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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섹스 안내서-잇테츠] AV라는 매트릭스 | m o r i 2021-08-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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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진짜 섹스 안내서

잇테츠 저/김복희 역
스튜디오오드리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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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본산 AV라는 매트릭스에 갇혀 있다. 섹스는 부끄럽다고 덮어두고 모른척 해서는 안된다. 커뮤니케이션의 하나이며 상대와 함께 기쁨을 만들어나가는 행위다. 고민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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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는 일본의 성산업의 발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무라니시 개인이 극우성향을 지니고 있고, 여성 배우를 착취하거나 폭력을 행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해야겠지만, 당시 일본의 시대적 상황과 AV산업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전세계에 강력하게 작용한다. 구글 번역에도 그 힘이 작용한다는 설이 있다. AV와 구글 번역이라니 무슨소린가 싶지만, 한국어에서 바로 해당언어를 번역하는 것보다 일본어를 거쳐서 번역하는 게 정확도가 높다고 한다. 일본어가 그만큼 잘 알려져 있다는 말인데, 여기에 AV가 큰 역할을 했다는 설이 있다.

일본의 이웃나라인 한국 역시 일본의 AV의 영향력 아래 있다. 한때 김본좌로 알려진 사람이 당시 국내에 유통되던 일본AV70%를 유포했는데, 추가 영상을 올려달라는 요구에 쉬지도 못하고 업로드 작업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가 구속될 때 즘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 한 편 없는 자는 나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말이 나돌았다. 성경구절을 차용한 이 문구에 수 많은 네티즌, 심지어 경찰까지도 함께 울었다는 데 진실은 알수 없다. 또 하나의 낭설이 있는데, 자위와 관련한 실험을 진행하려고 해도 자위를 경험하지 못한 대조군을 찾지 못해 실험을 진행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무 장황한 이야기로 돌아온 이유가 있다. 일본의 AV는 우리나라(특히나 남성들)의 삶(?)에 뿌리 박혀 있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의 분위기에 반해, 성적인 분야는 고립적이고 폐쇄적이다. 가장 개인적인 사생활로 보호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숨겨야만 할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악으로 간주하고 있고, AV영상은 음성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일본산 AV들은 적절한 가이드 없이 남성들의 성교육(?) 혹은 욕구해소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진짜 섹스 안내서>AV에 출연하는 남성 배우가 말해주는 섹스 이야기다. 책의 분량만큼 결론은 간결하다. AV는 판타지라는 것. 섹스의 즐거움은 자신의 기쁨을 추구하면서 더 나아가 상대를 받아들이는 기쁨을 누리는 데 있(p.112)”, 하나의 커뮤니케이션(p.167)”이라는 점이다.

AV 때문에 판타지, 허구를 현실과 혼동하게 될까. 그렇지만은 않을테다. AV를 만악의 근원으로 하는 건 손쉽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주 소비자가 남성이라는 점(물론 여성향 AV도 있다고 저자가 소개해주지만 분명 주류는 아니다.)이다. 남성의 욕구에 특화되어 있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서 점점 더 강도가 세진다. 그리고 이것이 실재 여성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한다. 저자는 말한다. 실재 영상에서 행해지는 체위들은 대부분이 여성에게 불편하다. 시각적인 자극을 위해 만들어진 자세라는 점이다. 시각적 자극을 위한 허구가 우리의 성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 이는 남성에게 잘못된 교본이 되고, 여성은 그로 인해 고통받게 된다. 여성이 살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남성도 살기 어렵(p.119)”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다.

