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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기억에 남을 작품집이다! | 소설,시 2023-12-0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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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설 보다 : 겨울 2023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저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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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바뀜과 더불어 찾아오는 소설보다를 읽어왔던 중 세 작품 모두를 홀린 듯 읽었던 기억이 없다. 이번 2023겨울 호에 수록된 김기태 작가와 예소연 작가는 시간상 그리 멀지 않은 2023 봄 호(예소연,사랑과 결함)와 여름 호(김기태,롤링 썬더 러브)에 이은 만남이어서인지 마치 잘 아는 작가의 작품을 만난 기분이었다. 특히 김기태 작가의 체제 내적 언어인 보편이라는 단어와 교양이라는 수상쩍은 단어가 결합한 보편교양은 그 익숙한 문제의식으로 생각의 친근성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성해나 작가의 진실과 거짓이라는 흔해빠진 언어를 피해 진짜와 가짜라는 낡아 버려진 듯한 단어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다시금 생각이란 것을 하도록 이끈 혼모노는 관통하는 주제 이전에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졌다.

 

예소연 작가의 우리는 계절마다는 연작으로 기획된 작품인 듯한데, 이 작품에 앞서 현대문학6월호에 발표된 아주 사소한 시절에 이은 성장소설의 한 부분으로 계획된 작품으로 알게 되었다. 억압된 진심, 애증의 감정을 그려냈던 단편 사랑과 결함은 내게 무섭게 돌진하던 로봇 청소기를 안아들던 화자의 행위로 뭉클했던 감각을 지금도 얼얼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 예소연 작가의 작품에 대해 나만의 어떤 고정된 느낌을 가지게 되었는데, 타인의 영향력에 대해 냉엄하게 선을 긋고 돌아서지 못하는 여린 마음의 인물을 생각하게 된다.

 

이번 우리는 계절마다의 주인공인 중학교 2학년 희조 또한 또래와 가족 등 주변의 타인들은 물론 이 세계라는 불가해한 힘에 의해 휘말리는,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억압이나 연결의 고리로 묶는 힘과 같은 타자의 탓으로부터 벗어나 하나의 존재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내적 단단함으로 조금씩 성장해가는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 초등학교 친구였던 미정과의 재회가 의미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이 역시 애증(愛憎)이라는 양가감정과 다르지 않은 성분의 것처럼 여겨진다. 아마 소설의 문장을 인용한다면 그 이상한 낙차, 불가해한 타자의 힘과 벌어진 간극이 발산하는 나와의 견디기 힘든 그 무엇일 것이다.

 

성해나 작가의 작품은 내 기억으로는 이 작품 혼모노가 처음인 듯하다. 박수무당인 중년남자의 이야기다. 얼마나 꼼꼼하게 이 인물의 세계를 관찰했는지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어느 날 그의 내림 신이었던 장수할멈이 일언의 예고도 없이   빠져나가 신기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앞집에 앳된 신애기와 그 가족이 이사 옴으로써 삼십년 넘는 무당으로서의 삶이 가짜가 된 듯한 번민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이 진짜임을 입증하려는 몸부림의 여정으로 읽힌다.

 

