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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역사1을 읽으며
생각의 역사 1 – 5 ② | 생각의 역사1을 읽으며 2022-12-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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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는 영혼을 타락한 신으로 보았다. 영혼은 무덤처럼신체 안에 갇혀 있으며, “영원한 환생의 주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보았다. 피타고라스와 오르페우스교는 영혼을 해방시키려면 정화 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다. 플라톤도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였지만 자체 정화, 즉 이성을 통해 해방될 수 있고 신의 지위를 되찾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는 더 높은 불변의 층에 영원한 실재가 있다고 그것을 이데아 idea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쓴 용어는 에이도스 eidos이다. 이것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 이데아이다.) 플라톤은 [향연]을 통해 개별적인 아름다운 신체에 대한 사랑도 정화와 변환을 거쳐 이상적인 미의 심미적 명상(테오리아 theoria)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적인 형상이 정신 속에 숨겨져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자라투스트라처럼 정신적 삶의 목표를 추상적 존재에 대한 집중으로 보았다.

 

플라톤은 명상을 통해 단일한 신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재들의 위계를 상정하고 맨 꼭대기에 부동의 원동자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불멸이자 부동이며, 본질적으로 순수한 사유지만, 생각의 주체인 동시에 생각 자체이기도 하다. 그 원동자는 우주의 모든 변화와 흐름을 유발하며, 모든 것이 하나의 원천에서 흘러나온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신적 실체이므로 다른 동물과 식물보다 우위에 있다.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대사슬에 최초 창안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동의 원동자 아래 인간이 있고 그 아래 동물과 식물이 차례로 존재하는 존재 가치의 피라미드를 상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사유의 목적이 불멸, 일종의 구원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플라톤의 경우처럼 사유는 그 자체로 정화의 형태로 여겨졌으나 테오리아, 명상은 논리적 추론만이 아니라 엑스터시적 자아초월을 유발하는 훈련된 직관이기도 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힌두교를 기원으로 보는 수행의 체계와 유불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수행의 전승이 그리스 철학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게르하르트 베어의 [유럽의 신비주의]를 통해서도 유럽의 신앙과 종교적 수행체계가 동양의 그것과 다른 면보다 같은 면이 더 크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으나 그 유사성이 그리스 철학자들의 테오리아까지 닿아있다는 것이 신비로운 지경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유대교와 힌두교의 유사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다소 어폐가 있다고 본다. 유대교와 힌두교가 기복신앙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유대교가 기독교로 이어지고 카톨릭이 타락하여 이교도들을 포섭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상(성모상,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 십자가) 곧 이미지화된 대상까지 신앙하도록 하고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설을 유포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힌두교와 유사성을 찾을 구석 이를테면 기독교의 삼위일체설과 인도의 세 신(브라흐마, 비쉬느, 시바의 창조신, 유지신, 파괴신의 삼위를 신앙하니) 개념이 유사하고 성상을 통해 신앙해 나가는 데는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대교는 초기에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형상을 숭배하지 않았고 오로지 유일한 창조신을 신앙한다. 유사성을 억지스럽게 찾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또 힌두교는 브라흐마를 개체아인 아트만의 근원이라고 여겼다. 다시 말해 신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유대교는 이후 카발라 철학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신과 인간을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로 완벽히 타자화했다. 힌두교와 유대교는 유사하다기보다 전혀 다른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맞지 않나 생각된다. 나의 근원이 신성이라고 보는 것과 나는 그저 신이 만든 피조물일 뿐이라고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물론 카발라 철학에 이르면 하나님의 숨 곧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 불어넣어져 인간이 생령이 되었다고 보니 힌두교의 가르침과 유사해지기는 하지만 이번 장에서 언급되는 시대의 유대교 상식과는 맞지 않은 것이다.

 

이 외에도 공자와 제자백가 그리고 도교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기는 하지만 동양인 독자로서는 너무도 상식선에서의 내용이다.

