2. 혈연관계와 혈통에 따라 거주와 소유의 권리가 있는 장소

 

투랑아와이와이는 사람의 토대, 다시 말해 지리적이든 문화적이든 개인이 가장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이 뿌리내렸다고 느끼는 장소를 말한다. 투랑아와이와이는 자신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느끼는 곳, 강력한 행복의 원천을 가리킨다.

... 바깥 풍경과 내면의 풍경이 긴밀히 연결되는 방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자신이 속한 땅은 삶을 정면으로 마주할 힘을 부여한다. 

스페인어 커렌시아 또한 고향에 있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힘과 의지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발타인잠카이트 (명사 독일어) 1 숲의 고독(숲에 홀로 있는 느낌)

발타인잠카이트는 울창한 숲의 고요한 그늘에 홀로 있다는 뜻이지만, 주로 낙관적인 삶의 고독을 가리킨다.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평온하고 정갈한 마음이다.

 

우분투 (명사 응구니 반투어) 1. 모든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됨

우분투 철학의 핵심은 공동체 전체에 이로운 것이어야만 개인에게도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휘넌 (동사 네덜란드어)

1. 남이 무언가를 갖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다

2. 다른 사람의 성공에서 만족감을 느끼다

 

... 휘넌은 받는 사람을 온종일 기분 좋게 만드는 친절을 가리킨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친절을 경험한 사람은 남에게도 친절을 베풀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한다.

 

라임 (동사 트리니다드 토바고 크리올어)

1. 친구와 음식과 술, 대화를 나누며 파티를 하거나 놀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라임은 기본적으로 사교 활동을 가리킨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시간에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섞고 재미를 한 스푼 넣은 칵테일과 같다.

라임의 어원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순히 라임 나무 아래 느긋하게 앉아 있는 것 외에 딱히 급한 일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이 정설이다.

 

페어슈테엔 (명사 독일어)

1. 이해 

2. 타인의 행동에 대한 깊은 공감, 또는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봄

 

페어슈테엔은 주어진 주제에 관해 타인이 왜 그런 의견을 품게 되었는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개념(공감과도 꽤 비슷하다) 이다. 사람들은 사이좋게 지낼 때 가장 행복하고, 그러려면 진정으로 더 깊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멜마스티아 (명사 파슈토어)

1. 대가를 전혀 바라지 않고, 인종과 종교, 경제적 지위도 따지지 않고 모든 손님에게 보이는 호의와 깊은 경의 

 

이런 삶의 방식은 파슈툰왈리라고 불리며, 파슈툰족은 오늘날에도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을 일러주는 이 관습을 따른다. 여기에는 정의, 자존감, 관용 같은 덕목뿐 아니라 복수(파슈툰왈리의 어두운 면에도 속한다)도 포함된다. 이 규범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특징은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차별하지 않고 넉넉한 환대를 베푸는 관습인 멜마스티아이다.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할 뿐 아니라 보호가 필요한 사람, 예를 들어 적을 피해 도망친 사람을 보호하는 이 관습은 파슈툰족에게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

 

칸이닌파 (동사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어(핀투핀족) 1. 안다 잡아주다

 

핀투핀족의 가치관이 깊이 뿌리내린 칸이닌파는 여러 맥락에서 다양하게 쓰인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의미는 '안는' 사람과 '안기는'사람 사이의 존중과 친밀함이라는 섬세한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실제로 칸이닌파는 전 세계 거의 모든 공동체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두 극단, 즉 개인의 독림과 집단의 소속감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의 균형을 가리킨다.

 

파삼 (명사 타밀어) 1. 애정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깊은 관계이다. 깊은 애정으로 묶인 관계를 뜻하는 타밀어 파삼은 산스크리트어로 '밧줄'을 뜻하는 파삼에서 유래되었다.

시바파(주로 이도 서부에서 널리 믿는 힌두교 종파)는 모든 영혼이 파삼으로 묶여있고, 모든 영혼과 그들을 묶는 강력한 힘인 파삼은 삼위일체를 이루는 위대한 존재 파티가 관장한다고 가르친다.

