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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라오스+16] 루앙프라방,메콩강과 칸강 사이 | 2015 라오스 2015-09-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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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이 오는 것처럼 라오스에서는 딱밧도 그렇다. 푸석푸석한 얼굴로 간신히 세수만 하고는 긴 옷을 챙겨 입고 쌀쌀한 거리로 나선다. 동트기 전의 감청색 하늘과 어둠이 가려놓은 거리의 실루엣이 이제는 포근해 보인다. 미명의 거리를 밝히는 것은 새벽시장의 불빛이다. 찰밥을 파는 노점의 흔들리는 전등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장 근처에는 여행자들이 쭈그리고 앉아 딱밧 시간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어제의 그 노점에서 찰밥을 사서 그 앞 돗자리에 놓고 스님들을 기다린다. 라오스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든 딱밧이 궁금하다. 참여를 하든지 구경을 하든지 여행자들이 그 주위에 항상 바글거린다. 가난한 나라에 외국인 여행자들이 몰리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긴 해도, 형식적인 관광을 부추기는 영혼 없는 세레모니는 결코 아니다. 라오스인들의 일상이고 그들만의 문화이지만, 여행자들이 끼어들어 카메라 세례를 퍼붓거나 호기심에 가득한 눈초리로 구경을 해도 담담히 수용하는 것이다.

  

 

스님들의 주황색 가사 행렬이 다가온다. 추위 때문에 두꺼운 방석을 깔고 덮은 백발의 할머니가 무릎위에 준비된 대나무 통의 뚜껑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 평생 동안 이런 아침을 맞이했을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매일 정성을 드리며 저물었을 한 인생 앞에서 경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지는 바쁜 하루가 일상인 곳에서 날아온 여행자의 눈에는,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는 일생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다. 

 

 


찰밥을 다 공양하고 일어서니 잠시 후 다른 행렬이 다가온다. 이미 채워진 바리때는 천으로 덮여있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한 손으로는 거리에 물을 부으면서 한 손으로는 합장의 제스쳐를 취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세세한 면모들이 눈에 띄고 있다.


  

먼발치서 보면 주황색 기차놀이 같기도 한 스님들의 행렬이 저편으로 사라진 거리에는 공양을 하던 사람들도 그것을 지켜보던 여행자들도 제 갈 길을 간다. 비로소 라오스의 평범한 아침이 시작된 것이다. 그 거리에 대여섯살 되어 보이는 꼬마 둘이 남아 있다. 빈 양동이를 들고 공양하는 사람들의 끝에 서 있던 이 아이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늘 그렇듯, 이 아이들이 빈 양동이는 라오스 사람들이 직접 채워주지 않는다. 방금 공양을 받은 스님들이 지나가면서 잊지 않고 바리때에서 방금 받은 음식을 꺼내 이 아이들의 빈 양동이에 넣어 준다. 오늘은 새벽시장으로 가지 않고 이 아이들을 따라가 본다. 코 묻은 꼬질꼬질한 얼굴과 꾀죄죄한 옷자락이 그들의 처지를 짐작하게 한다. 혼자 들 수 없을 만큼 음식이 가득찬 양동이를 둘이 들고 어딘가로 향한다.

 

거리를 두고 따라가 보니, 이른 시각이라 사람도 없는 메콩강변의 선착장이다. 미안하게도, 여행자는 아이들이 무엇을 먼저 먹을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어제 저녁이나 제대로 먹었을까 걱정되기에 당연히 찰밥이나 바나나를 먹을 줄 알았지만, 그들이 집어든 것은 아이답게도, 과자봉지다. 과자를 깨무는 조그만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하나 먹고 또 다른 과자봉지를 뜯는 고사리 손의 움직임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인다. 아름다운 라오스의 아침이건만, 물안개 피어난 메콩강처럼 눈가가 촉촉해진다. 이 꼬마들이나 그들의 양동이에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다. 저 아이들도 자라면 스님이 될 수 있으리라 위안을 하지만, 그 장면을 딱밧의 마지막 사진으로 담기가 미안하다. 애먼 메콩강의 새벽 사진을 한 장 찍는 것으로 애잔한 마음을 대신한다.

