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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의 삶과 물고기의 존재 여부 | 책을 읽다 2023-03-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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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곰출판 | 2021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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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읽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 어디서도 검색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베스트셀러인 이 책을 사전 정보 거의 없이 읽기 시작했다. 알고 있던 건 어떤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굳이 먼저 알아보지 않았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는 애매하기 그지없어(그걸 과학자의 삶과 연결시키기에는) 더욱 이 책이 무엇을 얘기하는지를 짐작하지 않을 수 있었다.

 


 

 

과학 기자였던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에 천착한 것은 그에게서 어떤 위안과 삶의 용기를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수많은 물고기에 학명을 부여한 미국의 어류학자였다. 황량한 중서부에서 태어나 꽃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지만 그에 비아냥을 들으며 자랐다.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도 의욕 없는 일을 하다 어느 날 문득 루이 아가시라는 걸출한(그러나 죽을 때까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은) 분류학자의 신문 광고를 보고 그의 자연학교(?)에 들어가 어류분류학자의 길에 접어든다. 그후로는 승승장구였다.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태도가 한몫했다. 명성이 올라갔고, 결국 스탠퍼드 부부가 새로 설립하는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부임하고(1891년 갓 마흔 살의 나이에) 화려한 경력을 쌓게 된다. 그 사이에 아내가 죽고, 자식들이 죽고, 지진으로 30년 동안 모은 어류 표본들이 다 부서지는 역경을 겪지만 결국 모두 극복해낸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여기까지만 읽으면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그로부터 삶에 대한 용기를 얻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지점을 향해 간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위주로 대학에 채용하였으며,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제인 스탠퍼드(남편 릴런드 스탠퍼드는 이미 죽고 없었다)와 대립했다. 그러다 제인 스탠퍼드는 하와이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마침 조던의 해임이 논의되던 시기였다. 룰루 밀러는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에 조던이 관여했다는 정황을 여러 가지 제시한다. 물론 조던은 그것에 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조던이 명예총장으로 물러난 이후의 행적은 더욱 의심스럽고, 룰루 밀러에게(그녀에게만은 아니지만) 분노를 일으킨다. 조던은 프랜시스 골턴이 창안한 우생학이라는 사이비 학문을 미국으로 가져온 초기의 인물 중 하나가 된다. ‘부적합자에 대한 불임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녔으며, 몇몇 주에서 법제화되었 을 때는 환호했다. 룰루 밀러는 이 부분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과거에 혐오감을 드러낸다. 한번도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것이고, 그들이 그토록 증오한다던 히틀러의 행위가 그대로 자신들의 나라에서 처참한 형태로 저질렀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죽는 날까지 열렬한 우생학자로 남아 있었다.

 

사실 룰루 밀러는 조던이 그렇게 된 데에 대해 그 시점을 짚어나간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이 조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면서도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논란이 있는 것이기에) (나는 그가 첫 아내가 죽자마자 어린 학생과 재혼하는 장면서부터 의아했다), 결정적이지 않고, 더 근원적인 부분을 되짚어나가고, 결국은 찾아낸다. 바로 루이 아가시와 함께 했던 페니키스 섬이었다. 그곳에서 조던은 루이 아가시로부터 자연의 사다리라는 개념을 배웠다. 비록 조던은 진화론자였고, 루이 아가시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자연의 사다리라는 개념만큼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체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자연의 사다리의 개념은 인간이 다른 동물에 우위에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에도 위계를 인정했다. 바로 이 지점이 자신에 대한 무한 긍정으로 인한 빠른 회복력을 가져왔고, 부적합자에 대한 무자비한 인위적 도태를 추진하게끔 했던 것이다.

 

룰루 밀러는 명예에 아무런 타격 없이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세계가 허물어진 것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기한(cladistics)의 연구 결과에 의해서라고 지적한다. 물고기, 어류라고 하는 계통군은, 이른바 단계통군(monophyly)가 아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물고기라고 부르는 집단은 동일한 선조에서 유래한 모든 자손들을 포함하는 계통군이 아니라는 말이다. 포유류와는 달리. 그러므로 조던이 평생 동안 자랑스러워했던 어류 분류학자라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운 게 그 분류군이 단계통군이 아니라더라도(어류가 아니더라도) 그 그룹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여전히 많다. 단계통군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도 중요한 업적으로 취급된다. 그러므로 어류가 진화적으로, 계통발생학적으로 의미 있는 계통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류 분류학에서의 업적이 훌륭하다면 여전히 훌륭한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세계를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물고기라고 하는 지점은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물고기를 버린다는 의미에 대해서는 곱씹게 된다. 그것은 기존의 개념, 비록 틀렸지만 그 안에서 안락함을 느낀다면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 개념을 주장하는 대신, 비록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그 안락함의 세계에서 뛰쳐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연의 사다리라는 어쩌면 당시에 보편적인 개념을 강고하게 간직한 채 그것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불합리한 주장까지도 열렬하게 주장한 것과는 분명 차별적인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의문의 여지 없이 베스트셀러다. 물론 조금 감동적이고(아주 많이는 아니고), 과학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고, 미국 우생학의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고 있기도 해서 흥미롭다. 그러니까 충분히 좋은 책이다. 그런데 그만큼 팔릴 정도? 책이 읽히는 것도 어느 정도의 관성이 있다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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