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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에게 바치는 단편소설집 | 문학 2023-09-1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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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빛 혹은 그림자

로런스 블록 편/이진 역
문학동네 | 2017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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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하면 떠오르는 것이 호퍼의 그림을 모티브로 공유, 공효진이 출현해 화제를 모았던 TV 광고다. 호퍼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광고는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대비, 서로에게 무관심한 모델의 표정 등이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곡의 영화에 영감을 주었을 뿐만아니라 영화, 사진, 광고, 소설 등 다양한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왜 세계대전과 대공항 시절의 화가였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지금까지도 전세계 대중문화예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아마도 그림 속 인물들의 고독감과 소외감, 쓸쓸함을 인물의 시선, 빛과 그림자의 대비 등을 통해 '찰나의 순간'으로 담은 호퍼의 그림이 '현대인들의 마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달 에드워드 호퍼의 회고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회를 관람하고 온 후 관심 갖고 읽은 책이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인 로런스 블록의 제안으로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17명의 작가들이 에드워드 호퍼 그림에 영감을 받아 쓴 단편소설을 묶은 <빛과 혹은 그림자>이다. 

 

<푸른 저녁; 로버트 올렌 버틀러>


[푸른 저녁, 1914]

 

 일본풍의 종이 전등이 걸려 있는 어느 카페, 피에로 분장을 한 어릿광대, 매춘부, 화가, 장교 등 7명이 무표정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어릿광대가 베란다 테이블 중앙에 자리잡고 있고 내 오른쪽에 르클레르 대령(장교)은 호텔에서 싱그럽게 단장을 하고 나(화가)와 대령에게 교태를 부리기 위해 서 있는 솔랑주(매춘부이자 화가의 뮤즈)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 나(화가)에게는 어머니를 죽이고 사라진 아버지가 있다. 소설은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파국으로 몰아가는데, 그림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피에로가 소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에로는 나(화가)의 분신일까?

 

나는 솔랑주를 돌아본다.

그녀가 미소 짓는다. "살 거에요." 그녀가 말한다.

 그 말에 담긴 모호함을 간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떨쳐버린다. 그녀는 결국 나의 천재성과 깊이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만든 자신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졌다. 나는 햇빛과 그림자 속에서, 잠과 열정 속에서, 그녀의 육체가 지닌 본래의 빛깔을 드러냈다. 오직 나만이, 그녀가 르클레르에게 보여준 그 열정적인 얼굴에 칠한 천박한 빛깔들 이면의 빰의 본색을, 본디 그대로의 시에나토와 황색토, 카드뮴 레드 빛깔의 그 빰을 알고 있다. 우리는, 솔랑주와 나는, 심오한 존재로서의 그녀가 오직 나의 손끝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 79쪽

- 저자 로브트 올렌 버틀러는 <이상한 산의 향기>로 소설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밤을 새우는 사람들; 마이클 코널리>


[밤을 새우는 사람들,1942]

 

 보슈는 명성이 자자한 사설탐정이다(전직 LA 경찰이다). 오늘도 사라진 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감시 대상인 그녀를 따라 들어간 호퍼 상설 전시실에서 호퍼의 대표작 <밤을 새우는 사람들> 앞 유일한 벤치에 그녀와 나란히 앉게 된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그녀가 물었다.

"저 사람들 말입니까? 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시죠?"

"이야기는 항상 있어요. 그림이란 결국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잖아요. 저 그림 제목이 왜 '밤을 새우는 사람들'인지 아세요?"

"아뇨, 잘 모르겠어요."

"왜 밤인지는 아주 분명해요. 여자와 함께 있는 남자의 '매부리 코'를 보세요."

보슈는 그렇게 했다. 그는 그것을 처음 보았다. 남자의 코는 날카로웠고 새의 부리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쏙독새.

"그렇군요."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하나 배웠다.

"하지만 빛을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저 그림 속의 그 모든 빛은 커피숍 안에서 흘러나와요. 그들을 그곳으로 이끈 바로 그 불빛이죠. 빛과 어둠, 음과 양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요." -139쪽

 

  보슈는 감시대상인 그녀와 호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과연 보슈는 명성이 자자한 사설탐정답게 사라진 딸을 찾아달라는 조직의 보스 그리핀의 의뢰를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그리핀을 속이고 그녀를 숨길 것인가? 왜 그녀는 아버지를 피해 사라졌을까? 짧지만 멋진 탐정 소설을 만나게 된다.

- 저자 마이클 코널리는 스물여덟 편의 장편소설을 낸 작가이며 그 중 상당수는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의 해리 보슈 형사가 주인공이다.

