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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처럼 생각하는 방법 | 책을 읽다 2023-12-0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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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학적 마음 기르기

앨버트 러더퍼드 저/박경은,한선영 공역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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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특별히 학교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과목이다. 오죽 했으면 다른 과목들은 다 놔두고 수포자란 말이 생겼을까? ‘국포자’, ‘영포자란 말은 없지 않은가? 심지어 수학과 매우 관련이 높을 듯한 과학에서도 과포자란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수학은 많은 학생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과목이기도 하고, 또 그 좌절의 깊이도 크고, 좌절에 대한 대가도 적지 않은 과목이다.

 

수학은 왜 그래야 할까? 또는 그래도 되는 과목일까? 나아가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 앨버트 러더퍼드의 수학적 마음 기르기은 바로 그런 질문들에 대한,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유효한 답변을 주는 책이다. 조금만 마음먹으면 한 달음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내용만큼은 꽤 알찬 책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앞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앨버트 러더퍼드의 답변을 말하자면, 수학은 학문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학문, 과목이다. 그런데 수학의 논리에 대한 오해, 또는 (더 중요하게는) 수학에 접근하는 교사나 학생의 태도와 방식 때문에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학은 반드시 어려워하고, 또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과목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학을 다루는 뇌의 부위와 언어를 다루는 뇌의 부위는 서로 다르지만, 수학자나 어린 아이나 수를 다룰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는 동일하다. 그러니까 누구나 수학자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은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을 달리하고, 조금만 노력을 한다면 누구나 수학자가 될 수는 없지만, 수학 자체를 포기하고 나 몰라라 할 정도가 되지는 않으며, 수학을 활용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다.

 

사실 이 책의 대부분은 수학적인 마음을 기르는 다양한 방법들과 전략들을 담고 있다. 여기서 수학적인 마음이란 수학자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수학을 적극적으로 대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이를 기르기 위해서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기본적으로 이해에 기초한다. 무조건 배운 알고리즘대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를 나누고 다시 통합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조금은 인내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수학은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과목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구를 선택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실천하다고 해서 당장에 우리나라 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본문에서 한국어의 수를 읽는 방법을 언급하며 그 효율성에 대해서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긴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수험생이 읽기에는 그렇게 적합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이 책은 수학 교육자나, 혹은 수학을 포기했었거나, 그렇지 않고 여전히 수학에 관심이 많은 성인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수학을 대하는 방식이 보편화된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학적 소양을 높이고, 나아가 이를 토대로 훌륭한 수학자도 나오고, 수학과 과학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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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결혼보험', 그리고 사랑 (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 책을 읽다 2023-12-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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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도서관 런웨이

윤고은 저
현대문학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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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에 이어 도서관 런웨이를 읽으며 윤고은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이 대단히 기발하다는 걸 확인한다. 그런데 이 기발함은 기상천외하거나 대단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그러니까 있음직하지 않은 것을 이 세계에 끌어다 놓는 것이 아니다. 대신 없긴 없는데, 있음직한 그런 것을 소설에서 다룬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서, 그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냥 존재하는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을 그려낸다.

 

도서관 런웨이에서 존재하지는 않지만(분명 그럴 거라 생각한다), 있음직한 상상으로 나온 것은 안심결혼보험이다. ‘보험결혼이라는 현실에 분명 존재하고, 누구도 별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은 둘은 하나로 엮었다. 그랬더니 이것은 기발한 상상이 되고, 또 현실의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아주 적절한 상황이 된다.

 

결혼이라는 것이 큰 문제가 없는 이상 누구나 거치고 유지해야 하는 제도 혹은 관계가 아니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 되면서, 가족의 의미가 변해가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대에 이 관계를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제도인 보험과 연관하여 유지하거나, 혹은 아예 그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는 것인 바로 작가가 만들어낸(?) ‘안심결혼보험이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그런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약관을 소설의 스토리를 이루는 축으로 만들고 있다. 보험 약관이 수십 만 원을 넘어서는 희귀본이 될 줄이야! 그리고 단지 보험의 의무와 보장을 무미건조하게 서술하는, 그래서 누구도 주의 깊게 읽지 않는 약관이 아니라 재미있게 읽게 되는, 그리고 현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보통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놀라운 책자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그 약관은 그저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의 성격과 마음과 몸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단순히 코로나 시국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결혼과 보험이라는 보편적인 재료를 창의적으로 엮어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윤고은의 도서관 런웨이라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단면만이 아니라, 사랑,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누구도 쉽게 풀지 못하는 그런 문제를 나름대로 성실하게 풀어내고 있다.

