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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 100주년_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기억과 연대! | 독서노트 2023-09-1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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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년을 건너온 약속

이진미 저
다른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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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정오무렵.

일본 간토지역에 진도 7.9의 강진이 발생한다.

그 여파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도쿄의 44%가 소실될 정도로 괴멸 상태가 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라는 유언비어가 조직적이고 빠르게 퍼지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후

조선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이 이뤄진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한 이진미 작가의 <백년을 건너온 약속>은 이 간토대학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백년... 그리고 약속...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또 저자는 린과 정필이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주인공 린은 어느 날 할머니의 부고를 전해 듣는다.

죽은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던 엄마는 한 때 시어머니께 린을 맡겨야만 했다.

린을 ‘니나 짱’이라 다정히 불러 주셨던 늘 그리웠던 할머니.

린은 장례식장에서 할머니가 손녀에게 남긴 편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할머니의 유품을 다 정리하겠다는 엄마의 말에 할머니 집에 몰래 찾아가 할머니가 쓰신 알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찬 수첩과 자물쇠로 잠긴 불단을 가져오게 된다.

 

나는 당신을 찾기 위해 살아왔고, 당신을 지우지 못해 죽어 갑니다.

당신과 한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1960년 9월 3일, 히데코-

 

이처럼 수첩에 담긴 미스터리한 내용을 풀기 위해 불단을 열게 되는데, 그 안에 담긴 만년필의 펜촉을 만지는 순간 린과 하루는 불단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2023년의 세상에 살고 있는 소녀 린이 1923년 정필이가 살았던 세상으로 들어가 펼쳐지는 형식이다 타임슬립, 자칫 진부한 전개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간토대학살이 있었던 그 때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흐른 지금, 소설은 이 타임슬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 과거를 꼭 기억해야 함을 말해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또한 이 책의 큰 가지는 과거 정필이와 정필이가 도와주려 했던 아이 히데코를 중심으로 학살이 이뤄졌던 과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린과 히데코의 못다 이룬 약속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들에게 묵직한 숙제와 메시지도 동시에 던져주는 듯 했다.

 


 

지진으로 인한 공포와 고통, 굶주림, 두려움에 들끊는 성난 군중들의 시선을 정부와 천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거짓 선동과 더불어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조직된 자경단을 이용해 어린아이부터 임산부, 노인, 청년 할 것 없이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묶고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대학살 사건.

 

그저 빼앗긴 땅에서 굶어 죽을 수 없어 일자리를 찾아 일본행을 택했던 조선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기회를 찾아 정착한 새로운 땅에서 차별과 모멸과 멸시를 받았던 그저 가난한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었다.

 

(위) 천안 1923역사관 (아래) 일본 시민단체 '호센카' 의 니시자키 마사오 이사 
 

 

40여년 동안 간토대학살 관련 증언과 기록을 수집하고 2009년 추모비를 건립한 일본 시민단체 호센카(봉선화)니시자키 마사오, 학살 희생자를 언급한 당시 일본 정부의 문서를 공개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야마모토 스미코, 이 책의 모티브가 되었던 일본 지역 축제인 ‘봄의 평화제’ 에서 간토대지진을 주제로 낭독극을 한 일본인 고등학생들, 어린이들의 작문에서 학살 증거를 발견한 중학교 교사 출신 고토 슈, 천안 병천면 중턱에 학살의 참혹함을 알리고 일본정부의 증거인멸과 진실규명에 앞장서기 위해 세워진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김종수 관장 등.

 

지금도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정부 그리고 혐한과 왜곡된 역사를 부추기고 있는 일본 우익 단체들에 맞서 긴시간 묵묵히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많은 조선인을 추모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이처럼 수많은 고마운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죽은 자의 권리를 기억하지 않는 사회는 산 자들의 인권도 지켜주지 않는다.”

 

거의 진실을 은폐하려 하거나 또는 과거를 덮고 미래로 나아가자고만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연대기억이 아닌가 싶다.

 

런 의미에서 <백년을 건너온 약속>은 우리 아이들에게 참혹한 실상을 기억하게 하고,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고, 깨우치게 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문학작품이 될 것 같다.

 

소설 속 히데코 할머니와 그의 딸 스미코 할머니가 미처 전하지 못한 1923년 정필 씨가 동생을 위해 부탁했던 생일 선물은 2023년 마에다 린을 통해 100년만에 이뤄졌다.

