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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장식된 장부, 유럽을 일으키다 | 책을 읽다 2023-05-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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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창발의 시대

패트릭 와이먼 저/장영재 역
커넥팅(Connecting)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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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에 대해서부터.

창발의 시대는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이고, 책의 내용을 올곧게 전달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가 다루는 시대를 창발적인사고가 분출되기 시작한 시대로 볼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지만, 저자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이 시대가 그런 의식적인 면에서 생긴 창발적인 사고가 유럽의 승리로 귀착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원제 “The Verge”는 뭘 의미하는 걸까? 더 아리송하다. “길가, 도로변, 가장자리등을 의미하는 단어가 verge이니 말이다. 당시의 유럽의 처지가 그렇다는 뜻일까? “on the verge of”가까스로란 뜻을 가지고 있으니,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가 가까스로어떤 지점을 통과한다는 의미일까? 궁금하다.

 


 

 

2. 이 책이 다루는 시기.

이 책은 1490년에서 1530년까지의 40년을 다룬다. 가망이 별로 없어 보였던 유럽이 2, 3세기 후에는 완전히 세계를 장악하게 된 원천은 바로 이 40년이라는 시기 동안에 있었다는 의미다.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면,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이 시기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서 시작하며, 카를 5세의 군대에 의한 로마 약탈로 끝난다. 그 사이에는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으며, 르세상스가 일어나고 있었다.

 

3. 이 책이 다루는 인물들

아홉 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 (스페인)

야코프 푸거

괴츠 폰 베를리힝엔,

알두스 마누티우스

존 헤리티지

마르틴 루터

쉴레이만 대제

카를 5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익숙한 인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다. 가장 익숙하지 인물을 들라면 모두 비슷할 거다. 괴츠 폰 베를리힝엔과 존 헤리티지라는 인물이다. 베를리힝엔은 강철 손의 괴츠(Gotz of the Iron Hand)’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용병대장이었고, 존 헤리티지는 잉글랜드의 양모 사업가였다. 그렇다고 이들이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용병대장이라거나 거대한 부를 일군 대표적인 사업가는 아니었다. 해봐야 중소규모의 용병 부대를 지휘하던 인물이었고, 자신의 지역에서도 가장 부자도 아니었고, 적당한 수준의 부를 일구고 신분 상승을 꾀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록을 남겼다. 용병대장은 자신의 활약상(?)을 솔직하게 담은 일기를 남겼고, 양모사업자는 자세한 거래장부를 남겼다. 그런 일기나 거래장부를 쓴 사람은 많았을 테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기록은 남겨졌고’, 그 덕택에 시대상을 아주 높은 데서만이 아니라 적당하게 낮은 데서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저자가 그들을 다른 기라성 같은 인물들 사이에 위치시킨 것은 그런 이유다.

 

4. 이 인물들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다면 이 아홉 명의 인물들을 관통하는 시대적 공통분모는 무엇을까? 저자는 바로 자본’, ‘으로 본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대서양 항해에서부터 미지의 세계를 응시하는 유명한 탐험가들의 영웅적인 시선보다는 거래 장부를 기록하는 깃펜의 움직임, 왕실 권력자와 이탈리아 금융업자 사이의 진지한 대화, 그리고 신용장과 거래계약서의 이야기라고 쓰고 있다.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이 아라곤의 페르디난드왕과 결혼을 한 것도, 단순한 정치적 정략 결혼을 넘어서 의 문제가 크게 걸려 있었다.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평가되는 야코프 푸거(가문)은 말할 것도 없다. 용병들의 세계 역시 달리 말할 것이 없다. 그들은 을 위해 움직였다. 돈이 없으면 전쟁이 치러지지 않았다. 학자를 꿈꿨던 알두스 마누티우스가 인쇄업에 뛰어든 것 역시 돈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는 탁월한 아이디어를 통해 인쇄업을 통해 자본을 일궈냈다. 마르틴 루터가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의 용감함, 혹은 시대정신 때문이었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라틴어뿐만 아니라 독일어로도 뛰어났던 그의 글이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었다는 게 더 현실적인 설명일 듯하다. 인쇄업자들은 루터의 글을 필사적으로 출판했다. ? 돈 때문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대제의 경우는, 어쩌면 반증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풍족했던 술탄은 바로 그 시기에 정점에 있었다. 풍족했기에 혁신의 동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반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며 늘 돈에 허덕였던 카를 5세와 그의 후예들은 그 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장치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업자들은 필요했으므로 장치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패트릭 와이먼은 이렇게 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자본이 있다. 총구나 장창 앞에 선 병사들은 급료를 요구했다. 리스본, 암스테르담, 그리고 런던에서 향신료가 풍부한 인도양의 항구나 설탕을 생산하는 카리브해의 섬으로 향하는 항해는 값비싼 벤처사업이었다. 모든 것에는 비용이 있었고, 유럽의 독특한 이점은 자원이나 어떤 문하적 천재성보다는 마침맞게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목적에 도움이 된 경제적 관행에 있었다. 40년 동안에 유럽인은 모든 것에 있는 비용을 지불할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5. 책의 재미