 

한 가지 진짜 궁금한 건, 윤고은이 여행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밤의 여행자들에서 주인공이 재난전문여행사의 직원이었는데, 도서관 런웨이에서도 주인공이 여행사의 직원이었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만두게 된 사연을 갖고 있다. 여행사의 직원이 소설 주인공의 직업으로 그렇게 흔하지는 않을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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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쁨은 없지만... (영원한 기쁨 / 장 지오노) | 책을 읽다 2023-12-0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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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원한 기쁨

장 지오노 저
이학사 | 199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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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오노의 지붕 위의 기병에서는 콜레라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영원한 기쁨에서는 한센병(나병)이 배경이다(영원한 기쁨이 먼저 나온 작품이긴 하다). 영원한 기쁨에서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은 황량한 지역에 고립되어 살아간다. 그들은 거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보비라는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서 그들의 삶의 행태가 변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공동체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와 더불어 이른바 문둥병도 낫기 시작한다.

 

그 시작이 사슴을 데려오면서라는 설정과 다른 동물들과의 교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소설의 신비주의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면 공동체적 삶으로의 지향은 어쩌면 기독교적 사회주의적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노동을 통해서, 연대를 통해 병이 낫는다는 설정은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아직 항생제가 등장하기 전이다). 작가가 문명의 질병(, 한센병)을 극복하는 데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남녀 간의 복잡한 사랑의 방정식이 쓰여진다. 사랑하는 이들끼리 쉽게 맺어지면 좋으련만, 마음의 애정과 육욕은 서로 엇갈리고 결국 보비를 사랑하는 젊은 여인 오르르는 자살해 버린다. 그리고 보비는 다시 그 고장을 떠나버리고, 결국 벼락을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은 아주 자주 기쁨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 소설의 원제가 바로 “Que ma joie demeure”. 내 기쁨 머물기를이라고,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성가곡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란다. 노동을 통한 기쁨, 연대를 통한 기쁨, 그리고 사랑을 통한 기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물론 그것은 영원하지 않기에(파국적인 결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더더욱 그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결국 다다르지 못하는 영원한 기쁨이지만, 그렇게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는 과정에서 나의기쁨을 찾을 수 있다. 장 지오노는 이 신비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소설에서 그런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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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독감으로 바뀐 가족의 운명을 그리다 | 책을 읽다 2023-12-0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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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들은 제비처럼 왔다

윌리엄 맥스웰 저/최용준 역
한겨레출판 | 201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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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의 나침반 역할을 하던 어머니이자 아내가 죽는다(제목의 제비가 바로 그런 의미라고 한다). 남은 가족들. 아직 천사 같은 마음의 여덟 살 버니, 동생에게는 괴물 같은 존재이고, 순수함을 조금씩 잃어가고는 있지만 마음은 아직 여린 로버트, 그리고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이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뻣뻣한 아빠 제임스. 이들은 이제 나침반 없이, 가족들을 이어주는 끈끈한 접착제 없이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191811월 어느 일요일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날짜는 의미가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으며,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먼저 독감에 걸린 것은 막내였다. 학교 친구가 걸렸고, 옮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안전하게 아이를 낳기 위해 남편과 먼 곳으로 옮겨 간다. 그런데 남아 있던 로버트도 독감에 걸리고, 출산을 위해 안전하다는 곳으로 떠난 부부도 병에 걸린다. 그리고 끝내 어머니는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스페인독감은 이 시기의 한 가족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소설은 이 과정에서 변화하는 가족 사이의 관계와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 사람, 즉 버니, 로버트, 아버지 제임스의 시점으로 주변 사람들과 상황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또 변화한다. 어느 가족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들은 다른 가족이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불만을 가진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그들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버니가 독감에 걸렸을 때, 로버트가 어머니를 버니 방에 들였다는 것 때문에 끝까지 죄책감을 갖는 것이다. 어머니 엘리자베스의 감염은 버니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에도 그랬다. 가족이 아니라면 그런 죄책감은 갖지 않았으리라.

