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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보았어요ㅡ추천합니다 
사진이 정말 귀엽게 나왔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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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본 수학 판타지 동화 | 기본 카테고리 2022-05-1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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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본 수학 판타지 동화

- 도전! 수학 플레이어를 읽고

김리나 지음 | 코익 그림 | [창비] (2022)

 

 

요즈음 아이들이 있는 지인의 가정을 보면 거의 대부분 자녀들을 여러 학원에 보낸다. ‘무너진 공교육이란 표현을 접했지만 이렇게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과목별 사교육 프로그램에 보내는 줄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부모는 그저 자녀들의 학원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이들은 학원 숙제가 많아 늦게 잠자리에 들고, 심지어는 학원 숙제를 학교에 가서 하는 실정이다. 교육 현장을 보면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느끼는 요즘이다.

 

어릴 때 부모님 두 분은 조그만 가게를 매일 15시간 이상 운영하셨다. 바쁜 부모님 덕(?)에 나는 그 숨 막히는 학원가를 전전하지 않았다. 더불어 선행학습이란 단어도 모르고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지인의 자녀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공부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공부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내게 공부는 재미있는 놀이 같은 활동이다. 물론 나는 시험을 염두에 두는 공부보다 포괄적인 의미, 넓은 의미에서 말하는 공부를 말하는 것이다.

 

조카나 주변 지인 자녀들에 대한 공부를 생각할 때 스스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만한 책이 있을까 궁금하다.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스크린에 적응된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교재가 없을까 궁금하긴 했다. 이런 맥락에서 도전! 수학 플레이어는 이야기가 있는 수학 길잡이 책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검토해볼 만하다. 책 속에서 윤진은 미래의 수학자가 되는 아이다. 훗날 그의 제자는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가서 어린 윤진을 만난다. 수학자 윤진은 지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는 인물이 될 것인데, 그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었다. 그의 제자들은 가상현실과 같은 인식의 공간속에서 그를 보호하면서, 어린 윤진이 수학자가 되도록 미래에서 수학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을 따라가면서 윤진은 여러 가지 기하학 개념이나 무리수에 얽힌 역사를 공부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판타지 형식의 수학 동화라는 구도로 접근한다. 구체적인 수학 지식과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수학 공부에 대해 윤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군자불기 학즉불고(君子不器 學則不固)’,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다양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논어의 가르침이었다. 진의 아버지는 수학이 단순히 풀이 방법만을 외우는 학문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받아들이는 아동에 따라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경쟁과 규칙에만 익숙해져가는 요즘 아이들이 이 말을 생각해보고 이해할 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윤진이 수학 게임에서 점수를 얻고 레벨을 올리고 싶어서 수학 선생님한테 질문을 하는데, 답을 얻는 장면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질문거리를 찾고 그 과정에서 앎과 이해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공부의 본질이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사교육 프로그램에서 빠져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문득 학원 숙제하느라 피곤에 절어있는데다 상상력을 잃어가는 많은 아이들이 공부의 재미를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책이 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그림책 수백 권을 보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책읽기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자주 본다. 이런 상황에서 도전! 수학 플레이어 같은 책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수학의 역사와 여러 기본 개념에 접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야기를 통해 개념을 전달하다보니 많은 개념을 다루기 어렵고 글이 많아지는데, 책의 내용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는 아이들에 따라 편차가 클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동화 속에서 주인공 윤진은 태민이란 캐릭터와 갈등을 겪는다. 태민이는 버릇없지만 선행학습을 하여 수학에서 좋은 점수를 받곤 하는 아동이다. 공부에 큰 관심이 없던 윤진이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태민이와 진 사이의 충돌을 피하기는 어렵게 된다. 1권은 아쉽게도 윤진이 태민이 일당과 만나게 되는 긴장감 어린 장면에서 끝이 난다. 진이는 계속 수학 공부를 하게 되겠지만, 태민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2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이 시리즈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기하문제 풀기를 좋아했지만, 수론에 대해서는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이 책에는 기하 개념뿐만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나온 수 개념이 함께 등장하는데, 나 역시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본 개념에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초등학생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등장하는 캐릭터 중 수학을 공부한 인물은 모두 천재 수학자로 나오는 설정은 비록 동화이기는 하지만 과연 어린 독자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다가갈지 궁금하다. 2권에서는 어린 윤진이 역경을 딛고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수학자가 되는 과정이 담겨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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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도 전쟁이 무섭다 | 기본 카테고리 2022-02-2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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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도 전쟁이 무섭다

-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2013)를 읽으며

 

 

결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습했다. 키예프 공항을 폭격하는 장면과 하늘에 별이 박힌 듯 수많은 러시아 군인들이 낙하산을 펼치고 내려오는 영상을 보았다. 지난 세기에 소비에트연방(구 소련)이 폴란드나 체코와 같은 이웃 국가들을 침공했던 사실은 책에만 기록되어 있는 줄 알았다. 실제 러시아의 침공 영상을 보니 두렵다. 한 정치가의 작전개시한 마디에 누군가의 삶과 장소가 파괴되고, 이와 결부된 기억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 말이다. ‘우크라이나 측이 먼저 공격했다, 혹은 우크라이나 지역의 친러시아 지역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데도, 국제사회는 무력해 보인다.

 

상당한 경제재재를 감수하고서라도 군사적인 결정을 내렸다면, 그만큼 푸친이 목적한 바를 챙기기 전까진 경제 제재조치로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NATO가입 문제가 푸틴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는 중국이 여기에 공동성명을 내고 러시아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냉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보니 중국 진영과 미국 진영 사이에 낀 우리가 풀어야할 외교문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요즘 불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였던 고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난다, 2013)를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저자의 문장은 아름답다. 글로 옮기기 힘들었던 미묘한 일상의 감상과 사유를 섬세하게 나타내는 감수성을 배우고 싶다. 그의 산문은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한편으론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잣대에 기대어 순순히 굽히지 않는 면모도 있다. 저자의 다른 산문이나 비평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러시아의 공습 기사를 보고, 밤이 선생이다에 실린 저자의 글 중 한 문장이 떠올라 다시 찾아보았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전쟁의 모습은 저자의 몸에 비인간화라는 공포의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나는 전쟁이 무섭다. 오만과 증오에 눈이 가려 심각한 것을 가볍게 여길 것이 무섭다. 전쟁을 막을 지혜와 역량이 우리에게서 발휘되지 못할 것이 무섭다.”(나는 전쟁이 무섭다(2010), 48)

 

 

