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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 
ena님! 우수리뷰 선정되신 거 축하.. 
저도 이과를 선택해서 이공계열 대학을.. 
우수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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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보다 위대한 과학자들 | 옛 리뷰 2016-06-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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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함께하는 독자 서평 참여

[도서]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

빌리 우드워드 등저/김소정 역/우희종 감수
푸른지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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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인슈타인을 위대한 과학자라고 한다

그런데 빌리 우드워드 등은 그들의 쓴 책에 책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아인슈타인보다 위대한 과학자들” (Scientist greater than Einstein). 
도대체 어떤 과학자들이길래

그러나 그 이름들을 살펴보면 의아하다
카를 란트슈타이너빌 페이지프레더릭 밴팅알 소머엔도 아키라데이비드 날린,노먼 볼로그존 엔더스파울 뮐러하워드 플로리

어찌 보면 저자들이 구라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빌리 우드워드 등은 그 위대한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라 한다
그들은 그 위대한이라는 의미를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렸는지에 기준을 두고 있고,그기준으로 과학자 10명을 선정하고 그들에 대해서 썼다

그렇게 보고그들의 업적을 하나씩 살펴보면 그들의 위대함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혈액형을 발견하여 수혈을 가능하게 한 카를 란트슈타이너
천연두 박멸에 혁혁한 공을 세운 빌 페이지
인슐린을 찾아내 당뇨 치료에 신기원을 이룬 프레더릭 벤팅
콜레스테롤 억제제를 개발하여 고혈압 등을 치료할 수 있게 한 엔도 아키라
백신 개발의 기초를 세운 존 엔더스
페니실린 개발의 지대한 공헌을 한 하워드 플로리

여기 중 단 한 가지라도 혜택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손 들어보라고 할 정도다인류는 이들에 엄청난 은혜를 입은 셈이다

그런데 왜 이들의 이름을 우리는 모를까?
저자들이 대중들이 모를 만한 사람들을 고른 탓도 있다백신에 대해서는 소크를항생제에 대해서는 알렌산더 플레밍을 골라 쓸 수도 있었을 테지만저자들은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선택했다

그게 저자들의 의도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연예인운동선사정치인들을 추앙(?)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그러나 정작 인류에게 건강을 되찾게 하고 생명을 연장시킨 과학자들은 잊고 사는 현실에 대해서 꼬집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그래서 대중들은 모를만한그럼에도 불후의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을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소개한 이들을 비롯한 과학자와 과학의 힘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삶은 아주 많이 달랐을 것이다아니 아예 우리의 삶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그러나 모든 과학자의 일이 직접적으로 이처럼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성실함 한 줌의 창의력이나마 과학에 쏟는 과학자들의 작은 업적들이 있다그러나 그들의 작은 업적들과 그 과학자의 이름은 잊혀진다여기에 사람을 살린 업적들이 그 이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작은 업적과 아이디어들이 모이고 모여 진짜 사람을 살리는 업적으로 나오는 것이다과학은 대중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수많은 생각과 이름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이다

그게 바로 과학이다그게 바로 과학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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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5        
왜 인간인가? | 옛 리뷰 2016-03-2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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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왜 인간인가?

마이클 가자니가 저/박인균 역/정재승 감수
추수밭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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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아주 거칠게 나누었을 때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은 인간을 다른 생물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과 다를 바 없으며 수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인간의 유전자의 개수가 예쁜 꼬마선충과 별다를 것이 없으며
침팬지와 99%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등의 표현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시각은 인간을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고
지나친 인간 우월주의를 경계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인간은 다른 생물, 동물과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록 동일한 매커니즘을 갖는 유전자를 공유하고는 있지만
인간은 어느 순간 '도약'한 존재라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만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아마도 좀더 우리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는 시각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굉장히 편의적인 구분이며
또한 누구도 절대적으로 이 중 어느 한쪽에 서있다고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는 
극히 자의적인 구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구분을 적용한다면 
<왜 인간인가?> (인류가 밝혀낸 인간에 대한 모든 착각과 진실)
(원제: Human: The Science Behind What Makes Us Unique)
은 제목(특히 영어 원래 제목)에서 보듯이 두번째의 시각에서 씌여진 책이다. 
인간은 왜 독특한가를 '뇌'를 중심으로 쓴 책이다. 
그래서 프롤로그의 다음과 같은 서술은 이 책의 관점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동물과 동일한 화학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동일한 생리적 반응을 보이지만, 그들과 매우 다르다. 기체가 액체로, 액체가 고체로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진화에서도 위상 이동이 발생한다. 이러한 위상 이동은 동일한 구성 요소로 이루어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연관성이 적다." 
"개가 주인의 심리 상태에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슬픔과 동정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애완동물을 없다."