허리 아래는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권력자의 성추문을 둘러싼 오래된 격언(?)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된다. 여권신장과 더불어 인식이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상황은 분명히 느리겠지만,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올바른 성교육이 필요하다. 일본 AV에 의존해 잘못된 허구로 성을 습득하는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으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판타지가 실재와 다름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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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의 즐거움은 자신의 기쁨을 추구하면서 더 나아가 상대를 받아들이는 기쁨을 누리는 데 있습니다 p.112

여성이 살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남성도 살기 어렵습니다. p.119

잇테츠 : ‘AV는 판타지라는 걸 전제에 두고 이런 특이한 아이템도 있다더라하며 같이 즐기면 좋을 텐데요. p.140

잇테츠 : 아무래도 여성은 섹스를 통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남성보다 훨씬 큰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여성에게 섹스는 커뮤니케이션인 거죠.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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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윌 듀런트] 영적 고갈과 의존의 시대 | m o r i 2021-08-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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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윌 듀런트 저/신소희 역
유유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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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뭔 의미가 있단 말이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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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나는 비교적 조숙한 편이었다. 믿어질지 모르겠다. 10살 남짓했을 때다. 죽음은 내 첫 번째 기도제목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아프지 않게 죽는 것. 이유는 하나였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읽어봐도 세상을 산다는 건 죄를 짓는 일이었다. 삶 자체가 죄를 지어가는 일이라면, 종국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자연사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믿었다. 자살은 불가능했다. 자살 역시 죄였으니까. 자신을 죽이고, 부모님께 죄를 짓는 일이다. 그래서 기도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최소한의 고통으로 죽여 달라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갔다. 정작 자신의 죽음은 원했지만 겁이 많았다. 주변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떠나셨고, 아버지도 떠나셨다. 세상 역시 수많은 죽음으로 시끄러웠다. 그렇게 내 첫 번째 기도제목은 사그라 들었다. 더 이상 기도하지 않게 되었다.

  의문이 맴돌았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 이 지리한 고통의 반복을 견뎌내야 하는가. 그 고통을 견뎌낸 끝이 죽음이라면, 그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답이 없는 질문만이 맴돌았다. 한 선배가 명쾌하게 해답을 주기 전까지. “애 새끼가, 한 대 처 맞아야 정신을 차릴래.” 일단 던져진 목숨이라면, 스스로 정하지 못할 거라면, 움직여야 했다. “?”라는 질문은 사치다. 여유가 있다는 소리다. 급한 사람은 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어떻게가 중요하다.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하고,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직장을 구하고. 일단 살아남아야하니까. 실재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당장 삶을 종료하기로 마음먹지 않는 이상은. 다시 시간은 지나갔다. 정신없이 일에 치여 살면서 어떻게에 익숙해졌다. 작지만 주어진 물질은 달콤했다.

  그러다 문득, 첫 번째 기도제목과 왜가 다시 찾아왔다.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는 그에 대한 해답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읽어야만 했다. 좀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말들이었지만, 의무감을 느꼈다. 읽히지 않는 이유는 확실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문명사학자가 쓴 책이니 지금과는 동떨어진 문체일 테다. 수 많은 고전이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체에 적응하기 힘들어 읽기 어렵듯이. 약 백년 전의 간극은 감안해야 하는 글이다. 책은 어느 날 윌 듀런트의 집에 한 남자가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그 남자는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할 것이라고.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 남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저자는 고뇌한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일종의 집단지성(?)을 발휘할 생각에 이른다. “‘생각 하는만큼 실제로 잘 살아 온당신(p.18)”, 버트런트 러셀,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 조지 버나드 쇼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

  많은 유명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저마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의외로 비관적인 사람도, 더없이 열정적인 사람도 각자의 이유에 따라 삶을 지속하고 있다. 다만 나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그저 수많은 말의 잔치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저자가 마지막 편지로 던져준 삶의 의미와 만족을 찾는 비결은 한 사람의 모든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그 대가로 그의 삶을 한층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과업의 발견(p.190~191)”하라는 조언조차 버겁게만 느껴진다. 말의 잔치 속에서 (앙드레 모루아의 말처럼)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뿐(p.86)”이 노리에 박혔다. 불확실성을 견디기에는 너무 약한걸까. 조지 버나드 쇼의 말마따나(젠장,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뭔 의미가 있단 말이오? (p.166)”) 그런 질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역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놈에게는 매가 제격이란 말일까.

