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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민의 한국사 2

한국역사연구회 저
돌베개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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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국사 2근현대편으로 개항기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개항기

한국이 근대국가를 수립하려는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에 병탄되는 1910년까지.

흥선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고 외세를 배격하지만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국정기조가 변화한다. 일본, ,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열강과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은 근대적 세계질서에 편입되었다. 개화세력은 갑오개혁을 추진해 한국사회의 모습을 근대적으로 변모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독립협회의 근대국가 수립 시도도 고종과 충돌하며 좌절되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내정을 장악했고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투쟁이 있었으나, 1910년 한국은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식민지기

일본의 식민지가 된 1910년부터 해방을 맞이한 1945년까지.

한국은 역사성 처음으로 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을 억압, 차별, 수탈하고 민족성 말살정책을 폈으며, 경제는 식민자본주의로 일본에 예속되어 불평등이 심해졌다.

이에 한국인들은 비밀결사운동, 독립군 기지 건설운동, 사회주의 운동, 무장투쟁 등 다양한 노선과 방식으로 저항했고 이 과정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민족의식이 강화되었다.

식민지기에는 외래의 기술, 학문, 사상 등이 도입되고 확산되며 사회가 근대적으로 변화하였고 농민, 노동자, 학생, 여성 등의 사회 세력이 성장하며 대중운동을 펼쳤다.

 

현대

1945년 해방 이후 현대에 이르는 동시대사.

해방 이후 미소 분할 점령으로 남북한이 분단되었고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3년 만에 휴전했으나 남북의 대치상태는 7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제는 1950년대 원조경제, 1960~70년대 개발독재를 거치며 1990년대 중반까지 고도성장을 이뤘으나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후 외환위기는 빠르게 극복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경제력이 집중되었고 양극화가 일어났다.

4월 혁명, 3선 개헌 반대운동으로 이어진 1960년대 민주화 운동은 유신 반대운동, 재야민주화운동 등의 197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고,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신군부가 등장한 1980,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성장을 예고했으며, 19876월 항쟁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고 이후 각종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촛불집회는 2016~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적폐 청산요구 시위를 거치며 촛불혁명으로 승화됐다.

 

개항기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는 약 150년의 역사가 500여 페이지에 정리된 한국의 근현대사. 현대로 올수록 동시대의 문제가 등장하여 역사라기보다 시사(時事)처럼 느껴진다.

이번 리뷰에서는 아직 판단이 어려운 현대사보다 근대사 중에서 전부터 궁금했던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고종은 그저 불운한 군주였을까?

고종 집권기는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세력다툼으로 기억된다. 책이건 드라마건 그렇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고, 왕은 둘 사이에서 시달리며 국내외 문제에 대처해야하는 안쓰러운 존재였다. 선한 의지는 있으되 상황이 따라주지 않은 인물. 구한말 민생을 파탄에 빠뜨린 민씨 일가나 을사오적 등의 매국노가 비난받는데 비해 조선의 최고 책임자 고종은 민생 파탄과 국권 상실의 직접적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고종은 피해자였을까? 그에게 국가와 백성은 어떤 의미였을까?

 

황제는 아관파천으로 실추된 군주권을 강화하려 했고, 서재필은 민중 계몽을 통해 근대 국민국가 수립을 지향했으며, 정동구락부 세력은 정계의 주도권을 장악해 내정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18982월 이후 독립협회가 민권운동과 참정권 획득운동을 전개해가는 동안 황제권력과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

독립협괴가 주요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자, 황제와 보수파 관료들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5월 서재필을 중추원 고문에서 해임하고 미국으로 추방했다.

...

독립협회는 국정개혁안으로 헌의 6를 제시하고 참석한 정부 고관들에게 이를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헌의 6조는 표면적으로는 황제 중심의 정치체제를 구상했으나 이것은 황제가 희망한 무제한적 군권 행사를 의미하지 않았다. 1조 외에 다른 조항들은 황제권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강력한 전제 황권을 추구한 황제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던 것이다.

...

고종 황제는 1223일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만민공동회를 진압하고 독립협회를 해산시켰다. 이로써 독립협회의 근대 국민국가 수립운동은 좌절됐다.