 

우니카까티기니크 (명사 이누이트어(이눅티툿)

1. 이야기가 지닌 힘, 공동체 삶에서 이야기의 역할

 

행복한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고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 특징을 잡기 어렵고 말로 콕 집어낼 수 없는 정신적 태도일 때가 많다. 그런 유대감은 다름 아닌 언어, 즉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된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울고 웃고 심지어 강한 의욕을 보이는 것이 바로 우니카까티기니크의 힘이다.

 

시수 (명사 핀란드어) 1. 의지력, 용기, 뚝심

시수에는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일지라도 용기를 가지고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

... 그러므로 시수는 위기의 순간에 종종 발휘되는 의지력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지력은 외부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끌어올리는 것이다. 

 

혹독한 겨울이 온다 해도 자기 안에서 변치 않는 여름을 찾을 수 있다. - 알베르 카뮈

 

이키가이 (명사 일본어) 1. 존재의 이유, 살아가는 목표와 보람

... '아침에 눈을 뜰 이유'라는 뜻의 일본어...

이것은 '삶' 또는 '살아 있음'을 뜻하는 이키와 '바라던 일의 실현'이라는 뜻을 가진 가이의 합성어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이키가이를 찾아내려면 영혼을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프랑스어 레종 데트르(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와 비슷한 점이 많은 이키가이는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이상적인 목표, 다시 말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싶어지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를 강조한다.

 

헝가리에서는 삶에 치이고 시달리는 기분이 들 때 "우지 셉 아즈 엘렛 하 자일릭"이라고 말한다. "계속되고 있다면 삶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의미다. 이것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아일랜드 사람은 "이스 마 언 스케일이 언 암시르"라는 말로 격려해줄지도 모른다. "시간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라는 뜻의 이 속담은 지나고 나면 상황이 이해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아란자르시 (재귀동사 이탈리아어) 1. 임기응변하다. 자신의 재주로 헤쳐나가다 

 

흔히 쓰이는 라르트 디 아란자르시, 즉 '임기응변의 기술'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제한된 수단만 가지고도 성공하는 기술과 창의성을 가리킨다.

포르투갈어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 데젠라스칸소문제에 대한 절묘한 해결책을 찾아냄으로써 까다로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능력을 가리킨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 (명사 영어) 1. 다행스럽거나 기분 좋은 뜻밖의 우연 

 

...이렇게 운 좋은 손간은 신비로울 정도로 좋은 우연의 일치를 가리키는 세렌데페테에 속한다. 여기에는 어떤 일은 운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어쩌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줬는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담겨 있다. 

자기 운명은 자기 손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양문화권에서 세렌디피티는 꼭 나쁜 일이 아니더라도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다디리 (명사 오스트레일리아 냥이쿠룽쿠르족어)

1. 깊이 듣기, 자연에서 자신의 자리에 대해 겸허하게 사색하기 

 

'사색' 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만 단순한 명상적 사고 이상의 뜻을 담고 있다. 더 정확히 해석하면 '내면 깊이 귀 기울이기'나 '조용하고 차분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 또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느끼는 자연의 속삭임에 영적 파장을 맞추는 행위이기도 하다. 

다디리는 생산적 사고라기보다는 매우 겸손하고 수용적인 태도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에 가깝다. 

 

케피 (명사 그리스어) 1. 들뜬 기분, 즐거움, 활력, 삶에 대한 사랑

 

그리스인에게 케피의 핵심은 상황이 어려울 때도 긍정적이고 기쁨이 넘치는 순간을 소중하게 즐긴다는 것이다.

 

윔지 WHIMSY (명사 영어) 1. 장난스럽게 하는 별나거나 기발한 행동 또는 농담

 

윔지컬하다는 것은 가볍고 자유분방하면서 좀 터무니없는 구석이 있다는 뜻으로 매우 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형용사다.

윔지에는 기본적으로 변덕스럽고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묻어 있다.

진지한 삶에 맞서 가벼운 재미를 더하기 위해 가끔은 현실 도피적이고 터무니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윔지컬한 여유를 즐기자.

 

주옌 펀 (명사 베트남어) 1. (운명적으로 이어진) 인연, 연분

 

베트남에서는 다른 사람의 영혼과 운명적으로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옌 펀이라고 부른다.