 
 

생각의 역사 1

피터 왓슨 저/남경태 역
들녘 | 200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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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역사 1 – 5 ① | 생각의 역사1을 읽으며 2022-12-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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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사, 영혼, 구세주 : ‘영적 돌파구’]라는 장에서는 슬쩍 엿보기라도 한 익숙한 내용들이 등장해서 기분 좋은 독서였다. 무엇보다 본서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던 주제로 이제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 같아 기분 전환이 되는 독서였다.

 

제물(인신 제사를 포함한)에 대한 대목과 대모신, 황소, 신성한 돌에 대한 대목은 나름 익숙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의례와 원형에 대해서는 죠셉 캠벨의 저작들과 융의 저작들, 인도 철학과 상징에 관련한 저작들을 통해 다소 눈에 익은 내용들이다. 저자는 몇몇 상징들을 고대의 상징들 외에 그리스 로마의 산화나 그리스도교에서 비슷한 맥락을 찾고 있다. 나로서는 익숙한 한단고기(환단고기)와 동이족 신화 전승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혼에 대한 관념의 발전을 다루며 고대 이집트의 kaba나 메소포타미아의 나피스투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서는데 나피스투가 신체 일부인 목구멍을 상징하는 말에서 확장되어 숨, 생명, 영혼을 가리키게 되었다는 데서 우리 선도의 달굼(수행)에서의 용어들이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에서 선도의 특정 지점을 이르는 말이 된 것이나, 내면을 뜻하는 ’, 처음을 뜻하는 ’, 태양을 뜻하는 가 합쳐져 이하라마음이 되었듯, 관념과 지칭의 융합이 또 다른 관념을 낳는 것처럼 애초에 형이상학적 관념에서 시작되어 목구멍을 가르키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인도의 [리그베다]의 기원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되었다. 원시 인도아리아인은 흑해와 카스피 해, 카스피 해와 아랄 해에 걸친 스텝, 혹은 중앙아시아의 다른 지역 출신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책이 쓰여지던 시점에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고향은 볼가 강 하류의 아바셰보 문화권과 우랄 산맥 남쪽의 신타슈타-아르카임 문화권이라고 생각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의 인도학 교수 아스코 파르폴라는 말의 사육과 인도아리아어는 기원전 1600년경에 남쪽으로 내려가 파키스탄 북부의 간다라 문화에 전해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리그베다]를 만든 민족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인도아리안의 기원에 대한 주장으로는, 또 한번 더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을 기준으로 최근 연구로는 리그베다에 나오는 천체의 변화를 연구한 결과 이 문헌의 연대가 전통적으로 알려진 기원전 1900~1200년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고 한다. 앞선 주장과는 다르게 오히려 이들은 인도 북서부의 토착민이고 그곳에서 인도유럽어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럽인들 주장으로는 인도아리아인은 유럽이 기원이고 인도 중심의 주장으로는 오히려 인도 북서부가 인도유럽어의 기원이라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아마도 이 사안에 대해 각 나라에서 각자 지들 좋을 대로 학교 교육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아전인수가 민족의 기원에도 늘 존재해 왔다는 걸 새삼 느꼈다.

 

본서에서는 인도아리아인의 신체, 아수, 마나 이 세 가지 분류 중 아수라는 생명 원리를 그리스의 프시케(머릿속에 존재하는 생명 원리, 사후에 신체의 무형적 형태인 에이돌론이 된다)에 대응하고 마나라는 정신, 의지, 감정이 자리하는 곳을 그리스의 티모스(프레네 또는 심장에 존재하는 정신이나 의식)에 대응하고 있는데 영혼을 본질적 자아로 보는 생각과 어휘는 없는 듯하다고 단정하고 있다. 프라나와 에 대입되는 아수에 해당할 순우리말은 모르겠지만 마나는 분명 순우리말 마음과 동일한 의미이다. 검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우리말은 알타이어족으로 이전의 연구로는 우랄산맥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까지의 연구 발전으로는 오히려 중국 요하 지역에서 서쪽으로 전파되었다고 하지 않나? 인도유럽어족인 인도아리아어도 인도에서 서쪽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앞선 두 주장 중 후자의 연구가 [리그베다] 속 천체 변화를 연구하여 나온 과학적 주장인 바 더 신빙성이 높다고 본다.