 

가족의 죽음은 큰 충격이다. 반드시 남은 가족의 삶에 영향을 준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그리고 다시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지에 따라 가족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소설은 그 과정,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정을 가슴 아프게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작가 윌리엄 맥스웰도 스페인독감으로 어머니를 잃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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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물림 일본유학생의 눈에 비친 망국 조선의 현실 | 책을 읽다 2023-11-3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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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세전

염상섭 저/김재,김종욱 공편
글누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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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화.

책상물림의 일본 유학생. 어렸을 적 결혼한 아내를 두고 일본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자유로운 삶을 즐긴다. 그에게는 빼앗긴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의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던 와중, 1918년 만세운동이 있기 전해 고국의 아내가 병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귀국한다(아마도 무오년 독감, 바로 스페인독감이었을 것이다).

 

사실 말이지, 나는 그 소위 우국지사(憂國之士)는 아니나 자기가 망국 백성이라는 것은 어느 때나 잊지 않고 있기는 하다. ... (생략) ...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생각하면 망국 백성이 된 지 벌써 근 십 년 동안, 인제는 무관심하도록 주위가 관대하게 내버려 두었었다. ...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는 간혹 심사 틀리는 일을 당하거나 일 년에 한번씩 귀국하는 길에 하관에서나 부산, 경성에서 조사를 당하고, 성이가시게 할 때에는 귀찮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지마는, 그때뿐이요, 그리 적개심이나 반항심을 일으킬 기회가 적었었다.“

 

염상섭은 소설에서 이 청년의 귀국 과정과 고국에서의 짧은 행보를 쓰고 있다. 민족의식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청년은, 사회주의와도 독립운동과도 아무런 관련도, 관심도 없었지만 일본에서도, 조선에서도 형사들은 그의 짐을 검사하고, 심문한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그의 눈에 조선인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멸시받는 조선인들, 자꾸 밀려나는 조선인 거주지들이 자꾸 보이는 것이다. 조선의 현실은 비루하고, 나아가 처참하다. 그래서 무덤이다. 구데기가 끓는 무덤이다!“고 외치게 된다. 현실을 애써 외면하던 그에게 어느 순간 조선은 바로 그런 공동묘지가 되어 있던 것이다.

 

소설은 지극히 은밀하다. 이 소설은 원래 19227월에 신생활묘지’(!)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하다 3회 만에 검열로 삭제되었다. 일제도 이 소설이 무엇을 겨냥하는지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 2년 후에야 시대일보<만세전>이란 이름으로 연재될 수 있었고, 고려공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48년 수선사에서 재간행된다. 내가 읽은 글누림출판사에서 낸 만세전은 고려공사와 수선사의 것을 함께 이어놓았다. 그래서 두 판본을 모두 읽을 수 있는데, 스토리는 그대로인데 느낌이 많이 다르다. 1920년대의 만세전이 오래된 古書를 읽는 느낌이라면 1940년대의 만세전은 현대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우리의 글과 말이 그 사이에 그토록 바뀐 것인가 하는 놀라움이 들 정도다. 두 판본의 소설을 함께 읽을 게 괜한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만한 소득이 있다.

 

앞에서 이인화가 조선의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독립운동에 뛰어들지도 않을 것이고, 민중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의 인식은 분명히 엘리트의 것이고, 그래서 엄연한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이 소설이 뛰어난 소설이라고 한다면(분명히 그렇다!), 바로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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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재난마저 소비하는 자본주의 | 책을 읽다 2023-11-3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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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저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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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고 무섭다.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을 읽으며 자본주의의 끈질기고도 교묘한 확장성에 감탄(?)했는데, 이번에는 바로 그 자본주의의 무섭게 치열한 모습을 보았다.

 

재난이 여행 상품으로 기획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현대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렵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삽시간에 생명을 잃고 터전이 파괴된 땅을 을 주고 가서 관광한다는 것일까... 싶지만 그것이 이 된다면 당연히 뛰어들어야 할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재난의 참혹함이 시들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퇴출의 대상이 된다. 재난의 참혹함을 어필할 수 없는 여행상품 프로그래머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바로 무이라는 동남아시아의 한 섬의 상황이 그렇고, ‘정글이라는 재난 전문 여행사의 프로그래머 고요나의 처지도 그렇다.