 

 <11월 10일의 사건; 제프리 디버> 


[선로 옆 호텔, 1952]

 

 때는 미소 냉전시대인 1954년 12월. 본인, 러시아 군사정보국 소속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시도로프 대령은, 올해 11월 10일에 일어난 사건과 그로 인한 죽음과 관련해 모스크바 타사리치 장군에게 보고서를 쓰며 소설은 시작된다. 시도로프 대령은 당시 47세였던 전직 독일 과학자 하인리히 디터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명받는다. 독일의 우라늄 클럽 과학자 중 한 명이었던 디터는 독일이 패전한 후 러시아를 위해 원자무기 연구를 지속할 것을 자청하며 러시아로 이송되어 일정 기간 재교육과 사상 교육을 받고 공산당원이 된 과학자다. 미 중앙정보국의 국제사업부가 서서히 마수를 뻗고 있는 상황(유력인사 납치)에서 베를린 합동 당 대회에 무사히 참석한 디터와 시도로프 대령 일행은 바르샤바행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로 향하는데...

 한 편의 첩보영화를 보는 듯한 이 소설의 백미는 호퍼의 그림 [선로 옆 호텔] 속 인물들처럼 대합실에 있던 중년 부부의 반전이었다.

 

우리는 출발 대합실에 앉아 있었고 그곳은 꽤 북적였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담배를 피웠고, 디터 동지는 신문을 읽다가 일어서더니, 열차가 도착하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KGB 요원과 저는 물론 그와 동행했습니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 근처에 있는 중년 부부를 보았습니다. 여자는 무릎에 책을 올려놓은 채 앉아 있었고 장밋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바지에 셔츠, 조끼를 입은 남자가 그 곁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쌀쌀한 저녁인데도, 그들 둘 다 코트도 입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어딘가 친근하게 느껴졌지만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 P.163

- 저자 제프리 디버는 전직 저널리스트, 포크싱어이자 변호사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소설 <그녀의 무덤>, <본 콜렉터>, <악마의 눈물> 등은 영화로 제작됐다.

 

<밤의 창문; 조너선 샌틀로퍼>

[밤의 창문, 1928]
 

다시 그녀가 보인다. 핑크색 브라, 핑크색 슬립, 이쪽 창문에 나타났다가 다시 그 옆 창문에, 나타났다가 또 사라진다. 조이트로프 속 사진처럼, 깜박이고, 덧없고, 미치게 만든다. - 363쪽 

 

 그는 자신의 아파트 창문으로 건너편 아파트의 그녀를 보고 있다. 그는 한동안 그녀를 관찰한 후 우연을 가장해 다가갈 것이다. 지난 번에 다루기 쉬웠던 촌뜨기 여자처럼...  그는 여자를 길들였고, 간단히 부수었다. 그에게 이 여자나 이 다음 여자나 모두 대체 가능한 존재들이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창문을 통해 관찰하며 그녀를 쫓아 같은 레스토랑에 두 번 따라갔고 판유리를 통해 그녀가 책을 소품 삼아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그는 드디어 그녀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실행에 옮기고 그녀와 조금씩 가까워지는데...

 그녀도 이전의 여자들처럼 그에게 길들여지고 부수질 것인가... 아니면 그가 모르는 그녀에게 비밀이 있는 것일까... 소설의 말미에 카트라시스가 기다리고 있다.

- 저자 조너선 샌틀로퍼는 베스트셀러인 「데스 아티스트」와 네로상 수상작 「공포의 해부학」을 비롯해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쓴 작가다. 유명한 화가이기도 한 그의 작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카고 미술협회, 뉴어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빛과 혹은 그림자>에 실린 17편의 단편 모두를 리뷰에 담기 어려워 호퍼의 주요 대표작을 배경으로 한 4편만 리뷰에 옮겼지만 벽장에 있는 방에서 신문을 읽는 남편과 피아노 앞에 앉은 부인의 평범한 모습 속에 반전이 압권인 스티븐 킹의 「음악의 방」이나 2017년 에드거상 최고단편부문 수상작인 로런스 블록의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을 리뷰 길이상 옮기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단편집에 참여한 작가 대부분이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라 일부 단편은 우리나라 정서와 달라 재미가 반감되기도 했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영감을 얻어 쓴 단편들이기에 그림 속 '찰나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독서를 할 수 있어서 흥미로운 독서였다. 당초 18명의 작가들이 <빛과 혹은 그림자>에 참여하기로 했으나, 표제화인 <케이프코드의 아침>을 배경으로 단편을 쓰려했던 작가가 소설을 쓰지 못 해 결국 책 속에는 <케이프코드의 아침>과 관련된 단편은 수록되지 못했는데, 이 그림이 표제화로 남게 된 경위가 독자들이 이 그림을 배경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이 단편집은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거나 영미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독서의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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