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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미생물 | 책을 읽다 2021-09-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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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치명적 동반자, 미생물

도로시 크로퍼드 저/강병철 역
김영사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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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 과T의 문구는 더불어 사는 미생물이었다. 학교에서 그 문구는 꽤 화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동아리에 들어갔을 때 선배들이나 동기들이 그 문구에 대해 물었다. 정확하게는 웃었다. 너희는 어떻게 미생물과 더불어 사냐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정확한 문구였다. 그 후로 약 20년이 지나고 Microbiome이 잘나가는 분야가 될 줄 우리는 몰랐지만 말이다. 우리는 정말 미생물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제목에서 동반자(companions)’가 바로 그런 의미다.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 미생물은 언제나 우리와 더불어 살아오고 있다. 아니 순서가 잘못되었다. 미생물은 원래 있었고, 인류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미생물을 인식하게 된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로서다. 물론 레이우엔훅이 처음 미생물을 관찰했을 때 그저 신기한 존재로 기술하긴 했지만, 19세기 말에 이르러 파스퇴르와 코흐 등에 의해 정립된 세균 병인론은 질병에 대한 대응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냈다. 사실 확인된 미생물 100만 종 중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1,415종에 불과하지만(46), 우리가 미생물을 인식하는 것은 주로 그 소수에 불과한 병원균에 대한 것이다.

 

불과 150년 밖에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인간은 그 미생물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도구도 찾아냈고(백신과 항생제), 또 금세 그 도구가 무력화되는 상황도 맞닥뜨렸다. 미생물은 인간보다 훨씬 유연하고, 또 끈질기다는 것은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COVID-19도 그렇다. 코로나바이러스 자체는 흔하디 흔한(두번째로 흔하다) 감기바이러스의 일종이다. 그러나 SARS, MERS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사실 지금의 SARS-CoV-2(이제 정식 명칭이다)보다 더 치명도가 높았던 SARS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고, 별로 신경도 쓰지 않던 지금의 바이러스가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바이러스의 특성상 끊임없이 변이가 나올 것이고, 우리가 그에 대해서 얼마나 면밀하게,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항생제 내성은 또 어떤가? 1960년대 후반 감염질환에 대해 이제 감염질환에 대한 책은 덮어도 된다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이 친구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COVID-19 팬데믹이 본격화한 이후로 세균과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의 역사에 대해 정말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다. 대체로 비슷비슷한 질환, 미생물들로 구성되고(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또 역사순으로 늘어놓는다. 이 책의 저자인 도로시 코로퍼드가 바이러스학자인만큼 바이러스 질환에 좀 더 비중으로 두고 있으면서, 세균에 대해서도 중요한 것은 빼놓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어떤 병원균(바이러스든 세균이든, 말라리아와 같은 원충이든)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최신의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큰 특징은 미생물과 인간의 상호 작용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감염질환을 묶으면서 그 기준을 그 질환이 유행하게 된 원인을 인류의 활동과 관련짓고 있다. 그래서 림프절 페스트와 천연두를 하나의 장으로 묶어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장의 제목은 인구 증가, 쓰레기, 빈곤이다. ‘기근, 황폐가 제목인 장에서는 아일랜드 대기근을 일으킨 감자잎마름병(곰팡이가 원인), 발진티푸스(리케차가 원인), 장티푸스와 결핵(세균이 원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 특정 미생물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원인이 있다는 게 바로 저자의 관점인 셈이고, 나도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저자는 인두와 우두접종에서 비롯한 백신과 항생제를 통해 미생물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어 미생물이 반격을 하고 있다는 얘기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저자는 그런 미생물의 반격이 세계 많은 지역에서 여전한 빈곤과 너무나 간편해진 여행, 그리고 미생물의 특성(이를테면 항생제 내성)이 결합해서 규모를 달리해서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로 우리는 그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되 좀 온건하게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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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본 일본의 장점 | 책을 읽다 2021-09-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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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뉴스에 무지한 일본인 2

