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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제 블로그에 좀 가져가겠습.. 
2007년 구입해두었다가 얼마 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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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플라톤 서설 - 에릭A.해블록 | 2023-06-1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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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플라톤 서설

에릭 A. 해블록 저/이명훈 역
글항아리 | 201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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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직전의 세대까지 그리스는 구송문화속에서 에토스를 전달해 왔다.

에토스란 집단에 공통된 하나의 문화로서, 집단적 응집력을 나타내는 공법과 사법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의 교육체계 또한 구송문화 속에서 시적 진술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송문화, 곧 문자가 없던(또는 대중화되지 않던) 문화에서는 암기와 복송으로 정보의 전달하고 보전해야 했으므로 운율이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운율적, 시적인것이 기능적인것 이었다.

그러므로 시인이 구사하는 서사시적 언어는 공동체에서 기준이 되어, 시인은 공동체에서 문화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시는 현대와 같은 순수문학이라기 보다는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집단적인 교육과 생활양식의 매체였으므로,

개인은 집단의 경험이자 하나의 포괄적인 정신상태(시적 정신상태)에 일체화 되었다.

그러나 구송문화가 끝나면서 자아는 공동체에서 독립되어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자율적 인격을 프시케라고 한다.

자율적 인격개념이 생겨남에 따라 "너 자신을 알라"와 같이 주체(주관)는 대상(객관)을 전제하게 되었다.

더불어 '하나'일 뿐만 아니라 시제나 시간으로부터 동떨어진 '참존재', 곧 '(물)자체'를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율적 주체는 더이상 상기하거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며, 물 자체로서 다수의 추상적인 법, 원리, 원칙과 대면하고, 주체의 인식대상이 된다.

이렇게 인식하는 주체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과 그것들을 포괄하는 더 상위의 대상, 즉 궁극적인 인식의 총체적인 영역을 일컬어 이데아라고 한다.

이데아는 있는 대상, 대상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체와 분리된 객관성'이라는 특성이 있으며,

현상의 외부에 있으면서 현상에 관여하는 실재로서 억견, 감각장치의 활동보다 인식과 지성의 활동을 지향한다.

당시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에서는 우리의 외부에는 하나의 세계나 질서있다는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한 외부세계는 지성의 대상이지, 직관의 대상이 아니므로 감각과 연관된 언어로써 그것을 표현하려고 하면 모순에 빠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식과 별도로 독립해 있는 그런 외부세계의 구조와 논리를 표현하기 위해 이데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따라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플라톤만의 개인적인 학설이 아니라 시적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대적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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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티마이오스 - 플라톤 | 2023-06-1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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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티마이오스

플라톤 저/김유석 역
아카넷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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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생성되기 전에 세 요소(존재, 공간, 생성)가 있었고

공간을 채운 운동성은 그 힘에 의해 분리된 혼돈의 상태이다.

여기에 신은 신의 지성의 원리를 적용하여 질서를 부여했다.

1) 존재:물질

물질의 기본 형태는 흙, 공기, 불, 물이다.

물체는 면에 둘러싸여 있으며, 면은 삼각형으로 구성되어있다

삼각형의 기본형태는 등변직각삼각형과 부등변직각삼각형으로 구분할수 있고 물,불,공기,흙을 삼각형에 대입해보자면,

물,불,공기는 부등변직각삼각형으로서 두 성분이 결합, 해체 함으로써 새로운 등변직각삼각형을 구성할수 있다

흙은 결합, 해체로서 변화하지 않으므로 등변직각삼각형이다.

2) 공간:수용소

생성의 원리는 지성적인것으로 영구불변하는것과 모방물로서 생성된 변화하고 가시적인것으로 전제했다.

그리고 이 원리는 모든 생성의 수용소, 모든 생성의 유모로 작용한다

즉, 물리적 실체는 원리는 원천(아버지)이 수용소(어머니)를 통해 생성물(자식)로 생성된다.

