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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마법 걸기 | 읽고 느끼고 소통 2018-10-1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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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에게 마법 걸기

박성희 저
지식과감성# | 2018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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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마법 걸기』책은 인도 첸나이에 4년간 거주하며 겪은 인도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저도 첸나이에 2년간 거주한 기억 때문인지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와 실제 인도의 모습과는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상당히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 인도 이야기도 한번 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나에게 마법 걸기 - 박성희

박성희 수필가
경주 광주 출생
2001년 <현대수필> 『겨울, 향기에 관한』으로 등단
2002년 청춘수필집 『연자아씨』지음, 공저 다수
2011년부터 <코이언뉴스><중앙일보>(캐나다)에 수필 연재하고 있음
인도 <격월간첸나이한인일보> 2017년까지 2년 수필 연재
신문과 문학지에 기고하고 있음
한국문인협회 회원

책 속에서

첸나이 시내로 가는 길에 잠깐이라도 차가 멈추면 금세 거지 떼가 나타나 돈을 달라고 야단이다. 나는 주저 없이 몇 루피 준다. 백 루피 주다가, 오십 루피 주다가, 삼십 루피를 준다. 그마저 없을 땐 동전 몇 닢이라도 준다. 30p

나도 꽤 많은 나라를 돌아다녀 봤지만 인도만큼 거지를 많이 본 나라도 없다. 그리고 신체 절단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셀 수가 없다.
우선 의료 얘기를 하자면 인도의 의학 수준은 정말 낙후되어 있다. 최고급 병원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의 개인 병원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첫 번째는 의학의 수준이 낮은 이유가 첫 번째 일 것이다. 높은 의학 수준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높은 의학 수준의 것을 배워야 하는데 그 배움의 수준이 낮은 데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의료 기구의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의학은 우선 검진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치료를 위한 치료 장비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시설들이 낙후되어 있다면 의사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그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저렴한 과금체계이다. 치료비용이 우리나라 수준에는 훨씬 낮기에 낮은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작은 병원들에는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곳도 많다. 하루 2시간 와서 외래 진료를 보고 다른 병원으로 다서 다시 진료를 보는 외래진료 의사를 데리고 진료를 보는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의사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체 절단 자드리 많은 이유는 치료를 받을 비용이 없는대서 기인하는 이유가 첫 번째이고 의료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 그 두 번째이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아프다고 해서 얼마나 자주 병원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병에 걸려도 민간요법을 하면서 그냥 버티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다가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는 수준이 되면 그때야 병원을 찾게 된다. 병원에서 의료의 수준이 낮다 보니 치료가 가능한 것도 절단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번은 한국 사람이 자신의 아이가 다리가 아파서 병원을 갔더니 철심을 박아 놓은 경우가 있었다. 철심을 박은 곳에서 계속 고름이 나와서 병원을 찾았더니 다리를 절단해야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급히 한국으로 데리고 갔더니 한국의 병원에서는 다리를 절단할 필요도 없고, 처음부터 철심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고 했다. 그 아이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인도로 들어와 현재 절단 없이 두발로 잘 걸어 다니고 있다.

거지의 얘기를 하면 참 가슴 아픈 이야기이고 답도 없는 이야기이다. 인도는 인구가 13억 명이다. 델리에만 거주하는 인구가 1억 명이다. 우리나라 현재 인구 5천만 명과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인구 수이다.  잘 사는 사람도 많지만 그보다 못 사는 사람의 수는 이로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그나마 음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는 있다. 먹을게 정 없으면 열대과일을 싼 가격에 먹을 수 있고, 밀가루를 싸게 사서 먹어도 먹고 살 수는 있다. 집이 없어도 바나나 잎으로 집을 해서 살면 살아갈 수는 있다. 특이한 점은 이들의 행복지수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이는 주위에 못 사는 사람이 다 같이 모여 살기 때문인 것이 큰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우리 동네에는 나도 못 살고, 우리 앞집도 못 살고, 우리 옆집도 못 산다면 그런 동내에서 평생을 살아간다면 신분상승의 욕구를 느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고, 카스트제도에 의해서 태생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에게 삶의 불만족이 끼어들 자리는 얼마나 있을까? 어찌 보면 이는 행복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고통의 대물림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는 인도에 4년 넘게 있으면서 과연 행복이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것인가에 대해서 정말 오랫동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바나나 잎으로 집을 짓고, 오수를 퍼서 밥을 해 먹고, 밀가루 반죽으로 하루를 연명하면서 행복하게 산다면... 그래도 행복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니 잘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 생각에 대한 나의 답은 행복에도 높낮이가 있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의 삶의 기본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복은 인생의 목표, 최고의 가치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정 수준의 삶의 기본이 충족된 상태는 어느 정도 수준을 도달했을 때를 의미하는 것인가? 나는 기본적으로 원초적 본능을 행함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는 상태를 이루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라도 생각한다.
다른 말로 의식주를 불편함이 없이 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인생을 살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고 살아도 되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행복의 가치를 논할 수가 있는 상태의 최소한의 충분조건에 도달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쉬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정말 어려운 삶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나는 아직도 그 수준의 경제적 자유를 이루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물가와 상황을 고려해서 내가 의식주의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기 필요하다. 돈이라는 것은 행복의 기본 요건이 될 수밖에 없고 주위 환경에 따라 필요의 양이 달라질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행복은 어쩌면 행복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은 자를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는 화장. 수백만의 윤회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은 화장을 선호한다. 그래서 화장장으로 유명한 저 갠지스 강가에는 불길이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34p

인도에서는 아직도 상여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우리나라의 옛 모습처럼 상여를 매고 마을을 지나간다.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은 슬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도인들은 기본적으로 윤회사상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윤회사상은 불교에서 나온 것이 아닌 힌두교 그리고 그 이전부터 인도에 있었던 사상의 기본이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도 하고 더 좋게 다시 태어난다고 믿기도 한다. 그래서 육신을 태워 현생의 육신과의 관계를 정리해주고자 하는 것이 화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직계가족도 크게 슬퍼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더 좋은 모습으로 환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말 그대로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문화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왜 슬픈 것인가? 그 이유는 다분히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 봤기 때문에 슬픈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은 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아무것도 없이 없어진다. 다시 태어난다. 다른 곳으로 간다.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봤을 때 과연 죽은 자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과연 그렇게 슬픈 일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슬픈 이유는 다분히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 죽음을 바라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래서 죽음도 결국 나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인도하면 전에 보았던 슬로건이 생각이 난다. Incredible India
인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1960년대서부터 2018년까지 공존하는 나라가 인도이다.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보는 나라가 인도이다.
이번에 『나에게 마법 걸기』 책을 읽으며 다시금 인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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