책의 최종 결론에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연 그가 제시하는 그것, 이 모든 것을 당시부터 좌우했다는 건가? 여기의 모든 인물들, 사건들이 그렇게 하나의 고리에 줄줄이 달려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또한 그렇다면 왜 동양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도 이 책의 결론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약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질문을 던져서 답을 하기 시작한다면 책은 한도 없이 두꺼워질 수 밖에 없고, 그건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한 세대를 좀 넘는 시기에 한 대륙에서 벌어진 일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 지점을 향해 모여들고 있는 느낌을 강력하게 주고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서로 다른 지위의, 서로 다른 국가의 인물들이 분산적이지 않고, 집중되는 느낌을 준다. 분명한 주제 의식과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만들어낸 집중력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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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만나다 | 책을 읽다 2023-05-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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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정연희 역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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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등장시켰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 이어 ! 윌리엄!을 썼듯. , 그런데 좀 다르긴 하다. 루시 바턴이나 윌리엄은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진, 분명한 장편소설이다. 그런데 올리브 키터리지다시, 올리브? 글쎄... 장편소설일까? 단편소설집일까? 그래. 이런 류에 부르는 명칭이 있다. 연작소설. 모든 이야기에 올리브 키터리지가 등장하지만, 모든 이야기에 올리브 키터리지가 주인공은 아니다. 몇 편의 이야기에선 주인공이고, 몇 편의 이야기에서는 조연, 그리고 또 몇 편의 이야기에선 단역, 혹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나 대화 속에 스쳐가는 존재이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올리브 키터리지와 관련되어 있지만, 굳이 그녀가 없어도 되는, 그러나 그녀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분명한 의미를 갖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올리브는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이미 나이가 들었다. 그러니 그 후의 이야기인 다시, 올리브에선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다. 노년 이후의 삶. 외롭고, 지루하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 물론 외롭고, 지루한 나날이긴 하다. 그러나 그 외롭기 지루한 나날 중에도 굴곡이 있다. 감정의 고저가 있고, 그저 과거만 회상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삶이 있다.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 일상적인 소식처럼 전해지지만, 또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도 있다. 그걸 그저 자연의 흐름이라고만, 그저 받아들이고, 그저 그렇다고만 여기기만 하는 것일까? 소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이야기만 엮어보면 이렇다. 아내와 사별한 하버드대 전직 교수 잭 케니슨과 밀당 끝에 서로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다. 뉴욕에 사는 족부의학 의사 아들 크리스토퍼의 가족들이 찾아오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며느리를 이해하고 가까워진다(, 그 사이에 동네 여자의 아이를 자신의 차에서 직접 받아내기도 한다). 두 번째 남편 잭이 죽고, 올리브도 심장마비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다. 그리고 잭과 살던 집을 처분하고, 노인요양 아파트로 옮긴다. 이렇게만 보면 역시 누구나 겪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사실 그런 이야기지만), 그 사이에 누군가를 만나 살아가는 일에 대해, 죽어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들. 다들 달리 살아가지만, 또 서로 이해할 만한 일들. 그게 이 소설의 이야기들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다른 소설의 인물들을 이 연작소설에 등장시키고 있다. 올리브 키터리지뿐만 아니라 버지스 형제의 형제들을, 에이미와 이저벨의 에이미와 이저벨도 올리브와 관계를 맺는다. 심지어는 이저벨은 올리브의 마지막 친구가 된다. 마치 어벤저스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 그건 아니다. 여기의 사람들은 그런 영웅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 후회도 많고, 가끔은 자긍심도 느끼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화해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전혀 관계없다고 여겼던 사람들, 아니 그런 것도 의식할 수 없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는 관계를 맺게 된다.