전쟁을 겪은 세대의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가 이제 경제 10대 국가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제국이 아니다. 정신적, 문화적, 군사적으로 미국의 입김을 벗어날 길이 없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국과 손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국가든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역사 속에서 늘 되풀이되었던 것처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주변 강대국의 운명에 휘둘리기도 하고, 고통과 상처를 받으면서도 지금껏 지켜왔다. 우리의 운명은 주변 강대국의 행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국들, 특히 중국과 같은 나라들과 다면적인 사항(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사항)을 고려하여 행동에 나설 일이다. 하지만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내뱉으면서, 이웃 국가를 비난하고 자극하여 안보위기를 부추기는 철없고 머저리 같은 일부 정치인들의 말은 걸러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발언을 한 정치인들의 명단을 잘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이 명단을 활용할 방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알려진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자신의 저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에서 인용한 내용에 전쟁을 자극하는 정치인들의 명단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음 인용문은 201165일자 <주간 아사히 긴급 증간 아사히 저널>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일찍이 전쟁절멸보장 법안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난 세기 초에 덴마크의 육군대장 프리츠 홀름이 각국에 다음과 같은 법률이 있다면 지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쟁이 터질 경우 10시간 안에 다음 순번에 따라 최전선에 일개 병사로 파견된다. 첫째로 국가원수, 두 번째는 그 남자의 친족, 세 번째는 총리, 국무위원, 각 부처 차관. 네 번째는 국회의원. 다만 전쟁에 반대한 의원은 제외. 다섯 번째 전쟁에 반대하지 않은 종교계지도자들. 전쟁은 국가 권력자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일으키는 것이라고 홀름은 생각했다. 따라서 맨 먼저 권력자들부터 희생되는 시스템을 만들면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한승동 옮김, 돌베개, 34)

 

 

다시 정리하면, 중국과 같은 주변국들을 무책임하게 비난하고 자극하여 국가의 안보에 위협을 유발하는 정치인들의 명단을 여기 전쟁절멸보장 법안의 첫 번째와 네 번째 사이에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구 소련(스탈린)과 나치(히틀러) 시대의 유럽 역사를 다룬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글항아리, 함규진 옮김, 2021)을 읽을 때 느꼈던 부분이지만, 독일과 소련 사이에 있는 여러 국가들은 전쟁 시에 양쪽 진영 모두에 큰 고통과 희생을 겪어야 했다.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등등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 지난 세기에 큰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 특히 스탈린 시절 소련은 공업화를 추진하고 농업 집단화를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스탈린이 유럽의 곡창지대로 여겨졌던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을 수탈한 것이 문제를 야기했다.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대기근 홀로도모르(Holodomor)'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기근의 참상은 너무나 끔찍하여 여기에 옮기지 않는다. 관련 내용은 피에 젖은 땅홀로도모르 리포트: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를 참조할 수 있겠다.

 

언론에서는 러시아 침공 소식을 전한 다음 증시 하락기사를 내보냈다. 아마도 국내의 많은 투자자들이 우려를 하고 궁금해 할 것이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은 주가 폭락만큼의 충격보다 못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황현산 선생의 언급처럼 장소와 물질에 관계를 맺으며 시간을 통해 몸에 기억된 흔적들이 외부기억 장치들에 연결되어 쉽게 휘발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몸에 세상과 사랑을 나누었던 내력과 관계의 흔적이 남지 않을 때, 우리는 상상력마저 잃게 된다고 선생은 우려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 몸에 남게 되는 기억이 우리의 정체성을, 그리고 윤리와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상상력을 마련해주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뉴스 영상을 보니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새롭게 주목해보는 것은 전쟁이 더 확대 될 경우, 우크라이나 난민이 적어도 500만 명은 발생할 것이라는 뉴스보도였다. 그러니까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이들이 하루아침에난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상상력이 필요한 때는 바로 이 지점이기도 하다. 막연한 전쟁의 공포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상의 세계에 나를 집어넣는 능력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 프랑스가 국가를 위해 일할 수재들을 교육시키고자 국가 최고의 기관에 보내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귀족주의,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문학적/시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들이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저
난다 | 2013년 06월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다카하시 데쓰야 저/한승동 역
돌베개 | 2013년 09월

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 저/함규진 역
글항아리 | 2021년 03월

홀로도모르 리포트 :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

가레스 존스 저
지구라트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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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사》 (문학동네, 2021) 출간기념전시를 다녀와서(후기) | 기본 카테고리 2022-02-2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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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의 뿌리를 찾아서

- 박주석의 한국사진사출간기념전시를 다녀와서

 

 

작년(2021)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한국사진사를 기념하여 마련된 전시 ()에서 ()으로에 다녀왔다. 전시장에는 한국사진을 개척했던 사진가 22명의 사진 5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사진들은 한국사진사 연구를 처음 개척했던 고 최인진 선생(1941-2016)이 수집한 800여 점의 프린트에 이번에 출간된 한국사진사의 저자 박주석 교수(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 대학원 교수)가 수집한 700여 점의 빈티지 및 오리지널 프린트를 더한 컬렉션에서 선별한 사진 전시다. 오늘 페이퍼는 도서 소개와 더불어 국내에서도 실제로 보기 힘든 사진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전시에 다녀온 후기를 겸해서 작성하게 되었다.

 

현재 서울의 강남에 있는 전시관 <언주라운드>에서 진행중인 전시는 이달 2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후 광주에 있는 <갤러리 혜윰>(03.05-03.25)과 대구의 <아트스페이스 루모스>(04.02-05.01)에서 전시된 다음, 미주 순회전시가 기획되어 있다. 전시장 담당 큐레이터분이 직접 말씀해주신 바에 따르면,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 일부는 순회전시에 포함되어 있어서 당분간(2년 정도)은 국내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사진사에 소개된 사진 중 일부가 전시되어 있지만, 이번에 전시되는 작가들의 빈티지 프린트, 오리지널 프린트는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귀한 사진들이다. 그러므로 사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방문해보시기를.