  다른 유명인의 말보다 의외로(?) “ 종신형 죄수 79206의 말이 와 닿았다. 그가 어떤 이유로 종신형 죄수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형벌의 무게로 짐작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죗값을 치르는 상황에도 살아서 자유를 즐길 수 없는 상황에도 담담했다. 인생은 역행할 수 없인간도 마찬가지(p.160)”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그 어떤 유명인의 이야기보다 인상 깊었다.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현재를 받아들이며, 미래에 절망하지 않았다. 인생은 부단히 앞으로 움직이는 강과 같습니다. 소용돌이도 있고 역류도 있겠지만, 강줄기 자체는 계속 나아가는 것(p.160)”이라고 말하는데, 단단한 그의 내면을 느끼기 충분했다. 그가 감옥에서 생을 마쳤는지 모르겠다. 강줄기에서 어떤 역류를 만났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가 발견한 진리, 행복이란 정신적으로 만족스러운 상태(p.158)”에서 바다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인간의 변치 않는 위대함을 믿거나 삶에 죽음으로 지울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우리는 영적 고갈과 의존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마치 예수의 탄생을 갈망했던 그 시대처럼. (p.22)”

 

  2019년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6.9명으로 2017년 이후 계속 증가추세다. OECD 회원국 중 1위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보다 2배 이상 자살률이 높다. 자살률 1위의 국가가 출산율 최하위의 국가인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네 삶이 팍팍하다는 증거일 테다. 백 년 전쯤의 글이 다시금 소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듀런트는 백 년 전에도 영적 고갈과 의존의 시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더 나쁜 상황인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어떻게에만 매몰되었던 우리가 그때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나빠졌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자아보다 더 크고 수명보다 더 오래가는 목적(p.188)” 조차 찾을 수 없는 사회가 된 걸까. 백 년 전의 물음이 아직도 나와 우리에게는 유효하다. 10대의 기도제목과 20대의 왜를 돌아본다. 아직은 여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명쾌한 답을 주었던 형에게 한 대 처 맞기까지는. 인간은 이 세상을 뜰 때도 이 세상에 올 때만큼 참고 인내해야 한다.(<리어왕> 52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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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리의 발견이야말로 인간이 저지른 역사상 최대의 실수였다는 결론을 내리기(p.17) 직전에 와 있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보호하던 환상과 절제를 앗아갔을 뿐입니다. ‘진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름답지도 않으며 그토록 열렬히 갈구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 그것을 바라보면 우리가 왜 그토록 성급하게 진리를 찾으려 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진리는 순간적인 쾌락과 내일의 사소한 희망 외에는 존재의 이유를 앗아갔으니까요. / 우리를 지금의 이 길로 데려온 것은 과학과 철학입니다. 오랫동안 철학을 사랑해 온 나는 이제 삶 그 자체로 눈을 돌리려 합니다. ‘생각 하는만큼 실제로 잘 살아 온당신에게,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청하려 합니다. p.18

이것이 현대의 본질적 상황이다. 우리를 비관주의에 빠뜨린 것은 단지 세계대전만이 아니며 최근의 경제 침체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시적인 부의 감소나 심지어 수백만 명의 죽음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문제다. 비어 있는 것은 우리의 집이나 금고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있다. 이제는 인간의 변치 않는 위대함을 믿거나 삶에 죽음으로 지울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우리는 영적 고갈과 의존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마치 예수의 탄생을 갈망했던 그 시대처럼. p.22

도구는 달라져도 목적은 다름이 없다. 규모가 더 커졌을 뿐, 인간(p.33)의 목표는 선사 시대나 고대에 그랬듯 여전히 이기적이고 유치하고 어리석고 모순적이고 살인적이며 자멸적이다. 모든 것이 진보했다. 인간만 제외하고. / 그리하여 모든 역사는, 인간이 축적하고 발견한 그 모든 것의 자랑스러운 기록은 종종 헛된 순환이자 맥 빠지는 비극처럼 보인다. ... 콩도르세가 말한 인류의 완전을 향한 무한한 가능성이 남긴 것은 이것이 전부다. 정말이지 가능성만은 무한했다. p.34

