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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에 묶인 책 | 책을 읽으며 2023-09-2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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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오랫동안 눕혀져 있었다. 애초에 두루마리 형태였을 때는 그게 당연했다(상자에 세워져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코덱스 형태를 거쳐 지금과 같은 형태의 책이 되었을 때도 한참은 서가에 눕혀져 있는 것이 보통의 경우였다고 한다. 가장 많은 책을 보여한 수도원이라고 할 지라도(중세에는 수도원이 지식 보급과 유지에 가장 큰 역할을 했으므로) 보유한 책이 수백 권을 넘기가 힘들었으니 눕혀 놓더라도 공간의 문제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책을 보관하는 문제가 생길 정도로 책이 늘어나자 책을 서가에 세워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세워서 보관할 때 지금과는 달리 책등이 보이게끔 하는 게 아니라 지금과는 반대로, 즉 앞마구리를 보이도록 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이상해 보이지만 그렇게 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랬던 이유 중 하나는 책 표지를 만들면서 책등에 아무런 표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라든가 저자 이름을 책등에 적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책에 대한 정보는 쪽지 같은 데다 적고 책에 끼워 넣었으니 앞마구리를 보이도록 놓는 게 책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 편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예전에는 책에 사슬을 채워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헨리 페트로스키의 책이 사는 세계에서 옮긴다(앞의 얘기도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책에 아직 사슬이 달려 있었는데, 사슬을 책 앞표지나 뒤표지의 세 가장자리에는 아무 데나 부착할 수 있었지만 책등에는 쉽게 또는 효과적으로 부착할 수 없어서였다. (중략) 책들이 선반에 수직으로 놓이게 됐을 때, 표지 위쪽에 부착된 사슬은 책 앞마구리나 옆면으로 흘러내리면서 책들 사이에 혹은 페이지 사이에 끼어 손상을 입혔을 것이다.” (116)

 

그러니까 지금과 같이 책등을 보이도록 책장에 세워두게 된 데에는 책이 흔해지면서 도둑질해갈 염려가 줄어들고, 책등에 책에 관한 정보를 새겨넣게 되면서라는 얘기다.

 


 

책이 사는 세계

헨리 페트로스키 저/정영목 역
서해문집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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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바인더 클립, 그리고 '작은 거시기' | 책을 읽으며 2023-09-2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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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페트로스키의 물리적 힘에서는 우리 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만나거나 쓰는 기구들에 대한 발명 이야기가 적지 않게 소개되고 있는데, 먼저 얘기했던 캔 따개도 그것 중 하나다. 몇 가지를 더 소개하자면, 먼저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오늘도 지하철역을 이용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이게 편리하다는 건 다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발명되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 했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어떤 회사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했던 거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에스컬레이터를 지금과 같이 실용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름도 escalator라고 붙인 것이 바로 오티스(OTIS)라는 것이다. 바로 엘리베이터회사인데, 오티스는 바로 엘리베이터를 지금과 같이 실용화한 장본인이다. 그러니까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발명은 아니지만) 한 인물(또는 한 회사)에서 실용화된 셈이다. 그럼 발병은 누가 했을까?

 

지금은 일상이 된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미국 최초의 특허는 1859년 매사추세츠주 소거스에 살던 발명가 네이선 에임스(Nathan Ames)가 받은 회전 계단이다. 많은 발명이 그렇듯 에임스의 발명 뒤에 많은 개선이 일어나면서 다른 발명가들이 후속 특허를 얻었지만, 그중 대부분은 (에임스의 발명과 마찬가지로) 당시에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다. 뉴욕 시민 제시 리노(Jesse W. Reno)가 발명해 1896년 코니아일랜드에 설치된 무한 컨베이어 또는 엘리베이터만큼은 예외였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escalator)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은 리노도 다른 발명가도 아닌 오티스엘리베이터회사다. 수직 방향으로 움직이는 장치, 즉 엘리베이터와 비스듬하게 움직이는 장치를 구별하기 위해 그런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미국 특허청은 이 신조어를 기술적 용어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오티스사가 1900년 파리박람회에 최초의 에스컬레이터를 선보이면서 이 이름을 상표로 등록했다. (218)

 


 

 

그리고 바인더 클립이 있다. 바인더 클립이라고 하면 이름이 생소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종이 뭉치를 묶는 집게다. 이걸 누군가 발명했다고 생각했어나? 싶으면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엄연한 발명품이다.

