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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단편들 탈고)
새로운 날(부제: Zeitgeist / Salik) [탈고본] 6 (완결) | 짧은 이야기 (단편들 탈고) 2022-08-2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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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브릴은 새벽녘까지 자밀라와 무자히드를 가둬 둔 막사 앞에서 서성이다가 다른 대원들에게 무자히드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고 말하고는 어렵사리 막사에 들어갔다. 밧줄에 묶여 쓰러져 있던 자밀라와 무자히드는 진이 빠진 듯 지친 기색은 역력했지만 맑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브릴은 상의 안쪽에서 숨겨온 가죽 부대를 꺼내 부대 안에 물을 자밀라부터 목을 축이게 하고는 무자히드에게 마시게 가죽 부대를 기울여 주었다.

 

우린 살 수 없을 거야! 너도 알지!”

 

자밀라의 말에 지브릴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주변은 온통 IZ 대원들의 참호와 막사가 깔려 있다. 이젠 대원들 대다수가 살상을 위해 훈련된 전사들이었기에 이들을 따돌리고 도망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밀라,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 마지막으로 우리를 기억해 줄 이의 얼굴을 보고 죽으니 다행이야. 고마워! 지브릴.”

 

무자히드는 고맙다고 말했다. 무엇이 고마울까? 그들을 구할 수도 없고 자밀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 고맙다는 말은 마치 저주만 같았다. 죽음을 앞둔 이들 심정 같을 수는 없겠지만 지브릴은 지금 지옥을 걷는 듯했다.

 

 

지브릴은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여느 때와 같은 일정이 지나가고 정오 기도를 하고 나서 나씨르가 대원들을 소집했다. 배도자들을 처형하기 좋을만한 사막 한가운데서 대원들은 도열하고 섰다.

 

바로 지금 지하드를 저버리고 알라의 뜻을 배반한 배도자 둘을 참수할 것이다. 형집행은 우마르와 지브릴이 맡는다.”

왜 접니까?”

 

지브릴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럼 누군가 다른 전사가 처형하면 다르다는 말인가?”

 

나씨르 보다도 우마르가 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면서 우마르는 눈 빼고는 얼굴을 모두 가리는 복면을 착용했다. 지브릴은 넋 나간 듯 그를 따라 복면을 썼다.

 

대원들이 트럭에서 자밀라와 무자히드를 끌어내리더니 대원들이 도열한 곳으로 끌고 왔다. 자밀라는 이미 복면을 한 지브릴을 알아본 것 같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희에게는 말할 자격도 없겠으나 마지막 말을 남길 기회를 주겠다. 너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냐?”

 

나씨르가 무자히드부터 유언을 남길 기회를 주었다.

 

이슬람의 시대정신 그것이 나를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죽음으로써 자유로워질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서 더욱 홀가분해 보이는 무자히드는 죽음으로서 자유로워지겠다는 말도 안 될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빛나는 눈을 볼 때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아 보였다.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나씨르가 자밀라에게도 물었다.

 

자밀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고는 말했다.

 

나는 늘 새로운 날을 꿈꿨어.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더이상 새로운 날이 없을 거란 걸 알았어. 그래서 난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자유로워질 기회라고 생각해. 너희를 원망하지 않아. 너희는 그냥 호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일 뿐이니까. 언젠가 너희도 자유로워질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럴 거야, 반드시!”

 

우마르가 무자히드의 뒤에서 그의 목에 칼을 꽂았다. 지브릴은 고개를 돌렸다. 슬겅슬겅 살과 뼈가 썰리는 소리가 들리고 무지히드의 고통에 찬 신음이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새어 나왔다.

 

지브릴은 두렵고 서럽고 참담했다.

 

뭐하는 거야?”

 

지브릴이 망설이고 있자 우마르가 재촉했다.

넋이 나간 지브릴의 귓가로 자밀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브릴, 망설이지 마! 그럼 내게 고통만 더해질 거야. 고통 없게 보내줘! 나를.”

 

 

이제 결전만이 남았다. 오늘의 공격으로 아탈라의 탈환이 임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 적들에게 타격을 주고 동요하게 할 폭탄 테러가 있어야 한다. 이번 테러는 아탈라 도심 내부까지 침투해 번화가에서 폭파해야 한다. ! 누가 지원하겠느냐?”

 

아부바르크가 연설하는 사이 어느새 들어왔는지 라일라와 모나가 나섰다.

 

저희가 지원하겠습니다.”

 

아부바르크가 순간 당황한 듯 눈썹을 치켜올리다가 그들을 다시 자세히 보았다.

 

너희가 말이냐?”

저희 남편도 지하드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이제 저희도 지하드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IZ의 대원들이 아탈라 도심 한복판까지 가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미망인들이 차도르 안에 폭탄 재킷을 입고 침투한다면 도심 한복판까지 진입하는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아부바르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바로 승낙했다.

