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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 VISITE PRIVÉE(3) | 아트다이어리(그림으로 쓰는 일기) 2023-05-2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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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린 그레이, 코코 샤넬, 고고 스키아파렐리, 루이즈 부르주아 등 빅네임의 여성들의 공간에 이어 역시 대단한 이름의 남성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막강한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예술이 탄생한 거점들에서 그들의 내적 아우라를 느껴본다.

 

 

 

폴 세잔 Paul Cezanne - 엑상프로방스, 프랑스 Aix-en-Provence, France 2003

 

프랑스 인상주의 이야기에 조금 등장하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이름 폴 세잔 (1839-1906). 내로라하는 화가들 사이에서 화풍이나 사회생활에서 순탄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가 버린다. 유행의 한복판 파리에서 어영부영 있다가는 화가로서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거라는 조급함이 생겼지 않을까. 부유한 아버지가 세상을 뜨며 물려받은 유산 덕택에 세상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것도 낙향에의 결심을 어렵지 않게 했을 것이다. 이리하여 1886년부터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의 도시가 되었다.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세잔이 본격적으로 그림에 착수할 당시에는 꽤 터무니없는 소리로 여겨졌겠지만, 지금으로선 너무 소심한 발언이다.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와 1906년 사망하기까지 근 20년 동안 자신의 외딴 아틀리에에서 오로지 그림 작업에만 몰두하던 세잔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미술사에 길이 남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잔의 시그너처 그림을 볼 때마다 하필이면 왜 사과 (그리고 오렌지) 였을까, 궁금하다. 일상적 사물을 본질적인 형태로 화폭에 담아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세잔의 눈에 본질이란 원형, 삼각형, 원통형의 기하학 모양으로 단순화된 모습이며, 하나의 각도가 아닌 위, 옆, 아래, 앞에서 다각도로 본 대로 그려야 진짜이다. 사과와 오렌지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이들의 모든 빛깔과 형태를 한 화면에 담으면서 구도와 형태는 단순해지고 여러 색면을 가진 입체적 모습이 나타난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테이블 위의 사과와 오렌지에 국한되지 않고 카드게임을 하는 사람이나 일인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잡은 사람에게도 적용되었다. 세잔의 눈에는 거대하게 펼쳐진 생트 빅투아르산도 형태와 색을 통해 본질을 찾아 그리는 대상이었다. 세잔 이전의 그 어느 누구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 새로운 접근은 당대의 젊은 화가들, 특히 피카소를 열광케 했고 입체주의를 열어 놓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입체주의에서 추상 표현주의로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흐름에 있어서 그 첫 물길은 세잔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프랑수아 알라르가 찍어둔 세잔의 아틀리에. 흑백으로 찍어 둔 사진도 있고 (아마 세잔이 직접 사용하던) 사다리와 가구들이 밝은 갈색의 장면으로 등장한다. 바깥의 빗물이 어린 모습도 있다. 다른 사진들과 분위기가 조금 다른데 '세잔이 그린 정물화와 비슷한 회화적 분위기를 띠'게 하기 위해 오토 크롬 스타일의 폴라로이드로 작업했기 때문이라 한다. 햇살이 그토록 찬란하다는, 아름다운 분수가 곳곳에 있어 '물의 도시'라는 인상을 주는 엑상프로방스에 나는 언제쯤 가볼 수 있을까.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이 이상한 그리움 같은 감정...

 

 

아, 나도 이 해골을 알고 있다. 올해 1월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렸던 세잔의 특별 전시에서 발견했었다. 사과와 생트 빅투아르산 및 대수욕도를 실컷 보고 전시의 맨 마지막에 이르렀는데 난데없이 해골 그림이 두어 점 나타났다. 그토록 바라던 대로 그림에 매진할 수 있었고 세상도 자기를 인정해 주기 시작했지만, 세잔은 삶의 덧없음을 떠올리고 있었던 걸까. 충분히 편안하게 즐기며 여유롭게 살 수 있었음에도 매일 또는 하루에도 여러 번 생트 빅투아르산에 오르며 그리고 또 그렸던 그 성실함은 바로 죽음이라는 인생의 본질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런던 테이트 모던,세잔 특별전시에서 만났던 해골들. 외진 아틀리에에서 생트 빅투아르산을 줄기차게 그리면서 세잔은 명성을 추구한게 아니라,인생의 참모습을 알고자 했던 것 아닐까.


 

 

치나티 재단 미술관 Chinati Foundation - 말파, 텍사스, 미국 Marfa, Texas, USA 2005

 

전시실에서 폴 세잔의 아틀리에의 맞은편에는 '도널드 저드 Donald Judd, 1928-1994'의 공간들이 자리한다. 거의 한 세기의 격차를 두고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예술에 매진한 두 예술가 일진대 내 눈에는 여러 공통점이 포착된다. 세잔이 형태와 면 및 다각적 시점으로 본질을 쫓았던 것처럼 저드도 미니멀리즘을 통해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최대한 본질을 남기는 작업에 몰두했다. 세잔은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 화풍이나 그 이전의 어느 미술 사조에도 구애받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를 추구했으며, 저드 역시 당시 트렌드를 장악하던 추상미술과 동떨어진 새로운 길을 걸었다. 도널드 저드의 작품은 회화도 조각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세잔의 회화가 조각적인 면모를 담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대리석이나 청동 같은 기존의 조각 소재 대신 알루미늄이나 플랙시 글라스 등의 새로운 소재를 선택했고,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데에 '공업적인' 프로세스를 이용했다. 그의 작품들은 회화처럼 벽에 걸려 있지만 캔버스 '안에 담는' 형식과 정반대로 원형과 사각형 등 기하학적 형상들이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어쩌면 이런 특이한 입체적 구상은 세잔의 전대미문한 입체적 시도가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알라르가 찍은 저드의 미술관 사진들을 보면, 세잔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가 유행과 먼 고립된 장소에서 펼쳐진 것처럼 저드의 미니멀리즘의 세계도 일상과 동떨어진 미지의 환경을 필요로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산을 택했다면 저드는 텍사스 사막 한복판을 택했다. 저드는 버려진 군사기지를 40만 평에 달하는 기묘한 미술관으로 탈바꿈 시켜 자신의 것을 비롯해 여러 예술가들의 대형 작품을 영구적으로 전시할 공간을 구축했다. 알라르는 저드의 작품을 앵글에 담기보다는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미술관 전경과 미술관을 구성하는 미니멀리스트한 부분들에 주력했다.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저드의 미술관 안팎에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달이 좀더 지나 두번째로 방문한 날, 새로운 사진 두 장이 추가되어 있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미국 Los Angeles, California, USA 1982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파란 수영장에서 여유자적하게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우중충한 영국의 날씨를 떠나 로스앤젤레스의 찬란한 환경 속에서 밝고 푸른 그림을 그리며 얼마나 행복했을까. 호크니가 그린 수영장 시리즈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캘리포니아의 모든 기쁨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알라르가 찍은 호크니의 수영장은 무려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라르 자신도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때였고 프랑스 밖으로 처음 나온 터라, LA의 눈부신 태양과 푸른 물, 한창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예술가와 만남 등 대단한 경험에 한껏 들떠 있었을 것이다. 예술가의 자부심, 탁월한 환경, 신참 사진작가로서의 기대감 등 모든 흥분되고 즐거운 요소들이 이 파란 수영장 사진 속에 넘실대고 있다.

 

 

1937년 태생인 호크니는 1964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서 밝은 태양과 푸른 물에 푹 빠져 지내다가 2004년에 고향인 요크셔로 돌아왔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는 마냥 밝은 기후보다는 더 명상적이고 함축적인 영국 특유의 흐린 기후에 더 매력을 느꼈을까. 회색빛 비와 안개로 차분히 가라앉은 시골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활용한 디지털 풍경화를 그려내는 등 새로운 실험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젊은 나날의 강력한 경험은 영원한 자산이 되는 법이라 한다. 알라르에게도 젊은 시절 호크니를 알게 되고 그의 공간을 찍을 수 있었던 경험은 평생 사그라들지 않을 큰 빛줄기가 되었을 것이다.



 

 

드리스 반 노튼 & 패트릭 반겔루위 Dries Van Noten & Patrick Vangheluwe -앤트워프, 벨기에 Antwerp, Belgium 2014

 

알라르가 찍은 이 사진들의 첫인상은 여성적인 아방가르드함이었다. 빈틈없이 화려하고 튀는 장식과 가구들이 눈을 즐겁게 하는데, 모든 것을 다 들여 놓아 현란하지만 자질구레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아 이곳의 주인은 디자이너일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한편, 대범하지만 섬세함은 결여된 듯하여 남성의 공간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답은, 남자의 집이다! '드리스 반 노튼,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벨기에 출신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라고 한다. '패션계의 낭만주의자'라고 불린다는데 그가 선보이는 의류를 몇 점 찾아보니 이 별명을 얻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채로운 패턴과 컬러들에 주목해보자. 벽지와 패브릭마다 꽃무늬이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마티스의 그림이 한벽을 홀로 차지하고 있는 장면! 과감한 색채가 넘쳐나는 그의 공간을 한마디로 집약해준다. 빈티지와 골동품이 넘쳐나고 고전적인 것과 실험적인 것들이 한데 놓여있어 잠시 여기가 어떤 세계일런지 시간적 경계가 사라진다. 만약에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면 엘리스가 처음 '이상한 나라'에 들어갔을 때의 기분,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 뒤 세계'를 처음 보게 되는 순간과 비슷한 기분이 들지않을까. 놀라움과, 긴장감, 떨쳐낼 수 없는 고도의 궁금함.

 

 

반면, 너른 호수를 품고 있는 정원은 커다란 숲이 주는 평안함 그자체이다. 30년 이상 가꾸어온 정원이라니! 방 여기저기에 놓인 꽃다발은 이 정원에서 그가 손수 만들어 갖다 놓았다. 패션 디자인과 정원, 화가로서 모네가 수련과 버드나무로 무성한 정원을 열성적으로 가꾸며 자신의 그림의 주된 원천으로 삼았던 것과 비슷하다. 드리스 반 노튼과 그의 파트너가 정성을 다하는 정원을 들여다보고 다시 그들의 실내 공간들으로 바라보니 조금전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낭만적이되 이상할리만치 여유롭고 평화롭다. 무질서하게 흩트려져 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피크닉의 아트숍에서 보았던 알라르의 책 두 권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는 장소들을 수록한 도록을 구매했지만, 이 사진들을 더 큰 판형으로 수록해둔 꽤 고가의 하드커버 양장 서적이다. 이 책들보다 더 큰 판형으로는 8개의 장소를 테마로 하는 포스터가 있다. 6장이 내 마음에 팍 와닿는 장소들이라 하나씩 구매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실제로 이 장소들을 내 눈으로 보고 내 발로 걸으며 경험하지 않는 한 아무리 크게 더 크게 사진을 소장한들 이 모종의 욕구는 채워지지 못할 것이다. 도대체 내가 언젠가에라도 가 볼 수 있는 곳이 있기는한가?! 만족의 테두리를 좁히는 것, 이 전시를 보고 도록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도 다행아닌가.

 

 

조르조 모란디 Giorgio Morandi - 볼로냐, 이탈리아 Bologna, Italy 2017

 

때마침 조르조 모란디( 1890-1964)의 장소들이 나타나면서 나의 점점 광대해지는 욕심을 날려버린다. 이탈리아 화가 모란디는 금욕과 명상의 대명사처럼 읽힌다. 볼로냐에서 태어나 생애 대부분을 4평 남짓한 방에서 지냈다니! 바깥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말일진대...그러면서 (그랬기에) 모란디는 1350여점의 유화와 133점의 애칭을 남겼다. 자신의 예술에 천착한 흔적이라고는 '특별할 것 없는' 스튜디오 겸 집에 남아있는 소박한 도구들 뿐이다. 병, 꽃병, 그릇, 도기 등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일상적인 사물을 화폭에 담았다고 하는데 많지 않은 것, 특별하지 않은 것, 거대하지 않은 것으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했던 것이다.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며 많이 보는 것보다 성실하게 보는 것을 강조했던 화가 모란디. 좁고 검박한 곳에서 펼쳐졌던 거의 수련에 가까운 그의 삶과 예술은 투철하고 치열했다. 모란디는 자신의 책 중 하나에 모란디의 도구를 찍은 사진을 커버로 삼았다. 이 소박함에 담긴 영원에 끌렸던 것 아닐까.

 

 

평범한 갖가지의 티팟과 컵이 놓여 있는 낡은 테이블.그 위쪽 벽에 모란디의 그림 한 점이 보인다! 두번째 방문에서야 이 사진 속 진품을 발견했는데 보고서도 보지 못한 과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감동과 충격을 받은 사실 (사건)하나.나는 이번 전시에서 모란디를 처음 알게 되었고, 유독 마음이 끌려 '찜'해 두었는데....이런줄 알았는데,며칠 전 발견한 바에 따르면 나는 이미2016년 5월경 곰브리치의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모란디를 처음으로 만났었다. 이 희한한 망각과 다행스러운 재회로 여러 날 동안 오묘한 기분에 젖었다. 이 우여곡절을 따로 써 두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 Marc Jacobs - 파리, 프랑스 Paris, France 2016

 

이제 예술가라고 하면, 특히 현대미술과 관련된 빅네임 작가들의 경우에는 아마 모란디 같은 소박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일반적 의미에서의 부유함과 화려함이 없이는 현대 미술을 생각할 수 없다. 마크 제이콥스라는 이름은 상업적 성공을 구가하는 하이패션 분야에서 빠지지 않을 것이다.17년 동안 루이비통에서 '패션 하우스를 하나의 커다란 대중문화의 흐름으로 이끈 장본인'이었고, 그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도 세상 곳곳에서 성공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이미 20대부터 현대미술에 심취해왔고 '자신이 벌어들이는 재산 대부분을 미술 컬렉팅에 쏟아부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알라르가 찍은 몇 안되는 사진에 등장하는 컬렉션만으로도 (앤디 워홀, 자코메티, 제프 쿤스 등) 실로 엄청나다. 그의 집 전체를 장식하고 있을 예술품은 도대체 어떤 이름이며 얼마만큼의 규모일까. 하이엔드 패션계의 대부가 현대미술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여기까지만 알아도 될 뻔했다. 제이콥스의 컬렉션은 '현재는 대부분 소더비 경매를 통해 판매됐다고 전해진다'라는 말에 괜히 실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소장품이 반드시 애장품일 필요는 없겠지. 소장품은 귀중품이 되는 시대이니까. 제이콥스의 소장품에는 그의 네임밸류가 덧붙여져 더 고가로 등극하면서 또다른 누군가의 귀중한 투자대상이 될 텐데, 하나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레니 크라비츠 Lenny Kravitz - 파리, 프랑스 Paris, Frane 2018

 

노래를 잘 못 부르고 안 부르다보니 (해외)가수를 도통 알지 못한다. 30년 이상 핫하다는 가수 '레니 크라비츠'도 사진 속 모습으로 '아, 이런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 밖에 반응하지 못한다. 그의 명곡이라는 " 끝날 때가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Itain't over till it's over"도 노래 제목인 줄 몰랐고, 요즘 들어 많이들 쓰는 문구로만 알고 있었다.로큰롤, 블루스, 소울, 펑크, 재즈, 팝 등 다양한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대가수이라는데 패션과 소장품 및 인테리어 장식도 범상치 않다. 무하마드 알리의 신발, 바스키아의 그림, 존 레논 사진, 앤디 워홀리 그린 믹 재거,( 내 사진에서 누락되었지만) 프린스의 기타와 부츠 등 자신의 영웅들을 한자리에 모셔 놓았다. 이런 고전적 컬렉션에 스와로브스키 샹들리에를 멋지게 매치했다. 바스키아의 그림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사진 속 크라비츠를 보니, 2021년에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에서 패션 아이콘 상을 받았다는 독특한 이력이 이해가 된다.