 

그런데 앞으로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차원에서의 과거 진상을 규명하고 일본이 반성하고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에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비록 그것인 언제일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조선인 학살이라는 아픈 역사의 사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조사와 책임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점점 흐려져 가는 역사를 꼭 기억하며,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며 진실을 밝히려는 많은 분들의 분투와 노력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함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느껴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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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사회화를 이끌어 낸 아사노 그리고 10년 간의 그의 궤적 | 독서노트 2023-08-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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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궤도 이탈

마쓰모토 하지무 저/김현욱 역
글항아리 | 202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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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부터 2년 2개월 후 국토교통부 항공 철도 사고조사위원회에서 공개한 사고조사보고서에서는 운전사의 브레이크 지연 즉 개인의 주의 소홀로 인한 실수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이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여동생, 맏딸을 잃고, 둘째 딸은 심한 중상을 입은 유가족 중 한명인 아사노 야사카즈 씨는 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원인’은 단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한참 잘못되었다.

이런 결과를 만든 JR서일본의 조직과 시스템의 문제가 누락되어 있다고 보고, 개인적인 슬픔은 묻어둔 채 대기업 JR을 상대로 기나긴 싸움에 나선다.

 

쟁점은 네 가지였다.

징벌적인 일근교육, 여유가 없는 철도 시간표 편성, ATS-P 미설치, 회사 전체의 안전 관리 체계.

아사노가 사고원인 4항목이라 부르는 이 메모가 JR과 두고두고 대치하는 주요 쟁점이 된다.

p.75 『궤도이탈』 제1장 상실 '유가족의 사회적 책임’ 중에서-

 

탈선 사고 당시 고베 신문 기자이기도 했던 마쓰모토 하지무의 『궤도이탈』은 탈선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감정 조차 봉인하면서 우직하게 하나의 목적만을 추구한 아사노를 중심으로, 10년 간의 행보와 분투를 옆에서 바라보며 그의 궤적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사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에 분노와 의문?부조리를 느꼈으며, 어디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는가.

가해 기업인 JR과 어떻게 마주했으며, 이 거대한 조직의 어디에서 문제를 발견해 추궁했는가.

이로써 무엇을 움직이고 바꾸려 했는가.

나아가 사고를 둘러싼 언론 보도와 사회의 반응은 그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가.

-p.24 『궤도이탈』 ‘프롤로그’ 중에서-

 

<아사노 야사카즈>

 

420여 쪽에 달하는 아사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참사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참사를 대하고 수습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닮아 있음에 소름이 끼치기까지 한다.

 

잘못된 보도와 누구 하나 ‘죄송하다 우리의 실수다’ 인정하는 이 없고, 사고의 진상과 원인 규명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다시는 유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보단 참사의 진실을 덮어버리는 데에만 급급해 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비방이나 악의적인 소문으로 2차 피해를 가하는 모습들.

 

아사노는 그의 가족이 희생된 사고를 ‘우연히 일어난 불행한 일’로 끝내지 않고, 사회 전체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른바 사고의 사회화를 이끌어 내게 된다.

 

제한속도 70km를 훨씬 웃도는 시속 110km 이상으로 커브 구간에 진입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비정상적 과속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즉, 그러한 비정상적인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혹은 그렇게 하도록 방조한 시스템 속에 진짜 원인이 있는 것이다.

-p.115 『궤도이탈』 제2장 연대 ‘맹세의 수기’ 중에서-

 

그 결과 아사노를 비롯한 4.25네트워크 유가족 모임은 가해자인 거대기업과, 같은 테이블에 마주앉아 수많은 대화와 질문 그리고 설득과 설명, 검증을 통해 마침내 JR조직을 가시화하고 안전 팔로업 회의 보고를 이끌어 내며 사고의 조직적 구조를 밝혀낸다.

 

또한 JR은 연수 시설인 ‘안전고동관’을 만들어 사고를 기억하고 안전의식을 계승하는 한편 안전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경미한 실수에 대해서는 징계하지 않는 대신 원인을 규명하고 향후 재발방지를 지향하게 된다.

 

10년.

안전을 위한 싸움에 정말 기나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JR 서일본 안전 팔로업 회의 보고서에 실린 '사고에 이른 주요 원인의 인과관계 연쇄 차트'>

 

 

의문점과 궁금한 부분을 솔직하게 몇 번이고 물었다.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을 규명하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기노시타는 말한다.