주옌 펀은 인생에서 가장 고양되고, 환희에 차고, 영적인 경험을 통해 소중한 사람을 만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아 드 비브르 (명사 프랑스어) 1. 삶을 풍부하게 즐김

 

환희로 가득한 삶을 살고자 하는 프랑스인들의 욕구는 말 그대로 '삶의 즐거움'이라고 해석되는 주아 드 비브르라고 불린다. 

영어권에서도 즐겨 쓰는 이 표현이 더없이 프랑스적인 이유는 삶의 목적이 항상 현실적인 것은 아니며 열정을 따라갈 수도 있다는 인식에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아 드 비브르란 손 놓고 기다리는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인생에서 즐거움을 경험하고 음미하는 것은 적극적 행위이지 소극적 기다림이 아니다.

 

라곰 (형용사 스웨덴어) 1. 딱 알맞은, 적당한 

 

어떤 종류의 경험에도 딱 맞는 양이 정해져 있으니 그것을 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절제와 빈틈없는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은 스웨덴에서 자주 쓰이는 라곰 에르 베스트라는 표현에 잘 담겨 있다. 말 그대로 '딱 알맞은 양이 가장 좋다'라는 뜻이지만, 절제가 곧 미덕이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한다.

라곰은 극단보다 적당함을, 광적인 축적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행복을 선택하는 삶의 방식이다.

 

아요르나맛 (숙어 이누이트어(이눅티툿))

1. 어쩔 수 없거나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일을 차분하게 받아들임

 

아주 작은 사고부터 극단적인 비극에 이르기까지 아요르나맛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쓸데없이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아요르나맛은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원주민 문화에서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존중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리킨다. 

 

우웨이 無爲 (명사 중국어) 1. 힘을 들이지 않음. 자연이 순리대로 흐르도록 놓아둠 

 

케이프 (명사 터키어) 1. 여유롭고 평안하며 기분이 좋은 상태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여유를 즐기는 시간...

이스탄불에서 케이프는 대체로 조용하고 기쁨에 찬 휴식의 미학, 완전히 몰두한 평화로운 만족감을 가리킨다.

터키식 케이프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든 활동을 멈추고 과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이 바로 지금 이곳을 즐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브레메사 (명사 스페인어)

1. 식사를 마친 뒤 식탁에 둘러앉은 채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

 

한낮의 식사(사실은 2~3시에 시작한다)를 중시하는 지중해식 관습은 두세 시간 계속되기도 하고, 저녁에 일터로 돌아가기 전까지 낮잠(시에스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저녁은 밤 10시나 되어야 먹게 되므로 점심에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한다. 

뜨거운 오후 햇살을 제외하고 스페인의 식사가 길어지는 원인 중 하나가 소브레메사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식사가 끝난 직후 식탁에 앉은 채 소화도 시킬 겸 느긋하게 수다를 떨며 보내는 시간을 가리킨다. 

 

초초그 (명사, 형용사 자바어)

1. 조화를 이룸

2. 부부가 됨

3. 알맞은

 

전통적으로 자연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바 사람들은 조화를 중요시한다. 이러한 자세는 초초그라는 단어에 잘 담겨 있다. 무언가 '딱 알맞아서' 완벽히 어우러지는 것을 초초그라고 하며, 상황이 초초그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이 단어는 음식이 맛있거나 약이 잘 듣는 등 만족스러운 상황에서 두루 쓰인다. 

이렇게 어울림을 중시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일 것이다.

 

유카타스트로피eucatastrophe (영어)

1. 이야기가 지닌 특수한 초능력, 행복한 결말을 제공하는 힘

 

이야기 속에서 일련의 사건이 신속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소되는 것을 뜻하며, 일반적으로는 해피엔딩, 즉 행복한 결말이라고 불린다.

이 단어는 최고의 이야기꾼J.R.R. 톨킨이 그리스어 에우eu('좋은' 또는 '잘')와 카타스트로페katastrophe('전복' 또는 '급격한 전환')를 합쳐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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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 / 제시 베링 [밑줄긋기] | 명언명구 2021-02-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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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이상적인 삶의 환경이 사실은 자살 위험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행복의 기준을 얼토당토않게 높이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이 되면 특권을 누리며 산 이들(사회의 눈으로 볼 때 성공한 사람들이) 실패에 더 적응하지 못한다.

