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1년에 100권읽기도전
http://blog.yes24.com/pjywin80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박공주
1년에 100권 읽기에 도전하면서 리뷰를 담아가는 블로그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15·16·17기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3,078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스크랩(읽고싶은책/갖고싶은것)
맘에 닿은 구절(with 글그램)
좋은글/관심글/낙서장
일.고.십.생각나눔
서평단선정
일상
파워문화블로그 미션
감사한 애드온
독서습관
이번 주 읽을 책
나의 리뷰
감사히 읽은 책-서평단
아이와 함께 한 책
인연 닿은 책-문학
인연 닿은 책-일.고.십(고전)
인연 닿은 책-글쓰기
인연 닿은 책-사회/과학분야
인연 닿은 책-힐링/자기계발
인연 닿은 책-일어원서
인연 닿은 책-실용서
인연 닿은 책-육아
영화리뷰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수수께끼초등어휘초등말놀이맛있는공부 수수께끼수수께끼동화초등어휘맛있는공부말놀이 일고십1주년 예스인들 예스노예 걱정마잘될거야 일년에고전십이권만 아는것으로부터의자유 원라인드로잉북한선그리기김기린북핀지혜정원 흥칫뿡
2021 / 0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때로는 엮이면 피.. 
'엮이면 피곤해지는 사람들'이라니, .. 
리뷰 잘읽고갑니다. 9월도 건강하고 .. 
제목도 기획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네요... 
엑셀을 제대로 사용하면 여러 가지 편.. 
새로운 글
오늘 57 | 전체 137702
2007-01-19 개설

일.고.십.생각나눔
9월 일고십 생각나눔 | 일.고.십.생각나눔 2019-10-14 08:56
http://blog.yes24.com/document/1169782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1.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되는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다행히 독일은 지속적으로 그 사실들에 대해 사과하고, 잊지 않고 있지요. 그 중 가장 많은 회자 되는 부분은 바로 유대인 학살입니다.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들이 많이 전해지면서 더욱 많은 공분을 사게 되었지요.

그런 유대인들은 왜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만 있었을까요? 물론 많은 이들이 탈출을 감행하기도 하고, 반기를 드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아우슈비츠도 2500명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어째서 수용적인 태도로 그런 부당한 대우를, 심지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그 상황을 묵묵히 감내했던 것일까요?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서 잘 지내는 것 혹은 삶을 내려놓는 것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있어 제일 두려운 것, 제일 아픈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하는 질문이기에 말이다.

아우슈비츠에 갇혀있는 것도 아닌데 조금만 목소리를 내도 바꿀 수 있는 상황임에도 침묵하고 살아가기를 반복하는 나로서는 이 질문이 참 무겁다.

정의롭고 현명한 친구에게 넌 3.1 운동 즈음 태어났으면 태극기 그리고 나눠주고 했을꺼라고 하자, 친구는 영화 '말모이'를 보면서 자신은 절대 못했을 것 같다고 찍소리도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아우슈비츠의 그들도 유대인들도 어쩌면 너무나 두려워서 빅터플랭크의 말처럼  그 상황에서 죽는 건 쉬운 일이니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차선이고 그들이 제일 힘껏 저항할 수 있던 일이 바로 '살아남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 상황에서 살아남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그들의 최선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살아남아서 사랑하는 가족, 고국을 되찾는 일. 그게 목표는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실제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런 목표를 잃었을 때 시름시름 앓다 죽는 이들이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살아남아 줘서 감사하다고, 그래서 그 잔혹한 역사를 기록해줘서 감사하다고. 다시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메시지를..너무나도 힘겨운 희생으로 남겨주셔서 감사하다고 그 시간을 견뎌내신 분들께 인사를 전하고 싶다.

 

2.     저자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누구든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알면 쉽게 그 삶을 끝내지 않으며, 희망을 갖고 살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       수감자의 내면적 자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심리적, 육체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감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정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126)

-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180)

 

특히 그 삶의 의미는 모든 생애와 사람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형태여야 한다고도 강조하지요. 현재 당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떤 구체적인 의미가 당신을 여전히 살아 있게 하나요? 혹은, 당신은 살아 있습니까?

이 질문 역시 나에게는 힘든 질문 같아서 미루다 이제야 답을 하게 된다. 솔직히 지금의 나는.. 죽어있다.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 외에는 내가 아닌 다른 곳으로 모든 신경들이 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지금은 그저 살아내고 있는 시간이다. 정말 말 그대로 차라리 삶을 버리는 게 제일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평온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기엔 소중한 존재들이 있어 또 살아가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뭐그리 힘드냐고 할지도 모르는 상황들이지만, 내게는 힘겨운 시간이다. 