여기서 수용소는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니므로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없는 상태로서, 모든것을 만들어낼, 모든것으로 될 가능성을 내표하고 있다.

3) 생성:운동성

입자들 간의 빈공간이 생기는데, 입자들간의 밀도차이에 의해 그 공간으로 밀려 들어간다.

그와중에 입자들이 분해,결합하면서 공간이 변화하고 따라서 (입자 및 공간의 같지않음이 꾸준히 생겨나) 끊임없이 운동을 하는것이다.

즉, 불,공기,물,흙은 상태변화에 따라 물이 공기가 되고, 흙이 되고, 그렇게 순환하며 변한다.

따라서 물은 반드시 물이고, 흙은 반드시 물이라고 말할수 없다.

그러므로 항구적인 명칭으로 표현해서는 안되고, 현상적인 특징으로만 표현해야 한다

-물질의 운동성에 따른 상태변화를 삼각형에 대입하면

흙이 불, 공기, 물에의해 해체되면 흙의 입자크기가 작아진 흙인 상태이다.(정6면체)

물이 해체되면 하나의 불과 두개의 공기 입자가 된다.(정20면체 = 정4면체 + 정8면체x2)

불이 해체되면 해체된 입자 두개가 공기 입자가 된다(정4면체 = 정8면체 /2).

공기가 해체되면 공기입자 2.5개가 물 입자가 된다.(정8면체 = 정20면체/2.5)

4) 지성

신의 혼을 모방한 형태로 형상, 의견, 꿈이 있다.

- 형상 : 불변, 결합불가능, 감각적 지각 불가능

- 의견 : 변화함. 지각에 의해 포착됨

- 꿈 : 변화함, 비논리적, 근거없음

인간의 지성은 신의 혼을 받아 불변하는 형상이었으나 감각개체인 몸과 섞임으로 인해 의견, 꿈과 같이 혼탁한 형태가 생겨났다

이것은 사회 속에서 더 혼란스러워져 집단의 잘못된 지성으로 발현되기 쉬우며 따라서 개인의 의식도 잘못되게 된다.

그러나 올바른 양육과 교육을 받게되면 올바른 이성을 갖게된다

5) 시간

시간은 '수' 라는 단일한 개체에 운동성과 영원성을 부여한 것으로서,

늘 생성이 진행되는 상태이며, 감각세계의 것들은 시간의 운동성에 의해 생성, 소멸된다.

시간에 부여된 운동성은 천체의 회전에 의한것이며, 특히 천체의 궤도가 나선형이므로 시차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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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확장소설 - 김태용 | 2023-06-1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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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확장 소설

김태용 저
문학과지성사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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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의 여름>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에 합류한 미래의 북한.

중세가 종교에 갇혀있었던것처럼 현대는 과학에 갇혀있고, 따라서 공감의 대상은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이다.

휴대폰의 실시간 대기환경 측정 앱의 자외선 지수는 5.41과 5.47이다.

..오차는 0.06에 불과하다. 평양역 앞 전광판에서 본 자외선 지수는 5.23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를 기분좋게 한것은 41과 47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p17

그러나 과학 또한 필연적인 법칙이 아니라 우연적인 법칙이기에,

모든 것의 의미와 가치가 명확하여 방황할 필요가 없는 세계에서 벗어난 "자유"라는 새로운 질서는 무관심과 고독함을 가져오므로 불안을 느낀다.

숫자는 이렇게 소외된 개인을 의미한다.

모든 중력작용에서 벗어난 사물들은 무중력 상태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

질량이 없는 물체의 속도 , 빛의 속도로 움직이며 맞닿는 물체마다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p36

그러나 홀로있음으로 해서, 이러한 존재의 근거없음이 역으로 나의 근거를 찾고자 하는 소망을 강화한다.

홀로수는 이렇게 내던져진 자아, 그래서 변화의 에너지를 가진 자아를 의미한다.

홀로수, 외롭지만 엄청난 에네르기를 가진 강한수라고 생각했습니다. --p19

그것은 제한과 억압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환원된다.