 

너희 검은 미망인들이 남편의 유지를 받들고 지하드에서 한 역할을 하겠다니 갸륵하구나. 너희와 너희의 남편 그리고 너희의 가문 모두에 영광이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침투하여 아탈라 도심에서 폭탄 테러를 성공시키면 전 부대가 정부군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소식이 들려오자 아부바르크는 상당히 애석해 했다.

 

쓸모없는 것들. 여자란 것들은 정말이지 제대로 하는 것이 없구나.”

 

정찰병은 라일라와 모나가 번화가에 못 미쳐 자그마한 폐가에서 자살 폭탄 재킷의 스위치를 잘못 누른 듯 폭파되어 죽었다고 전했다. 그녀들은 실수로 자유로워진 것일까?

 

 

전 부대원은 지프차와 트럭을 타고 아탈라의 진입로 인근으로 향했다.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하룬이 조용하고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지브릴에게 말했다.

 

이 전투는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미국에서 온 신참 하나가 그러는데 미국방성과 정보부가 우리 훈련소 위치들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군.”

그런데도 폭격을 안 한다는 거야?”

미국 뉴스에서는 전략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고 한다는데 전략적으로 적의 유닛 생산시설을 그대로 둔 채 생산해내는 유닛들만 상대한다는 게 제정신으로 할 전략도 전술도 아니지.”

그럼 왜 미군이 정부군과 함께 우리에게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않고 우리를 섬멸하려 하지 않는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이것들은 이 전쟁이 장기화가 되기를 노리고 있는 거야. 이 전쟁이 장기화가 될수록 중동지역과 중앙아시아에서 보호의 명분으로 지들 입지를 높이고 지들 나라 내에서 군사비용을 확대하고 그러면서도 지네 국민으로부터 저항을 받지 않을 테니까. 또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내정에도 간섭하면서 원유를 제어할 수 있으니까.”

정말 진저리나도록 악마다운 나라구나.”

이 전투는 짜고 두는 체스판 같은 거야. 체스를 두는 놈들이 원하는 대로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게임 말이야.”

 

저 멀리 정부군과 그들의 장갑차들이 보였다. IZ 대원들이 진격하자 모래바람이 스쳐 갔다. 모래바람이 그치니 그 많던 정부군이 모두 사라지고 장갑차 두 대만 덩그러니 보였다. 모두 가까이 다가가서는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이 겁쟁이 녀석들. 죽음이 두렵다고 장갑차들과 소총, 탄창, 화염방사기, 대전차 직사화기와 탄환들을 모조리 두고 도망간 거야?”

우리는 알라의 전사들이니 저들은 명분도 없고 두려움밖에는 일지 않았겠지.”

 

 

태양은 여느 날처럼 다시 떠올랐다. 이른 새벽 지브릴도 여느 날처럼 다른 IZ 대원들과 함께 도열하고 서서 지도자의 연설을 들었다.

 

우리는 이제 알라의 뜻과 지하드 전사들의 용맹과 병기까지 모두 갖추었다. 더는 우리를 막을 그 무엇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전면전을 벌이는 동안 아탈라 내부에서 적들을 혼란에 빠뜨릴 폭발이 더 있어야 한다. 누가 지원하겠느냐?”

 

그래, 또 이런 기회가 있을 줄 알았어!’

 

지브릴은 아부바르크의 물음에 바로 지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지브릴은 아탈라 도심을 걷고 있었다. 그가 입은 토브 아래로는 폭탄 재킷이 있었다. 그는 차분히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라일라와 모나가 쓸모없는 것들이라 빈 폐가에서 자폭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은 무자히드처럼 자밀라처럼 자유를 향한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이 그들보다는 자유로웠을 뿐... 아니 그들도 자밀라도 무자히드도 결코 자유롭게 자유를 찾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이슬람의 시대정신이 그들에게 자유를 향할 수밖에 없는 압박을 더한 것일 테니 말이다.

 

지브릴은 이슬람의 시대정신 IZ 전사들이 나타나자 모든 중화기를 버려두고 정부군이 도망간 그 순간 알아버렸다. 하룬의 말이 맞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이 시대는 모두가 짜고 두는 체스 같은 것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이미 모두 결정 나 있는 것이다. 저항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이 그렇게.

지브릴은 공터가 보이자 그곳 중앙으로 가 자신의 토브를 툭툭 털고 앉았다. 지브릴은 자밀라가 새로운 날을 찾아 떠나자던 그날을 떠올렸다. 하지만 자밀라도 깨달았을 것이다. 더는 새로운 날이 없으리라는 것을. 이곳을 완전히 떠나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찾을 기회이다.

 

그래, 고통 없게 가자!”