 

어쩐지 서늘한 느낌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고, 중간엔 따뜻했지만, 또 결국엔 서늘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과연 현명하게 늙어갈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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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전성 시대,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나 | 책을 읽다 2023-05-2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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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제학자의 시대

빈야민 애펠바움 저/김진원 역
부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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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에서는 경제학자의 전성 시대였다. 그러나 여기서 경제학자란 말은 제한이 붙어야 한다. 바로 경제학자를 크게 둘로 나눌 때의 한 쪽, 케이스는 제외해야 하기 때문이다. 40년 간 미국의 경제 정책, 나아가 사회 정책을 좌지우지한 경제학자들은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한, 이른바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이었다. 빈야민 애펠바움이 경제학자의 시대’(혹은 원제대로 경제학자의 시간’)는 다름 아닌 이들, 보수파 경제학자들의 시대였고, 이 책은 그들이 미국의 경제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깊숙하게 파고들어 평가하고 있다.

 

사실 1950,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도 경제학자의 위상은 별 볼 일 없었다 한다. 그 예로 저자는 첫머리에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준)에서 푸대접 받으며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던 전 연준 의장 폴 볼커의 일화를 들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다른 전공의 고위직 인사들을 위해 계산이나 하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후반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 중심에 바로 밀턴 프리드먼이 있었다. 이 책은 조금 과장하자면, 밀턴 프리드먼과 그의 영향력에 관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밀턴 프리드먼 자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이른바 시카고학파라 불리는 그와 가까운 이들, 그에게 감화 받은 이들, 그에게 설득당한 이들, 혹은 그와 대척점에 섰던 몇몇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프리드먼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2008년까지의 미국 사회를 좌지우지했다고 볼 수 있다(어쩌면 더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칠레라고도 할 수 있지만). 미국 사회를 보수 헤게모니로 변화시킨 원동력에 프리드먼을 비롯한 보수파 경제학자들의 활약이 있었다.

 


 

 

저자는 그들의 활약을 시간 순서를 따르면서도, 이슈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가장 먼저 다루는 이슈가 징병제 이슈라는 것이 가장 놀랍다. 사실 이것이 경제 이슈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은 경제 이슈로 포장된 근본적인 경제 철학, 사회 철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보수파 경제학자들은 자유를 내세우며 징병제를 반대하고, ‘모병제를 부르짖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학자들이 다루었고, 여기서 애펠바움이 다루고 있는 이슈는 세금에 관한 정책이다. 프리드먼과 케인스의 대립을 얘기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정부가 시장에 어느 정도나 관여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이는 이후로 이어지는 많은 이슈들에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실업 문제에 대한 것이다. 이것도 새삼 알게 된 건데,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현상,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이로 인한 실업)가 동시에 일어났을 때 어느 쪽을 먼저 잡을 것인가의 문제가 굉장히 첨예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보수파 경제학자들은 단연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고 나섰다. 그로 인해 실업자들이 나오더라도 그건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문제이며, 나중에는 결국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 여겼다. 감세의 문제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접근했던 것이다.

 