(2010년 1월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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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3        
문학과 역사를 엮다 | 옛 리뷰 2016-03-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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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저
사계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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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 교수의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는 재미있으면서 교훈적인 책이다. 

재미있다는 것은 이 책이 문학과 역사를 잘 엮어놓았다는 점에서 그렇고, 교훈적이라는 것은 이런 작업이 좀더 자주 나와야겠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이 책이 텍스트로 삼고 있는 문학서들이 제목은 잘 알고 있으면서, 실은 다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적은, 그런 책이라는 점에서 더 재미있고, 교훈적인 듯 싶다. 

맨 첫머리의 '이솝 우화'부터 그렇다. 
우리는 '이솝 우화'의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아이들의, 그것도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아이들의 그림책으로밖에 기억하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그게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 또 어떤 의미를 가진 이야기들인지 알지 못했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주경철 교수는 바로 그 알지 못하고,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았던 그 사항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셈이다. 
"사실 '바른 생활'용 우화들 중 많은 이야기가 이솝이 지은 게 아니라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에 이솝 우화를 번역 출판하면서 도덕주의가 강하게 덧칠되었다." (13쪽)

그럼 진지하게 이솝우화를 읽은 사람은 과연 무엇을 알아낼 수가 있는가?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다른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권세를 누리는 소수의 사람들과 가난에 시달리는 다수의 서민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더구나 사회 최하층에 속하는 수많은 노예들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14쪽)
"고대 그리스의 탁월한 문화적 성과들을 단순히 문화적 황금기의 산물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빚어낸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15쪽)
"세상을 바라보는 그(이솝)의 시각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못해 냉소적" (16쪽)
"이솝이 그리는 이 세상은 냉혹하며, 법이 있다고 해서 꼭 공평하게 정의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남에게 관대하게 대하며, 서로 돕고 살라는 식의 도덕적 조언들도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명료하게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세상살이의 지혜를 터득하라는 것이 현명한 노예 이솝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17쪽)

주경철 교수가 소개하는 다른 책들도 그렇다. 
단테의 <신곡>을 퀴즈에서는 잘 풀 수 있지만, 작정하고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이 제목에 담긴 뜻도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음에도...)
<신밧드의 모험>은? (나는 이 이야기를 어릴 적 만화영화로 기억한다)
푸쉬킨의 <대위의 딸> (아버지 책장에 꽂혀있던, 전집 중의 한 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 
(실버 선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실제 읽어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타잔> (이게 원래 소설이었는지도 몰랐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중학교 때 쯤 읽어보았던 기억. 노벨상이라니까...
그러나 이 책에 담긴 심오한 메세지를 읽을 순 없었다)

주경철 교수는 특히 근대 시대의 소설들을 다루면서 근대 열강들의 탐욕스러움에 대해서 많이 지적하고 있다. 그의 <대항해시대>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가령 <해저 2만리>를 얘기하면서,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자유인의 세계라고 네모 선장이 주장하지만, 이 작품의 내용 자체가 이미 그것과는 다르게 그려져 있다." (163쪽)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구태의연한 식민주의나 인종주의의 냄새 또한 강하게 풍긴다."(164쪽)
"근대의 바다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라, 이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통제하는 공간이 되었다." (165쪽)