타니모토 마유미 저/박보신 역
보윤북스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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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의 인상은 세계 흐름에 쫓아가지 못하는 일본인에 대한 자아비판 같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다른 나라, 대체로 미국과 유럽의 형편을 보면 그들은 참 형편없는 데 비해 일본은 잘 하고 있는데 잘못된 정보 때문에 자기 비하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건 세계 뉴스에 대해 눈감고 있기 때문이고, 또 언론, 특히 좌파 언론이 그걸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대해 자부심을 강조하는 내용이니 조금은 역겨울 수 밖에 없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많이 익숙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도 이 책의 계기가 되었다 하고, 또 많이 언급하고 있는 COVID-19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쪽은 우리나라의 확진자 수의 증가와 백신 수급의 문제 등을 강조하면서 정부 등을 비판하는데, 또 다른 한쪽은 다른 나라들의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 방역의 상대적 성공과 백신 접종의 일시적 혼란을 극복한 상황을 강조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했던 국가들의 COVID-19에 대한 대처를 보면서 그들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고 평가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잘 몰랐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선진국의 민낯을 운운할 때 일본도 포함시키는데, 이 책은 다시 유럽(특히 영국을 예로 드는데, 저자가 현재 영국에 거주하기 때문이다)과 미국과 대비해서 일본의 대처라 너무나도 훌륭하다고 한다는 점이다. 야당이나 진보 언론은 정부를 비판만 하는데 그들이 세계의 뉴스를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감추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현재 진보와 보수의 관계가 반대인 한국과 일본의 처지를 보면, 정부의 반대편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냐고 이해가 되는 상황인 셈이다. 그래도 정보라는 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상반되게 평가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유럽이나 선진국이라고 해서 모든 게 좋고, 우리는 그에 비해 뒤쳐졌다고 무조건 비하할 필요는 없다. COVID-19 팬데믹에서 분명하게 보았듯이 그들이 쌓아올린 탑이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우리보다 더 불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을 무조건 내려 볼 수는 없다. 아무리 불안하게 쌓아올린 탑이지만, 그래도 그 탑을 쌓아올리는 데 들인 시간과 공력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서로 다른 문화라는 것도 있다. 그들이 우리의 문화를 무시하면 안 되듯이 우리도 그들을 무시하면 안된다. 그것은 유럽이니 미국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여기의 내용을 모두 인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가치는 다시 얻을 수 있다.

 

* 그런데, 맞춤법에 맞지 않은 게 너무 많고, 너무 번역투인 것을 넘어 그냥 구글번역기를 돌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문장도 적지 않다(뒤로 갈수록 그렇다).

기후도 엄중하여, 겨울에는 통근도 어려운 토지도 많아, 원격근무는 회사 자체의 목적에 걸맞게 존속시키기 위해서도 필수불가결입니다.”

- 이런 식의 문장은 좀 문제다.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독립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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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프라 수도원과 마술적 사랑 이야기 | 책을 읽다 2021-09-1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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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저/최인자 등역
해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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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왕의 전쟁에서 왼쪽 팔을 잃은 사내 발타자르와 마녀의 딸이자 다른 이의 영혼을 들여다볼 줄 아는 블리문다이다. 그러니 이 소설을 구분하자면 러브 스토리이다. 그러나 주제 사라마구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 많은 이야기를 덧붙여 놓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그 많은 이야기들의 배경처럼.

 

이 소설은 또한 역사소설이다. 유럽 역사의 오점 중 하나인 마녀재판과 종교재판이 그들의 사랑을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만남 자체가 비극이었고, 기이했듯이 그들의 마지막도 비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받아들이면 될까?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시대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시대에 대한 비평서이다. 18세기 포르투갈의 대역사인 마프라 수도원 건립의 동기는 지배 계급의 허위의식을, 그 수도원을 건립하는 과정은 피지배계급에 대한 착취를 폭로한다. 그래서 마프라 수도원은 (사진으로) 지금 보아도 웅장하고, 관광객들을 불러모으지만,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거기에는 왕궁의 허위의식과, 교회의 탐욕과, 피지배계급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이다.