 

이 기발한 도구는 워싱턴 DC에 거주하던 발명가 집안 출신의 10대 소년 루이스 발츨리(Louis E. Baltzley)가 발명했다. (중략) 나중에 쉽게 집고 쌓을 수 있는 포커 칩과 가루를 담는 통의 뚜껑, 게임 테이블 옆에 비치된 유리잔 홀더를 발명한 루이스는 글 쓰는 일이 주 업무였던 아버지가 원고를 순서대로 유지하도록 돕고 싶었다.

바인더 클립은 1915종이를 묶는 클립이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얻었고, 이후 100여 년 동안 그 겉모습은 발츨리의 특허 신청서 그림에서 묘사된 것에서 거의 변하지 않아 개선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243)

 

 

 

그 다음은 정말 놀랄만한 발명품(!)이다. 우리가 피자를 배달시켰을 때 항상 따라오는 것, 그럼에도 뭐라 부를지 모르는 것, 그래서 그냥 그 플라스틱 조각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진짜 이름은 (영어로) 여러 가지로 불렸는데, ‘뚜껑 지지대(lid support)’, ‘피자 스태커(pizza stacker)’, ‘피자 세이버(pizza saver)’ 등등이다. 헨리 페트로스키는 이것에 가장 널리 쓰이는 이름은 작은 거시기(little thingy)’라고 하여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 발명가 클라우디오 트로글리아(Claudio Troglia)는 피자 파이와 상자를 따로 떼어놓는 방법을 생각해내 1974피자분리기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다리가 셋 달린 미니 스툴처럼 생긴 이 장치는 피자 중앙에 꽂는 것이다. 10여 년 뒤 뉴욕 딕스힐스에 살던 카멜레 비탈레(Carmela Vitale)가 플라스틱 삼발이로 받은 특허는 트로글리아의 발명을 전혀 언급하지 않지만, 사실상 동일한 문제를 해결했다. (268)

 


 

 

이 간단한 플라스틱 조각이 우리에게 선사한 멀쩡한 피자를 생각하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물리적 힘

헨리 페트로스키 저/이충호 역
서해문집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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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캔 따는 방식은 누가 발명? | 책을 읽으며 2023-09-2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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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보편적인 캔 뚜껑을 따는 방식은 탑-(pop-top) 방식이라고 한다. 고리 모양으로 생긴 것을 뜯어내듯이 당겨 따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지레 원리를 이용한 날카로운 깡통 따개가 따로 있어 그걸 돌려가며 땄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잘 할 수도 없었고, 가끔 다치기도 했다. 그럼 탑-톱 캔을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헨리 페트로스키의 물리적 힘에서 만난다.

 

어멀 프레이즈(Ermal Fraze)는 오하이오주 테이턴에서 기계 공구 작업을 운영하는 공학자였다. 1959년 어느 날, 소풍에 나선 프레이즈는 목이 말라 음료수를 찾았지만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아무도 깡통 따개를 가져오지 않아서였다. 편리한 지레 도가가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프레이즈는 갈증을 달래지 못한 것에 짜증만 내는 대신에 아예 따개가 달린 캔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리를 잡아 뜯어 여는 캔을 발명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알루미늄 팝통(pop-top) 캔의 전신이다. (109)

 

1959년이면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데, 우리나라에 도입되는 데는 한참 걸렸던 모양이다. 근데 페트로스키가 덧붙인 그림(어멀 프레이즈가 고안한 따개 달린 캔)을 보면 지금 것과 좀 다르다. 따개를 바로 들어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옆으로 비트는 방식이었던지 뚜껑이 나선 모양으로 나뉘게 되는데, 아무래도 위험스러워 보인다. 오늘날처럼 따개를 위로 들어올리는 방식은 1970년대에 발명되었다고 한다.

 


 

 

 

물리적 힘

헨리 페트로스키 저/이충호 역
서해문집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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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향신료가 쓰인 이유, 부패 때문이 아니라 | 책을 읽으며 2023-09-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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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의 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는 음식의 역사에 관한 책이니만큼 많은 음식의 기원과 변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다음은 그중 몇 가지다. 잘 몰랐던 것들이다.