또한 보수파 경제학자들이 굉장히 애쓴 문제는 반독점법을 철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시장이 스스로 최상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여겼고, ‘정의보다는 효율을 우선시했다. 이는 규제의 철폐로 이어졌다. 소비자를 위해서 좋은 것이 선이라고 여겼는데, 이는 결국은 소비자가 될 노동자의 파산을 감안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의 가격문제가 이 시기에 첨예한 논점이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문제는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이기도 했지만, 매우 격렬한 경제 문제이기도 했다는 것을 역시 새삼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목숨 하나의 가치를 10억으로 보느냐, 100억으로 보느냐는 그 목숨을 구하기 위한 규제, 내지는 조치를 하는데 기업에게 강제할 것인가, 말 것인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비용 대 편익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제는 목숨의 가격을 누구나 계산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 가격이 얼마든 보수주의 경제학자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시간이 끝장 난 것은 2008년 경제 위기, 미국에서는 흔히 대침체(Great Recession)이라고 글로벌 금융 위기에 이르러서였다. 시장 만능, 정부 불간섭과 같은 교리가 만고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사태였다. 애펠바움은 이후의 상황에 대해 깊게 다루고 있지는 않으나 40년 간 경제학자의 시간이 가져온 폐해를 아직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철저하지 못한 응징과 경제 정책 역시 과거를 답습하였다는 것이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첨예한 논쟁의 지점은 날카롭게 지적되었고, 등장인물들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그들의 위트 섞인, 혹은 시니컬한 말들의 표현은 어디다 적어놓고 싶었다(홍기빈 소장이 <추천의 말>에서 이 책을 거대한 활극 같은 책이라고 한 데 적극 동의한다). 경제학의 역사이지만, 그 경제학이 좌지우지한 미국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밀턴 프리드먼의 책 한 권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분이 최고의 자리에 있는 나라. 그럼에도 경제학자보다는 다른 직업의 인물들이 많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나중에 이 시기를 뭐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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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듯 처연한, 조지 손더스의 유머 | 책을 읽다 2023-05-2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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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패스토럴리아

조지 손더스 저/정영목 역
문학동네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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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손더스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 거친 듯한데 정교하고, 기괴한 듯한데 처연하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그린 듯한데 결국은 세상의 일이다.

 

제목부터 궁금했다. 표제작의 제목이기도 한 패스토럴리아’. 찾아보니 패스토럴(pastoral)’에서 온 말이란다. 주인공이 근무하는(갇혀 사는?) 테마파크의 이름이다. 화자이자 주인공은 조악하게 재현된 선사시대 동굴에서 고대 인류를 재현하여 구경거리가 되는 역할이다. 그 역할로 가족을 부양하고, 아들의 수술비를 댄다. 그러나 아무도 구경거리인 자신을 보지 않고, 또 여자 동료는 영어를 쓰고 담배를 핀다. 금지된 일이다. 물론 여자 동료도 절박하며, 그 절박함만큼이나 괴롭다. 그들은 갇혀 살지만, 스스로 원한 것이고 쫓겨나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주인공은 관리인의 요구와는 달리 동료 평가를 하며 아무 이상이 없다고 쓰지만, 결국은 관리인이 원하는 내용을 쓰고 만다. 이쯤 되면 패스토럴리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짜 동굴 속 가짜 동굴 인간이 무얼 의미하는지 분명해지지 않는가? 우리가 사는 세계. 테마파크와 다를 바 없는 불쾌함의 세계. 그러니까... 현실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세계는 이어진다. 이모와 누나들과 어린 조카들과 살아가며 스트리퍼로 생활을 영위해나가는 <시오크>도 그렇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 않으면서 늘 낙관적이던 이모가 침입한 도둑에 놀라 죽었을 때, 죽은 이모가 무덤에서 사라져 난데없이 집으로 찾아와 조카들에게 제대로 살아가라고 한다. 그런데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선 스트리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던져야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아니 현실이다. 조지 손더스가 인식하고 있는 미국 하층 백인 가족의 현실이다. 그 현실은 <이발사의 불행>에서도 이어진다. 자존심과 허상의 세계다. 우리는 이발사를 불쌍하게 여겨야할지, 우습다고 여겨야할지 곤란하다. 아마 둘 다일 거다. 우스우니 불쌍하다. 불쌍하니 화가 난다. 조지 손더스의 유머는 이런 식이다. 어느 한 곳에서도 시시껄렁한 우스갯소리를 하지 않지만 다 읽고 나면 그게 유머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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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금속 | 책을 읽다 2023-05-2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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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프로메테우스의 금속

기욤 피트롱 저/양영란 역
갈라파고스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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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금속이란 1940년대 미국의 화학자 찰스 코리엘이 희귀 금속에 프로메튬이라는 이름은 붙인 데서 연유한다. 물론 프로메튬은 정식 원소 명칭이 아니지만, 그 의미만큼은 충분히 전달된다. 인간에게 을 선사하여 문명의 시대를 살게 한 티탄의 아들, 프로메테우스. 이른바 희토류라고도 불리는 희귀 금속들은 바로 그처럼 인류에게 있어 현대의 문명을 떠받치는 소중한 자원이면서, 동시에 그로 인하여 다툼이 생기는 문젯거리이기도 하다.