종교적인 것은 돈에 팔리거나 어릿광대 노릇을 하게 되면 항상 죽어 버리게 마련이다. p.41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공산주의냐 개인주의냐하는 것도, ‘유럽이냐 미국이냐하는 것도, 심지어 동양이냐 서양이냐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인간이 신 없이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종교는 철학보다 심오하며, 지상에서 인간적 행복을 구하기를 거부했다. 종교는 인간의 희망을 지식이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곳인 무덤 속에 가져다 두었다. p.43

한 세대의 철학은 다음 세대의 문학이 된다. p.61

<찰스 비어드의 답장> 오래전에 아마도 시인 밀턴이 이렇게 말했지요. “진실은 처음엔 끔찍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다시 말해 진실이란 우리 기존의 망상과 확신을 어지럽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진실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살멩 받아들이게 되지요. p.65

<앙드레 모루아의 답장>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뿐입니다. p.86

<윌 로저스의 답장> 인생이란 결국 한바탕의 야단법석이다. 그러니 웃을 일을 만들자.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자. 아무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지금 이 세대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확실히 아(p.92)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각 세대는 이전 세대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이전 세대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구하려하지 말자. 간절히 구할수록 오히려 함정에 가까워질 뿐이니까. / 하나의 이상에 헌신하지 말자. 그건 마치 호수처럼 보이는 신기루를 향해 말을 달리는 일과 같다.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호수는 이미 없을 것이다. 사후 세계에 관해 뭔가를 믿는 건 괜찮지만 그곳이 이러이러할 거라고 너무 확고하게 믿지는 말자. 그러면 그곳에서의 삶도 그리 실망스럽게 시작되지 않을 테니까. 패배할 때마다 한 발짝 앞서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하자. p.93

<해블록 엘리스의 답장> 괴테가 그랬던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은 모두 질병이라고. p.106

<칼 래믈리의 답장>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현자가 되어 지나친 추상적 사고에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온갖 우울과 절망을 받아들이느니, 지금처럼 열심히 일한느 사업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p.110

<어니스트 홉킨스의 답장> 현대의 정신적 문명 세계 전체는 진실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삶의 충만함에 접근하려면 진실의 길을 따라가야 하겠지만 그 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종교의 영속적 가치는 그것이 인간의 정신에 일으키는 열망과 희망입니다. p.112

표현될 수 없는 감정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짓된 것은 아닙니다. p.113

<에르네스트 딤닛의 답장> 내가 신을 믿게 했던 신앙은 이제 죽어 버렷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신앙이 준 환희를 애도하리라. -Ch. M. 게랑 p.129

과학에 대한 당신의 확신이 비관주의를 낳은 것입니다. 불신을 허용할수록 희망의 여지는 늘어납니다. 믿음에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으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p.136

우리는 우선 믿지 않고서는 이해하길 바랄 수 없다.” - 존 헨리 뉴먼 p.136

<오언 C. 미들턴(뉴욕 싱싱교도소 종신형 죄수 79206)의 답장> 철학자에게 내가, 즉 종신형을 받고 감방 벽에 갇혀 있는 사람이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은 나에게 인생의 의미란 거대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나 자신의 능력, 교훈을 배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그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계는 존재하지 않아요. 한마디로 인생의 가치란 딱 그것을 쟁취하고 활용하려는 나의 의지 만큼인 것이지요. p.155

진리는 아름답지 않지만 딱히 추하지도 않습니다. 왜 둘 중 한쪽이어야 합니까? 통계의 숫자가 그저 숫자일 뿐이듯 진리도 그저 진리일 뿐입니다. 자기 사업의 정확한 상태를 알아(p.157)보고 싶은 사람은 통계를 확인합니다. 통계가 불량한 사업 상태를 드러낸다 해도 그는 통계를 욕하거나 자신의 환상을 깨뜨린 통계가 추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진리를 저주하겠습니까? 진리가 그의 인생에서 하는 역할은 사업에서 통계가 하는 역할과 다를 바 없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선천적인 우상 숭배 성향 때문에 진리의 조각상이 고귀한 의복을 둘렀을 거라고 상상합니다. 그러나 막상 초라하고 벌거벗은 모습의 진리가 눈앞에 나타나면 환상이 깨졌다고 외치지요. / 관습과 전통 탓에 우리는 진리와 자신의 믿음을 혼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관습과 전통, 현재의 생활 방식은 우리가 이런저런 물질적 안락을 누리는 이런저런 신체적 상태가 아닌 이상 행복할 수 없다고 믿게 만들었지요.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믿음일 뿐입니다. 진리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행복이란 정신적으로 만족스러운 상태라는 점입니다. 그런 만족은 무인도에서도, 작은 마을에서도, 대도시의 다세대 주택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부자의 대저택에서도 빈자의 오두막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p.158

