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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먼 평전》과 제임스 글릭의 교양과학서 4부작 | 기본 카테고리 2023-01-3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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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먼 평전과 제임스 글릭의 교양과학서 4부작

 

 

어렸을 때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간 시간이 무척 아쉬운 일이다. 학창 시절에 읽은 책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성인이 되어 블로그 등을 통해 읽고 쓰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싶다. 책을 읽지 않은 아이였기에, 위인전 역시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그림이 들어간 장영실 위인전은 좋아했던 기억이 얼핏 나긴 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위인전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위인전을 읽을수록 이들이 나와는 동떨어진,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만 굳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제3자가 갈무리한 평전 류의 도서들을 읽게 되었다. 평전이라면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숭배비판 혹은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작가 연보가 아닌 이상 사실만 나열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평전들은 상당수가 숭배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우리나라의 위인들만 완전무결한 존재일 리 없는 것이다. 반면 외국 인물에 대한 평전은 꽤나 솔직하다. 개인적인 치부도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건 무엇보다 인물에 대한 개인사가 출간물에서 허용되는, 혹은 터부시되는 영역이 문화권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다. 위인의 모습과 성격이 어떠했는지 간에 그건 그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일 뿐이다. 평전에서는 인물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예를 들면, 수전 손택에 대한 평전 수전 손택(다니엘 슈라이버, 글항아리, 2020)이 바로 떠오른다. 이 책에는 제3자가 바라본 손택의 면모가 다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손택의 천재적인 능력과 활동가적 지성인의 면모 등이 다루어져 있으면서도, 그녀의 인간적인 미숙함과 단점들(거짓말 잘하기 등), 심지어 찌질해 보이는 면모까지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계의 정서로는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 방식이다. 손택 개인의 치부가 평전에 담겨있다고 여길지도 모르나, 독자로서 나는 그녀를 함부로 폄하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그녀의 삶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까닭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상처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에서 겪고 느꼈을 고통들에 맞선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위인에 대한 평전이라면 어땠을까? 기술되는 위인의 치부까지 노출되어 있는 평전이라면, 아마 그 저자는 후손들의 줄이은 소송제기로 곤란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문화권의 차이로 볼 수도 있고, 혹은 삶의 이해에 관한 관용도의 차이, 문화권마다의 정처 차이로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정답이란 없는 문제다. 하지만 숭배로만 일관된 평전보다 독자에게 인물에 대해 보다 입체적으로 인물의 면모를 제시해주는 것이 평전의 역할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저/한재호 역
글항아리 | 2020년 09월

 

 

새해가 시작되고 첫 평전을 만나게 되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사실 절판되었던 천재가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파인먼 평전제목으로 새로 나오게 되었다. 십 수년 전에 나오고 절판되었는데, 다시 출간된다는 문구를 어느 책의 소개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이제야 나오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주에 파인먼의 강연 몇 가지를 모은 책 과학이란 무엇인가?(승산, 2008)를 읽었는데, 마침 파인먼의 평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새로 출간된 평전의 저자는 제임스 글릭이다.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된 교양과학서의 전설 카오스를 쓴 저자이다. 나에게도 그랬지만, 전 세계에 카오스’, ‘나비 효과라는 용어를 각인시킨 인물이 바로 제임스 글릭이지 싶다.

 

 

파인먼 평전

제임스 글릭 저/양병찬,김민수 공역
동아시아 | 2023년 01월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리처드 파인만 저/정무광,정재승 공역
승산 | 2008년 07월

카오스

제임스 글릭 저/박래선 역/김상욱 감수
동아시아 | 2013년 06월

 

 

지금 다시 보니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제임스 글릭의 저서 4권을 출간한 셈이다. 카오스를 비롯하여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파인먼 평전이렇게 제임스 글릭 4부작이 완성되었다. 이번에 평전이 나온 김에 이 4부작을 다시 역주행을 해볼까 한다. 파인먼 평전을 시작으로, 학창시절에 읽고 나서 기억도 안 나던 카오스, 그리고 읽다가 멈추었던 인포메이션를 이어서 읽어봐야지 싶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일 텐데, 저자가 역사적으로 시간을 이해하려던 인물들의 이야기 조사를 엄청나게 했다는 인상만 남아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파인먼 평전은 번역자도 바뀌었다. 내가 믿고 구매하는 양병찬 번역가가 참여한 결과물이다. 올 초에는 파인먼 평전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인포메이션 INFORMATION