 

국제 사회에서 희토류가 가지는 중요성은 중국이 센카쿠 열도에서의 충돌이 벌어졌을 때(중국인 선장 구금) 희토류 수출을 막으면서 굴복시켰던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가지게 될 힘은 어쩌면 바로 이 희토류라는 자원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언론이 기욤 피트롱은 바로 이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희귀 금속의 허상과 이를 인한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은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은 희귀 금속이 현대 문명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현대 문명을 돌아가게 하는 동력은 자석에서 오는데, 바로 강력한 자석의 원료가 바로 희귀 금속이다. 그리고 많은 첨단 제품, 기기의 재료에 들어가기도 한다. 저자가 부록에 첨가한 전기차라든가 휴대폰에 들어가는 희귀 금속에 관한 그림을 보더라도 희귀 금속이 얼마나 보편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희귀 금속의 허상이다. 정보 사회라든가, 탈탄소 사회 등을 얘기하는데, 그걸 위해서 내세우는 많은 에너지 생산 수단이라든가, 제품에 희귀 금속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희귀 금속이 들어가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생산과 이동을 위해서 거의 비슷한,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최근에 지적되고 있듯이 전기차가 화석 에너지를 적게 쓰는 교통수단이라는 데 회의감이 드는 것 역시도 같은 맥락이다(전기차를 움직이게 하는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쨌든 석유나 석탄을 때서 나온 에너지다). 이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지만 명확하기 인지는 해야 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길게, 깊게 얘기하고 있는 것은 중국에 대한 견제다. 중국이 어디까지 희귀 금속을 무기화할 지는 모르지만, 서구의 입장에서도 우려스럽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에 관해서는 자세히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좀 다른 생각을 피력해 보자면 이렇다. 서구는 식민지화 등을 통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자원을 착취하거나, 그것을 무기화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걸 조금 다른 방식으로 되돌려주려고 하는 중국의 방식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이 어째 좀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방식은 우려스럽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세계의 질서를 교란했던(그들의 입장에서는 질서를 세웠다고 해야 하나?) 자신들의 과거(그게 현재로 이어진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가와 반성이 없는 것은 씁쓸하다. 이 책도 그런 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지극히 프랑스 입장에서 어떻게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궁리한다. 프랑스인이 프랑스어로 쓴 책이니 당연하다).

 

궁금해진다.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아니 준비할 생각은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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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탐구하다 | 책을 읽다 2023-05-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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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발로 읽는 인간의 역사

엘리자베스 세멀핵 저/황희경 역
아날로그(글담)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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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신발에 메이커란 말을 붙여 부르곤 했다. 그러니까 이름 있는 상표가 붙은 신발을 의미했다. 아이들은 메이커 신발을 신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졌고, 아마 부모님들은 안타까워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또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지만), 한두 번 메이커 신발을 장만하고, 밖을 나설 때 왠지 남들이 내 신발을 봐주길 바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내가 신는 신발의 상표를 굳이 의식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상표의 신발이 내게 더 편하다는 인식이 있을 뿐이다. 그게 아내가 권하는 상표의 신발보다 더 싸고, 인지도도 떨어지지만 나는 편한 걸 선택한다. 몇 켤레의 신발이 신발장에 있고, 아침마다 상황에 따라서 번갈아 신고 나간다.

 

그러고 보면, 신발 역시 실용성만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과거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짚신을 신느냐, 아니면 고무신을 신느냐가 신분을 나타냈을 것이다. 다른 많은 것들처럼 신발 역시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물건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바타 신발 박물관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소개를 보면 4,500년 전의 신발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13,000여 점의 신발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쓴 엘리자베스 세멀핵은 이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다. 하루 종일 신발을 보고, 신발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모든 신발에 관해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고대 적에는 어떤 신발을 신기 시작했고.... 이런 얘기로 시자하지도 않는다. 대신 네 가지 신발 종류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신발들이다. 이 신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고, 어떻게 변해왔는지와 더불어, 신발이 갖는 의미와 시선들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를 함께 탐구하고 있다.