 

공터에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솟구쳤다. 그렇게 지브릴은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카림처럼 라니아처럼 라일라처럼 모나처럼 무자히드처럼 자밀라처럼. 그렇게 이 시대의 누구나가 꿈꾸는 자유를 향해 날아올랐다.

 

< >

 
 
처음에 이 단편소설을 구상할 때는
단편이 아니라 장편으로 또는 희곡으로 쓸까도 고려했던 이야기 입니다.
짧게라도 이야기들을 완결 지어보고자 썼던 작년의 활동에서
탄생한 이야기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다시 탈고를 하면서 새삼 느끼기에는 
한 지역의 시대상황으로 이 시대의 상황과 대중이 느낄 내적 동요들을
잘 녹여냈구나 하는 자기감상이 일었습니다. 
 
묘사나 기교는 미흡하지만 
이 단편소설을 통해 내적 동요가 이셨다는 분들이 계시다면 
나름의 보람을 느낄 것만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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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날(부제: Zeitgeist / Salik) [탈고본] 5 | 짧은 이야기 (단편들 탈고) 2022-08-2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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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폭탄 테러를 할 것이다. 누가 이 성전(지하드)을 위해 용맹히 산화하겠느냐? 지원자는 나서 거라.”

 

자살폭탄 테러를 계획한 아부바르크의 물음에 서로 눈치를 보며 잠시 머뭇거렸으나 금세 지원자들이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라일라의 남편 이스마일과 모나의 남편 무스타파가 나섰다. 그 외의 지원자들도 나서려 했으나 그보다 앞서 아부바르크가 그들에게 말했다.

 

그래, 너희 둘이 가거라. 너희에게 각자 72알의 흰 건포도가 주어질 것이다.”

 

72알의 흰 건포도는 무슬림 전사가 용맹히 전사하였을 때 무슬림들의 천국에서 주어지는 72명의 처녀를 의미했다. 그것은 죽음을 달갑게 맞이하라는 부추김 같은 그런 말이었다. 결혼을 한지 이틀 만에 이스마일과 무스타파는 자살폭탄 테러를 위해 아탈라로 떠나 사망했고 라일라와 모나는 미망인이 되었다.

 

와합 마을의 주변 사막은 온통 IZ의 훈련소가 되었다. 아부바르크가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지하드에 뛰어들어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지하드 전사가 되기를 촉구하는 동영상을 촬영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정말 말 그대로 전 세계 각지에서 무슬림 청년들이 와합 마을로 찾아들었다.

 

! ! 단도를 그 높이로 찌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혈관을 절단하는 거야.”

 

영국에서 온 SAS 출신 전사인 파델이 신참들에게 근접전을 가르치고 있다. 무자히드도 그 가르침을 받고 있었지만 지브릴은 요즘 들어 무자히드가 어떠한 표정이라도 얼굴에 드러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밀라와 신혼이었는데도 전혀 행복이 무언지 모르는 것만 같았다. 지브릴은 그를 보며 원망과 시샘을 가질 틈을 찾지 못했다. 지브릴과 함께 IZ 대원으로 자원해 이슬람의 시대정신을 거치는 이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하나둘 행복을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후가 되자 신참들과 기존 전사들 중 결혼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결혼식이 있었다. 미망인들도 참가하라는 말을 듣고 라일라와 모나 역시 찾아왔다.

 

라일라는 모나가 라일라의 차도르 소매자락을 끌어당기는데도 불구하고 아부바르크에게 물었다.

 

지도자님, 저희는 미망인이 된지 이제 3일이 됐을 뿐이에요. 죽은 남편을 애도할 시간도 없는 건가요?”

애도는 필요 없다. 그들은 이미 천국에서 천국에서의 삶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너희는 무슬림으로서 지하드를 다하며 죽어갈 전사들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위로하고 그들의 노고에 보답하면 될 뿐이다.”

 

망설여지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꺼냈던 라일라 덕분에 라일라와 모나 둘 다 자신들의 처지를 선명히 알게 되었다. ‘이 시절에 태어난 우리는 그저 소모품일 뿐이구나라일라도 모나도 그리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 저항 없이 라일라는 기존의 전사 하싼과 모나는 신참인 하림과 짝지어졌다.

 

하싼은 라일라가 무표정한 걸 보고도 이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게 된 것이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대개의 신참과 기존의 전사들 중 이번 결혼에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하싼 만큼 흡족해하는 사람도 흔치는 않았을 것이다.

 

전사들은 아탈라의 근교까지 진격해 들어갔다. 하지만 정부군이 줄행랑을 칠뿐 전사자는 한 명이라도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루하루가 가면 갈수록 지하드에 지원하는 유럽과 미국,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지원자들이 넘쳐나게 들어왔다. 동아시아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까지 청소년 한 명이 지원해 왔을 정도다. 심지어 유럽과 미국에서도 중앙아시아에서도 소녀들이 전사들을 위한 아내가 되어 헌신하겠노라며 지원해 오는 경우들도 허다해졌다. 모두가 이슬람의 시대정신에 열광했다.