아이들이 커가면서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권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세계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을까?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하다못해 시험 점수를 받는데 도움이 될까?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을 생각해보았을 때, 지금은 모르지만, 우리 큰 애가 고등학교 쯤에 읽는다면 많은 책을 간접적으로 읽게 될 것 같고, 책에 대해 평가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 대학생 쯤 되어 읽는다면 역사와 문학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2010년 2월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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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진화의 산물 | 옛 리뷰 2016-03-2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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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격의 탄생

대니얼 네틀 저/김상우 역
와이즈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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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네틀의 <성격의 탄생>은 이른바 성격의 다섯 특징인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이 어떤 것이며그 각각이 진화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성격에 대한 연구가 관심을 받고재미있어지고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은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진화와 연관되기 시작한 것이고하드웨어적으로는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PET라든가 fMRI 등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인데그 성과를 통해 성격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네틀의 기본적인 관점은 우선 성격이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성격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은 내게는 익숙하지만어떤 이들에게는 낯설고,또 어떤 이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어찌 생각하든 성격을 진화와 관련짓는 관점은 사람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유용하고도 너그러운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성격을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은그것이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고 개인의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적응되어온 것이라는 얘기다어떤 성격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현재는 어찌 되었든그것이 유용했던 시절 혹은 상황이 존재했다는 것이다따라서 지금 보기에는 다른 성격보다 덜 유용해보이는 성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럴만한 진화적’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이를테면, ‘외향적인 성격이 사회적으로든번식 가능성의 문제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혜택과 비용이 동시에 존재하며그것이 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현지 환경이 황폐해지거나 급격히 변하는 곳에서는 가능한 보상을 찾고 추구하는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 자연선택되지만자원이 풍부하고 환경이 안정된 것에서는 활동적인 성향은 불필요하고 위험한 기질이 되며더 진중한 사람이 더 잘 산다고 주장했다.” (126)

 

당연하지만이러한 균형은 외향성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신경성에도, ‘성실성에도, ‘친화성에도, ‘개방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 ‘신경성을 보면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즉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사람은 우울증에도 걸리기 쉽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데도현대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그렇다면 높은 신경성 수치는 도대체 왜 존재하고 있는가네틀이 제시하고 있는 견해는 분명하다과거에 그것은 분명히 유리한 성격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살던 환경에서는신경성 수치가 너무 낮으면 사망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생존과 번식에 불리했을 것이다환경이 가혹하고 집단 내부 또는 집단 간 경쟁으로 인해 상당한 위협이 존재할 때는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다.” (153)

 

그리고그것은 과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필요한 성격이다.

재미있는 것은직업의 성공과 성격의 영향에 관한 광범위하고 영향력 있는 한 연구에 의하면신경증은 놀랍게도 직업의 성공과 (약하지만플러스 상관관계가 있었다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특히 사고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의 경우엔 더욱 그랬다신경성은 세일즈나 육체노동이 아닌사고능력을 요하는 분야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157)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는 다른 성격 특성에 대한 네틀의 견해는그렇다면 그것은 유전적인 것인 것환경적인 것인가에 대한아주 고전적이면서도현재에도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진다이른바 본성(Nature)과 양육(Nuture) 논쟁이다기본적으로 네틀의 견해는 유전적 요인이 성격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같다당연한 것이지만 하나의 극단의 태도를 취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본성’ 쪽에 기우는 것이 네틀의 견해이고많은 진화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한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유전태아환경출생 후의 환경 등은 성인이 되기 훨씬 전에 우리의 바람과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우리의 성격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265)

 

그러나 그렇게만 서술하고 책을 마쳐버리면 원가 헛헛하다그래서 마지막 장(chapter)의 제목은 성격은 바꿀 수 있을까성격의 이해와 극복 방법이다여러 당연도사’ 말씀과도 같은 얘기들이 있지만 그래도 새겨들을 만한 것은 성격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순방향적’ 해석이다그것은 저자가 쓰고 있는 가장 안타까운 점인 다음과 같은 것과 연결된다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들에겐 좋지 않은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지만중요한 것은 그들이 객관적으로 긍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어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략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가장 큰 사람(신경성이 높은 사람)은 그렇게 할 능력이 가장 적고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가장 적은 사람(외향성이 높은 사람)이 오히려 그렇게 할 능력이 가장 크다” (276)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그것은 억지로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성격이 가진 의미와 장단점을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것 중 하나가 자신에 대한 자각이다.” (282)

 

성격아무렴 어떨까우리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평생 가지고 갈 성격인 것을그러나 그 성격을 이해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얼마나 차이가 클까그러니 성격보다 성격에 대한 이해’. 그게 더 중요하다.