 

 

 

 


루앙프라방을 걷는 일은 소소한 즐거움이다. 일부러 사원에 들어가기도 한다. 사원은 지름길이면서도 그 고즈넉함을 만끽하게 하는 정원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 어려보이는 스님들의 생활이 궁금하기도 해서 기웃거리게도 된다. 예전에는 아들은 무조건 스님이 되었지만 요즘엔 부모가 부유한 스님은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집안이 넉넉하면 아들을 일부러 출가시키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집안형편이 어려우면서도 공부를 하고 싶은 소년들이 주로 스님이 된다고 들어서인지, 어린 스님들을 보면 괜히 더 애틋해진다.  
 

 

골목에서는 고기나 찰밥을 건조시키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다. 대도시라고는 하지만 공장하나 없는 이곳에서는 무엇을 말려도 먼지나 공해 걱정은 없다. 딱밧이 그렇듯, 여행자에겐 별 게 다 신기한 소품이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사는 방법일 뿐이기도 하다.


 

 

오늘 점심도 국수다. 전에 갔었던 가정집이 아니라 노점 같은 작은 가게에서 아주머니가 절대 일어나지 않고 앉아서 국수를 해준다. 양념이고 국수고 그릇이고 모든 것이 그녀가 손 뻗는 반경 안에 다 있다. 손님이 나가면 설거지는 뒤에 있는 남편의 몫이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라오스 전통치마를 입은 화장도 고운 아가씨가 오토바이를 끌고 와서 점심을 먹고, 서양인 여행자도 맛있다며 국수를 먹고 있다. 아주머니 앞에 앉아 주문하니 순대가게에서 주는 돼지 간이나 허파와 똑같은 삶을 고기를 썰어 국수에 넣어준다. 여기에 채소와 민트, 간장을 넣어 먹으면 된다. 음식을 만드는 아주머니와 모르는 사람들과 낮은 테이블에 앉아 눈길을 마주치며 후루룩 먹는 국수는 정말 맛이 좋다.


 

 

 

왕궁 앞 대로를 걸어 사람들 많은 메콩강변 말고 한적한 칸강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루앙프라방에서 닷새 째 날이라 웬만한 풍경이야 눈에 익었으니 아직 가보지 못한 칸 강 건너편으로 가는 것이다. 워낙 폭이 넓은 메콩강과는 달리 칸 강은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가 놓일 만큼 폭이 좁다. 다리를 건너려고 내려서니 작은 오두막에 앉았던 여자들이 통행료(?)를 내라고 한다. 조금 어이가 없어지려는 순간, 그녀들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니 역시 도네이션 읍소(?)다. 대나무로 만든 이 다리는 우기가 오면 무너진다고 한다. 그러면 다시 다리를 건설해야하는데 그 비용을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식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라오스가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 실감하는 대목이다.


 

강을 건넜을 뿐인데 이곳은 다른 세상이다. 프랑스풍의 건물, 국수가게와 베이커리, 기념품샵이 줄을 서던 강 저쪽은 마치 다른 나라라도 되는 듯, 강 건너편은 그냥 주택가다. 루앙프라방 오기 전에 늘 마주치던 작은 닭들이 아무 곳에서나 꼬꼬댁 거리며 산책을 한다. 건너오자마자 역시 사원이 하나 있다. 인적도 없는 사원을 기웃대다가 주황색 가사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스님들을 따라 걷는다.


 

 

 

길의 한 편은 벽돌로 지어진 큰 건물과 조경이 단장된 것으로 보아 관공서 건물인 것 같지만 맞은 편 거리는 그저 숲이기도 하고 나무로 지은 현지인들의 집이기도 하다. 할 일 없는 루앙프라방에서 가방을 메고 걷는 어린 스님들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걷는 게 무슨 큰일이나 되는 것 같다. 무료하리만큼 변화 없는 풍경이지만,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고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고 어찌된 영문인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서양인 여행자도 있다. 이 방향으로 가면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목적지 없는 걸음이라 멀게만 느껴진다. 



사십분쯤 그렇게 쉬다 걷다 하지만 스님들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결국은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어느 사원으로 심부름이라도 가는 것일까? 되돌아갈 길도 이만큼은 걸어야 하니 이쯤에서 돌아선다. 스님들의 뒷모습을 따라 무작정 걸었으니 천천히 걸으면 족히 한 시간을 다시 걸어야 한다.  





