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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역사 | 책을 읽다 2023-09-2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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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저/유나영 역
소와당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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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라고 하지만, 옷과 집은, 그래도 먹을 것 다음이다. 먹지 않고서야 생명이란 걸 유지할 수 없으니.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것이 먹을 것의 역사일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오랜 역사 동안 먹을 것이란 풍족했던 적이 없으니, 생존을 위해 먹는 행위는 그다지 편차가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의 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을 보니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음식의 역사에도 수 차례의 변곡점이 있었으며, 그 흐름의 안에서도 문화별로 정말로 다양성이 있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거의 정신 차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음식과 음식 문화가 소개되고 있다.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는 인류사에서 여덟 차례의 혁명적 변화가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고, 음식의 역사를 통해 인류사를 깊게 알아가는 길이다.

 


 

 

우선, ‘조리. 말하자면 그냥 날것으로 먹는 게 아니라, 음식의 재료를 어떻게 가공한다는 얘기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의 이용이다.

 

다음은 의례화. 생존 자체를 위해 그냥저냥 먹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절차를 따라서 먹게 된 것이다. 음식에 절차가 생긴 것이다.

 

세 번째는 사육이다. 말하자면 음식의 재료 차원에서의 혁명이다. 채집이나 사냥을 통해서 음식의 재료를 얻는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 가지고 키워서 얻어낸 것이다.

 

네 번째는 앞의 사육과 연결되는 것으로 농업이다. 여러 식물들이 개량의 과정을 거쳐 재배되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에서 이뤄졌지만, 어떤 것이 재배하게 되었는지는 지역마다 다르며, 일단 재배된 작물의 전파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이뤄졌다. 물론 이 부분에서는 이것이 반드시 인류에게 긍정적인 면만 가져온 것이 아니란 것은 많은 저자들이 지적해 온 바이긴 하지만, 일단 이 흐름에 올라선 후에는 되돌릴 수 없었다.

 

그 다음은 계층화를 들고 있다. 이것은 앞의 의례화와도 연결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계급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음식을 먹게 된 것을 말하는 계층화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음식 문화 혹은 절차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의례화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혁명으로 들고 있는 것이 무역인데, 이 장에서 말하는 무역은 상품으로서 음식물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건너간 것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후추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반면 생태 교환은 이식(移植)이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와 같은 작물들이 구대륙으로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음식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혁명은 산업화이다. 다양한 음식물이 산업화의 과정을 거쳐 대량 생산되고 대량 소비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간단하게만 살펴봤지만, 앞에서 얘기했듯이 정말 굉장히 다양한 음식과 음식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런 여덟 번의 혁명이 순차적으로 이뤄졌고, 한 혁명이 끝난 후 다음의 혁명이 온 것이 아니란 점이 아니다. 혁명들은 서로 교차하고 있고, 한 혁명의 와중에 다른 혁명 역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혁명의 과정과 결과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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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의 진화심리학 | 책을 읽다 2023-09-2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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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는 왜 페이크에 속는가?

이시카와 마사토 저/임세라 역
여문책 | 202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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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fake)’란 말을 그래도 쓴 이유를 나름대로 짐작해본다. 그저 거짓말이라, 혹은 가짜 뉴스로도 쓸 수 있지만, 이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인간 심리의 기제를 이야기하고자 해서였을 거라 생각한다. <옮긴이의 말>에서도 거짓말, 가짜 뉴스, 사기, 속임수 등을 모두 의미한다고 했다. 무척 고심한 흔적도 엿보인다.

 

요는 사람들은 왜 그런 페이크에 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즉 거짓 정보를 믿는 마음이 오로지 무익한 것이며, 피해만 주는 것이라면 지금과는 좀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거짓을 말하거나 하는 것과는 별도로, 그런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도 어떤 이득이 있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바로 진화심리학의 이야기다.