그래도 숨은 쉬라고 좋은 사람들, 이렇게 좋은 책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빨리 그저 살아가는 삶이 아닌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나를 가다듬어야 하겠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3)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5        
[스크랩] 2019년 9월 도서 :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 일.고.십.생각나눔 2019-10-14 08:38
http://blog.yes24.com/document/1169776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평범한 독후감상문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저/이시형 역
청아출판사 | 2005년 08월

 

 

 

1.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되는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다행히 독일은 지속적으로 그 사실들에 대해 사과하고, 잊지 않고 있지요. 그 중 가장 많은 회자 되는 부분은 바로 유대인 학살입니다.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들이 많이 전해지면서 더욱 많은 공분을 사게 되었지요.

그런 유대인들은 왜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만 있었을까요? 물론 많은 이들이 탈출을 감행하기도 하고, 반기를 드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아우슈비츠도 2500명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어째서 수용적인 태도로 그런 부당한 대우를, 심지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그 상황을 묵묵히 감내했던 것일까요?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서 잘 지내는 것 혹은 삶을 내려놓는 것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2.     저자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누구든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알면 쉽게 그 삶을 끝내지 않으며, 희망을 갖고 살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       수감자의 내면적 자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심리적, 육체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감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정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126)

-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180)

특히 그 삶의 의미는 모든 생애와 사람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형태여야 한다고도 강조하지요. 현재 당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떤 구체적인 의미가 당신을 여전히 살아 있게 하나요? 혹은, 당신은 살아 있습니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        
8월 생각나눔 | 일.고.십.생각나눔 2019-09-04 14:09
http://blog.yes24.com/document/1160049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1. 선조는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일본군의 소식을 듣자마자 피란을 고민한다. 한양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중요하다는 종묘사직을 다 두고 떠났다. 그러면서 나라를 지키고, 그 성을 지킬 책임을 다른 장수들에게 떠맡긴다. 왕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을 뜻하지 않게 짊어지게 된 이들은 그렇게도 쉽게 내팽겨치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란을 떠난 선조에게 있는가, 아니면 어쨌든 왕의 명령을 받은 장수들에게 있는가?

      

징비록을 읽으며 제일 많이 떠오른 단어 '총체적 난국' .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이도 있기는 하지만, 총체적 난국인지라 일부의 힘으로는 나라를 지키기란 어려워 보였다 

선조는 피란을 나서기는 했지만, 단순히 난을 피한 것이지 마땅한 계획도 없어 보였고 말이다.

   

이런 답답함 때문에 류성룡이 <징비록>을 남겼으리라.

후세에는 이런 '총체적 난국'이 다시 없기를 바랐기에.

 

<징비록>의 녹후 잡기에 보면, 큰 일이 벌어질 징조들이 있었으나 이를 대비하지 못했고, 적들이 물러나게 된 것은 정말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조의 병법을 들어 설명하기를, 군사를 거느리고 전투에 임할 때 중요한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지형 이용, 둘째는 군사들의 기강, 셋째는 좋은 무기라고 한다.

적들이 전투도 익숙하고 무기도 좋았지만 지형에는 밝지 않았기에 이를 이용했다면 더 빨리 적을 물리쳤을텐데, 우리쪽은 아무런 준비가 없었으니 도망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류성룡이 백성들에게 "나라에서 평소에 그대들을 기르는 까달은 오늘 같은 때에 쓰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 도망치다니 무슨 짓이란 말이냐. 지금 명나라의 구원병이 도착한즉 이때야말로 모두가 나서 공을 세울 시기이다.p.114"  이게 백성들에게 할 말이냐며 뜨악하는 마음이 컸지만, 그게 그 시대의 통념이었겠다 싶었다. 그래서, 선조도 내 백성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아닌, 내가 살아야 나라가 있고 그래야 백성도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그 결과 선조는 비겁하고 무능한 왕으로 역사에 남았다. <역사의 쓸모>와 연결이 되는 부분이었다. 선조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지라도, 최선을 다했던 선택이 아니었기에 그리 기록되고 기억될 수 밖에 없었다. 도망가기 급급했던 장수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운 좋게 지위도 더 올라갔다 한들, 역사에서 그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어쩔 수 없었어라는 핑계 대신, 최선일까?, 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내가 당장은 손해보더라도 더 좋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2. 명의 속국이었던 조선. 그리고 왜가 쳐들어오자마자 명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명이 하는 대로 해야 했다. 그리고 어떠한 지휘권도 통치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명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했으며, 심지어 왜와 협상을 할 때도 조선은 배제시킨다. 크게 유린당한 왜에게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게 주체성, 주도권은 타국에게 넘겨졌다. 그 나라에는 주체성이나 자주권이 있는가? 더 중요하게, 현재의 우리들은 자신의 주도권을 잘 지니고 있는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았는가?

 

 

류승룡 일행이 명나라 제국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신세가 처량해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이 나왔다. 그 수모가 한이 되어 이리 책도 썼을 것인데, 그리 멀지 않은 훗날 나라를 다른 나라에 넘겨주고, 독립해서도 이념으로 인해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우리끼리 전쟁을 하고. 또 세월이 흘러 또 강대국 사이에서 갈 곳을 정하지 못하는.. 이런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역사란 그런 것이야, 원래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며 체념하고픈 심정까지 든다.