 

사랑 이야기이고, 역사를 담고 있지만, 또한 이 소설은 모험담이고 판타지이다.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드는 바스톨로메우 신부의 시도는 다분히 역사적이지만, 그 동력이 인간의 영혼(의지)라는 것은 이 소설을 단순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늘을 나는 것, 지금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 되었지만, 그것은 실은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계적 동력만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수없이 모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단으로 몰릴 여지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남들은 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힘겹게 읽었다. 더 길게 이어지는 문단으로 구성된 눈먼 자들의 도시눈뜬 자들의 도시보다 더 힘겨웠다. 주제 사라마구의 역사적 상상력을 따라가기 바빴다고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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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이 물리학을 만나다 | 책을 읽다 2021-09-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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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명의 물리학

찰스 S. 코켈 저/노승영 역
열린책들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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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생물학자 찰스 코켈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개미는 어떻게 거대한 집단을 유지하면서 개미집을 만들어 나갈까?

집단을 이뤄 나는 새들은 어떻게 서로 부딪치지 않으면 날 수 있을까?

무당벌레는 어떻게 중력을 이겨내며 벽을 기어다닐 수 있을까?

곤충들은 왜 크기가 그 정도뿐일까? (옛날에는 아주 큰 곤충도 있었다는데)

두더지의 생김새는 왜 그럴까? 흙을 굴을 파는 동물들의 생김새는 왜 다들 두더지를 닮았을까?

바퀴 달린 생물은 왜 없을까? 프로펠러로 헤엄치는 물고기는 왜 없을까?

모든 생물의 세포는 왜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모양일까?

생명체가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은 왜 다들 똑같을까? (물론 예외는 있지만)

생명의 부호는 왜 G, A, T, C 네 가지뿐일까? 왜 아미노산은 20가지로 생명을 구성할까?

왜 생명을 구성하는 원소는 CHNOPS일까?

 

참 어려운 질문들이지만, 찰스 코켈은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생명도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고, 그런 물리학의 제한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윈 이래 진화학자를 비롯한 생물학자는 생명의 진화는 우연성에 의해 이뤄졌다고 했지만, 찰스 코켈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우연성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사실상 부차적인 문제이며,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진화할 수 밖에 없었던 물리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진화를 부인하지도 않으며, 생명 현상의 다채로움에 눈을 감지도 않는다(그는 엄연히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트레이닝을 받은 생물학자다). 하지만 생명 현상에 물리 법칙이 관여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생명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본질적인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생물학과 물리학이 행복하게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여기며, 그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견해가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찰스 코켈을 우주생물학자이다. 우주생물학? 그러려니 할 때는 넘어갈 수 있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좀 난감한 분야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 분야는 N=1문제에 봉착해 있다. 표본이 1개뿐인 생물학.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엄격하게 말해 연구할 대상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주생물학자는 무엇에 관심을 가질까? 바로 이런 내용이다. 생물이 어떤 조건에서 탄생하고 진화하는지, 어떤 제한 속에서,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다양성이 용인되는지 등등. 그래서 추론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지구상의 생물이 어떤 물리적 조건 속에서 존재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통할 수 밖에 없다. 찰스 코켈은 다소 온건한 입장이긴 하지만, 이러한 연구는 지구 밖의 생명체도 탄소와 물에 기반한 생명체일 수 밖에 없는 결론에 다다른다. 또한 생김새도 행성의 크기나(이는 중력을 결정한다) 기체 밀도에 따라서 결정될 것인데, 이 역시 지구의 생물과 비교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상당히 재미있는 것은 이런 연구가 생명의 경이로움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명 현상을 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슈뢰딩거의 최초의 시도(생명이란 무엇인가) 이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시도는 DNA 구조 발견 등으로부터 생명에 대한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고 생명의 아름다움, 경이로움을 돋보이게 했다. 여기에서와 같이 생명은 복잡하지만, 그것들이 일관된 단순한 법칙 내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설명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학문의 발전은 당연히 만남에서 나온다. 경계에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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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해부학 수업을! | 책을 읽다 2021-09-1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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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술관에 간 해부학자