내게 인생은 부단히 앞으로 움직이는 강과 같습니다. 소용돌이도 있고 역류도 있겠지만, 강줄기 자체는 계속 나아가는 것이지요. p.160

인생은 역행할 수 없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p.160

<버나드 쇼의 답장> 젠장,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뭔 의미가 있단 말이오? p.166

어쩌면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뿐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본능이라는 것은 없으며 고독에 대한 공포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p.169

인간은 이 세상을 뜰 때도 이 세상에 올 때만큼 참고 인내해야 한다.” -<리어왕> 52p.170

인간의 탐욕은 이런 원시 시대의 불확실성에서 생겨났습니다. 우리의 악덕이 한때는 생존 투쟁에 꼭 필요한 미덕이었던 것이지요. 이는 우리의 시초에 대한 일종의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77

민주주의가 파멸하는 것은 언제나 다수의 바보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p.181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자아보다 더 크고 수명보다 더 오래가는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p.188

한 존재는 그를 포함하는 더 큰 총체와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든 삶에 일관된 형이상학적,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어도 특정한 삶의 의미를 그보다 큰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찾아낼 수는 있겠지요. p.188

나로서는 삶의 의미와 만족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총체에 참여하십시오.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십시오. 삶의 의미는 우리가 보다 더 큰 존재를 위해 생산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부여받은 기회 속에 있습니다. ... 삶의 의미와 만족을 찾는 비결은 한 사람의 모든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그 대가로 그의 삶을(p.190) 한층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과업의 발견입니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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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라면 정조처럼-김준혁] 새로울 건 없지만 서도... | m o r i 2020-09-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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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저
더봄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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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딱히 새로울 건 없다. 책 제목대로 특성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칭찬 일변도에서 벗어났으면 어땠을까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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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군주는 단연 세종이다.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다음은 아무래도 정조가 아닌가 한다. 사도세자의 아들로 왕세손임에도 살해위협을 넘나들었다. 결국은 살아남아 개혁을 추진하고 백성을 사랑했던 왕으로 존경받는 모습은 뭇 사람의 감동을 유발한다. 1776310, 22대 국왕으로 즉위하며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하는 모습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희열을 준다. 그는 개인적인 복수를 버렸다. 신하들의 공포심과는 달리 정조는 국가의 개혁과 백성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정조의 죽음을 아쉬워한다. 그가 추진한 대로 국가 개혁을 이루었다면 후일의 아픔이 조금은 덜했으리라는 기대감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극복해 내지는 못했으나, 긍정적인 평가는 사극이나 영화의 주요 소재나 시대적 배경으로 자주 등장케 한다. 그만큼 정조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정조 전문가 김준혁 교수는 <리더라면 정조처럼>이라는 책을 통해 정조의 리더십을 소개한다. 앞서 말한 대로 정조는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소개할만한 새로운 내용이 흔치 않다. 역사 매니아거나 정조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인상깊을 얘기는 없다. 다만, 리더의 자질이라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정조의 모습들을 재분류해서 전달한다. 전체 749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편 당 짧은 내용으로 구분되어 있어 하루 한 두 편씩 읽는 다면 한 달 안에 정조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정조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만큼 이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기에 이러한 시도는 필요하다. 다만, 역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실상은 실용서라고 보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49편을 만들다보니 세부내용에서 다소 반복, 중첩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한 사람의 일생이나 모습, 업적이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보니 불가피한 부분이다. 주역의 이야기를 활용해 49개의 꼭지를 만들어냈지만 그 꼭지를 채워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아닐까. 정조에 대해서 통합적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게다가 칭찬만 듣다보면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정조 역시 위대한 인물임에는 분명하지만, 완벽한 인물은 아니다. 그 역시 문체반정과 같은 역행을 거듭하기도 하는 등 조선의 전통적인 사상을 벗어나거나 극복하지는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런 부분은 아마도 책의 주제에 벗어나겠지만, 균형을 잡기위해서라면 반면교사로 라도 얘기가 나옴직도 할 부분이다.