 

하지만, 중국 옆 작게 위치한 이 나라가 여전히 고유의 말과 글을 쓰고 있다는 점. 독립된 나라라는 점은 정말 대단하다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 것을 잃었을 때의 비통함과 억울함을 후세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고 목숨 걸고 지킨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렵게 지켜낸 우리 글과 말도 제대로 지금 지키고 있는지, 아니 지켜야한다는 의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급성장을 위해서 다른 나라를 롤모델로 삼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정작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야할 것들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라에 힘이 없는데 주도권을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 다른 나라에 의존하기만 해서는 이 급변하는 정세에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만의 기술과 힘을 길러야할 때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질문에 답하며 들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6        
[스크랩] 2019년 8월 도서 : 징비록 - 유성룡 | 일.고.십.생각나눔 2019-09-04 12:10
http://blog.yes24.com/document/1160024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평범한 독후감상문

 

징비록

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징비록

유성룡 저/김기택 역/임홍빈 해설/이부록 그림
알마 | 2015년 02월

 

 

 

1.     선조는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일본군의 소식을 듣자마자 피란을 고민한다. 한양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중요하다는 종묘사직을 다 두고 떠났다. 그러면서 나라를 지키고, 그 성을 지킬 책임을 다른 장수들에게 떠맡긴다. 왕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을 뜻하지 않게 짊어지게 된 이들은 그렇게도 쉽게 내팽겨치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란을 떠난 선조에게 있는가, 아니면 어쨌든 왕의 명령을 받은 장수들에게 있는가?

 

 

2.     명의 속국이었던 조선. 그리고 왜가 쳐들어오자마자 명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명이 하는 대로 해야 했다. 그리고 어떠한 지휘권도 통치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명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했으며, 심지어 왜와 협상을 할 때도 조선은 배제시킨다. 크게 유린당한 왜에게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게 주체성, 주도권은 타국에게 넘겨졌다. 그 나라에는 주체성이나 자주권이 있는가? 더 중요하게, 현재의 우리들은 자신의 주도권을 잘 지니고 있는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았는가?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3        
일고십 7월 질문 답 [이오덕 우리글 바로쓰기] | 일.고.십.생각나눔 2019-08-21 10:38
http://blog.yes24.com/document/1156177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1. 이런 일방 통행은 받아들일만한가요? 말이 글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글에서 나온 말은 제대로 된 말이라고 할 수 없을까요?

 

내 경험상 읽기 좋은 글은 일단 글쓴이의 음성이 들리는 듯한, 마치 말을 글로 옮긴 듯한 글이었다. 유시민 작가님의 책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말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생각이 말이되고 그 말이 글이 되고, 또 글이 말이 되고 서로 영향을 받으며 다시 만들어지고를 반복하기 때문에 말과 글은 양분하거나 어떤 것이 먼저라고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이 경계한 것은 '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한다. 글로 나타내다 보면 생각이 정제가 되고 정제가 되면 그것이 결국 날 것이 아니라서 본질과 달라질 수 있기에 우선 말이 글이 되어야한다고 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특히 우리의 문자가 없던 시기를 생각해 본다면, 번역된 책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 글이 되는 과정에서 왜곡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 글을 읽었을 때 말이 왜곡되고 하는 왜곡된 생각을 하게 될 우려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글을 통해 내 안에는 없었던 영역이 확장되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 그게 생각으로 바뀌고 말로 나올 수 있다. 그렇기에 두 영역의 어디가 선후인가보다 말을 하고 듣고, 글을 쓰고 읽는 과정에서 제대로 주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이 질문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말, 좋은 글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마무리해 본다.

2.     저자는 90년대 초반에 돌아가셨습니다. 2019년 현재의 모습을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농민은 많이 줄었고, 말글을 파괴하는 것들이 더욱더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때 글쓰기는 유용한 방법이 될까요? 여전히 글쓰기는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는 좋은 수단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이 질문 역시 1번과 맞닿아 있다고 여겨진다. 글쓰기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것 그대로의 글이 남아야하는데, 망가진 모습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글쓰기, 정답을 맞추기 위한 글쓰기와 같이 글쓰기에 너무 많은 목적이 들어가 개개인이 하고 싶은 '날 것'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글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기에 우리말과 글이 글로 남겨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우리 본연의 말이고 글일지에 대한 생각도 필요하다 여겨진다. 어떤 것을 지키고 어떤 것을 남겨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일단 있다고 본다.

우리 고유의 말을 남기고 보존하는 것은 언어학자의 일처럼 여겨지는 느낌이다. 우리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도하지 않아도 생겨나고 살아나는 말과 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용할지에 대한 기준을 꼭 세워할 것이다. 

그래서 이 이오덕 선생님의 책이 의미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어디서 온 말인지 한 번 생각해 보고 꼭 우리말을 두고 다른 말로 표현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 말이 우리말에 맞는 표현인가를 한 번은 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을 읽고 또 이렇게 질문에 답을 하고 생각을 나눠가는 것이 결국은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좋은 수단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4        
1 2 3 4 5 6 7 8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