제임스 글릭 저/박래선,김태훈 공역/김상욱 감수
동아시아 | 2017년 01월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

제임스 글릭 저/노승영 역
동아시아 | 2019년 05월

 

 

제임스 글릭은 기본적으로 저널리스트다. 영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문학을 전공한 기자이자 작가가 과학 분야에 대한 방대한 교양과학서를 쓰고, 과학자에 대한 평전을 써낸 셈이다. 파인먼 평전의 구판인 천재를 읽어보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대강의 흐름만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과학 분야를 아우르는 저자의 폭넓은 자료조사와 글쓰기를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것은 나뿐일까 싶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고등학교 때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후 파인먼의 교양서 몇 권을 읽어보았기에 파인먼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 파인먼에 대한 애정을 듬뿍 이야기하는 김상욱 교수도 학창 시절에 파인먼을 만난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학창 시절의 나는 처음에 그의 엉뚱하고 특이한 행동들에 흥미를 느꼈을 테지만, 이런 점들은 파인먼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방송이나 기타 매체에서 파인먼이란 상품을 팔기 위한 표제로 파인먼의 기이한 행동들을 언급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일생 전체를 따라가는 일이다. 그 인물의 장점과 단점, 업적과 치부까지 모두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파인먼은, 어느 누구의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기이한 행동들로 단정하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특이한(?) 방식으로 물리학에 진정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평전은 인물의 천재성을 충분히 보여주겠지만, 이와 더불어 실수투성이의 인간관계와 인간으로서의 불완전함도 아울러 보여준다.

 

 

나에게 한 인물의 평전을 읽는 일이란 묘사되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숭배비판모두를 접하는 일이다. 평전을 썼던 제임스 글릭의 입장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물에 대해 글을 쓰는 이는 대상에 대한 비판 이전에 대상에 대한 애정, 숭배가 전제된다. 내가 평전을 읽는 이유는 세계에 의도치 않게 내던져진,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의 살아감그 자체가 내게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때론 기술되는 인물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도,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에 공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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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본 수학 판타지 동화 | 기본 카테고리 2022-05-1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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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본 수학 판타지 동화

- 도전! 수학 플레이어를 읽고

김리나 지음 | 코익 그림 | [창비] (2022)

 

 

요즈음 아이들이 있는 지인의 가정을 보면 거의 대부분 자녀들을 여러 학원에 보낸다. ‘무너진 공교육이란 표현을 접했지만 이렇게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과목별 사교육 프로그램에 보내는 줄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부모는 그저 자녀들의 학원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이들은 학원 숙제가 많아 늦게 잠자리에 들고, 심지어는 학원 숙제를 학교에 가서 하는 실정이다. 교육 현장을 보면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느끼는 요즘이다.

 

어릴 때 부모님 두 분은 조그만 가게를 매일 15시간 이상 운영하셨다. 바쁜 부모님 덕(?)에 나는 그 숨 막히는 학원가를 전전하지 않았다. 더불어 선행학습이란 단어도 모르고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지인의 자녀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공부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공부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내게 공부는 재미있는 놀이 같은 활동이다. 물론 나는 시험을 염두에 두는 공부보다 포괄적인 의미, 넓은 의미에서 말하는 공부를 말하는 것이다.

 