(ps.) 첫눈에 파악되는 바, 크라비츠의 사진 공간 천장에 투명 플라스틱의 전등이 달려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 매단 검정 물체는 전구가 아니라 스피커이다. 크라비츠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이번 전시 VISITE PRIVEE의 특장점 중 하나, 강약 조절이 탁월하다. 유명 사진 작가가 직접 찍은 세계적 명사들의 사적인 공간들이므로 한결같이 화려하기 마련이지만, 장소 전체를 담은 컷들과 주요 포인트를 클로즈업한 컷들을 절묘하게 섞어 두었다. 따라서, 거창하고 현란한 것들에 연속 노출되면서 질리는 일이 없고, 단순한 것들이 연이어져 지겨워지는 일도 없다. 때로는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 때로는 차분하고 명상적이게 된다. 여러 공간들을 탐방하다보면 '과연 알라르의 공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진다. 그의 사진과 삶의 견해와 태도를 결정짓고 성장케하는 요소들은 무엇일지 알고 싶어진다. 바로 이때, 정말로 알라르의 공간을 담은 사진들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알라딘의 마술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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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 VISITE PRIVÉE (2) (feat. 복합문화공간 피크닉) | 아트다이어리(그림으로 쓰는 일기) 2023-05-21 18:48
https://blog.yes24.com/document/1801361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봄은 그 자체로 확실한 장점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창문, 특히, 커다란 통창이 있는 실내의 경우 아무런 장식이 없어도 봄이면 최고의 장소가 된다. 이곳 piknic은 봄날에 최적화된 곳이다 (원래 k의 오른쪽 상단에 점을 찍어 좌우 두 개의 i와 리듬을 맞추게 되어 있다. 물론 k가 아니고 c가 들어간 picnic을 활용했다. 오타가 아니냐고 깜짝 놀라는 것은 당연지사). 지난번 겨울 사울 레이터의 사진전 때와 확연히 달리, 전시실마다 앞뒤로 통창이 있어 푸르른 봄기운이 가득하다. 전시 관람 도중 간간이 창밖으로 봄날의 현실 세계를 확인한다. 사진 속 멋들어진 집과 공간들도 이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어쩌면 가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기대가 일렁인다.

 

2층 전시관에는 무려 스물네 명의 명사들의 공간이 전시되어 있다. 1층에 비해 약 두 배로 늘어난 것인 만큼 전시 공간도 더 넓고 관람 시간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감탄하며 한 장 한 장 바라보는데 어느 하나라도 내 기억 속에서 잊지 않겠다는 의욕이 넘쳐 잔뜩 긴장하게 된다. 우선, 초입의 첫사진부터 남다른 여성들의 공간을 만난다.

 

 

에일린 그레이 Eileen Gray (1878-1976)

- 호크브륀 캽 마르땅, 프랑스 Roquebrune-Cap-Martin, France 2018

 

건축가라고 하면 남성부터 떠올리게 되는 현실. 그래도 에일린 그레이는 모더니스트 건축가로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할 이름이다. 그녀의 건축물을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남프랑스 니스 Nice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게 된다면, 그녀가 설계한 집을 꼭 방문하고 싶다. 파란 지중해를 바로 앞에 두고 있다는 이 집의 환상적인 면면을 보게 될 터이고, 역시 스케일이 남다른 그녀의 사랑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터이다. 가구 디자인에 전념하다가 4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집을 처음 설계했는데 그 동기가 참 로맨틱하다. 당시 연인이었던 건축가 '장 바도비치'와 휴가를 함께 보낼 별장을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짓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 첫 이니셜 E로 시작하는 별장 'E-1027'에도 바도비치와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알파벳 숫자를 넣어 로맨틱하게 지었다. 바다라면 항해, 항해라면 보트가 연결된다. 이 집에는 에일린이 직접 글자를 적어 넣은 항해 지도가 남아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 하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너무나도 유명한 시집 <악의 꽃>의 너무나 유명한 시 '여행으로의 초대'가 바로 이들의 사랑을 모티프로 삼았다. 예술적 경지로 오른 이들의 사랑, 어떻게 되었을까. 이 집이 완성될 무렵 이들의 사랑은 끝이 나고 말았다. 에일린은 통 크게도 집을 연인에게 넘겨주고 떠났다. 이 집에 대한 얘기에는 또 한 명의 유명한 건축가가 포함된다. 현대 아파트의 시조 '르 코르뷔지에'. 이 집에 있어서 만큼은 부정적인 면모로 등장하는데 (사실인지 과장된 것인지는 확인할 길 없으나) 에일린의 건축적 재능을 시기 질투하던 르 코르뷔지에가 무단으로 여기에 침입, 색색의 벽화를 마구 그려 놓았다. 아무리 통이 크고 쿨한 사람이래도 이런 일은 용납하기 어렵다. 에일린 그레이는 몹시 화가 났고 르 코르뷔지에와 절교했다.

 

알라르는 이곳을 방문하면서 '무엇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각자 다 다르죠. 우리는 그때를 기다려야 해요.'라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이 집을 찾아 사진 찍고 싶었으나, 2018년에 그 꿈을 실현하게 된 소감이다. 나도 이곳을 찾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괜스레 기대하게 된다. 알라르의 사진에 드러난 이 별장은 간결하고 말끔하니 단정한 우아함을 발산한다. 나라면 확 트인 지중해가 충분히 나타나도록 찍었을 텐데 알라르는 공간의 이모저모를 클로즈업했다.'추상의 형태에 가깝게 재현하는 것이야말로 그때 그 공간의 분위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겠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 방돔 광장. 낮보다는 밤에 더 아름답다. 광장 중앙에 서 있는 민트빛이 도는 초록의 방돔 기둥을 중심으로 사면에 여러 겹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명품 가게들이 일제히 문을 닫은 밤 시간이 되면 이 광장은 한산해지고 때로는 마치 나만의 마당인 듯 여유롭게 거니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들어가 볼까 말까, 입구까지 갔다가 매번 감행하지 못한다. 솔직히 주눅이 든다. 내가 애정하는 바차 커피 Bacha Coffee 매장이 있고, 세심한 문장으로 충격을 가해 오는 멋진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흔적을 품은 카페도 있으며, 모든 것이 꽤 비싸겠지만 여행 온 기분에 기꺼이 지출할 의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츠 파리 Ritz Paris'는 왠지 가닿을 수 없는 성castele과 같다. 프루스트 이외에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등 휘황찬란한 인물들이 제집처럼 드나든 곳이라지만, 아마 이곳을 통째로 전설로 만들어버리는 이름은 바로 '코코 샤넬' 아닐까.

 

 

 

코코 샤넬 Coco Chanel - 캉봉 가, 파리, 프랑스 Rue Cambon, Paris, France 1985

 

샤넬이 주축한 패션의 성지 Chanel의 본부는 리츠 파리에서 가깝다. 캉봉 가 31번지에 위치한 샤넬 본점. 본명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이고 '코코' 샤넬로 더 잘 알려진 이 전설적 인물은 리츠 파리를 아예 자신의 집으로 삼았다. 지금도 그녀의 이름이 붙여진 스위트 객실로 남아 있는데, 샤넬은 이곳에서 방돔 광장을 내려다보던 어느 날 '샤넬 N. 5'에 대한 영감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 내려다보이는 모습에서 이 향수의 병 디자인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한편, 코코 샤넬의 정식 아파트는 캉봉가 샤넬 본점(플래그십 스토어)의 위층에 있다. 1971년 그녀가 세상을 뜬 후에도 생전에 쓰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고, 2013년 프랑스 문화부에 의해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다른 유적처럼 일반인도 방문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20세기 여성들을 불필요한 치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패션을 주도한 시대의 아이콘 샤넬이 살던 집은 어떤 모습일까. 그녀의 블랙 드레스, 저지 드레스 또는 트위드 수트와 비슷한 분위기 아닐까. '단순함은 모든 진정한 우아함의 기본'이라는 샤넬의 철학은 패션뿐 아니라, 그녀가 기했던 공간에도 고스란히 베여있지 않을까.

 

 

조금은 이해가 안 된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중국, 이탈리아에 이르는 온갖 시대의 가구. 거기에다가 중국풍 병풍까지. 이 세상의 모든 장식을 두른 것 같은 샹들리에, 시계, 식기류와 장식용 조각들. 정말 샤넬이 이 산만하리만큼 화려한 공간에서 살았을까. 그녀의 정신과 취향을 자세히 보여주려는 (문화 유적의 관리) 의도하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내다 놓은 건 아닐까.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으로 샤넬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인테리어 일테지만, 빈틈없이 화려하게 채워진 이 모습은 내가 들은 바로의 샤넬 ( 또는 샤넬의 패션) 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에 눈길을 두어야 할지 난감하던 차, 탁자 위의 사자 조각상에 집중한다. 그녀가 진정 사랑했다는 연인 '보이 카펠'이 황금 사자상과 연관되어 있다. 1919년 그가 사망하자 샤넬은 크게 상심하여 베니스로 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이 황금 사자상을 만났다. 베니스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자신이 태어난 8월이 사자자리이기 때문에서인지 이 날개 달린 사자는 샤넬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제 샤넬도 사라진 곳에서 탁자 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사자상, 사라져버린 사랑의 고통에서 다시 일어나 자신의 길을 꿋꿋이 지속하겠다는 결의를 다졌을 샤넬을 상상해 보게 한다.



 

내 생각으로는, 리츠 파리와 방돔 광장이 코코 샤넬의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린다. 화려하면서 우아하고...조금은 우수 어린 차가움이 있다.

 

 

 

고고 스키아파렐리Gogo Schiaparelli -파리 프랑스 1992

 

샤넬의 라이벌이었다고? 명품 패션을 잘 몰라서인지 내게는 난생처음 듣는 이름이다. 1890-1973의 생몰연도를 보니 샤넬의 시기와 딱 겹친다. 샤넬이 질투할 정도로 대단했던 모양인데 '엉뚱하고 도발적이며 초현실적인 아이디어로 패션계에 파격을 선사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살바도르 달리, 만 레이, 장 콕토와 친분을 나누며,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등 아방가르드 예술을 패션에 접목시켰다니 어떤 패션이었을지 조금 상상이 된다.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구두 모양의 '모자'를 제작했다는데 실제로 이를 쓰고 다닌 사람이 있었을까.

 

 

알라르의 사진으로 구경해 보는 고고의 집(샤넬이 '코코'로 불리듯 '고고'도 스키아파렐리의 애칭이다). 샤넬의 공간에서 샤넬의 단순함과 우아함의 철학을 발견하기 불가능했다면, 고고의 집은 그녀의 패션 철학에 백 퍼센트 충실해 보인다. '옷은 놀라움과 흥분을 주어야 한다'라는 선언처럼 그녀의 집에는 이국적이고 다채로운 색깔과 패턴이 총망라되어 있다. 기괴할 정도로 현란하게 믹스 매치된 이 공간을 고고 본인 못지않게 (기괴함 그 자체였던) 달리가 엄청 좋아했을 것 같지 않은가. 사진 속 비범한 요소들은 삶이란, 때로는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맛이 있었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뉴욕, 미국 New York, USA 2014

 

 

모더니스트 건축가라는 명성에 맞는 에일린 그레이의 별장, 이름 자체가 영구한 브랜드가 된 코코 샤넬의 집, 그리고 샤넬의 라이벌이었다지만 철저히 다른 세계에 속한 듯한 고고 스키아파펠리의 초현실적 집. 여기에 한 명의 여성이 더 있다. 바로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앞의 세 사람 중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자신의 삶을 오롯이 예술에 반영한 예술가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 만나게 될 그녀의 집이 궁금했다. 거대한 거미 조각인 <마망>을 비롯, 부르주아의 조각, 회화, 드로잉,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품은 세계 어디에서든 이슈가 되고 찬사를 받는다. 따라서, 뉴욕에 있다는 그녀의 집도.... (원래 프랑스 태생이지만 1938년 결혼과 더불어 뉴욕으로 이주했다).

 

 

기괴하게 커다란 거미를 세워 두고 '마망(엄마)'라고 제목을 붙였던 부르주아의 음울한 삶을 떠올리게 된다. 예술가로서의 명성의 이면에는 어린 시절 깊이 사무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자리한다. 때로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때로는 솔직 담백함으로 자신의 삶을 예술로 풀어낸다. 그녀의 자아성찰적인 작품을 보는 이들은 애틋함에 슬퍼지기 일쑤이지만, 부르주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해 가는 데에서 큰 위로를 얻는다. 알라르가 이 집의 문에 있는 못과 후크의 수평적 형상을 십자가처럼 강조한 것도 이런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알라르의 사진에 나타난 부르주아의 공간은 그녀의 예술적 명성과는 완전 딴판으로 ... 한마디로 낡고 남루하다. 현관에서 바로 서재-거실-침실이 경계 없이 하나로 되어있고 별도의 문으로 분리된 부엌도 다목적실과 다름없어 보인다. 의자, 책상, 그릇 등 모든 가구와 집기는 부실하고 애써 갖춘 게 하나도 없다. 벽과 책상에도 그 어떤 심미적 장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적나라하게 헐벗은 bare 듯한 공간 속 엄격한 구도자의 모습을 한 부르주아... 템즈강을 사이에 두고 세인트폴 대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런던 최고의 미술 성지인 '테이트 모던'에 기세 높이 들어선 <마망>...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가시관 같은 철사 후크가 박혀 있는 문짝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성실하고 꾸밈이 없으며 단출한 그녀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이 공간에서 삶은 상처를 관통하며 위대한 예술로 승화된 것이다.







 

공간이란, 그저 취향대로 꾸미는 것만은 아닐 터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되묻게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의 과정이 드러나있다. 꿈이 반영되며 때로는 결실이 나타난 곳이기도 하다. 나의 평범한 공간을 떠나 여러 분야에서 '검증되고 인정받는' 명사들의 사적인 공간을 기웃거리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누린다. 그러면서도 반성하고 배운다.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의 문제이기 이전에 태도와 정신, 영혼의 문제 아닐런가. 이런 면에서 2층에 가득한 예술가들의 집에 한껏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내가 지극히 좋아하는 삶의 방법인 예술. 이 특별한 세상에서 특별한 자취를 남긴 이들에게서 현재진행형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배운다.

 

 

루이즈 부르주아 외에 폴 세잔, 데이비드 호크니, 도널드 저드 등 20세기 이후의 찬란한 이름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2층 전시장은 마치 방이 여러 개 딸린 아파트 같다. 방마다 문을 활짝 열어 놓았고 방과 방이 분리된 듯하면서도 이어져 있기 때문에 동선이 여러 갈래가 될 수 있다. 행여 빠뜨리고 넘어가는 섹션이 생기지 않도록 사방을 잘 챙기며 다녀야 한다. 볼 것이 많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또한 좋은 시간이 계속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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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VISITE PRIVÉE (1) (feat. 남산 피크닉) | 아트다이어리(그림으로 쓰는 일기) 2023-05-01 18:44
https://blog.yes24.com/document/1793067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건축, 공간, 사진. 이 아름답고 멋진 이야기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은 남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 여기에 여러 시대를 관통하는 명사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마침... 여기가 바로, 피크닉이라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너무 황홀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시간을 맞는다.

 

 

앞으로 영원히 좋아할 이름, 프랑수아 알라르Francois Halard.

지금부터 영원히 간직할 장면들, Visite Privee

 

너나 할 것 없이 대단한 인물들이 맞이하는 입구를 지나,

모든 세상의 멋진 공간들을 만나게 될 전시관에 다다른 후, 

'사적인 방문'이 시작될 문을 드르륵.

집들로 이루어진 이 전시 자체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문패처럼 생각해도 좋을 액자, 심플하지만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악셀 베르보르트Axel Vervoordt -앤트워프, 벨기에 2009

 

앤트워프 근처의 12세기 성을 집으로 삼고 있는 베르보르트.

