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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평전] 오~그대여~ 내 마음과 똑 같다면~ | 왜 배움은 2020-07-2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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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라스무스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저/정민영 역
아롬미디어 | 2006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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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배경이 중요하다. 책은 저자 '츠바이크'가 독일에서 쓴 마지막 전기 소설이다. 1934년 히틀러가 제국의 총리가 된 지 1년이 지난 시기 책이 간행되었다. 독일을 떠나기 전, 그 종교 전쟁이라는 혼돈의 시대 '에라스무스'를 빌려 자신의 사상적 입장과 신념을 책을 통해 밝힌 것이다. 책에서 츠바이크는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16세기를 자신의 현재로 끌어 들인다.  먼 과거가 지금이 되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에라스무스'는 혼돈의 시대 가톨릭과 루터의 개혁신교, 어디에도 자기 주장을 펴지 않는다. 당시 유럽이라는 세계는 '에라스무스'의 정신과 사상이 우상이 되었던 시기다. 대립하던 두 종교는 단지 '에라스무스'의 글의 힘만 빌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좋은 무기였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침묵한다. "보아라, 그리고 알았으면 가던 길을 계속 가라!" "영리한 자는 불평하지 않으며, 현명한 자는 스스로 흥분하지 않는다."

  시대는 책의 인간 '에라스무스'를 이성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그 영향력을 막을 수 없는...폭력을 혐오하는 인문주의 세계. 한동안 유럽은 '에라스무스'의 언어와 인문주의로 통일되었다. 인문주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인종인지, 어떤 계급인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국적이 어딘지 묻지 않는다. 누구나 이 자유로운 인문주의 공동체에 들어 올 수 있다. 그러나 인문주의에는 민중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인문주의의 가장 큰 비극이었고 몰락의 근본 이유였다. 현실 세계에서는 전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데도 책상에 앉아서 도덕 세계만 구상했다. 무엇이 골목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지, 대중의 깊은 곳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인문주의자 그들은 자기 방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상한 말은 현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를 더욱더 갈라놓는단 말인가" 에라스무스는 「평화의 탄핵」을 통해서 모든 민중이 단결해 전쟁을 추방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불편한 싸움에 끼어들 용의는 전혀 없다. "나는 다시 꽃피고 있는 학문을 더욱 훌륭히 장려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한 중립의 자세를 지킬 것입니다. 나는 격한 간섭보다는 현명하게 자기를 관리하는 자제의 자세를 통해 더 많은 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중립의 자세를 '그리스도의 지독한 적'이라 하며 신앙고백을 요구했고, 에라스무스는 평화를 파괴하고 독일과 세계에 가장 끔찍한 정신의 '혼돈'을 가져온 루터를 경멸한다. 중립의 우상 '에라스무스'는 혼돈의 시대, 결국 어디에도 정착할 곳이 없다. 어느 도시나 카톨릭이다, 신교도다,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소식들을 듣는다. 츠빙글리는 카펠의 전쟁터에서 맞아 죽었고, 토마스 뮌처는 고문 기구로 고문당해 죽는다. 종교의 광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칼로 재세례파 교인들의 혀를 뽑고, 벌겋게 단 집게로 사제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고, 기둥에 묶어 불태워 버린다. 다른 편에서 사람들은 교회를 약탈하고 책을 불태우고, 도시를 불태운다. 신의 이름으로 광란하고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에는 사상의 자유, 이해와 관용, 인문주의 근원 사상을 위한 공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를 초월하는 공동체의 시대는 수십 년, 수백 년, 아니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전쟁과 유럽의 분열이라는 혼란 가운데서 결코 막을 수 없는 '희망의 원초적인 꿈, 공정한 이성이 승리하리라는 희망의 꿈'을 남기고 죽는 날까지 글을 쓰며 에라스무스는 죽음의 호흡을 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 츠바이크가 평한 에라스무스를 간략하게 나열해 보았다.)

 

  어쩌면 1935년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본 것일까. 에라스무스 시대와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던 유럽.  1차대전을 치르고 2차 대전이 시작될 유럽. 나치의 광신적 폭력이 시작될 무렵. 인문주의자의 한계를 보았던 츠바이크는 1942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나의 삶에서 정신적인 활동은 언제나 가장 순수한 기쁨이었으며 개인의 자유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고귀한 재산이었습니다.  나의 모든 친구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바라건데 그대들의 이 긴 밤이 지나면 떠오를 아침노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너무 성급한 이 사람은 여러분보다 먼저 떠납니다." (츠바이크 유서 194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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