 

이득은,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빠른 판단이 필요하거나, 복잡한 판단 대신에 간단한 판단으로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온 것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 집단의 크기가 작은 사회에서 진화해온 인류가 페이크라는 것에 대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사카와 마사토는, 우리가 속고 마는 페이크의 종류를 그 구조와 관련하여 이유를 일곱 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겉모습이 만드는 페이크(성 선택을 생각하면 된다)

공감에 호소하는 페이크(과거 작은 집단에서는 동료들의 말을 믿을 이유가 충분했다)

언어가 조장하는 페이크(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었다.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그것을 믿을 만한 이유는 차고 넘첬다)

자기기만에 둥지를 튼 페이크(자기 긍정, 성취감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페이크로 이어지고, 또 페이크에 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학의 신뢰를 이용한 페이크(과학이 아니면서 과학을 내세우는 과학이 있다)

오해에서 생기는 페이크(손실회피 심리, 정의감 발휘, 확률을 판단하는 능력의 부족, 과잉 추정 등)

결속을 높이는 페이크(내집단 의식, 혹은 부족의식)

 

대응책도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몇 가지는 제도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제도적인 것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을 빼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렇게 정리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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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믿을 만한 방식, 과학 | 책을 읽다 2023-09-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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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과학의 기쁨

짐 알칼릴리 저/김성훈 역
윌북(willbook) | 202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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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과학을 하는 것은 기쁜 일인가? 하는 생각부터 했다. 물론 내게는... ‘기쁘다는 표현을 써본 기억은 별로 없지만, 대단히 만족스런 일이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과학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표현을 긍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봤을 때, ‘과학의 기쁨이란 게 다른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학의 기쁨이 과학자의 기쁨이 아닌, 과학을 하는, 과학적 사고의, 과학적 방법의 기쁨이라면 달리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이 과학자로서의 자기만족의 책이 아니라, 과학자 사회에 회자되는 책이 아니라, 그 집단을 넘어선 책이라면 과학의 기쁨은 미래의 기대를 담은 제목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짐 알칼릴리는 양자물리학자다. 과학을 사랑하며, 과학의 방법론은 믿으며, 그런 사고 방식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하다. 그가 생각하는 과학은 다층적이다. 그건 이론이나 연구의 결과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활동을 의미하기도 하고, 더욱 중요하게는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믿을 만한 방식이다. 이 표현을 잘 보자. 여기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들어 있다. 한 가지는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장 믿을 만하다는 것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방식이다. , 과학은 일종의 방식이며, 그런 과학의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여러 가지 방법들 중 인류가 개발해낸 가장 믿을 만한 것이란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인식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탐구한다는 것은 또한 생각, 사고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생각 또는 사고를 우리는 과학적 사고라고 한다. 그렇다. 이 책은 과학적 사고에 대한 얘기이며, 그것이 왜 중요한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알칼릴리가 얘기하는 과학적 사고란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을 구분하는 방식이며, 단순성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옳은 것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해결해야 하는 미스터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방식이며, 어려운 것을 호기심과 노력을 통해 이해해가는 방식이다.

의견이 아닌 증거에 집중하는 것이 과학적 사고이며, 여기에는 자신의 편견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태도이며, 우리가 원하는 현실을 만들어가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진보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어려운가? 그럴 수 있다. 과학자라고 해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이 여덟 가지의 방식, 태도를 굳건히 견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것만이 과학적 사고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자는 이러한 과학적 사고 방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기제이며, 사람이다. 만약 어떤 한 과학자가 그렇지 않더라도, 과학이라는 시스템을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힘과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과학은 쓸모가 있으며, 아름다우며, 믿을 만 한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여기서의 과학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주장이 아니란 점이다. 믿으라는 과학이 아니다. 증거에 기반한 토의를 통해 옳은 것을 찾아가는 방식이 바로 과학이다. 외친다고 과학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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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과학의 기쁨 | 한줄평 2023-09-20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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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적 방법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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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다윈의 식물들 | 한줄평 2023-09-20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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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의 다윈만이 아닌 식물학자로서의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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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 책 모음 2023-09-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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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gyedanbooks/223215672779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세균이 자라지 않는 ‘투명한 빈 자리(taches vierges)’

항생제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썩은 과일과 곰팡이 핀 접시, 하수구를 뒤져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그들은 왜 '플레밍'과 '왁스먼'이 되지 못했을까?

"2023년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도서"

출판사 책 소개

커다란 영광과 막대한 이익 뒤로,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

항생제를 개발했던 그들은 왜 역사에서 잊혀졌을까

자동차와 비행기가 우리의 이동 방식을 바꾸는 동안, 냉장고와 엘리베이터는 우리의 생활을 새롭게 했고, 컴퓨터와 인터넷은 우리의 사고 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안타깝게 죽거나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온전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우리 곁에서 생활하고 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달라진, 혹은 누군가 세상을 바꿔놓은 것이다.