 


        전시회 ()에서 ()으로」 포스터(왼쪽)와 작년(2021)에 출간된한국사진사표지(오른쪽)

 

 

책의 저자인 박주석 교수는 연구자로서 사진은 이미 포토그라피()를 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진()의 문제이다.”라고 바라보며, 그러므로 오늘날의 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사진을 감상하면서 이 두 글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내게 ()’의 문제는 기술적인 조건과 형식이 답하는 문제다. 카메라, 렌즈, 기본적인 원리 혹은 시대성 등등을 포함한 가시적이고 객관적인 조건들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의 문제는 ()’의 문제와 모종의 연관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도 보다 비가시적이고 주관적인 조건들을 포함한다. 이를테면 사진가의 해석과 관점, 의도와 같은 것들이다. 사진가의 의도는 기술적으로 ()’를 구현하기 위한 선택에 개입한다고 볼 수 있겠다. 각종 특수인화 기법들과 사진가의 의도에 따른 도구의 선택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또한 이 의도에는 인화지의 유형과 종류, 프린트 방식과 크기 등의 선택 과정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 문제에는 무엇보다 사진가의 철학이 담긴 해석과 의도가 근간을 이룬다고 생각된다.

 

 

사진을 전공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른바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진 사진 활동 기록은 1928년 정도부터 라고 한다. ‘조선포토싸롱이라는 공모전 형식의 사진 대회가 생겨난 것이 이 때부터이며, 이 때부터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사진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진가 문치장의 이력처럼 1920년에 조선 총독부 사진과 조수로 일본인들에게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정황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들이 사진술을 습득한 후 20년대 후반부터 보다 활발하고 능숙하게 사진 활동을 전개해나가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 전시에 선보인 사진들도 1929년에 촬영된 정해창의 사진으로 전시회의 포문을 열고 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사진전람회를 개최한 사진가다. 작가 소개 정보란을 보니 일본 유학 시절 독일어를 공부하고, 서양화를 배웠으며, 동경예술사진학교 연구실에서 사진화학과 피그먼트 인화법을 연구하며 사진가의 길로 들었다고 한다. 그림을 공부한 사진가라서 그런지 정해창의 사진에는 전통적인 회화의 특징적인 구도와 양식이 반영된 근대 사진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사진이 회화와 구별되는 지점을 치열하게 고민했을 사진 선구자의 방황과 열정이 느껴진다. 특히 정해창의 사진 몇 점은 사진가 구본창이 재인화 작업을 하여 선보인 작업들이다. 아마도 유리 건판으로 작업했을 정해창의 사진 인화물이 이제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당시에 작업했던 인화물(주로 RC인화지로 작업)이 현재까지 남아있지 않아서일 것이다.(인화지 관련 정보는 아래 추가 설명 참조)

 

 

 정해창, 여인의 초상(1929), 왼쪽/ 인형과 오브제(1934), 오른쪽, 두 사진 모두 구본창 인화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한국 사진의 역사가 비록 일제 강점기에 태동했지만 세계 사진사의 역사에서 크게 뒤쳐져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태동한 한국 사진의 역사는 1938년 정도 까지는 국내의 사진 동호회(구락부) 활동이 꽤나 활발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던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동아일보의 <일장기말소사건> 이후부터는 국내 사진활동에도 큰 제약을 받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 사건을 주도했던 사진가가 동아일보의 사진과정으로 있었던 신낙균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전시회 포스터로 사용된 무용가 최승희의 사진을 비롯하여 세련미가 느껴지는 자화상 사진 세 점이 선보이고 있다. 전시회 소개자료의 작가 소개 정보를 참조하면, 신낙균은 무엇보다 국내 최초의 사진학자이자 근대 사진교육의 기초를 마련한 교육자였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1927년에 한국인 최초로 일본 동경사진전문학교에서 사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졸업하고, YMCA의 사진과 교수로 처음 부임하여 후학을 양성했다고 한다.

 


신낙균의 세련된 자화상(1927), 왼쪽 /  임응식의 대표 사진, ‘구직(求職)’(1954), 오른쪽

 

한국의 사진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일제의 영향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 것은 1942년에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제가 전시에 사진 찍는 일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한국사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아마추어를 포함한 사진활동은 한 번 이상의 소강상태를 겪는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 계기가 태평양 전쟁이었겠고, 두 번째는 물론 한국전쟁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40년대 사진 몇 점이 보이지만, 뚜렷한 개성을 지닌 리얼리즘 사진은 한국전쟁 전후에 두드러지는 것 같다. 전시회 소개 자료에는 생활주의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사진가 임응식을 언급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구직(求職)>(1954) 사진도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선보이지 않았지만 이 리얼리즘사진의 맥을 있는 사진가로는 사진가 정범태와 최민식으로 맥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사진 전공한 친구는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애(humanity)가 잘 느껴지는 정범태 작가의 사진도 볼 수 있었으면 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선정되지 않았나보다.

 

 

개인적으로는 사진가 이형록의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는데, 책이나 전시회에서 보면 금방 어떤 사진의 유형인지 알 수 있겠다. 그의 사진은 앞서 언급한 임응식이나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삶을 주제로 작업한 임석제리얼리즘사진들과는 조금 다르게 조형성이 강조된 사진들이었다. 내 취향에 가장 가까웠던 이형록의 사진은 아침 시장의 모습을 담은 작품(1955)이다. 어렸을 적에 전통시장 근처에서 살아서 그런지 그 사진을 봤을 때 털털거리며 연기를 내뿜으며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떠올랐다. 또 비가 오지 않아도 언제나 뜯어낸 무나 배추 잎이 섞여 질퍽한 진흙탕이었던 시장 바닥이 생각났다. 인물의 검은 실루엣이 프레임을 양분하며 쓰레기를 태우기 위해 손잡이 달린 양동이(대개는 불을 떼기 위해 양동이 주변으로 구멍을 뚫는다)를 흔들어 불을 붙이는 듯한 장면이 포착되어 있는 사진이다. 질퍽하고 싸한 재래 시장의 아침에 불을 제대로 붙이려고 흔드는 사내와 화면을 가로지르는 흰 색 연기의 대비가 강렬한 사진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렇게 조형성이 강조된 사진을 좋아하는 것 같다(예전엔 그다지 생각을 안했는데 말이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 중에서 조형성에 주목한 사진가는 이상규, 김행오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이형록 시장의 아침’(1957), 왼쪽/ ‘어촌’(1958), 오른쪽

 

이형록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은 그가 앞서 언급한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 임응식1935년에 강릉 우체국 직원으로 부임했을 때 서로 알게 되어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일화다. 한국 사진의 선구자들이 서로 만나 각각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한 명은 리얼리즘 계열의 사진을, 다른 한 명은 조형주의 사진을 개척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내가 이형록의 전시회 사진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그의 섬세한 조형 감각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아침 시장사진 외에 머리에 물건을 이고, 포대기에 아이를 엎고 배가 엎어진 모래사장을 지나가는 사진(1958)이나 공사 현장의 노동자들을 찍은 사진(1955)이 보여주는 조형 및 균형 감각은 매우 놀라웠다. 내가 보기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조형성과 비견되는 사진들이라 생각한다. 그의 사진이 궁금한 분들은 책이나 이번 전시회 사진들을 참고해보시기 바란다.

