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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화상을 통해 본 화가의 심리세계

이병욱 저
학지사 | 2019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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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에는 얼굴의 생김새만으로 운명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관상만으로 운명이 결정되지는 않겠지만 인상, 눈빛, 혈색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로 사람의 건강과 성격을 알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기껏해야 사람 좋아 보이네’, ‘인상이 좋지 않네’ 하는 수준이고 그마저도 사람 잘못 봤네하며 실망할 때가 많으니까.

전문가라면 어떨까?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여러 사람을 상담해온 학자나 정신과 전문의는 첫인상으로 상대의 사람됨과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인간심리를 연구하고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 프로이트와 함께 하는 세계문학일주등의 저서를 펴낸 이병욱 님의 저서 자화상을 통해 본 화가의 심리세계은 이러한 호기심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준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37명의 화가가 남긴 자화상으로 화가의 심리를 분석한다. 첫인상만으로 사람의 내면을 알기는 어렵겠지만 화가가 스스로를 그린 자화상이라면, 그리고 전문가의 안목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수도승 같은 모습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화상, <최후의 심판>,<성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등의 그림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은 미켈란젤로, 우아하고 단아한 미남의 정석을 보여주지만 공허해보이는 라파엘의 자화상. 그들의 작품은 최고의 걸작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만 정작 자신은 평범한 행복을 누리지 못했고, 자화상 또한 어둡고 우울하기만 하다. 르네상스의 천재들뿐이랴. 예술가는 원래 그래야하는 것처럼 이후의 화가들 또한 어두운 표정의 자화상을 남겼다.

 


 

19세기 미국의 대표화가 제임스 휘슬러의 자화상이다.

 

매우 반항적인 표정에 냉소적인 시선,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 등 교만에 가득 찬 모습을 통해 그의 나르시시즘을 엿볼 수 있는데, 20대 중반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초췌한 모습이기도 하다.

...

그렇게 제멋대로 살아가며 몸에 밴 방자한 태도는 30대 초반에 그린 자화상에서도 변함이 없다.

휘슬러 특유의 그런 냉소적인 시선은 30대 후반의 이른 나이에 그린 자화상 뿐 아니라 60대 노년의 자화상에 이르러서도 여전함을 알 수 있는데, 대부분 꼿꼿한 자세로 야릇한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에서 그의 강한 자부심과 반항심을 읽을 수 있다.

(p.167~168)

 

저자는 휘슬러의 대표작 <화가의 어머니>가 냉담하고 지배적인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엄격하고 독실한 청교도 신자였던 어머니와 불화했고 실제로도 미술 공부하러 파리로 떠난 뒤 한 번도 미국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화가의 어머니>는 약속한 모델이 도착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모델로 그려 완성된 작품이다. 처음에는 선 자세로 그리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해서 앉은 자세로 바꿨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역시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있어 마치 화가와 엄청 싸운 사람처럼 보이는 게 이해가 되었다. 이 그림을 초상화가 아니라 조형적 요소에 집중해서 봐야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어머니의 표정과 자세에 중심을 두고 분석하는 설명은 처음이라 저자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의 자화상이다.

부유한 집안의 지원을 받으며 그림을 그렸지만 모델과 동거하는 등 복잡한 사생활로 아버지에게 비난받고 화단에서도 인정받지 못하자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세잔은 3,40대에 집중적으로 많은 자화상을 남겼지만, 30대 중반 그의 모습은 거의 대부분 몹시 우울하고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짙은 턱수염과 훌렁 벗겨진 대머리, 잔뜩 치켜세운 눈썹의 모습으로 매우 못마땅하는 듯이 노려보는 표정을 짓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처럼 보이는 배경도 그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하는 듯하다.

이는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을 포함해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지못하는 무지한 대중에 대한 분노를 동시에 드러낸 것이기 쉽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의 자화상을 보노라면 세잔은 분명 오랜 기간 화병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p.177)

 

자신의 재능을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 자화상에 그대로 드러난다. 재미있는 건 자화상과 다른 화가가 그려준 초상화가 동일 인물이 맞나 싶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 음울함, 불만 등이 역력히 드러나는 자화상에 비해 피가로가 그린 그의 초상에는 그저 점잖고 온순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있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사이의 괴리가 이렇게 크다니.

 

 

 

자화상으로 내면을 보여준 화가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그림은 일반인의 눈으로도 범상치 않다. 정신과 의사는 어떻게 보았을까?

 

고흐는 1886년에서 1889년에 이르는 3년 동안에 모두 37점에 달하는 많은 자화상을 남겼지만, 거의 대부분이 우울과 분노, 고독과 절망에 가득 찬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흔들리는 강렬한 붓 터치로 처리된 자화상의 배경은 매우 불안정한 고흐 자신의 정서적 상태를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뚫어질 듯 노려보는 그의 시선은 편집증적 의심에 가득 찬 그의 망상적 심리상태를 엿보게 하기도 한다.

(p.209)

 

생전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

극도의 피해망상, 환각, 발작, 자살, 그리고 심란한 그림들. 고흐는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꼭 만나보고 싶은 인물일 것 같다. 저자는 고흐의 그림에서 흔히 보이는 노란색이 화가의 불안정한 심리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설명대로 화가의 그림에는 후기로 갈수록 인물이든 풍경이든 가리지 않고 과도하게 노란색이 많이 보인다.

 

그들은 불행했다. 그런데, 왜 불행했을까?

객관적으로 봐도 상황이 좋지 않은 삶도 있지만 대부분 겉으로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휘슬러도 어머니와 불화를 겪었다고는 하지만 실상 방탕한 아들의 생활을 이해해줄 어머니는 드물다. 세잔 또한 부유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지원으로 생활했음에도 마음에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고흐의 삶도 화가로서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다는 불운은 있지만 형을 믿고 기다려준 동생 테오도 있고, 자애로운 어머니도 있었다. 그들이 불행했다는 건 따지고 보면 스스로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그들은 왜 평범을 거부하며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었을까?

범인(凡人)이 천재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저 전문가의 도움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천재성과 현실과의 괴리와 부담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의 마음을 느껴볼 뿐이다.

저자는 말한다. 자화상은 사진과 다르다고.

웃으며 남을 의식하는 표정을 짓는 사진과 달리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기장 같은 거라고 말이다. 이 책은 자화상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려 그림의 배경이 되는 화가의 삶에도 관심을 갖고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접근한다. 덕분에 그림을 이해하는 시각도 넓히고, ‘내가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

 

전문용어가 등장해서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정신분석 용어가 따로 해설되어있어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유명 화가의 그림이 여럿 있어서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 관심이 있거나 그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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