"부모인 내가 납득하면, 죽은 아들도 납득해줄 것 같았어요. 그 생각뿐이었죠."

p.313 『궤도이탈』 제3부 안전을 위한 싸움 제7장 대화 '과제검토회1:하나의 테이블' 중에서-

 

내가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다.

바로 책 말미 과제검토회에 나온 가해자 기업 JR 측의 한명인 야나기다 구니오 씨의 말이다.

 

지금까지의 사고, 재해, 공해 문제에서는 피해자의 존재가 너무 가볍게 다뤄졌다.

원인을 제공한 기업에서는 피해자를 손해배상과 보상을 청구해오는 상대라는 이해관계로밖에 보지 않았다.

재발 방지와 안전성 향상을 지도하는 정부도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말하자면 피해자를 '건조한 3인칭 시점'으로 봤던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풍부한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피해자(1인칭)나 사회적 약자(1인칭) 및 그 가족(2인칭)에 가까운 관점을 지녀야 한다고 느낀다.

'이게 우리 부모님, 배우자, 자식들이었다면'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다.

물론 전문가나 조직의 관점(3인칭)에 요구되는 객관성과 사회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대응을 나는 '2.5인칭 시점'이라고 부른다.

p.313 『궤도이탈』 제3부 안전을 위한 싸움 제7장 대화 '과제검토회 2:2.5인칭 시점' 중에서-

 

2.5인칭 시점.

가해자는 이처럼 참사의 피해자나 유가족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를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참사 이후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더 나아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 안전시스템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상) 탈선사고 현장에서 상주하며 방문자들에게 예를 올리는 JR서일본 직원들 (하) 후쿠치마야선 참사 현장의 분향소(출처:프레시안)>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이렇게 큰 참사 앞에 유가족과 가해자 JR이 함께 진상규명에 나서,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끝에 안전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어느 신문기사에 놀라움을 느껴서였다.

 

씁쓸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낯선 모습.

 

어떤 이유에서든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은 아마 헤아릴 수 없이 슬플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이유가 인재였다면 억울한 죽음에 더해질 슬픔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남은 이들은 사고로 인한 깊은 상처를 간직한 채 내 옆에 있었던 사람들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게 될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는 안전한 사회인가?

안전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는가?

사고의 수습은 잘 이뤄지고 있는가?

사고의 사회화가 이뤄지고 있는가?

가해자는 유가족, 피해자들을 2.5인칭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나와 이 사회는 사고의 유가족, 피해자 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 책을 본다면 아마도 내 자신과 사회를 향해 끊임없는 물음이 생길 것이다.

바라건대 그 물음에 긍정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날이 왔음 좋겠다.

그래서 참사가 일어났던 그 날에서 멈춰진 남은 자들의 기억과 슬픔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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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삼킨 소년 태의 | 독서노트 2023-08-2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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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리를 삼킨 소년

부연정 저
자음과모음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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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 장르로 분류되고, 자음과모음 제10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책이자 행복한아침독서와 경향신문 추천 책이기도 한 부연정 작가의 <소리를 삼킨 소년>.

 

네이버 이웃 블로거 님의 글을 읽다 이 책은 꼭 읽어야지 하고 도서관에서 호다닥 빌려와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다. 지금까지 3번은 족히 읽었고 감상문을 쓰기 위해 다시 천천히 되짚어 보고 있는데도 여전히 재밌다^^

 

평상시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는 책마다 ‘이건.. 결론이 쫌..’, ‘스토리가 좀 어거지 같은데.’ 라며 고든램지 급 평을 쏟아내는 아주 깐깐한 중1 아이도 이 책 만큼은 '‘오~ 재밌네!’ 라는 평을 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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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의는 아스퍼거증후군과 함묵증을 가진 15세 중2 소년이다.

어느 늦은 저녁 보물1호 쌍안경을 들고 뒷동산에 있는 체육공원을 갔다 우연히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 살인범을 피해 집으로 가다 발각이 되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쌍안경을 범인에게 던지고 도망치게 된다.

다음날 휴대폰 기사에는 살인사건이 아닌 단순 사고사로 보도되고, 태의는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서기 위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단서를 모으게 된다.

 

바보.

벙어리.

모자란 놈.

모두 나를 부르는 말들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를 뿐이다.

