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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

수지 호지 저/장주미 역
마로니에북스 | 2021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디테일의 묘미라니! 120년간 펼쳐져 온 에술의 파노라마를 안은 미술관을 하나 지었다. 영감과 발전을 담고 내 삶으로 깊숙이 들어선 세계 유일의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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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꿈조차 꿀 수 없는 시간이 설마설마하는 사이 일 년을 훌쩍 넘어섰다. 여전히 섣불리 희망할 수 없는 이 비관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에는 미술이 있다. 과거 여행에서 만났던 미술 작품들을 다시 만나고 앞으로 보고자 하는 작품들을 미리 공부해두면서 현재의 막막함과 불만을 벗어버린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 가이드가 되어줄 미술책이 필요하다. 미술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나의 미술여행은 시작되므로 지식과 정보는 물론이고 오감으로 작품을 맞아들일 통찰력까지 연마할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디테일로 보는 현대 미술』은 최고의 선택이다. 미술 서적을 한 권 읽었다기보다는 미술관을 하나 내게 들여놓은 것이다. 75점의 작품이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데다가 각각의 작품이 연관된 한두 개의 다른 작품을 동행하므로 실제적인 규모와 깊이는 더욱 방대한 미술관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모았기에 이 미술관은 미술사 전체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초대형 스케일을 갖춘다. 이로써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미술여행이 가능한, 언제라도 열람할 수 있는 나만의 미술 세계가 탄생했다.


세계 유일의, 내 안에 있는 미술관이 되었다.

 

『디테일로 보는 현대 미술』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제2차 세계대전 이후-20세기 후반 그리고 21세기를 아우르는 약 120년 동안 펼쳐진 예술적 시도를 보여준다. 사조로는 후기 인상주의에서 출발하여 입체주의, 팝아트, 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 및 개념미술 등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을 다룬다. 장르도 회화, 판화, 조각, 설치미술, 콜라주와 구조물이 포함되어 다차원적 맥락에서 현대미술을 조망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키워드는 다양성과 변화이다. 비록 동일한 시대에 동일한 사조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작가마다 삶이 다르므로 작품마다 의도한 바가 다르다 (어떤 작가는 의도 자체를 가지지 않는다).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영향과 도전이다. 화가마다 여러 영역의 예술에서 영감을 받았고, 자신 또한 동시대에 또는 시대를 넘어 다른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예술은 예술과 교감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예술로 전통적인 미술에 이의를 제기했고, 모든 작품들은 선입관에 맞서며 혁신과 도전의 궤적을 밟았다. 그러므로, 『디테일로 보는 현대 미술』 은 발전과 변화를 동력 삼아 살아 있는 세계를 담고 있다. 이 세계에 참여한 독자 및 감상자에게도 과제가 주어진다. 친숙한 작품은 새롭게 대해야 하고, 낯선 작품으로부터는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 19세기 후반 >

19세기 후반에는 사실주의가 도전과 변화의 문을 열었다. 곧이어 신/후기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및 아르 누보 작가들이 여러 새로운 방식의 예술을 시도하여, 앞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아카데미 전통이 무너져내렸다. 새로운 양식의 첫 대표작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 The Church in Auvers-sur-Oise>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8월의 늦은 오후, 고흐가 생애 마지막 몇 달을 살았던 집을 돌아본 후 이 교회를 찾았었다. 회색빛이 도는 돌로 육중하게 지어놓은 교회는 고흐의 어두운 삶의 그림자가 덧입혀져 쓸쓸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다음 날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았던 이 그림은 현란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표현력이 풍부한 강렬한 색깔, 일본 우키요에 판화를 모방한 굵고 짙은 테두리 선, 불투명한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 물결치는 선과 흐르는 듯한 붓놀림에서 발산되는 불안감 등 고흐 특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차분한 파란색 계열이 그림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어디를 보아도 마음이 조급해지고 시선도 흩어진다. 전경에서 툭툭 끊어지는 선들이 양 갈래로 굽이쳐 흐르다가 좁아지면서 교회를 감싸며 뒤로 사라지는 모습, 찌그러지듯 울퉁불퉁하게 왜곡된 지붕선들, 하늘을 뒤덮은 소용돌이선과 빗살 무늬, 교회 앞을 가득 메우며 요동치는 물결들 때문에 자꾸만 고흐의 굴곡 많은 삶을 생각하게 된다.