매우 현대적으로 보이는 오래된 것과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현대적인 것

자연과 불완전함, 겸손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본의 '와비사비'를 연구하며 얻은 서양식 '와비' 스타일

알라르가 찍은 방 하나하나가 마치 단일한 작품처럼 느껴지는 사진들



 

 

도미니크 메닐Dominique de Menil-휴스턴, 미국 2016

 

미국 휴스턴을 대표하는 미술관 '메닐 컬렉션'을 만든 메닐 부부의 갤러리 같은 집

심플하고 단정한 주책 디자인. 이에 철저하게 반하는 다양한 색조의 패브릭과 우아한 가구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일일이 컬러를 섞어 칠한 벽. 이를 돋보이게 하는 광범위한 예술 작품들. 레제의 작품과 함께 옐로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이 장면. 현대적인 그림을 중심으로 토속적 돌조각을 좌우에 두었다. 천정의 조명과 흡사한 램프를 조각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진다. 조명 빛의 부드러움과 소파의 패브릭에서 퍼져 나오는 따뜻함... 레제의 화폭에서 튀어 오르는 에너지를 여유로움으로 바꾼다.



 

 

이브 생 로랑&피에르 베르제 Yves Saint Laurent &Pierre Berge-파리, 프랑스 1984

 

현대미술, 바로크 청동, 골동품 은식기, 조각상, 카메오, 중국과 아프리카 보물 등등

화려하고 파격적인 패션의 세계에 걸맞게 방대하고 과감한 컬렉션... 그러나, 나의 시선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기괴하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집에서는 못 살 것 같다. 내가 이브 생 로랑의 패션을 알지 못해서일까. 앤디 워홀에서 영감을 받은 팝 아트 의상, 브라크를 모티프로 삼은 가운, 호화로운 마티스 이브닝 가운 등을 상상해 보면서 이 사진들에서 포착되는 이브 생 로랑과 그의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의 실내를 살펴본다. 단 하나 단박에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 바로 피트 몬드리안의 구성 작품. 이를 응용해서 1965년 미니 드레스를 만들었다니 찾아보아야겠다.



 

 

빌라 판자 Villa Panza -바로세, 이탈리아, 2003

 

50년대 말부터 미국 현대 미술 거장의 작품을 주로 수집했으며 때로는 전시를 통째로 구매했다는 대부호의 저택. 이 방대한 공간에다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사들인 작품을 하나하나 직접 배치했다니 주세페 판자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찌하여 이런 행운을 누리게 되었을까. 하나의 통일된 원칙이나 취향이 느껴지는 대신 서로 접점이 없어 보일 정도로 다양한 실내 풍경이다. 눈이 아려오는 붉은 화려함,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연두와 노랑, 벽면에 놓인 의자의 개수를 하나 달리함으로써 전체적인 절대 균형을 살짝 흔들어 놓은 방. 파란 화병과 보랏빛 꽃으로 절대 엄숙에 부드러움을 더하는 묘미.




 

 

랑베르 저택 Hotel Lambert- 파리, 프랑스 1993

 

파리 여행 때마다 생 루이 섬을 호젓하게 산책해 보는 것을 주요 플랜에 집어넣는다. 2016년 첫 여행 때에는 섬의 초입에 위치한 카페에서 호젓하게 카푸치노를 마시는 데에 성공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백 미터 정도밖에 걸어보지 못했다. 2019년 4월 말, 첫 일정으로 찾아가서 드디어 실현... 그러나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도통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예정에 전혀 없던 아이스크림 가게 '아모리노Amorino'로 피신. 차갑게 젖어가고 있는 창밖 거리를 바라보며 차가운 아이스크림 한 스푼 한 스푼. 바람에 우산은 계속 뒤집히고. 몇 걸음 우왕좌왕하다가 버스를 타고 숙소로 후퇴. 올해에는 마지막 날 오후 일정으로 잡아 두었지만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희망 일정상으로는 '랑베르 호텔'을 찾는 것이 제1번이었다.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연인 샤틀레 후작부인과 기거하며 물리학 실험을 했다는 전설 같은 실화의 흔적을 찾고 싶어서였다.

 

 

베르사유 궁전의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 위 르 보우가 지은 1640년대의 건물이자 그 독보적 아름다움이 인정받아 1862년 역사 유적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에서 이 저택의 전설이 시작된다. 쇼팽이 연인 조르주 상드와 기거했고 화가 들라크루아도 머물렀으며 숱한 귀족들과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파티를 열었다. 알라르의 사진 속 저택은 화려하지만 텅 비어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이 사라진 찬란한 인생들을 기념할 뿐이다. 가보지 못한 공간이지만 '떠들썩한 공연이 끝난 후 같은 쓸쓸함과 공허함'이 밀려든다. 올해 겨울 내가 여기에 갔었더라도 이 장면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2013년 화재가 발생하여 17세기 대가들의 그림과 벽화, 그리고 여기 보이는 샤를 르 브륑의 프레스코 천장화가 대부분 손상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오직 사진으로만 남게 된 세상이라 생각하니 애틋함이 깊어진다.


 

 

라파엘 Raphael, 빌라 마다마 Villa Madama - 로마, 이탈리아 2015

 

파란 바다가 실내로 스며 들어오는 걸까. 이런 환상적 공간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실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37살의 나이에 요절해버린 불행마저 라파엘로를 전설로 격상시킨다. 로마 바티칸의 벽화 <아테네 학당>과 그가 안치된 로마 판테온에서는 라파엘로가 여전히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이 사진 속 빌라 마다마에도 라파엘로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가 설계를 맡은 최소의 르네상스 궁전이지만 2년 후 세상을 뜨게 되어 그의 제자들이 완성했다. 빈틈없이 장식이 들어가면 복잡하고 자칫 조잡해지기 마련일 텐데 라파엘로의 작품은 섬세하고 정교하면서 가히 우아하다. 아무도 없는 저 파아란 복도를 거닐 수 있는 특권을 누군가는 누리고 있을 테지.



 

 

전시장의 1층은 피크닉의 정원 쪽으로 열린 공간도 있다. 통창으로 햇빛이 그대로 들어온다. 건물 바깥의 파릇파릇한 계절이 전시의 일부가 되어 있다. 평일 점심대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 전시 타이틀처럼 '사적인 방문'을 하고 거다. 비록 사진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놀라운 시선이 열리고, 비록 이런 특별한 공간들이 내 것이 아니고 (이 생에서는 아마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겠지만) 결코 가 볼 수 없어라도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싶다. 남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남의 꿈이 실현된 결정체적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부럽지만) 아름다움을 알아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알버트 프레이 Albert Frey-팜 스프링스, 미국 1995

 

전시에 들어서기 전, 아트숍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 여기 있다! '여기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리?!' 책상이, 침대가, 검고 짙은 갈색으로 서늘한 세월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암석 덩어리 사이에 있다. 머리는 항상 명료한 사유로 넘칠 것이고 가슴은 날마다 웅장해져 한순간도 위축되거나 사그라들 일이 전혀 없을 것 같다. 어떤 날씨에서도 보호해 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댈 수 있을 것 같은 저 바위 덩어리들!

 

 

미국의 팜 스프링스 시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 '사막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건축 스타일의 대표작. 부피감을 신중히 계산해 지었고 바위 하나 건드리지 않고 원래 있던 그대로를 끌어안아 지은 '주택'이란다. '바위 사이 침실에 잠시 들어온 한 줄기 빛'을 상상해 본다. '비와 함께 촉촉하게 젖은 이날 집의 풍경은 차분하면서도 고요한 여운을 남긴다'... 이 문장에 머무를 때마다 느껴지는 이 기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빌라 노아유Villa Noailles-이에르, 프랑스 2000

 

1923년 프랑스 모더니즘 건축의 사례 중 하나로 설계. 햇살, 전망, 현대성, 그리고 단순함. 만 레이, 장 콕토, 피카소, 미로와 발튀스 등 당대 문화 예술계 인사들의 '만남의 광장'. 흑백 사진 속에 간결하게 드러나있는 모습과는 달리 막강한 스토리가 깃든 건축물이다. 만 레이의 초현실주의 영화의 일부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고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사진을 헌정하기도 했고... 이곳에서 열린 파티들이 보그 잡지를 장식하기도 했고... 아트센터로 변모하여 여러 분야의 행사를 주최한다는 사실들에 비해 단출해 보인다. 저 벽시계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을까. 금 가고 벗겨진 벽으로 보아 버려진 곳 같은 쓸쓸함이 감도는 이 공간,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수영장이라고 한다. 물이 전혀 없는 저곳에 걸 터 앉아 시곗바늘이 혼자 움직이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뭔가가 복잡하게 쌓여 있는 현실의 공간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이곳을 상상해 보기로 한다. 말갛게 자유로워지리니. 알라르에게도 특별한 집인 것 같다. 모더니즘 사진 작업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곳이라 하니 말이다. '일부러 각도를 비틀고 초점을 흐릿하게 맞추어 건물의 질감보다 공간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풍부한 양감과 명암을 강조했다',라는 설명에 맞추어 사진들을 유심히 본다.



 

 

메종 드 베르 La Maison de Verre-파리, 프랑스 2007

 

파리 7구에 있는 '유리의 집'. 낮에는 외부의 빛이 안으로 부드럽게 쏟아져 서정적이고, 밤에는 내부의 조명으로 인해 거리를 노란 등불처럼 밝히는 집. 21세기에 듣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1928년부터 3년간 지은 집이고 병원 겸 자택으로 쓰던 곳이다. 가만 보면 꼭대기 층은 이 유리집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마지막 층에 거주하는 여성이 집을 팔지 않아 이곳을 제외하고 리모델링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거의 백 년 전에 설계한 집인데 강철을 쓴 구조라든가 실내의 기능성을 살린 장치라든가 '시각적 개방성을 위해 타공 메탈을 활용한 부분'등 시대를 앞선 혁신적인 디자인이 가득하다. 혹 다음번 파리 여행 때 이 불 켜진 외관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까.


 

 

빌라 케릴로스 La Villa Kerylos-보리유쉬르메르,프랑스2000

 

하이 집은 얀 돛을 펼친 듯한 절벽 위에 서 있다고 한다. 사진에는 보리유 쉬르메르의 바다가 보이지 않아 상상이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기둥에다가 옛 문명을 되살린 듯한 가구와 벽화, 조각들이 보인다. 한 사람의 지적인 연구과 예술적 야심에 따라 기원전 2세기 델로스 섬의 호화로운 궁전이 부활된 모습이다. 프랑스 고고학자 테오도르 라이나흐가 고대 그리스 시대를 되살려보리라는 꿈으로 1902년-1908년 사이에 실시한 프로젝트라 한다. 이곳에 속한 나머지 사진들과 이질적으로 보이는 골드 광채의 큰 공간. 이 차분한 우아함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집의 주인은 여기서 무엇을 했을까. 옅은 레몬빛 조명과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속에서 그리스적인 황홀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안토니오 카노바 Antonio Canova-안토니오 카노바 박물관,포샤뇨Possagno,이탈리아2021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서 사람 구경을 하는 대신 리슐리외관의 조각 공간을 선호한다. 숱한 인파들 틈에서 벽에 모셔 놓은 그림들을 보는 것은 거의 탈진에 이르게 하지만, 조각 전시실은 실내의 정원과 다름없다. 천정을 덮은 유리를 통해 자연 채광이 들어오고 내 키를 두서너 배 이상 훌쩍 넘는 조각상들이 하얀 빛을 발하며 숲을 이루고 있다. 조각 사이에 앉아 보기도 하고 조각들 사이를 가볍게 걸어 다닐 수도 있고 가까이에서 또는 멀리서 이 여러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있는 조각들 사이의 완벽한 조응을 감상할 수 있다.

 

 

돌 사이에 들어서면 왜 이렇게 차분해지고 안정이 되는 걸까. 이 기분을 알라르도 알고 있을 것이다.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가 신고전주의에 감명받아 '고전 문화의 순수하고 완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조각을 했다. 알라르 역시 어린 시절부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심취해온 터라 이 카노바 박물관에서 '자신의 오랜 이상향을 마주'하고 '불완전한 현실 세계와 철저히 분리된 이상적인 조각품'을 앵글에 담았다. '조화와 균형을 갖춘 절대적인 미의 순간들은 현실에서는 가지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신성하고 성스럽게 느껴'진다. 내 기억에 심어둔 루브르에도 이 사진들 속의 카노바에도 '아무 말 없는 거대하고 온화한 조각품들'이 고유의 호흡을 하고 있다. 그 앞에 서는 자들은 최적의 '명상의 시간'으로 안내된다.



 

피크닉의 전시 '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VISITE PRIVEE'는 일반적으로는 접근이 안되는 사적인 공간들을 보여준다들어서 금방 알만한 명사들도 있고 귀에 익숙하지 않는 명사들의 이름도 있다. 전시 안내 리플릿에 수록된 명사 리스트만으로도 대단한 전시임에 틀림없다. 지금 여기에서가 아니면 언제 어디서 접할 수 있으랴. 어차피 들어갈 수 없고 따라 할 수도 없는 절대 특별한 공간들. 안 봐도 그만이지만 보게 된 이상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주인이 사라졌거나 주인이 자리를 비운 공간들이 홀연히 나에게 말을 걸어 온다. 결국 모든 전시의 주체는 나 자신이 되지 않던가. 이제, 2층으로 올라갈 시간이다. 드라마틱하고 화려한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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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국제갤러리(2).알렉산더 칼더의 움직임 | 아트다이어리(그림으로 쓰는 일기) 2023-04-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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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생몰연도를 짚어 보며 깜짝 놀랐다.

1898년이라는 아득히 먼 옛날에 태어나서 1976년, 역시 한참 옛날인 때에 세상을 떴다.

그러나, 2023년 현재 보기에도 퍽 획기적이다. 이 옛날 사람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는 어찌해서 이토록 시대를 뛰어넘는 발상을 해낼 수 있었을까. 내 눈앞에 '모던'하게 펼쳐지는 작품들이 모두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작가가 방대한 양의 작품을 제작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라 한다)에 탄생했다니! 지금부터 80년도 더 전에 철판과 철사로 얇디얇은 조각을 만들어 공중에다가 매달기로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호흡으로 당연히 여겨질 뿐 결코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공기가 인간의 가시적 영역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국제갤러리 K3. 마치 원기둥처럼 특정 면이 없이 드러나있는 데다가 워낙 독특하고 멋진 건축물이라 바깥에서 한 바퀴 둘러보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 쇠그물망 같은 재료로 덮어둔 듯한 외관이 이채롭다. 삼청동 어느 뒷골목으로 나가는 낮은 대문이 있어 주위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에 튀며 약간의 위압적 기세를 가하는 현대 건축과 다르다. 한 켠에 텃밭이 있고 호박이 넝쿨째 열려 있기도 하다. 한옥관과 더불어 몇 채의 한옥 공간이 담도 없이 갤러리 구내와 이어져 있어 내가 세련된 전시구역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K3의 내부는 정말 심플하다. 전시 내용에 따라 길쭉한 시각형 또는 사각에 가까운 타원형으로 보이는 단 하나의 공간을 가진다. 유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맞은편에 좀 더 큰 유리 문이 있어 창문이 없는 실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천고가 매우 높고 (본래 대형 설치작품을 위한 공간으로 기획된 것 아닐까 싶다) 조명도 환하고 천장과 벽은 보통 흰색으로 단장되어 있다. 높이를 장악하는 알렉산더 칼더의 시그너처 모빌이 자리 잡기에 딱 맞다. 이번 전시를 위해 군데군데 가벽을 넣고 별도의 플로어도 몇 개 설치했다. 천장에서 툭, 떨어뜨려 놓은 모빌 작품들 각각에게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전시실 안에 또 다른 여러 개의 전시칸이 들어서 있는 '분류'가 생성된다.

 

알렉산더 칼더라 하면 대표 색상이 퍼뜩 떠오른다. 빨강-파랑-노랑의 삼원색에다가 흰색과 검정이다. 다양한 크기의 철판이 공중에서 공기와 섞여들며 나부끼기 위해서는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주면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색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K3에는 17번부터 34번까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K1에서 K2로 직행한다면 K2 1층에서 1번부터 16번까지의 작품을 먼저 만나게 된다. 나의 경우엔 매번 동선이 K1에서 K3으로 옮겨지다 보니 관람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칼더는 모빌을 먼저 만나고 회화(과슈 작품군)로 이동하는 편이 올바르지 않을까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과 직관으로 경험하고 나서 눈에 보이게 고정된 것을 통해 이전의 비가시적 상황을 짚어 보는 편이 더 순조로울 것 같다. 문제를 해독하려고 애를 써본 후 해설지를 들여다보며 '아하'라고 알게 되는 편이 더 바람직한 것과 같은 이치다.