 

기존의 인류학 등은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기원했고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성경을 믿는 창조론자들은 중앙아시아에 에덴이 있었고 그곳이 인류의 발원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초고대 인류의 증거가 고고학적 발굴로 확인된다면 기존의 학문들은 총체적 전환점을 맞지 않을까 싶다.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리스 철학부터 들어서며 진정한 이 책의 본론인 생각의 역사들이 서술된다. 기원전 6세기가 지나면서 프시케가 본질적인 자아인 동시에 의식과 생명의 원리가 있는 장소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핀다로스는 프시케가 신에 근원을 두고 있어 불사라고 믿었다. 영혼 불멸이라는 생각을 핀다로스 외에도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와 그 시대에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서 활동했던 다른 그리스인들도 공유했다. (고대에는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가 마그나그라이키아라고 불리던 그리스의 식민지였다)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플라톤은 모두 환생과 윤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핀다로스처럼 영혼의 근원이 신에게 있다고 믿었고, 여기서 영혼이 몸보다 더 고귀하다는 관념이 싹텄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테네인들의 견해는 영혼이 산 사람에게 적대적인 불쾌한 것이라고 여겼단다. 그리스인들은 사후에 삶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스라엘 종교가 처음 히브리 성서에 등장할 때는 최소한 세 가지 주요한 숭배가 있었다고 한다. 테라핌 또는 드라빔(언급되는 문장이 있는데 문맥을 파악할 때 아마도 조상의 위패를 말하는 것 같다)이라는 가족신의 숭배, 신성한 돌의 숭배, 토착신과 외래신을 포함한 일부 신들의 숭배가 그것이다. 그랜트 앨런이라는 학자는 출애굽기의 광야에서 금송아지가 나오는 장면을 들어 야훼가 원래 젊은 황소의 형태로 숭배받았다고 단언한다. 성경에서 그 장면을 보아도 야훼를 믿으며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모세가 사라진 시간 동안 뜬금없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황소를 숭배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애초에 야훼가 황소로 숭배되었다고 하면 이해 못할 문제도 아니다. 그러던 것이 모세에 이르러 황소인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고 야훼에 대한 정의가 확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야훼가 성궤 속에 살고 있었다고 믿어졌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한다는데 출애굽 당시 모세가 이집트의 성궤를 훔쳐나온 것을 두고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이집트는 초고대 인류의 문화가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집트 벽화에는 아즈텍 벽화와 같이 UFO도 등장하고 있고, 기다란 전선에 연결된 전구도 명백하게 등장한다. 초고대 인류의 과학 문명이 전승되지 않았다면 그저 상상만으로 남긴 벽화로 보기 어렵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성궤는 이집트의 성궤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을 모세가 자신의 민족을 탈출시키며 절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애초에 미개한 유대인들이 성궤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이집트인들이 강탈했었는데 유대인들이 탈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성궤를 나를 때는 특수한 제복을 착용했는데 그 제복을 착용하고도 성궤를 나르는 사람들이 쓰러져 죽는 상황은 즐비했다. 성궤 자체가 에너지를 응축하는 발전기체였으며 그 에너지가 방전될 때 그 반경 내에 있는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건 과거 읽었던 고대의 오파츠들을 다룬 저작에서 본 내용인데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라엘리안 무브먼트라던가 대표적으로는 그레이엄 핸콕과 제카리아 시친을 위시한 이 분야 전문가들은 대부분 현재 인류 문명 이전의 초고대 인류가 존재했으며 그들은 외계인의 문명 전달로 발전한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46억 년의 지구 역사로 볼 때 (현재의 인류와 달리) 초고대 인류가 자체적으로 그들 문명을 이룩한 이후 그들(외계인들)과 교류했다고 본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내용도 등장한다. 그들 경전인 [아베스타]의 찬송가인 [가티스]는 힌두교 베다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의 가장 오래된 형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아마도 힌두교의 영향을 조로아스터교가 받았던 것으로 보이지 그 둘의 근원이 같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만약 근원이 같다면 경전 자체의 언어까지 같아야 할 텐데 왜 찬송가 내용만 같겠는가?