조카나 주변 지인 자녀들에 대한 공부를 생각할 때 스스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만한 책이 있을까 궁금하다.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스크린에 적응된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교재가 없을까 궁금하긴 했다. 이런 맥락에서 도전! 수학 플레이어는 이야기가 있는 수학 길잡이 책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검토해볼 만하다. 책 속에서 윤진은 미래의 수학자가 되는 아이다. 훗날 그의 제자는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가서 어린 윤진을 만난다. 수학자 윤진은 지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는 인물이 될 것인데, 그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었다. 그의 제자들은 가상현실과 같은 인식의 공간속에서 그를 보호하면서, 어린 윤진이 수학자가 되도록 미래에서 수학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을 따라가면서 윤진은 여러 가지 기하학 개념이나 무리수에 얽힌 역사를 공부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판타지 형식의 수학 동화라는 구도로 접근한다. 구체적인 수학 지식과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수학 공부에 대해 윤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군자불기 학즉불고(君子不器 學則不固)’,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다양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논어의 가르침이었다. 진의 아버지는 수학이 단순히 풀이 방법만을 외우는 학문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받아들이는 아동에 따라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경쟁과 규칙에만 익숙해져가는 요즘 아이들이 이 말을 생각해보고 이해할 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윤진이 수학 게임에서 점수를 얻고 레벨을 올리고 싶어서 수학 선생님한테 질문을 하는데, 답을 얻는 장면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질문거리를 찾고 그 과정에서 앎과 이해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공부의 본질이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사교육 프로그램에서 빠져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문득 학원 숙제하느라 피곤에 절어있는데다 상상력을 잃어가는 많은 아이들이 공부의 재미를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책이 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그림책 수백 권을 보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책읽기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자주 본다. 이런 상황에서 도전! 수학 플레이어 같은 책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수학의 역사와 여러 기본 개념에 접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야기를 통해 개념을 전달하다보니 많은 개념을 다루기 어렵고 글이 많아지는데, 책의 내용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는 아이들에 따라 편차가 클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동화 속에서 주인공 윤진은 태민이란 캐릭터와 갈등을 겪는다. 태민이는 버릇없지만 선행학습을 하여 수학에서 좋은 점수를 받곤 하는 아동이다. 공부에 큰 관심이 없던 윤진이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태민이와 진 사이의 충돌을 피하기는 어렵게 된다. 1권은 아쉽게도 윤진이 태민이 일당과 만나게 되는 긴장감 어린 장면에서 끝이 난다. 진이는 계속 수학 공부를 하게 되겠지만, 태민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2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이 시리즈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기하문제 풀기를 좋아했지만, 수론에 대해서는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이 책에는 기하 개념뿐만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나온 수 개념이 함께 등장하는데, 나 역시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본 개념에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초등학생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등장하는 캐릭터 중 수학을 공부한 인물은 모두 천재 수학자로 나오는 설정은 비록 동화이기는 하지만 과연 어린 독자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다가갈지 궁금하다. 2권에서는 어린 윤진이 역경을 딛고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수학자가 되는 과정이 담겨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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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도 전쟁이 무섭다 | 기본 카테고리 2022-02-2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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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도 전쟁이 무섭다

-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2013)를 읽으며

 

 

결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습했다. 키예프 공항을 폭격하는 장면과 하늘에 별이 박힌 듯 수많은 러시아 군인들이 낙하산을 펼치고 내려오는 영상을 보았다. 지난 세기에 소비에트연방(구 소련)이 폴란드나 체코와 같은 이웃 국가들을 침공했던 사실은 책에만 기록되어 있는 줄 알았다. 실제 러시아의 침공 영상을 보니 두렵다. 한 정치가의 작전개시한 마디에 누군가의 삶과 장소가 파괴되고, 이와 결부된 기억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 말이다. ‘우크라이나 측이 먼저 공격했다, 혹은 우크라이나 지역의 친러시아 지역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데도, 국제사회는 무력해 보인다.

 

상당한 경제재재를 감수하고서라도 군사적인 결정을 내렸다면, 그만큼 푸친이 목적한 바를 챙기기 전까진 경제 제재조치로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NATO가입 문제가 푸틴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는 중국이 여기에 공동성명을 내고 러시아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냉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보니 중국 진영과 미국 진영 사이에 낀 우리가 풀어야할 외교문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요즘 불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였던 고 황현산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난다, 2013)를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저자의 문장은 아름답다. 글로 옮기기 힘들었던 미묘한 일상의 감상과 사유를 섬세하게 나타내는 감수성을 배우고 싶다. 그의 산문은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한편으론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잣대에 기대어 순순히 굽히지 않는 면모도 있다. 저자의 다른 산문이나 비평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러시아의 공습 기사를 보고, 밤이 선생이다에 실린 저자의 글 중 한 문장이 떠올라 다시 찾아보았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전쟁의 모습은 저자의 몸에 비인간화라는 공포의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나는 전쟁이 무섭다. 오만과 증오에 눈이 가려 심각한 것을 가볍게 여길 것이 무섭다. 전쟁을 막을 지혜와 역량이 우리에게서 발휘되지 못할 것이 무섭다.”(나는 전쟁이 무섭다(2010), 48)

 

 