이재호 저
어바웃어북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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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가장 관련이 깊은 학문을 들라고 하면 해부학이 빠질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든가 미켈란젤로는 스스로 시체를 해부하면서 인체의 구조를 연구했다. 그림이나 조각에서 정확한 인체를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미술대학에서는 해부학이 필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실제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해부학자가 미술관에서 무엇을 찾아내는지는 굉장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의 성공에 힘입어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가 이어지는 것인데, 그 이후 인문학자, 의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등을 거치면서 다소는 식상한 감이 커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 좀 억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해부학자 편도 별로 관계가 없는데도 해부학을 억지로 들이미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사실 해부학자들은 어떤 인체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더라도 해부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 들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그만큼 미술과 해부학의 거리는 멀지 않다). 그러니 해부학자의 미술 이야기는, 어떤 그림이나 조각을 보았을 때 다른 그림이나 조각에서는 하지 못할 해부학 얘기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얘기는 앞부분의 <해부학으로 푸는 그림 속 미스터리>에서 찾을 수 있다. 여러 그림이나 조각에서 일반인은 잘 찾지 못하는 비밀 같은 얘기들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명화에서 찾은 인체 지도>는 그림을 통해서 해부학 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을 보여주고,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는 거기에서 찾을 수 있는 인체의 구조, 즉 해부학적 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에서는 당연한 관련성 외에는 뜻밖의 것을 찾기는 힘들다. 그림 얘기에서 흥미를 갖다가도 해부학으로 들어가면 금새 흥미가 가라앉아 버린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에서 시작된 이 시리즈는 이제 해부학자까지 왔다(7번째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흥미 있는 지점은 사실 하나의 그림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다. 각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던 것이 눈에 띤다는 점이다. 예술을 즐기는 것은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누구라도 자신의 관점에서 예술을 즐기로 뭔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소중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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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겔, 삶과 사회를 비춰주는 문학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 책을 읽다 2021-09-1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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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끝내주는 괴물들

알베르토 망겔 저/김지현 역
현대문학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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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베르토 망겔(또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자라는 명백하다. 그의 책읽는 사람들, 은유가 된 독자, 독서의 역사, 밤의 도서관, 서재를 떠나보내며를 읽었고, 지금 막 끝내주는 괴물들까지 읽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의 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할 수 없다면 어째서 그런 것일까? 독자와 팬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그의 책을 읽는 것을 즐기지만, 열광하지 못한다. 망겔을 너무나 당연한 듯 언급하는데 나는 읽지 못한(사실은 읽지 않은) 책과 저자, 등장인물 들이 나오면 흐름이 끊기고 집중하지 못한다. 열렬함에 빠지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망겔의 독자이지 팬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독서가의 독자다. 그의 글은 책과 글에 대해 쓰지만, 분명하게 현실을 겨냥한다. 책이라는, 어쩌면 현실에서 벗어난 것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의 책에 대한 글은 끈질기게 현실에 대해 발언한다. 교묘하지만 누구라도 느낄 수 있다(<요나><신드바드> 같은 글을 읽고 그리 생각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책은, 특히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소설을 읽고, 책을 읽는다. 최소한 망겔의 독서는 그렇다.