 

조로아스터교의 교조 자라투스트라는 영혼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고 한다. 그 세 가지는 신체가 죽은 뒤 남는 개인의 일부분인 우르바니, 그들이 죽은 뒤부터 세상에 살아온 프라바시, 양심을 뜻하는 다에나를 말한다. 조로아스터교는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 주요 종교들이 탄생하는 근본적인 이념 체계를 제공했다는데, 선과 악의 이원론과 그들의 충돌 그리고 종말론, 또 하나 구세주에 대한 관념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발견되고 일부는 사실 불교와 같은 진화한 종교에까지 있는 생각들이기는 하다. 원형이 같다고 아직까지의 고고학적 발견으로는 앞선 시대의 것이니까 무조건적으로 오리진일 것이라는 단정은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의 결론으로는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생각의 역사 1

피터 왓슨 저/남경태 역
들녘 | 200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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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역사 1 - 4 | 생각의 역사1을 읽으며 2022-12-2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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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발명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장의 제목부터가 지혜의 도시이듯 도시 생활 이후에야 문자가 발명되었고 문자 발명 이후 가장 인상 깊었던 세 가지는 종교 양식의 변화와 전쟁의 변화를 불러온 탈것의 개발과 법전의 등장이다.

 

학자들은 문자는 수를 기록하기 위한 수단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 도기로 기록을 대신 삼던 것이 하나의 상징을 기록해 두던 것으로 발전했고 이것은 사원 등의 출납을 기록하다가 더욱 다양한 상징으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자가 좀 더 체계적이기 전부터 기록은 잉여생산물의 유통을 기록하는 데 적용되었다. 문자가 보다 발전한 이후에는 종교의 심층화로 이어졌다. 종교 사원의 출납뿐 아니라 다양해진 상징체계의 발전으로 형이상학적 사고로 발전해 나가는 계기가 되어 더욱 종교적 깊이가 더해졌다고 보여진다.

 

문자는 문자를 기록하는 자인 필경사들을 양성하게 했고 필경사(두브사르, 수메르어)라는 말은 곧 교양인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우르에서 필경사를 양성한 것은 적어도 기원전 2000년대 중반이다. 기원전 1900~1200년에는 공공도서관만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 서고가 있었고 줄잡아 4천 종의 문헌이 소장되었다. 당시 가장 권위 있는 학문으로 천문학*점성학, 예언문학, 주술을 들고 있다. 아슈르는 이런 학문으로 알네메키, 즉 지혜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도시화는 이런 문명 발전의 전환을 가져왔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보호 받고자 하는 욕구보다 도시화가 먼저라는 것이다. 성벽이 없는 거대 도시가 발굴되고 성벽의 역사는 거주지가 형성된 이후에 생겼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화는 종교적 발상이 구체화 되어 현현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지구라트(정상 또는 산꼭대기를 뜻하는 초기 아카드어인 지구아라트가 어원) 같은 거대 구조물들은 거대 도시인구가 등장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바퀴의 발명도 거대 공동주거 이후 있었고 바퀴의 등장 이후 발전 양상은 탈것 특히나 전차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성벽과 전차는 초기 전쟁 양상을 바꾸었다. 최초의 탈것은 기원전 7000년 극지대에 가까운 북유럽의 수렵-어업 사회에서 만들었다(개가 끄는 썰매)고 보고되고 있다. 본격적인 탈것의 전조는 기원전 3000년대 후반 우르크의 그림문자에서 볼 수 있다. 바퀴와 축이 붙은 정식 탈것은 비슷한 연대에 속하는 스위스 취리히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2000년 이전 고고학 유적에서 나온 원반형 바퀴는 덴마크에서 페르시아까지 널리 퍼졌다.

 

후반에 법전 이야기가 있다. 함무라비(기원전 1792~1750) 법전의 등장을 가장 먼저 들고 있으나 그 이전인 수메르 법전(기원전 1934~1924)과 우르남무(기원전 2100년경) 법전의 예도 언급되고 있다. 일상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법전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성서나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 보다 오히려 그 이전인 수메르 법전과 우르남무 법전에 이런 극단적인 보복형 조항이 없다.