리더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다. 시대마다 요구하는 유형도 다를 것이며, 사람마다 취할 수 있는 태도 역시 다르다. 성공적인 리더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성공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견이 존재한다. 게다가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시대에서 완벽한 리더는 존재할 수 없다. 정조와 같이 근면성실하고,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다 해서 꼭 좋은 리더가 아님은 우리가 이미 수없이 경험했다. 중요한 건 방향성이 아닐까. 그 방향성의 진정한 모습은 수원화성을 축성하면서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없었(p.497)”다는 사실에 기대어 본다면,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되새겨 봄직하다.

 

거대한 형태의 문화재, 온갖 치장이 들어간 문화재만이 우리의 자랑이 아니다. 오랜 세월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문화재야말로 진정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p.448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고 하지 말라.(p.232)”고 했던 정조의 말을 되뇌며 하루를 반추해보자.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리더로 살아가기에 어떤 방향성이 필요한지를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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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은 바로 정양할 때의 공부이고 성찰은 바로 행동할 때의 공부이다. 그러나 본체가 확립된 뒤에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학자의 공부는 당연히 함양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함양만 중요한 줄 알고 성찰에 힘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러기에 덕성을 존중하고 학문을 하는 것 중 어느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된다.”p.226

사람을 쓰는데 도가 있으니 오직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눈앞에 좋지 않은 사람이 없고 천하에 버릴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p.229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고 하지 말라.” p.232

정조는 자신의 행차를 단순한 행차가 아닌 행행幸行으로 규정했다. 국왕의 행차가 백성들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296

정치는 소통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정조의 비밀어찰의 핵심인 것이다. p.396

거대한 형태의 문화재, 온갖 치장이 들어간 문화재만이 우리의 자랑이 아니다. 오랜 세월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문화재야말로 진정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p.448

정조시대 화성 축성에서는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없었다.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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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장훈] 삶과 글에서 중요한 것은 끈기, 끊기 | m o r i 2020-09-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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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

장훈 저
젤리판다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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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삶을 보고, 끈기와 끊기를 되새겨 본다. 공무원도 근원적으로는 월급쟁이,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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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특성상 글쓰기를 지속해야 한다. 문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빈 칸을 채우다보면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 잘하고자 하는 욕심과 잘 할 수 없는 능력의 괴리 속에 끝없이 가라앉는다. 완벽함은 꿈이다. 그저 적당한 분량, 적당한 내용으로 하루하루를 잘 버티기도 쉽지 않다. 글은 생계의 수단에 불과한 걸까. 정훈의 <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를 통해 말한다. 글은 삶이라고.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고 말한다. 어쩌다가 정무직(별정직) 공무원으로 삶을 시작했고, 그렇게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되었다. 연설문, 메시지 작성만큼 말과 단어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사람도 드물 테다. 무엇보다 자신의 말이 아닌 남, 다른 사람의 말을 만드는 일만큼 머리털 빠질 일도 없겠지 싶다. 그런 그가 출퇴근 시간 짬을 내어 글을 썼다. 그리고 책 한권으로 묶어 냈다.