 

소설 속의 이름들부터가 명명백백히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여행사의 이름이 정글이라는 것도, 주인공의 이름이 요나라는 것도(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의 예언자 이름이기도 하지만, 히브리 말로 비둘기를 의미한다), 무이의 리조트 이름이 벨에포크라는 것도, 여행사에서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파울과 무이에서 보이지 않는 지배자처럼 군림하는 이 연결되는 것도. 고요나가 사랑에 빠지는 현지인의 이름이 이라는 것도. 소설가는 이렇게 명명해놓고 그들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듯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치가 떨리는 지점은 재난이 상품이 되었다면, 그 재난이 상품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이다. 사람들은 재난을 기획한다. 인근의 다른 재난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더욱 극적인 재난의 시나리오를 짜고 배역을 배정한다. 배역을 배정받은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것보다 몇 푼의 돈을 쥐고(아니 가족에게 건네주고) 기꺼이 역할을 수행하기를 원한다. 이런 썩을 세상이... 하고 비난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박한 것이다. 악역을 맡은 이도, 희생 대상이 되는 이도, 그리고 그 가운데서 중립적이고도 애를 쓰는 고요나도.

 

그리고 더욱 곱씹게 되는 것은 기획한 재난이 아니라 실제로 재난이 밀어닥친 후, 다시 재난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재난은 돈이 되어, 여행 상품이 되고, 거기에 고요나라는 (사라진) 존재 역시 상품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버린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지만, 그 아이러니 때문에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 되기도 한다.

 


 

 

다 읽고서야 이 소설이 The Disaster Tourist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2021년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하는 대거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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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에서 세계를 보다 | 책을 읽다 2023-11-2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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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저/노고운 역
현실문화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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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부제를 함께 보면서 이게 과연 성립하는 것인지가 의아했다.

제목은 세계 끝의 버섯이라고 분명 버섯을 이야기하는데, 부제는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다. 버섯과 자본주의라... 게다가 삶의 가능성이라... 아무래도 이건 뭔가 속는 느낌이 아닌가 싶었다.

 

저자(애나 로웬하웁트 칭) 소개를 보면, 중국계임에 분명한 이 저자의 정체는 인류학자다. 그런데 그런 이력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보면 마쓰타케 월드 리서치 그룹을 조직했다고 나온다. ‘마쓰타케’. 익숙한 이름이다. Matsutake. 송이버섯을 이른다.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이 학명(Tricholoma matsutake)가 되었고, 영어 이름이 되었다.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이 송이를 일컫는 공식 용어다. 그건 그렇고, 인류학자가 송이버섯과 무슨 관계가?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내 얘기부터 좀 해야 할 듯하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버섯의 분자 분류다. 송이버섯과 같은 갓 달린 버섯(주로는 주름버섯이라고 한다)은 아니고 나무에 달려, 나무를 부식시키는 버섯들(주로는 민주름버섯)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송이버섯과 같은 버섯도 분석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주치는 matsutake라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꺼림칙했다(그뿐만 아니다. 백두산에서 나는 버섯에 대한 논문에는 Changbai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백두산을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 장백산을 일컫는다). 학위를 받고는 버섯, 혹은 균학(mycology)을 떠나 오랫동안 세균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대로 버섯 얘기가 나오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인상 깊고 놀라운 점은 송이버섯과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논의가 매우 잘 연결된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자본주의란 흡입력이 너무나도 강한 제도(존재? 뭐라 규정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라서 모든 것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과연 버섯, 그것도 송이버섯과 연관 지을 수 있을지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역시 송이버섯도 자본주의의 고리 안에 버젓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칭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국제 무역의 강고한 고리를 이루고 있다.

