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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김훈 [남한산성]을 기억하다 | - 소현세자 2010-05-03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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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김훈 <남한산성>을 기억하다
남한산성 북문, 서문, 남문을 지나 남장대지까지 걷다
10.01.30 20:03 ㅣ최종 업데이트 10.01.30 20:03 박금옥 (salja88)

'여성문화유산연구회' 답사팀과 함께 남한산성의 성곽을 걸었다. 아직 덜 녹은 눈에다 지난밤에 내린 눈과 비로 길은 미끄러웠다.

 

그동안은 성 밖의 등산로만 주로 이용했었는데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읽은 후로 그 산성을 모두 돌아보고 싶었었다. '김훈'의 <남한산성> 첫머리쯤에 예조판서 김상현이 성 안에 피신해 들어간 인조임금을 찾아 배로 강을 건너는 장면이 나온다. 그를 건네준 뱃사공은 아주 어린 딸 하나만 데리고 살면서 강을 건네주고 얻는 곡식나부랭이로 연명하며 살고 있던 백성이었다. 강 길을 잘 아는 뱃사공이 혹여 적에게 또 길을 안내할 것을 우려해 김상현이 강을 건넌 후에 그를 죽인다. 책을 읽는 초입부터, 백성을 버린(?) 왕이나 그 왕을 지키겠다고 백성을 죽이는 신하에게 화가 났었다. 전쟁이 난 나라에서 개죽음을 당한 백성이 어찌 뱃사공뿐만이겠으나, 온 대지가 꽁꽁 언 겨울날, 혼자 살아갈 그 어린 딸이 자꾸 현실처럼 느껴져, 남한산성에 들어가 대장장이 '서날쇠'를 독려해 고군분투한 김상현의 행동들을 인정해 주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 남한산성의 노송 북문을 지나 걷는 길은 노송지대다. 산성리 사람들이 '금림조합'이란 것을 결성해 지켜낸 소나무 숲이다.
ⓒ 박금옥
남한산성

8호선 산성역에서 9번을 타고 종점에서 내렸다. 9번을 타면 조금 돌고 52번을 타야 직선 코스인데 52번의 배차간격이 너무 길어서 기다리기 지루하면 9번을 타도 된다. 대관령만큼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올라왔다. 산성이 있는 청량산은 해발 482미터쯤 되는 산이지만 이미 버스로 산 중턱을 넘은 셈이니 올라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인솔자가 말해준다. 종점인 산성로터리 혹은 종로라고 하는 곳은 임금이 기거할 수 있게 만든 행궁인 별궁이 있는 곳이고 음식점 거리이기도 하다. '종로'는 예전 그곳에 종이 걸려 있어서 성내에 시간을 알리는 종을 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인솔자는 더불어 "따끈따끈한 소식 전할게요.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고 하네요. 이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답사 연구들이 시행되겠죠?"라고 한다.

 

빙판이라 미끄러운 언덕길을 조금 오르니 북문이 나온다. 북문을 지나쳐 그대로 앞으로 나가면 서문으로 가는 길이지만 북문 오른 쪽 성벽이 이어져 있는 산길로 오르면 외성이 연결되는 벌봉이 나온다. 이 벌봉에 오르면 산성 안이 그대로 노출된다고 한다.

 

김훈의 <남한산성>에는 이 근처에 있는 망월봉에서(지도에는 벌봉만 보인다) 청나라의 용골대가 홍이포를 설치하고 임금이 기거하고 있는 행궁 쪽으로 '잡은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처럼 포를 슬슬 쏘아대며 위협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병자호란이 끝난 후에 숙종시절 벌봉까지 잇는 외성을 다시 축성했다고 한다. 언젠가 그 쪽으로 올라 벌봉을 거쳐 은고개와 엄미리계곡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던 적이 있었는데 내성이 있는 쪽과는 달리 오르고 내리는데 조금 벅찼었다.

 

  
▲ 남한산성 성안 여장의 총안으로 내다본 연주봉 옹성으로 가는 성곽 부분
ⓒ 박금옥
남한산성

 

'남산위의 저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한 노송이 북문을 지나 서문으로 가는 성벽 길 산기슭에 푸른 기상을 뽐내며 늠름한 자태로 숲을 이루고 있다. 노송은 일제 때 모조리 뽑힐 위기에 있던 것을 산성리에 살고 있던 민들이 지켜냈다고 전한다.

 

북문에서 서문으로 가는 약 1㎞가 조금 넘는 길에는 '연주봉' 옹성과 암문이 있었고 '매탄처'였다는 곳도 나왔다. 연주봉 옹성으로 나가는 암문은 붕괴위험이 있다면서 '공사중'이라는 팻말과 함께 막혀 있었다. 북문이나 서문으로 우회하여 성 내외를 통행하란다. 조망권이 좋다는 연주봉 옹성으로 나가지 못하고 성 안에서 바라만 보았다. 암문은 적의 눈에 띠지 않게 만든 비상구 같은 문이다.

 

"옹성이 무슨 뜻이죠?" 모두 묵묵부답. "철옹성이란 소리 들어봤죠? 말 그대로 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에 원형이나 방형으로 하나의 작은 성을 더 쌓은 것이죠."