몇십 년 전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이제 이런 변화의 감각마저 무뎌졌다.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로 예전 생활을 떠올려 보지만, 이제는 ‘있어서 새롭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없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항생제가 바로 딱 그렇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어느 독일 시인의 낭만이 애처로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어이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몸이 아픈 것은 외부의 미생물이 우리 몸에 들어와 그런 것이고, 항생제는 우리 몸은 가만히 놔둔 채 그런 세균만 골라 죽이는 물질을 말한다. 이제는 어린이들도 알고 있는 이런 의학 상식이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 곁에 등장한 게 채 이백 년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런 항생제를 발견하고, 연구하고, 개발한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찾아낸 1928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항생제가 발견되었다. 그 하나하나의 개발 과정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전쟁의 참화가 불러온 상처를 낫게 하고야 말겠다는 인류애도 있었고, 돈과 영광에 눈이 아득해 흩뿌린 더러운 얼룩도 또렷이 남아 있다. 일흔이 넘어 시작한 연구로 엄청난 돈과 평생 얻지 못한 영광을 얻기도 했고, 자신의 연구를 지도교수에게 ‘도둑’ 맞아 노벨상을 놓쳤다는 하소연이 예사롭지 않은 희대의 스캔들도 있었다. 탁월한 결과를 낸 과학자지만 그가 만약 여성이라면, ‘예쁜’ 영광은 기꺼이 줄 수 있어도 돈과 지위는 주지 않았던 지난 시절 허리조차 펼 수 없던 낮은 천정도 여지없이 들어 있다. 제3 세계의 전통 지식과 토종 자원이 눈 밝은 선진국 사람들에게 아무 동의 없이 그대로 흘러 들어가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지만, 보상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차별과 수탈의 역사도 남아 있다. 개인의 호기심 차원에서 진행되던 ‘소박한’ 연구가, 이제는 다양한 분야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모인 거대한 조직에서 대규모의 예산과 장기적 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공장제 프로젝트가 되었다. 이렇게 연구와 개발이 체계화되면서 더 많은 종류의 항생제가 개발되었고, 사람들은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탁월한 통찰과 끈질긴 실행력으로 성과를 얻은 사람들은 노벨상의 영광과 많은 돈을 손에 넣었고, 체계적으로 항생제를 개발해 상품화한 회사는 엄청난 돈과 영향력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플레밍’이나 ‘왁스먼’은 찾을 수 없다. OO회사 신약 개발팀의 분석 담당 OOO만이 있을 뿐이다. 회사에서 돈을 받고 연구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조직의 명칭으로 불리웠고, 그들의 이름은 논문과 특허의 각주로만 남았다. 이것 또한 세상의 변화였다. 항생제는 세상을 바꾸었고, 그 과정에서 항생제를 개발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이 책에는 그러한 과정과 변화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다.

들판에는 커다란 나무도 있고 화려한 꽃도 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작은 꽃들이 있고, 이른바 잡초라 불리는 식물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군가는 화려한 꽃을 찍어 사진으로 보관하겠지만, 나는 밝게 빛나는 그 꽃 주변의 고요하면서도 치열하고, 넉넉하면서도 치사한 풍경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 항생제 발견의 역사는 몇몇 스타 과학자의 영웅 서사가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활약한 수많은 과학자와 주변의 온갖 사람들이 얽혀 있는 다채롭고, 일상적이고, 연속적인 이야기일 때 한층 더 실제에 가깝고 가치 있는 역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복원하고 싶었다.

“더러울수록, 더 좋다”