 

 

고흐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고갱이 뒤따른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고흐 옆에 고갱이 있고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고흐 곁에 고갱이 있다. 이 책에서도 고흐 다음은 고갱의 차례인데, 자신을 '황색 그리스도'에 비견할 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던 고갱답게 마치 인간을 내려다보는 신적 존재인 양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고 제목을 붙인 그림이다. 고갱만의 무대인 타히티 풍경이 펼쳐지며, 역시 (에밀 베르나르와 함께) 고갱이 개발한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e' (평평해 보이는 형체들에 가늘고 짙은 윤곽선을 입혀 다른 색채들이 더 강렬하게 보이도록 함)이 주특기로 사용되었다. 출생부터 죽음을 마지막으로 하는 인생사를 훑게 하므로 어두운 분위기일 수밖에 없는데 전체적으로 파란색 계열이 두드러져 더욱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황색과 노란색도 밝은 이미지보다는 종교적인 상징성이 깔려있어 역시 침울케한다. 점묘법으로 순색들을 병치하여 눈부신 햇살 효과를 창조했던 카미유 피사로가 고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의외이다.


 

 

 

<20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예술 분야는 획기적인 변화와 도전에 속도감이 더해져 표현주의, 입체주의, 야수주의, 미래주의 등 새로운 접근법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사상 최초로 미술은 순수한 구상에서 멀어지고, 일단 처음으로 추상 작품들이 창조'되면서 역사적인 일들이 연속되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면 '폴 세잔이다' 입체주의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세잔은 낭만주의의 대가 '외젠 들라크루아'와 인상주의의 거장 ' 카미유 피사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보다 근본적인 구조를 탐독'하며' 색조보다는 색채를 이용해서 깊이와 구조'를 나타내려는 노력이 더해지면서 세잔 특유의 '생트빅투아르산'이 탄생했다. 지대한 성실파였던 세잔은 밝은 햇빛, 폭풍우, 이른 아침, 황혼 무렵 등 다양한 시간대에 야외 작업을 하면서 색채로 그림을 그려냈다. 세잔이 생트빅투아르산에 집중하여 '분위기와 동시에 양감을 표현하기 위해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의 대비 효과를 활용'하는 동안 미술사에 엄청난 혁신이 일어나고 있었던 셈이다.


 

 

20세기 색채 중심의 회화를 일으킨 주역이라면 앙리 마티스도 있다. 나는 마티스의 빨간색을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마티스 부인, 초록색 선>을 살펴본다. '내 두 손에 물감 상자를 쥔 순간, 나는 이것이 내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했던 마티스는 '강렬한 색채와 자유롭게 그려진 이미지'로 충격을 안겨준 야수파의 대가이다. 부인 아멜리의 얼굴 한복판을 내려오는 초록색 선은 인위적인 그림자로서 그림의 중심을 잡아주고 견고함을 전달한다. 이 선을 중심으로 그림 곳곳에 '마치 서예처럼' 두껍거나 가늘게, 흐르다가 끊어지는 여러 선을 사용했는데 형태를 형성하면서 색채를 분리시켜 입체적 구조를 돋운다. 또한, 그림 전반에 마티스 다운 밝은 색들을 나란히 사용하면서 정서적인 낯섬과 충격을 자아내는데 이는 '색채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 괴테의 색채론과 일맥상통한다.