 

'매탄처'라는 표지석에는 병자년 혹독한 추위에 전쟁을 치른 것을 기억해서 그 뒤 유사시에 쓸 숯을 가마니에 담아 산성 곳곳에 묻어 두었던 곳이라고 적혀 있다.

 

서문은 산세의 지형이 가장 가파르다고 한다. 인조는 이 문을 통해 나가 송파나루였던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을 하였고, 그 항복한 자리에 청 태종의 명에 따라 '삼전도비'를 세웠다. 지금의 송파구 삼전동 부근이란다.

 

  
▲ 남한산성 서문에서 밖을 향해, 메주처럼 동글한 돌들로 쌓은 높은 성이 보이고 그 위에 세 개씩의 총안으로 구성된 여장이 올려 져 있다.
ⓒ 박금옥
남한산성

 

서문을 지나 수어장대로 들어갔다. 수어장대는 지난날 소풍 오듯 몇 번 와본 곳이기도 하다. 장대는 전쟁 시 지휘나 관측을 쉽게 하기 위해 성 안의 지형 중 가장 높은 곳에 설치했는데 현재는 서장대인 '수어장대'만 남아 있다. 안내판의 긴 문장을 인솔자가 말로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니 그냥 스쳐 지나갈 전설까지도 잡아채서 옛일을 상상해 보게 한다. 수어장대 마당 한 귀퉁이의 '매바위'와 '청량당'이라는 사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디에 목적을 두고 오느냐에 따라 사물이 보이고, 혹은 보이지 않고 하는구나 싶었다.

 

수어장대에서 '영춘정'을 지나 남문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산을 에둘러 쌓은 성이기에 다음 성문이 나올 때까지 성곽을 따라 산길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분명 발밑은 얼음이나,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봄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이 불되 매섭지 않았고, 흘린 땀을 식혀주는데 차갑기는 해도 시원했다.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빙판 진 산길을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에 힘을 주었더니 발목 부분이 약간 거북했다.

 

  
▲ 남한산성 성 안에서는 돌로 쌓아 올린 성벽이 보이지 않고 이렇게 여장 부분만 보인다. 여장에는 세 개씩의 총안이 뚫려 있다. 여장 위에 기와 같은 것이 올려 져 있는 부분을 옥개전이라고 한다.
ⓒ 박금옥
남한산성

남문은 남한산성의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이 문으로 들어왔고, 정조 때 성곽을 보수하면서 '지화문'으로 칭했으며 그 때의 현판이 아직 남아 있다. 또 4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문과는 약 1.5㎞여의 거리를 두고 있다. 남문에서는 성 밖으로 나와 검단산으로 오르는 길을 잡았다.

 

여장은 '성 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로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낮게 쌓은 담장'이라고 하는데 성 위에 구멍이 세 개씩 난 담장들이 죽 이어져 있는 부분을 말한다. 성 안쪽에서는 이 세 개의 구멍을 통하여 총을 쏠 수 있기 때문에 구멍을 '총안'이라고 한다. 즉 성 안쪽 부분에는 낮은 여장 담만 나와 있고 성 밖으로 나가야 돌로 쌓아 올린 성벽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와 보니 성곽 담 밑에는 흙에 묻히지 않은 낙엽이 눈과 섞여서도 제 색깔을 드러내고 있고, 그 위로 메주처럼 생긴 돌들이 촘촘히 쌓아 올라가 높은 성벽을 만들고 그 위에 여장이 놓여 층층대를 만들고 있는 모양새다.

 

  
▲ 남한산성 남문(지화문), 남한산성 4대문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하다고 한다.
ⓒ 박금옥
남한산성

 

한 십분 쯤을 성벽 따라 산길을 걸어서 '제1남옹성'이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일정은 여기까지였으나 근처에 있는 '제2남옹성'과 남장대지까지 가보자 해서 그 곳에 있는 옹성 암문을 통해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 쪽에 있는 안내판에는 동문까지의 거리가 1.3㎞로 적혀 있다. 동문으로 가는 성곽은 요즘 보수를 했는지 여장 부분의 회칠한 곳이 하얗게 말끔해 보인다. 동문까지 1.1㎞ 남겨둔 지점에 '남장대' 터가 있고, 그 맞은편에 보수 중인 '제2남옹성'이 보였다. 동문까지 가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은 남장대지 옆으로 나 있는 개원사 쪽 산길을 타고 하산했다.

 

  
▲ 남한산성 동문으로 가는 길목에 남장대지와 제 2남옹성이 있는 부근, 여장부분을 보수했는지 회칠한 부분이 말끔해 보였다.
ⓒ 박금옥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남한산성>에서 죽어간 수많은 뱃사공 같은 백성들, 실제로 성 안팎에서 피 흘린 수많은 이름 모를 군인들,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봄밭을 갈아엎는 서날쇠 대장장이 같은 거친 인생의 삶들이 모여 지켜낸 곳이다. 그만큼 그들의 삶은 역사 속에서 분명 가치 있는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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