전쟁을 겪은 세대의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가 이제 경제 10대 국가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제국이 아니다. 정신적, 문화적, 군사적으로 미국의 입김을 벗어날 길이 없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국과 손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국가든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역사 속에서 늘 되풀이되었던 것처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주변 강대국의 운명에 휘둘리기도 하고, 고통과 상처를 받으면서도 지금껏 지켜왔다. 우리의 운명은 주변 강대국의 행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국들, 특히 중국과 같은 나라들과 다면적인 사항(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사항)을 고려하여 행동에 나설 일이다. 하지만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내뱉으면서, 이웃 국가를 비난하고 자극하여 안보위기를 부추기는 철없고 머저리 같은 일부 정치인들의 말은 걸러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발언을 한 정치인들의 명단을 잘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이 명단을 활용할 방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알려진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가 자신의 저서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에서 인용한 내용에 전쟁을 자극하는 정치인들의 명단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음 인용문은 201165일자 <주간 아사히 긴급 증간 아사히 저널>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일찍이 전쟁절멸보장 법안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난 세기 초에 덴마크의 육군대장 프리츠 홀름이 각국에 다음과 같은 법률이 있다면 지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쟁이 터질 경우 10시간 안에 다음 순번에 따라 최전선에 일개 병사로 파견된다. 첫째로 국가원수, 두 번째는 그 남자의 친족, 세 번째는 총리, 국무위원, 각 부처 차관. 네 번째는 국회의원. 다만 전쟁에 반대한 의원은 제외. 다섯 번째 전쟁에 반대하지 않은 종교계지도자들. 전쟁은 국가 권력자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면서 일으키는 것이라고 홀름은 생각했다. 따라서 맨 먼저 권력자들부터 희생되는 시스템을 만들면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한승동 옮김, 돌베개, 34)

 

 

다시 정리하면, 중국과 같은 주변국들을 무책임하게 비난하고 자극하여 국가의 안보에 위협을 유발하는 정치인들의 명단을 여기 전쟁절멸보장 법안의 첫 번째와 네 번째 사이에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구 소련(스탈린)과 나치(히틀러) 시대의 유럽 역사를 다룬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글항아리, 함규진 옮김, 2021)을 읽을 때 느꼈던 부분이지만, 독일과 소련 사이에 있는 여러 국가들은 전쟁 시에 양쪽 진영 모두에 큰 고통과 희생을 겪어야 했다.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등등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 지난 세기에 큰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 특히 스탈린 시절 소련은 공업화를 추진하고 농업 집단화를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스탈린이 유럽의 곡창지대로 여겨졌던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을 수탈한 것이 문제를 야기했다.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대기근 홀로도모르(Holodomor)'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기근의 참상은 너무나 끔찍하여 여기에 옮기지 않는다. 관련 내용은 피에 젖은 땅홀로도모르 리포트: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를 참조할 수 있겠다.

 

언론에서는 러시아 침공 소식을 전한 다음 증시 하락기사를 내보냈다. 아마도 국내의 많은 투자자들이 우려를 하고 궁금해 할 것이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은 주가 폭락만큼의 충격보다 못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황현산 선생의 언급처럼 장소와 물질에 관계를 맺으며 시간을 통해 몸에 기억된 흔적들이 외부기억 장치들에 연결되어 쉽게 휘발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몸에 세상과 사랑을 나누었던 내력과 관계의 흔적이 남지 않을 때, 우리는 상상력마저 잃게 된다고 선생은 우려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 몸에 남게 되는 기억이 우리의 정체성을, 그리고 윤리와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상상력을 마련해주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뉴스 영상을 보니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새롭게 주목해보는 것은 전쟁이 더 확대 될 경우, 우크라이나 난민이 적어도 500만 명은 발생할 것이라는 뉴스보도였다. 그러니까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이들이 하루아침에난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상상력이 필요한 때는 바로 이 지점이기도 하다. 막연한 전쟁의 공포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상의 세계에 나를 집어넣는 능력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상상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 프랑스가 국가를 위해 일할 수재들을 교육시키고자 국가 최고의 기관에 보내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귀족주의,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문학적/시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들이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저
난다 | 2013년 06월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다카하시 데쓰야 저/한승동 역
돌베개 | 2013년 09월

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 저/함규진 역
글항아리 | 2021년 03월

홀로도모르 리포트 : 우크라이나 대기근 최초 보도

가레스 존스 저
지구라트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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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사》 (문학동네, 2021) 출간기념전시를 다녀와서(후기) | 기본 카테고리 2022-02-2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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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의 뿌리를 찾아서

- 박주석의 한국사진사출간기념전시를 다녀와서

 

 

작년(2021)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한국사진사를 기념하여 마련된 전시 ()에서 ()으로에 다녀왔다. 전시장에는 한국사진을 개척했던 사진가 22명의 사진 5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사진들은 한국사진사 연구를 처음 개척했던 고 최인진 선생(1941-2016)이 수집한 800여 점의 프린트에 이번에 출간된 한국사진사의 저자 박주석 교수(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 대학원 교수)가 수집한 700여 점의 빈티지 및 오리지널 프린트를 더한 컬렉션에서 선별한 사진 전시다. 오늘 페이퍼는 도서 소개와 더불어 국내에서도 실제로 보기 힘든 사진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전시에 다녀온 후기를 겸해서 작성하게 되었다.