삶이 그렇듯 글쓰기도 끈기끊기의 절묘한 줄타기다.(p.62)” 변화의 시대에 꾸준함이 더 필요하다. 실력과 운도 중요하지만 성공할 때 까지 버텨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꾸준하게, 틈나는 대로 쓰되, 적당하게 끊어 낼 수 있다면 그 나름대로 성공이 아닐까. 게다가 글쓰기는 성찰이다. 커서의 깜빡임에 따라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단어를 다르게 보고, 문장을 나눠보고, 입으로 읊조려 본다. 자연스레 관찰과 통찰을 이끌어 낸다. 그래야만 글을 쓸 수 있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갈 지라도 평소에 생각한 바가 없다면, 글이 나올 수 없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자신이 드러난다.

장훈의 글을 보니 그 사람이 누군지 자연스레 느껴진다. 자신이 배운 바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느끼게 한다. “기록은 곧 존재의 증거(p.107)”이기에, 이 책은 그의 존재다. 자신을 돌아보고, 일터를 고민하는 모습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어쨌든 공무원이 되었고, 어쨌든 공무원도 직장인이다. 일반 직장인과 다른 의무감이 있어야겠지만, 결국은 월급쟁이다. 관계에서 상처받고 후회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함을 깨닫기도 하고, 숫자 놀음에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이 그렇듯 정답은 없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특별할 것 없는 직장인의 이야기로 보아도 좋다. 별정직 공무원이니 만큼 일반적인 공무원과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공무원의 삶과 생각법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읽어 봄직도 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장훈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엿볼 수 있다. 더불어 나 역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다. 내 작은 꿈을 돌아보며 꾸준히 버텨내는 삶, 기다리는 삶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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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순발력이고 글은 지구력이다. 말은 재치를 더해 주고, 글은 정확성을 더해 준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만의 유희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 메시지를 기획하고 완성하는 일이다. p.27

글쓰기도 끈기끊기의 절묘한 줄타기다. p.62

살아가다 보니 관찰과 통찰을 이끄는 힘이 끊임없는 성찰임을 깨닫게 된다. p.77

관찰의 핵심은 다르게 보기이다. ‘낯설게 보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규칙적이고 일상적이지만 의미 있게 느끼고 보는 힘이다. (p.79) ... 통찰의 핵심은 묶어서 보기이다. 잘 묶으려면 잘 나누어야 한다. 나눔도, 묶음도 바른 가치관과 틀이 있어야 한다. (p.80) ... 성찰의 핵심은 솔직히 보기이다. 나의 내면을 보는 힘, 나를 나대로 볼 수 있는 힘이다. 나를 제대로 봐야 세상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좋은 틀은 성찰에서 시작된다. p.81

기억이 존재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기록은 곧 존재의 증거다. p.107

후회라는 기회비용은 늘 발생한다. 그 기회비용을 최소화 하는 것이 곧 생각의 시간이고, 글쓰기 연습이다. p.110

배려는 배려로, 호의는 호의로 끝나야 하는데 그에 상응하는 상대방의 태도를 기대하게 된다. 그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을 때 더 큰 실망으로 작용한다. p.186

내가 겪었던 과거를 보상받으려 하지 말자. 소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p.187

다수에게도, 소수에게도 민주주의의 원리는 함께 적용되어야 한다. p.198

정치라는 것은 사람을 모으는 게임이다. 인재를 영입하고, 지지자를 넓히고, 민심을 불러오는 일이다. 누구 한 사람의 천재적인 기획력과 지도력으로 이끌어지는 세상이 아니다. p.231

모든 시민이 미디어다. 시민이 매체이자, 콘텐츠다. 모든 메시지는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p.245

어른이 되면서 마음에서 출발한 감정이 몸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닫히게 된다. p.335

숫자는 지배자의 언어이다. (p.337) 관리를 위한 효율의 표식이다. ... 개개인의 정체성과 숫자는 그리 의미 있는 관계가 아니다. 나는 나로 불려야 하고, 세상의 둘도 아닌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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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힘-스테르담] 버티는데서 찾은 기다림 | m o r i 2020-07-2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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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견디는 힘