 

치즈가 언제 어떻게 처음으로 생겨났을까? 현재의 지식으로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다. 치즈 제조는 기원전 7000년경의 암각화와 적어도 기원전 4000년경의 고고학 유적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내가 안 쓰고는 못 배기는 비유적 표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수렵과 목축의 역사가 치즈 속에서 재연된다는 것이다. 수렵에 대응되는 단계에서, 공기 중에 노출된 우유는 마치 박테리아를 무작위로 잡아들이는 덫처럼 놓인다. 그다음으로 우유가 시큼해지끔 놓아두는 환경을 조절함으로써 어떤 유익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사실상 이는 특정한 박테리아를 방목한다는 뜻이다.” (160)


 

 

부패한 고기와 생선을 위장할 필요성 때문에 향신료 수요가 생겨났다는 생각은 음식사에서 가장 그릇된 믿음 중 하나다. 이것은 진보의 신화, 즉 옛날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무능했다거나, 머리가 나빴다거나, 필요한 것을 조달할 능력이 떨어졌다는 가정에서 파생된 믿음이다. 오히려 중세의 신선 식품은 생산과 소비가 국지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것보다 더 신선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략) 어쨌든 요리에서 향신료가 수행한 역할을 결정한 것은 미각과 문화였다.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요리는 비쌌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화되었다. 향신료가 선호된 이유는 그것이 아랍 요리를 모방한 당신 전형적 오트퀴진의 결정적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338~339)

 

미국의 초콜릿 백만장자 밀턴 스네이블리 허시(Milton Snavely Hershey)는 매우 자비로운 고용주였고, 더욱 놀라운 점은 그의 공공 기부액과 사업가적 천재성이었다. (중략) 초콜릿 제조업과 공공 자선의 연계는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초콜릿 사업가들은 금주, 우애, 형제애, 검약에 집착하는 급진적 신교도인 경향이 있었다. 일례로 영국의 초콜릿 사업가들은 거의 모두가 퀘이커교도였다. 하지만 이런 자질은 기업이 커지며 가족 전통이 사라지고 수익 동기가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소멸했다.” (429~430)

 


 

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저/유나영 역
소와당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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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고래? 허먼 멜빌은 틀렸다 | 책을 읽으며 2023-09-1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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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고래와 고래 산업에 대한 박물학적 보고이기도 한 모비 딕에서 허먼 멜빌은, 고래에 대한 무자비한 포획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남기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허먼 멜빌은 틀렸다.

 

우선 우려한다. 다음과 같이 .

 

바다 괴물이 이런 마구잡이 추격을, 이런 무자비한 포획을 오랫동안 견뎌낼 수 있을까. 바다에서 끝내 절멸하지 않을까. 그리고 최후의 고래는 최후의 인간처럼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는 마지막 담배 연기 속으로 증발해 버리지는 않을까.

(중략)

이렇게 비교할 경우 고래도 사냥을 계속하다 보면 급격한 멸종을 피할 수 없다는 필연적인 결론이 도출될 것 같다.

 

그러나 결론은 그렇지 않다. 일리노이의 들소가 인간의 창에 의해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렀지만, 고래를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먼 멜빌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당시의 고래잡이 규모 때문이다.

 

하지만 고래잡이는 성격이 전혀 다르므로 바다 괴물이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최후를 맞게 될 일은 절대로 없다. 배 한 척에 40명이 타고 48개월 동안 향유고래를 잡으러 다니다가 40마리 분량의 기름을 싣고 귀로에 오르면 대성공으로 여겨 신께 감사한다.

 

또한 고래들이 잘 피해다닐 거라는 낭만적인 예측도 한다.

 

고래들은 작은 곶에서 큰 곶으로 옮겨 갔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해안에서 더는 고래의 왕성한 물기둥을 볼 수 없다면 다른 외딴 바닷가에서는 느닷없는 낯선 풍경에 깜짝 놀라고 있을 것이다.

(중략) 수염고래는 두 군데에 견고한 요새를 갖고 있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함락시킬 수 없을 곳들이다. 기민한 스위스 사람들이 골짜기를 침략당하면 산으로 후퇴했듯이, 대양의 초원과 습지에서 쫓겨난 수염고래는 마지막 보루인 극지의 요새로 퇴각하여 차마 넘볼 수 없는 얼음 울타리와 빙벽 밑으로 잠수했다가 빙원과 부빙 사이로 떠올라 영원한 12월의 마력 속에서 인간의 모든 추격을 물리칠 수 있다.