 


              현일영 손목시계’, 왼쪽/ 박필호 무제(손 위의 시계)’(1937), 오른쪽

 

전시회 안내 자료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이번에 공개된 사진 중 사진가 현일영의 사진들이 또 다른 사진들과 맥이 다른 것 같아 흥미롭게 주목해본다. 자료에는 작가주의 사진가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현일영의 사진에는 간결한 오브제를 주시하며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가져오는 사진들인 것으로 보인다. 손에 찬 손목시계,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달력, 타고 남은 담뱃재가 쌓인 재떨이, 부식되는 사과와 같은 대상들을 응시한 사진들이다. 앞서 언급한 이형록의 사진들처럼 외부세계를 향해 관찰하며 조형성을 가미하는 시선과는 분명히 다르다. 현일영의 사진들은 사진가의 시선이 사물을 응시하지만 결국은 반사되어 사진가의 내부로, 그리고 이어서 관람자인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사진 같다. 그러므로 그의 시선은 분명히 내부를 향하고 있었다. 사진가가 관찰하고 응시하는 대상에서 결국은 나의 기억과 감성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사진적인 사진이라고 말하곤 하는 그런 사진들이다. 현일영의 사진과 맥을 같이 하는 사진으로는 손바닥 위의 회중시계를 찍은 사진가 박필호의 사진을 꼽을 수 있겠다. 현일영손목시계사진과 비슷한 형태의 오브제를 찍었다는 점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자 기호로서 오브제를 이용하는 점,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형록의 사진들과는 분명히 다른 맥락을 이루지만 현일영의 사진들은 오히려 더 현대적인 감각을 일깨워 준다. 사물에 사진가의 내면을 비추고 있기에 오히려 한편의 짧은 시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이형록의 사진들은 외부 세계를 응시하면서 기록하기에 소설 속의 이야기(서사) 한 장면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문치장 설빔 차림의 아이들’(1937), 왼쪽/ 전시장 입구의 안내문, 오른쪽

 

 

현일영의 사진 옆에 이어지는 사진 중에 또 나의 눈길을 끌었던 사진은 1933년에 촬영된 항공사진이었다. 동아일보의 사진기자였던 문치장이 프레임의 한쪽 끝에 보이는 복엽기를 타고 서울 상공을 날았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 중에는 서울 상공에서 찍은 항공사진이 있다. 사진의 한쪽 프레임으로 보이는 복엽기의 날개 사이로 동아일보 사옥이 촬영되었다. 전시장에는 대형 카메라를 조작하는 사진가의 자화상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미 30년대에 다양한 시각을 검토하고 실험하고자 했던 시도들, 그리고 기술적 조건들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 위에 제시한 사진은 항공사진이 아닌 그의 설빔 입은 아이들’(1937) 사진이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진 나라의 유적 앞에 나있는 거리 한 가운데에서, 설빔을 입은 모습을 찍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사진가가 느꼈을 법한 감정을 조금은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진은 그렇게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배운 것이 있다면, 전시 소개 자료에 나온 사진 비평가 박평종의 도움글이다. 그는 빈티지 프린트로 보는 한국사진의 작은 역사라는 글에서 빈티지 프린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어준다. 우리가 흔히 빈티지 감성’, ‘빈티지 효과라는 상투어에서 많이 보듯이 낡고 오래된 무언가를 연상하게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에서 빈티지 프린트라고 하면 필름 원본(혹은 유리 건판)이 사라진 유일무이한 인화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매번 인화할 때마다 같은 작품은 존재하지 않지만, 더 이상 인화물을 만들어낼 수 없는 작품을 의미한다. 따라서 박평종이 언급한 것처럼 빈티지 프린트는 희소성이 높고 컬렉터들이 주목하고 있기에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에 더하여 비평가는 빈치지의 비교 불가능한 가치와 의미를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빈티지 프린트가 생산되었던 당대의 정확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는 것. 바로 빈티지 프린트가 갖는 역사적 가치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는 시대와 관계 맺고 있던 작가의 개입, 이를 테면 사진가가 네거티브 원판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해석이라면 보다 구체적으로 앞서 언급한 인화지들의 종류, 작품의 크기(혹은 카메라 판형), 프린트 방식과 기법 등에 관해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선택을 포함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진의 역사에서 빈티지 프린트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에는 네거티브 원본만 있으면 되기에 인화물에 대한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또 보관성이 좋은 FB인화지보다 보다 일찍 변색이 되곤 하는 RC인화지에 작업을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의의는 한국사진사의 출간 기념 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박평종의 말을 빌리면, 고 최인진 선생과 박주석 교수가 그동안 수집, 정리, 보존해온 빈티지 사진들을 통해 한국사진의 역사를 복원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 중 일부는 꾸준히 작업하고 사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글을 써온 사진가 구본창, 주명덕이 다시 작업한 인화물(정해창, 현일영의 사진들)이 있어, 빈티지 사진과 한국 사진사 정리와 보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계기이기도 했다. 특히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말에 이르는 초기 한국 사진의 선구자들의 활동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피식민지의 땅에서 태어나 당당히 일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체계적으로 사진을 배우고 다양한 생각과 시도를 구현해보고자 했다. 이들은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 지식인들이었다. 아울러 지금의 시선에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든 형식들이 이들의 손에서 시도되었고 실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단지 편리해진 디지털 카메라로 이들 선구자들이 고민하고 시도했던 작업들을 반복해보는 정도에 불과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장비에 접근성이 높아진 지금과 달리 100년 전의 한국 사진은 진지한 지식인들이 접근할 수 있었던 예술분야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나는 서양의 역사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함을 배운다. 그런 다음에야 후학들은 선구자들이 고민과 실험을 통해 내놓은 결과를 기반으로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읽은 불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 황현산의 글 한 대목이 여기에 어울릴 듯하다.

 

 

아직도 나는 그 섬의 이런저런 해안 자락을, 이 마을 저 마을의 고샅들을, 동내에 함께 살던 어른들의 이름과 성품까지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표준이 여전히 그 섬에 있다. 나는 지금도 그 섬으로 세상을 잰다.