 

 

20세기라면 단연 입체주의의 활약이 컸고, 여기에는 '파블로 피카소'라는 영원한 이름이 깃들어있다. 피카소가 20세기의 또는 전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자리 잡아가는 데에는 당시 경악을 불러일으켰던 <아비뇽의 처녀>가 출발점이었다. 아프리카의 가면 같기도 하면서 다중 시점과 기하학적인 면에 의해 왜곡된 형체를 등장시켜 과연 '자유로운 창작'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세잔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피카소는 전통적인 원근법을 부정하고 같은 대상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면서 자신만의 시각적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한 세잔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세잔의 정물화에 대한 경의로 피카소도 <아비뇽의 처녀>에 과일 더미를 그려 넣었다. 또한, 인물과 배경을 결합한 방식은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20세기에 섬광처럼 출현하여 극렬한 불꽃을 발했던 '미래주의', 오랜 생명력을 갖지는 못했지만, 미술이 얼마나 과격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고전적인 과거가 진보적인 근대 강대국으로 가는 길을 막아선다고 생각한 미래주의 화가들은 전쟁만이 이탈리아의 고전적 유산을 전멸시키고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이의 대표 화가 '움베르토 보초니'는 밀라노를 미래주의 시각에서 가장 이상적인 도시로 꼽았으며, 이곳을 배경으로 역동성과 발전에 대한 찬양을 담은 그림 <도시의 성장>을 그렸다. 도시 건설의 속도감과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말과 사람을 극적인 각도에서 리듬감 있게 묘사했고, 한창 공사 중인 매끈한 직선의 건물들을 그려 넣어 성장과 발전의 이상향을 제시했다. 광란의 현장처럼 보이는 이 그림이 우아하게 아름다운 폴 시냐크의 <앙티브의 분홍 구름>에서 영감을 받았다니, 분명 예술가의 창작은 표면적인 모방을 넘어선다.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페르낭 레제 역시 '기계와 속도, 움직임'에 매료당한 화가였다. '기하학적 형태, 입체적 형체에 대한 착시 그리고 원색을 특징으로' 하는 그림을 선보였는데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은 피카소나 브라크의 그림보다도 더 불가해하다. 파란색이 여인의 드레스 자락, 중앙의 로봇 같은 회색 부분이 여인의 손, 이 정도로밖에 파악이 안 된다. 여인이 탁자에 팔꿈치를 기대고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으며 옆에는 컵과 숟가락이 있다...한자한자 신경 쓰며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니 컵과 숟가락이 보인다. 르누아르의 활기찬 파리 일상을 그린 그림에서 색채적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선뜻 실감되지는 않지만, 레제 역시 색채와 선, 면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현대 생활을 표현하려 했다.


 


 

 

독일의 표현주의는 다소 살벌하고 처절한 느낌이 들어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킨다. 독일 표현주의의 개척자 '프란츠 마르크'는 <동물들의 운명>에서 '동물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이 세상의 모습'을 그렸는데, 인간이 일으킨 산불에 의해 공포와 고통을 당하는 동물들의 형상이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고흐와 들로네가 사용한 색의 동시대비와 (수평선이나 수직선이 하나도 없이) 대각선만 사용하여 사악한 인간에 의해 고통당하는 동물과 자연을 긴장감 있게 표현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색채 속에 길고 날카로운 가시, 뾰족한 불길 혹은 단도 모양의 불꽃이 넘쳐나는 가운데 고통으로 일그러진 사슴, 멧돼지, 말, 여우 및 나무가 보인다. 고갱에게서 영향받은 단순 색채와 단순화 기법이 인간으로서 느끼게 되는 불편한 진실을 극대화한다. 또 다른 독일 표현주의의 대가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의 <거리의 다섯 여인>도 불안하고 위협적이다. 전체를 지배하는 초록과 검정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분열되고 뾰족뾰족한 형상의 여인들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어 갇힌듯한 답답함 또는 폭발 직전의 긴장감을 뿜어낸다. 그림 중앙의 뼈도 없고 형태도 일그러진 여인의 손, 왼편의 바퀴만 보이는 자동차, 여인들 사이를 메우고 있는 라임색의 진열장 불빛 등으로 20세기 초 퇴폐적인 사회를 읽을 수 있다. 이렇게 격렬한 20세기의 키르히너가 차분한 종교화를 많이 그렸던 16세기의 뒤러를 평생 존경했다니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이 이런 경우일지도. 사실 키르히너는 '다리파'의 창립일원으로서 '고전적인 미술과 현대적인 개념을 연결하는 다리'를 형성하고자 했다. 거친 붓 자국, 부자연스러운 색채, 왜곡된 형태로 뒤러의 작품을 모방, 현대화했다는 점에 집중하여 두 화가를 이어주는 '다리'를 찾아본다.