 

와합 마을을 시찰하면 이젠 거리를 메운 모든 남성이 검은색 전사들이었고 모든 여성은 차도르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전사가 아니면 전사의 아내들이 되고자 태어난 사람들인 양 그리 믿고 와합 마을로 모여든 것이다.

 

마을 소년 하싼이 거리를 지나다 차도르를 걸친 라일라와 마주쳤다.

 

라일라 굉장히 오랜만에 외출했나 봐요. 요즘 통 보이지 않더니요.”

하싼 너는 절대로 죽을 일은 하지 말 거라. 절대로 죽지 마라, 하싼!”

 

라일라는 자신의 남편과 이름이 같은 이 소년에게 맥락도 없이 죽지 말라고 죽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는 눈물이 그렁해져서 돌아섰다.

 

 

! 우리는 아탈라라는 요충지를 획득할 것이다. 이곳은 본래 우리 무슬림들의 땅이니 이교도이자 악의 화신인 미국 군대와 결탁한 저 배도자 무리에게는 정당성도 알라의 뜻도 함께하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아부바르크의 연설로 전사들은 이제 전투할만한 의욕이 깃들 제대로 된 전쟁을 하게 되었다고 만족해하며 웃었다. 지브릴은 무자히드도 웃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뭔가 허탈한 듯한 웃음이었다.

 

아부바르크는 다시 한번 폭탄 테러를 지시했다. 이번에도 자밀라의 남편 하싼과 모나의 남편 하림이 지원했다. 아부바르크는 하싼이 지원한 것에서는 못마땅한 무언가가 있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잠시 고심하는 듯하다가 이내 허락했다.

 

하싼과 하림은 지프차에 폭탄을 싣고 아탈라 인근 정부군 집결지 부근에서 자폭했다. 이들도 결혼 며칠 만에 자살 폭탄 테러에 자원한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라일라의 울음소리가 그녀의 대문 밖까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라일라도 모나도 두 번째 미망인 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도 그 기간이 그리 길 거라 짐작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잃을 건 이제 남편만이 아니었다.

 

 

야심한 시간에 아부바르크가 소집을 했다. 지브릴을 비롯한 대원들은 하나둘 본부 막사로 모였다. 지브릴이 대원들 틈에 끼어 막사로 들어서자 막사 중앙에 피투성이가 된 무자히드와 자밀라가 보였다.

 

이들은 배도자들이다. 성전을 위해 죽음도 불사해야 할 전사와 그를 내조해야 할 그의 아내가 함께 탈영하려 했다. 이들은 알라의 뜻을 배반한 것이다.”

 

무자히드와 자밀라는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듯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면 탈영 중 잡혀 모진 폭행을 당하다 지쳐 말할 기운도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지브릴은 답답하고 암담했다.

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어찌할 수 있나? 도대체 난 어떡해야만 하는 걸까?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그가 자괴감에 빠져있는 동안 아부바르크는 간명하게 지시했다.

 

이들은 내일 오전에 처형할 것이다. 그때까지 가둬두고 물 한 모금 주지 말아라.”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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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날(부제: Zeitgeist / Salik) [탈고본] 4 | 짧은 이야기 (단편들 탈고) 2022-08-2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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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총을 차고 마을을 시찰하는 IZ 대원들은 하나같이 즐거운 마음에 웃고 있었다. 오늘은 지도자께서 일부 대원들의 결혼을 주선해주시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와합 마을의 여성들과 기존 대원들의 결혼이 주선되기로 한 것이다.

 

너희 둘 왜 복장이 그 모양이지? 무슬림 여성들은 모두 차도르를 착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듣지 못했다는 거냐?”

그게 아니라 오늘은 신랑감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좀 더 예쁘게 보이려고 히잡을 해 본 거예요.”

 

우마르의 날 선 반응에도 주눅 들지 않고 마을 처녀 나비아와 하이파는 들뜬 기색이 역력한 채 답했다. 어제 있었던 로와다 부인과 하이얌이 겪은 일이 소문이 날만도 했는데 그 둘은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브릴은 이번에는 일이 커질 수도 있겠다 싶어 잽싸게 달려와 말렸다.

 

우마르, 바로 가서 갈아입고 오라고 하겠습니다.”

이미 가르침은 충분히 알리고 가르침에 익숙해질 시간도 충분했네. 저들은 율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배우자가 될 사람을 만나러 오는 길에 음탕한 차림을 하고 찾아온 더러운 것들이네. 이미 무슬림의 본분을 저버린 것들이란 말일세.”