 

현재 서울의 강남에 있는 전시관 <언주라운드>에서 진행중인 전시는 이달 2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후 광주에 있는 <갤러리 혜윰>(03.05-03.25)과 대구의 <아트스페이스 루모스>(04.02-05.01)에서 전시된 다음, 미주 순회전시가 기획되어 있다. 전시장 담당 큐레이터분이 직접 말씀해주신 바에 따르면,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 일부는 순회전시에 포함되어 있어서 당분간(2년 정도)은 국내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사진사에 소개된 사진 중 일부가 전시되어 있지만, 이번에 전시되는 작가들의 빈티지 프린트, 오리지널 프린트는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귀한 사진들이다. 그러므로 사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방문해보시기를.

 


        전시회 ()에서 ()으로」 포스터(왼쪽)와 작년(2021)에 출간된한국사진사표지(오른쪽)

 

 

책의 저자인 박주석 교수는 연구자로서 사진은 이미 포토그라피()를 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진()의 문제이다.”라고 바라보며, 그러므로 오늘날의 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사진을 감상하면서 이 두 글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내게 ()’의 문제는 기술적인 조건과 형식이 답하는 문제다. 카메라, 렌즈, 기본적인 원리 혹은 시대성 등등을 포함한 가시적이고 객관적인 조건들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의 문제는 ()’의 문제와 모종의 연관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도 보다 비가시적이고 주관적인 조건들을 포함한다. 이를테면 사진가의 해석과 관점, 의도와 같은 것들이다. 사진가의 의도는 기술적으로 ()’를 구현하기 위한 선택에 개입한다고 볼 수 있겠다. 각종 특수인화 기법들과 사진가의 의도에 따른 도구의 선택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또한 이 의도에는 인화지의 유형과 종류, 프린트 방식과 크기 등의 선택 과정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 문제에는 무엇보다 사진가의 철학이 담긴 해석과 의도가 근간을 이룬다고 생각된다.

 

 

사진을 전공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른바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진 사진 활동 기록은 1928년 정도부터 라고 한다. ‘조선포토싸롱이라는 공모전 형식의 사진 대회가 생겨난 것이 이 때부터이며, 이 때부터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사진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진가 문치장의 이력처럼 1920년에 조선 총독부 사진과 조수로 일본인들에게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정황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들이 사진술을 습득한 후 20년대 후반부터 보다 활발하고 능숙하게 사진 활동을 전개해나가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 전시에 선보인 사진들도 1929년에 촬영된 정해창의 사진으로 전시회의 포문을 열고 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사진전람회를 개최한 사진가다. 작가 소개 정보란을 보니 일본 유학 시절 독일어를 공부하고, 서양화를 배웠으며, 동경예술사진학교 연구실에서 사진화학과 피그먼트 인화법을 연구하며 사진가의 길로 들었다고 한다. 그림을 공부한 사진가라서 그런지 정해창의 사진에는 전통적인 회화의 특징적인 구도와 양식이 반영된 근대 사진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사진이 회화와 구별되는 지점을 치열하게 고민했을 사진 선구자의 방황과 열정이 느껴진다. 특히 정해창의 사진 몇 점은 사진가 구본창이 재인화 작업을 하여 선보인 작업들이다. 아마도 유리 건판으로 작업했을 정해창의 사진 인화물이 이제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당시에 작업했던 인화물(주로 RC인화지로 작업)이 현재까지 남아있지 않아서일 것이다.(인화지 관련 정보는 아래 추가 설명 참조)

 

 

 정해창, 여인의 초상(1929), 왼쪽/ 인형과 오브제(1934), 오른쪽, 두 사진 모두 구본창 인화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한국 사진의 역사가 비록 일제 강점기에 태동했지만 세계 사진사의 역사에서 크게 뒤쳐져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태동한 한국 사진의 역사는 1938년 정도 까지는 국내의 사진 동호회(구락부) 활동이 꽤나 활발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했던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동아일보의 <일장기말소사건> 이후부터는 국내 사진활동에도 큰 제약을 받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 사건을 주도했던 사진가가 동아일보의 사진과정으로 있었던 신낙균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전시회 포스터로 사용된 무용가 최승희의 사진을 비롯하여 세련미가 느껴지는 자화상 사진 세 점이 선보이고 있다. 전시회 소개자료의 작가 소개 정보를 참조하면, 신낙균은 무엇보다 국내 최초의 사진학자이자 근대 사진교육의 기초를 마련한 교육자였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1927년에 한국인 최초로 일본 동경사진전문학교에서 사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졸업하고, YMCA의 사진과 교수로 처음 부임하여 후학을 양성했다고 한다.