 

-자살 성향자라고 다 격하게 화내거나 극도로 불안정하지 않다. 심지어 겉보기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DSM-5]는 자살을 이렇게 정의 한다. <치명적 결과에 대한 지식이나 기대를 갖고 의도적으로 시작하고 실행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행위>

 

-부정적인 자기 평가, 자기 비하, 수치심과 죄책감과 무력감 같은 감정을 낳는 자신을 반추하는 능력이 정신질환자를 자살 위험에 처하게 한다. 

 

-...자신의 망상이 망상임을 아는 환자들이 자살 위험이 높다...

 

-"목을 베면서 동시에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상태가 전형적인 자살 상태이며, 행위의 양면 모두 진짜다." 죽기를 원하면서도 구제되고 싶은 양가감정은 자살자의 절망을 강하게 만든다.

 

-내가 보기에 가장 큰 모순 하나는, 자살하려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상황에서만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누구보다도 삶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다만 이 삶만 아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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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자신을 탓하기

-여기 아이러니가 있다. 어릴 때부터 침울한 성격이라 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실제로 자살 방지 완충제를 구비한 셈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한편 나머지 사람들도 비슷하게 낮춰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타입을 안다. 염세주의자들. 

대조적으로 자살성향자는 자신을 미워하지만, 남들을 아주 좋게 보고 자기만 나쁘게 보는 허상에 시달린다. 2장에서 봤듯이 자살 충동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판단을 못견디는 것이다. 

 

-자아상은 태생적으로 삐딱하다. 대부분 자신을 남들이 보는 것보다 육체적으로 매력있고 똑똑하고, 호감가고 재미있다고 본다. 하지만 앞 장에서 봤듯이 우울증은 이런 자기 이미지를 더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든다. 

우울증이 사회의 거부 신호에 더 예민해지게 하므로, 타인들이 내 단점에 더 많이 신경 쓴다고 느낀다. 물론 타인들에게 평가 받는 때가 많다. 다만 타인들은 내 짐작만큼 내 결점과 단점에 관심 없다. 그들 역시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걱정하느라 바쁘니까. 그럼에도 피치 못할 실패나 큰 과실이 우울감이 키운 '타인이 날 낮게 평가한다'는 의식과 맞물리면 위태로워진다.

늘 연약한 거울 자아, 즉 무가치, 수치, 죄책감, 자격지심이나 수모당하고 노출되고 거부당한다는 감정이 반영된 이미지는 자살성향자를 자기혐오에 빠지게 한다. 자신이 세상에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

 

-사실이 아니지만, 자살자들은 자기 사정이 극히 견디기 힘들다고 느낀다. 역사상 아무도 이런 이례적인 괴물을 견딘 적이 없었을 거라고.

 

3단계 고도의 자기의식

-로이의 이론에서 핵심은, 자살은 불쾌하게 예리한 자기의식을 피하려는 욕구에 자극된다는 개념이다. 자기파괴적인 정신상태에 빠지면 자기본위가 되고 다른 사람들은 극히 멀어 보인다. 이것은 흔히 나르시시스트가 연상되는 헛된 자기 중심성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단점에 부득이 몰입하는 것이다. 즉 자신을 개인 기준과 계속 비교한 결과, 의식이 자신을 속속들이 잠식해 무척 고통스럽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자신이 얼마나 경멸스러운지, 밉상이거나 쓸모없는지만 생각한다면 의식은 몹시 괴로울 수밖에 없다. 

 

-진짜 유서에는 '나는' '나를' 같은 1인칭 단수 대명사가 많다. 심리언어학자들은 이것이 고도의 자기의식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또 사형수 같은 비자발적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유서와는 달리, 자살자들은 유서에서 '우리를' '우리는' 같은 포괄적인 어휘를 쓰지 않는다.