(밤이 선생이다중에 실린 글 고향의 잣대(2001), 난다, 2013, 292)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을 신안군에 속한 작은 섬에서 보냈던 황현산은 어린 시절 몸에 각인된 세계가 이후의 세계에 대한 잣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말마따나 지난 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포스트모던의 담론이 기존의 잣대를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럼에도우리에게는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나름의 잣대는 필요하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는 이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국제 외교나 통상에서 그때그때마다 현행의 잣대에만 매달리다 보면 우리 같은 처지의 국가들은 늘 한 걸음 뒤지게 마련이다. 그 잣대의 향방을 예견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파악하고 그 고향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구미 제국을 공부할 때, 그 고대와 중세를 더듬어 그 잔뿌리까지 남김없이 캐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겠다.”(294)

 

 

따라서 우리 사진의 역사에서도 캐내야 하는 대상은 서구의 역사와 문물만이 아니다. ‘내 안의 타자인 우리 선구자들의 기억과 이들이 남긴 자료들을 정리하고 보존하며 그들의 작업을 면밀히 파악하는 일이 곧 잔뿌리가지 캐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사진사을 또 하나의 토대삼아 한국 사진의 작은 역사를 우리 것으로 이어가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인화지 관련 추가 설명]

1920-30년대 당시의 인화물은 섬유 재질로 된 화이버 베이스(FB) 인화지보다는 주로 감광성 수지를 입힌 RC(Rasin-Coated) 인화지에 인화했기 때문일 텐데, RC인화지가 작업에 좀 더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한 반면, 계조나 암부 묘사 등의 표현력에 있어서 FB인화지보다 떨어지고 보관성이 떨어진다. 반면 FB 인화지는 작업이 좀 더 까다롭고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표현력이 좋고 무엇보다 보관만 잘 하면 100년 이상은 거뜬히 갈 수 있는 보관성이 좋은 인화지다.

 

 

한국사진사

박주석 저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한국사진사 1631-1945

최인진
눈빛 | 1999년 04월

임응식 Limb Eung Sik

지상현 저/임응식 사진
열화당 | 2013년 01월

부산에서 서울로 1946-1960

임응식 저
이안북스(IANNBOOKS) | 2020년 06월

이형록 사진집

이형록 저
눈빛 | 2009년 12월

한국사진과 리얼리즘

정범태,이형록,안종칠,손규문,김한용 공저
눈빛 | 2002년 11월

한국사진의 선구자들

박평종 저
눈빛 | 2007년 04월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저
난다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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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의 참모습 | 기본 카테고리 2022-01-30 01:32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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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글쓰기

모리스 블랑쇼 저/박준상 역
그린비 | 2012년 12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글을 남기는 것,

텍스트 '바깥'의 모호함이 바로 '카오스', '재난'이다.

 

그 가운데 언어를 붙드는 행위, 텍스트와 씨름하기.

이 텍스트와 나와의 상호작용이 곧 '내 안의 어린 아이',

'결코 죽지 않는 생명력'을 끊임없이 살해하는 행위가 아닐까.

이건 재난에 대한 부단한 긍정, 깨어있기다.

 

그러므로 언어를 붙드는 자, 작가는 고통 속에서 결코 잠들 수 없는자,

"한낮에 불면증에 걸린 자."(204)다.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의 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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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을 읽으며 옆길로 새어 헤매기 | 기본 카테고리 2022-01-0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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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을 읽으며 옆길로 새어 헤매기

 

이번 글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다가 옆길로 새고 헤맨 기록을 모아본다. 지나친 상상이라고 비난하실지 모르겠다.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나는 읽다보면 어느 새 딴 생각을 하곤 한다. 아니면 집중력이 약하여 쉽게 옆길로 새기 때문에 독서를 빨리 못하는 것일까. 오늘 쓴 글을 보니 작품의 이해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어느 한 부분에서 마주한 상황과 관련하여, 다른 작가의 작품을 떠올려보고 나름대로 상상력을 가미해본 작업이다. 죄와 벌을 읽으면서 함께 읽기의 제안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읽은 이후 추가 독서를 위한 독서지도 만들기 혹은 독서 계획이 될 수도 있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략 6가지 장면에서 출발하여 옆길로 새고 헤매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 결과다. 상상력을 가미하긴 했지만 각자 나름의 무모한근거도 곁들인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 글은 작품의 이해에 하등 도움은 안 될 것이다. 다만 한 분이라도 재미있었다면 충분하다.

 

 

 

[1] 로쟈는 (lice, )'를 왜 그토록 혐오했을까?

 

어릴 때 어머니가 내 머리 속에 있던 하얀 벌레를 잡아 죽이셨던 기억이 난다. 손으로 누를 때마다 빨갛게 터지던 녀석들. 바로 머릿니다. 머리에 가루약을 넣었던 것 같기도 하다. 죄와 벌에서 로쟈는 소냐에게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댄다. “난 단지 이를 죽였을 뿐이야, 소냐. 무익하고 혐오스럽고 해악을 끼치는 이 말이야.”(문학동네, 2, 226) 아무리 전당포의 고리대금업자라고 해도 힘없는 노파를 라고 규정하고, 혐오발언을 일삼으면서 생명을 빼앗은 일은 경악스럽다. 게다가 로쟈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한다. 자본의 힘으로 법을 다루는 이들과 공모하여 죄를 면하거나, 초범에 반성문 열심히 쓰면 풀어주는, 망가져버린 우리나라 법정에서나 먹힐만한 이유 아닌가. 문장만을 따로 떼어 보자면 로쟈의 변명처럼 심각한 인간혐오표현이 따로 없다. 다시 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에 대해 혐오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던 것인지 모른다. 도대체 이 작은 녀석들이 어떻게 내 몸에 들어와 기생할 수 있었을까.

 

최근에 읽은 치명적 동반자, 미생물(도로시 크로퍼드 지음, 김영사, 2021, 이하 미생물)을 읽으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이 살았을 법한 환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보인다. 미생물에 따르면 밀집되고 위생이 불량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이질,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콜레라 등 대변-구강 경로로 전파되는 병원체가 퍼지기 쉽다. 이 중에서 발진티푸스를 선택해본다. 이 질병은 리케차라는 미생물에 의해 발병한다. 이 녀석은 DNA염기분석 결과 오래전부터 쥐의 몸에 기생해온 발진열 리케차에서 진화된 것으로 추정’(238)된다. 무엇보다 인간이 수렵채집생활(이동생활)에서 농경생활(정착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집에 함께 머물던 쥐들을 통해 인간과 접촉이 증가했을 것이다. 그 결과 발진티푸스 리체차라는 병원체는 몸니(body lice)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발진티푸스에 얽힌 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로쟈가 되고 싶어 했던 나폴레옹, 그가 일으킨 전쟁과도 관련이 있다. 미생물에서 저자는 나폴레옹이 유럽 정복을 위해 감행한 1812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정복을 위해 50만 명이 넘는 병사를 거느리고 모스크바로 출정했다. 이 과정에서 질병과 굶주림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사망하고 낙오했는데,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는 병력이 13만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나아가 최종적으로 모스크바에서 생환했던 병력은 불과 35천 명에 불과했다. 나폴레옹이 제대로 된 전투를 하기도 전에 대부분의 병력을 잃었던 것은 무엇보다 발진티푸스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듬해인 1813년에 나폴레옹은 또다시 50만 명을 징집하여 독일과 전쟁을 벌이는데, 결국 발진티푸스 리케차라는 병원체가 유럽을 정복하고자 했던 나폴레옹의 열망을 꺼뜨리는 주요 원인이 되고 만다.