 

사람 좋던 나씨르 마저 이리 말했다. 지브릴이 그들을 감싸려 들 시간도 없이 우마르는 소총으로 나비아와 하이파를 위협해 무릎 꿇렸다.

 

꿇어. 이 음탕한 것들아!”

왜 이러세요. 저희는 그저 신랑감을 예쁜 모습으로 만나려던 것뿐이에요.”

 

그들이 무릎을 꿇으며 하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우마르는 소총에 걸친 끈을 옆구리에 밀어두고는 권총을 꺼내 무릎을 꿇은 하이파의 정수리에 대고 쏘았다. 권총의 충격에 하이파의 몸이 살짝 튕겨지고는 쓰러지자 나비아는 놀라 소리쳤다. 그녀의 두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온 얼굴에 경악의 빛이 비쳤다. 우마르는 소리치고 있는 나비아의 정수리에도 바로 권총을 가져다 대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으아아아악!”

 

총을 맞고 쓰러지는 나비아와 하이파의 모습을 보고 신랑감을 만나려고 IZ 막사로 찾아들던 마을 처녀들이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거나 도망가려 했다. 그 순간 나씨르가 소리쳤다.

 

이들은 무슬림의 본분을 잊은 배도자와 다름없는 것들이라 처형한 것이다. 너희는 혼란을 야기하지 말고 어서 배우자를 찾는 길에 들어서라. 가르침은 선하게 전해질 때 따르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도망가려던 마을 처녀들도 주저앉았던 처녀들도 모두 겁에 질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소총을 든 대원들이 길을 재촉하자 숨죽이고 순순히 길을 따라갔다.

 

 

신부감이 될 마을 처녀들이 모인 자리에서 앞서있는 미나, 모나 자매와 하나, 자라는 지브릴과 어릴 때부터 같이 커온 남매 같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뒤를 보고 지브릴은 놀라고 당황스럽고 서글픈 마음이 깊이 들었다. 제법 모여있는 마을 처녀들 사이로 자밀라와 라일라 자매가 서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자밀라라고 믿었던 자밀라가 그녀의 여동생을 이끌고 신랑감을 찾으러 와있다. 지브릴은 애석해 할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두 그녀의 아버지의 선택이지 않은가? 아버지가 딸을 결혼시키고자 하는데 자신이 나서서 사랑을 운운하면서 결혼하겠다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행동은 사람들에게 자밀라와 자신이 사통하고 있었으며 무슬림의 율법을 어기고 있었다고 오해하도록 만들 수 있다. 압둘라 씨의 딸 라니아의 죽음처럼 사람들의 오해는 아브라힘 씨 가문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가 되어 자밀라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대원들이 그녀들의 맞은편에 서자 IZ의 지도자 아부바르크는 잠시 짧은 말을 이었다.

 

너희들에게도 자라면서 살아오면서 각자의 사연이 있을 것이나 이제는 짝을 이루는 사람과 가정이라는 작은 연합 속에서 그 연합에 합당한 사연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성실과 진실 그리고 신앙이 빠진 연합이어선 안되는 것이다. 남편이 되는 자는 아내를 지배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 그리고 서로 베풂과 수혜를 그 연합 속에서 실천하며 세상으로 확대하여라. 그것이 무슬림의 본분을 지키는 결혼생활일 것이다.”

 

그리 말하고는 마을 처녀들과 대원들을 서있는 그대로 무작위라고 할 수 있는 주선을 했다. 그러다 자밀라를 보고는 아부바르크가 물었다.

 

니가 아브라힘 씨의 맞딸이냐?”

!”

아브라힘 씨와 압둘라 씨의 부탁으로 너는 압둘라 씨의 장자 무자히드와 결혼하게 되었다. 알겠느냐?”

.”

 

자밀라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미 이러리라고 아버지인 아브라힘 씨로부터 언질을 받은 모양이었다. 결혼 주선 자리에는 기존의 대원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마을 출신 대원들은 축하하며 하객 행세를 하던 중이었다. 아부바르크는 하객들인 마을 출신대원 들중 무자히드를 불렀다. 무자히드도 자밀라처럼 무표정하게 주선자리로 나섰다.

 

자밀라 앞에 웃으며 서있던 맹렬한 IZ 대원 이스마일은 자밀라의 여동생 라일라와 짝이 되었다. 그렇게 대원들에겐 한가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지브릴만이 이 한가한 하루가 자신을 더 괴롭게 하는 하루임을 깨닫고 있었다. 나비아와 하이파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큼 자신을 충만케 하던 이슬람의 정신이 죽어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전 대원들이 소집되었다. 와합 마을과 지단 마을 경계로에서 나씨르가 나서서 대원들을 독려했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노고를 풀어줄 헌신할 여성들을 초청하고 배도자들인 시아파를 섬멸하는 전투를 치를 것입니다. 모두 단호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지단 마을로 쳐들어갔다. 처음엔 대원들을 보고 지단 마을 사람들은 긴장하는 정도의 모습일 뿐이었다. 하지만 우마르, 하싼, 가파리 ,누르, 이스마일 등 베테랑 전사들이 선봉으로 각 가정에 쳐들어가 소녀들을 끌고 나오자 그녀들의 아버지들이 모두 막아섰다.