현재를 무너뜨려야 현재를 넘어설수 있다.

즉, 죽음과 삶 사이에는 환영이 필요한것처럼 유령은 이러한 대안을 찾는 시도, 변화의 욕구를 의미한다.

신들의, 아니 유령들의 주사위가 머릿속에서 계속 굴러다니며 숫자를 바꾼다. 5.2.3. 이제 내가 주사위를 던질 차례다. --p29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0으로 수렴되는 이야기입니다. --p30

타자에 의해 규정지어진 자아는 이제 자유속에서 유령처럼 끊임없이 떠돌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가 보고있는 이마주image 속의 사람이란것을 요즘 깨닫고 있소

나는 또 누가 보고있는 이미지의 주름에 불과할까, 불과하더라도 기쁨슬픔의 나선형 주름으로 가득한 이미지. 이마주 --p46

<우리들은 마음대로>

지성은 증명할수 없는 소망을 파괴하여 절망에 빠지게 할 뿐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다.

세기말과 현대 자본주의를 비예하는 거룩한 철학인도 밥상의 밥풀을 뜯어먹고 변소의 파리와 싸워야만 하오. --p53

예술과 이상을 꿈꾸는 이상의 굴레는 아이러니하게도 담배 한개비조차 필수없을정도로 나를 꽉 묶어두고 있다.

* 이상은 시인 이상이기도 하지만, 이상을 돌보아야 한다는 핑계로 나 자신의 굴레에 스스로 갇혀있는 연심(화자:이상의 부인)의 거짓된 합리화를 의미한다.

나도 이제 행복한 과부, 메리 위도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구름 꼭지를 하나 입에 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담배 정도는 나도 피울줄 안다. 다만 어릴적부터 폐가 좋지 않아 안 피우고 있을 뿐이다. --p63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허울뿐인 이상과 거기에 안주하는 나를 죽여야 한다.

Adouble suleide.

ALonely Suicide.

※ 각주) 이상의 소설 <단발>의 원문에는 Adouble Auleide라는 문장이 있다. 이상 연구자들은 A Double Suicide의 잘못된 표기라고 보고있다.

에인론리 쑤싸이드ALonely Suicide. 지금쯤 33번지에 순사들이 찾아와 방안을 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티룸의 시계는 정확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곧 평양행 기차가 출발할것이다. --p70

**화자 연심은 남편(시인 이상)때문에 갇혀있다고 생각해서 Adouble suleide( 곧 A Double Suicide) 라고 했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 만든 굴레임을 알고있으므로 ALonely Suicide 라고 바꾸어 말한다.

진화는 외부환경에 적응하는것이 아니라 내적 요구에 따라 외부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향해 진화한다.

평양행기차가 곧이어 플랫폼으로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정확한 시간이다. 틀림없다.

정원언니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떠날 채비를 한다.

일어나자.

가지.

나는, 우리들은 이제 마음대로 할수 있다. --p71

<낮을 위한 착각>

나와 이름이 같은 다른 아이. 그 아이는 화자의 경직된 도덕속에 내재한 욕망을 상징한다.

- 아이의 이름보다 내가 더 궁금했던 것은 식탁보 구멍 속에 들어간 아이의 손가락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표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게 좋으니? 바보같은 질문이다. 어떻게 말해도 아이는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답이라니, 애초에 그런 것은 없다. --p125

- 나를 구렁텅이에 밀어넣고 있는 무의미한 생각으로부터 가까스로 빠져나오기 위해 내가 지금 찻잔속에 손가락을 넣어 휘젓는다면 그는 뭐라고 할것인가? 지금 무슨 짓입니까? --

 

바로, 선과 악이라고 불리는 낡아 빠진 망상속에 인간을 길들이기 위한 방편일 뿐인 경직된 도덕.