 

 

공기 중을 부유하는 칼더의 모빌로부터 공기의 존재를 포착하면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에 대해 나름의 상상을 하게 된다. 모빌의 부분부분이 살살 흔들리고 진동하는 '결'과 '촉'에 집중하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게 된다. 관람의 상황에 동력이 일어나며 작품- 주변 환경-관람자 사이에 접점이 생겨난다. 이는 끌림이기도 하고 반응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면서 생동성과 역동성의 범주에까지 이르게 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볼 수 있게 된 공기를 타고 리듬을 형성해 내는 모빌과 박자를 맞추게 되면 몸도 정신도 자유로워지고 가볍게 된다. 문을 밀치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Untilteld .c1945>을 따라 시선이 위를 향하게 된다. 홀로 온통 빨간색으로 드리워진 이 모빌은 회색과 흰색의 벽면을 바탕으로 하는데 마치 무대 위에 단독으로 올라선 무용수처럼 돋보인다. 입구에 있다 보니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사람들이 들어서고 빠져나갈 때마다 바깥공기와 실내 공기를 함께 받아 가장 직접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작된 감탄은 그 호흡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이에 곧 성대하게 차려진 <Roxbury Front>와 그 아래에 질서정연하게 펼쳐진 동식물 군을 접하게 된다. <Still Life> <The Flower> <Fawn> <Whip Snake> <Egg-Beater> 등 각자 고유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 작은 브론즈 조각들이 그 위에 커다란 호를 그리며 훨훨 날고 있는 <FRoxbury Fron>와 절묘한 대비를 자아내어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들어서며 바라보기, 전시실 중앙에서 다시 바라보기, 전시실 안으로 한참 들어가서 입구 쪽과 함께 바라보기 등 어디에서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계속 달라지고 바뀐다.




 

 

천정에서 머리 바로 위로 마치 삼각 지붕 아래를 통과하는 것 같은 구조를 지나면서 '여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이 증폭된다. 좌우로 다시 크고 작은 것의 대비, 천정에 매달린 모빌과 바닥에 고정된 것의 조화가 포착된다. <Guava>는 날개를 더 길게 늘어뜨렸고 잔가지가 더욱 많아 움직임의 스케일이 한결 더 커졌다. 검정이 널따랗게 주를 이루고 단 하나의 노랑과 하양이 포인트가 되는가 하면 둥글게 작은 여러 개의 빨강이 균형을 맞춘다. 미지의 세계에서 날아든 생물체인 듯 공중에 달아놓은 선박 형상의 기념비인 듯 .... 엄청 큰 날개 아래 자그마하게 대롱대롱 이어져가는 조각들은 통통 튀어 오르는 비누거품을 닮았다. 이를 커튼 삼아 한 걸음 크게 구석으로 들어간 자리에는<Untitled c.1940>이 오도카니 앉아 있다. 빨-노-검의 철판은 작은 각을 띠어 예리해 보이고, 와이어의 뼈대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날렵함을 더해졌다. 여기서 오른편, 상점의 진열장 같은 공간 안을 들여다보게 했다. <Grand Piano, red> <Toadstool with Featehr> <Untitled c. 1955> <Untitled c. 1946> 그리고 <Four Dots and Brass Tail> 등 5점의 작품들은 아기자기하고 유머가 느껴진다. 손바닥 만해진 철판은 색종이 같아 구부리고 붙이고 색칠하며 만사태평하던 어린 시절 미술 시간을 생각나게 한다. 



 

 

하마터면 손으로 만질 뻔했다. 그 어느 모빌보다 한참 아래로 내려와 있어 바로 눈앞에 있다. <White Ordinary>는 흰색의 동그라미와 검정 와이어로만 이루어져 있다. 가까이에 서 있는 <Puntos Blancos>의 흰색으로 이어지며 연한 물보라가 찰랑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하얀 물결 틈에 돋보이는 빨강 동그라미 하나, '하얀 점들'이라는 이름에서 외면받고 있다. 달리 보면, 두 개의 파도 더미 사이에서 장렬하게 타들어가는 태양일 수도 있겠다. 이름에 끼어들 필요조차 없는 주인공이 된다. 철판 sheet steel, wire, paint가 전부이어서 지극히 단순하고 '별것 아닌'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 알게 된다. 그래도 왜 이렇게 단아하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걸까. 회색 톤의 벽에 아른거리는 그림자마저 신비로워진다. 커다란 유리 문을 통해 바깥의 현실 세계가 스쳐 지나간다. 일상과 예술이 일직선에 놓이는, 언제나 바람직한 순간이 목도된다.

 

 

<Caged Stone and Fourteen Dots>에는 실제로 돌멩이 하나가 포함되어 있다. 이름에 걸맞게 철사로 '새장' 모양을 만들어 넣어두었다. 동그라미가 14개 맞겠지. 와이어에 빨강 페인트를 입혀 경쾌함을 더했다. 갑자기 풍차가 있는 튤립 꽃밭이 생각난다. 크기는 다르지만 모두 차분한 동그라미이어서 한 방향으로 합창하고 있는 듯하다. 이 위에는 <London <maquette)>이 어우러져 있다. 들어오는 입구를 도맡고 있던 빨강과 거의 같은 모양이라 내 사진 속에서 금방 찾아내질 못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 London을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London을 향한 무조건적 애정이 그대로 대입되어 여기에서 가장 예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리듬감을 살려 꺾어 놓은 선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완만한 경사의 층위를 이룬다. 꽃잎처럼 가지런한 붉은 조각들도 차분한 율동성을 수호하면서도 단조롭지 않게 조금씩 다른 각도를 취하고 있다. 과거의 신화에서 날아든 신비의 결정체가 이 시간 유려한 전설을 이루며 나에게 런던의 모든 이야기들을 추억케 한다.


 

 

한 번만 오기에는 너무 매력적이고 한번 둘러보고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운 전시이다. 특별전이 아니라 상설전으로 오래오래 마주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 아쉬움에 무거워지는 발걸음. 봄날의 기분 좋은 햇살과 바람이 있어 다행이다. 오늘도 K2로 오가는 길은 정겹다. 한옥의 기와를 닮은 낮은 담벼락에 잠시 기대어 있어도 좋고, 오솔길을 따라 높다랗게 울창해져 있는 나무들을 한껏 올려다보아도 좋다. 꽃과 나무가 성대하게 가꾸어져 있어 여기가 대도시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이 자리에서 찍은 사진만 해도 수십 장. 그래도 매번 달라지는 분위기에 카메라를 들이대게 된다.



 

 

K2의 1층 전시실은 칼더의 과슈 작품들을 위한 공간이다. 여태껏 어디에서도 칼더의 과슈 작품을 본 적이 없기에 무척 궁금하다. 공기와 더불어 흐르면서 공기의 존재를 눈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그의 모빌 작품들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까. 갤러리 측의 해설에 따르면 'K2에 설치된 과슈 작품들은 공간 구성에 대한 작가의 실험적 발상을 구현하는 조각 작업과 강력히 공명하는 작품군'이다. 꽤 어려운 설명이지만 칼더의 조각과 과슈 작업을 한 선상에서 볼 준비를 하게 한다. 다음 설명이 더 마음에 든다: K2와 K3에 전시된 칼더의 과슈 및 조각 작품들은 마치 보컬과 각 악기들이 서로 호응하며 상호작용하듯이, 선창과 후창이 이어지는 악구의 반복처럼 일종의 음악적 대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조각에서 '느끼고 상상했던' 비가시적 흐름을 '눈으로 보며' 좀 더 구체적으로 포착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이 회화적 과슈 작품들에게 부여되어 있다. 경계 없는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거느리고 있는 조각 작품을 한 장의 정해진 영역 안에 과슈와 잉크로 색을 정해서 변주해 놓았다고 보면 될까.

 

모빌과 과슈 간의 평행이동 내지 모빌을 진원지로 하는 확장,이라는 관점을 잡고 살펴보자. 우선, 16점의 과슈 작품에도 동일한 색상을 입혀져 있다. 모빌 작품과 마찬가지로 빨-노-파-흰 -검이다. 전시실 입구로 들어서 왼편에서 1번에서 3번까지의 Untitled는 각각 회오리 모양, 여러 크기의 동그라미, 동심원을 보여 준다. 모빌 조각 주변에 흐르면서 유유히 반향을 일으키는 공기의 모습도 이러할 것이다. '병'을 찾아라. <The Bottle>에는 빨강 액체를 절반 정도 담은 병 하나가 거의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다. 노랑으로 가득 찬 표주박 모양의 형체도 유리로 된 병일 수 있다. 뾰족한 삼각형들과 나선형의 실선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빌을 연상케 한다. 공기의 파동에 의해 계속 맴돌며 진동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이번에는 '꽃'과 '꽃 봉오리'를 찾을 수 있다. 6번 <Yellow Flower, Red Blossoms>는 자연으로 옮겨가 바람에 노출되어 좀 더 격렬한 움직임을 보여 준다. 칼더의 모빌들도 모두 실내에 피어 있는 꽃이라 할 수 있겠다. 웬 '오징어'? 9번 <Black Squids>에서 유머가 확 느껴진다. 빨간 해초 사이에 검은 먹물을 통통 튀며 아래로 헤엄쳐 내려오는 네 마리의 오징어를 발견한다. 느닷 없이 오징어링 튀김 한 접시가 생각나기도 하고. 뼈가 없어 자유롭게 물속을 흐느적거리며 유영하는 오징어, 공기 속에서 부정형적 울림을 빚어내는 모빌과 닮았다고 생각해도 될 터이다. 공기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공기로 인해 자유로와지는 모빌의 이미지를 물 속으로 깊이 내리면 물의 꽉 차오르는 압박에 부딪혀가며 그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오징어의 이미지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9번, 10번, 11번을 한 장면으로 묶으니 왠지 호안 미로의 그림들이 생각난다. 미로 역시 이런 원색 계열을 애용하며 알듯 모를듯한 선과 면으로 장난기 어린 천진난만함을 화폭에 담고 있다. 미로가 좋아하는 하늘, 해, 별, 새 같은 조형물이 칼더의 이 세 작품에서도 보이는 것 같다. 예술은 결국 자연을 닮아 가는 것 아닐까. 12번 <The Signed Balloon>이 유독 좋다. 오른쪽 하단 맨 오른쪽의 하얀 동그라미에 'Caler 69'라고 서명이 적혀 있다. 1969년 작품임을 알려준다. 내가 좋아하는 블루 계열이 모빌에는 등장하지 않아 아쉬웠는데 과슈 작품들에는 눈에 보이다가 이 작품에서는 단독 배경색을 차지하고 있다. 원래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우리의 호흡이 되는 공기는 이렇게 싱그럽고 쾌청하련만! 칼더의 화려하게 뻗어 나간 모빌들을 추상적으로 압축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13번 <Blue Eye, Red Eye>에도 흐름이 가득하다. 서로 대비를 이루는 두 원색이 검정 선으로 이어지며 하얀 공간을 공유한다. 뱅그르르 돌고 있는 방향이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14번 Untitled는 아무래도 10번에 등장한 오징어들의 재등장 아닐까. 불가사리들 사이에서 또는 더 날카롭게 일렁이는 해초들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있는 오징어를 상상해 본다. 아, 맞다 맞아! 어릴 적 책에서 칼더의 모빌을 처음 보았을 때 엄청나게 큰 바람개비라고 여겼었지! 15번 Untitled에 '바람개비 pinwheel'이라고 제목을 붙어 주고 싶다. 빨-파-검의 세 개의 날개가 큼지막한 원을 그리며 휙휙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중앙에 마치 모로 세워놓은 태극 문양 같은 원은 바람개비 주변에 띄워 놓은 풍선일 테고. 이렇게 칼더의 과슈 작품들은 유쾌한 상상을 잇게 한다. 지나온 벽면들을 다시 휙 둘러보며 멀리서 다시 그 흐름과 움직임을 느껴본다. 아, 이제 마지막이다. K3에 자리한 칼더의 모빌을 상기시키려는 듯 눈보다 낮은 위치에 사방형의 조각을 세워 두었다. 16번<Crag>는 '거대한 바위'를 의미하지만, 전혀 위압적이지 않다. 암반으로 된 산을 연상케하는 검정 입체적 조각에 다시 칼더의 시그너처 색을 입은 화려한 모빌이 몸체를 걸치고 있다. 마침 바로 옆에는 바깥의 정원이 훤히 내다보이는 큰 통창이 있어 하늘을 향해 훤칠하게 뻗은 나무들과 모빌은 서로 반향을 일으킨다.

 










 

 

눈에 보이는 공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과 서로 '통'해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칼더의 세계에서 배우는 경험이 아닐까. 모빌의 형태와 색깔에 주목하면서 동시에 그 주변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일으키고 있는 공기를 가늠해 보는 것, 내 눈앞의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보이면서 내재하는 본질이나 정서에도 신경을 써 보는 것. 올바른 감상이고 올바른 관계 맺기일 것이다. 한차례의 관람은 큰 파동을 몰고 온다. 내가 무엇을 보고 발견하게 될까. 아무것도 보지 못할까 봐 좀 겁이 나기도 했지만, 나름 기대 이상의 것을 본 것 같아 안심한다. 재관람의 시간이 더욱더 기대된다. 처음 보는 것처럼 또 사진을 찍겠지만, 카메라의 렌즈보다는 나의 눈이 더 깊은 반응을 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라는 사실에서 흥분은 잦아들고 하나하나 더 애정을 담아 '잘' 볼 수 있을 거니까 말이다.


 

 

<PS>오늘 국제갤러리 관람을 마치고 모처럼 이 일대를 다녀 본다. 일단 갤러리 건물 1층의 카페에서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빵을 사 담고 출발. 목적지는 수년 만에 삼청동 수제비. 점심시간을 한참 지난 3시, 딱 3분 대기 후 입장하는 행운을 누린다. 점심을 이렇게들 늦게 드시나 아니면 간식으로 먹고들 계시려나. 매장은 계속 만석이다. 약간 퍼진 것이 매력인 수제비와 좀 진득진득하니 구수한 감자전. 탁자 위 단지에서 마음껏 덜어 먹을 수 있는 두 종류의 김치가 일품이다. 흰쌀밥에 걸쳐 먹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불편할 정도로 배가 부름에도 불구하고 단것의 치명적 위험을 알면서도 설탕이 알알이 살아 있는 추로스를 디저트로 선택한다. 진한 아메리카의 묵직한 풍미 덕택에 뒷맛은 안정적이다. 오늘 아니면 평생 못 먹을까 봐 이 기다란 막대 추로스를 3개 더 포장 주문한다. 디핑 초콜릿 시럽과 함께. 과하게 먹었기에 양심상 걸어줘야 한다. 햇살이랑 바람이 딱 좋다. 북촌 한 바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새삼 멋있어 보이는 한옥 기와집들 ... 한복을 차려 입고 기념 촬영을 하는 관광 인파들 너머로 한 장 찍어 본다. 보고 먹고 걷고 .... 일상 속에서도 만족스럽게 유랑하는 것...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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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국제갤러리 (1); 이우환의 관계항 | 아트다이어리(그림으로 쓰는 일기) 2023-04-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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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때마다 감격하게 되는 미술관, 국제갤러리.

이 여유롭고 세련된 공간. 디자인적으로 완벽한 건축물은 기본이라고 말한다. 자연스러운 야외 공간까지 한품에 거느리고 있어 이곳은 각박한 대도시의 본질에 어긋난다. 세 채의 전시관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햇빛과 바람을 만나게 되어 있고, 아담한 한옥 공간을 가까이에 두어 고즈넉함이 어떤 분위기인지 알려 준다.

 

매번 전시도 공간적인 탁월함에 버금간다. 국내외의 굵직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걸리고 그들의 명성을 대변하는 양질의 작품들이 당연하게 선보인다. 더욱 놀라운 점은 무료 전시라는 사실!