 


 

 

이제 밝은 분위기로 옮겨오자면, 오르피즘 또는 오르픽 큐비즘의 개척자 소니아 들로네의 <일렉트릭 프리즘>이다. 파리 거리에 있는 전기 가로등에서 생기는 광학적 효과를 보여주는데, 조각보 이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기하학적 형태와 과감한 색채를 사용했다. 야수주의 회화에 사로잡혀 밝은 색채로 원근법 없이 평평하게 그렸지만, 색채와 형태가 겹쳐지며 사차원적인 역동성을 창조했다. 색채의 동시 대비의 법칙과 입체주의 개념을 혼합하는 그녀의 방식에 대해 '오르피즘'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알아볼 수 있는 주제를 없애고 형체와 색채에 의존해 의미를 전달하는 양식이다. 소니아 들로네의 남편 로베르 들로네도 반半기하학적 형태와 밝은 색채를 주로 사용했는데, 파울 클레에게 영감을 주었다.


 

 

천진난만한 회화의 대명사 파울 클레, 그의 그림 <빨간 풍선>도 어린 시절 손에서 놓쳐버린 풍선을 떠올리게 하는 유쾌한 그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리 또는 도시 풍경을 암시하는 기하학적 형태의 건물들이 보인다. 유일하게 둥근 모양인 빨간 풍선은 태양으로 볼 수도 있고 누구나의 기억 속에 저장된 어린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신비함을 가지고 있다. 놀이공원에서 풍선기구를 탔던 날, 흔들림이 유발하는 긴장감과 발치 아래의 광경을 내려다보는 전지적 쾌감을 동시에 느끼며 묘하게 설레었던 순간을 닮았다.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그림을 하나 시작하기 전에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타고난 소묘 능력의 소유자, 영국과 독일의 여러 철학의 추종자라는 독특한 이력이 투사되어 이 그림에는 신비와 자유가 가득하다. 튀니지를 방문했을 때 강렬한 빛과 자연스러운 색채들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는데, '색채와 나는 하나다, 나는 화가다'라는 그의 말 안에 이런 변화와 영감에 대한 감격이 스며있다. 작업 방법도 특이한데 무명천에 초크를 입혔고 종이에 검은색 유화 물감을 칠한 뒤 그 위에 깨끗한 종이를 덮었다 (감격스럽게도 이 책의 이 그림을 통해 파울 클레에게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천진난만한 분위기로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언어를 발명'한 화가로는 '호안 미로'도 꼽아야 한다.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자리한 '호안 미로 미술관'을 방문했던 날, 미로의 동화처럼 영원히 늙지 않는 세계를 발견했었다. 건물의 건축학적 유려함,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 층마다 방마다 기쁨을 안겨주는 미로의 작품들... 초현실주의의 발달에 핵심적 역할을 했고 야수주의 밝은 색채와 입체주의의 분열된 구도에 영감을 받았으며, 의식적-무의식적 생각을 창의적이고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자동기술법'을 착안했고... 창작의 지경을 종횡무진하는 미로의 예술은 이런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작지>의 대표 색채는 노란색인데 햇빛과 희망을 상징하며 카탈루냐의 몬트로이그에 있는 그의 가족 농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로가 그린 첫 번째 초현실주의 그림이지만 그 표현과 서사에는 불가해한 수수께끼보다는 정감이 넘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현란한 그림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유기적이고 평평한 형태들이 대거 등장하고, 천사의 날개를 상징하는 눈과 영혼을 상징하는 귀가 비현실적 이야기를 덧대며,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이미지도 차용하고 있다. 파리와 몬트로이그를 상징하는 요소들과 카탈루냐의 독립 노력을 묘사하는 등 자신의 근거지와 신념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양한 동물들이 노니고 쟁기로 밭을 가는 한적한 시골에서의 초현실적인 삶을 잠시나마 꿈꾸게 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도 미로처럼 자동기술법을 따라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주의 그림이다. 