 

당연한 불문법적 조항이라 기록할 필요도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시대가 흐를수록 피해자 우선주의가 더욱 보장되는 식으로 법률이 발전한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문자의 발명과 도시화는 추상적 사고를 불러와 학문의 발전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종교 양식 또한 구조화, 체계화하게 되었고 사회 조직에서 필요한 법과 같은 제도의 발전까지 가져왔다. 수치를 기록하게 되었기 때문에 성벽과 같은 건설도 보다 정교화 될 수 있었다고 본다. 탈것이 전쟁의 양상을 바꾼 것은 인간의 호전성이 문명에 어떠한 식으로 드러나는지는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자 구체적인 사례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생각의 역사 1

피터 왓슨 저/남경태 역
들녘 | 200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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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역사 1 - 3 | 생각의 역사1을 읽으며 2022-12-0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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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의 탄생, 집과 가정의 진화

이 장에서야 비로소 저자가 인류의 진화 과정 자체를 생각의 진화라기보다 생각 그 자체로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다수의 고고학자들이 보기에 인간의 [가장 위대한 생각]은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관념이다. 그것은 바로 동식물의 사육, 농경의 발명이다. 그것이 인간의 생활방식에서 가장 심원한 전환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동식물의 사육은 14~6500년 전에 일어났으며, 선사시대의 생각 가운데 가장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도구와 불의 사용이 최초의 생각이었다면 의복과 주거지는 곧이어 생겨난 생각이었다.-

 

-이것은 르네상스가 아니라 네상스naissance, 즉 탄생이다. ...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각들 가운데 세 가지-농경, 종교, 장방형 주택-가 바로 이 시기에 생겨났다.-

 

이 문장들만으로도 저자의 생각에 대한 관점, 인류사에 대한 관점이 드러나는 듯했다. 인류의 생활상이 바뀜으로써 종교나 사회 등의 생각에서 비롯된 변화가 탄생했다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 자체가 하나의 생각들의 연속이라는 관점이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인류사의 변화의 곡점 하나하나가 생각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기에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14~6500년 전에 일어났다는 동식물의 사육은 대략 12천 년 전까지 지금 보다 더 낮고 변화가 심했던 지구의 평균 기온이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크게 치솟으며 기후가 안정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온난화와 안정화는 결과적으로 역사의 [커다란 방아쇠를]를 당겼고 우리 세계를 가능케 했다고 말이다.

 

본격적인 농경과 동물의 사육이 있기 전 원시적인 야생종 식물 재배가 있었는데 이때 사육된 야생종은 비교적 이삭이 튼튼해 사육할 때만 부서졌다고 한다. 자연적인 종자 선택에 의해 자연스런 종자 개량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이 원시적인 사육은 이후 서남아시아의 핵심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넓은 지역에서 농경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사육이 이뤄진 장소는 여러 곳이 확인되었는데 시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1만 년 전 터키를 비롯한 시리아 다른 지역과 요르단 강 유역 등 중동 지역에서는 BP 12~1500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동물 사육의 연대는 BP 9천 년 직후, 즉 식물이 사육된지 약 1천 년 뒤에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사육이 일어난 장소는 모두 중동, 즉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식물 사육 지역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중첩된다.

 

다만 농경과 사육이 안정된 정주 생활과 그로 인한 인구 증가에 영향을 주어 인간 사회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맞다지만 개인의 행복에는 과연 유익한 것이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현재의 수렵-채집 부족들에 관한 민족지학적 연구는 하루에 3~5시간만 을 하면 가족들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석기 시대 농부들의 유골은 수렵-채집으로 생활하던 조상들보다 더 심한 영양실조, 전염병, 치아 질환의 흔적을 보여준다. 농경의 발달과 인류의 농경과 목축문화가 전파되는 과정을 보면 식생활의 단순화가 이루어진 것도 모자라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으로 굉장히 폭넓은 전염병과 기생충들에 전염되는 과정을 낳았다.