 


신낙균의 세련된 자화상(1927), 왼쪽 /  임응식의 대표 사진, ‘구직(求職)’(1954), 오른쪽

 

한국의 사진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일제의 영향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 것은 1942년에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제가 전시에 사진 찍는 일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한국사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아마추어를 포함한 사진활동은 한 번 이상의 소강상태를 겪는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 계기가 태평양 전쟁이었겠고, 두 번째는 물론 한국전쟁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40년대 사진 몇 점이 보이지만, 뚜렷한 개성을 지닌 리얼리즘 사진은 한국전쟁 전후에 두드러지는 것 같다. 전시회 소개 자료에는 생활주의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사진가 임응식을 언급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구직(求職)>(1954) 사진도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선보이지 않았지만 이 리얼리즘사진의 맥을 있는 사진가로는 사진가 정범태와 최민식으로 맥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사진 전공한 친구는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애(humanity)가 잘 느껴지는 정범태 작가의 사진도 볼 수 있었으면 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선정되지 않았나보다.

 

 

개인적으로는 사진가 이형록의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는데, 책이나 전시회에서 보면 금방 어떤 사진의 유형인지 알 수 있겠다. 그의 사진은 앞서 언급한 임응식이나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삶을 주제로 작업한 임석제리얼리즘사진들과는 조금 다르게 조형성이 강조된 사진들이었다. 내 취향에 가장 가까웠던 이형록의 사진은 아침 시장의 모습을 담은 작품(1955)이다. 어렸을 적에 전통시장 근처에서 살아서 그런지 그 사진을 봤을 때 털털거리며 연기를 내뿜으며 배추를 가득 실은 트럭이 떠올랐다. 또 비가 오지 않아도 언제나 뜯어낸 무나 배추 잎이 섞여 질퍽한 진흙탕이었던 시장 바닥이 생각났다. 인물의 검은 실루엣이 프레임을 양분하며 쓰레기를 태우기 위해 손잡이 달린 양동이(대개는 불을 떼기 위해 양동이 주변으로 구멍을 뚫는다)를 흔들어 불을 붙이는 듯한 장면이 포착되어 있는 사진이다. 질퍽하고 싸한 재래 시장의 아침에 불을 제대로 붙이려고 흔드는 사내와 화면을 가로지르는 흰 색 연기의 대비가 강렬한 사진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렇게 조형성이 강조된 사진을 좋아하는 것 같다(예전엔 그다지 생각을 안했는데 말이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 중에서 조형성에 주목한 사진가는 이상규, 김행오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이형록 시장의 아침’(1957), 왼쪽/ ‘어촌’(1958), 오른쪽

 

이형록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은 그가 앞서 언급한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 임응식1935년에 강릉 우체국 직원으로 부임했을 때 서로 알게 되어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일화다. 한국 사진의 선구자들이 서로 만나 각각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한 명은 리얼리즘 계열의 사진을, 다른 한 명은 조형주의 사진을 개척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내가 이형록의 전시회 사진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그의 섬세한 조형 감각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아침 시장사진 외에 머리에 물건을 이고, 포대기에 아이를 엎고 배가 엎어진 모래사장을 지나가는 사진(1958)이나 공사 현장의 노동자들을 찍은 사진(1955)이 보여주는 조형 및 균형 감각은 매우 놀라웠다. 내가 보기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조형성과 비견되는 사진들이라 생각한다. 그의 사진이 궁금한 분들은 책이나 이번 전시회 사진들을 참고해보시기 바란다.

