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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장식된 장부, 유럽을 일으키다 | 책을 읽다 2023-05-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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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창발의 시대

패트릭 와이먼 저/장영재 역
커넥팅(Connecting) | 2022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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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에 대해서부터.

창발의 시대는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이고, 책의 내용을 올곧게 전달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가 다루는 시대를 창발적인사고가 분출되기 시작한 시대로 볼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지만, 저자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이 시대가 그런 의식적인 면에서 생긴 창발적인 사고가 유럽의 승리로 귀착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원제 “The Verge”는 뭘 의미하는 걸까? 더 아리송하다. “길가, 도로변, 가장자리등을 의미하는 단어가 verge이니 말이다. 당시의 유럽의 처지가 그렇다는 뜻일까? “on the verge of”가까스로란 뜻을 가지고 있으니,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가 가까스로어떤 지점을 통과한다는 의미일까? 궁금하다.

 


 

 

2. 이 책이 다루는 시기.

이 책은 1490년에서 1530년까지의 40년을 다룬다. 가망이 별로 없어 보였던 유럽이 2, 3세기 후에는 완전히 세계를 장악하게 된 원천은 바로 이 40년이라는 시기 동안에 있었다는 의미다.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면,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이 시기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서 시작하며, 카를 5세의 군대에 의한 로마 약탈로 끝난다. 그 사이에는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으며, 르세상스가 일어나고 있었다.

 

3. 이 책이 다루는 인물들

아홉 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 (스페인)

야코프 푸거

괴츠 폰 베를리힝엔,

알두스 마누티우스

존 헤리티지

마르틴 루터

쉴레이만 대제

카를 5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익숙한 인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다. 가장 익숙하지 인물을 들라면 모두 비슷할 거다. 괴츠 폰 베를리힝엔과 존 헤리티지라는 인물이다. 베를리힝엔은 강철 손의 괴츠(Gotz of the Iron Hand)’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용병대장이었고, 존 헤리티지는 잉글랜드의 양모 사업가였다. 그렇다고 이들이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용병대장이라거나 거대한 부를 일군 대표적인 사업가는 아니었다. 해봐야 중소규모의 용병 부대를 지휘하던 인물이었고, 자신의 지역에서도 가장 부자도 아니었고, 적당한 수준의 부를 일구고 신분 상승을 꾀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록을 남겼다. 용병대장은 자신의 활약상(?)을 솔직하게 담은 일기를 남겼고, 양모사업자는 자세한 거래장부를 남겼다. 그런 일기나 거래장부를 쓴 사람은 많았을 테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기록은 남겨졌고’, 그 덕택에 시대상을 아주 높은 데서만이 아니라 적당하게 낮은 데서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저자가 그들을 다른 기라성 같은 인물들 사이에 위치시킨 것은 그런 이유다.

 

4. 이 인물들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다면 이 아홉 명의 인물들을 관통하는 시대적 공통분모는 무엇을까? 저자는 바로 자본’, ‘으로 본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대서양 항해에서부터 미지의 세계를 응시하는 유명한 탐험가들의 영웅적인 시선보다는 거래 장부를 기록하는 깃펜의 움직임, 왕실 권력자와 이탈리아 금융업자 사이의 진지한 대화, 그리고 신용장과 거래계약서의 이야기라고 쓰고 있다.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이 아라곤의 페르디난드왕과 결혼을 한 것도, 단순한 정치적 정략 결혼을 넘어서 의 문제가 크게 걸려 있었다.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평가되는 야코프 푸거(가문)은 말할 것도 없다. 용병들의 세계 역시 달리 말할 것이 없다. 그들은 을 위해 움직였다. 돈이 없으면 전쟁이 치러지지 않았다. 학자를 꿈꿨던 알두스 마누티우스가 인쇄업에 뛰어든 것 역시 돈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는 탁월한 아이디어를 통해 인쇄업을 통해 자본을 일궈냈다. 마르틴 루터가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의 용감함, 혹은 시대정신 때문이었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라틴어뿐만 아니라 독일어로도 뛰어났던 그의 글이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었다는 게 더 현실적인 설명일 듯하다. 인쇄업자들은 루터의 글을 필사적으로 출판했다. ? 돈 때문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대제의 경우는, 어쩌면 반증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풍족했던 술탄은 바로 그 시기에 정점에 있었다. 풍족했기에 혁신의 동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반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며 늘 돈에 허덕였던 카를 5세와 그의 후예들은 그 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장치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업자들은 필요했으므로 장치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패트릭 와이먼은 이렇게 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자본이 있다. 총구나 장창 앞에 선 병사들은 급료를 요구했다. 리스본, 암스테르담, 그리고 런던에서 향신료가 풍부한 인도양의 항구나 설탕을 생산하는 카리브해의 섬으로 향하는 항해는 값비싼 벤처사업이었다. 모든 것에는 비용이 있었고, 유럽의 독특한 이점은 자원이나 어떤 문하적 천재성보다는 마침맞게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목적에 도움이 된 경제적 관행에 있었다. 40년 동안에 유럽인은 모든 것에 있는 비용을 지불할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5. 책의 재미

책의 최종 결론에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연 그가 제시하는 그것, 이 모든 것을 당시부터 좌우했다는 건가? 여기의 모든 인물들, 사건들이 그렇게 하나의 고리에 줄줄이 달려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또한 그렇다면 왜 동양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도 이 책의 결론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약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질문을 던져서 답을 하기 시작한다면 책은 한도 없이 두꺼워질 수 밖에 없고, 그건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한 세대를 좀 넘는 시기에 한 대륙에서 벌어진 일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 지점을 향해 모여들고 있는 느낌을 강력하게 주고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서로 다른 지위의, 서로 다른 국가의 인물들이 분산적이지 않고, 집중되는 느낌을 준다. 분명한 주제 의식과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만들어낸 집중력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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