 

저자가 가장 많이 들여다보고 있는 곳은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숲이다. 칭은 그곳에서 송이버섯을 채취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송이버섯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채취한 송이버섯이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가 귀중한 상품으로 변모하는지를 분석한다. 그 과정은 매우 비자본주의적인 사람들이 지극히 자본주의적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이다. 그 사람들은 동남아에서 떠밀려 온 이들도 있고, 백인들도 있다. 그들이 누구든 자본주의의 질서에서 벗어난 듯 절대 벌어날 수 없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칭은 그들의 작업을 세심히 관찰하고 분석하고, 또한 일본과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연결시킨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물론 그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고, 극복은 더욱 더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고민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

 

이 단순한 한 자연 생산물을 두고, 복잡한 체계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저자 고유의 용어도(이를테면 패치니, 구제니, 심지어 번역이라는 용어까지), 끝까지 낯이 익지 않다. ‘교란이라는 용어도 숲의 교란으로 송이버섯이 자랄 수 있다는 데까지는 쉽게 이해 가지만(그런 현상 자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참 낯선 것이긴 하다), 그것을 자본주의나 세계 등으로 확장하면 쉬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공감이 가고 쉽게 읽히지만, 관찰을 넘어서서 관계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면 쉽지 않다. 그런 익숙하고 공감 가는 장면들과 낯이 선 분석을 오가며 읽으면서 세계가 이렇게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무너졌다고 생각하든, 아니면 공고하다고 여기든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관계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깊게 생각하게 된다.

 

송이버섯에게 필요한 것은 숲의 역동적인 다종적 다양성,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를 오염시키는 관계성이다.“ (85)

 

”8세기에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왔고 숲을 베었다. 소나무 숲은 그런 산림 벌채 이후에 갑자기 생겨났고, 그와 함께 송이버섯도 나타났다. 한국인들은 송이버섯 냄새를 맡았고, 그러면서 고국을 생각했다. 그것이 첫 번째 노스탤지어이고 송이버섯을 향한 사랑이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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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가 전하는, 나이들어 멋지게 살기 위한 방법 | 책을 읽다 2023-11-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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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모리 슈워츠 저/공경희 역
나무옆의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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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실은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보다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이라는 수식어가 더 그럴듯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바로 그 모리가 루게릭병에 걸리기 전, 노년에 대해 쓴 책이다.

 


 

 

사회학 교수이자, 심리치료사였던 모리 슈워츠는 나이가 들어 어느 날 천식 등으로 고생한 후에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노년이라는 시기의 정체성, 노화라는 현상의 문제, 노인이 가지는 여러 가지 심리,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그리고 그런 사회의 시선을 받아들이는 노인 스스로의 생각,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훌륭하게 노년의 삶을 보내고 저 세상을 갈 것인지에 대해서 사유하고 정리해서 차분하게 전달하고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노년의 삶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노년까지 살아남아야 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삶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그 노년의 삶을 지긋지긋하게 여길 수도, 고통스럽게 여길 수도 있지만,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내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다.

 

모리 슈워츠가 구체적인 상황들을 통해서 차분하게 전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보다는 나이가 들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서 집중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전히 무엇인가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려 애쓰고, 독립적이고자 하지만,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기꺼이 받으려 하고 등등.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들일 수 있지만 쉽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서 더욱 생각하고 함께 논의해야 봐야 할 사안이고 문제들이다.

 

이제 나도 조금씩 고민해봐야 할 시기가 다가온다. 노년의 삶이 왔을 때 준비 없이 노년을 맞이한다면 그 노년의 삶은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준비, 물질적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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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과학자를 평가하는 과학 | 책을 읽다 2023-11-2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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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과학의 과학

다슌 왕,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공저/이은,노다해 공역
이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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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으로 쓰고 있는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알아야겠다. ‘과학의 과학이란, '과학'이라는 학문과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즉 과학자에 대해 분석하는 과학의 분야라 할 수 있다. 저자들이 서문에 밝히고 있는 바에 따르면, 과학자를 연구하고, 성공한 프로젝트와 실패한 프로젝트를 조사하고, 발견과 발명의 패턴을 정량화하여 과학을 전체적으로 개선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과학의 과학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링크버스트>의 저자이자 네트워크과학의 창시자나 다름없는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나는 그의 책을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었었다)라는 점에서 과학의 과학이, 특히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과학의 과학이 어떤 방법을 이용하여 그에 다다르려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될 수 있는 한에 있어서) 정량화이며, 네트워크, 혹은 공동 연구에 대한 분석 등이라 할 수 있다.