 

우선 우선 로마에서 유행했다 오랫동안 버려졌지만 18세기 말에 다시 서구에 도입된 샌들이다(로마에서 유행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 그림을 보더라도, 영화를 보더라도 원로원 의원들의 신발이 다 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실용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면서 도입되었을 텐데, 동시에 갑갑한 사회에 대한 반향도 있었다. 사회는 발가락을 내놓는 것에 대해 경기 같은 것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늘어난 여가 시간과 함께 보편적인 신발 종류가 되었다.

 

부츠는 어떤가? 부츠의 시작은 권력, 지배, 남성성과 같은 단어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사냥과 전쟁을 상징했기에 남성의 신발이었던 부츠는 20세기 들면서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서 그런 용도와 상징이 사라지고, 이제는 오히려 여성의 신발이 되었다.

 

하이힐이 여성성의 극대화를 노린 신발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들어왔다. 프랑스 궁정에서 오물을 피하기 위해서 신었다는 야사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서아시아에서 승마용으로 신은 굽이 달린 신발이었다는 점은 놀랍다. 그러니까 시작은 남성의 신발이었다는 얘기다. 서구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그 이후 욕망의 대상이장 상징이 되었지만 동시에 여성참정권 등을 비롯한 여성 운동과 관련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신발이다.

 

스니커즈의 어원이 스니크(sneak), , ‘살금살금 걷다에서 왔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바닥에 고무 밑창을 대어 다가오는 데 소리가 나지 않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대중 스포츠의 확대와 더불어 생산과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신발이다. 그런데 거기에 우생학과 파시즘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있다. 물론 개인주의의 영향도 크다. 현대에 들어와서 일부 남성들이 수집에 열의를 보이는 대상이 된 것도 참 이채로운 일이다.

 

저자는 각 신발에 대해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플립플롭 샌들은 여름휴가와 레저를, 부츠는 건실한 정통성 또는 불온한 지배를, 하이힐은 여성성을, 스니커즈는 스포츠와 도시 문화를상징한다.

 

신발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 신발의 문화와 상징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책 속에 가득 찬 사진들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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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살인자'와의 싸움 | 책을 읽다 2023-05-1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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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사질환에 도전하는 과학자들

남궁석 저
바이오스펙테이터 | 202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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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혈관 질환이 가장 중요한 사망 원인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감염질환이 항생제 등의 개발로 주적(主敵)의 위치에서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암과 심장질환과 뇌혈관 질환이었다. 심혈관 질환은 심장질환과 뇌혈관 질환을 아우르는 말이니, 심혈관 질환이야말로 21세기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심혈관 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또 이에 관한 연구 개발이 이어지면서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많이 줄었다. 흡연 감소와 같은 위험 요소의 감소와 함께 진단 치료 기술의 발달에 기인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심혈관 질환,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 개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남궁석 박사는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현대 생물학의 발전 양상에 관해 대중들에게 알려왔다. 암 정복 연대기바이러스, 사회를 감염하다는 수준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대중들의 지식 갈망을 적절하게 충족시켜주는 책이었다. 이 책도 그렇다.

 

이 질병들,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을 남궁석 박사는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바로 암이나 감염질환처럼 두드러지게 눈에 띄거나 병세가 즉시 나타나지 않지만, 서서히 우리의 목숨을 노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질환, 즉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라든가, 높은 혈압, 비만이 건강에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사례로 20세기 중반 4차례나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가 있다. 그의 혈압은 지금으로 봐서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의사들은 그게 문제가 된다고 여기지 않았다. 물론 문제가 된다고 여겼더라도 쓸 약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혈압을 낮추기 위한 무슨 조치라도 했을 것이고, 하다못해 연구라도 좀 더 박차가 가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던 것이 우리가 평상시에 가장 염려하는 질환 중 하나가 되었고, 많은 제약회사들이 대박을 노리고 약을 개발하고, 출시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가 효과가 좋은 많은 약이다. 대표적으로 고지혈증(높은 혈중 콜레스테롤)에 대한 스타틴이 있고, 고혈압에는 노바스크가 있다. 비만에 대해서도 인크레틴 유사체로서 몇 가지 약이 나와 승인이 되었다. 그렇게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약들은 우리의 건강한 여분의 삶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약이란 게 우리 몸에 어떤 문제가 있으니, 그것을 바로 잡자고 마음 먹으면 금방 뚝딱 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그저 많은 물질들을 막 테스트하다보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랜 동안의 기초 연구, 즉 인간의 생리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한 가지 경로를 이해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를 이해했는데, 그것과 관련된 다른 경로가 튀어나오고, 또 반대되는 현상도 나온다. 약의 활성에 대한 연구도 충분히 이뤄져야 하며, 효과가 기대되는 약이 나오면 동물 실험에서 시작해서, 1, 2, 3상 지리한 임상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다가 효과가 부족해서, 문제가 생겨, 투약하는 방법이 부적절해서, 혹은 경제적 효과가 적어 포기되는 약이 부지기수다. 우리가 먹고, 주사로 투여받는 약들은 그 복잡한 과정들을 거친 약들이다. 이 책이 과학자들을 중심에 놓은 책은 분명 아니지만, 제목을 그리 지은 이유를 생각해본다.