(2010년 2월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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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생각을 합쳐라! | 옛 리뷰 2016-03-2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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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크로스

정재승,진중권 공저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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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와 과학자의 교류, 도정일, 최재천의 <대담>과 거의 비슷한 문제의식 아래의 기획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담>은 둘이 대화를 나눈 기록이고 <크로스>는 둘이 같은 주제 혹은 소재에 대해 서로 글을 쓴 것이다.  이렇게 다른 점은 편의적이긴 하지만 실은 아주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대화란 것이 즉각적인 의견을 제시와 시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글은 그냥 써버리고 마는 것이다. 서로 어떤 교정의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일방적이다. 하지만 대화보다는 더욱 정갈한 생각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분명 글의 장점이다. 
 
이 좋은 기획과 좋은 글들 (두 글쟁이들의 글 자체)에도 불구하고, <크로스>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것은 정작 '크로스'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문학자와 과학자의 색깔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그렇고, (그걸 의식했는지 에필로그에 언급을 하고 있기 하다.) 
둘의 견해가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점도 그렇다. 뭐랄까, 치열하게 읽을 필요가 없게 만드는 공통점이 많다. 
 
그렇다고 이 책을 고르고 읽었다는 것 자체에 아까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자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구나, 
과학자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주 생뚱맞은 것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크로스'는 책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실은 내 머리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뒤죽박죽이고, 불완전한 형태지만 말이다. 
 
또한 그들의 발랄한 관심 분야의 다양함은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많이 선사한다. 
'우리'라는 의미는 나에게는 '제프리 쇼'나, '20세기 소년', 파울 클레' 같은 것들이 생소하다면, 다른 이에게는 '위키피디아' 같은 것들이 생소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가 생각났다. 
서점에서 선 채로 수십 페이지를 읽다 놓고 나온 책인데, 우리는 이왕에 아주 다양한 자극과 정보들을 동시에 받아들이며 살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식의 경계를 허물면서 창조성을 발휘하게 해준다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크로스>는 지식의 경계를 허물면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세상의 의미를 다양하게 파악해가는 인문학자와 과학자의 지적 편력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목적이 아니다. 
그들의 제시한 주제에 대해 그냥 생각해보는 것도, 그게 아니더라도 내 주변의 친근한 것들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것, 내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 한번 관심을 가져보는 것, 나아가 그것들에 대해 한번 끄적여보는 것. 
그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가져야할 태도다.


(2010년 3월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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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생물학의 문법 | 옛 리뷰 2016-03-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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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진화하는 진화론

스티브 존스 저/김혜원 역
김영사 | 200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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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존스의 <진화하는 진화론>은 기획 자체가 신선한 책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체계와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르면서 ('다윈이 현재 살아있고 <종의 기원>의 수정판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 책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감수 및 추천 서문 9쪽) 담긴 증거만 새로이 밝혀진 것들로 바꾸고, 현대적인 해석을 가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획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다윈의 <종의 기원>이 탄탄한 책이이라는 간접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신선한 기획의 책을 실은 정말로 따분하게 읽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비교되는 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인데 <지상 최대의 쇼>가 전혀 지루함없이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데 반해 (정말 '지상 최대의 쇼'를 관전하는 기분으로)
<진화하는 진화론>은 딱딱한 논문을 읽는 느낌이었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도킨스의 스티브 존스의 필력의 차이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지상 최대의 쇼>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이야기식으로 풀어간다고 하면, <진화하는 진화론>은 개념 위주로 이론을 설명해간다. 이래가지고는 '진화론'이 참 이해하기 쉬운 흥미진진한 것이라는 것을 웬만한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 책의 미덕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진화'를 받아들이고, '진화론'에 대해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정작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은 사람은 참 찾아보기 힘들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지라도 비율은  별로 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다윈의 책 <종의 기원>은 그냥 젖혀놓은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다윈의 <종의 기원> 자체를 다시 써보겠다고 한 것 자체로 이 책에 점수를 줄 만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고 다윈의 <종의 기원>을 집어드는 사람이 있다면 저자는 정말 기뻐할 것이다. 

