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역사의 물줄기를 변화시킨 그 중심엔 항상 사람이 있었다.
시대적 양심과 소명이 있었기에 그 역사는 가혹하고 힘겨웠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평안히 누려왔던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요즘 많이 생각한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특수한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 흐름의 면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계륵과 같은 존재감으로 침략을 당해왔고, 식민지가 되었고, 전쟁까지 겪었다.
자존감이 바닥 쳤던 지난 날의 아픔들을 회복하고 치유하기엔 힘 없는 국민들의 고통 분담은 너무 컸다.
너무 많은 고통으로 내성이 생긴걸까? 이젠 내우외환으로 인한 고통,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움트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대는 암흑이었다. 밖이 아니라 안에서의 권리와 주권을 당당하게 찾겠다는 의지, 그 중심에 <영초언니>가 있었다.
꽃다운 푸르른 청춘의 20대,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왔지만 뒤숭숭한 시절과 대학은 더이상 젊은 학생들의 꿈을 오롯이 품어줄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아니었다. 무엇이 젊은이들의 꿈을 빼앗았을까?
<영초언니>를 만나서 굴곡진 1970,80년대를 투쟁해야했고, 아파해야했던 저자.
제주도의 영특했던 아이가 서울의 명문 대학에 들어가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저자는 순탄한 길을 버리고 변할 것 같지 않은 시대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을까?
'박정희 장기 집권 반대, 유신 헌법 철폐'는 시대적 민낯이었고, 우리네 자화상이었다.
더이상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 속에 수많은 <영초언니>들이 있었다.
2016년 12월 겨울을 잊지 못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촛불을 들고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왔다.
비정상적이었던 사회가 제자리로 돌아오길 원하는 저마다의 간절한 소망을 품고.
불완전하고 위태로웠던 민주주의를 제대로 회복하기 위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7년 '나라다운 나라, 사람이 먼저인 나라' 모토로 새 정부가 출범했다.
국정농단 중심에 있는 사람들에게 죄를 묻고 죄값을 치르게 하는 과정에 서 있다.
정말 웃긴 것은 책 서두에 적힌것처럼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차고 호송차에서 내려 특검조사를 받으러
가는 중에 몰려든 취재진에 외친 국정농단의 주인공 최순실의 말이다.
'여기는 더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너무 억울해요!'
나, 이 말을 듣고 빡쳐(죄송해요!!! 험한 말 해서) 뒷골이 땡기는 줄 알았다.
그녀가 과연 신성한 '민주주의'란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란 뜻을 알고 말하는가?
억울하다는 말은 어느 별에서 온 외계어인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장본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영초언니>가 그토록 갈구하고 외쳤던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한 몸부림과 희생이 오브랩되었다. 40여년의 세월을 넘어 똑같이 수의를 입었지만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여자의 '민주주의'.....
비현실적이다. 아울러 수많은 영초 언니로 인해 자유 민주주의가 조금씩 싹을 틔어왔고, 그 소중한 열매에 그냥 또 무임승차 했다는 생각도 들면서 아울러 많이 고마웠다. 더 이상 억압된 현실에 침묵하지 않아도 되니깐. 누구나 마음먹은대로 어디에서나 사회의 부조리함과 개인의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으니깐.
법은, 법치주의는 그 숱한 오류와 무고한 사람들의 고통과 목숨을 담보로 조금씩 정당해지고 단단해져왔던 것. 이 땅의 법치주의는 그렇게 한발 한발 더딘 걸음을 걸어왔습니다. 43년 전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법 위에 군림했던 통치자의 2세가 긴 세월을 돌아 법에 의해 탄핵되면서 비로소 박정희 시대가 마감됐다는 지금..... 비가 그치고, 밤이 지나면 다시 벚꽃은 필 터인데 꽃보다 가벼운 이슬로 사라졌던 사람들에게 보내는 오늘의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제대로 발견할 줄 알아야하는 영민함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부정과 부조리함은 숨겨야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드러내며 문제제기를 하는데서부터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음지에서 양지로의 공론화는 사회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된다는 확신이 생긴다.
정직하지 못한 사회에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행동하는 <영초언니>와 같은 선량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나라다운 나라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은 이제 조금씩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때도 있었고, 지금도 어느 음지에서 자기의 몫을 감당해내는 언니들을 생각한다. 미안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