집 앞의 정원이 있는 낯선 이 공간, 초대받지 않은 상태에서 초대받은 것처럼 나무 식탁 앞에 앉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실어증과 손놀이는 달라붙어있는 정신적 외상의 발현인가? 실어증으로 구멍난 언어의 속살을 아이는 식탁보의 구멍을 통해 만지고 있는 것일까? --p133

욕망은 삶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금욕적 이상은 삶을 거스르는 삶이므로 자기모순이다.

곧 "양심의 가책"은 힘을 가진 자들이 인간을 길들이기 위한 방편일뿐이다.

편두통이라니, 거짓말은 아니지만 다소 과장이 섞여 있는 말이었다. 일종의 작가적 허영이었다.작가라면 으레 그런 병증 하나쯤은 갖고있어야 한다고, 누가 가르쳐준것도 아닌데 나는 신체와 정신이 변증법을 이루는 엄살로 내 작업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있던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런말을 공표하고 나니 편두통이 점점 심해진것도 같다. --p131

따라서 한낯의 빛(선, 도덕)은 어둠(악, 욕망)의 깊이를 알지못한다.

- 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찻잔에 비친 얼굴을 보며 다시 살아볼까, 라고 썼던 시인의 말은 거짓말이다. 그는 분명 다시 살아볼까, 라는 문장을 미리 쓰고 찻잔에 비친 얼굴을 만들어냈을것이다.

다시 살아볼까, 라는 문장에 감동한 독자들은 모두 발가벗겨서 다시 살수 없는 곳으로 보내야만 한다. --p131

- 어째서 그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인가, 그깟 차 한잔 때문에, 차 한잔 때문에 한사람의 머리가 폭발할수도 있다... 나는 눈앞의 차 한잔도 쉽게 마실수 없는 사람인가. --p135

그러므로 어둠을 들추어 냄으로써 직면할때, 어둠은 비로소 빛이 된다.

-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공포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것은 언어 이전의 공포일 뿐이다. 그 공포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이전의 공포를 끌어안아야만 한다. --p142

- 문이 열리고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다. 불을 켜지 마라, 켜지 마!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아이의 얼굴이 눈이 부실 정도로 환했다.

너, 뭐야, 낮에 본 아이는 저녁에 훌쩍 큰 것처럼 보였다. 너는 낮보다 밤에 잘 자라는 아이구나. 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바라보자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빠가 저녁 드시러 오래요"

그러나 두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p151

<밤을 위한 착각>

진리는 속이려는 의지로부터 나오는것이다.

불을 켰다. 화병에 비친 일그러진 내 얼굴에 놀랐다. 공포는 어둠 속이 아니라 빛속에 있다, 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빛의 발견 이후 인간은 공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56

의식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충동 또는 본능적인 욕구 등이 전경에 나타나려고 할때에 일어나는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등산화가 없는 인간이 등산을 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의미라니.의미라는 단어가 또다시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얼어죽을 의미.

의미란, 발바닥의 각질처럼 자주 나를 괴롭혔지만 감출수있을때까지 감추는게 좋다.

의미란 걸음걸이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걸으걸이가 같은 사람은 없다. 나의 발자국은 얼어붙은지 오래다. --p163

그러므로, 타인을 사랑하면서도 그보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에 우리는 타인에게서 또 하나의 내 모습만을 볼 뿐이다.

너는 나의 말에 기분이 좋아 아하하,하며 입을 크게 벌렸는데 금방이라도 너에게 잡아먹힐 것 같았다.

너는 나를 먹어치울것인가. 어느 부위부터 먹을 것인가. 이왕이면 나의 언어부터 먹어주었으면 좋겠다. --p165

그녀의 모습속에서도 자신의 모습만을 보는 연인과 같이

이쯤에서 역할을 바꿔야할지도 모른다. 너에게 착각의 짜릿함과 혜택을 넘겨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홀가분하게 너의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고 싶다. --p173

그렇게 욕망은 보이지 않을때만 기능을 발휘한다. 그것은 드러나면 허상이요 억압되는 기능을 발휘하는 진리와 같다

스스로를 감출때만 기능하는 진리의 모순.

