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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 | 영화 2023-11-3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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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에서도 두 번 등장하지만(학교 국어 시간에 한 번, 영화 끝날 때 한 번),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중에서라면 이게 '초원의 빛'이 틀림 없다. 아예 meadow라는 단어도 등장하기까지 하며, 그 전에 전체 맥락으로 보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순전히 영화의 줄거리만 따로 떼어 놓고 볼 때에는, 대개 이 극이 농촌을 배경으로 삼긴 했어도, 이 the grass를 꼭 '초원(이 우리말 단어도 모호한 구석이 있음)'으로 새겨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오히려 디니(윌마 디니 루미스. 내털리 우드 扮)가 정신병원에서 요양할 때, 그 앞마당의 푸른 잔디가 더 눈에 들어왔다. 저게 바로 the grass 아니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시퀀스보다 훨씬 앞에, 예의 그 국어 시간 낭송이 일어나므로 구태여 그런 무리하고 단절적인 해석을 시도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해야겠다.

한편 'splendo(u)r'는 과연 '빛'으로 딸랑 새기고 말면 될까? 영화 많이 봐 온 이들은 대번에 생각날 만한 다른 작품이, 그 주제가까지 함께 유명한 <모정>이겠다(윌리엄 홀든, 제니퍼 존스 주연. 이거 역시 레이스 리프트의 좋은 예). 이 작품(과 그 주제가)의 원제가 'love is many-splendored thing'인데, much도 아니고 many가 들어간 게 너무도 특이하다(사이에는 하이픈까지). 이건 splendor가 처음에는 가산명사(countable)였다는 뜻이며, 지금이라고 사정이 크게 바뀐 것도 아니다. 이 표현이 생경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내가 제법 교양 있는 원어민들과 대화해 봐도 그들 역시 크게 다른 느낌이 아니었다. (그쪽도 사람들 어렸을 때 공부 안 해서 지식, 교양 수준 떨어지는 건 심각한 문제임. 예를 들면 좀 곤란할 것 같아 일단 생략) 여담인데, 이 주제가야말로 나의 애창곡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간의 우아하고 한껏 고양된 감정이, 열정과 모럴 사이에서 얼마나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곡조, 가사. 아.

생각해 보니 저 <모정>과 이 작은 그리 제작연도가 많이 차이 나지도 않는다. 이 작에서 워런 비티의 아버지인 사업가 에이스 스탬퍼 역인 팻 힝글의 경우, <모정>의 주인공 윌리엄 홀든보다 (안 그래 보여도) 나이가 7, 8년 가까이 연하이다. 디니의 생각 깊은 아버지(이런 사람이 진짜 딸에게는 좋은 아빠임. 안 그런 척하면서 딸의 속마음을 가닥가닥 다 헤아리는 참으로 자상한 타입) 프레드 스튜어트는 오히려 저 윌리엄 홀든보다 열 살이나 많다(이거는 비주얼과 매치됨). 이것저것 종합해 보면 윌리엄 홀든(전자의 중심 인물)과 내털리 우드(후자의 히로인)이 서로 대략 부녀 지간 정도 된다는 결론(그래서, 뭘 어쩌라구?).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이 공연(共演)한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내가 지금 이 소리를 하는 이유는, 이 두 배우가 진짜 부녀지간으로 호흡을 맞출 기회가 있었다면 걸작 케미가 한번 이뤄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

한편 이 영화는 워런 비티의 실질적인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는 이때로부터 근 삼십 년이 지나, 아네트 베닝(내가 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이분 너무 독살스럽게 늙음. 젊어서 표독한 이미지였다 해도 늙어서는 사람이 유해지는 멋이 풍겨야 하는데, 이분은 거꾸로 가는 것 같음)과 함께 멋진 앙상블을 이루며 말그대로 제2의 전성기를 일군 그 배우이다. 단절이 좀 선명히 형성되어서 그때 워런 비티를 처음 안 사람들은 이 <초원의 빛>을 전혀 모르며, 반대로 올드팬들(영원히, 순수하고 아름다운 청춘의 아이콘으로 그를 기억할)한테 <벅시> 같은 걸 이야기해주면 깜짝 놀라곤 했다.

이 작품에서 워런 비티는 삼십 년 뒤의 모습과 기본 틀이 거의 그대로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근사한 버틀과 이목구비도 그리 크게 손상되지 않은 채 유지하고 있었고 말이다. 보면서 정말 감탄이 나왔다. 이때의 모습뿐 아니라, 그가 늙어갈 삼십 년 후의 미래에까지 함께 말이다.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다시 이십 년 가까이가 흐른 지금, 그는 마치 전에 대중의 눈 앞에서 싹 사라졌듯 또한번의 휴지기를 가진다. 난 이런 점도 추한 모습 덜 노출하려는 그의 깔끔한 처신이라고 생각한다.

긴 소리 필요 없이, 이 영화는 누가뭐래도 나탈리 우드의 영화이다. 지금 다시 보니, 까마득한 후배인 올리비아 허시(핫세)라든가, 알리 맥그로의 좋은 점만 합쳐 놓은 듯한, 게다가 청춘의 정열과 원기가 한번에 발산되는 듯한 그 '힘'이 참으로 놀라웠다. 이런 건 그저 피지컬로 예쁘게 타고났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내면에조차 범인이 함부로 모방 못 할 어떤 무엇이 자리한다는 소리다. 그녀의 얼굴과 몸짓만 구경해도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이었다. 이 서평 맨 위 문단, 만약 그 정신병원의 잔디가 the grass라면, (차라리 보편의) splendor는 다름아닌 나탈리 우드가 되는 거고 말이다.

이 영화는 윌리엄 인지의 원작 소설이 있다. 사실 그 장편은 비록 드라마 구조를 취한다고는 하나, 소설로 읽어야 제대로 주제가 전달되지, 영상물이나 극예술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려웠을 텐데, 배신자건 뭐건(ㅎㅎ) 엘리아 카잔이 여튼 이야기를 꾸려 내는 솜씨는 참으로 뛰어나다. 이야기가 잘 안 풀릴 것 같은 꼬인 사연을, 그렇다고 아주 많은 대사를 집어 넣거나 연기자에게 막 오버액션 시킨 것(이거의 아주 대표적인 실패작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영화판)도 아니면서, 어느새 관객은 '저 사람들 왜 저렇게 싸우고 난리지?' 하는 의문이 채 형성될 시간도 없이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고, 미리 '답'까지 함께 찾으러 나선다. 성별과 계층에 관계 없이, 관객을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진행이다. 이 무렵이면 미국에서도 세대 간 갈등이 극심히 드러날 시절인데, 카잔은 따스한 마음으로, 자신도 부모 세대면서 '여튼 어른들이 애들을 이해해야지 다른 수가 있겠냐'며, 온화한 어조로 끊임 없이 시니어를 다독거린다. 젊은 관객 역시 저 피끓는 청춘(말 그대로임. 미쳐버릴 것 같은 젊은이들 이야기임)에 몰입하면서도, 역으로 어른들의 고민에 대해 한 번 정도는 시선을 돌리게 하는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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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로 저 작품은 각종 증거품을.. 
잘 봤어요..끌리는 작품입니다 
보고 싶어졌어요..리뷰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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