태양 아래서 녹아내리는 카망베르 치즈와 같은 시계, 죽음과 부패를 상징하는 개미 떼, 기형의 코에 곤충을 닮은 속눈썹을 가진 기이한 생물체, 이른 아침 같기도 하면서 석양을 암시하는듯한 모호한 빛, 스페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보여주는 절벽 등 보면 볼수록 현실과 환상을 기묘하게 섞어 놓은 장면이다. 분명 현실과 거리가 있는데 사진처럼 사실적인 모습으로 그려놓아 악몽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찜찜한 기분을 남기는 꿈을 관통하는 것 같다(달리 스스로도 '손으로 그린 꿈의 사진'이라 불렀다). 달리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가장 좋아했고 그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니, 일상의 지극히 현실적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한 베르메르가 이런 식으로 변질될 수도 있구나라고 의아했다. 그래도 가만 보면 베르메르의 그림을 채우고 있는 은은한 빛이 이 그림에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은 내 머릿속에 각인된 미국적 이미지 (아마도 뉴욕 같은 메트로폴리탄적 이미지)와 너무 달라 눈이 번쩍 뜨인다. 이유인즉 '소도시적 미국의 전통을 고수하는 구식 가치관을 반영하여 상세하고 사실적인 접근 방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시골에 고딕건축양식이라니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미국의 모나리자'라는 (역시 다소 과장된듯한) 별명을 얻은 여인의 근엄한 표정, 고딕 양식을 강조하듯 길쭉한 이목구비로 정면을 응시하는 남자, 수직선-수평선-사선을 강조하는 여러 장식과 무늬 등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이 소박함을 담고 있다. '그림을 위한 가장 좋은 아이디어들은 모두 소젖을 짜면서 얻었다'라는 말에서 미국 농촌의 일상을 강조하던 우드의 '지방주의'적 면모를 알 수 있다. 우드와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조지아 오키프'는 '미국의 모더니즘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기 시작했다. 사적인 이력으로는 유명한 사진작가 앨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첫 개인전을 열어 주었고 곧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점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했다)이 이채롭다. 작품으로도 이채로운데 '근접 확대한 세밀 묘사 그림을 그린 최초의 작가 중 하나'이다. <흰독말풀/흰 꽃 No. 1>은 '아주 오래된 자연과 자연계라는 주제를 고수하며, 현실과 추상 사이에서 진정 모던한 것을 포착하는 능력'을 증명한 그림이다. 기본적으로 흰색, 파란색, 초록색만 사용하여 꽃과 잎사귀를 단순화된 둥근 형태로 그렸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보아야 예쁘다'라는 싯구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세상 그대로의 넓이와 경이로움을' 묘사한 이 초근접 장면을 펼쳐 두고 있자니, 마치 내가 벌이 되어 꽃 속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커다란 꽃봉오리에 내려앉은 꿀벌 마야가 된 것처럼! 개인적으로 오키프는 내게 너무 아쉬운 이름이다. 2017년 8월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오키프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리 잘 알지 못하는 화가라는 이유로 지나쳐 버렸었다. 전설적인 이 여류 미국 화가의 그림을 런던에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 당시 너무 무지했기에 진가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뒤로 오키프의 이야기를 자주 맞닥뜨리게 되었고 그때마다, 지금 이 책을 보면서도, 후회에 온몸이 떨린다. 이 고통스러운 과오를 어떻게 씻어낼 수 있을지.