- 죽은 아버지, 죽은 엄마. 왜 우리는 거기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못하는 걸까, 왜 죽은 자들에게만 집착하는가 --p182

- 빈터는 더 이상 빈터가 아니다. 빈터가 쪼개지고 있다. 죽은 엄마에 시달리는 너는 소음이다. 너라는 소음을 견디지 못하는 나는 노이즈다. 죽은 아버지에서 달아나고 싶은 노이즈다. 물푸레 노이즈다. 파란끈 노이즈다.침묵의 노이즈다.착각의 노이즈다. 여기까지다. 내려가야 한다. --p182

<알게 될거야>

현실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운동하므로 대상은 고정된, 완료된 것으로 있는것이 아니라 생성중의 것으로 있다.

따라서 대상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실재는 허상으로만 존재한다.

같은 강물에 두번 빠질수 없고 같은 음악을 두번 들을수 없다. 그렇다면 같은 문장도 두번 읽을수 없는 것이 아닌가. 반복은 없다. --p195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동일한 자아로 이어주는것은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불연속적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주체의 동일성은 실체의 동일성보다 오래 존속하지 않는다. 즉, 모든 동일성은 고정된, 규정된 어떤것이 아니라 반복과 재현으로서 흉내낸것에 불과한 것이다.

누가 읽었는가.누가 기억하는가.누가 읽었는지 알수 없으니 나는 모르는척 그대로 쓰는 것이다. 아마 그럴것이다. 확신한다. 확신이라는 위대한 착각에 빠지면 마음이 한동안 편해진다.

나의 모든 글은 그 문장을 쓰기 위해 존재하는것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지속된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쓰는것이 아니라 글의 어느 좌표에 위치시키기 위해 무수한 문장들을 선택하고 결합하고 나열하는 것이다.--p202

* 같은 문장을 계속적으로 언급한것도 이런 의미를 표현한것으로 보여진다.

곧 나의 실재도 반복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가진다.

- 결국 나는 나무를 떠나서 살수 없는 인간이 될것이다. 나무화자.이 글의 제목은 또다시 바뀌게 될것이다. --p201

- 나는 내가 쓴것을 증명한 뒤 부정하기 위해 이 글을 지속해야 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쓰지 말하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일까. 너는 네가 무엇을 읽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된것일까. 같은 문장을 두번 읽을순 없는가. 이제 당신이 말할 차례이다.

그러니까 만나서 얘기하자.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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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관계수업 - 데이비드번즈 | 2023-06-1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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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계 수업

데이비드 번즈 저/차익종 역
흐름출판 |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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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알고 있음직한 내용이다.

공감하고, 경청하고, 진심으로 대하고.. 그런것들.

다만, 보통은 그걸 말로 표현하는게 어렵다보니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나는 인지했으니 나는 배려한것이나 상대방은 전혀 모르는 상태가 된다.

결국 공감과 배려와 진심은 나만 알고있음 ㅋㅋㅋ

그러면 애매하고 묘하고 찝찝하고 별거 아닌거같은데도 별거고..뭐 그런감정만 남게된다.

그래서 요점은, 상대방이 한마디 하면 나는 열마디 하는 정성을 보여라.

물론 말만 앞서는건 당연히 문제지만 말을 너무 아끼는것도 욕심이라는것이다.

노력 없이 얻으려는 욕심.

말하는 것이야말로 정성이자 노력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주변에서도 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확실히 구설과 오해가 적어보인다.

심지어 쟤는 뭔 말을 저리 주저리주저리 하나 싶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또한 그사람에 대해서는 오해가 적은것이다.

*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런책이 끊임없이 나오고 팔리고 한다는건 다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것의 반증이다.