 

미생물에 따르면, 1880년대 중반에 발진티푸스는 개인과 사회 위생의 향상으로 서유럽에서는 보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 전선에서는 수천 명이 발진티푸스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도 발진티푸스가 대규모로 유행하여 약 300만 명이 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죄와 벌이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했던 해는 1866년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이 소설을 쓰던 이 시기에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괴롭히던 질병이었다. 여기에서 바로 몸니가 이 병원체(리케차)를 매개하던 존재였던 것이다. 특히 가난하고 불결한 환경에서 모든 이들의 몸에 예외 없이 기생했을 는 그저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었을 것이 분명해진다. 오죽하면 사상가, 정치가인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회주의가 이를 박멸하지 못한다면 이가 사회주의를 박멸할 것이다.”(같은 책 재인용, 243)라고 와의 전쟁을 선포할까. ‘를 보기 힘들어진 요즈음 도스토옙스키가 소설에서 를 그토록 혐오하며 썼던 이유를 역사 속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2] 로쟈의 꿈과 니체와의 관계

 

죄와 벌의 전반부에서 로쟈가 범행을 저지르기 하루 전에 거리를 방황하고 술을 마신다. 찌는 듯 무더운 여름에 삼일 째 거의 먹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 술을 퍼마신 로쟈는 돌아오던 길에 숲에서 다리가 풀리고 기절하듯 잠을 자버린다. 이 때 로쟈는 무서운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어린 로쟈는 아버지와 묘지로 가는 길에 술집 옆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비쩍 마른 암말에 매어둔 짐마차에 여러 명이 탄 채, 말주인은 채찍과 몽둥이로 말을 죽도록 때린다. 결국 주인은 쇠 지렛대로 말의 등을 내려치면서 숨통을 끊어놓는데, 꿈속의 어린 로쟈는 비명을 지르며 피투성이가 된 말의 얼굴을 끌어나고 입을 맞추고, 눈과 주둥이에도 입을 맞추며 흐느껴 운다.

 

아마 많은 분들이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부분은 니체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에피소드를 연상케 한다. 니체의 연보를 보다가 발견한 사례인데, 니체가 45세이던 18891월에 있었던 사건과 관련이 있다. 니체가 머물던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그는 채찍에 맞는 말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싸 안다가 간질 발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때 니체의 친구 오버베크가 바젤로 데려가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니체는 죄와 벌에서 이 장면을 읽고 영향을 받은 바가 있을까? 사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니체에게 아주 큰 영향을 준 소설가임에는 분명하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유일한 심리학자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행운 중 하나다.이 정도라면 니체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인간에 대한 치밀한 심리묘사를 보여준 도스토옙스키를 정밀하게 읽고 그 영향이 고스란히 몸에 각인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두 사람 모두 간질환자라는 공통점 혹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예민한 감수성 같은 것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의학적인 소견은 아니지만, 간질 발작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의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후 두드러지는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도 간질로 고생했다. 그는 28세였던 1849년에 한 비밀모임에서 급진적인 비평가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미 짜인 각본에 의한 가짜 처형식이었지만 총구 앞에 섰다가 감형된 이후, 그는 이듬해에 수감된 감옥에서 처음 간질 발작을 경험했다. 니체도 말이 무자비하게 채찍을 맞는 현장에서 말에 대한 연민과 고통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 간질 발작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죄와 벌에서 로쟈의 꿈과 니체가 20대 초반에 이 소설을 읽고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심리학적 주제가 될 수 있겠다. 분명한 사실은 니체가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3] 알베르 카뮈의 전락(轉落)죄와 벌의 연관성

 

알베르 카뮈는 생의 말년이던 1956(당시 43)전락(轉落)(이정림 옮김, 범우사)이란 제목의 소설을 발표한다. 이 소설은 카뮈가 정치 활동에서 은퇴한 후 언론계로 복귀한 시기에 쓴 장편소설이다. 파리에서 유명한 변호사로도 활동했던 소설의 화자는 어느 날 밤 파리의 센 강에 있는 다리를 건널 때, 물속으로 투신한 여자의 소리를 듣고서도 뒤돌아보지 않고 지나친다. 양심의 가책이 내는 소리였을까. 그는 이후에 갑자기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이후 네덜란드로 와서 사는 이 남자는 자신을 고해 판사라고 말하면서 소설 내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독백을 이어간다. 상황 자체가 그야말로 부조리한 경우다. 이런 모습은 어쩌면 수많은 도시 사람들이 익명성 속에서 살면서 접할 법한 상황은 아닐까. 이 작품이 오로지 독백으로만 채워지기에 카뮈의 다른 책보다는 수월하게 나아가진 않지만, 꽤나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부조리한 연극의 한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장면을 죄와 벌에서 다시 떠올렸다. 로쟈는 동생 두냐의 약혼자 루진과 충돌한 장면이 나온다. 이후 라주미힌이 로쟈의 돈으로 사다준 옷을 입고 술집에 들르는데, 이곳에서 로쟈는 경찰서 서기관 자메토프를 만나 내가 살인자라면 어쩔거냐고 협박하기도 한다. 범행 후 예민해져 있던 로쟈가 루진과 충돌하고, 술을 마신 다음 어느 다리를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로쟈는 다리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든 여자를 바로 앞에서 목격한다. 이 장면에서는 목격자가 많은데다 순경이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여자를 구한다. 나는 카뮈가 이 장면을 읽고 부조리한 상황을 설정해본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물론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전락(轉落)을 번역한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카뮈는 이 소설에서 부조리와 모순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만약 죄와 벌에서 나온 장면에서, 목격한 사람이 한 밤중에 나 혼자였다면, 나는(혹은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카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물론 이건 다소 무리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찾아낸 무모한근거는 카뮈가 일종의 도스토옙스키 전문가(혹은 덕후?)’였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카뮈는 젊은 시절 알제 방송국 극단의 희곡 배우로 활동했고, 희곡 <아스튀리의 반란>을 비롯한 여러 희곡을 썼던 극작가이기도 했다. 아마추어 연극단체를 조직하기도 했고, 극단을 운영하며 배우 및 단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1959(46) 2월에는 앙트완느 극장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각색하고 공연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이 연극으로 지방 순회공연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공연한 연극에서도 이반 역으로 무대에서 열연했다. 이 두 소설을 수도 없이 읽었을 카뮈가 죄와 벌을 읽지 않았을까? 그는 이미 생활이 극단 및 연극과 분리가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것이다. 그런 그가 죄와 벌의 운하 위 다리 장면에서 부조리한 상황을 설정해보지 않았을까. 옆길로 새어 해본 상상이다.