나는 "조금 따분하다", 이렇게 쓰고 있지만 실은 이 책에서 진화에 대해 다시 많은 것을 배웠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배웠다기보다 진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더 많이 습득했다. 그리고, 그게 다윈의 제시했던 증거와 별로 틀리지 않다는 것을, 다만 보다 더 풍부해지고 다른 언어로 쓰이기 되었다는 것(유전자 같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궁금한 점이 생기면 적지 않게 이 책의 책장들을 들추며 어디서 보았더라, 한참을 뒤적일 것이다. 
그러니 그 따분함을 견디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보람이 있다. 누군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보람을 느낄 것이다. 

자연선택은 거의 불가능한 것들을 만드는 기계이다. (중략) 선택은 간단하고 효율적이며 냉혹하다. 조지 버나드 쇼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전체적인 의미를 알게 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거기에는 섬뜩한 운명론이 있다. 그것은 미와 지성, 힘과 의지, 명예와 열망을 무섭고도 저주받을 만한 것으로 변형시킨다." 쇼에게는 불행하게도, 미와 지성은 이제 저 치명적인 장치에 의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40쪽)

진화도 마찬가지이다. 그 개념은 태양계의 개념 못지않게 간단하지만 진화의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상식은 생명이 태양처럼 우리 주위를 돈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그 생각에는 한 가지 결점이 있다. 그 생각은 틀렸다. (600쪽)

나는 <종의 기원>을 읽은 생물학과 학부생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혹은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과학자들조차 이 책에 맞는 내용보다 틀린 내용이 더 많다고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중략) 변화를 동반한 계통이라는 개념이 하느님이나 다윈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슬픈 진실이다. (중략) 오늘날에는 어떤 생물학자도 다윈의 이론 없이는 연구할 수가 없다. 진화는 생물학의 문법이다. (613~617쪽)


(2010년 3월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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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마나 숫자에 얽매어 사는지 | 옛 리뷰 2016-03-1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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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의 승리

I.B. 코언 저/김명남 역
생각의나무 | 201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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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數)를 사용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이 수(數)를 토대로 한 새로운 세상은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도래했다고 한다. 그렇게 늦게야 수(數)의 시대가 도래한 이유 중 하나로 저자는 다윗왕의 인구 조사로 인해 무고한 사람 7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다소 '황당'한 성경의 기록 탓을 하고 있다. 
("영국과 식민지에서 정밀한 인구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는 이 이야기의 영향도 있다." 31쪽)

그렇다면 왜 17세기인가? 
아니, 17세기부터의 과학이 우리에게 익숙한가? 
그건 바로 수를 이용한 언어가 과학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도 이런 식의 수적 법칙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빛의 굴절 법칙, 지렛대의 법칙, 부력의 법칙 등이다. 그러나 과학 혁명이 도래하기 전까지 과학의 목적은 숫자나 수와 관련된 용어들로 표현 가능한 자연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달랐다. 17세기에 새로운 과학을 만들어낸 이들은 수에 기반을 둔 법칙들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그 법칙들을 높은 급수의 숫자, 즉 제곱이나 세제곱의 숫자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40쪽)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찾아낸 (수로 표현된) 세상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케플러와 조화의 법칙

갈릴레오와 운동의 법칙

윌리엄 하비와 혈액의 순환
- 이게 생명 과학에 (실질적으로) 처음 등장한 숫자란다. 
즉, 맥박의 수 등을 이용하여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액의 양을 추산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혈액이 순환할 수 밖에 없음을 가설로 세웠던 것이다. 