 

내 딸은 안된다. 이놈들아!”

 

! ! !’ 이곳저곳에서 격발음이 들렸다. 자신의 딸들을 성노예로 내주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아버지들을 IZ대원들은 망설임 없이 쏴죽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리고 젊은 여성들을 일부 대원들이 따로 격리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마을 뒤편 사막에 끌고 갔다.

 

이게 무슨 일인가? 무자히드. 우리 종파는 다르더라도 무슬림이라는데는 서로 동의하지 않았나? 이게 같은 무슬림에게 할 짓인가?”

 

지단 마을의 청년 라시드가 자신을 끌고 가는 대원들 중 무자히드의 얼굴을 알아보고 한탄했다. 무자히드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막의 언덕 아래 지단 마을 사람들을 세우고는 나씨르가 말했다.

 

너희는 배도자들이다.”

아니요. 우리 시아파 사람들은 당신들과 종파만 다를 뿐 충직한 무슬림들이요. 단 한 순간도 배도한 적이 없소.”

 

!’ 우마르가 나씨르의 말을 끊은 지단 마을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살려 주세요. 우리가 무슨 악행을 했다고 이러시오. 우리 지단 마을은 시아파로 종파가 다르다고 해도 와합 마을과 별 충돌 없이 잘 살아왔어요. 오해가 있다면 풀면 되지 않습니까?”

오해가 아니다. 경전에 이르기를 배도자에겐 죽음뿐이라고 했다. 오늘 우리는 무슬림의 본분을 다하여 너희를 섬멸할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 지단 마을 사람들이 격분해 외쳤다.

 

이런 게 무슬림의 본분이라고? 언제부터 무슬림의 본분이 민가의 아녀자들을 빼앗고 양민을 학살하는 것이란 말이냐? 너희는 어찌 그런 범죄에 무슬림의 본분을 논한다는 말이냐!”

살려주게, 지브릴! 자네는 이런 악을 행하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지브릴은 자신을 알아본 지단 마을 어르신 다우드 씨를 바라봤다. 그리고 애써 무표정하려 했다.

 

격발하라.”

 

나씨르의 명령이 떨어지자 지단 마을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이 가해졌다. 모래 언덕 위에서 무자히드는 언덕 아래의 지단 사람들이 아닌 허공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지브릴은 자신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기는 한데 도대체 누구를 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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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날(부제: Zeitgeist / Salik) [탈고본] 3 | 짧은 이야기 (단편들 탈고) 2022-08-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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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브릴은 자청해서 IZ의 대원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날을 가져다줄 떠오르는 태양이 IZ라고 확신했다. 자신과 함께 무자히드, 하룬, , 라디 등 마을 청년들 거의 모두가 IZ대원으로 자원했다. 모두가 무슬림의 정신과 무슬림의 시대를 만들 거라는 IZ의 지도자 아부바르크의 연설에 감명을 받은 터였다. 이들은 이슬람의 시대정신을 드높일 기존의 대원들과 함께 군사훈련을 받고 규율을 배우며 내면으로부터 경험해 보지 못한 자긍심이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알라를 통해 거듭나고 있다고 그리 생각했다.

지브릴과 대원들이 언제나처럼 군사훈련을 하고 마을을 돌아보며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을 때였다. 대원들은 남자들에게는 코란의 주요 구절을 외우는지 확인했으며 여성들에게는 일상복을 히잡만 쓰는 것이 아니라 얼굴만 내놓고 검은색 천으로 온몸을 감싼 차도르를 확실히 착용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보세요. 부인 아이에게 왜 히잡만 쓰고 돌아다니게 하는 겁니까?”

여보게. 이 아이는 이제 그저 11살이야. 이 아이에게 맞는 차도르를 구하기도 힘들다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무함마드께서 아이샤와 결혼하셨을 때 아이샤는 6살이었습니다. 11살이면 이미 여자의 역할을 다하여야 할 나이가 아닌가요? 11살이 어리다고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까?”

 

압둘라 씨의 부인 로와다 씨가 그녀의 막내딸 히얌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지 얼마지않아 이 부대의 장교급이라고 할 수 있는 연륜 있는 대원 나씨르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소총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나씨르는 비교적 온화한 성품의 사람이라 지브릴은 별걱정 없이 듣고 있었다. 하지만 실랑이가 길어지면 좋을 것이 없기에 이내 중재하러 나섰다.