하수구에서 흘러나온 폐수에서 찾은 항생제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에는 장티푸스가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열로 고생했고, 설사와 복통으로 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곳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원인을 찾아 질병을 퇴치할 방법을 찾았지만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던 많은 이들 중에 바다로 버려지는 폐수와 하수구를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하수구 이곳저곳에서 폐수를 조심스럽게 수집했고, 실험실로 돌아가서는 그곳에 무슨 세균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도시에는 장티푸스가 유행했지만, 도시 하수가 모여 버려지던 그곳 폐수에는 놀랍게도 장티푸스를 일으키는 살모넬라 균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하수구 근처의 곰팡이가 살모넬라균을 모두 죽여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태어난 항생제가 바로 세팔로스포린이다. 2022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처방된 항생제가 바로 이 세팔로스포린 계열의 항생제이고, 세팔로스포린이 널리 처방되는 경향은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더러운 폐수에서 세균을 물리치는 항생물질을 찾아낸 사르데냐 대학의 주세페 브로추는 이탈리아에서 이 물질로 약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이탈리아에서는 연구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전승국의 일원으로 이탈리아에 와있던 영국군 의사가 이 소식을 듣고, 옥스퍼드의 페니실린 팀에 해당 샘플을 보내 주었다. 이탈리아의 지중해 한가운데 있던 섬에서 발견된 항생물질이 멀고 먼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놀라운 약으로 탄생한 것이다. 개인의 역량만큼이나 어느 조직에서 어떤 네트워크로 일을 하느냐도 중요할까? 세팔로스포린 개발은 그 둘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말한다.

제3 세계 산골짝의 진흙 한 움큼에서 찾은 항생제,

‘공정한’ 연구를 묻다

필리핀의 의사 아벨라르도 아귈라는 죽음의 순간에도 ‘그 말’을 했다. 자신이 수집한 토양 샘플에서 에리트로마이신을 찾아냈으니, 글로벌 제약회사 일라이릴리는 자신의 기여를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그는 일라이릴리의 정식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수년간 필리핀 각지의 흙을 수집해 그중 항생물질이 있을 만한 샘플을 일라이릴리의 미국 연구소로 보내는 작업을 했다. 일라이릴리에서는 2년간의 연구 끝에 이 흙을 기반으로 탁월한 효능의 항생제를 개발했다. 그 항생제가 바로 현재도 꾸준히 사용되는 에리트로마이신이다. 이 약을 개발하고 판매한 일라이릴리의 개발팀과 영업팀은 엄청난 판매량에 다들 환호했지만, 아귈라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약의 탄생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억울한 아귈라는 미국 본사를 방문해 자신의 활동을 소명하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활동을 문서화 해놓지 않은 자신을 한탄했지만, 필리핀의 한 도시에서 이름을 딴 항생제의 명칭부터 시작해 너무나도 분명한 자신의 기여가 어처구니없이 무시당하는 데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필리핀 정부에서도. GATT를 비롯한 각종 다자간 협정과 무형 자산, 생물 자원의 공정한 이용을 내세웠지만, 일라이릴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특허와 각종 법률은 물론 로비와 영향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생물 다양성 협약이 하나둘 효력을 발휘하고 2014년 이후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제3세계의 어떤 생물 자원도 관련자의 동의 없이 국외로 반출이 불가능하다. 동의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가져다 쓴 미국을 비롯한 제약업계의 선진국들에게 이제 제동이 걸렸다. 그들은 이제 다른 나라의 풀 한 포기, 흙 한 줌도 마음대로 가져갈 수 없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항생제의 겨울’이 왔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는

항생제 ‘혁신의 실종’과 ‘발견의 공백기’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던 항생제가 어느 시점부터 개발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대부분의 항생제가 바로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 개발된 되었거나, 이때 개발된 항생제를 변형한 것이다. 하지만 거대 제약회사, 소윅 빅파마(Big Pharma)들이 항생제를 더 이상 개발하지 않았고, 연구 파이프라인에도 항생제는 더 이상 계획에 없었다. 항생제 개발이 1980년대 들어와 뚝 끊어진 것이다.

항생제는 개발 자체가 쉽지 않다. 항생제는 사람에게는 없고 세균에게만 있는 구조나 효소 혹은 생합성 과정을 표적으로 삼는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에게 부작용이 생겨 사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세균과 사람이 정말 많이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그렇지만도 않다. 요즘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되더라도 이전과 완전히 다른 항생제는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적 자체가 완전히 다른, 전혀 새로운 항생제가 아닌 이상 기존 항생제에 의한 내성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항생제 내성의 문제는 개발 자체의 어려움에 더해 항생제 개 발을 지체시키는 요인이다. 새로운 표적을 찾지 못해 기존 항생제의 내성 문제를 극복하는 항생제 개발이 어렵다는 문제뿐 아니라, 새로운 계열의 항생제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세균의 능력은 그 항생제에 대해서도 금방 내성을 획득해 버린다.