이번엔 목적지가 정해진 걸음이라 천천히 걷는 일은 마음 편한 산책이 된다. 인구밀도 희박한 가난한 나라의 옛 수도의 뒤안길을 걷는 것은 꽤 아늑한 기분이다. 오랫동안 걸어 다시 대나무 다리로 온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보내고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보니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이 다리가 우기의 불어난 강물을 버틸 리가 없다는 확신에 이른다. 아까 통행료 도네이션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을 되돌아 건너 강변의 레스토랑에 앉는다. 오랫동안 걸어서 피곤해진 다리를 쉬며 방금 건너온 칸강과 스님들을 따라 걷던 강 저편의 풍경을 바라본다. 이 하늘이 이어져 그 하늘일 텐데, 여기서는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거기에서는 왜 그리 빨리 지나가버릴까? 이런 저런 생각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걸었던 시간만큼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일어선다.


다시 왕궁 앞 대로를 천천히 걷는다. 오늘밤 루앙프라방을 떠나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시작될 야시장은 보지 못할 것이다. 숙소에 근처까지 가서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돌아가 아침에 맡겨놓은 배낭을 찾는다.


여행사에서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엔으로 떠나는 슬리핑 버스를 예약해두었다. 호텔에서 픽업해서 터미널까지 데려다주는 조건이다. 7시, 여행자들을 터미널로 태워다 줄 썽태우가 도착한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내려서 보니 운전석에서 내리는 여행자 둘은 서양인 노부부다. 그것만으로도 참 보기 좋은데, 각자 배낭을 메고 있기는 하지만 부인이 남편 곁에 착 달라붙어서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이분들 심상치 않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서 배낭을 내려놓고 버스를 기다리며 세심히 관찰을 해보니 남편이 거의 앞을 볼 수 없는 분이다. 그래서 부인이 옆에서 부축도 하고 일일이 상황설명도 하는 것이다. 족히 예순은 넘어 보이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배낭을 메고 라오스를 여행하는 것도 대단한데 거기에 한 사람은 볼 수 없는 장애까지 가지고 있다니... 어떤 사연이 있겠지만 그들의 용기에 마음속에서는 박수가 우러나온다.

 

그렇게 노부부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동안 "VVIP BUS"라고 명명된 라오스식 야간버스가 도착한다. 여행하며 야간 버스 많이 타봤지만 이런 모습의 버스는 또 처음이다. 침대칸으로 개조된 이층버스는 커텐 하나 없어 개인공간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층의 맨 앞자리라 다행이라는 위로를 하며 버스에 눕는다. 라오스에서 야간버스는 길이 워낙 험해서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도 버스가 움직이자 생각보다는 걱정이 줄어든다. 대형 2층버스에 외국인 여행자들을 대부분 태우고 떠나는 슬리핑버스는 좁은 산길의 깜깜한 도로에서 좀체 속도를 내지 않는다. 시속30km정도의 속도로 이리 출렁 저리 출렁 거리며 라오스의 산길을 더듬을 뿐이다. 어쩌다 앞에서 큰 차라도 오게 되면 서로 비키느라 시간이 그만큼 지체된다. 창밖을 봐도 이미 불빛이 사라진 길에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침낭을 꺼내서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잠들려고 애쓰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마음이 늙지 않는 것, 그 나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영혼은 육체 속에 갇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는 만큼만의 시간이 졸졸졸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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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라오스+15] 날마다 딱밧, 시장구경, 그리고 사원 풍경 | 2015 라오스 2015-08-2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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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의 또 하루가 밝는다. 어제 맥주 마시고 이야기하다 늦게 잠들었지만 오늘도 닭울음소리에 잠이 깬다. 딱밧을 하러 나가기 위해 일어나 세수를 한다. 루앙프라방에 온 이상, 딱밧은 매일 하고 싶다. 딱밧에 참여하는 기분이란, 진한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어촌 해변에서 매일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 선 느낌이다. 하루를 깨우는 의식, 경건함으로 시작되는 일상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오늘도 노점에서 대나무 통에 담아주는 찰밥을 놓고 스님들을 기다린다. 삼 일째 되니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생긴다. 무릎 꿇고 딱밧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지켜보는 여행자들은 여전히 많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서양인 여행자의 눈에는 거리에 앉아있는 내 모습도 라오스 사람처럼 보일까?