 

나씨르, 그만 집으로 가서 차도르로 갈아입으라고 제가 따끔히 말하겠습니다.”

아니 무슨 말을 더 들어 아이들에게까지 차도르를 강제하는 건 지나친 거 아니야!”

 

''

 

갑자기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마찰음이 들렸다. 그들의 실랑이를 듣고 있던 다른 대원 우마르가 로와다 부인의 뺨을 갈기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소총을 그녀를 향해 겨눴다.

 

부인!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배도자일뿐이고 배도자를 위한 건 죽음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부인은 지금 배도자가 되시겠습니까? 율법을 수호하시겠습니까?”

 

로와다 부인은 당황했다. 그리고 모멸감을 느낄 새도 없이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브릴은 갑자기 상황이 긴박하게 되자 다급하게 외쳤다.

 

로와다 부인, 당장 집으로 돌아가 히얌에게 차도르를 입히세요. 알겠습니까?”

 

놀란 눈으로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던 로와다 부인이 겁에 질린 듯 눈을 내리깔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 암요. 그러고 말고요.”

 

 

저녁 기도를 마치고 대원들이 모두 숙소로 돌아가려 할 때 먼발치에서 차도르를 걸친 여인 한 명이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지브릴은 한눈에 그녀가 자밀라라는 걸 알아챘다.

 

나 잠시 일이 있어서 갔다 올게. 금방 돌아올 거야. 먼저들 가.”

 

그리 말하고 지브릴은 그들 몰래 자밀라를 향해 다가갔다. 자밀라는 몹시 불만 가득하고 내적 혼란을 억지로 내리누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브릴! , 나와 사우디로 가기로 한 건 잊은 거야?”

아니, 그렇지만 네가 말한 새로운 날이 꼭 사우디에만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아. 여기서도 새로운 날이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게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고? 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니? 이들은 옛 규율들을 되살려 우리를 옥죄고 있어. 네 눈엔 보이지도 않니? 억눌리고 있는 사람들의 한숨과 비명이?”

억누르지 않아, 자밀라. 이슬람의 시대정신을 직시하게 하고 있는 거라고. 이들은 우리를 무슬림의 원칙 아래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거야.”

넌 마치 네가 죽어있는데 이들이 너를 되살리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 그런지도 몰라. 나는 다시 살아나고 있어!”

아니, 지브릴. 넌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어. 널 죽이고 있는 건 그들이 말하는 원칙이야. 이슬람의 시대정신이 널 죽이고 있는 거라고.”

 

후우!’

 

지브릴은 자밀라의 말에 한숨을 쉬고는 답변을 이어갔다.

 

아니야, 자밀라. 넌 모르고 있어. 난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게 죽어있었어. 이 시대가 이 마을이 그 관념들이 날 죽이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됐어. 난 그 희망을 통해 되살아날 거야.”

그럼 우리의 희망은 뭔데? 사우디에서 새로이 시작하자던 그 약속은 뭐냐구?”

우리 조금만 더 기다리자. 조금만 시간이 주어지면 난 이슬람의 시대정신을 통해 새로운 인물로 거듭날 거야. 그럼 아브라힘 어르신도 날 사위로 마다하지 않으실 거야. 자밀라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안 되겠니?”

지브릴, 16살이야. 이미 혼기가 꽉 찼다구. 네가 아니더라도 아버지는 날 다른 사람이랑 결혼시키실 거야. 이젠 아버지가 원하시는 지참금에 많이 부족하더라도 난 결혼해야 할 상황이야. 넌 변했어! 지브릴. 이젠 내가 어찌 되든 관심도 없는 사람 같아.”

그렇지 않아. 난 변하지 않아. 널 두고 내가 어떻게 변할 수 있겠니?”

이미 네 마음은 내게서 떠난 거야. 이슬람의 시대정신! 그게 널 변하게 했어. 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사람 같아.”

 

지브릴은 이 긍정적인 변화에 거부감을 갖는 자밀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변했다고 믿는 그녀에게 어떻게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켜줄 수 있을지 미쳐 알 수 없었다.

 

안녕! 지브릴.”

 

자밀라는 마치 마지막 인사처럼 저녁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지브릴의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지브릴은 그 모두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짧은 불안일 뿐이라 일축하고 싶었다.

 

그래, 내일이면 다를 거야!”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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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날(부제: Zeitgeist / Salik) [탈고본] 2 | 짧은 이야기 (단편들 탈고) 2022-08-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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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브릴과 자밀라는 보통의 날처럼 서로 다소 거리를 두고 마을의 경계로를 향했다. 어느새 라니아와 카림의 시신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치워져 있었다지브릴은 그게 더 섬찟했다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만큼이나 말이다.