 

이 책은 그냥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생물학 전공자들에게만 권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이 질환의 위험성에 놓여 있다. 이미 여기에 소개된 약을 처방받고 이들도 많다(나도 그중 하나다). 내가 처방받고 있는 약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되었는지, 또 어떤 메커니즘으로 효과가 있는지 알고 싶지 않은가? 그런 작은 궁금증만 갖고 있더라도 이 책은 무척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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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이 넘어 찾아온 인생의 기회 | 책을 읽다 2023-05-1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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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클락 댄스

앤 타일러 저/장선하 역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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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여인의 삶. 1부의 11, 21, 41살 때의 일은 일화처럼 스쳐간다. ‘일화처럼이라고 했지만, 윌라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순간이었다. 간디 같은 아빠와 다투고(정확히는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집을 나간 엄마. 아빠와 동생과 보낸 12일의 11. 대학에 입학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고향에 인사하러 온 21. 그 사람과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고, 사춘기의 아들에 대해 언쟁을 하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급작스레 떠나버려애 했던 41.

 

그리고 2017. 61살이 된 윌라는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재혼을 했고, 남편도 은퇴하고 애리조나에서 골프를 즐기며 살아간다. 그러다 엉뚱하게 다른 사람의 삶과 엮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삶에 의미가 있을 뻔하다 궤도를 달리하게 된 이들과 엮인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의욕이 생긴다.

 


 

 

뭐랄까? 푹 빠져든다고 할까? 우리와는 좀 다른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지만, 이제 거의 할머니가 되어가는 윌라와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쨌거나 보편적인 삶의 인식을 보여주니까.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이 라고 하는 주체의 튼튼함도 물론 필요하지만, ‘는 나 혼자서만 우뚝 설 수 없다. 누가 그걸 모르겠나? 하지만 그걸 죽을 때까지도 부인해가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세 명의 어린이가 모여야 가능한 클락 댄스처럼.

 

왠지 우아했다. 우아를 떠는 사람은 없는데도 그렇다. 일상의 진실된 모습이 우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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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은 어떻게 의사가 되어가는가 (의사가 쓴 의학소설) | 책을 읽다 2023-05-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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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울지마 인턴

나카야마 유지로 저/오승민 역
미래지향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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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수급에 문제가 많다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힘들고 돈이 많이되지 않는 과를 기피하는 풍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고, 의료비 수가 적용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고, 전체적인 의사 숫자가 적어서라는 진단도 있다. 거기에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간의 업무 범위를 놓고도 갈등이 있다. 아무튼 이래저래 어려운 문제다. 힘든 진통의 과정을 겪고 나은 방향으로 정리되어 나가리란 기대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

 

요즘 학생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의사를 길러내는 과정의 아주 작은 부분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직접 듣거나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대로 만 생각해서 선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나는 이 역시 앞서 읽었던 집단 착각의 한 예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사들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선택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의사들은 꼭 하고 싶은 일이라서 선택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선입견은 편견으로 이어지고, 근거 없는 편견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터이다.

 

류지는 지방의 의과대학을 막 졸업하고 도쿄의 한 병원 인턴 1년 차 의사다. 인턴이라... 아마 병원에 갔을 때 인턴에게 자신의 몸을 전적으로 맡기고픈 환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분명 국가고시를 통과한 엄연한 의사지만, 믿음직스런 의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아니 아직 의사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건 인턴 스스로도 그렇다. 류지도 그렇다.