-p.7 소리를 삼킨 소년 ‘목격자’ 중에서-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소설 속 주인공 태의가 바라보는 세상은 재미있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하고 어쩔 땐 상당히 솔직하기까지 하다. 많은 독자들이 드라마 속 우영우가 연상된다고 하는데, 나 역시도 그랬다.

 

가령, 할머니가 본인을 ‘강아지’라고 부르니 너무 이상해서 아빠에게 혹시 ‘개’냐고 물어본다든가, 반장이 범인 찾기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태의에게 햄버거를 사라는 말에 반장의 아빠가 가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든가, 내 마음도 잘 모르는데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의 의도나 주인공의 심리는 당연히 알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친구도 없고 사회성도 없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딸기요거트아이스크림을 제일 좋아하는 태의.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의는 어릴 적 엄마의 학대로 인한 선택적 함묵증과 트라우마까지 가진 마음이 아픈 아이이기도 했다.

 

나는 겁에 질린 얼굴로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삼켰다. 이럴 때 소리 내어 울면 엄마의 화를 부채질하고 만다. 훌쩍훌쩍, 미처 삼키지 못한 울음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누가 네 엄마야! 제발 조용히 해. 닥치고 있으라고! 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단 말이야.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내 세계에서 유일한 타인은 엄마였고, 엄마는 나의 생존에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렇기에 나는 엄마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반병신이 태어나서 내 인생을 다 망쳤어.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엄마가 악담을 퍼부으며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p.181 소리를 삼킨 소년 ‘엄마’ 중에서-

 

엄마가 때리는 등보다 날카로운 말들이 가시가 되어 심장에 예리한 상처를 냈다는 글귀에서 또 엄마가 더 이상 내 심장에 가시를 박지 못하도록 스스로 가슴을 부등켜안았다라는 표현에서 그 어린 태의가 받았을 아픔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보지 말았어야 할 엄마의 자살, 듣지 말았어야 할 모진 말들, 받지 말았어야 할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어린 태의는 온전히 홀로 겪어야만 했고, 그 결과 자신의 소리를 삼키고 만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태의는 어쩌다 목격한 살인사건에서 마주한 여러 단서를 통해 마치 셜록 홈즈가 된 듯 살인범을 직접 찾아 나서게 되는데, 같은 반 반장 나은수와 공원에서 늘 같은 자리에만 앉아 있는 노숙자(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게 된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던 태의가 이들과 소통하며 조금씩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흐뭇해 지면서, 동시에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손 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태의(아빠 조차도)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모습에 뭉클하기까지 했다.

 

올해 들어 청소년 관련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 좋은 책들을 만나게 되면 그냥 마음이 좋을 때가 있다. 솜씨없는 글로나마 블로그에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설레이기도 하고^^

이 책 역시 내 마음을 훔친 책 중 하나였다.

 

유쾌함 속에 긴장과 슬픔과 메시지와 감동, 모든 것이 짜임새 있게 잘 담겨 있기도 하고, 몰입감 있는 스토리와 글로도 이렇게 상황 설명과 내면의 마음이 표현될 수 있음에 내심 감탄하게 만든 책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의 태의가 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태의가 아니어서 감사했다.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태의 곁에 있음에 감사했다.

 

책 말미, 긴 함묵증 끝에 마침내 입을 연 태의의 한마디가 나온다.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책 속에 있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청소년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는(은) 부연정 작가의 <소리를 삼킨 소년>, 한번쯤 꼭 읽어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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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 독서노트 2023-08-1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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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뚜이부치

최덕현 글그림
북멘토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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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무지했던 내가 처음 난징대학살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MBC <선을 넘는 녀석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잠시 언급된 내용을 통해 그때는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느낀 정도였다.

이 후 tvN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살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함과 마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군 병사로 참전했던 실존 인물 ‘아즈마 시로’의 이야기를 픽션으로 각색해 만든 최현덕 작가의 <뚜이부치_단 한마디를 위한 용기> 이 책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로까지 이어지는 역사 이야기를 좀더 깊게 들여다 보게 되었다.

 

 

<아즈마 시로_출처 : 한국일보>

 

책은 난징대학살에 참전했던 일본군인 아즈마 시로가 훗날 노인이 되어 난징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대학살이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살인과 방화, 약탈과 강간이 전쟁의 사기를 올릴 수 있다는 일본군은 전쟁포로부터 민간인까지 가리지 않고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또한 성병을 막고 군의 사기를 올린다는 명목 하에 한국, 중국, 필리핀 등지의 여성들을 거짓과 납치로 동원해 일본군 ‘위안부’를 만든다.