레벤후크와 세계 최초의 인구통계학
- 당연히 인구  통계학은 여러 가지로 중요한 분야인데 이를 과학적 행위로 기록한 첫 인물이 레벤후크, 즉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처음 기록한 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사실이다. (Antonie van Leeuwenhoek가 그의 이름인데, 그의 이름을 딴 과학 journal이 있다. 내가 박사 과정 때 두번인가 논문을 실었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핼리 혜성을 발견한 핼리도 등장하고, 
그라운트라는 사람도 등장하고, 윌리엄 페티 경이라는 숫자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술을 꿈꾼 이도 등장한다. 프랭클린과 맬더스, 라부아지에와 콩도르세, 그리고 라플라스.그리고 현대적인 사회학의 기본을 세웠다는 콩트도 등장한다. 

콩트의 사회학이 왜 현대적이냐면 바로 그가 숫자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콩토는 지식에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가 있다고 믿었다. 수학이 가장 기초인 아랫단이고 그 위가 물리한, 다음이 화학, 그리고 생물학, 마지막이 모든 지식의 왕관이라 할 수 있는 사회학이다. 이 체계는 학문 간의 역사적 위계를 상정했다. 즉 물리학이 수학에 의존하고 있듯 진정하고 "완전한" 화학은 물리학이 구축된 후에야 가능하다는 식이다. 그러므로 콩토의 체계에 따르면 사회의 과학,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행위에 대한 과학, 즉 사회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으로서의 인간 행동에 관한 과학, 즉 "완전한" 생물학이 정립되어야만 했다." (176쪽)

케틀레이와 콩트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 듯한 통계의 승리는 (지금의 시점으로 봐서 당연하게도) 비판을 받게 되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소설가 찰스 디킨스다. 
그는 통계라는 평균적 숫자에 매몰되어 버리는 개인을 복원하고 싶었다. 
"디킨스가 통계를 반대한 까닭은 두 가지였다. 정치 지도자들이 런던의 빈민과 공장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는 사회적 입법을 막아서면서 그 근거로 통계를 마구 들이댄다는 것이 디킨스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통계는 원래가 개개인보다 평균에 집중하는 법이다. 디킨스는 스스로 개인의 대변자라 칭했으며, 통계는 인간의 특질을 비인간적인 숫자의 나열로 환원함으로써 인간성을 말살한다고 주장했다." (181쪽)
- 새겨들을만 하지 않은가? 

그리고 마지막 백의의 천사라 일컬어지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수(數)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되어 왔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또는 왜곡되는지를 이 나이팅게일에 관한 이야기가 한 장(chapter)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 보고도 알 수 있다. 그녀가 통계정보를 잘 전달하기 위한 도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첫 인물이나 다름없다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는데 수많은 슬라이드에 들어가는 그, 현란한 도해들의 원조가 바로 나이팅게일이라니,  참으로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코언의 '수의 승리'의 역사는 나이팅게일에서 끝이 난다.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후로 본격적인 수가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한 듯 한데 이제 서막만 보여주고는 나머지는 "다들 잘 알잖아?" 하는 식 같다. 
하긴. 잘 알진 못해도 대충은 알지 않는가? 
우리가 얼마나 숫자에 얽매어 사는지. 

비록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쯤은 알지 않은가. 


(2010년 5월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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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 옛 리뷰 2016-03-1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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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저/김소연 역
은행나무 | 200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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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신이치는 "생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 (146쪽)


DNA의 구조가 밝혀지기도 전, DNA가 유전자의 본령이라는 것도 밝혀지기 전, 1930년대 쇤하이머가 말한 '동적인 상태(dynamic state)'에서 착안한 개념이 바로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이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동적 평형"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동적인 평형 상태는 가능한 한 그 결함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평형점을 이동시켜 조절하려 한다. 그런 완충 능력이 동적 평형이라는 시스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평형은 자신의 요소에 결함이 생기면 그것을 메우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과잉 상태가 되면 그것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중략) 생명현상에는 사전에 다양한 중복과 과잉이 준비되어 있다." (228쪽)

 

이러한 깨달음은 그의 개인적인 실험 경험에서 나왔다. 그의 개인적인 실험 경험은 사실 성공이 아니라 실패였다. 