 


 

 

바라바시와 그의 제자이면서 역시 네트워크 과학자인 다슌 왕은 우선 과학자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과학자가 우수한 과학자인지를 확인하고,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어떤 답이 없을 것 같은 문제다. 주관성이 매우 크게 작용할 것 같은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도 없이 이 주관적 평가를 넘어서는 어떤 객관적인 수치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h-index. 한 개인이 n번 이상 피인용된 논문이 개 있을 때, h-indexn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여러 다른 평가 방법들과 비교했을 때, 연구 경력이 어느 정도만 된다면 이 수치는 미래의 연구 능력을 평가하는 데 상당한 예측력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어떤 연구자를 교수로 뽑을 것인가? 지금까지의 연구 경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연구를 잘 할 연구자를 뽑고자 한다면(어떤 게 연구를 잘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바로 h-index를 보면 어느 정도는 믿을 만하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나이와 과학적 성취, 즉 젊었을 때 창의적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신화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물론 그런 지적이 어느 정도는 맞을 수는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많은 분석을 통해서 입증된다. 그리고 점점 중요한 연구를 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으며, 연구자에게는 폭발적인 시기가 존재한다는 것도, 그들의 분석을 통해 드러난다.

 

과학자 개인의 능력이라든가 생산력에 대한 분석에 이어 협력 연구의 가치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거대과학이라야 가능한 분야가 늘어남에 따라서, 또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전문성이 점점 제한되는 상황에서 팀 연구, 즉 공동 연구는 필수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공동 연구, 그것도 타 기관, 나아가 여러 국가 간의 공동 연구의 경우 더 많은 피인용 지수를 나타내는 등 그 가치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공동 연구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어떤 경우에는 실패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연구에 따라서 어떤 규모의 연구진이 적절한지, 또한 어떻게 구성하는지도 공동 연구의 성패가 달려 있음을, 단지 느낌만으로, 혹은 정성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공동 연구를 진행했을 때 얻은 성과에 대한 공로의 배분이라는 아주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도 나름 진지하게 분석한다. 내 생각엔 크게 어떤 규칙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그래서 저자들은 공로 인정과 관련해서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논문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한 논문이 영향력을 갖기 위한 조건을 분석하고 있고, 또 그런 영향력이 어느 정도의 기간을 가지고 이뤄지는지도 데이터 과학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논문에 수명이 있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논문이 5년이 지나면 거의 인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어떤 글을 통해서 읽은 바 있고, 여기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잊혔던 논문이 갑자기 각광 받는 사례도 있는데, 어쩌면 내 논문들도 그런 취급을 받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게 된다(냉정하게 말해서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게 과학자와 과학 논문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하던 저자들은 '전망' 부분에 와서는 (사실상 어쩔 수 없이) 정성적 태도로 바뀐다. 현재에 비추어 앞으로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한 얘기일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해서는 수치를 들이밀 수는 없는 것이다. 바라바시와 왕은 AI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AI는 과학의 산물인 동시에 과학을 변모시킬 존재라는 것을 이 부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그 한계 역시 인식할 수 있다. 물론 그 한계라는 것 역시 언젠가 뛰어넘을 수 있겠고, 또 내 수준에서는 그 한계까지 다다를 만한 AI 활용 연구도 할 수 없겠지만, 이에 관한 논의는 과학의 과학이 아니더라도 활발히 할 필요가 있다.

 

다 읽고 나니 '과학의 과학'이 과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분야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과학을 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늘 평가받고, 또 때로는 평가하는 입장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느낌만으로 대하는 대신 조금은 객관적 지표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런 방향 전환에는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에 당장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과학의 과학이 과학의 정책을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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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분자이자, 꿈의 분자가 된 RNA에 관한 이야기 | 책을 읽다 2023-11-28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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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꿈의 분자 RNA

김우재 저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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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가 아닌, RNA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약어가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코로나19에 대한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등장한 mRNA 백신이 그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RNA에 대해 자주 들었고, 그게 분명히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도 익숙해졌다. mRNA 백신이 어떤 원리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할지언정 기꺼이 팔뚝을 내어주었다. 그게 나와 사회를 지키는 길이라 믿으며(나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긍정적으로 인정한다).