자밀라는 지브릴이 서두르는 이유를 짐작할 듯도 했지만, 하필 이런 일이 벌어진 날에 꼭 벗어나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 걸까?'

 

마을을 벗어나는 길은 경계로를 지나는 한 길뿐이었고 그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여기보다 더 시골로 향하는 길, 하나는 수도를 향하는 길목에 있는 아탈라라는 도시로 향하는 길. 자밀라와 지브릴은 사우디로 가기 위한 여정이었기에 당연히 아탈라를 향해야 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경계로여서 지브릴이 자밀라의 손을 잡으려 하자 자밀라가 갑자기 흠칫하며 지브릴에게서 떨어져 섰다. 지브릴도 정신을 가다듬고 돌아보자 멀리서 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두 대가 아니다. 저들을 피해 빨리 벗어나려고 한다 해도 이미 때는 늦었을 뿐이다.

지브릴과 자밀라가 차를 바라보고 서있자 금세 무장한 채 검은 상하의를 입고 검은 쿠피야(두건)를 한 건장한 남자들이 연이어 트럭에서 내렸다.

 

앗쌀라무 알라이쿰, 처음 보는 분들인데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가 아탈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와합 마을이냐?”

, 그렇습니다.”

 

이방인들, 그것도 무장한 이방인들이 단체로 들이닥치자 지브릴은 극도로 긴장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하고자 상당히 사근사근한 어조로 인사말도 건넸으나 저들은 인사말도 씹으며 다소 과격한 말투였다. 그들 중 하나가 다시 자신이 쓴 히잡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자밀라를 보더니 지브릴에게 물었다.

 

저 난잡해 보이는 여자와 너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거냐? 혹시 율법을 어기려던 찰나였던 거냐?”

아닙니다. 전혀 난잡한 여자가 아니고 마을에 인망 높으신 아브라힘 씨의 딸입니다. 오늘 오전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방황하고 있는 걸 제가 찾아내 다시 마을로 인도하고 있었던 겁니다.”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말해 보아라.”

 

소총을 든 검은 의복의 남자들 중 하나의 질문에 지브릴이 진땀을 빼며 대답하고 있을 때였다. 검은 의복의 남자들 사이에서 하얀 색 토브를 입고 쿠피야 위에 사우디 방식으로 두 개 이갈(천을 돌돌 말아 만든 링)을 한 노년의 남성이 나오며 사건의 경위를 물었다.

 

 

와합 마을 사원에 그들이 찾아왔고 하얀색 토브를 입은 그 남성이 율법학자 슬레이만 씨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 죽은 라니아의 아버지 압둘라 씨에게 그런 딸은 잘 없애버렸으며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단호히 행동한 압둘라 씨 행동은 본받을 만한 태도라며 격찬했다. 압둘라 씨는 뭔가 심각한 모습을 보였고 자밀라의 아버지 아브라힘 씨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자밀라는 남자들만 모여 토론하는 장에 오래 머물 수 없어 집으로 향했다. 지브릴은 동네 청년들과 남아 마을 유지들과 율법학자가 이 이방인들과 무슨 협의를 하는지 궁금해 머물러 있었다.

이방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하얀 토브의 남자는 급기야 마을 청년들에게 연설하기에 이르렀다.

 

근래의 무슬림들은 타락했고 의미를 잃었으며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역할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알라를 통해 수긍해가는 그런 시대를 만들 것이다. 낡은 원칙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이 새로이 거듭나게 만들 것이다. 죽어있는 이슬람을 우리는 되살릴 것이다. 죽어있던 너희가 모두 부활하는 순간을 우리는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를 믿어라. 우리를 따르라. 이것이 무슬림의 사명이며 무슬림의 정신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무슬림의 시대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무슬림의 정신이다. 바로 우리가 이슬람의 시대정신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IZ로 명명했다. 마을의 청년들이 모두 그의 연설에 감동하는 듯했다. 지브릴마저 수긍할 법한 연설이었다고 마음 깊이 납득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왠지 압둘라 씨와 그의 아들 무자히드의 안색이 밝지 않았다. 그들은 그 연설의 이면에 숨은 다른 뜻이라도 읽은 것일까? 아니면 마을 유지들과 율법학자가 그들과 담론할 때 무언가 다른 이야기라도 들은 것일까? 지브릴은 그런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한 편으로는 새로운 날을 찾아간다면서 진정으로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걸 보지 못할뻔 했구나하는 생각에 이상히도 다행스러웠다.

 

내일이면 무슬림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게 될 거야!”

 

자신만큼이나 들뜬 기대를 안은 마을 청년들을 보며 지브릴은 생각했다.

내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양이 떠오를 것만 같아! 아마도 이런 날이 자밀라가 말해오던 새로운 날일 거야.’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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