그러니 자신이 이상한게 아니라 사는게 다 그런거라는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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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최고선악론(1권)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 2021-11-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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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키케로의 최고선악론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저/김창성 역
서광사 | 199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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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사상에 대한 반론을 먼저 제시하고, 이것을 검증하기 위해 에피쿠로스 사상에 대해 논의한다

<에피쿠로스 사상에 대한 반론>

 

1.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을 따르면서도 힘이나 생산의 근원을 간과했음

원자가 "최소"로 "이탈"함으로써 원자들간에 결합,통일,응집이 이루어진다고 함.

이 주장에서 힘에 대한 논리는 다음과 같은 오류가 있다.

1) "이탈" 개념의 오류

-만약 모든 원자들이 이탈하는 경우에는 아무것도 응집하는것이 없으므로 오류.

-만약 일부는 이탈하고 일부는 곧게 움직인다면 그 혼란한 운동성으로 세상의 체계가 없을것이다

2) "최소" 개념의 오류

-범위가 모호함

2.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을 그대로 갖고온것일뿐임

에피쿠로스는 원자, 공간, 상이 충돌될때 우리의 시각에 보여지고 우리의 인식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이것은 데모크리토스가 주장한것이며, 무한 개념 및 사물의 생성과 소멸 개념도 역시 그렇다.

3. 에피쿠로스 주장의 자체적인 논리적 오류

1) 감각으로써만 판단을 하므로, 참 거짓이 일관되지 않는다. 감각은 변하는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명예,정의,덕과 같은 이성에 의한 판단이 무시된다.

2) 도덕적인것을 스스로 행하는것은 쾌락이라고 함으로써

감각과 무관한 인식(이성에 의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감각과 무관한 인식을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에피쿠로스 사상에 대한 논의>

1. 쾌락에 관한 논의

1) 극단과 최후란 무엇인가

쾌락은 가장 좋은것이며, 고통은 가장 나쁜것이므로 극단과 최후는 쾌락이다.

고통과 쾌락 사이에 중간이 있는것이 아니라 고통의 해소가 쾌락이며, 그것이 선이다

2) 그것들은 어떤 성격을 지니는가

- 덕을 추구하는 실질적인 이유

덕은 선과 악에 관한 무지로 고통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것으로서,

곧 쾌락을 따르는것에 능숙하기 위해서이다.

- 절제를 추구하는 실질적인 이유

절제함으로써 이성에 따라 추구할것과 회피할것을 알게되어 정신적 평안을 가지므로,

곧 더 큰 쾌락을 가질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p37 48

- 용기를 추구하는 실질적인 이유

소심이나 비겁함은 고통을 가져오는 반면,

용기와 인내는 쾌락을 가져오기때문에 추구하는것이다.

- 정의를 추구하는 실질적인 이유

자선을 베풀음으로써 호의와 고귀함을 얻게되니 안정과 쾌락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2. 우정에 관한 논의

1)우정은 쾌락과 같다.

우정이 갖추어지면 내 편이 생기는것이므로 정신이 굳건해지므로 쾌락상태가 되고, 악에 휩쓸리지 않는다.

2)우정이 쾌락을 위해서 추구되어서는 안된다.

유익함 때문에 우정을 가지는것이 아니라 친밀함의 결과로서 우정이 생기는것이다.

3)우정은 조화롭게 하므로 그 자체로 의미있다

직접적인 유익함이 없더라도 친밀감을 느끼는것은 그 자체로 유익한 일이다.

3.에피쿠로스 사상의 요약

- 정신의 조화를 위해서는 쾌락이 필요하다

지혜, 도덕, 정의도 중요하지만 정신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것들이 실현될수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와 더불어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육체적 고통과 동떨어진 정신의 고통은 없기 때문이다.

- 본성에 따르는 삶

이성으로 계획된 미지의 현상에 대한 것보다 실질적으로 닥친 현실에 대한 괘락과 고통에 우리의 본성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본성을 제대로 앎으로써 무지에 의한 공포를 없앨수 있고,

본성에 따르는 삶은 자연의 흐름대로 살면 되므로, 확실하고 안정되고 행복할 것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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