 

5단계 인지의 붕괴

-한 연구에서 대조군과 비교할 때 자살 성향 피조사자들은 실험을 위해 두었던 시간 간격의 흐름을 과하게 느리게 느꼈다.

 

-로이는 이런 일시적인 모면 방식을 과거의 실패와 괴롭고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방어기제로 본다. 삶이 '천천히 한 방울씩 떨어지는' 현재의 달콤함 속에 숨는 것이다. 이 무의미한 순간에 젖어 생각을 해체한 결과, 이전 단계의 부정 감정은 어느 정도 완화된다. 자살 전에 감정 격발이나 분노에 휩싸일 것 같지만, 오히려 권태롭고... 무덤덤한 맥 풀린 상태인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진짜 유서에서 긍정 감정이 발견되기도 해서 사람들은 놀란다. 로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살을 준비할 때 마침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지요. 미래는 없다고 결정을 내렸으니까. 과거 역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요. 거의 끝났고 더는 슬픔이나 근심, 불안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임박한 죽음이 정신을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도록 도와줄 겁니다."

 

6단계 탈억제 

-미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2014년 총기에 의한 자살은 총 2만 1,334건, 살인사건은 1만 945건이라고 발표했다.

 

-정상일 때는 고통의 숨은 의미를 찾는 생각이나 영적인 생각을 낳는 추상적 사고를 한다. 그런데 자살 앞에서는 이런 사고가 놀랍도록 사라진다. 슈나이드먼은 "자살학에서 가장 위험한 어휘는 네 글자로 된 단어 (FUCK)뿐이다"라고 말했다. 달리 말해 자살 의향자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는다. 상황이 흑백이 되었고, 은유적 미묘함 따윈 없이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없다.

 

-자살하려면 자살 욕망과 함께 '자살을 위한 후천적 능력'이 필요하다.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적고 신체 고통을 참는 힘이 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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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8월 메릴린 먼로 자살 추정 사망으로 같은 달 자살률이 평균치보다 12퍼센트 상승했다.

 

-자살전염은 아니더라도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교통사고 이후 상당한 통계가 나타났다. 다은 달에 남녀 공히 자살률이 치솟았지만 여성의 경우 34퍼센트 증가했다.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가공의 자살 보다 현실의 자살에 더 공감한다..... 그렇다고 해나 베이커나 괴테의 베르테르 같은 자살이 모방 자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확실히 그럴 수 있으나 전반적인 효과가 덜하다는 뜻이다. 

 

-자살 전염 증거에 '완수된' 자살만이 아니라 '시도된' 자살 비율을 포함하여 본다면, 언론의 자살 보도가 모방을 유도하는 것은 분명하다. 달리 말해 자살 보도가 늘 실제 자살을 증가시키지는 않지만, 자살 행위를 크게 증가시킨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하는 대한민국에서 (2015년 인구 10만 명 중 24.1명) 동반자살은 전체 자살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 한다.

 

-오스트리아의 자살학자 토마스 니데르크로텐탈러는 2010년 [영국정신 의학 저널]에서 미디어(소셜미디어든 다른 종류든)가 자살 방지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파파게노 효과"로 명명했다. 베르테르 효과와 정반대로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정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사랑에 번민하는 파파게노는 자살하려다가 만류하는 세 소년 정령들에게 설득 당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종교와 자살의 관계는 복잡하다. 사후에 대한 믿음이 자살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와 아니라는 증거가 다 있다. 통계는 종교가 자살 방지 완충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연이은 연구에서 신자들은 비신자들보다 자살할 확률이나 자살할 생각이 현저히 낮았다.

 

-성서에 자살에 대한 뚜렷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몇몇 명석한 신학자들은 이 독특한 빈자리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1637년 스코틀랜드 출신 존 심이라는 열렬한 칼뱅파 사제는, "인간은 본래 자기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기에 자살은 너무도 끔찍한 일인지라, 그 행위 자체를 불가능하다고 봤는지 금지하는 법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드물게 성서 속 인물이 목숨을 끊는 경우 그런 짓을 했다고 심판받은 흔적은 없다. 예를 들면 유다(수치심과 예수를 배반한 후회로), 사울 왕(적에게 잡혀 강제로 다른 신을 섬기는 꼴을 피하려고), 삼손(그 과정에서 복수하느라 피리스티아 인들을 죽인) 등인데, 오히려 그들의 자살은 담담하게 묘사되고 죽는 방법은 일화의 교훈과 무관한 듯하다.