 

끝내주는 괴물들에서 망겔은 37(?)의 소설 속 등장인물을 불러낸다. 내가 망겔의 팬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얘기했는데, 여기서 그런 소심한 좌절감은 사라지기도 하고, 혹은 더 심각해지기도 한다. 그 까닭은 그가 언급하는 작품들이 그래도 좀 아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고, 그런데도 그가 언급하는 인물들은 오히려 낯설 인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귀스타브의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에서 망겔을 보바리 부인이 아니라 그의 무색무취한 보바리 씨를 불러낸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거트루드를 불러내고,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는 피비를 불러낸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짐을,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서는 퀴퀘그를, 오승은의 서유기에서는 사오정을 이야기한다. 물론 드라큘라의 드라큘라, 괴테의 파우스트의 파우스트,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의 로빈슨 크루소,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의 카지모도,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의 에밀,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의 네모 선장 등과 같이 중심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김만중의 구운몽의 주인공 성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놀랍지 않은가!), 그가 남들이 애정을 덜 주는 인물들에 시선을 많이 돌리고 있다는 것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보통의 사람들이 읽는 것 이면의 느낌들을 찾아내고 공감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이를테면 가장 강력한 인물인 슈퍼맨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슈퍼맨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초능력이 친근했던 건 아니지만, 원치 않게 고립됐던 그의 신세와 소외감에 공감했다. ... 소심한 신문 기자와 막강한 영웅 사이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해나가는 슈퍼맨을, 좀처럼 자신감이라곤 없고 죄스럽게 느껴지는 문학적 열정에 휩싸여 있었던 청소년 시절의 나 자신과 닮은 데가 많았다.” (77)

그가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금은 덜 주목받는 인물에도 공감한 이유가 짐작 간다.

 

이렇게 그가 다루는 인물들을 보면 이 책의 제목이 괴물들”(원제도 Fabulous Monsters)이라는 것을 선뜻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다. 괴물이라는 범주를 인정할 만한 것들이라고 해봐야 드라큘라라든가, 파우스트, 카마이라, 사탄 정도뿐인데 말이다(괴물에 대해서는 호메로스의 키마이라에 대해 쓰며 한번 언급한다. “괴물들은 우리가 존재하기를 원하기에 비로소 존재한다. 아마도 그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리라.”(143)며 괴물들을 불러내는 것은 우리라고 지적한다. 괴물에 대한 책임감은 외면서 말이다.)

그런데 다 읽고서야 깨달았다. 이 책 제목에서 방점은 괴물들에 찍혀 있는 게 아니라 끝내주는에 찍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망겔을 자신의 인생과 함께 해준 문학 친구들을 불러내고 있고, 그들과 함께 한 삶이 끝내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삶을 그렇게 어지럽혀준 괴물은 애칭인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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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 존재했던 화학 | 책을 읽다 2021-09-1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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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화학 연대기

장홍제 저
EBS BOOKS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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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제 교수가 생각하는 화학이란 변화의 학문’, ‘관계의 학문을 넘어서서 예술이다. “예술이란 것은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여하면서 학문의 흐름을 보았을 때 느끼는 것일 테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선뜻 와 닿는 느낌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 화학은 물질의 변화와 관계를 탐구하고, 그것을 통해서 실용적 목적에 이용하는 학문이라는 정의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훨씬 일반적인 정의인 셈이다. 그리고 장홍제 교수가 유구한 화학의 역사를 서술하면서도, 사실 화학의 예술적 측면에 그리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다(물론 결정적 순간에 감탄의 목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화학 연대기라는 제목답게, 이 책은 화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꼼꼼하게 추적하고 있다. 과학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거의 빠지지 않는 Introduction처럼 문명의 태동기와 그리스 문명을 거쳐 철학적 사유로 물질의 근원과 변화를 생각하던 시대에 대한 서술한다. 그리고 나서 연금술의 시대로 넘어가는데, 유럽과 아라비아의 연금술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의 연금술까지 포함시켜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면서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지만) 당연한 것이다. 장홍제 교수는 연금술에 대해서 다소 긍정적인 시각을 피력하고 있는데, 어쨌든 그 시기의 기술이 이후의 화학 발전의 바탕이 되었다는 시각이다.