스테르담(송창현) 저
빌리버튼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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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과 기다림, 존경하는 분의 말의 뜻을 깨닫게 해준 책. 그러나 추전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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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끝없는 견딤의 연속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여잡은 유일한 단어는 견뎌라. 아버지가 아프시니 네가 잘 견뎌야 한다. 가진 게 없으니 있는 걸로 잘 버텨라.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니 때가 올 때까지 버텨라. 무진장 버티고자 애쓰는 만큼 불안했다.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내 딛을 때마다 세계는 흔들렸고, 매 걸음마다 두려웠다. 세상은 건조해서, 손대면 부스러지는 마른 낙엽과도 같았다. 두 번째 기회가 있을까.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지나치게 연약했다. 매 고비마다 앞서 그 길을 지나온 사람들이 위대해 보였다. 매 순간 순간을 버텨내는 사람들의 위대함.

메마른 세상에서 두려움에 떨며 위태하게 버티고 살아가는 순간들. 존경하는 분께서 말씀하셨다. 삶은 버티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거라고. 항변 할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것도 제2의 기회,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오늘 내가 당장 죽을 듯 아프다면, 기다리고 견뎌내는 일은 고문에 지나지 않느냐고. 스테르담의 <견디는 힘>을 읽고서 그분께서 말씀하신 기다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의 견디는 힘기다리는 힘은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저자는 견디기에 대해서 새로이 정의한다. “수동적인 게 아니라 역동적인 나의 선택이며, 우리는 이 행위를 너무 하찮게 여기고 있다고. 나는 이것 하나만으로 이 책의 의미를 얻었다. 살아갈 용기. 어쩌면 이 용기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며 버텨내는 것. 그것이 내가 존경하는 분께서 말씀하셨던 기다림의 의미가 아닐까. 지금은 상황 상 그 뜻을 여쭙지 못함이 아쉽다.

저자가 제시한 5가지 기술, 현재의 나와 마주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자기 확신을 가지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공부를 하라. 이 모든 이야기들은 지겹게도 들었고 보았다. 이미 많은 책에서 지겹도록 반복한 내용이다. 기술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존경하는 분의 단 한마디를 체감할 수 있게 해줬기에, 만족한다.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으신 다른 분들에게는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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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는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역동적인 나의 선택이다! p.10

우리는 견뎌내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하찮게, 지겹게 여기지는 않았나 묻고 싶다. p.11

마음이 불안정하다면, 그 현실을 서글퍼하기보다는 무엇이 나를 흔드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흔들리는 마음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신호다. 그것은 (p.27) 분명 미래 또는 다가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걱정이다. ... 불안함이 뒤덮인 날들. 결국 나 자신을 면밀히 돌아봐야 하는 날들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p.28

라는 의문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질문은 인류가 문제에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이겨내어 온 훌륭한 도구다. 이 생각의 도구가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흐름이 빨라지고 살기는 점점 각박해지다 보니 이젠 ?’라는 질문보단 어떻게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문제에 닥쳤을 때 문제의 본질보단 솔루션에 집착하는 것이다. p.62

그들은 하루아침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성공할 때까지 버틴 것이다. p.79

버티지 않으면 삶이 지속되지 않을 것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버텨야 삶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지속되니 버텨야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p.81

정체성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확립할 수 있다. 정체성은 확정형이 아닌 과정형이므로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p.141

뛰어남은 훈련과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 예술이다. 사람들은 반복해서 행하는 것의 결정체다. 따라서 뛰어남은 습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 p.142

속도는 관성을 내포한다. 현재의 속도보다 더 느려지면 불안이 창궐한다. 그러니 세상의 변화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p.192

시대의 변화는 욕구의 변화다. , 욕구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시대의 트렌드도 변한다. p.197

우리가 만든 세상은 우리 생각의 과정이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p.206

견디는 용기’ p.230

할 수 있을 때는 즐기고, 해야만 할 때는 견뎌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p.231

견디는 힘은 결국 살아내는 용기다. p.231

사람에 대한 배려는 사람인 에 집중할 때 생겨날 수 있다. 남의 아픔을 공감하고 남의 불편함을 알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다. p.257

어떤 것에 흔들려 넘어지는 건 몸이 먼저다. 몸이 쓰러지면 마음도 쓰러지는 것이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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