 

물론 이 전염병과 기생충들의 향연은 약 2만 년 전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며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정주 생활 이전까지 인간은 일은 더 고되어지고 식생활은 단조로워지고 병에는 더 취약해지는 시기를 거친 것이다. 인간의 삶이 고달픈 건은 선사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신석기 문화로 총칭되는 식물과 동물을 사육하게 된 초기 문화에서는 장방형 주택으로 주거 형태가 발전하는데 이를 고고학자들은 중요히 보고 있는 듯했다. 도시 형성이 가능하게 된 원인으로 여기는 것일까도 짐작하게 되었다. 이 시점도 전에 종교가 등장했다. 대략 12~1만 년 전에 종교적 혁명이라 할만한 심리적 변화를 겪었으며, 이것이 동식물의 사육보다 선행했다고 학자들은 말하는데, 언어를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이 실용적인목적보다 신화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멀린 도널드라는 학자의 주장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하지만 대략 기원전 5000~3500년경의 거석문화 발달을 예로 들며 정주 생활과 농경의 발명이 인간의 종교에 관한 생각을 변화시켰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처음 신을 숭배하며 인간이 갖게 된 관념은 대모신을 주축으로 한 여성 신의 숭배가 시작으로 보는데 이를 여성의 출산 능력과 연결 지어 보는 면은 다분히 상식적이면서도 이제는 정형화된 관점 같았다. 여성 신 곁의 황소로 상징되는 남성성의 숭배 역시 남성성을 파괴적이고 야성적인 면만을 부각한 원시적인 관점이 시대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것 같았다.

 

석기 시대, 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주석과 같은 분리되지 않은 금속류를 분리하고 다시 결합하여 합금을 만드는 주조 방식이 철기 시대보다 앞서 등장하는 것이 의외롭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갖고 있었기에 다시금 주목하게도 되었다.

 

인류 발전에 있어 남다른 생각의 발견일 화폐의 탄생은 무엇보다 주목되는 대목이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화폐는 이후 합리적인 사고, 논리적인 판단을 가늠 짓는 발명이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화폐 발명 이후 매음굴과 도박장부터 생겨났다는 게 인간이란 역시 이런 면모가 두드러지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이번 장 이후에 비로소 [생각의 역사]라는 책에서 기대하던 대목들로 들어서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1부의 마지막인 4장을 지나야 본론처럼 생각되는 대목이 시작될 것 같다.

 

 

생각의 역사 1

피터 왓슨 저/남경태 역
들녘 | 200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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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역사 1 - 2 ② | 생각의 역사1을 읽으며 2022-12-0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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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언어의 탄생과 추위의 정복-2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스반테 파보의 20028월 발표에 따르면, 20만 년 전 언어와 관련한 유전자가 두 가지 중대한 돌연변이가 일어나 해부학적 현생인류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함께 퍼져나갔다고 한다. 저자는 이 변화가 현생인류의 언어능력이 발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인간과 침팬지를 구분하는 돌연변이는비교적 늦게 진화되었으나 그 뒤 불과 1~2만 년 만에, 인간의 세대로 치면 800~1천 세대 만에 급속히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와 함께 또는 이 이후 인간의 언어능력이 탄생하고 신장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다른 인류학적 증거와 현대의 수렵-채집 부족을 근거로 보면 인구 약 1~2천 명당 하나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이 문장 다음 가로 안에 유럽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곳에는 약 270가지의 원주민 언어가 있었다는 세부 정보가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인간이 시베리아를 건너 알래스카로 갔을 무렵 세계 인구는 약 1천만 명이었으리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의 윌리엄 서덜랜드는 당시에도 언어 분포가 오늘날과 비슷했다는 가정 하에 당시 언어의 수를 6809가지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조셉 그린버그는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를 에스키모-알류트어, 나데네어, 아메리카 원주민어의 단 세 가지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세 차례의 이주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하는데 최근의 DNA 증거에 따르면 아메리카로의 이주는 세 차례가 아니라 다섯 차례였으며, 한 번은 해안을 따라 이동했다고 한다. 최초의 아메리카인들은 배를 타고 베링 해협을 건넜을 거라는 증거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품절된 [몽골리안 1만 년의 지혜]라는 책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승된 구술을 기록한 책으로 동북 아시아인들이 1만 년도 훨씬 전에 베링 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까지 이동해 안주하게 된 경로가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인류의 언어 탄생을 유추해 보고 인류의 언어가 전파된 과정을 이러한 예로 돌아보고 있다. 그 후 기술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언어의 조상어라고 하는 노스트라틱어가 전 인류 언어의 공통 조상어는 아니라는 데 참 뜻밖이었다. 이 책을 저술 당시 세계 인구는 60억 명 정도였는데 그 중 노스트라틱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40억 명이었다고 한다. 그 외의 인구는 이 어족의 공통분모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에 신박했다. 바스크어, 중국어, 수메르어, 하이다어를 포함하는 어족은 데네-시노-코카시아어라고 한다.