라오스 사람들의 하루가 정성스런 공양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라오스 스님들이 하루 동안 일용할 양식은 딱밧으로 충당된다고 한다. 여행자들을 부르기 위한 관광용의 의식이 아니라, 스님들이 일용할 양식을 필요한 만큼 공양 받아 사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침마다 공양을 하는 일은 새벽기도와 다름없다. 역 사깊은 불교도들의 신심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딱밧의 행렬을 기다리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됨이 느껴진다.



딱밧이 끝나고 둘러보는 새벽시장은 현지인들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시장의 큰 골목은 나름대로 규모가 큰 상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여행자들도 많다. 노점에서 국수도 팔고 온갖 채소와 과일도 팔고, 핏빛 도는 육류와 메콩강에서 낚았을 생선도 판다. 어제까지 못 보던 샛길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아침저녁에나 반짝 모이는 작은 좌판들이 즐비한 이 골목은 라오스인들이 장을 보고 있다. 작은 포대나 커다란 바나나 잎을 깔아놓은 좌판 위에는 채소며 과일이며 소소한 상품들이 놓여 있다.

 

 

바나나, 용과 같은 열대과일부터 콩이며 나물과 같은 채소류를 놓고 호객도 없이 앉아있는 사람들과 물건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길을 걷다보니 무엇인가 눈에 들어온다. 그 작은 좌판 사이에 작은 새나 설치류(?)로 보이는 동물이 꼬리를 가지런히 하고 누워있기도 하고 훈제되어 있기도 하다. 바나나 잎 위에선 어떻게 묶인 건지 작은 개구리들이 팔딱팔딱 꼬물거린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죽은 다람쥐, 훈제한 쥐 고기, 살아 움직이는 개구리가 맞다. 가난한 사람들의 단백질 공급원일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한 구석 조그만 화로 위에서는 고구마 몇 개, 찹쌀 꼬치, 바나나 같은 것들이 군것질 거리로 구워지고 있다. 찹쌀 꼬치를 하나 사먹어 보지만 너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시장을 나와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변을 거닌다. 황토색의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장면은 이젠 특이하게 보이지 않는다. 라오스에 와서 설악산 선녀탕의 물빛을 떠올리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맑은 물빛이 아니어도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이다. 수량도 세계 10위라는 메콩강은 내륙국인 라오스를 관통한다. 풍부한 수력을 이용해서 주변국에 전력을 수출하는 것이 라오스의 주요 수출품목이기도 하지만 정작 라오스는 전기를 수입하기도 한다.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가난한 라오스에는 송배전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이라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이야기이다. 누런 강물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흘러갈 뿐이고, 선착장에서는 기다란 보트가 근교의 관광지로 실어갈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정오면 문을 닫는다는 맛있다는 국수가게를 찾아간다. 가정집에서 낮은 테이블 몇 개를 놓고 파는 곳이다. 소문난 맛집이라고 하더니 아이를 데리고 온 아줌마부터 옷을 차려입은 예쁜 처녀, 테이크아웃 해 가려고 기다리는 총각까지 현지인 손님이 많다. 고수, 민트에 라오스식 간장소스를 넣어 먹는 국수 맛이 일품이다. 간장소스가 묘약인 라오스의 맛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루앙프라방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기로 했다. 일교차가 10도가 훨씬 넘는다. 딱밧을 하는 새벽엔 패딩을 입고 나왔다가 한 낮에는 반팔티셔츠로 갈아입는다. 한낮에도 길에서 스님들을 자주 만난다. 거리에는 어린 스님이 가방을 메고 조용히 지나가기도 하고, 불교용품을 파는 가게에서는 노스님과 함께 물건을 고르는 젊은 스님들도 보인다. 괜히 스님들을 쳐다보게는 되지만 옷깃이 스쳐도 안 되는 엄격한 계율이라 좁은 거리에서는 신중하게 서로 비켜서 걷는다.   



걷다보면 마주치는 사원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락거리게 된다. 치앙마이를 거쳐 왔기 때문인지 태국의 화려한 사원에 비해 검소해 보이는 지붕의 선이 담백하게 느껴진다. 감탄을 자아내는 불가사의한 예술품들이나 유적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에 그만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쳐 줄 일이 아닐까? 풍요로운 삶이 잃어버린 소소한 행복, 특이하게 볼거리도 없는 이 가난한 나라에 여행자들이 매년 늘어나는 까닭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민속박물관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라오스의 소수민족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그 민족의 전통에 따라 제작된 옷이나 수제품들을 진열하고 있다. 사실 놀라만한 품질의 예술작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하나 손이 부르트도록 만든 여자들의 세심한 손길이 그대로 느껴진다. 라오스 북부에서 내려오며 홈스테이하고 시골마을에 묵기도 했던 경험이 소수민족들의 삶을 이해하기 쉽도록 돕고 있다.   