 


              현일영 손목시계’, 왼쪽/ 박필호 무제(손 위의 시계)’(1937), 오른쪽

 

전시회 안내 자료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이번에 공개된 사진 중 사진가 현일영의 사진들이 또 다른 사진들과 맥이 다른 것 같아 흥미롭게 주목해본다. 자료에는 작가주의 사진가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현일영의 사진에는 간결한 오브제를 주시하며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가져오는 사진들인 것으로 보인다. 손에 찬 손목시계,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달력, 타고 남은 담뱃재가 쌓인 재떨이, 부식되는 사과와 같은 대상들을 응시한 사진들이다. 앞서 언급한 이형록의 사진들처럼 외부세계를 향해 관찰하며 조형성을 가미하는 시선과는 분명히 다르다. 현일영의 사진들은 사진가의 시선이 사물을 응시하지만 결국은 반사되어 사진가의 내부로, 그리고 이어서 관람자인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사진 같다. 그러므로 그의 시선은 분명히 내부를 향하고 있었다. 사진가가 관찰하고 응시하는 대상에서 결국은 나의 기억과 감성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사진적인 사진이라고 말하곤 하는 그런 사진들이다. 현일영의 사진과 맥을 같이 하는 사진으로는 손바닥 위의 회중시계를 찍은 사진가 박필호의 사진을 꼽을 수 있겠다. 현일영손목시계사진과 비슷한 형태의 오브제를 찍었다는 점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자 기호로서 오브제를 이용하는 점,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형록의 사진들과는 분명히 다른 맥락을 이루지만 현일영의 사진들은 오히려 더 현대적인 감각을 일깨워 준다. 사물에 사진가의 내면을 비추고 있기에 오히려 한편의 짧은 시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이형록의 사진들은 외부 세계를 응시하면서 기록하기에 소설 속의 이야기(서사) 한 장면이 담겨 있을 것만 같다.

 


               문치장 설빔 차림의 아이들’(1937), 왼쪽/ 전시장 입구의 안내문, 오른쪽

 

 

현일영의 사진 옆에 이어지는 사진 중에 또 나의 눈길을 끌었던 사진은 1933년에 촬영된 항공사진이었다. 동아일보의 사진기자였던 문치장이 프레임의 한쪽 끝에 보이는 복엽기를 타고 서울 상공을 날았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 중에는 서울 상공에서 찍은 항공사진이 있다. 사진의 한쪽 프레임으로 보이는 복엽기의 날개 사이로 동아일보 사옥이 촬영되었다. 전시장에는 대형 카메라를 조작하는 사진가의 자화상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미 30년대에 다양한 시각을 검토하고 실험하고자 했던 시도들, 그리고 기술적 조건들을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 위에 제시한 사진은 항공사진이 아닌 그의 설빔 입은 아이들’(1937) 사진이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진 나라의 유적 앞에 나있는 거리 한 가운데에서, 설빔을 입은 모습을 찍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사진가가 느꼈을 법한 감정을 조금은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진은 그렇게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배운 것이 있다면, 전시 소개 자료에 나온 사진 비평가 박평종의 도움글이다. 그는 빈티지 프린트로 보는 한국사진의 작은 역사라는 글에서 빈티지 프린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어준다. 우리가 흔히 빈티지 감성’, ‘빈티지 효과라는 상투어에서 많이 보듯이 낡고 오래된 무언가를 연상하게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에서 빈티지 프린트라고 하면 필름 원본(혹은 유리 건판)이 사라진 유일무이한 인화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매번 인화할 때마다 같은 작품은 존재하지 않지만, 더 이상 인화물을 만들어낼 수 없는 작품을 의미한다. 따라서 박평종이 언급한 것처럼 빈티지 프린트는 희소성이 높고 컬렉터들이 주목하고 있기에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에 더하여 비평가는 빈치지의 비교 불가능한 가치와 의미를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빈티지 프린트가 생산되었던 당대의 정확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는 것. 바로 빈티지 프린트가 갖는 역사적 가치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는 시대와 관계 맺고 있던 작가의 개입, 이를 테면 사진가가 네거티브 원판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해석이라면 보다 구체적으로 앞서 언급한 인화지들의 종류, 작품의 크기(혹은 카메라 판형), 프린트 방식과 기법 등에 관해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선택을 포함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진의 역사에서 빈티지 프린트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에는 네거티브 원본만 있으면 되기에 인화물에 대한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또 보관성이 좋은 FB인화지보다 보다 일찍 변색이 되곤 하는 RC인화지에 작업을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의의는 한국사진사의 출간 기념 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박평종의 말을 빌리면, 고 최인진 선생과 박주석 교수가 그동안 수집, 정리, 보존해온 빈티지 사진들을 통해 한국사진의 역사를 복원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 중 일부는 꾸준히 작업하고 사진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글을 써온 사진가 구본창, 주명덕이 다시 작업한 인화물(정해창, 현일영의 사진들)이 있어, 빈티지 사진과 한국 사진사 정리와 보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계기이기도 했다. 특히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말에 이르는 초기 한국 사진의 선구자들의 활동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피식민지의 땅에서 태어나 당당히 일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체계적으로 사진을 배우고 다양한 생각과 시도를 구현해보고자 했다. 이들은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 지식인들이었다. 아울러 지금의 시선에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든 형식들이 이들의 손에서 시도되었고 실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단지 편리해진 디지털 카메라로 이들 선구자들이 고민하고 시도했던 작업들을 반복해보는 정도에 불과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장비에 접근성이 높아진 지금과 달리 100년 전의 한국 사진은 진지한 지식인들이 접근할 수 있었던 예술분야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나는 서양의 역사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함을 배운다. 그런 다음에야 후학들은 선구자들이 고민과 실험을 통해 내놓은 결과를 기반으로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읽은 불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 황현산의 글 한 대목이 여기에 어울릴 듯하다.