 

그 이후는 화학의 눈부신 발달이 이어진다. 연금술에서 라부아지에 등의 화학 혁명은 바로 이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여러 철학적 변화와 함께 기술적 변화가 화학 혁명의 바탕을 이루게 된다. 저자는 화학의 아버지로 돌턴, 라부아지에, 베르셀리우스. 이 셋을 꼽고 있는데, 많은 책들이 라부아지에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에 비해서는 당시 화학의 선구자들에 대해 골고루 관심을 두고 있는 편이다.

 

분석화학을 통하여 많은 원소가 발견되고, 무기화학의 발달과 주기율표의 발명이 이어진다. 열과 에너지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해 물리화학이라는 분야가 등장하고, 생명의 물질이던 유기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면서 물질의 결합과 구조에 대해 탐구하는 유기화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한다. 이러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화학의 발달은 인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퍼킨의 모브 발명과 같은 염료의 개발에서 비롯된 공업화학과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이라든가, 아스피린 개발과 같은 성과로 이어진 의약화학이 그것이다.

 

20세기 초반은 양자역학의 시대였고,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양자역학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양자역학의 발달을 지금은 대체로 물리학에서 다루지만, 이 양자역학의 등장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화학자들은 그걸 자신의 분야라 여겼다고 한다. 전쟁과 함께, 혹은 전쟁 전후에 고분자화학이 등장하고, DNA라든가 단백질에 대한 구조와 역할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생화학이 꽃을 피우게 된다. 그리고 저자의 전공이기도 한 나노화학이 등장한다.

 

이렇게 아주 요약해서 간단히 보더라도 화학의 역사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하위 분야를 가지고 있고, 그 하위 분야가 비롯된 시점은 순차적일 수 있지만 서로 양향을 주고받으면서 발달해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인류의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 존재했던 것이 화학이라는 설명도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류가 만들어온 화학의 역사에 대한 헌사이며, 자부심이다. 우리는 화학으로 여기까지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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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 | 책을 읽다 2021-09-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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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괜찮아! 조금 벗어나도

미나 타이헤르트 저/김완균 역
7분의언덕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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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 그러니까 이 용어보다 훨씬 더 대중에게 익숙한 ADHD에서 H가 빠진 이 질환을 우리말로 옮기면 주의력결핍장애.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이니,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느샌가 모두 다 아는 듯한 질환이 된 ADHD는 집중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지 못해 항상 부산스러운 아이를 일컬었다. 그러니 ADD는 집중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부산스럽지는 않은 경우를 말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다. 단순히.

 

그런데 정말 ADD가 어떤 증상인지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을까? ADD를 갖고 있는 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을까?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 슬퍼하고, 또 어떤 경우에 삶에 보람을 느끼며 기뻐하는지 알고 있을까?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통합되며, 혹은 어떻게 소외되는지 우리는 신경 쓰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하나라도 대답할 수 있을까?

 

미나 타이헤르트(책에서는 이 이름보다 미나 빌헬미나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두 번째 결혼 후에 얻게 된 성이 타이헤르트라 짐작한다)는 스물 넷에 ADD 진단을 받는다. 그럼 그 전에는 어땠을까? ADHD인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였지만 동생이 태어나고 난 후 유치원에 가면서부터 그녀는 누구에게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집중하지 못했고,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남과 수도 없이 대립하고 다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끊임 없이 질책받고 쫓겨나기를 반복했다.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진단을 받고(잘못된 진단이었다)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 스물 넷에 받아든 ADD라는 진단은, 일단 충격이었지만(이 나이에!) 그제서야 자신을 이해하고 늪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행동 치료와 약물 치료를 받았고, 자신이 남들과 무엇이 다른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으니 무턱대고 싸우는 일도 줄었다. 다투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일찍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도 있었다. 특히 새로 만나 결혼한 남편은 미나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랑을 주었다. 그렇게 미나는 ADD라는 질병(장애?)를 그대로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았다. 솔직하고, 또 당당하게.