전시실을 관람하다가 작은 화면에서 나오는 비디오를 감상한다. 각 소수민족 마을의 여자들을 선발해 비디오 촬영법, 인터뷰 방법 등을 교육시켜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후, 그 민족 특유의 전통기술(?)을 보유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영상물이다. 인터뷰어가 친근해서인지 나이가 구십 세가 넘는 할머니들도 편안히 말씀을 하신다. 각 마을의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모두 여자들이다. 손이 많이 가는 바느질이나, 등을 만드는 일, 약초로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일, 혹은 무당의 일까지 모두 여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손재주가 뛰나다는 몽족의 핸드메이드 작품들을 판매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왕궁 앞 씨사왕웡 거리의 나이트마켓이라고 한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민속박물관에 머물다 나와 여기 저기 갤러리에도 들어가 본다. 루앙프라방의 풍경을 몽환적으로 표현하고 주황색 가사로 대변되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그려놓은 그림으로 유명한 갤러리도 있고 아까 민속박물관에서 봤던 라오스만의 전통적인 직물공예품을 전시하고 파는 곳도 있다. 

 

태양을 피해 뜨거워진 오후, 골목의 그늘을 찾아 걷는다. 대나무 울타리가 쳐 있는 골목에는 닭과 사람이 서로를 비켜가고 어느 작은 사원 마당에는 스님의 것이 분명한 빨래가 나부낀다. 골목의 세탁소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아온 빨래들이 건조되고 있다. 어제도 그제도 아무골목이나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갔지만 같은 골목은 하나도 없다.   




거리에는 찰밥이 잘 빚어져 햇살에 건조되고 있다. 딱밧으로 받은 찰밥들도 그날 다 먹을 수 없으면 이렇게 건조되어 보관된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루앙프라방에는 흐르는 큰 줄기의 메콩강말고 칸강(Nam Kan)이라는 또 하나의 강이 흐른다. 칸강이 흐르는 강변의 레스토랑에서 다리를 쉬며 루앙프라방의 오후를 즐긴다. 라오스는 편안한 자유로움, 정적 속의 신선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곳이다. 흐르는 강물과 휘청거리는 대나무 다리를 내려다보며 망고 주스를 마신다. 말 그대로 유유자적이다. 꿈결 같이 아득한 오후의 한 장면이다.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이것저것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파는 구멍가게 앞에는 사람 하나 없고, 잡동사니를 싣고 지나가는 트럭에서는 옷을 입은 멍멍이 한마리가 착한 얼굴로 여행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름 모를 사원으로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자리를 옮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이곳에는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옛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에는 아침에 갔었던 작은 국수가게 옆에 프랑스 분위기를 풍기는 까페가 있고 고급 레스토랑도 있다. 가이드북을 뒤져 루앙프라방 최고의 프랑스식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렐레팡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이다. 보통은 이런 요리에 눈길이 가지는 않지만 풍미 좋은 프랑스 요리를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5시쯤 들어가 보니 이제 준비 중이라며 예약만 하고 6시에 다시 오라고 한다. 할 일 없이 있다가 고급 레스토랑에나 들어가려고 했는데 비게 된 한 시간은 또 할 일이 없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보니, 레스토랑 건물 바로 앞에 사원이 하나 있다. 사원 안에는 아이들이 공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어디서나 존재하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라오스 사원이 참 정겨워 보인다.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마침 불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불당 안에는 저녁 예불이 행해지고 있다. 앞에서는 스님들이 독경을 하고 뒤에는 불자들이 불경을 펴들고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들의 뒤에서 무릎 꿇고 앉아 한참동안 의식을 지켜본다. 큰 사원이 아니라서인지 사람이 많지는 않고 신도 대부분은 나이 드신 여자들이다. 그 와중에 늦게 들어와 불경을 펼치는 사람은 현지인의 옷차림을 한 젊은 서양여자다. 이곳에 장기체류하는 듯한 인상의 그녀는 익숙하게 독경을 하고 의식에 참여하고 함께 온 라오스 여자와 대화도 한다.