 

여기에 카뮈가 도스토옙스키의 전작을 꿰고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근거가 한 가지 더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락(轉落)은 화자 혼자 등장하는 모노드라마 같은 소설이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의 장광설로만 채워진다. 이러한 형식은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인간이다.”(도스토옙스키의 고백록, 제윤 편역, 을유문화사, 이 책에 실린 소설)로 시작하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견주어볼 수 있다. 이 중편 소설에서 화자인 는 소설 내내 전락(轉落)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독백을 이어간다. 카뮈는전락(轉落)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사용한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결국 카뮈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전작을 열심히 탐구하면서, 그로부터 발견하고 알아낸 것들 준거로 삼아(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아주 잘 훔치고 베껴서) 자신의 창작으로 활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카뮈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도스토옙스키 덕후였으니까.

 

 

[4] 프란츠 카프카 변신과의 관계

 

죄와 벌을 읽다가 어느 한 대목에서 카프카를 떠올렸던 것은 이 소설에 계속 등장하는 때문이 아니었다. 죄와 벌에 거미가 한 번 언급된다는 걸 알고 계시는지? 로쟈가 소냐를 찾아가서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며 나누는 대화 중에 등장한다.

 

방금 당신에게 대학 다닐 돈이 없었다고 말했지. 하지만 알아? 난 다닐 수 있었는지도 몰라. 필요한 돈은 어머니가 보내주셨을 테고, 신발이나 옷, 빵을 살 돈은 내가 직접 벌 수도 있었어. 분명 그랬어! 과외 자리도 들어왔었어. 은화 반 루블씩을 제안했지. 라주미힌은 일을 하잖아! 근데 난 악에 받쳐서 하려 하지 않았어. 정말 악에 받쳤지! (좋은 단어야!) 그때 난 거미처럼 방구석에 몸을 숨겼어. 당신도 개집 같은 내 방에 와서 봤잖아... 소냐, 낮은 천장과 비좁은 방이 마음과 생각을 억압한다는 걸 알거야!”(2, 227)

 

카프카가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로쟈가 범행 후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천장이 낮고 좁은 자신의 방속에 거미처럼 몸을 숨겼던장면에서 카프카는 책을 멈추고 새로운 상상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를 테면 자신의 방 속에 해충으로 변신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카프카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특별한 상황에서 카프카의 작품을 읽었기에 20년이 지나도 기억이 남아 있다. 나는 변신을 훈련소에서 처음 읽었다. 기초 훈련을 마치고 훈련소에서 추가 직무 훈련을 받느라 몇 개월 더 머물던 때였다. 당시 저녁 시간 2시간 정도는 훈련생이 무언가를 읽을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책을 읽지 않던 시절이어서 내가 문고에서 고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작품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얇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공지영의 고등어같은 책을 진중문고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데, 카프카의 이 소설은 어떻게 부대 내에 배치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소설 역시 부조리한 현실 혹은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무자비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말이다.

 

변신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나뉘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전영애 옮김, 민음사)

 

지금 다시 이 부분을 보면 그레고르 잠자가 변한 해충은 죄와 벌에 등장하는 거미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한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이 실직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어느 사회든 위기가 찾아온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상황이 한 가족에게 닥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일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말이다. 카프카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지식인이었지만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도 일했던 경험이 있다. 그가 내일을 담보로 수익을 얻는 자본주의의 구조를 간파하지 못 할리 없다. 특히 폐결핵을 비롯한 질병으로 여러 번 병가를 내면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였다. 그러므로 카프카는 보험도 없이 위태롭게 살아가야 했을 수많은 가족들이 겪을 수 있는 현대인의 조건을 부조리한 상황으로 설정해놓았던 것이다. 가족에게 돈을 벌어다주지 못하는 가장, 혹은 구성원은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는 존재, 나아가 저거라는 사물로 지칭된다.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혐오를 고스란히 받게 될 상황을 떠올려보는 일은 그에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은 서로에게 지옥이 될 수밖에. 이 소설이 지금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전염병으로 일상이 통제받는 상황에서 문을 닫는 많은 상점 주인들은 누구나가 우리 시대의 그레고르 잠자. 카뮈뿐만 아니라 카프카의 작품처럼 이렇게 부조리한 현실을 그려낸 작가는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카프카가 도스토옙스키를 탐독했다는 기록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로쟈가 전당포 노파를 무익하고 혐오스럽고 해악을 끼치는 이라고 대상화했던 장면에서 카프카는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을 법하지 않은가.

 

 

[5] 톨스토이 부활과의 유사성 및 함께 읽기

 

도스토옙스키와 동시대 사람인 톨스토이(7살 연하임) 역시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톨스토이가 53세이던 1881년에 도스토옙스키가 사망했을 때 톨스토이가 크게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탐독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죄와 벌에서 로쟈는 유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로 떠나는데 이때 소냐가 로쟈를 따라간다. 소냐는 그의 곁에서 인간이 새로워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마련해준다. 반면 부활에서는 카튜사 마슬로바라는 여인이 죄를 선고받고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과정에 귀족인 네흘류도프가 동행한다. 그는 귀족의 신분으로 젊은 시절 카튜사를 범했는데, 이 일로 그녀는 억울하게 쫓겨나 매춘부가 되었던 것이다. 죄와 벌에서 소냐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춘부가 되는 상황과도 유사하다. 다만 이렇게 표면적인 유사성 말고도 두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부활은 톨스토이 사상의 진수가 담겨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소설에는 인간 특히 민중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닮아 있다. 다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한 인간의 부활 과정이 가능성으로만 암시가 되면서 소설이 끝나는 반면, 톨스토이의 작품은 바로 이 부분을 작가가 깊이 있게 탐구해나갔다.