 

올해로는 처음으로 찾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놓쳐서는 안 될 두 사람의 이름. 바로 이우환과 알렉산더 칼더! 장-미셀 오토니엘의 (자그마한)전시 Wonder Block도 (16일까지)진행중이다.

K1, K2 그리고 K3 전관 (K3 앞의 정원까지 포함)에 전시를 여는 경우는 특히 '볼만한' 행사임을 말해준다. 이 두 예술가의 콜라보 전시는 아니지만, 분명 같은 기간에 나란히 있어도 서로 거슬림이 없는, 공통분모가 없어 보여 되레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내포하고 있는 병치 juxtaposition이다.

 


 

 

 

4월 4일에 시작되어 5월 28일까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번 전시는 거의 모든 날짜의 모든 시간대가 매진되어 있다. 부지런히 움직여 네 번 관람하도록 준비를 해 두었고, 동행할 가족과 친구들에게 크나큰 선물을 해주는 것 같아 뿌듯하다. 4월 12일 첫 방문. 관람 전 사전 정보를 최소한만 챙겼기에 기대 속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분명 이우환의 회화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 연작은 없다. 재작년인가 작년인가 프랑스 아를에 마련된 이우환의 공간을 대표하던 '관계항' 연작을 국내에서 나도 만날 수 있게 된다.

'관계 relation / relationship'과 사뭇 다른 '관계항 Relatum'을 이우환의 작품에서 알게 되었다. '관계'는 규정지을 수 있는 반면 '관계항'은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를 의미한다. 쌍방향적인 양자 또는 다자 구도보다 작품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과 작품을 대하는 관람객 한 명 한 명에까지 직접성과 주체성이 부여된다. 관람객으로서 나는 어떤 '주체'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K1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벽, 그저 하얗고 다만 검정으로 이름과 기간을 적어놓았을 따름이다. 1950년대 말부터 지금껏 작가가 주도해온 '모노하' 운동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면서 이번 전시의 분위기를 짐작게 하는 장면이라 하겠다. 늘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1번 방. 두 개의 벽을 아우르고 있는 큰 투명창으로 봄의 시간이 가득 그려진다. '관계항'의 주재료이자 주요 요소인 돌과 철판이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자연을 대표하는 돌 natural stone과 산업 사회를 상징하는 철판 steel plate. 본질상 이질적이며 질감도 형태도 대립적이기 마련이다.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짙은 색감과 유려한 휘어짐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철판. 몇 개는 철판 뒤에 가지런히 숨어 나오기 자체를 꺼려 하고 자그마하고 동그스름하여 도저히 상대할 만하게 보이질 않는 돌덩이들. 제목은 <Relatum - a Corner>이며 코너가 아닌 공간의 한복판을 혼자 차지하고 있어 철판의 앞 옆 코너에 조그맣게 놓인 돌덩이에서 수수께끼를 풀어보게 된다. 철판의 코너를 돌면 네 개의 돌덩이가 나타나는 모습에 제목을 갖다 붙여보기도 하고.




 

 

이우환의 이렇게 담백한 그림은 처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드로잉이다. 회화 연작 <Dialogue>과 연계된 드로잉이라는데 <선으로부터>나 <점으로부터> 연작과도 닮았다.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검정과 회색의 굵은 점 내지 면은 한 번에 찍어둔 느낌이 난다. 흘러가는 구름을 뭉게뭉게 풀어놓거나 가느다랗게 늘어뜨린 것 같은 선들도 끊어지지 않았다. 돌과 철판의 앙상블처럼 대비를 이루면서 은근한 여유를 전달한다. 아무것도 없는 여백에서 오히려 팽팽한 그 무엇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빈 것은 채워야만 한다는, 뭐든지 비어두면 안 된다는, 채움에의 강박이 밀려들면서도 천천히, 여유 있게...라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호흡이 스며든다. 점과 선의 'dialogue'이면서 일상의 나와 작품 앞의 나 사이의 'dialogue'가 이루어진다. 단순한 번잡함을 벗어나 밀도 높은 멈춤을 배워보라 권한다. (내 시선에 맨 오른쪽에 있던 드로잉이 내 화면에는 잡히질 않았다. 다음 관람 때 이 사라진 작품부터 찾아야겠다)

 

드로잉의 맞은편, 조명이 확 낮아지며 동굴에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Relatum - The Kiss>.제목 그대로 눈에 보인다. 두 개의 돌덩어리가 맞닿아 있고 각각을 둘러싸고 있는 쇠사슬도 부분집합을 그리며 바닥에 놓여 있다. 이 역시 'dialogue'라 할 수 있겠다. 묵직한 강철판의 이미지를 벗고 은색에 가까운 빛을 발하며 부드럽게 엮어진 쇠사슬에서 일종의 감미로움마저 느껴진다.



 

 

 

K1을 벗어나 K3과 K2로 가는 길. 늘 산만해진다. 모던한 건물 내부에 있다가 도시의 흐트러진 공기를 흡입하게 되는 순간, 정작 관심을 끄는 것은 한옥스러운 것들이다. 고급스러운 서점, 진열장 앞에서 오늘도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내친김에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책에 대한 욕구는 지식욕일까 소유욕일까 아니면 과시욕일까. 몇 가지 관심이 가는 장서들... 가격이 엄청 센 것이 오히려 다행일지도. 

 

서점의 담벼락에 우르르 떨어져 있는 돌. 이우환의 돌의 연장선일 수도 있고, 한옥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장- 미셸 오토니엘의 채색 벽돌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겠다. 한옥관은 말 그대로 한옥의 한 켠을 전시공간으로 삼고 있다. 바깥 길보다 몇 걸음 아래로 내려서면서 나지막한 지붕과 함께 다정다감한 공간으로 초청받는다. 나무 이름도 꽃 이름도 모르지만 그 색과 향, 바람과 햇살에 가만가만 흔들리는 자태에 경직된 모든 것이 해체된다. 이왕이면 한옥답게 미닫이문이면 좋을 텐데. 차가운 쇠고리를 잡아당기며 유리 문으로 방에 들어선다. 내가 격렬하게 좋아하는 블루와 핑크의 눈부신 물결... 작년 6월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마주했었던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 인기가 폭발하여 대기 시간도 길고 직사각형의 덩그런 공간에 그저 나열해둔 상황이라 그의 예술적 뉘앙스를 충분히 살펴볼 수가 없었었다. 오늘의 공간도 이 다섯 개의 놀라운 블록 기둥이 본색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하다. 멀리서부터 파랑의 물결과 핑크빛을 띤 붉은 너울거림에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보내며 한 걸음씩 다가와야 할 텐데. 들어서자마자 확, 내가 달려들며 스스로 움찔하는 바람에 은은한 광택에 서서히 잠겨드는 의식을 치를 수가 없다. 한옥의 창호 문과 모던의 첨단에 서 있는 재료가 충돌하는 동시에 서로를 흡수하며 빚어내는 오묘한 매력이 있긴 하다.






 

 

 

K1을 나와 마당 같은 공간 여기저기에 한눈팔다 보면 자연스레 K3에 들이닥치게 된다. 왜 K2가 K3보다 더 안쪽에 자리하고 있을까?!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세 개의 건물동과 서점과 방 한 칸짜리 전시실을 갖고 있는 한옥 건물 등 국제 갤러리 전체의 구조를 따져 보면 답이 나온다. K1에서 나오면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한옥관 옆으로 걸어가면 K3으로 가는 길이 되고, 한옥관 앞을 지나면 K2로 바로 가게 되어 있다. 결국, 서점 앞을 지나가느냐 뒤로 가느냐에 따라 K2와 K3에 닿는 순서가 달라진다. K2와 K3도 (사시사철 나무, 풀, 꽃으로 운치 그득한) 정원과 아기자기한 골목길로 서로 이어져 있어 사실 어디에 먼저 들어가야 하느냐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대부분 관람객들은 K1-한옥관-K3-K2로 이동한다.

 

어쨌든, K1에서 보았던 이우환의 세계는 K3의 이층으로 뚝 떨어져 다시 이어진다. 돌과 철판, 점과 선, 여백과 공명, 다소 거칠고 차가운 텍스처와 묵직한 고립의 분위기에서 완전히 헤어져 나오질 못했고 그렇다고 완전히 빠져든 것도 아닌 상태에서 ... K3으로 들어가면 알렉산더 칼더라는 다른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작품과 공간의 케미라는 측면에서 K2는 칼더의 것이야 한다. 관계항으로 공백과 울림을 전달하는 이우환의 작품에는 바깥공기와 자연 채광이 차단될 수 있는 K2의 이층이 제격일 것이다.

 

국제 갤러리의 매력 중 빠뜨릴 수 없는 포인트, 바로 K2 앞에 차려둔 정원. 짙은 나무 패널로 벽을 쌓아 주위의 콘크리트를 차단하는 동시에 하늘과 나무를 직접 연결 지으며 내가 자연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도록 이끈다. 아담한 공간이지만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어 전시와 어우러지는 예술의 묘미가 확장되는 실로 극적인 시공간이 마련된다. 여기에 올 때면 항상 파리의 '들라크루아 미술관'의 정원을 떠올리게 된다. 들라크루아가 손수 가꾼 공간으로 여기처럼 나무 벽채가 높다랗게 올려져 있어 오직 하늘과 나무 그리고 나 자신만을 둘러보게 된다. 푸르름이 한창이던 4월 말, 나무들 사이에 앉아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옳았었다. 여기 K3의 뜰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오늘처럼 정원 자체가 탁월한 전시마당이 되어줄 때는 더욱더 그리하다. 자연 채광에 드러나 있어서일까. 이우환의 철판에 붉은 기가 더해 보인다. 원래 뜰에 깔려 있는 조각 돌로 다져 놓은 사각 공간 위에 비슷한 사각형의 철판을 올렸는데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형상이다. 이유인즉 철판 아래 돌 하나를 넣었다. 제목은 <Relatum -Dwelling (A)>. 이 관계항은 더 직접적이다. 크지 않은 돌 (300 x 350 cm) 하나가 꽤 널따란 철판의 하중을 받쳐 주며 작가의 의도대로 '존재'하게 한다. 또는 제목 dwelling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돌 하나가 널찍한 철판을 지붕 삼아 안전하게 '거주'하고 있다. 받쳐주는 힘, 덮어 주는 너비, 그러면서 서로 맞닿으며 이심전심이 발생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일지도. 철판은 거울을 닮았다. 4월 중순의 바람결에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투영된다. 아직 여물지 못한 풀과 잎이 후드득 떨어져 철판에 스며든 햇살 기운 속에 노곤히 나뒹군다. 이 작은 공간에 잠시 '살아보며' 다른 차원의 생각과 감정에 물들어 보는 것, 그지없이 좋다.



 

 

 

깊은 종소리가 울린다?! 철이 이번에는 묵직한 원통으로 떡하니 서 있고 조금 길쭉해 보이는 돌 하나가 이 원통에 바싹 기대어 있다. 강철로 된 이 원통은 속이 텅 비어 있고 다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방금 들은 종소리 외에 숲속의 새, 비와 천둥, 산속의 개울이 만드는 자연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Relatum -The Sound Cylinder>는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인공의 철과 자연의 돌의 관계를 더 극명히 드러낸다. 관계에는 '울림'이 있고 이 울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사방으로 전달된다. 많은 것들이 연결되는 '열린 세계'를 보고 듣는 것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간이 좀 더 환해진다. 전구 하나가 대롱 매달려 있고 이를 중심으로 데칼코마니 같은 장면이 펼쳐져 있다.< Relatum -Dialogue>에서 두 개의 돌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K1에서 보았던 <Relatum -The Kiss>와 비슷하게 돌 주위 바닥에 일부가 겹쳐진 포물선이 있지만, 여기에는 쇠사슬이 아니라 차콜 드로잉으로 되어 있다. 전구는 물론이고 돌을 올려둔 나무 바닥도 작품의 일부이다. 빛과 선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돌의 대화에는 돌의 본질적인 차가움과 딱딱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푸근하고 따뜻하여 무슨 비밀이든 다 터놓을 수 있고 무슨 사연이든 다 넉넉하게 들어줄 것 같다. 앞서 작품에서 계속 들려오는 소리가 더욱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어 나는 내부 공간에 있지만, 돌이 이끄는 외부의 자연으로 열린다. 혼자 있지만 닫혀 있지 않고, 타자로서의 존재를 향해 열린다.

 

이우환의 '모노하'의 절정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는 하얀 텅 빈 캔버스 말이다. 분명히 물질적으로 존재하지만 아무것도 없기에 (그려지지 않았기에) 정신이 활발히 움직이게 된다. 뭐지? 뭘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품' 앞, '없음'은 침묵을 유도해야 할진대 이 하얀 캔버스를 향해 자꾸 생각을 하게 되고 이야기를 추려내게 된다. 어두워진 조명 덕분에 텅 빈 캔버스는 빛이 날 정도로 투명해지고 그 앞에 덩그러니 놓인 돌덩이는 흰 캔버스 위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돋울 수 있다. < Relatum-Seem>에는 반듯하게 설치해 둔 커다란 흰 캔버스가 무대가 되어 돌과 관람객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이끈다. 돌이 매개자가 되어 관람객은 무언의 빛을 향해 말을 걸게 된다. 한편, 돌은 흰 공간에 그대로 드러나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든다. 이를 구경하는 관람객 역시 이 상황을 통해 무언가를 알려 하고 생각하며 말하고자 한다. 모두가 서로에게 보이는 동시에 모두를 서로 바라보며 모두가 함께 관여하고야마는 공존이 빚어진다.

 

사실, 단순한 게 어렵다. 적을수록 더 많이 알고 싶어지고 이런저런 내 맘대로의 해석을 갖다 붙이게 된다. 그러면서도 알아지는 게 없어 난감하다. 이우환의 모든 것에는 The Less is the More이 맞는 것 같다. 드로잉이든 조각이든, 철이든 돌이든 선이든 점이든 극도로 제한된 재료와 표현 일색이다. 그러면서도 '관계'와 '관계항'을 내세우며 자꾸 연결시키고 오버랩시키고 부대끼며 '만나게' 한다. 솔직히, 갤러리 측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작품 하나하나가 '무한'을 표현하고 있는 메타포'로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저 말갛고 깨끗하게 단순화된 공간에서 말쑥하게 정제된 예술을 듬성듬성 대해보는 것... 이 자체로 나는 이우환의 세계가 좋다.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게 별로 없는데 충만함을 느낄 수 있고, 많은 것을 본 것 같지 않은데도 벅찬 감정이 올라오는 상황.... 이 자체로 나는 이 시공간을 가치롭게 여기며 오래오래 지니고 살 것이다. 전시해설 자료에 실린 이우환의 글을 수차례 읽어본다. 여러 겹으로 압축되어 풀어 헤쳐보는 것이 쉽지 않은, 꽤 어려운 말이다. 철판을 어우르고 돌을 매만지며 예술가로서 또한, 한 인간으로서 들려주는 그 이야기에 진심을 다해 나의 귀와 마음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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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 사람! 구스타브 카유보트 | 드디어 Paris2023 2023-04-03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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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왜 이 그림이 여기서 나와? 누군가의 모작인가? 그렇다면, 여기에 버젓이 걸려 있을리가 없을 텐데.

원래 그 그림이 하나 더 있었던 걸까. 고흐의 <해바라기>도 6점인가 7점이 있는 것처럼. 그런데, 잠깐. 뭔가 달라. 이 사람들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없고 건물도 길바닥도 흐릿흐릿...그리다가 만 것 같잖아. 다시 그림 옆에 붙은 작품 라벨을 확인해 본다.

틀림 없이 맞다.

 

Gusatave Caillebotte, Rue de Paris. Temps de pluie, 1877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그림 중 하나. 언젠가 아트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Art Institute of Chicago)에 가야 하는 이유로 삼아온 그림. 한국어로는 카유보트의 <비 오는 날의 파리>로 소개되는 그 그림이 맞다. 언제 어디서 이 작품을 처음 알게 되었는지 기억해낼 수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점은, 보자마자 바로 그순간 내 심중에 꽂혀 강력한 로망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비 그리고 비 오는 날, 내가 좋아하는 그레이 블루톤과 크림 옐로우의 환상적인 조합, 그때에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이 상상만 하던 장소 Paris.