 

그래서 허먼 멜빌의 결론은 이렇다. 그것은 고래의 불멸성에 대한 찬사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개체로서의 고래는 죽을지언정 종으로서의 고래는 불멸의 존재라고 여겨진다. 고래는 대륙이 물 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바다를 헤엄쳤고, 튀일리 궁정과 윈저 성과 크렘린 궁전이 있는 곳 위를 헤엄치기도 했다. 노아의 홍수 때도 고래는 방주 따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설사 세상의 쥐를 모두 잡아 없애기 위해 다시 한 번 대홍수가 몰아쳐 온 세상이 네덜란드처럼 물에 잠기더라도, 불명의 고래는 살아남아 적도를 휩쓰는 높은 물마루 위로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보란 듯이 물기둥을 뿜어 올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래가 불멸이 아니란 걸 잘 안다. 허먼 멜빌은 틀렸다. 틀린 이유는 인간의 탐욕은 그대로인데, 그 탐욕을 채울 수 있는 인간의 기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이 틀렸다고 그를 비웃을 수는 없다.

 


 

모비 딕 하

허먼 멜빌 저/강수정 역
열린책들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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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유래 | 책을 읽으며 2023-09-1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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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맬빌의 모비 딕첫 대목에 나오는 고래(whale)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WHALE. 스웨덴어와 덴마크어 hval. 이 동물의 명칭은 둥그스름한 모양새나 이리저리 구르는 행동에서 유래되었는데, 덴마크어로 hvalt아치 모양또는 둥근 천장 모양을 뜻한다. - 웹스터 사전

 

WHALE. 네덜란드어와 독일어의 Wallen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유래되었다. 앵글로색슨어의 Walw-ian구르다, 뒹굴다라는 뜻이다. - 리처드슨 사전

 

그래서 우리말, 고래는 어디서 온 말인지 궁금해졌다. <나무위키>(https://namu.wiki/w/고래)를 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정확한 어원을 알기는 매우 힘들지만, "골짜기()에서 물을 뿜는 입구"에서 고래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그나마 유력하다.

그 외 민간어원에서는 중국에서 수입된 도교 설화에 연관을 짓는데, 용생구자 중 셋째인 포뢰(蒲牢)는 바닷가에서 사는데, 유독 "바다에서 사는 어마어마하게 큰 어떤 생물"을 무서워해서 그 생물만 보이면 놀라 큰 소리로 울었는데, 그 생물의 이름을 "두드릴 고()"에 포뢰의 이름에서 딴 ""를 붙여 고뢰라 하고 이것이 후에 고래로 변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가 있다. 당연하지만 중국에서는 고래를 (, J?ng)이라고 한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울산역사문화대전>에도 비슷한 설명이다. 한자어로는 경어(鯨魚)’라고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중국에서 ()’이라 불리는 것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모비 딕을 예전에는 백경(白鯨)”이라고 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내일신문> 사이트(2018. 7. 13)를 보면, 박수현의 바다에서 건진 생명의 이름들이란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포뢰를 고래의 어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용의 아들 중 '포뢰'라는 이름을 가진 동물이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고뢰'라는 이름을 붙였고 포유동물 '고래'의 어원이 되었다.

 

그러니까 서양의 whale과는 다르다. 그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참고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다란 말이 있는데, 여기서 고래고래는 앞에서 말한 동물 고래에서 온 말이 아니다. 여기서 고래는 소리 또는 말의 뜻으로 이 어근이고, ‘은 글, 문장, 문서, , 편지 등의 뜻을 지닌다. 잠꼬대의 꼬대는 말의 뜻으로 이 원형인 것과 비슷하다.

 

모비 딕 (상)

허먼 멜빌 저/강수정 역
열린책들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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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해 가장 열심히(?) 읽은 책 | 책을 읽으며 2023-09-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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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해 가장 열심히(?) 읽은 책

 


 

 

바로 이 책이다. 

 


 

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저/이종남 역
황금가지 | 200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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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의 규격 | 책을 읽으며 2023-09-1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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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란 무엇인가에서 레너드 코페트는 제1부에서 야구를 구성하는 10가지의 요소를 야구의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쓰고 있다. 이 중 열 번째가 바로 구장이다(그 앞의 아홉 가지는 타격, 피칭, 수비, 베이스러닝, 감독, 사인, 벤치, 지명타자, 심판원이다).