신약 개발의 어려움 외에 항생제 개발에는 ‘항생제 내성’이라는 문제까지 추가로 있는 것이다. 빠르게 개발해 많이 팔고 싶은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개발도 어렵고 약의 수명도 짧은 항생제를 굳이 개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원하는 약’을 만드는 게 훨씬 유리했다.

“쓸 수 있는 항생제가 없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박테리아

녹슨 못에 쓸려 세균에 감염될 수도,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바로 그 병원에서 세균에 감염될 수도, 여름철 물놀이장에서 신나게 놀았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세균이 옮아 감염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사소한 이유로 감염되었는데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가 없어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는 공포물 같은 예상은 그저 겁주기 위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다시 한번 짐 오닐의 보고서를 보자. ‘한 해’에 ‘천만 명’이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추가로’ ‘죽는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진화의 원리는 코끼리에게도 맞지만, 세균이라고 다르지 않다. 세균이 진화를 거듭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획득하고 나면, 그 이후 항생제는 그 병원균에 소용이 없다. 병을 고치는 데 필요하다고 의사가 처방한 만큼의 항생제를 꼭 지켜 먹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생제 내성에 관한 짐 오닐의 보고서는 이런 경고까지 내놓았다. 이 책에서 나온 많은 숫자 중 가장 섬뜩한 숫자다.

‘한 해’에 ‘천만 명’이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추가로’ ‘죽는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추가로 죽는 천만 명에는 내가 포함이 안 될 수도 있다. 천만분의 일일뿐이다. 하지만 그 낮은 확률에 나 혹은 내 가족이 해당되면 그때는 죽을 확률이 얼마나 될지. 확률은 참 잔인하다. 그래서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은 항생제 내성으로 끝을 맺는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면서.

[출처]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페니실린에서 플루오로퀴놀론까지, 항생제 개발의 진짜 역사|작성자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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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 다윈 | 책을 읽다 2023-09-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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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윈의 식물들

신현철 저
지오북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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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는 형형색색의 식물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고, 중앙에는 한 꼬마가 화분 하나를 들고 있는 그림이 있다. 바로 어린 찰스 다윈이다. 다윈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식물에 관한 책이니 딱 어울리는 그림이다(그림은 다윈이 일곱 살 때 여동생 캐서린과 함께한 모습이다. 다윈이 안고 있는 화분에 있는 식물은 케이프카우슬립이다).

 

다윈은 평생 식물에 관한 책을 여섯 권 썼다. 모두 1859종의 기원을 출판한 이후다.

1862난초의 수정(영국과 외국에서 자라는 난초가 곤충에 의해 수정되는 데 관여하는 다양한 장치들과 상호교배의 이점들)

1865덩굴식물의 운동과 습성

1875식충식물

1876타가수정과 자가수정(식물계에서 타가수정과 자가수정의 결과)

1877꽃의 다른 형태들(같은 종에 속하는 꽃들의 서로 다른 형태들)

1865식물의 운동 능력

그밖에도 수십 편의 논문에서 식물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보면 다윈은 식물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에 관한 책을 더 많이 썼고(7), 특히 종의 기원을 발표하기 전 자신의 연구자로서의 전문적인 능력을 쌓기 위해 따개비를 수년 동안 연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식물에 관한 책을 쓰기 전에는 식물학자로서 자격이 없다고도 여겼다.

 

사실 다윈은 어린 시절부터 식물과 함께 하며 자랐다. 케임브리지 시절에는 헨슬로 교수와 식물을 채집하며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비글호 항해를 하면서 식물을 채집하는 경우나, 항해 이후 채집한 식물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데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식물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달랐다. 아마추어와 프로와의 차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그것은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떤 한 종류의 생물에 대해 전문적인 분류와 분석 능력을 갖추지 않고서 그저 두루뭉술하게 무언가를 알고 기술하는 것으로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앞에서도 얘기한 대로) 따개비를 8년 동안이나 연구하고 그 결과를 내놓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종의 기원발표 이후에는 동물 연구만 아니라 식물 연구에도 천착했다. 식물을 단지 호기심만으로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변이를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진화 이론을 뒷받침하는 연구하는 것이었다. (비록 잘못된 것을 밝혀지기는 했지만) 동물과 식물이 공통의 조상을 갖는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연구라 여겼다. 그리고 진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일어난다는 자신의 이론에 어긋나는 현화식물의 갑작스런 출현이라는 수수께끼 중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연구이기도 했다(물론 그가 이 수수께끼를 풀어내지는 못했다). 다윈은 동물에서도 그랬지만, 식물에서는 연구한 분야에 대해서는 극도로 세밀한 관찰을 했으며, 최선의 실험을 통해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려 했으며, 그것을 책으로 남겼다. 그는 연구자였다.