 

-5세기 초 아우구스티누스.. 그는 성서에 나온 제 6계명, 즉 '살인하지 말라'를 지목해 살인 대상에 타인만이 아니라 본인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1485년 자살 담론이 가열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대전]에서 이 문제를 논했고, 이 책이 출판되면서 교회의 엄격한 자살 무관용 주의가 신앙의 상징이 되었다.

 

-영국에서 자살자의 재산은 왕에게 귀속되었다. 하지만 아퀴나스 시대에도 검시관이 non compos mentis(정신 이상) 상태라는 지옥 탈출 진단서를 주면 이 수모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1487년에서 1660년까지 자살자들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이 기간에 총 1.6퍼센트만 '논 콤포스 멘티스'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는 '펠로 데 세'(자살)였다.

 

-할라카(유대교 율법서)는 자살한 유대인은 유대식으로 매장할 자격이 없다고 규정한다.

 

-유대교와 기독교 경전들처럼 코란에 자살과 관련된 명료한 설명은 없지만, "불 켜진 초는 날이 밝을 때까지 타야 한다" 같은 시적인 암시가 나온다.

 

-전반적으로 종교는 자살을 방지한다. 부인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구멍이 있다. 그것도 큼직한 구멍이. 몇몇 연구 결과를 보면, 신자들은 종교적 부담, 예를 들면 너무 큰 죄를 지어 용서받을 수 없다고 믿는 것 때문에 또래 비신자들보다 더 많이 자살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스토아 학파는 자살을 진보된 사상가의 빼어난 행위로 보았다. 세네카는 [줄에서 떨어질 적절한 때에 관하여]라는 담담한 제목의 글에서 "현자는 살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산다"라고 썼다.

 

-1500년 이상 지나 프라니우스는 자살이 '최상의 혜택'이며 신들도 해내지 못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대조적으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 주제에 반감을 가졌던 듯, 자살이 인간을 동물 밑에 놓는 유일한 행위라고 말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기원전 20년 경 로마의 역사가, 도덕주의자)의 [기념할 만한 업적과 기록]에 나오는 구절... 마실리아인들(현 남프랑스 지역의 1세기 당시 주민들)이 완벽한 정신으로 생을 마감는 관습을 묘사... 아직 건강이 양호한 연로자들은 원로원에 생을 마감할 수 있는 허가를 요청해 황폐한 노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주로 독미나리가 혼합된 독극물이 주어졌다. 이 경우가 아니면 유의해서 보관하는 약물이었다.

 

-수많은 연구가 사회의 자살 수용과 자살률의 상관 관계를 파헤쳤다. 즉 신앙을 감안하더라도 자살을 개인의 권리나 선택으로 지지하는 국가에서 자살을 용납하지 않는 국가들보다 연간 자살 건수가 더 많다.

 

-수십 년 전 선동적인 반 정신의학자 토머스 사즈는 저서 [정신병의 신화]에서 자살 방지에, 혹은 자살하려는 이들을 강제 입원시켜 간섭하는 미국 전통에 반대하는 주장을 했다. 자살이 나쁘고 충동적인 결정이라 해도 "근본적으로 옳다"고 사즈는 말했다. 또 상담하고 오류를 깨닫게 도울 뿐, 우리의 의지를 자살하려는 이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즈는 1986년 [미국 심리학자]에 게재한 글에 이렇게 썼다. "'자살 방지'라는 표현 자체가 치료 만능 시대의 착오적인 표어다(...) 방지라는 표현은 특히 자살과 짝지어지면 강압을 의미한다."

 

-도덕론자라면 자살을 본래 잘못으로 인식해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한다고 느낀다. 자유론자는 정반대다. 사람은 살아야 할 사회적 의무가 없으며, 자유의사를 가진 인간으로서 선택지를 가늠해서 죽기로 결정한 사람을 강제로 살게 해선 안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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