그런 저런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음이 일렁거린다. 무엇이 저 벽안의 여인을 불교로, 라오스로 이끌었을까? 어린 스님들의 독경에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는 어머니, 할머니뻘 되는 신도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점점 사람이 많아져 여행자들이 비좁은 자리를 차지하기 미안해서 불당에서 나온다. 저녁의 사원, 불당 밖에는 어린 스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불상 만드는 것을 연습 중인지 똑같은 모습의 불상과 만들다 만 불상들 놓여있는 테이블을 바라보며 앉아 해지는 사원의 묘한 기운을 느껴본다. 어린 스님들은 사원 마당에 앉은 여행자들을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하며 지나간다.



비싼 저녁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갔다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들어오게 된 사원이니 시계를 보며 앉아 있는데 한 스님이 점잖은 영어로 말을 건다. 그는 스물다섯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이 바로 스님들의 거쳐 앞이다. 영어를 잘한다고 했더니 호주 국적의 선생님과 배웠고 선생님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지금은 쉬고 있다고 한다. 그를 통해 라오스 스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여섯 시면 딱밧을 하고, 공양 받아온 음식으로 일곱 시 반에 아침을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에 간다. 학교가 끝나면 11시 반에 점심을 먹고 고학년의 승려들은 더 공부를 한다고 한다. 저녁은 언제 먹느냐는 질문에 온화한 표정의 스님은 12시 이후엔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대신 차 정도는 마실 수 있으며 나머지 시간도 공부와 수행을 하고 아홉 시면 잠드는 일상이라고 설명한다.

 

동자스님들도 있고 대부분이 한창인 청소년기의 승려들이 그런 금욕생황을 하고 있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승려의 학업은 지원해 주기 때문에 뜻이 맞는 사람은 공부에 열중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스님과 우리를 다른 어린 스님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쳐다본다. 스님은 영어도 잘하고 호기심도 많아 우리에게 묻는 것도 많다. 나이에 맞지 않게 점잖은 스님과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갑자기 스님이 합장을 한다. 스님의 이름이라도 묻고 싶지만, 그는 아무 미련도 없이 등을 돌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이미 어둑해진 사원 뜰 안의 많은 스님들 사이로 사라져 버린다.


 

예약해 둔 렐레팡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여행지에서는 자주 누리지 않는 호사를 부려본다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사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저녁 예불을 보고 스님과의 뜻하지 않은 만남까지 가져다 준 것이다. 개조된 고풍스러운 저택 안의 예약석에 자리를 잡고 스테이크와 파스타, 와인까지 주문한다.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의 옛 수도에서 유럽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지만 방금 전 이야기 나누던 스님도 오늘 우리와의 만남을 돌이키고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어디서나 대기하고 있는 웨이터들이 수시로 서빙을 해주는 친절한 서양식 레스토랑에는 머리 희끗한 서양인 여행자들이 많다. 머나먼 이국에서 즐기는 자국의 요리와 건물, 문화가 정겨울 것이다. 이곳이 여행지가 아니라 그들의 모국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저녁 만찬(?)이 끝나고 나이트마켓으로 간다. 코코넛풀빵을 사서 입에 물고 야시장을 돌아보는 일은 매일 집에 들어가기 전의 순례가 되었다. 라오스라는 이름이 들어간 티셔츠를 기념품으로 구입한다. 낮에 민속박물관의 비디오에서 그 제작과정을 상세히 보았던 몽족의 핸드메이드 종이등불이 야시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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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라오스+14] 루앙프라방을 걷는 소소한 하루 | 2015 라오스 2015-08-2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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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벽닭이 운다.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동안은 딱밧에 매일 참여하고 싶어서 시계를 보며 어둠 속에 누워 있다가 일어난다. 여전히 딱밧을 체험(?)하려는 여행자들이 조마베이커리 앞 대로에 앉거나 서서 스님의 행렬을 기다린다. 그들을 지나쳐 어제 찰밥을 샀던 새벽시장 근처 노점으로 간다. 어제 그 노점에서 찰밥을 사는데 아주머니가 노점 바로 앞에 딱밧을 위해 깔려있는 돗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현지인들이 자리 잡고 딱밧을 하는 곳이라 일부러 여기로 온 것이지만 황송하게 돗자리를 깔게 될 줄은 몰랐다. 어제는 그냥 거리에 주저앉았는데 오늘은 현지인의 호의에 힘입어 제대로 참여하는 기분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대나무 밥통을 앞에 놓고 신발을 벗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공손하게 딱밧을 기다린다. 카메라도 꺼내지 않는다. 미명의 새벽, 거리에 꿇어앉은 불심 깊은 사람들 사이에 앉은 마음이 뭉클해 온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일까, 어떤 게 충만한 삶일까, 많이 소유해야 행복한 것일까...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멀리 스님들의 주황색 승복이 휘날린다. 먼발치에서 보면 짧게 깎은 머리와 어깨에 두른 주황색 가사의 행렬만이 인식된다. 어깨에 공양그릇을 메고 스님들이 다가온다. 계율이 엄격해서 여자와는 몸의 일부라도 스치면 안 된다고 하니 더욱 조심스럽다. 뜨거운 찰밥을 덜어내 동그랗게 뭉쳐 내 앞을 지나는 스님의 공양그릇에 넣어드린다. 방금 쪄낸 밥이 너무 뜨거워서 한 덩이 뭉치는 것도 어려운데, 옆에 앉은 라오스인 아주머니는 척척 찰밥을 말아 준비한 과자까지 바리때에 한 번 더 넣는다. 그래도 어제처럼 너무 크지 않게 빚으니 내 앞을 지나는 스님의 행렬의 속도에 대략 맞추어 공양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딱밧을 끝내고 새벽시장에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온다. 루앙프라방에서 딱 한 가지만 하라면 나는 딱밧을 할 것이다. 동트기 전의 거리에 사람들과 나란히 무릎을 꿇고 스님들을 기다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딱밧의 여운을 이야기하며 숙소에 돌아와 조식을 먹는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 느낌이다.  

