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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살가게 | 기본 카테고리 2022-12-18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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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살가게

장 퇼레 저/성귀수 역
열림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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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았을 때는 일본소설인가 했었다.
프랑스 소설이라는 것도 다소 신기한 기분이었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내 눈앞에서 활자들이 만들어낸 상황들은,
사회 시스템 안에 자살이라는 선택지가 자연스럽게 들어와있는 세계관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국가의 허용을 받아 운영되는 자살가게라니.
환경오염으로 인해 인간들이 비관적이기 쉬운 세계였다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만날 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집안 대대로 자살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가족 구성원은 자살하지 않는 것을 의무 또는 직업윤리로 삼은 듯 하다. 세 자녀가 있다. 부모와 첫째, 둘째는 비관적인 세상에 어울리는 비관적인 인간들이다. 셋째는 마치 돌연변이처럼, 몹시도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아이다. 꽃처럼 좋은 향기를 주변에 뿌리고 다닌다.
부모는 셋째 아이를 문제아 취급하면서 구박한다.
하지만 결국 셋째의 향기에 모두 전염되듯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가고, 이 비관적인 세계에서 이들은 기어이 행복을 맛보는 가족이 된다.


살인은 금지시키고 자살이란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이 허용되는 사회는 대체 어떤 사회인가.
인간 개체수는 줄였으면 하나 인간의 야만적인 본성을 풀어주지는 않고 통제하고자 하는 의도일까?
공격성보다는 우울이 관리자 입장에서는 더 수월하기 때문인가.


후반부에 나오는, 정부 관료들의 집단자살 결심은 이또한 꽤나 신선했다. 그럴 수 있는 정부라니? 가진 것을 절대 놓지 않는 정치인만 봐왔기에 이런 결심을 하는 정부는 상상도 안 된다. 내 입장에선 가장 창조적인 상상 같았달까


책을 읽으면서 알랑에게 빠져들었다.
이 철저한 우울과 비관의 세계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희망만을 찾아내는 사랑스러운 존재.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존재인데,
하물며 부모마저 나의 긍정성을 짓밟고 우울하게 만들려고 하는데도 잡초처럼 생명력을 잃지 않는 아이.
평범한 아이였다면 부모의 정서적 학대로 인해 성격 어딘가가 망가진 채 크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적 같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긍정의 기운이 강하면, 주변의 부정적인 기운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변을 변화시키기도 하겠구나. 라고 느꼈다. 부정적인 사고로 꽉 차버린 형과 누나에게 끊임없이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어 결국은 긍정적인 자기개념을 갖게 하는 걸 보면서 이 꼬마의 의지와 인내심에 경탄했다.


그래서 결말에 더 배신감이 들었다.
알랑은 왜 그랬을까.
작가는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 했을까.
그냥 반전을 주고 싶었던 이유는 아니겠지.
우울과 비관에 전염된 아이가 어쩌면 반항심 또는 반동으로, 삶의 의미를 찾다가
이 비관적인 가족에게 행복을 준다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은 것으로 결론 짓고 그때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걸까.
하지만 그토록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그 가족은 오히려 세상의 붕괴를 맛보게 되어, 오히려 이쪽에서 집단자살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알랑은 이 자살 세계관 속에서는 메시아 같은 존재였던 걸까??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려는??
알랑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이리 저리 사고회로를 돌려보게
된다. 그렇지만 썩 납득되지는 않았다.
알랑의 나이가 청소년 시기였다면 그럴 듯했을지도.
알랑의 의도를 그럴 듯하게 해석해보기에는, 열한살은 너무 어린 나이다.


재미있게 후루룩 한번에 읽어내려간 소설이지만,
달콤하고 맛있는 초콜릿을 먹다가
입안에 씁쓸한 카카오찌꺼기가 남은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현실의 모든 알랑들은 그저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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