 

 

 

장면 2. 내 마음 속 그림 <비오는 날의 파리>

 

비 오는 날일수록 더 괜찮게 차려 입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 딱 들어 맞는다. 나를 향해 걸어 오는 우산 속 커플의 세련된 차림에 경탄하고야 만다. 오늘만 특별히 갖추어 입은 게 아니라 평상시 차림이라는 듯 '감히' 하얀 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 이 남자의 팔짱을 낀 여성도 역시 비를 개의치 않는 차림이다. 옅은 검은 망사 베일을 쓰고 반짝이는 작은 귀걸이까지 챙겼고, 흰색 블라우스의 칼라와 이를 감싸고 초록 계열의 스카프가 외투 안에 목선에 살짝 드러나도록 했다. 이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이들이 옆을 쳐다보고 걷는 사이 곧 그들을 스쳐 지나가게 될 한 남자, 그들과 우산이 부딪히지 않도록 이미 자신의 우산을 오른쪽으로 기울였고 벽쪽으로 바싹 붙어가는 조심성을 발휘하고 있다. 비록 뒷모습 뿐인 데다가 그마저 절반 이상이 캔버스 밖으로 잘려 나갔지만 진정한 젠틀맨임에 분명하다. 둘이서 또는 혼자 옆모습을 보이거나 뒷모습을 보이며 여러 행로를 걸어가는 사람들에 차례대로 주목한다. 몸짓과 표정이 똑같은 인물이 한 명도 없다. 19세기 말이지만, 그림에 등장할만큼 자동차가 일반적이지는 않았나 보다.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걸을 용기가 나지 않는 이들은 마부가 말을 부리는 마차에 탑승해 있다. 행인의 우산 옆으로 커다랗게 드러나 있는 마차의 바퀴, 우산 너머로 능숙한 걸음을 보이며 제 일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말,다채롭고 부지런한 거리의 이야기가 울려 퍼지고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19세기 후반의 파리, 분명 이렇게 비 오는 날에 가장 아름다웠으리라.

 

그러다가 부러움 섞인 탄식 속에 나의 모든 시선이 놓이는 곳은 그림의 왼편으로 사람들 사이에 비어 있는 공간이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회색 우산마다 투영되어 있는 파리의 빗물이 자갈돌 위에서 더욱더 확실한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돌과 돌 사이에 고여 있는 빗물은 흐려진 대기를 비추면서 도시의그림자를 그려내고 있다.

 

자갈길에 고여 있을 빗물을 튕겨 내며 또각또각 걷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차림새 만큼 세련된 파리 특유의 건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는 신중하게 구도를 잡은 사진 한 장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정면에 도드라진 넓은 입면을 중심으로 양쪽 대칭을 이루며 끝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건물의 선을 따라 시선을 옮겨 간다. 지금도 여전히 파리의 시그너처를 이루는 6층짜리 오스만 스타일의 건물이다. 요즘은 하얗게 칠해져 있지만 원래는 그림에서처럼 옐로의 색조가 강하게 드러나는 모습이었나보다. 파리 특유의 회색 지붕과 굴뚝이 보인다. 테라스를 넓게 둔 층은 비교적 부유한 집들이고 위로 갈수록 테라스가 좁아지며 서민적이 되어가다가 꼭대기층에 와서는 아예 테라스가 없는 옥탑방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옐로를 띠는 크림 컬러의 건물 네 채는 동일한 구조와 색상이지만 전혀 단조롭지 않다. 관람객을 향해 걸어오는 커플과 거의 같은 위엄으로 날개치듯 펼쳐져있는 건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일부만 보이면서 서로 각을 이룬다. 그림 오른쪽 앞에는 짙은 오렌지와 녹색으로 그려진 벽면만이 남아 있는데 뒷편의 역시 오렌지 색깔의 테두리가 보이는 크림색 건물과 겹쳐져 있다. 주인공 커플이 받쳐든 우산과 뒷모습만 보이는 남성의 우산이 살짝 겹쳐져 있는 것과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벽면 아래에 자리잡은 초록색은 그림 중앙의 초록색 가로등에서 한 번 더 메아리치는데 비슷한 색깔로 그린 사람들과 건물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흩어져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캔버스에 절대적인 중심을 잡아 놓는다. 이 직선으로 치솟은 가로등의 끝에는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유리가 포착된다. 건물마다 동반복 패턴처럼 그려진 창문들도 유리를 암시하지만 가로등의 유리만큼 그 정체가 선명하지 못하다. 가로등의 초록 프레임 안을 비로 흐려진 하늘과 거의 똑같은 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이것이 투명한 유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리의 투명성은 가로등의 초록색을 번지는 형상으로 맞대응하며 투영하고 있는 바닥의 빗물과 다시 한 번 더 조응한다.

 

이 한편의 그림만으로도 파리 낭만의 모든 것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현대로 들어오며 각종 오명이 덧씌워졌지만,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진입하면서도 파리 Paris라는 이름은 끊임없는 동경을 재생하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 이 파리 낭만을 품게 된 것은 바로 이 그림을 통해서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파리에 발을 디딘 날, 이와 똑같이 비가 오는 날이었다.한차례 세찬 비가 지나간 자리에 하늘은 연회색에 서늘하게 젖어 있었고, 그림에서와 똑같이 자갈로 된 길바닥은 낮게 드리워진 파리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침 나도 회색톤이 섞인 파란 우산을 들고 있었다. 늦은 8월의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속에서 내가 파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믿기지 않던지!

차가 달리는 도로란, 매끈하게 닦아놓은 검은색 아스팔트가 아니라 두툼하게 한씩 붙여 이은 큼직한 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늦여름의 대기 속에 방울방울 퍼져 있는 비의 흔적을 쫓으면서 내 걸음마다 빗물로 반짝반짝 빛나는 돌길 위에 연거푸 멈추곤 했었다. 두터운 세월의 더께가 내려 앉아 뿌옇게 흐려진 거울을 바닥에 깔아놓은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직시할 수 있는 파리가 있었고, 발 아래에 모호하게 흔들리고 있는 또다른 파리가 있었다. 저절로 생각이 났다.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그린 비오는 날의 파리. 강하게 믿게 되었다. 이 그림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라고.

 

장면 3. 다시,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지금 이 그림은 내가 꿈에 그리던 그 그림이 아님은 확실하다. 내가 보고 싶은 '비 오는 날의 파리'는 오직 하나,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에 소장,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 파리에서 전혀 예상치못하게 내 앞에 나타난 이 '비오는 날의 파리'는 카유보트가 그린 것은 맞지만, 완성작을 향해가는 습작일 것이다. 습작도 역시 카유보트의 손끝에서 태어났기에 진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이렇게 유수 미술관의 보호아래 관람객을 맞을 자격이 충분하다.비오는 날의 거리 풍경이라는 ' 일상'적인 주제를 '예술'로 승격시키기 위해 수많은 시도와 변형, 연습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지난한 과정이 선행되었기에 그 어느 누구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파리의 비오는 날의 거리'가 탄생했다. 뭉개어지고 얼버무린 듯한 이 자그마한 (가로 54cm, 세로 65cm )' 진짜가 아닌 진짜 그림' 앞에서 잠시 얼떨떨했지만, 원작을 보게 되라라는 염원이 깊어지며 다시 설레게 되었다.

 

 

장면 4. 내가 가진 유일한 카유보트 책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인상주의 화파들 스토리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단독 타이틀로 단 한국어 서적은 지금껏 찾아볼 수 없다. 영어 서적을 검색해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그래도 한 권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책도 제목에다가 painter and patron of Impressionism이라는 어구를 갖다 부친 것으로 보아 카유보트를 인상주의 스토리 안에서 접근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받아 보니 일종의 전시 해설서이다. 독일 베를린의 Alte Nationalgalerie에서 2019년 5월 17일부터 9월 15일까지 개최한 특별전시를 기념하여 카유보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 책자라 하겠다. 책의 표지는 당연히 <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이다.

 

파리에서 얼떨결에 마주치게 된 그 미완성작 같은 그림을 보면서 이를 그린게된 배경 내지 이유 같은 게 궁금했다. 집에 돌아와서 이 책을 펼쳐 보니, 반갑게도 내가 보았던 이 연습작도 실려 있다. CONSTRUCTION AND IMPRESSION: Paris Street; Rainy Day라는 섹션을 읽어보면 모든 상황을 알게 된다. 시카고에 있는 '진짜' Paris Street, Rainy Day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치밀한 준비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색상과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가며 구성에 리듬감을 살려내는, 눈 앞에 펼쳐진 현실에 비와 빛이라는 요소로 접근하여 공기마저 느껴지는 그림을 탄생시켜가는 카유보트의 작업을 알게 된다. 무수한 선과 형태로 그려본 드로잉 장면들과 유화를 이용한 습작들을 거쳐 최종의 '비오는 파리'가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내가 파리에서 만났던 그림은 이 책에서는 분명히 study (esquisse) 즉 연습작 내지 습작이라고 이름에 명시되어 있다. 프랑스어 esquisse란 초벌 그림, 초안, 또는 어렴풋이 나타내기를 뜻하는 단어이다.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 그림을 처음으로 대하게된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하며 이 그림을 보게 될 날을 고대하게 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곧, 바로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로 달려가게 될 행운을 차지한 사람도 있을거니와, 나처럼 오랜 시간 동안 막막하게 기다리면서 언젠가..언젠가...라고 되뇌이며 결코 잊지 않는 사람도 행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쩌면,내가 그랬듯이 파리에서 이 습작을 우연히 만나 깜짝 놀라면서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완성작을 향한 열망을 재확인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우리들은 두 번의 계시를 받는 셈이다. 파리의 습작은 우리에게 '암시'로 다가온다. 빠른 시일 내에 시카고의 완성작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받는다.






 

 

 

장면 5. 카유보트를 탐구하라

 

파리와 시카고 사이에 내가 위치한다. 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 풍경 한 장면을 두고 분주해진다. 우선은, 내가 가진 책을 찬찬히 탐독해야한다. 시카고에 원작을 보러 가게 될때 읽으며 공부해야지, 라고 미뤄둘 일이 아니다. 사실, 미리 읽어두었더라면 파리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도 일찌감치 다녀왔을텐데. 사두고도 제대로 읽지 않았기에 이 위대한 '습작'이 파리에 남아 있는지도 몰랐고,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난 이 습작을 두고 깜짝 놀라며 당황했던 것이다.이 책의 이야기는 <Paris Street;Rainy Day (Rue de Paris, temps de pluie), 1877 Oil on canvas, 212x276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카유보트의 일생, 카유보트와 인상주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카유보트 컬렉션, 이 컬렉션의 기증과 인상주의 그림들의 미술관 입성, 20세기 중반 이후 왕성해진 카유보트 연구 등으로 연결 및 확장되며 한편으로는 특별 전시에 앞선 입문서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카유보트에 대한 전기문으로 읽힌다.

 

인상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오래전부터이다. 그러나, 인상주의를새로운 시대의 화풍으로 미리 알아보고 거의 20년간 후원, 협력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인상주의 작품들이 미술관에 자리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여전히 낯선 이름으로 남아 있다. Gustave Caillebotte.이 이름이 더이상 망각의 상태에 덮여 있지 않도록, 초월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 이 이름도 확실히 새겨지도록...일개 팬으로서 나부터 제대로 카유보트를 공부하고 알려야 한다.

 

가장 먼저 내 마음에 쿵, 다가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여기다 여디일까' 궁금해 하면서도 실제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19세기 말에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거리가 지금도 있으려나.... 그러나, 이 책을 쓴 전시 관련자는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다: 그림 속 주요 대로는 rue de Turin. rue de Moscou가 왼쪽으로 굽어지며 후경에 보이는 거리는 rue Clapeyron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rue de Turin이 rue de Moscou와 교차로를 이루고 있고 가로등 뒤편으로 rue de Turin이 계속 이어지며 Place de l'Europe으로 쭉 이어지는 rue de Saint-Petersburg가 보인다는 것이다. 당장 달려갈 수 없는 나로서는 얼른 구글 지도로 검색해 본다. 정말로 이 거리들이 교차로를 이루며 가까이서 뻗어나가고 있다. 다음 번 파리 여행 때 첫날의 첫 일정은 바로 이곳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정리하며 공부해두고, 다음으로는 카유보트 전문가로 정평난 Karin Sagner가 2012년 발간한 <Gustave Caillebotte>를 독파할 작정이다.

 

동시에 또 한 가지 내가 할 일이 있으니 바로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났던 카유보트 작품들을 정리해 보는 것이다. 참으로 행복하게도 이번 1월 오르세 미술관에 가기 전 매우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 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어느 개인이 세금을 내는 대신 작품을 기부하는 일명 lieu방식을 통해서이다) 카유보트의 작품 두 점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는 터였다. 이 세상 모든 유명 인상주의 화가들이 대거 도열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의 5층 인상주의 방, 이곳에서 한동안은 카유보트가 주인공으로 집중조명되고 있다. 가히 환상적이었다! 너무나 아름답다고 밖에는 다른 수식어가 생각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이 그림들을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순간자체가 바로 꿈 같은 일이었다. 이 새로운 별들과 더불어 오르세에서 만났던 진귀하디 진귀한 카유보트의 작품들 그리고 카유보트가 소장했다가 국가에 유증했기에 여기 오르세에 전시된 인상주의 그림들을 찾아가며 공부해 봐야겠다. 이는 시카고로 카유보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무궁히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 갖은 답을 궁리해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 질문은 이미 좀 더 구체화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카유보트처럼 살 수 있을까? 내 인생을 이끌어갈 절대적인 취향의 발견, 나의 최대한을 집중시킬 수 있는 절대 가치의 정립, 나의 것을 공유하며 함께 건전한 영향력을 세울 수 있는 절대 관계의 형성....이미 늦었다고 한탄하는 마음을 급히 수습, 이제부터라도 애를 써 보겠노라 다짐해본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나는 구스타브 카유보트. 그의 자화상이다.


쿠스타브 카유보트가 있었기에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주의의 대표 주자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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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파란 광채(2). feat.런던스카이가든,런던다윈브라서리 | 2023London 2023-03-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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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Garden에 가기 전, 리든홀 마켓 Leadenhall Market에 들르기로 한다. 14세기부터 존재해온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라는 명성에다가 영화 <해리 포터> 속 쇼핑 거리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현대적 전설이 더해진 곳이다. 지붕이 덮여 있는 아케이드식 장소인데 반돔형 유리 구조로 채광을 확보하고 행잉 조명을 설치하여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로이즈 빌딩에서 도보로 5분도 채 안 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목적지인 Sky Garden도 금세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 대낮에 찾아왔기에 퇴근 후 펍에서 선 채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직장인들의 일상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1월이라 비수기인지 문을 닫은 가게도 많고 마켓 한복판에는 대형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해리 포터>에 잠시 등장했다는 가게를 찾아가 보는데 외벽 색깔부터 영화에 나온 모습과 상당히 다르다. 




 

 

 

거킨에서 런던 로이즈 빌딩까지 제각각 최첨단의 멋과 높이를 내세우는 건물들 사이에서 아찔해 하다가 리든홀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해 하기. 워키토키 빌딩도 이 멋들어지면서 딴 세상 같은 장소들의 군집과 맥을 같이 한다. 대부분 고층 건물들이 유리를 주재료로 하다 보니 수십 개의 형상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반사하는데 이는 눈앞의 도시가 확장되는 효과를 자아낸다. 건물들이 연결되는 수직선을 좇다 보면 곧 워키토키가 삐죽이 얼굴을 내민다. sky garden 이 위치한 건물 The Walkie-Talkie 자체도 흥미롭다. 정말 워키토키처럼 생겼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상층부로 갈수록 모양이 두꺼워진다는 사실. 이 때문에 정식 명칭 20 Fenchurch St. The Fenhurch Building보다는 '무전기' 즉 '워키토키'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다. 역시나 건물 바깥까지 대기 인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안내 직원에게 Darwin의 예약증을 보여 주고, 입구 안에 따로 마련된 Darwin 전용 안내 데스크로 직행한다. 짐 검사도 별도로 받아 대기가 없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탑승하여 순식간에 지상에서 35층으로 비상한다.