 

류지는 어릴 적 형이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아나필락스 쇼크로 죽었다. 급작스런 죽음을 목격한 것이 그였다. 그 후로 형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끝내는 재수까지 하며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인턴으로 맞닥뜨린 몇 명의 환자 이야기가 이 소설의 뼈대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다섯 살 짜리 어린이. 말기 췌장암으로 가망이 없는 동갑내기 환자. 아흔이 넘어 암에 걸린 치매 환자 등등. 이들을 맞닥뜨리면서 좌충우돌하며 실수를 저지르고, 배우고, 갈등하고, 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진짜 의사가 되어가는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실제 의사가 썼다. 분명 저자의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의사가 되었을 것이고, 대부분의 의사가 그렇게 의사가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의사란 직업이 그저 책을 보고 다 배울 수 없는 직업이기에 누구나 실수를 하며(부디 큰 실수는 없기를!), 혼이 나며, 좌절하며, 계단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사람의 목숨에 대해서 고민하며,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배워나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보면 능숙한 의사가 되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부디 이기적이지 않은, 초심을 잃지 않는, 많이 겪고, 많이 고민하고, 또 공부도 열심히 하는(모르는 게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의사는 모르는 게 죄다) 의사들이 많아졌으면, 아니 모두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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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되는 집단 착각 | 책을 읽다 2023-05-1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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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집단 착각

토드 로즈 저/노정태 역
21세기북스 | 202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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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지성이란 말이 유행처럼 쓰일 때가 있었다. 지금도 유효한 말이고, 또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며 해결 방식이다. 그런데 토드 로즈는 이 말 대신 집단 착각(collective illusions)’이란 용어를 한다. 한 마디로 사회적 거짓말로 정의되는 집단 착각의 고전적인 예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모두 알고 있으면서 남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현상이다.

 

토드 로즈는 자신이 운영하는 비영리 싱크탱크 포퓰레이스(Populace)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도 제시한다. 어떤 삶을 성공적인 삶이라고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분석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관심과 재능에 따라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는 삶을 성공적인 삶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남들은 어떨 것 같느냐는 질문에는, 남들은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높은 명예를 쌓은 유명 인사가 되는 것을 성공적인 삶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논리상 말이 되지 않는 답변이다. 이 둘의 답변은 거의 비슷해요 옳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못알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집단 착각이다.

 

토드 로즈는 사회적 삶 곳곳에서 집단 착각이 난무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전쟁에 대한 생각, 기후 변화에 대한 생각, 정치에 대한 생각 등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 대한 신뢰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어떤 음식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 등등에서도 나는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나는 가족 친화적 정책을 지지하는 데 반해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단적인 편견의 일종인 셈이다.

 

이와 같은 집단 착각과 관련하여 토드 로즈는 다양한 면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그것이 끼치는 해에 대해 맹렬하게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여기는 견해에 대해 자신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주장하지 못하는 순응, 내지는 침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소속감이라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집단에 도전하지 못하고, 흑백 논리로 사고하는 경향에 대해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집단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라는 질문과 의심의 씨앗,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 진실성에 대한 회복, 긍정적인 일탈 같은 것들이다. 사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만큼 집단 착각은 은밀하게 강력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부끄러운 대목이 적지 않은데, 바로 나의 얘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회의 자리에서 내 생각은 분명 다른데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감히 반대하지 못하고 침묵했던 일들(모두 기억할 수도 없다). 나는 상대적으로 중립적이며 조화로운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특히 정치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굉장히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고 여기는 많은 이슈들.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한 몇몇의 비판에 화들짝 놀라, 이것이 대다수의 생각은 아닐까 전전긍긍했던 일들. 사실 토드 로즈가 이야기하는 집단 착각은 인간의 보편적인 성격이므로 이런 일들이 없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착각일 것이다.

 


 

 

집단 착각은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필요했던, 지금도 필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집단 착각이 사회를 극단적인 대립으로 내몰고, 우리가 침묵하는 동안 잘못된 규칙과 체제가 들어설 수 있다. 그렇다면 토드 로즈가 이야기하는, 집단 착각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집단 착각의 공고하지만 또한 허약한 벽에 균열을 내어 극복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또 조금은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집단 지성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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