 

나아가 집필에 10년이 걸린 부활에서 톨스토이가 참고한 실제 사건은 토스토옙스키가 작품에 활용했던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에 기반한다. 역자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이 작품의 전신인 코니의 이야기불쌍한 로잘리야 오니와 그녀의 유혹자 이야기라 불리는 사건에서 소재를 취했다. 대신 톨스토이는 젊은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한 인간(네흘류도프)과 엄혹한 현실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했던 취약한 여인(카튜사) 두 사람이 고통과 불행을 겪으면서도 정신적으로 새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두 작품 사이의 유사성을 비교하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작품을 함께 읽기를 제안해보는 것이다. 비슷해 보이는 설정과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며 각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는 일이 내게는 흥미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모습은 크게 달랐다. 한 사람은 도박과 간질로 힘든 삶을 살았다. 다른 한 사람은 부유했지만 작품의 저작권과 재산분배로 말년에 부인과 자녀 사이에 분쟁을 겪었다.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처럼 불행의 이유도 가지가지였던 셈이다. 그래도 두 작품을 비교해보니 두 작가가 사람에 대해 던지는 연민의 시선과 인간애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6]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과 도스토옙스키

 

글을 마치면서 죄와 벌에서 눈여겨본 대목 하나를 골라본다. 로쟈가 시베리아 감옥에서 앓아누워 있을 때 꾸었던 꿈에 대한 대목이다. 다소 길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라 빠르게 지나쳤을 수 있는 이 부분을 다시 읽어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그는 사순절이 끝날 무렵부터 부활절 내내 병원에 누워 있었다. 이미 회복되고 한 후 그는 아직 고열로 헛소리를 하며 누워 있을 때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병중에 그는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무서운 전염병이 아시아 깊숙한 곳에서 유럽으로 퍼져 전 세계가 희생될 운명에 처한 꿈을 꾸었다. 선택받은 아주 소수의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새로운 선모충, 사람의 몸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미생물이 출현했다. 그런데 이 생물체는 지능과 의지가 부여된 영적인 존재였다. 그걸 몸에 받아들인 사람들은 바로 귀신이 들린 듯 미쳐버렸다. 하지만 전염된 사람들은 결코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대단히 똑똑하고 진리를 흔들림 없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판단, 학문적 결론, 도덕적 신념과 믿음을 그 누구보다 더 확고부동하게 여긴 것이다. 마을 전체, 도시 전체와 사람들이 전염되어 미쳐버렸다. 모두들 불안에 떨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다들 진리가 오로지 자기에게만 있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괴로워했고, 자기 가슴을 치면서 울고 손을 쥐어뜯었다. 누구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지 못했고, 어떤 걸 악으로, 어떤 걸 선으로 여겨야 할지 합의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무분별한 적의 속에 서로 죽여 댔다. 서로를 향해 온전한 군대로 뭉쳤지만, 이미 출정한 군대가 갑자기 자기 편을 죽이기 시작했고, 대열이 무너지면서 군인들은 서로에게 덤벼들어 찌르고 베고 물어뜯고 잡아먹었다. 도시에서는 온종일 경보를 울려댔다. (...) 각자 자신의 생각, 자신의 처방만을 주장해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일상적인 생업마저 내팽개쳐졌다. 농사도 짓지 않았다. 어디선가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몰려들어 뭐든 함께하는 데 동의하고 헤어지지 않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금세 방금 결심한 것과 완전히 다른 짓을 벌여서 서로를 비방하기 시작하더니 주먹다짐과 칼부림이 일어났다. 전염병은 기세를 떨치며 멀리, 더 멀리 퍼져갔다. 전 세계에서 단지 몇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그들은 순결하고 선택된 사람들로, 새로운 인류를 낳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땅을 새롭게 정화하도록 예정된 사람들이었지만, 누구도 어디서도 그런 사람들을 보지 못했고, 누구도 그들의 말과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2, 429)

 

우선 아시아 깊숙한 곳에서 무서운 전염병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는 대목에 눈길이 멈추었다. 표면적으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팬데믹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깊숙한 곳에서 유럽으로 온 전염병에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페스트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이 질병은 유라시아 초원의 설취류에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로부터 날아와 덮치는 무소불위의 존재,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심이 느껴진다. 인용한 부분을 좀 더 읽어 내려가면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언급된다. 이 부분에서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을 떠올려본다. 이 소설 역시 전염병으로 인류가 모두 죽고 한 사람만 남는 이야기가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셸리가 남편과 한 명을 제외한 아이들을 모두 어려서 잃었던, 개인적인 아픔이 반영된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셸리가 29세였던 1826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때는 도스토옙스키가 5살일 때다. 의사인 아버지를 두었던 도스토옙스키가 전염병과 선모충에 대한 지식에 무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만 이 부분을 좀 더 읽어 내려가면 전염병이 추상적인 대상을 빗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도스토옙스키는 어렸을 때 셀리의 소설을 읽었을까. 알 수 없지만 상상해볼 뿐이다. 시기적으로 그가 이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불신과 혐오만 남게 될 때,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도스토옙스키가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비판과 성찰능력을 잃어버린 인류가 개별적인 존재로 분열되고 소외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우리에게 불신과 혐오만 남게 되면 인류는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 나아가 멸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도스토옙스키는 마지막으로 로쟈와 소냐 사이에 형성되는 신뢰와 사랑의 감정을 암시하게 된다. 이제 죄와 벌을 읽으면서 옆길로 새고 헤매는 읽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다음에는 악령을 읽어보려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죄와 벌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저/이문영 역
문학동네 | 2020년 05월

죄와 벌 2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저/이문영 역
문학동네 | 2020년 05월

치명적 동반자, 미생물

도로시 크로퍼드 저/강병철 역
김영사 | 2021년 06월

전락

A.까뮈 저/이정림 역
범우사 | 1994년 06월

도스토옙스키 고백록

도스토옙스키 저/제윤 편역
을유문화사 | 2017년 09월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저/전영애 역
민음사 | 1998년 08월

부활 1

레프 톨스토이 저/연진희 역
민음사 | 2019년 12월

부활 2

레프 톨스토이 저/연진희 역
민음사 | 2019년 12월

최후의 인간 1

메리 셸리 저/김하나 역
아고라 | 2014년 07월

최후의 인간 2

메리 셸리 저/김하나 역
아고라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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