 

 

라오스 전통이 남아있으면서도 현대적으로 조화된 옷이나 장신구, 기념품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다. 어디로 가자고 정한 것도 없이 길을 따라간다.  발걸음은 느려지고 이색적인 매장에 들어가 돌아보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오전이 훌쩍 간다.  

 

 

대로를 벗어난 메콩강변의 조용한 골목에는 화분과 오토바이가 잠자고 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담백한 얼굴이 편안하다. 라오스인들의 꾸밈없는 표정이 해맑다. 조용한 주택가라고 생각하던 곳 바로 옆은 사원이고 또 걷다보면 게스트하우스이다. 조금만 넓은 길로 나서면 식당이나 기념품점, 여행사가 널려 있지만 번잡스럽지 않은 루앙프라방만의 풍경이 있다.



한참을 걸어왔더니 "르반느통"이라는 프랑스 이름의 빵집이다. 안에는 서양인들이 가득해서 이곳이 라오스가 아니라 유럽의 작은 시골 까페 같다. 가이드북을 뒤져보니 조마베이커리와 더불어 루앙프라방의 대표빵집이라고 한다. 오래 걸었으니 이곳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쉬기로 한다. 프랑스인들이야 고향의 맛을 느끼는 공간일 테지만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에게는 이마저도 여행에서 만나는 이국적인 풍경일 뿐이다. 빵도 맛있고 커피도 향기롭지만 가장 좋은 건 이렇게 흘러가는 여유넘치는 시간들이다.


 

 

 

 

 

 

르반느통에서 나와 중심에서는 조금 멀어진 루앙프라방을 걷는다. 굳이 지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길을 헤매지도 않는다.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관광포인트를 찾아간다기보다 그저 그 존재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루앙프라방 자체를 즐기면 된다. 숯을 포대로 쌓아놓은 골목 담장을 지나치다 보면 어느 가정집의 흰 울타리 앞에는 알록달록 빨래가 나부끼고 그 아래에 많지 않은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점포 건너편에 방치된 화덕과 설거지도구들은 오늘밤 야시장에서 사용될 물건일 것이다. 어느 골목, 어느 시장을 다녀도 길 한가운데는 놀랄 만큼 깨끗하다.