 

 

이 같은 하늘 아래 식물원이자 온실이 또 있을까? 눈앞에 솟아 있는 더 샤드에 놀라고 숲속 같은 분위기에 가득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에 또 놀란다. 처음 왔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전망대의 야외 테라스가 개방되어 있다. 겨울에는 야외 시설을 폐쇄하는 곳이 많은데 여기는 오픈된 이유, 완전한 야외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겹의 전면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기에 엄연히 말하면 실내와 다름없다. 하루 종일 이 '난리'가 나고 있는 거겠지. 더 사드 The Shard를 중심으로 템즈강과 어우러진 런던의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이 기막힌 장관에 모두 열광한다. 우주를 향하는 날렵한 유리성 더 샤드는 여기에서 바라보아야 제 멋을 포착할 수 있을 터이다.

 

자연스럽게 야단법석에 뒤섞여 있다가 가든 주위로 산책에 나선다. 실내가 360도로 유리 전창으로 되어 있어 창가 어디에서나 런던을 조망할 수 있다. 아침에 달려갔던 타워 브리지는 황색의 강물 위에 더욱 도도하고, 세인트폴의 돔은 하얗게 우아한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사랑하는 테이트 모던은 일몰에 앞서 짙은 적갈색으로 응축된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더 샤드, 붉은 광채를 떨어뜨리며 장엄하게 사라지는 태양 속에 온몸을 투명하게 반짝인다 (일몰 전후 빛을 발하며 도시의 모든 것에 마법을 걸어 버리는 파리의 에펠탑보다 더 샤드가 런던을 장악해 버리는 이 모습이 더 멋있는 거 아닐까, 상당히 헷갈린다). 이미 보아 알고 있던 그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율이 몰려든다. C'est la vie... 목청껏 노래하고 싶다.







 

 

Darwin Brasserie에는 예약 시간 보다 5분 일찍 입장. 저녁 식사 시간으로 접어들었기에 이미 만석으로 보인다. 15분 단위로 작성된 리스트에서 내 이름을 확인, 안에서 잠시 대기 후 창가 자리로 안내받는다. 더 샤드를 정면으로 향한 자리이지만 착석하니 건물 중 유리가 아닌 어떤 부분에 막혀 타워 브리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캄캄해지면 온통 유리라서 바깥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겠지만 가급적 외부의 런던이 가까이 보이는 입구 쪽 자리가 좋은데... 미리 메뉴를 생각해 왔기에 결정 장애 없이 순조롭게 주문, 런던의 그 어디에서보다 빠르게 음식이 나와서 깜짝 놀란다. 2시간만 테이블을 이용할 수 있다고 정해 둔 만큼 음식도 냉큼 준비하는 시스템인가 보다. 별도의 스타터 음식 없이 치킨과 돼지고기 요리를 하나씩, 그린 샐러드 하나 추가, 레드 와인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마신 와인) 한 잔, 디저트로는 아이스크림과 얼그레이 차 한 잔... 꽤 높은 가격이고 요리도 엄청 맛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런 환경과 분위기를 감안하면 '작은 사치'일지언정 '낭비'는 아니다.

 

얌전히 앉아 한 입씩 한 모금씩 먹고 마시는 사이 감격의 농도가 짙어진다. 확실히 기쁘면서도 조금은 슬프기도 하여 그저 감동이라 해 두기로 한다. 계속 유리 너머 런던을 주시하고 있는데 ... 가든 전체가 회색과 보라를 한 방울 섞은 파랑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점점 까맣게 내려앉는 런던의 밤을 배경으로 도시의 창마다 하얀 빛이 켜져 있다. 7시가 가까워 오면서 어느덧 전망대의 그 많던 인파가 사라졌다. 더 샤드 앞 실내 공간에는 조금 전부터 음악 장치들이 세팅되고 있었다. 라이브 연주 음악이 흐르며 좌석마다 노란빛 램프가 놓여 진다. 이 특별한 밤을 맞을 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각자의 얘기를 들려주는 그윽한 눈빛마다 추억이 서려 든다.




 



 

 

 

이 절대 황홀한 무대에서 퇴장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애절함으로 무기력하게 될 위험이 크다. 마음을 다잡고 쿨하게 마지막 순례에 오른다. 야트막한 테라스에 걸터 앉아 걸음을 늦추어 본다. 런던의 밤을 향해 앉아 보는 것이다. 잊고 싶지 않고 놓치고 싶지 않다. 손가락으로 한 군데씩 콕콕 짚어가며 그 이름을 말해 본다. 런던의 모든 좋은 것들을 내 것으로 삼아두는, 다시 여기에 오르게 될 나의 시간을 새겨두는 의식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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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파란 광채 (1) feat. 런던 더시티, 런던스카이가든 | 2023London 2023-03-1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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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런던 여행.

그동안 가장 그리웠던 장면이 무엇이었지? 하얀 낮이 핑크빛으로 어슴푸레해져 가고, 그 뒤로 밤이 찬란하게 스며드는 광경.... 이를 360도로 내다볼 수 있는 곳, 바로 스카이 가든 Sky Garden!

 

이곳에서 자연과 도시의 일품 파노라마를 여유 있게 만나기 위해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36층에 자리한 Darwin Brasserie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다. 우선, 예상 일몰 시간을 알아본다. 이보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전망대에 올라가면 낮의 런던, 해지기 직전의 런던, 해 질 녘의 런던, 밤이 된 런던을 모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지기 전까지 전망대를 한 바퀴 산책하며 런던을 살펴보고 해지기 직전에 Darwin에 입장하면 된다. 저녁을 먹으면서 하루가 낮에서 완전히 밤으로 바뀌어 가는 순간순간을 바라보는 것이 포인트이다. 결론은, 5시 15분에 예약. 비교적 조용할 평일에 방문하더라도 한 달 전에 예약을 해두었다. 미리 예약할수록 창가 자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이론에 의거해서 말이다. 예약 시 메시지란에도 '첫 방문 때 당신들의 브라서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이번 방문에 대해 얼마나 큰 기대를 갖고 있는지'를 강조해 두었다.

 

Sky Garden은 이미 탁월한 뷰로 명성을 굳힌 지 오래되었다. 이토록 멋진 광경을 무료로 즐길 수 있어 그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고 (코로나 시국 이후 타임 슬롯별 입장 가능 인원수에 제한이 생겨 예약이 엄청 수월한 편은 아니다) 0층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위해 (airport-style control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한참을 줄 서 기다려야 한다. 다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5층에 내리면 바로 눈앞에 더 샤드 The Shard가 등장, 템즈를 중심으로 런던의 모든 이름난 랜드마크를 통유리 너머 훤히 내려다보게 된다. 35층에는 Sky Pod라는 캐주얼 바가 있어 무료로 올라온 사람들은 이런저런 음료나 알코올을 구매하는 데에 인색하게 굴지 않는다.

 

가든이므로 식물이 있기 마련인데 조화가 아니라 실제 식물이고 규모에 있어서도 보통을 능가한다. 두 개의 레스토랑 (Darwin Barsserie 외에 좀 더 고급인 Fenchruch Restaurant이 있다)이 자리한 36층 및 37층과 구별되어 있지 않고, 어찌 보면 레스토랑이 공중에 붕 떠 있는 양식으로 설계되어 35층부터 3개의 층이 높다란 천장을 공유하게 된다. 당연히 천장은 하늘을 향해 유리로 되어 있다. Darwin Brasserie 앞쪽에는 또 다른 바가 있는데, 바 앞에 테이블석이 꽤 많고 창가에는 걸터 앉을 수 있는 툇마루처럼 생긴 넓은 자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35층 보다 좀 더 조용한 분위기이다.







 

 

Sky Garden에서의 일정은 더 시티 The City에서 시작된다. Sky Garden에만 가려면 모뉴먼트 역에서 내려 걸어가면 되지만, 이 건물이 위치한 구역을 좀 더 걸어보는 편을 택한다. 원래는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부터 걸을 생각이었지만, 항상 실제 일정은 계획보다 빡빡해져 시간적 여유가 급격히 줄어든다. 영국 은행 Bank of London과 (구) 로열 익스체인지 Royal Exchange에서부터 걸을까, 잠시 망설여진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면 핵심 일정에 포커스를 두는 게 맞다. Sky Garden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더 시티 탐방 동선을 과감하게 단축, 거킨 빌딩 부근에서 시작한다. 영국이 자랑하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거킨 Gherkin'의 정식 이름은 '30세인트 메리 엑스 30 St. Mary Axe (건물이 위치한 도로명을 그대로 따서 지은 이름).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새가 오이 피클을 닮았다는 이유로 붙여진 닉네임 '거킨'이 더 애용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우주로 향하는 매끈한 발사체처럼 보인다. 상층에 있는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업무용 건물이라 실내를 구경할 수 없어 아쉽다.

 

더 시티에서 가장 보고 싶은 장면은 거킨- St. Andrew Undershaft Church -로이즈 오브 런던Lloyd’s of London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로이즈 오브 런던은 거킨에서 사거리 하나를 건너 자리하고 있는 현대식 건물이지만, 건축가가 다른 만큼 또 다른 세상을 연상케 한다. 이탈리아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가 설계한 로이드 보험의 본사 건물로서 거킨에 비해 투박한 형체이다. 수직적 높이뿐 아니라, 횡으로 건물의 규모가 커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건물을 좀 더 알차게 감상하기 위해 리처드 로저스가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담당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명 'inside-out buidling'으로 건물 내부에 있어야 할 수도관,환기구관,전기배관, 승강기 등을 모두 건물 밖으로 노출시켜 버린 그의 혁신적 발상을 로이즈 빌딩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빨강-파랑-노랑-녹색 등 컬러를 입힌 퐁피두 센터와 달리 로이즈 빌딩은 콘크리트-스테인리스 스틸-유리 등을 원래 그대로 사용해 색감이 없다. 사실, 거킨에서 로이즈 빌딩으로 내려오는 거리의 양편에는 이 둘만큼 유명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독특한 디자인과 높이를 내세우는 화려한 건물들이 빼곡하다. 이들 건물들은 하늘이 안 보이는 도시에 갇혀 있다는 답답한 위압감을 주기보다는 각자 다르면서 함께 어울려 역동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우중충한 겨울 날씨를 잊게 하는 활력을 내뿜는다.

 

이들 고층 건물들 틈 사이에서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게 하나 있으니, 바로 St. Andrew Undershaft Church. 12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교회 한 채가 21세기의 최첨단 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라니! 거킨과 아주 가까이 있어서 로이즈 빌딩으로 내려가기 전 사거리 여기저기서 두 건물을 함께 볼 수 있다. 옛것과 현대적인 것의 조합은 도시의 거리에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이를 보는 사람에게도 여러 갈래의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건물들은 고층이지만 거리는 상대적으로 좁아서 내가 희망했던 시티뷰를 나의 앵글에 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거리 한복판에서 다른 세상에서 떨어진 외계인인 양 (다소 어리벙벙한 걸음걸이로) 주위를 올려다보느라 휘청거려 보는 것이 사진으로 순간을 남기는 것보다 한 수 위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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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수련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수련 | 드디어 Paris2023 2023-03-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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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리 여행의 주요 테마 중 하나는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였다. 본디 엄청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었지만, 파리에서 가장 많이 발견하게 되는 화가인지라 자연스레 관심도 생기고 호감도도 높아졌다. 2016년 8월에는 어쩌다 보니 그의 집이 있는 지베르니까지 가게 되었었다. 별로 관심도 없는 데다가 일정도 빠듯한데 그 멀리까지... 탐탁지 않아 하며 나섰지만, 모네를 왜 사람들이 좋아하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도 모네가 정성껏 가꾸고 있을 것만 같은 그의 집에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여유로움, 화사함,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다만, 모네의 수련 연못은 오히려 수수해 보였다. 햇빛이 그리 잘 들지도 않고 그저 바람만이 선선히 나부끼는 옅은 초록의 물과 나무로부터 각양각색의 수십 개의 수련을 새로이 탄생시킨 모네의 솜씨에 더욱더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파리의 숙소도 모네를 가까이하게 된 데에 큰 기여를 했다. 모네의 수련 연작으로 이름난 '오랑주리 미술관'. 그리고, 모네를 포함,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의 중심지라 할 만한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은 '튈르리 공원'안에 있고, 오르세 미술관은 오랑주리에서 도보 5분이면 닿는다. 나의 숙소는 이 공원 바로 앞이다. 그러니까 몇 박이든 상관없이 나는 파리 여행마다 바로 코앞에 모네를 두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특히, 수련을) 못 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번에는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역할도 컸다. <모네와 미첼>이라는 특별 전시가 성황리에 개최 중이었다. 미국 태생 화가로 인생의 후반부 중 상당한 세월(죽을 때까지)을 프랑스에서 보낸 화가, Joan Mitchell의 회고전 및 모네와의 콜라보 전시이다. 소장품 전시 없이 재단 미술관 전관을 이 특별 전시로 채우고 있다(2023년 2월 27일에 종료됨). 모네를 통해 (나는 전혀 모르는 화가) Mitchell을 알게 되는 기회이며. 모네를 새로운 시각에서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예술가의 전성기란 명성과 부를 쌓게 되는 시기가 아니다. 모네도, 연계 전시된 미첼도 각자만의 예술적 신념에 따라 자신이 인정할 만한 예술적 과업에 몰두하던 그 막바지의 시간들이 바로 황금기였지 않을까. 모네의 수련이 꽃피운 수많은 흔들림과 반짝임은 '혼연의 힘'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그렇다면, 이참에 파리 안에 있는 모네를 다 찾아보자. 모네의 팬이라면 일찌감치 달려갔을 <마르모탕 미술관 Musee Marmottan Monet>도 일정에 넣는다. 마침 여기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이 비교적 가까워 (택시로 10~15분) 하루에 연이어 방문하면 되겠다. 오르세의 5층-오랑주리의 0층-마르모탕의 0층과 지하 1층-루이비통의 거의 전층, 이렇게 모네에 포커스를 두고 다닌다면 모네에 대한 식견도 확장되고 그를, 그의 수련을, 더욱 특별히 애정하게 되리라. 마르모탕 미술관은 아예 모네를 미술관 이름에다 넣은 만큼 지하 1층은 전체가 오로지 모네를 위한 모네의 방이다. 전시실의 디자인은 그저 직사각형으로 평범 그 자체이어서 모네의 작품이 유독 빛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잘 아는 '인상주의 impression'이라는 단어 또는 유파의 탄생에 직접적 계기가 된 그림 <해돋이:인상>이 소장되어 있다. 그 영향에 비해 그림의 크기는 매우 작은 편이라 기대만큼의 감흥이 일지는 않는다. 역시 이곳에서도 수련에 눈길이 간다.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다양하게 그려진 수련들을 보노라면 모네=수련이라는 공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를 위한, 모네에 의한 공간이다. 화가의 구체적이고 특별한 주문에 따라 디자인되었고, 화가는 이곳에 전시될 작품 8점을 그렸고, 아직까지도 그의 수련들은 그가 정한 방식에 따라 전시되어 있다. '도시의 한복판에 평화로운 명상을 제공 to provide a peaceful meditation in the heart of the city '하자는 의도였다. 두 개의 타원형의 방에 각각 네 점의 수련을 걸어 두었다. 작품에 집중하도록 벽은 온통은 하얀색이고, 자연 채광을 최대한 끌어들일 수 있는 설계를 도입했다. 실제로 방의 중앙에는 마련된 벤치에 앉으면 어디를 향하더라도 수련과 연못에 잠겨들 수 있다. 다만, 관람객이 차고 넘친다. 모네는 사람들이 조용한 환경에서 탁월한 작품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바랬지만, 이는 아마 영원히 실현되기 어려운 바람일지도 모른다. 2018년 9월, 운이 좋게도 8점의 수련 대작을 사람이 제외된 상태로 찍는 데에 성공했다. 2019년 4월 말에 다시 수련을 보러 갔고 여전히 붐비는 상황에서도 내 마음에 드는 수련의 장면들을 요리조리 잘 담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달려갔지만 상상 이상으로 많은 관람객들에게 막혀 깔끔하게 찍어 보는 데에 실패했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겨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나의 것'으로 내 손안에서 언제든지 펴 보는 것도 중요한데.... 대신, 전체 보다 부분에 집중하여 그림 안의 그림을 찾아보기로 했다. 물 흐르듯 힘들이지 않고 희뿌연 구름처럼 큰 덩어리로 처리한 것처럼 보이는 붓질들은 수만 개의 형상을 담고 있다. 앞으로 이곳에 백 번을 더 찾아와서 보고 또 본다 해도 나는 결코 모네의 수련을 다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아마득한 기분이 든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상대적으로 수련이 잘 보이지 않는다. 5층 전체에 숱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작품들이 너무나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보니 모네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란 힘들다. 모네의 작품만 해도 유명 작품들이 쫙 깔려 있고 그중 어느 하나 진귀하지 않은 게 없다 보니 수련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다. 수련의 화가 모네에서 잠시 벗어나 인물과 풍경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대작을 일구어낸 열성적인 화가 모네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이번 파리 여행을 기점으로 지금껏 만났던 모네를 이리저리 정리해 보게 된다. 현장에서는 지나쳤던 부분들이 다시 눈에 띄기도 하고, 그 순간 특별하게 보였던 부분들이 다시금 감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행에서 대충이란 없어야 한다. 여행은 쉼,이라고 생각하여 슬슬 본 것은 나중에 항상 아쉽고 후회가 된다. 특히 예술 작품은 설마 그 자리에서 자세히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성껏 사진으로 담아 올 필요가 있다. 여행이 끝난 후, 이를 되돌이켜 볼 때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기억으로 남은 데다가 '기록'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새로운 호기심이 촉발된다. 자발적인 배움과 발견이 이어지며 그야말로 여행은 끝나지 않은 채 현실을 풍성하게 채워 나간다.