 

대부분은 자신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어떻게 세상과 사람들과 대립하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대체로는 자신의 잘못에 관한 이야기다.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거나, 혹은 딱하다는 눈길을 요청하는 것도 아니다. ADD를 겪는 아이, 소녀, 성인이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신경학 도서나, 혹은 방송이나 출판물에서보다(그것도 항상 단편적이었지만) 여기서 ADD, 나아가 ADHD에 훨씬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은 주변의 모든 자극들을 무시하지 못하고 흥분된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필요한 자극이 아닌 경우는 무시하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끝까지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온갖 소리, 온갖 냄새, 온갖 모양과 움직임이 모두 자극으로 다가오고 어느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집중하지 못하고, 어떤 일을 하다 금새 다른 일로 넘어가버리곤 한다. 이는 (아직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도파민이나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어떤 이유로든 모자라거나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그들도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 않는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 그걸 안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이 문제다. 특정 상황에서 그들의 잘못은 분명히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솔직하게 말해 난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그런 장애가 있음을 아는데도 무조건 혼을 내고 멀리 해야 할까? ,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을 이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끔찍한 일이다. 그들도 이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으며(실제로 그렇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다. 그래도 몇 가지만은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받아들이지는 못하되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들도 지극히 평범할 수 있으며, 단점이 있는 만큼 장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지 않을까? rmflrh 이 장애에 대해 적극적인 진단을 통해(실제보다 더 많이 진단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치료(궁극적인 치료는 아니겠지만)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므로, 우리와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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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 역사적 관점 | 책을 읽다 2021-09-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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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체르노빌 히스토리

세르히 플로히 저/허승철 역
책과함께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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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426일 밤 당시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북쪽 체르노빌의 원전이 폭발했다. 소련 지도부의 사건 은폐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사능은 국경 제한 없이 유럽 지역까지 퍼져갔고, 결국 최악의 방사능 유출 참사로 기록되었다(그 기록은 25년 후 바뀌었다).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는 역사 연구로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를 다루고 있다. 소련의 원전 역사에서 시작해서, 당시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시도된 개혁(페레스트로이카), 개방(글라스노스트)의 움직임(이 책에서 보듯이 완전하지 않았지만)을 배경으로, 원자로가 폭발한 그 날의 과정과 사건의 전개,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과 소방관 등을 비롯한 이들이 영웅적 노력, 이후 소련의 은폐 시도, 그리고 이후 우크라이나 독립과 소련의 해체, 2000년 원전 폐쇄(그때까지 체르노빌에서 원전이 운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2018년 훼손된 원자로에 새로운 보호막을 세운 마지막 단계까지를 마치 대하소설처럼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요점은 두 가지다. 체르노빌 원전 사건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이는 단순히 폭발 자체의 직접적인 책임만이 아니라(이는 당시 재판에서 책임지워졌던 잘못 진행된 터빈 시험일 터이지만) 사건 전체의 전체적인 책임을 말한다. 즉 근원적인 책임을 찾는 것이다. 세르히 플로히는 당시 모스크바와 키예프(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 체르노빌을 분주하게 오가면서 이뤄진 많은 움직임들을 기록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사고의 좀 더 근원적인 원인은 소련 정치 체제의 중대한 결함과 원자력 산업의 중대한 결함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의 결함 중 하나는 원자력 에너지 산업이 군사 부문에서 파생했다는 것이다. 체르노빌형 원자로는 핵폭탄을 생산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을 변형해 만들어졌다. 이에 더해 일정한 물리적 조건에서 매우 불안정한 원자로였는데도 안전하다고 선언되었다. ... 또 다른 결함은 발전소 직원들이 절차와 안전 규칙을 위반한 것이었다. 이들은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에 신화를 도입했고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무모한 태도를 취했다. ... 사고가 난 직후 공포가 확산되자 전제적인 소련 정권은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여 국내외의 수백만 주민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막을 수도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방사능 피폭을 야기했다.” (468)

 