 

 

아직도 나는 그 섬의 이런저런 해안 자락을, 이 마을 저 마을의 고샅들을, 동내에 함께 살던 어른들의 이름과 성품까지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표준이 여전히 그 섬에 있다. 나는 지금도 그 섬으로 세상을 잰다.

(밤이 선생이다중에 실린 글 고향의 잣대(2001), 난다, 2013, 292)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을 신안군에 속한 작은 섬에서 보냈던 황현산은 어린 시절 몸에 각인된 세계가 이후의 세계에 대한 잣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말마따나 지난 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포스트모던의 담론이 기존의 잣대를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럼에도우리에게는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나름의 잣대는 필요하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는 이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국제 외교나 통상에서 그때그때마다 현행의 잣대에만 매달리다 보면 우리 같은 처지의 국가들은 늘 한 걸음 뒤지게 마련이다. 그 잣대의 향방을 예견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파악하고 그 고향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구미 제국을 공부할 때, 그 고대와 중세를 더듬어 그 잔뿌리까지 남김없이 캐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도 하겠다.”(294)

 

 

따라서 우리 사진의 역사에서도 캐내야 하는 대상은 서구의 역사와 문물만이 아니다. ‘내 안의 타자인 우리 선구자들의 기억과 이들이 남긴 자료들을 정리하고 보존하며 그들의 작업을 면밀히 파악하는 일이 곧 잔뿌리가지 캐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사진사을 또 하나의 토대삼아 한국 사진의 작은 역사를 우리 것으로 이어가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인화지 관련 추가 설명]

1920-30년대 당시의 인화물은 섬유 재질로 된 화이버 베이스(FB) 인화지보다는 주로 감광성 수지를 입힌 RC(Rasin-Coated) 인화지에 인화했기 때문일 텐데, RC인화지가 작업에 좀 더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한 반면, 계조나 암부 묘사 등의 표현력에 있어서 FB인화지보다 떨어지고 보관성이 떨어진다. 반면 FB 인화지는 작업이 좀 더 까다롭고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표현력이 좋고 무엇보다 보관만 잘 하면 100년 이상은 거뜬히 갈 수 있는 보관성이 좋은 인화지다.

 

 

한국사진사

박주석 저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한국사진사 1631-1945

최인진
눈빛 | 1999년 04월

임응식 Limb Eung Sik

지상현 저/임응식 사진
열화당 | 2013년 01월

부산에서 서울로 1946-1960

임응식 저
이안북스(IANNBOOKS) | 2020년 06월

이형록 사진집

이형록 저
눈빛 | 2009년 12월

한국사진과 리얼리즘

정범태,이형록,안종칠,손규문,김한용 공저
눈빛 | 2002년 11월

한국사진의 선구자들

박평종 저
눈빛 | 2007년 04월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저
난다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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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의 참모습 | 기본 카테고리 2022-01-30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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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글쓰기

모리스 블랑쇼 저/박준상 역
그린비 | 2012년 12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글을 남기는 것,

텍스트 '바깥'의 모호함이 바로 '카오스', '재난'이다.

 

그 가운데 언어를 붙드는 행위, 텍스트와 씨름하기.

이 텍스트와 나와의 상호작용이 곧 '내 안의 어린 아이',

'결코 죽지 않는 생명력'을 끊임없이 살해하는 행위가 아닐까.

이건 재난에 대한 부단한 긍정, 깨어있기다.

 

그러므로 언어를 붙드는 자, 작가는 고통 속에서 결코 잠들 수 없는자,

"한낮에 불면증에 걸린 자."(204)다.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의 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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