 


 

 

 

한편, 파리 피카소 박물관을 찾았던 날, 피카소와 알렉산더 칼더의 컬래버레이션 전시가 열리고 있었던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주로 회화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칼더는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모빌'의 대가로 알게 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만한 기억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 칼더의 모빌이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통할까. 전시를 둘러보며 나름의 답을 모색해 보았는데, 이 책에 소개된 <꽃잎의 호>를 통해 칼더의 팔색조 매력을 확인한다. 조각에 움직임을 도입하여 공기에 따라 움직이는 모빌을 창안한 것은 조각에 관한 그 이전의 모든 관습에 대한 도전이었다. 기계공학을 공부한 이력에 힘입어 알루미늄과 철사로 '살아있는 식물'을 구현했다. 재료를 자르고 구부리고 휘고 구멍을 뚫는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했고 꽃잎도 검은색과 회색으로 하나하나 손수 색칠했다. '미술이 왜 고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끊임없이 계속되는 우주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작품들을 시도했다. 놀라운 사실로는, 칼더의 모빌이 탄생한 데는 '피에트 몬드리안'의 공이 절대적이다 ('모빌'이라는 명칭은 마르셀 뒤샹이 붙여주었다). 칼더가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몬드리안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나서부터였고 스스로 '움직이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몬드리안의 원색 네모들이 한 방향으로 빙그르 움직이는 것처럼 칼더의 꽃잎들도 공기의 흐름에 따라 떠 있고 흔들리고 회전하며 즉흥적이고 무작위적인 무늬를 만들어낸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줄기에 의해 하나의 꽃잎은 주변의 다른 꽃잎들을 차례로 자극하여 끊임없는 움직임을 일으킨다. 실내 전시실이었지만 칼더의 모빌들 사이에서 가느다란 바람결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무수한 꽃잎들이 서로 빛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나의 착시가 아니라 실제로 칼더가 의도했던 자연스러운 장면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피카소와 칼더의 연결성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신, 칼더는 강렬한 색채와 정교한 붓놀림을 사용하여 단순성과 역동성을 전달하는데 주력한 미국 작가 '아서 보웬 데이비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소개한다.


 

 

칼더가 철사와 알루미늄으로 '움직이는 꽃'을 만들고 있을 때 몬드리안은 뉴욕으로 건너와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완성했다. '그림의 모든 요소를 감축함으로써 세상의 영적인 질서를 표현'하고자 했던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의 창시자로 수직과 수평의 직선 그리고 원색, 흰색, 검은색, 회색만을 사용했다. 몬드리안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건축물과 부기우기 음악에 빠져들었고 격자판 위에다 색채 조각들로 뉴욕과 부기우기 음악을 표현했다. 뉴욕의 노란색 택시와 자동차,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바둑판무늬로 배열된 길들이 그려져 있다. 색과 선이 교차하는 빚어내는 복잡다단함은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자신감에 찬 뉴욕의 활력을 전달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엇박자 속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와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부기우기의 발랄한 리듬도 느껴진다. 기존 작품과 달리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고, 다채로운 격자무늬 선을 그려 넣어 '시각적 진동 또는 엇박자같이 박동하는 리듬감'을 살렸다. 작업 방식도 독특한데 리넨 캔버스에 아교풀을 한 겹 바른 뒤, 그 위에 흰색 물감을 칠해서 매끈한 바탕을 만든 다음에 직선의 격자무늬를 그렸다. 직접 탱고를 즐겨 출 만큼 뉴욕에서 음악과 춤에 매료되었던 몬드리안, 새로운 환경에 매료되어 그가 느꼈을 설렘과 행복이 그림 전체에 가득하다.


 

 

** 『디테일로 보는 현대 미술』의 리뷰 (1)은 리뷰 (2)로 이어갑니다**

http://blog.yes24.com/document/13795153

 

*** 이 글은 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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