소포체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단백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것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를 없앤 쥐를 만들었지만, 그 쥐는 그 유전자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쌩쌩하게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논문에 낼 수 없었을 테니 명백한 실패이다. (앞의 결과는 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의 결과는 어디에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실패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프리온 단백질을 완전히 녹아웃시킨 쥐는 정상적임이지만, 부분적으로만 파괴시킨 쥐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결과도 함께 제시하면서 생명이란 어떤 한 부분이 없으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우회해서 어떻게든 평형 상태에 이르도록, 즉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유지되는, 즉 동적인 평형 상태가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나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후쿠오카 신이치의 답변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해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을 정의하는 많은 설명들이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그의 설명도 모든 생명의 모든 특성을 정의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정의하는 새로운 시각에 대해서 분명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깨달음으로 이르는 과정에 대한 진지함과 실패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 대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2010년 5월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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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생각과 힘 | 옛 리뷰 2016-03-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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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인들의 생각과 힘

빌 브라이슨 편/이덕환 역
까치(까치글방) | 201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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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이 편집한 <거인들의 생각과 힘>은 그야말로 '과학'에 관한 푸짐한 밥상이다. 

그런데 나는 이 푸짐한 밥상에 소화불량이 걸릴 지경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푸짐함 때문에 소화불량이다. 
몇 개의 음식 쯤이라면 어찌어찌 소화해보겠는데 350년 동안의 온갖 과학적 업적에 대한 20여 명의 각자 최선의 논의는 도무지  모두 다 소화시킬 요령이 생기질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자위도 하긴 한다.)

책 이름 <거인들의 생각과 힘>은 아마도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라는 아이작 뉴턴의 글(Google의 학술 검색 첫 화면에 나오는 글이기도 하다)에서 따온 것이리라. 
영국 (오로지 영국이라고도 할 수 없다) '왕립학회'의 창립 350주년을 기념해서
왕립학회, 혹은 그와 관련된 인물과 과학적 업적들에 대해 일류의 필진들이 쓴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 이 책이다. 
모든 과학의 중심에 서왔던 왕립학회이니 거기에서 가지를 쳐간 과학의 내용과 업적은 '모든 과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나는 소화불량일지라도 모든 과학을 일별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 혹은 순수과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기도, 받기도 한다. 
때로는 당당하지만, 때로는 군색하게 답하게 되는 이런 질문에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 책의 저자들은 깔끔한 예를 들고 있다. 
우선 빌 브라이슨의 서론에서다. 

" 1701년에 출생해서 1761년까지 생존한 그(토머스 베이즈 목사)는 모든 면에서 무능한 성직자이기는 했지만 뛰어난 수학자였다. 언제였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는 오늘날 베이즈 정리라고 알려진 복잡한 수학 방정식을 고안했다. 
(방정식은 생략)
베이즈 정리(Bayes's Theorum)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 식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확률 분포를 계산한다. 불완전한 정보로부터 통계적 가능성을 찾아내는 이런 방법을 역확률 방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베이즈 정리의 놀라운 점은 베이즈의 생전에는 이 정리가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간단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계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베이즈 정리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연습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베이즈 자신도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굳이 논문으로 발표하지도 않았다. 왕립학회의 <철학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에 "우연의 원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이라는 소박한 제목의 논문이 발표된 것은 베이즈가 사망하고 2년이 지난 1763년이었다. 
그의 친구가 런던의 왕립학회에 논문을 제출했다."