 

식물학자 신현철 교수는 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식물학자로서의 다윈. 식물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고 하는 이야기. 무엇을 남겼고, 다윈이 의도한 바는 무엇이었나 하는 이야기.

 


 

 

나는 신현철 교수의 책을 종의 기원 톺아보기로 만났다. 가장 최근에 읽은 종의 기원책이다. 앞으로도 다윈이 남긴 식물에 관한 책을 번역한다고 한다. 기대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윈에 관한 평전으로 데스먼스와 무어가 쓴 다윈 평전만을 인용하고 있는 점이다. 다윈 평전으로는 재닛 브라운의 두 권짜리 평전이 나와 있다. 다윈 연구자로서는 재닛 브라운이 더 인정받는 걸로도 알고 있다. 재닛 브라운의 평전도 함께 분석해서 이 책에 담았으면 좀 더 풍성한 논의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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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문명 비판으로 읽다 | 책을 읽다 2023-09-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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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비 딕 하

허먼 멜빌 저/강수정 역
열린책들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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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벨의 모비 딕을 줄거리만을 위주로 읽는다면 단 몇 십 페이지에 불과할지 모른다. 실제 열린책들 번역본 끝에는 줄거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7페이지다(반면 역자 해설은 11페이지다). 서점에 축약본으로 나와 있는 모비 딕을 보더라도 매우 얄팍하다. 모비 딕은 소설로서의 줄거리만으로 그 진가를 얘기할 수 없는 책이다. 고래에 관한 생물학적, 생태학적 연구와 함께 고래잡이에 관한 문화사적, 산업적 고찰을 담고 있으며, 삶과 자연에 관한 철학적, 종교적 상징과 사유가 가득하다(그래서 마치 과학+인문 교양서로 분류하더라도 하등의 문제가 없을 듯 보이기도 한다). 또한 역사와 문학을 자유로이 인용하고 있다. 거기에 허먼 멜빌 자신의 경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을 함께 바라보아야, 이 소설 모비 딕의 진가를 파악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소설이기에 그 해석들에 대해 비평할 수 있을 때 이 소설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가 이뤄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거기에 이르지 못한다. 다만 모비 딕이라는 흰 향유고래를 중심으로 한 무궁무진한 상징 가운데 어떤 부분들에 조금 천착하면서 읽었을 뿐이다. 그 얘기만 조금 하겠다.

 

모비 딕은 분명 실체가 있다. 커다란 몸집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고래로서는 사악하리만치의 지능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에이해브 선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허상의 악마를 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체를 가지고 있는 모비 딕이 자신의 실체에 상응하는 만큼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의 경험과 함께 신화가 되어 더욱 커다란 존재가 되었다. 흰 고래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인간에게는 사악한 실체가 되어 (대부분에게는) 피해야 만 하는 존재, (일부에게는)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피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든, 정복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든 흰 고래, 모비 딕이 의미하는 바는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의 세계에 들여놓을 수 없는 타자(他者)의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광대무변한 자연으로 보든, 사악한 악마로, 혹은 인간 세계에서 야만인 집단으로 보든 상관없다. 어쨌든 내()집단으로 들일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에 대해 에이해브의 태도는 광적이다. 내가 저것으로부터 당했으니, 나는 그것을 정복해야 만한다. 반면 스타벅은 피한다. 중간은 없다. 피쿼드호의 선원 대부분은 한쪽에 환호하기도 하고, 두려움에 반대쪽으로 몰려가기도 할 뿐이다. 오히려 냉정한 것은 야만인이자 식인종인 퀴퀘그뿐이다. 그래서 소설은 강렬한 문명 비판이 된다.

 

일단 나는 이렇게 읽었다.

  

분명한 게 있다. 만약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 또 다른 것을 찾으리란 것이다. 고전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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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고래? 허먼 멜빌은 틀렸다 | 책을 읽으며 2023-09-1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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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고래와 고래 산업에 대한 박물학적 보고이기도 한 모비 딕에서 허먼 멜빌은, 고래에 대한 무자비한 포획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남기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허먼 멜빌은 틀렸다.

