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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회색지대 인간 아닌 시대의 우물 퍼올린 이 | 나의 리뷰 2010-07-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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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창조
이어령 저/강창래 저 | 알마 | 2010년 05월
이어령은 이제 곧 팔순이다. 죽음을 준비해야 할 나이다. 헌데도 지칠 줄 모르는 맛깔스런 입담을 자랑한다. 학식과 해학과 사상과 언변에 능하다. 뿐만 아니라 책도 100권을 썼고, 많은 베스트셀러를 가지고 있다. 평론가로, 소설가로, 에세이스트로 성공한 이다. 그가 말한 대로 "우물을 파는 사람"으로 평생토록 살아 왔다. 우리시대의 지식인, 그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다.

 

물론 그가 사용하는 언어와 말은 많은 상징과 아이콘들로 가득 차 있다. 몇 해 전 펴낸〈젊음의 탄생〉과 〈디지로그〉는 그 좋은 예다. 그만큼 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삼천포로 빠질 수 있다. 온갖 사유의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뭔가 소득 없이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종종 그는 자신의 손가락보다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을 많은 사람들이 놓친다고 꼬집는다.

 

최근 그는 기독교계에서 세례까지 받았다. 그 일환으로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도 펴냈다. 딸과 손자와 관련하여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절박함 때문에 신 앞에 귀휴하게 된 배경을 그린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영성의 문지방을 넘게 된 소극적인 시발점이다. 더 적극적인 이유는 제도화된 교회를 뒤좇는 것과는 달리 진정한 예수의 가치를 실현코자 하는 목적에 있다.

 

이 정도면 그에 대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헌데 모든 이들이 그를 좋게 보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예전에 그가 쓴 〈젊음의 탄생〉을 읽고서 내가 서평을 쓴 적이 있는데, 누군가 그에 대해 흠집을 늘어 놓은 걸 봤다. 나로서는 그의 이면을 몰랐으니,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이어령은 노태우 정권 시절 초대문화부장관직을 지냈다. 이유야 어떻든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평을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받았음직 하다. 4·19직후에는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한국일보〉,〈경향신문〉,〈조선일보〉를 거쳐 지금은〈중앙일보〉고문으로 있다. 얼핏 보면 시대와 조우하여 회색지대에 곧잘 앉아 있게 된 인간상을 떠올릴 법도 하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 김수영과 다툰 불온시에 관한 논쟁. 나는 그 시대를 산 사람이 아니라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다만 김수영이 진보적인 새싹이었던 터라, 그를 둘러싼 논쟁을 벌였다는 것 자체가 진보적인 시각을 후퇴시키려는 불온한 의도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씨의 겉모습과 깨물어 먹는 맛은 천양지차이다.

 

강창래가 이어령과 인터뷰 하여 펴낸 〈유쾌한 창조〉에는 그때 당시 7차례에 걸친 이어령과 김수영의 불온시 논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40년 전의 불온시 논쟁을 다시금 들춰 낸 까닭은 그 시대적인 긴장감과 아울러 둘 사이의 편향되지 않는 균형감을 되찾아보고자 하는 의도도 깔려 있는 듯 하다. 그 때문인지 강창래는 이어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김현과 김윤식과 강준만과 기라타니 고진에 대해서는 적절한 금을 긋기도 한다.

 

그는 이어령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이어령과 관련된 책 200권을 읽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단행본을 비롯해 그의 작품론이나 평전에 가까운 것까지도 모두 섭렵했다고 한다. 아울러 그가 하나님께 귀휴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 서적도 15권이나 읽었고, BBC 다큐멘터리도 참조할 정도였단다. 아마도 그 때문에라도 이 책을 '이어령 작품집'이나  '이어령 평론집'이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책에서 이어령은 초대문화부장관직을 수락한 걸 두고 '루비콘 강을 건넜다'거나,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와의 계약'을 한 것이라 자평했다. 그만큼 악마의 소굴로 깊이 끌려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간 적극적인 이유를 예술종합학교와 국어연구원을 설립하고, 교육부산하의 도서관을 문화부로 옮겨 활성화시키고, 인간문화재의 맥을 잇는 복합문화학교를 건립하는 것이었다고 밝힌다.

 

아울러 4·19직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현재의 〈중앙일보〉에 몸담기까지 그는 세상의 현실 문제를 뒷전에 두지 않고 오히려 매일매일 품에 안고 칼럼을 썼다고 회고한다. 아울러 2009년 1월에 출간된 〈여적〉이 경향신문에 연재된 글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한때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도 받았고,〈전쟁 데카메론〉과〈지금은 몇 시인가?〉는 판재금지처분을 받았고, 한승헌 변호사의〈어떤 조사〉가 필화사건에 말려들었을 땐 법정에 나가 변호까지 했다고 한다. 그가 회색지대의 인간이 아님을 밝혀주는 설득력 있는 변(辨) 같다.

 

"이어령은 이 책이 '지난날의 문단 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현재의 이어령을 말해주는 디지로그와 창의성 이야기까지 담기를 바랐다. 지난 날 문단 문제라는 이야기 속에는 이어령이 한쪽 당사자이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이 앞에서 본 그런 형식의 글이 적당했는지 모른다."(168쪽)

 

이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이야기하려는 이어령의 기독교 입문과 그가 꿈꾸고 있는 세 가지 것을 일컫는 바다. 그가 하나님께 귀휴하여 세례를 받게 된 배경과 상황은 앞서 말한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으면 충분할 것이다. 중요한 건 죽음을 앞에 둔 시점인데도 아직까지도 그 우물에 미쳐 있다는 것이다.

 

그 우물이란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창조학교', '한국인 이야기'이다. 놀랍게도 그는 그것들이 모두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유인 즉, 한중일 연구가 세계사 속에서 가장 필요한 분야지만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야 하고, 각 나라의 입장 차가 있고, 먼 미래보다 지금 당장의 효과를 거두려는 이들이 있어서 쉽지 않는 까닭이란다. '창조학교'도 멘토들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한국인 이야기'도 어느 한쪽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는 이유란다.

 

헌데도 자기 몸이 수의에 쌓일 때까지 그는 우물 물을 파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고집부린다. 이유가 뭘까? 그것만이 미완의 교향곡을 쓸 수 있는 일이며, 그것만이 이 땅과 세계에 실마리를 하나 남기는 도전장이 될 수 있는 까닭이란다. 아마도 그것이, 세상은 반역하는 사람에 의해 변혁된다고 누군가 말한 것을, 그가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자 한 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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