(p.65~68)

 

독립협회가 해산된 이후 고종은 대한국국제를 반포하며 황제권을 절대화했다.

협회 해산 이후 황권에 맞설만한 세력이 없자 고종은 구본신참의 명분으로 옛 제도를 부활시켰고, 국가의 자주독립과 군주의 안위를 위해 경찰력과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개항 이후 고종은 외국의 여러 외교관, 선교사들과 국내 개화 인사들을 통해 구미 근대국가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여러 인사들이 황제를 알현하고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정보를 전달했다. 고종은 전기, 전차 등을 받아들였고, 복식을 바꾸고 커피를 즐기는 등 외래 문물의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는 구미 국가의 겉모습만을 보았을 뿐 근대국가 대한 이해가 없었다. 서구 열강의 정치체제가 입헌군주제나 공화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독립협회의 입헌군주제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전제군주제를 주장하는 모습에서 고종의 한계가 잘 드러난다. 절대군주국가에서 군주의 역량은 국가와 국민의 운명과 무관할 수 없다. 조선은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음에도 근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했고 주권마저 지켜낼 수 없었다.

 

둘째, 친일파도 할 말이 있다?

사회진화론은 19세기 중엽 허버트 스펜서(1820~1929)가 생물학의 진화론을 사회현상에 적용한 이론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정의가 아닌 힘이라 주장하므로 당시의 제국주의 국제질서를 잘 설명해준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구의 문물과 함께 이 이론을 받아들이며 조선이 국제질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힘을 길러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일협력활동은 개인의 욕망문제만은 아니었다. 친일협력을 정당화하는 다양한 논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친일협력을 정당화한 핵심논거는 민족의 주체성에 대한 불신이었다. 한민족은 독립국가를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충실한 제국 신민이 되어 현실적 이익을 확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본 것이다. 대표적 친일협력 세력인 윤치호에 의하면 물지 못하면, 짖지도 말아야하는 것이었다.

...

문화통치가 전개된 1920년대에는 이런 논리가 더 구체화됐다. 가망 없는 독립을 주장하기보다는 일본제국 신민의 권리를 혹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대표적인 예가 1920년대 최대 친일단체였던 국민협회가 추진한 참정권 청원운동이었다.

...

친일 세력은 다양한 논리로 친일활동을 정당화했지만, 결국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또 다른 지배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친일 논리의 귀결점이었다.

(p.201~203)

 

서구의 제국주의 논리인 사회진화론이 약자의 입장에서 무비판적으로 해석되었을 때 패배의식으로 흘러 친일파의 주장에 이용된다는 설명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동안 친일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판단만을 했을 뿐 그들의 논리를 살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그런데 정말 사회진화론 때문에 그들이 친일을 했을까? 사회진화론은 합리화도구일 뿐 친일의 본질은 지배층이 되고자하는 그들의 욕망이었다. 이것은 이 시대 뿐 아니라 지난 역사를 통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말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적국의 지배층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없었다면 친일파가 생기지 않았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친일파는 어떤 상황에서도 등장했을 것이다. 사회진화론이 아닌 다른 그럴듯한 이론을 이용해서라도.

한편 친일파의 주장 중에는 언뜻 보기에 조선인에게 이롭게 보이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참정권 청원운동은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을 주자는 주장인데 당시 차별받는 평범한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교육, 경제활동 등의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받는 게 멀어만 보이는 무장독립투쟁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그 시대를 살았다면 내 행동이 친일인 줄도 모르고 포섭되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역사에 가정이 없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진다.

 

한국사 근현대사 편을 만날 때는 심호흡이 필요하다.

고만고만한 이름의 복잡한 사건이 많고 외울 연도가 빼곡하다는 점도 힘들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패배와 굴욕의 역사, 그리고 그 흑역사가 지금의 우리와 맞닿아있기에 중요한 만큼 더 외면하고 싶어진다. 끊이지 않는 민중의 저항,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조차 자기 위안처럼 보여 안타깝다. 그래도 이 책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국가주의적 해석으로 미화하거나 사건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설명을 덧붙여 독자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점이 좋았다.

한 번에 짧은 리뷰로 정리하기엔 방대한 분량이다. 두고두고 찾아 읽으며 역사 지침서로 활용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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