 

우선 우려한다. 다음과 같이 .

 

바다 괴물이 이런 마구잡이 추격을, 이런 무자비한 포획을 오랫동안 견뎌낼 수 있을까. 바다에서 끝내 절멸하지 않을까. 그리고 최후의 고래는 최후의 인간처럼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는 마지막 담배 연기 속으로 증발해 버리지는 않을까.

(중략)

이렇게 비교할 경우 고래도 사냥을 계속하다 보면 급격한 멸종을 피할 수 없다는 필연적인 결론이 도출될 것 같다.

 

그러나 결론은 그렇지 않다. 일리노이의 들소가 인간의 창에 의해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렀지만, 고래를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먼 멜빌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당시의 고래잡이 규모 때문이다.

 

하지만 고래잡이는 성격이 전혀 다르므로 바다 괴물이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최후를 맞게 될 일은 절대로 없다. 배 한 척에 40명이 타고 48개월 동안 향유고래를 잡으러 다니다가 40마리 분량의 기름을 싣고 귀로에 오르면 대성공으로 여겨 신께 감사한다.

 

또한 고래들이 잘 피해다닐 거라는 낭만적인 예측도 한다.

 

고래들은 작은 곶에서 큰 곶으로 옮겨 갔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해안에서 더는 고래의 왕성한 물기둥을 볼 수 없다면 다른 외딴 바닷가에서는 느닷없는 낯선 풍경에 깜짝 놀라고 있을 것이다.

(중략) 수염고래는 두 군데에 견고한 요새를 갖고 있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함락시킬 수 없을 곳들이다. 기민한 스위스 사람들이 골짜기를 침략당하면 산으로 후퇴했듯이, 대양의 초원과 습지에서 쫓겨난 수염고래는 마지막 보루인 극지의 요새로 퇴각하여 차마 넘볼 수 없는 얼음 울타리와 빙벽 밑으로 잠수했다가 빙원과 부빙 사이로 떠올라 영원한 12월의 마력 속에서 인간의 모든 추격을 물리칠 수 있다.

 

그래서 허먼 멜빌의 결론은 이렇다. 그것은 고래의 불멸성에 대한 찬사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개체로서의 고래는 죽을지언정 종으로서의 고래는 불멸의 존재라고 여겨진다. 고래는 대륙이 물 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바다를 헤엄쳤고, 튀일리 궁정과 윈저 성과 크렘린 궁전이 있는 곳 위를 헤엄치기도 했다. 노아의 홍수 때도 고래는 방주 따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설사 세상의 쥐를 모두 잡아 없애기 위해 다시 한 번 대홍수가 몰아쳐 온 세상이 네덜란드처럼 물에 잠기더라도, 불명의 고래는 살아남아 적도를 휩쓰는 높은 물마루 위로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보란 듯이 물기둥을 뿜어 올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래가 불멸이 아니란 걸 잘 안다. 허먼 멜빌은 틀렸다. 틀린 이유는 인간의 탐욕은 그대로인데, 그 탐욕을 채울 수 있는 인간의 기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이 틀렸다고 그를 비웃을 수는 없다.

 


 

모비 딕 하

허먼 멜빌 저/강수정 역
열린책들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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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보트에 태우지 않는다.” (모비 딕, 스타벅) | 책을 읽다 2023-09-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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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비 딕 (상)

허먼 멜빌 저/강수정 역
열린책들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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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출간된 허먼 맬빌의 모비 딕. 어린 시절 어린이용인 백경이란 제목으로 읽었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아마 스토리 위주였을 것이니, 고래와 포경에 대한 문화사적, 자여과학적 지식 등을 포함하여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까지 담고 있는 모비 딕의 진면목을 파악하진 못했을 것이다. 별로 흥미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은 걸 보면.

 


 

 

어찌보면 모비 딕상권의 스토리는 더더욱 보잘 것 없다. 이슈마엘이 포경선에 타기로 결심하고, 야만인 퀴퀘그를 만나고, 포경선에 승선해서, 선장 에이해브의 광기어린 집착을 목도하고, 단 한 차례 고래잡이를 시도하다 죽을 뻔 한 것. , 그 정도다. 대신 선장 에이해브를 비롯하여 일등항해사 스타벅(그렇다! 스타벅스란 상호가 바로 여기서 왔다), 이등항해사 스터브에 대해서 쓰고 있고, 무엇보다 고래와 고래잡이, 포경 산업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성서를 비롯한 온갖 역사적, 문학적 지식을 쏟아내고 있으며, 그래서 소설이 아니라 절반 이상은 마치 교양서적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겹고, 따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상권에서만큼은 박진감이라기보다는, 아직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의 긴장감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진짜 독후감은 하권까지를 포괄해서 쓰기로 하고, 상권에서 읽은 것들 중,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몇 가지만 정리해본다.