 


메콩강변을 끼고 있는 여행자들 가득한 거리와 반대편 도로에는 자동차들과 자전거, 오토바이들이 씽씽 달린다. 프랑스풍의 건물과 라오스식의 주택, 사원이 있는 강변 쪽과는 달리 대로변에는 고급 호텔도 보인다. 아침 딱밧에서 봤던 셔틀버스에서 내리던 관광객들이 이쪽에 있는 큰 호텔에서 오는 것이었다. 이곳은 나름대로 활기찬 신시가의 느낌이다. 관광지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시골마을의 한적함까지는 아니어도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현대적인 상가를 거쳐 걷다보니 인도음식점이 나온다. 지난 해 남인도에서 만났던 인연이 있는 동행과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이곳에서 점심메뉴를 정한다. 라오스에서 먹는 난과 커리에 향수마저 느껴진다.    



자전거로 루앙프라방을 둘러보는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지나가지만 우리가 믿는 건 두 다리 뿐이다. 거리의 좌판을 기웃거리고 사원 문 앞에서 공놀이하는 아이들도 쳐다보며 바쁠 일 없이 느리게 걷는 발걸음을 즐긴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어느덧 발걸음은 푸시산을 향한다. 푸시산은 높은 산이 아니라 천천히 오르면 된다. 


    
 
왕궁 앞 직선대로는 야시장 천막이 본격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천막 사이로 이제 자리를 만드는 상인부터 물건을 진열하는 사람, 운반하는 사람에 걸음이 혼잡하다. 이제부터 밤을 밝힐 나이트마켓이 시작되는 것이다.

 

 

  

왕궁 앞 푸시산 입구에 올라 내려다보는 나이트마켓의 지붕이 장관이다. 그림 같은 왕궁을 배경으로 빨강 파랑의 천막들이 질서정연하다. 야시장이 준비되는 동안 루앙프라방의 일몰을 감상하러 푸시산에 오른다.

 

 

 

병풍 같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쳐진 루앙프라방의 경치가 사방으로 보인다. 오늘도 수고한 태양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려고 왔지만 사실 이곳은 라오스답지 않게 여행자가 많다. 오르는 계단도 좁은데다 구조물이 있는 정상도 넓은 공간이 아니다. 거기에 석양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같은 시각에 몰리니 혼잡할 수밖에 없다. 좋은 자리에서 보는 것은 포기하고 루앙프라방의 전경이나 즐기기로 한다. 


     

 


해가 진 뒤 산을 내려오니 이미 정돈된 야시장은 손님과 상인들로 가득하다. 특히 신기한 것은 한국말이 상당히 많이 들린다는 것이다. 바쁜 일정으로 라오스에 오는 단체관광객들에게 이곳이 필수 코스인 것 같다. "꽃보다청춘" 방송여파로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늘었다는 것이 실감난다.


파는 물건의 종류는 많지 않다. 라오스라는 단어가 써진 티셔츠, 라오스 전통치마, 스님들의 뒷모습이나 생명의 나무가 그려진 그림, 전통 문양이 들어간 파우치, 소수민족들이 손수 만든 특산품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작은 뱀이 담긴 약술을 병에 담아 드물게 팔기도 한다. 국명이 백만 마리 코끼리의 나라라 하지만 코끼리 문양은 태국의 것이 이미 더 유명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사실 쇼핑할 만한 물건은 별로 없다. 파는 사람들의 반응은 재미있다. 공산주의의 영향인지 라오스인 특유의 정서인지, 같은 종류의 상품을 똑같이 진열하고 파는데 가격도 에누리 없이 비슷하다. 대체 경쟁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들 같다.    

        

 

 

야시장을 돌아보다 먹거리 시장에 들른다. 관광객들 가득한 나이트바자보다 라오스 사람들이 장을 보는 소박한 시장을 돌아다니는 게 더 재미있다. 그리 밝지 않은 불빛 속의 시장은 늦지 않은 시간에 파장할 것이다. 과일과 튀긴  닭, 꼬치를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온다.

 

 

치안 좋은 공산주의 국가 라오스의 밤거리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인적 없는 숙소 근처에서는 신경을 쓰게 되기는 해도, 사원과 이웃하는 숙소라는 사실에도 마음이 놓인다. 
 


채소 가게에서 산 토마토와 라오스인들이 좋아한다는 연두색 망고, 어떤 고기로 만들어진 건지 의심스런 꼬치와 닭다리 튀김을 놓고 비어라오는 한 병씩 마시며 오늘을 마감한다. 하루를 살았다는 견지에서 보면 다르지 않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지나가고 그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아름답게 각인된다. 이 소소한 특별함이 여행을 부추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이 현실임을 자각하는 즐거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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