 

야구가 다른 스포츠와 다른 점은 아주 많은데, 그중 구장은 정말 많이 다르다. 다른 스포츠는 구장의 규격이 어디서나 동일하다. 서울의 축구경기장과 영국 런던의 축구경기장의 규격은 (거의) 동일하다. 테니스도, 농구도, 배구도 전세계 어디서나 같은 규격의 경기장에서 승부를 본다. 그런데 야구는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해 공평함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레너드 코페트는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들의 다양함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모든 구장의 크기와 모양을 동일하게 지어야만 공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앞서 살펴본 기상 상태와 잔디 종류의 차이를 음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홈플레이트에서 펜스까지의 거리, 펜스의 높이 따위는 어떤 것이 표준이라고 왈가왈부할 여지조차 없다. 구장이 자리 잡은 위치 자체를 동일하게 만들 수 없는 한 구장의 규격을 통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개인적으로는 야구의 낭만이 이런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레너드 코페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바로 구장에서 바로 이런조건 아래서 바로 ; 게임을 이겨야 한다는 게 야구의 묘미다.”

 

참고로 어디서나 동일한 야구장 규격은,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의 거리(27.43m, 90피트)와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18.4m).

 

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저/이종남 역
황금가지 | 200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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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의사(plague doctor) | 책을 읽으며 2023-09-0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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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결혼식 가는 길>은 에이즈에 대한 소설인데, 중간에 페스트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16세기 페스트가 베네치아를 덮쳤을 때(보통 대문자로 쓰는 흑사병(Black Death)는 14세기의 페스트를 의미하지만, 16세기의 페스트도 피해가 적지 않았다), 신에 대한 서약을 통해 이겨내고자 성당을 지었다는 내용과 함께 당대의 '페스트 의사'에 대한 묘사도 있다. 

 

"성당은 1576년에 있었던 신에 대한 서약의 결과로 계획되었다. 당시 베네치아는 역병으로 폐허가 된 상태였다. 주민의 삼 분의 일이 이미 병에 걸려서 사망했다. 역병은 늙은 사람들뿐 아니라 젊은이까지 앗아 갔다. 맹금처럼 차려입은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지팡이를 들고 운하의 다리를 건너며 진료소들을 돌아다녔다. 의사들로 알려졌는데, 감염을 피하기 위해 머리에서 발끝까지 기름을 먹인 천이나 방수포로 감쌌고, 검은색 모자와안경, 귀마개, 장갑, 장화까지 갖췄으며, 입에는 거대한 새의 부리 같은 기이한 물건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오한으로 떨면서 죽어 가는 환자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지팡이로 여기저기 담요를 들추고 역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부리 끝으로 가루약과 말린 나뭇잎 가루를 뿌렸다. 그리고 밤이면, 정말 새처럼, 독수리처럼, 역병 의사들은 사라졌다." (158)

 

바로 다음과 같은 차림을 말하는데, 페스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설명을 좀 붙여보면(사실 위의 존 버거의 설명이랑 별 다를 건 없다), 

 


 

 

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저/김현우 역
열화당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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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어떤 인물? | 책을 읽으며 2023-09-02 20:53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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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여왕에 대한 보통의 평가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한민족 최초의 여왕으로, 영특했으며 삼국통일의 기틀을 세웠다...고 알고 있다. 이런 인식은, 비록 고현정이 맡은 미실이 더 도드라졌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공고해졌다. 거기서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은 젊고 예뻤다.

 

그런데 서영교의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을 보니 사뭇 다른 선덕여왕을 만난다. 19장의 제목이 <가련한 노파 선덕여왕>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632년 선덕여왕은 쉰이 넘는 나이에 신라의 왕으로 즉위했다. 당시로서는 할머니였다. 젊었을 때 총명하고 지혜로웠던 그녀의 모습도 초췌한 노파가 된 뒤에는 빛을 잃었다.” (143)

 

이건 그저 그녀의 나이에 대한 선입견인가? 서영교는 그렇지 않다고 쓰고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해 쏟아부어야 할 경제력을 불사(佛事)에 탕진했다.”

 

경주의 분황사와 첨성대가 바로 선덕여왕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여왕의 화려한 사찰과 탑은 수많은 신라인의 죽음 위에 세워졌다. 641년 백제의 공격으로 신라는 낙동강 서안의 모든 지역을 상실했다. 나라가 절명의 위기에 처했지만 선덕여왕은 거대한 황룡사 9층 목탑의 건립에 국고를 쏟아부었다. 각 층마다 신라가 정복할 나라의 이름을 붙였다.”

 

서영교의 선덕여왕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투시하지 못하고, 공상에 빠져 주관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허약한 왕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

서영교 저
글항아리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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