그러니까 원자로 자체의 문제점과 안전에 대한 과도하고도 잘못된 자신감에 비롯된 규칙 위반, 그리고 소련 체제의 경직성과 폐쇄성이 모두 이 사건에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르히 플로히는 역사학자로서 더 큰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이 체르노빌 사건이 소련의 해체와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파탄나기 일보 직전이던 소련 경제였고 그 상황은 거의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체르노빌 사건은 소련 체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폭로해버렸고, 에너지 문제에서 중대한 결함을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는 환경민족주의가 발흥하면서 연방 탈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즉 체르노빌 사건을 정치적 변혁으로 이어진 흐름 속에서 전환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 사건만이 그 흐름에서 가장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모든 역사학자나 정치학자 등이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시점 상으로도, 그 파급력으로도 소련의 해체의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이 두 가지 외에도 세르히 플로히가 이 책에서 신경 쓴 점을 두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한 가지는 원자로 폭발 당시 목숨을 걸고 원전으로 뛰어들었던 이들의 영웅적 행동과(“살아있는 로봇”) 그 이후 원자력의 경제성 환경, 안전성을 둘러싼 논쟁이다. 첫 번째의 것은 과연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런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추가 폭발을 막을 수 있었고, 그래서 전 유럽이 결정적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했다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그 다음 얘기는 지금도 논쟁거리이다. 이 논쟁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이 사건 25년 후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건으로 더욱 첨예해졌다. 원자력이라는 현재까지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이라는 경제성과 그 당시보다는 훨씬 안전해졌다지만, 제로(zero)가 될 수 없는 위험성에 그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한 공포는 서로 양립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세르히 플로히는 체르노빌 사건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의 우리말 부제를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이라는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원자력 혹은 핵에 관해) 이 교훈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을 때는 과연 교훈이라는 게 필요할까 싶다. 그게 이 책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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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로 기억되는 여행, 여행으로 풍부해지는 삶 | 책을 읽다 2021-09-0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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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후각과 환상

한태희 저
중앙북스(books)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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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지역을 여행해보지는 못했지만, 학회 참석 등으로 꽤 여러 도시를 방문했었다.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 가장 확실한 것은 냄새다. 같은 국가의 도시도 냄새가 다르다. 그 냄새는 잊혀졌다가도 다시 방문하기 위해 공항에 내리거나, 도시의 거리를 걸으면 ! 이 냄새!”하고 불현듯 떠오른다. 도시의 냄새는 고유하고, 그 냄새로 도시는 기억된다.

 

그래서 여행의 기록은 냄새를 중심으로 기록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다. 그런데 냄새를 중심으로 한 여행의 기록이 그다지 흔한 것 같지는 않다. 추측해보건대 여행자들이 느끼는 냄새를 풍부하게 설명해낼 수 있기 위해서는 냄새에 대한 감수성뿐만 아니라 도시와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 냄새를 이루는 물질들과 그 냄새가 인지되는 과정에 대한 과학적 소양을 함께 지녀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후각과 환상은 바로 그런 다양한 지식과 소양을 지닌 저자이기에 가능한 책이다. 도시와 냄새에 관해 다양한 지점들을 짚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다양한 지점들에서 다양한 것들을 함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 이스탄 역사와 해변 카페에서 파는 고등어 샌드위치 냄새, 그리고 그 냄새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함께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가 이해하고, 기억하는 도시의 모습은 어느 한 가지만으로 규정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다. 거기에 냄새는 감성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다. - “오랜 기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진과 기록이 남았지만 가장 생생한 것은 여행지의 독특한 냄새와, 그 냄새에 얽힌 감성적 기억이었다.”

 

저자는 전문 여행가가 아니다. 그래서 여행에 어떤 일관성을 찾기는 힘들다. 왜 그곳에 갔는지 이유도 밝히지 않는다(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여행은 그렇다.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으면서도 여행하다보면 특정한 것에 꽂히게 된다. 그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고, 그것을 통해서 여행을 기억한다. 그렇게 삶은 풍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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