 

이를테면 동이족과 지나족의 지배권 싸움은 동일 민족 내에서의 분파가 이루어지고 난 후의 계승권 싸움이었던 게 아니라 애초에 전혀 다른 문명의 충돌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동이족을 원류로 하는 민족들은 이후에도 노스트라틱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해왔음을 만주어나 카자흐스탄의 일부 종족 언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들 언어는 한국어나 일본어와 계열이 같지, 중국어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중국이라는 국가로 문화가 전승되어 오기까지 숱한 문명적인 충돌과 흡수 통합이 이어졌고 소수의 동이 문화가 점조직적으로 남게 되고 대다수가 지나족의 문명에 통합되어버린 과정이 언어 발전과 분포의 양상으로도 짐작된다.

 

언어가 어떻게 정형화되었는지도 궁금하지만 본서에서는 아직 그에 대한 문제에까지 해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고 다만 언어가 전파되는 과정과 언어의 계통이 큰 줄기로 이어져 있음을 담고 있다.

 

그리고 본서는 언어의 탄생만큼이나 흥미로운 의식의 탄생도 담고 있다. 직립보행의 한 가지 결과로 남성과 여성의 분업이 일어나며 핵가족이 형성되었고 고생물학자들은 이것만으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 자아와 비자아의 차이에 관한 의식을 적어도 초보적인 형태로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리라고 말한다. 그 뒤 인간 집단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협력과 타 집단과의 경쟁이 늘어나자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게 되었고 자아의 감각이 계발되었다고 보고 있다. 현재의 조직 상태를 위해 미래 예측이 중요해졌을 것이며 친족을 식별하고 자신의 이익을 감추는 기술도 발달하며 자아 감각이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시간 대학대학교의 동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는 자아*비자아, 현재*미래의 두 가지 요소가 의식의 근간이자 도덕성의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서 방점이 찍혀야 할 대목은 자아 감각이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부분이다. 자아 감각을 위한 기본 구성요소의 핵심이나 의식의 근간을 자아*비자아, 현재*미래의 두 가지로 본다면 더더욱 인간 외 동물들의 자아나 의식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거기서 더욱 의식과 자아 관념이 세밀해지는 진화를 거친 것이 인간의 자아와 의식이다는 정도가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동물이 기뻐할 때와 실망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육자가 놀아주던가 혼을 내는 행동들에 어떤 때는 크게 기뻐하고 크게 실망할 때가 있다. 자와 타의 구분이 있기에 (먹이를 뺏어 먹는다던가 하는) 타자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고 타자의 행위에 실망해 타자를 무시하던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자아 관념은 당연히 내면에서 일어날 수 있다.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고 미래 예측을 하는 관념 역시 집단 사냥을 하는 동물군에서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본다. 사냥 중 사냥감이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사냥감이 이동할 지역에 다른 무리를 미리 보내 사냥 몰이를 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의 의식이 차별화되는 것은 타 동물들에게 없는 자아관과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고 예측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더 세밀해졌다는 것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른 동물들의 언어에 비해 보다 구체화된 언어이기에 섬세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구분하고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차별화되는 면이지 언어만으로 자아상만으로 미래 예측만으로는 차별화할 수 없다. [언어가 있다. 자아상이 있다. 미래 예측을 한다.] 고작 이것만으로는 인간을 정의하는 기준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은 그런 부분들이 다소 치밀해졌다는 것. 이것이 고작 다이자 절대적인 차별점이기도 하다.

 

생각의 역사 1

피터 왓슨 저/남경태 역
들녘 | 200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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