이렇게 누추했던 베이즈의 연습은... 자, 이제부터 베이즈 정리의 화려한 기여가 시작된다. 
"사실 그의 논문은 수학사에서 획기적인 것이었다. 오늘날 베이즈 정리는 슈퍼컴퓨터 덕분에 기후 변화 모델링, 일기예보,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결과의 해석 등을 비롯해 사회정책학, 천체물리학, 주식시장 분석 등 확률이 필요한 경우라면 
어느 분야에서나 일상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그런 정리의 발견자를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은, 근 250년 전에 왕립학회의 누군가가 혹시라도 그 논문을 보존해둘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덕분이다."
(8~9쪽)

그리고, 필립 볼은 순수과학과 응용과학(혹은 공학)에 대해 서술하면서 스티븐 호킹을 인용하고 있다. 
"제네바의 CERN에 건설된 세계에서 가장 큰 원자 충동장치인 대형 강입자 충돌장치가 거의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언론 축제 속에서 작동을 시작했다. 
그런 실험장치의 실용적인 가치를 묻는 질문에 스티븐 호킹은 '현대사회는 실용적 응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순수과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325쪽)

소화불량이지만 충분히 그걸 감내하고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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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두려워 해야 한다 | 옛 리뷰 2016-03-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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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 왕을 말하다

이덕일 저
역사의아침 | 201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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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조선 왕을 말하다>는 조선의 여덟 임금을 다루고 있다. 

악역을 자처한 두 임금, 태종과 세조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 연산군과 광해군, 
전란을 겪은 임금들, 선조와 인조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 성종과 영조
 
가만히 보면 논란이 있을 만한 임금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세종이나 정조 등을 빼놓을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대신에 악역을 자처했거나 쫓겨났거나 한 임금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이덕일 씨는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도 달라지는 것인데, 그 평가라는 것은 한 꺼풀 걷어내고 보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임금들에 대한 평가를 범박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태종은 그야말로 후세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고, 고통스러워 했던 임금이다. 
그래서 세종이 나왔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수백 년을 지속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세조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왕좌에 오른 임금이다. 
시대를 읽지 못했고, 당위성도 없었다고 평가한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둘 다 쫗겨난 임금이지만 (실은 단종도 쫓겨난 임금으로, 노산군이라 불렸었지만) 연산군은 자질이 부족했고, 준비도 없었던 임금이고, 광해군은 후계를 세우는데 불명확했던 선조의 무능 혹은 편견과 소수파로서 소통과 통합에 실패하면서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희생당한 케이스였다고 보고 있다. 
 
선조는 정통성 콤플렉스를 겪으면서 숱한 전란의 징후에 눈을 감고 왜의 침략을 허용했고, 그래서 백성들을 고통을 가져오게 한 임금이고, 임금(광해군)을 갈아치고 임금 자리에 오른 인조는 한 정파(서인)의 왕이었고, 명분 때문에 현실을 외면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임금이었다. 
그리고 선조나 인조는 후계를 세우는데 어떤 형식으로든 실패한 임금이었다. 
(오락가락하면서 어쩔 수 없이 광해군에게 임금 자리를 넘겨준 선조와 의심으로 소현세자와 손자까지 죽음으로 몰고간 인조였다.)
 
그럼 왜 성종과 영조를 절반만 성공했다고 하는가? 
성종은 자신의 왕위가 당연한 게 아니라 공신들이 자신들에게 준 것이란 것을 자각하고
차분히 자신의 힘을 기른 후 개혁에 나섰고 업적도 남길 수 있었지만 현실과의 타협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고, 따라서 연산군이라는 시대적 퇴행을 가져오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 또한 조선의 문약화가 시작된 시점도 성종 때부터라는 데 '절반만 성공한 임금'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영조는 등장부터 한 정파의 옹립에서 시작되고, 경조 독살이라는 혐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탕평을 내세웠지만 자꾸 한 당파를 옹호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이성을 잃고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임금이다. 
저자는 영조의 가장 큰 업적을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라고 할 정도로 조금은 혹독한 평가를 하고 있다. 
 
역사. 
무서워 해야 하고, 두려워 해야 한다. 
그리고 배워야 한다. 


(2010년 7월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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