신애기가 이사 오던 날 그 아이는 살기어린 눈으로 문수를 바라보며 중얼댄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아마 이 소설의 이야기 여정자체를 읽는 재미도 가득하지만, 진짜와 가짜, 가짜와 진짜가 뒤얽혀 무엇이 진짜인지 혼돈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지막 굿 장면의 박수무당의 붉게 젖어든 장삼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이미지는 흉내만 내며 살아 온 인생에 대한 애틋하고 강렬한 삶의 증명을 위한 몸짓이 내재되어 뭉클한 무엇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작품 제목을 혼모노(本物)’로 한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진짜배기 또는 진정한 영혼과 같은 긍정의 뜻을 지닌 혼모노라는 단어가 진짜 의미를 잃어버리고 가짜나 오타쿠같은 변질된 의미가 되어, 마치 이 변질된 가짜가 진실처럼 되어버리는 지금의 시대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하고 있다. 다수 혹은 내가 믿으면 그것이 진짜의미로 둔갑하는 세계의 맹목이 판치는 세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가짜가 되어버린 문수의 이 마지막 외침은 가짜인 진짜의 소리로 와 닿는다. 짧은 단편에 세대의 관점과 욕망에서부터 이 시대를 장악한 거짓 진실의 이야기까지 여러 주제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에 탄탄하게 결합되어 몰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한다. 아주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김기태 작가의 보편 교양은 고 3생 자유선택 과목을 맡게 된 교사 곽의 시선을 통해 보편적 가치란 것이 과연 합의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가치의 공유를 위해 개인성의 침해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의 과정을 담고 있다 하겠다. 요즘 고등학교에 새롭게 도입된 자주적 학습 선택권의 일환으로 개설된 선택과목에 얽힌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인식을 양분(養分)으로 보편성과 교양이란 언어의 윤리적 이성과 도덕적 판단력의 한계를 생각토록 한다. 교사 곽은 처음 개설된 고전 읽기과목을 위해 열정을 가지고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나름 강의의 내용을 구성할 고전작품을 고심하여 선정하고, 강의 준비물을 열정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선택과목의 현실은 타 선택과목에 비해 수월한 이수과목일 뿐이며, 아이들은 책상에 머리를 대고 잠에 빠지거나 타 학과 공부를 노골적으로 펼치는 공간으로 이용될 수단이다. 실제 다섯 명 남짓의 아이들만 선생의 강의에 관심을 보인다. 곽은 이 아이들을 위해서 강의를 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교장이 호출하여 학부모로부터 아이가 자본론을 읽고 있으니 걱정스럽다는 교양(?)’있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교장의 말은 한마디로 전교조 교사가 수업시간에 지본론을 읽혀 빨갱이를 만들고 있다고 소문 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이다.

 

곽이 상기하고 있는 보편적 교양과 바람직한 인성을 형성하며 [...]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고, 읽은 것은 물론 말하기와 글쓰기 등 통합적인....“ 운운하는 선택과목 개설의 취지부터 사실 모순의 언어로 가득함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제도 교육, 기성의 질서체제가 요구하는 지식을 갖출 것을 요구하며, 문제해결과 같은 판단력의 성취를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배반적인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하나일 것이다.

 

학부모의 의혹은 그 집 아이의 학업컨설턴트의 말로 유야무야 되어버리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아이는 곽의 표현으로 과제 자체의 의의를 스스로 판단하고 주장하고 설득할 줄 아는 것, 다른 말로 무언가를 읽었고, 의견을 생성했으며, 설득력 있게 표현해 낸. 곽은 아이의 수행평가 난에 이렇게 최고의 평가내용을 기재해주고, 아이는 서울대 일반전형에 합격한다. 이에 선생들은 곽에게 비아냥조의 말들을 건네는 데, 이제 애들 다 공산당선언읽히고, 머리에 빨간 띠도 매줘야 하는 거 아냐?“, 아무튼 이런 현실을 읽게 되면 교사들조차 이렇게 천박하다면 이 사회의 윤리적 건강성은 말해 무엇 할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작품은 이 천하고 편협한 현실을 드러내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러한 현실 사회 속에서 보편성이란 것이 대체 합의 될 수 있는 것인가의 회의적 물음이고, 이러한 가치가 어떻게 교양이란 것으로 묶일 수 있는가의 고민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사회에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다. 작가는 작품 인터뷰에서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진정성만 조각하는 것이 무슨 힘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작품 속 교사 곽의 고뇌에 놓인 자기 인식의 발전에 침을 한 방 놓는데, 강의 시간에 선생의 시야에서 배제된 대다수의 방치된 학생들에 대한 숙고가 없다는 점에서 분명 보편성이란 것이 고작 제도 내 유연한 적응자만을 위한 것임에 불과한 것으로 그치는 것에 대한 지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독자인 나와 멈춰진 질문,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할 같다. 머리를 싸매고 이 문제를 타개하지 못하는 이상, 어쩌면 이 사회 교육의 미래는 혼돈의 양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답답한 지점에 이른다.

 

사실 현실 교육에 놓인 과제로서의 보편과 교양의 어려움은 성인 사회라고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교육에서 굳어진 개념의 오류는 사회로 이어져 편협과 왜곡, 그리고 갈등이라는 이것들의 연장이다. 지금 현실의 세계를 보면서 이를 보지 못한다면 아마 그것이야말로 맹목(盲目)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무튼 이번 소설보다겨울 판의 세 작품 모두 탁월한 이야기 구성과 더불어 그 재미를 넘어서는 주제들이 내 정신이 양분으로 삼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얄팍한 지성에 사유를 재촉했다. 모처럼 흥미로운 생각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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