 

김우재의 꿈의 분자 RNA는 바로 그 RNA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최초의 생명 분자에서, 전달자로, 이제는 혁명의 분자이자 꿈의 분자가 된 RNA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런 과학과 과학자, 과학 사회, 사회에 관한 이야기.

 


 

 

RNA가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기 전부터 과학자들은 이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다. 그동안 깔아놓은 성과가 있었기에 코로나19 가 닥치자 그토록 빨리 백신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니. 그리고 RNA에 관련해서는 mRNA 백신 말고도 할 얘기가 적지 않다. 2000년대 초부터 RNA 간섭이라는 현상을 분자생물학 실험 도구로 활발히 사용하고 있었고, microRNA는 생명 현상을 이해하고, 질병을 제어하는 데 중요한 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었다(여기에 종종 우리나라 김빛내리 교수 이름이 언급되곤 했다). 물론 그것만도 아니고, 훨씬 다양한 측면에서 RNA가 연구되고 있었다.

 

여기의 글도 사실은 김우재 교수가 2010년대에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한다(아마도 mRNA 백신 위주로 쓴 1부의 글은 다시 쓴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 글은 당시의 글을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나도 몇 꼭지의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미 10여 년이 지났으니 요새 분자생물학 분야의 발달 속도에 비추어보면 한참 전의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읽어보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연구 소개다. 그만큼 RNA는 연구자들에게만 핫한 이유였던 것으로 보이고, 조금이라도 거리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연구 주제였다. 그러니 2000년대 초반의 연구를 이야기하더라도 새롭게 여겨진다.

 

그런데 김우재 교수의 글은 그저 과학 연구의 성과를 전달하는 용도로 쓰이지 않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그는 과학 연구의 성과를 제시하면서도 과학 연구의 전통을 자주 이야기한다. 그리고 과학의 역사와 과학 철학을 함께 이야기하며, 거기에서의 논쟁과 잘못된 관행, 잘못 알려진 내용, 아쉬운 부분들을 지적한다. 그런 그의 목소리는 다소 날이 서 있는 느낌이 들고, 시니컬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진지하다. 과학을 사랑하고, 과학의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과학자로서의 목소리를 느낀다. 특히 실험실의 현장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듣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의 견해 모두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인정은 하고, 논의할 수는 있지 않나 생각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과학 교양서이면서, 또 의미 있는 과학 철학 에세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래도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언급해 본다.

 

우선은(앞서도 얘기했지만) 이 책의 글이 거의 10여 년 전에 쓴 글이라는 점이다. RNA 과학에 대한 내용이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결되는 것이 많고, 여전히 현재의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인용하는 논문도 그렇고, 그가 읽어보라는 책을 보면, 이미 그 당시에 읽었으면 좋았을 책이다. 물론 그가 권하는 책들은 여전히 훌륭한 책들이지만, 그 이후에도 훌륭한 책들, 더 최신의 논의를 담고 있는 책들이 나왔다. 그가 서문에서 당당하게 진화생물학 교양서를 읽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는데, 그 의도는 알겠으되, 여기에 그밖의 과학 교양서마저 제외되어 있어 아쉽기 그지 없다.

 

또 한 가지는 반복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원래 80만 자 정도의 글을 상당히 덜어냈다고 했다. 그런데 많이 덜어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중요한 내용이니 강조하기 위해서, 얘기한 게 좀 멀어졌으니 상기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많은 부분은 다시 정리했으면 필요 없었을 부분도 많다. 앞에서 읽은 내용을 또 읽는 느낌이 자주 드는 것은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의 바람대로 2023년 노벨상은 커털린 커리코 박사가 받았다. 뉴클레오사이드의 염기를 변형하여 mRNA가 면역반응을 회피하도록 하여 mRNA 백신의 가능성을 연 장본인이다. 연구 경력 내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연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따지자면 2020년의 노벨화학상을 받은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의 CRISPR 연구도 RNA에 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RNA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싶을 정도다. RNA를 이해하지 않고, 분자생물학을, 생물학을, 나아가 과학을 이해했다 할 수 없을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 시대에 우리의 이해를 돕는 책이다. 그리고 과학에 대해, 과학과 사회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도록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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