총검술 또는 100인 참수 경쟁 일명 목베기 시합 등의 대상이 된 민간인들.

무고한 학살의 실상을 알게 된 아즈마 시로는 위안부에서 만난 한 중국 여자를 난징 국제 안전 구역에 데려다 주기 위해 애쓰지만 실패하고 그 역시 학살 가해자 중 한명이 된다.

 


 

그림으로 만난 가슴 아픈 역사 이야기는 실제 사진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당시의 잔혹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흑백으로 되어 있지만, 희생자들이 흘린 피는 붉은 색으로 표현되었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흘린 핏빛으로 물든 양쯔강과 그 강 하늘에 뜬 달마저 붉은 색으로 물든 장면은 학살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욘 라베와 그의 일기를 바탕으로 출판된 저서 >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자 대사관 건물과 난징 대학 건물 등을 활용해 난징 국제 안전 구역을 만들어 25만명의 중국인을 지켜내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에게는 잊지 못할 영웅인 욘 라베(John HD. Rabe)를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나치당 당원으로 독일의 패전 후 전쟁 범죄자라는 오명을 받아 비참한 말년을 맞이했지만, 그를 잊지 못한 난징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근근이 버티다 사망했고, 훗날 그의 묘비는 난징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2009년 난징대학살 당시 욘 라베의 행적을 담은 영화 「John Rabe」가 만들어졌고, 우리 나라에서도 2014년에 개봉되기도 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저자가 책을 펴 내며 참고한 영상 중 하나인 ‘MBC 창사 특집 다큐 세계를 뒤흔든 순간_난징대학살’ 3부작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보기도 했다.

 

<아이리스 장과 'The Rape of Nanking(난징의 강간)' 표지>

 

이 영상에 나오는 인물인 1997년 최초로 영어로 된 난징대학살을 고발한 <난징의 강간(Rape of Nanking)>을 펴낸 저자 아이리스 장(장춘루).

그녀는 부모로부터 어릴 적부터 난징대학살에 대해 들었지만, 그 실상을 알리는 사진전을 통해 큰 충격을 받고 직접 난징으로 가 학살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수집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책을 펴내 세계적으로 일본의 만행을 알린 인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우익단체로부터 협박을 받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4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난징대학살 50주년 기념일인 1987년 12월 13일 종전 후 처음으로 난징을 방문, 난징대학살 기념관에서 무릎을 꿇고 학살 사건에 대해 사과했던 아즈마 시로, 25만명의 중국인을 보호하고 나치당원임을 알리는 완장을 무기삼아 일본군의 만행을 저지한 욘 라베 그리고 난징대학살 피해자의 후손으로 해외에 그 실상을 알렸던 아이리스 장.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모두 난징에서의 학살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작품에서 가해자 일본군과 피해자 중국인 만을 다루는 것보다 일제의 집단 학살과 폭력에 저항하며 몸부림치지만 결국 굴복하고 마는 아즈마 시로의 이야기를 통해 인류애라는 희망마저 짓밟는 전쟁의 잔학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 거대한 힘 앞에 굴복했지만, 자신의 잘못 용기 내어 고백한 이즈마 시로의 모습을 통해 모든 ‘일본인’이 전쟁 가해자로서 기억을 잊고 사는 단일한 존재가 아님을 드러내고자 했다.”

- <뚜이부치> ‘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전쟁과 학살, 연대와 행동 등 많은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내가 찾은 답은 기억이다.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다. 역사는 기억하는 것이다’ 라며 베를린 한폭판에 세워진 유대인 희생자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비추던 다큐멘터리 영상이 떠오른다.

전쟁 중에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대학살은 일어나지 않았고, 증언과 책에 나온 내용은 모두 조작된 것이라 주장하는 우익 단체들과 여전히 과거 제국주의 시절 그들이 행한 만행에 대해 왜곡된 역사 교육을 하는 일본.

우리는 그들 앞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으로부터 기억하게 하고, 감추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역사의 오류 앞에 경종을 울리고 지혜와 교훈을 습득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만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부담감 없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는 과거 역사와 오버랩 되며,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라는 탄식과 분노가 절로 나오는 그들의 잔혹함에 책을 덮을 때에는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아픈 역사를 통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며 던져진 묵직한 숙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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