 

 

이제 나는 모네를 다시 보게 되었다. 클로드 모네... 웬만한 해외 미술관 어디에서나 쉽게 보게 되는, 주의를 환기시키기에는 특별함이 부족한 그런 이름이 아니다. 모네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수련 역시 다른 차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워낙 유명하니까 한 번은 읽어 보려고 사 두었던 모네 관련 책들도 책꽂이의 중앙 부분으로 옮겨 놓았다.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내가 그동안 저장만 해두었던 작품들을 하나씩 공부해 본다. 모네라는 거대한 세계를 조금씩 파고들면서 나의 삶과 정신을 일구어 줄 자양분을 얻고자 한다.

 

 

이때,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그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을 알게 되면서 나는 파리를 더욱 좋아하고 프랑스적 정신에 대해 큰 호감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이 작품을 '읽는 중'이지만, 여전히 끝까지 제대로 읽지 못할까 봐 두렵지만, 철학-역사-예술을 총망라한 문학 이상의 대작을 가까이에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설렌다. 모네(1840~1926)와 프루스트(1871~1922)가 살았던 시기가 상당 부분 겹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개인적 친분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생전에 두 사람이 누렸던 명성에 비추어볼 때 서로의 그림과 글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나의 개인적 추측에 근거하여 나는 프루스트의 수련을 읽으면서 모네의 수련을 떠올리게 된다. 프루스트의 단어와 문장을 하나씩 더듬으며 모네의 수련들을 전체와 부분으로 살피게 된다. 이 두 예술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려내는 수련이 시공간을 넘어 나에게로 당도하는 것이다. 예술에서 내게로 뻗쳐 오는 광채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겠는 즐거움 ... 나의 여행, 나의 독서, 나의 삶은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좀 더 멀리 가면 비본 내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한 사유지를 통과한다. 이 사유지 출입을 일반인에게 허용한 소유주는 수생초 재배에 재미를 붙였는지 비본 내가 만드는 몇몇 연못에다 진짜 수련 정원을 꽃피워 놓았다. 이 지대에는 나무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냇물은 일반적으로 커다란 나무 그림자에 가려 진한 초록빛을 띠었고, 때로 오후에 소나기가 쏟아질 듯하다 다시 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일본 취향의 유선칠보 (역자 주:금속 윤곽선으로 만든 문양을 뜻한다) 같은 보랏빛에 가까운 맑고 선명한 푸른빛을 띠었다. 수면 이곳저곳에는 가운데가 빨갛고 가장자리가 하얀 수련이 딸기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조금 더 멀리에는 보다 창백하고 덜 반짝거리며, 더 오톨도톨하고 주름잡힌 무수한 꽃들이 우연히도 꽃줄로 배열된 듯 우아하게 물결쳤는데, 마치 느슨하게 풀린 꽃줄에서 이끼 장미의 꽃잎이 서글프게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페트 갈랑트(fete galante:전원에 모여 앉은 궁중 남녀들을 그리는 회화의 한 주제)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다른 쪽 구석에는 주부가 닦은 도자기마냥 깨끗하게 씻긴 장대꽃 같은 깨끗한 흰색 분홍색 꽃이 달린 보통 수련을 위한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더 멀리에는 빽빽이 들어찬 수련들이 진짜 물 위에 떠다니는 화단을 만들어, 정원 제비꽃이 나비마냥 그들의 푸르스름하고도 윤기 나는 날개를 이 수상 화단의 투명 경사 위에 내려놓으려고 온 것 같았다. 이 수상 화단은 또한 꽃 자체 색깔보다 더 소중하고 더 감동적인 색깔의 땅을 꽃들에게 줬기 때문에 천상의 화단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화단은 오후에 수련 밑에서 주의 깊고도 고요하며 움직이는 행복의 만화경을 반짝이면서, 또는 저녁 무렵 어딘가 먼 항구에서처럼 석양의 분홍색과 몽상으로 가득 채워져서는, 비교적 색깔이 변하지 않는 꽃관 주위에,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시간 속에서 가장 깊고 가장 덧없는 신비스러운 것과 - 모든 무한한 것과-조화를 이루며 하늘 한가운데 수련을 꽃피우는 것 같았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민음사 293쪽~294쪽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모네의 수련 연작:









 

 

오르세 미술관의 모네의 작품들과 수련:








 

 



 

 

마르모탕 미술관에서 만나는 모네의 수련들: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특별 전시 <모네와 미첼>에서 볼 수 있었던 모네의 수련: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 모네의 수련이 탄생할 수 있었던 환경 자체에 특별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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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런던 여행의 중심 Tate Modern (1) | 2023London 2023-03-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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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4일, 6일 그리고 이번에는 7일.

런던 여행의 일수를 조금씩 늘여왔지만, 항상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Tate Modern.

이번에는 첫날도 마지막 날을 포함, 3번을 찾았다. 숙소 바로 앞에서 이곳까지 실어다 주는 버스 381번이 있어서 20분 내외로 오갈 수 있었다.

 

첫 방문은 개략적 탐사를 하기 위해서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막혀 발길이 묶여 있었던 3년 6개월 동안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지, 오래된 지인의 안녕을 확인하려는 듯 달려간다. 버스 정류장에서 진입하는 길은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루트, 그래서 이 설렘은 더욱 증폭된다. Tate 출입구 세 곳 중 Southwark 방향으로 난 곳에 도달한다. 강변에서 바라볼 때에 뒷모습에 해당하는 이 모습, Natalie Bell Building과 Blavatnik building이 약간의 각을 이루며 붉은 벽돌로 쌓은 성벽처럼 서 있다.

 

현재 터빈홀 Turbine Hall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려나. 사진으로 보았던 상황과는 비교가 안된다. 칠레의 예술가 Cecilia Vicuna의 설치 작품인데 천장에서 바닥까지 갈래갈래 타래들이 늘어서 있다. 낯선 비트의 음악도 곁들여져 있고 관람자가 이 타래들 사이를 걸어볼 수도 있다. 잠시 미지의 숲에서 길을 잃는 아찔한 기분이 든다. 단지 올려다보기만 해도 '정신 고양'이라는 말이 퍼뜩 와닿는다. 게다가, 이 전시는 (굳이 약간의 자부심을 느끼자면) Hyundai Commission으로 진행되고 있다.






 

 

Tate Modern은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Natalie Bell Buidling에다가 신관에 해당하는 Blavatnik Building을 덧붙인 셈인데 터빈 홀을 중심으로 좌우로 있다. 각각 6층(우리나라 방식으로는 7층)과 10층이지만, 주요 상설전이 열리는 Natalie Bell Building의 2층과 4층을 다니게 된다. 이번에도 내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2층. 'the whole world + the work=the whole world'라는 공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가늠이 안된다. 확인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2019년 4월 말 방문 때 찍어둔 사진을 나중에 열어 보니 심하게 흔들렸고, 너무 빨리 찍느라 전체적 분위기를 전혀 살리지 못해 여태껏 속상해하던 터이다. 평범한 흰색 블라인드가 Tate의 전시실 하나를 점령해버린 모습...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는데!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예술가 양혜규의 작품. 아직도 위용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만 한 세 채의 블라인드 조형물 아래에 서 있어 본다. 거리를 두고 이 방향 저 방향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면서 그 변형과 변주에 집중해 본다. 올해 상반기에 철거될 거라는 얘기를 읽었었는데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첫 방문은 2층 상설전시만 둘러본다. 3일 후에 다시 올 것이며 무엇보다 해가 지기 전에 6층 카페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딱 한 곳에서만 딱 한 장면의 풍경만 감상해야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 카페의 창가를 선택할 것이다. 좋아하고 십분 감탄할 만한 모든 것이 있다. 유구한 세월을 관통해 넘실거리고 있는 템즈, 최초의 런던에서 지금의 런던까지 자리를 지키며 전통과 현대 사이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세인트폴 대성당, 모던함 속에 번창하고 있는 더 시티와 산업 혁명 시대로 거슬러가는 부흥과 퇴락, 쇄신의 스토리를 품고 있는 뱅크 지역을 이어주는 밀레니엄 브리지, 그리고 버려진 화력 발전소에서 현대 예술의 중심으로 부상한 이곳 Tate Modern. 창밖으로 펼쳐지는 이 장면은 여행자에게 겹겹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단 몇 분. 좋은 자리를 맡아야 하는데... 조바심이 난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선 어라?! 치열한 (매우 인간적인) 자리 경쟁은 더 이상 없다. reservation 유무에 따라 일단 대기하도록 되어 있다. no reservation에 서 있으니 올블랙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다가온다. "혹시 커피 마시려면 1층이나 3층으로 가세요" 몰려오는 손님들을 좀 몰아내보려는 기세에 잠시 주춤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만에 내가 여길 다시 온 건지...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다.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무알코올 칵테일류와 간단한 플레이트를 주문할 건데" 더 이상의 반격 없이 OK. 마침 최고의 템즈 plus 세인트폴 뷰를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딱 두 개 비어 있다. 직원도 순순히 의자를 내어 준다. 너무 행복한데 슬프기도 한 순간이다.

 

주문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저기 카운터로 가서 메뉴판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선택, 카드로 할까 캐시로 할까 망설이다가 잔돈까지 털어 캐시 선택, 잠시 서성이며 기다리면 트레이에 담아 "네 것"이라 내어주면 들고 오는 일은 이제 없다. 내 앞에 부착된 오렌지 딱지에다가 QR 코드 검색을 해서 주문, 결제, 영수증 신청하는 시스템이다. 잠시 후 직원이 내 자리로 갖다 준다. 편리한가? 삭막한가? 커리를 베이스로 하는 토마토 주스, 난생처음 먹어 보고 아까워서 쭉쭉 먹기는 하지만 정말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건강식처럼 구성된 간단 빵 메뉴, 차갑고 시큼한 피클에 얼얼해진다. 그러나, 이곳에서 음식은 주연이 아니다.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광경의 조각조각을 내 지각 속에 충실히 들여놓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템즈를 향해 뛰쳐나간다. 노먼 포스터가 만들어 놓은 밀레니엄 브리지. 사방팔방으로 최고의 런던을 발견한다. 이 다리 위에서는 언제나 내 심장이 펄펄 살아있음을 자동적으로 느끼게 된다. 다리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Tate는 더욱 위풍당당하다. 오래된 붉은 벽돌에 초록색의 간판이 가로로 덧대어져 있고 굴뚝 기둥 하나만 우뚝 솟아 있을 뿐이다. 두터운 구름을 안고 있는 파란 하늘 아래, 내가 보기에는 그 왼편에 치솟아 있는 유리탑 '더 샤드'보다 더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다. 다리 난간 아래로 아찔하게 흐르고 있는 템즈, 그 브라운 톤의 물살은 여전히 부드럽다. 여기에는 런던의 모든 겨울 햇빛이 모여 있다. 사방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모든 곳이 반짝이고 있다. 짧은 이 순간, 나의 삶은 아름다운 것으로 충만해진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순수한 열광이다.




밀레니엄 브리지에서 바라보는 서더크 다리 좌우의 풍경. 저 멀리 타워 브리지까지.

 

Tate Modern에서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넌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인트 폴 대성당을 향해 직진할 것이다. 다리가 끝나자마자 피터스 힐Peter's Hill이 시작되면서 좌우로 늘어선 건물들이 세인트 폴을 정점으로 도열해 있다. 마치 그림 속 소실점에 시선이 끌리듯이 모두 자연스레 성당의 둥근 돔을 열망하여 나아간다. 나도 늘 그랬었고. 그러나, 이번에는 피터스 힐에 닿자마자 좌편의 계단으로 걸음을 내린다.

 

내 꿈이 옳았다. 밀레니엄 브리지 아래로 내려가서 강변의 모래를 밟으며 Tate를 찾던 그 꿈처럼, 다리 아래에는 지금껏 몰랐던 광경이 기다리고 있다. 템즈와 눈높이를 맞추고 Tate를 바라볼 수 있다. 밀레니엄 브리지가 내 머리 위에서 템즈를 가로질러 Tate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 서더크 다리는 템즈의 수면에 바싹 다가와 있고 런던 한복판의 피라미드 더 샤드는 한결 정겨운 모습으로 낮아져 있다. Tate의 굴뚝 기둥과 마주 선 millennium Measure에는 다리의 건설 스토리가 새겨져 있다. 4월 말에 다시 오고 싶다. 피크닉 도시락을 준비해서 이 자리의 계단 아래 또는 벤치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 광활하게 환상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내가 Tate를, London을 사랑하는 수만 가지의 이유를 읊을 것이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겨울밤의 Tate를 기억하기로 했다.

모든 관람객을 내보내고 침묵 속에 하루를 마감한다. 핫스폿임을 잊지 않게 하려는 화려한 불빛은 없다. 보수 공사로 두어 곳 받침대를 껴입은 기둥은 밤 속에 가만 잠겨 든다. 밤의 Tate는 예술의 성지라는 역할을 내려놓는다. 까맣게 반짝이는 템즈와 함께 짝을 이룬다. 템즈 건너 하얗게 빛을 발하는 세인트폴이 더욱 환히 보이도록 도와야 한다. 도시를 들쑤셔놓은 공사장의 소음이 이제는 빨갛고 핑크로 점멸하는 조그만 등대 아래로 잦아들었다. '섬'이다. 기라성 같은 도시가 소박하디 소박한 섬이 되어 모두를 안도케 한다.

 

이 귀여운 이동카페는 언제부터 여기에 터를 잡았을까, 고소한 커피향에 잠시 망설여진다. 커피를 잔뜩 마시고 밤을 지새워 버릴까. 내일 12시 유로 스타를 탈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강바람에 커피향을 묻어 버리며 유혹을 떨쳐 낸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Tate는 결국 내가 그리워하게 될 London의 마지막 모습이 된다.

까만 겨울의 투명한 판타지, 다시 돌아올 순간까지 기억 속에 붙들어 두겠다.




Tate Modern의 floor map, 나에게는 꿈의 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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