 

모비 딕을 이렇게 읽기 전부터 스타벅스스타벅이 여기서 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인물이 어떤지가 궁금했다(어릴 적 읽었던 것은 다 까먹었으므로). 스타벅은 에이해브의 흰 고래, 모비 딕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유일하게 반대하는 인물이다. 말하자면 가장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인 셈인데, 하지만 그도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에이해브를 따를 수밖에 없다.

 

키가 크고 성실하며, 얼음처럼 차가운 해안에서 태어났지만 살집은 두 번 구운 비스킷처럼 단단하기 때문에, 열대 지방을 견디는 데에도 적합해 보였다. 인도양에 옮겨다 놓더라도 생생한 그의 피는 병에 든 맥주처럼 상하는 일이 없을 터다. (중략) 스타벅이라는 사람은 앞으로도 오랜 세월을 언제나 지금처럼 견뎌 낼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처럼 보였다. 북극의 눈이건 작열하는 태양이건, 어떤 기후에서도 특허받은 크로노그래프처럼 내면의 활력이 제 역할을 할 거라고 보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보트에 태우지 않는다.”는 말은 스타벅을 대변한다. 이를 이슈마엘은(허먼 멜빌은) “가장 분명하고 유용한 용기란 직면한 위험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서 나오며,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동료라고 해석한다.

 

에이해브 선장이 마음 속 깊게 품고 있었던 모비 딕에 대한 광기와 집착을 표출하는 순간이야말로 모비 딕상권에서만큼은 가장 결정적 지점이다. 향유고래에 속하는 하얀 고래, 모비 딕은 에이해브 선장을 다리 한쪽을 앗아간 포악한 고래다. 에이해브 선장은 그 고래를 이마에 주름이 지고 아가리가 비뚤어진 흰머리 고래”, “오른쪽 꼬리에 구멍 세 개가 뚫린 흰머린 고래라고 지칭하며 이 고래만이 자신의 목표임을 분명히 한다.

 

그래, 맞다! 그리고 나는 희망봉을 돌고, 노르웨이 앞바다의 큰 소용돌이를 돌고, 지옥의 불구덩이를 돌아서라도 녀석을 잡고야 말겠다. 그리고 자네들이 이 배에 탄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대륙의 양쪽에서, 지국 구석구석에서, 그놈이 먹피를 뿜으며 지느러미가 다 빠지게 몸부림칠 때까지 추격하기 위해서다.”

 

이후로 이 모비 딕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모비 딕은, 말하자면 하나의 개체라기보다는 인간이 마주한 거대한 도전과 같은 상징이다. 혹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압도적인 ()’이다. 그리고 어쩌면 고통과 좌절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대결 이후 에이해브가 그 고래에게 억누를 수 없는 적의를 품어 왔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더 심한 건 병적인 광기에 빠져든 나머지 급기야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지적이고 정신적인 분노까지 모두 흰 고래와 결부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흰 고래는 온갖 사악한 저주의 화신이 되어 그의 눈앞에서 헤엄쳤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인간의 몸을 좀먹어 들어가 반만 남은 심장과 허파로 살아가게 만든다고 느끼는 그런 저주의 존재였다. 불가해한 이 마성은 태초부터 존재했고, 근대의 기독교도들마저도 세상의 반을 지배한다고 인정했으며, 고대 동방에서 뱀을 섬기던 자들은 악마상을 만들어 숭배했다. (중략) 사람을 가장 미치게 만들고 괴롭히는 것, 모든 비참함을 자극하는 것, 악의를 내포한 진실, 근육을 못 쓰게 하고 뇌를 굳게 만드는 것, 삶과 생각을 물들이는 교묘한 악마성, 미쳐 버린 에이해브에게는 이 모든 악이 모비 딕이라는 형태로 가시화했고 그리하여 실제로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이제 하권을 읽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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